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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소설 얼굴
2013-04-06 02:22:56
kwanganna

조회:894
추천:78

주제:

 

한 마을에서 신기한 아이가 태어나 많은

해학을 이루는 소설이며

여인들이 태아교육을 중요시 했으니 구체성이 없이 

시 부모님의 어렵고 힘든 일을 맡아 가며 살아가는

여인상의 단편이다.   그 시대에는 어쩔 수 없는

불구로 인하여 한 가정을 불행하게 이끌어 가기도 하고

그 시대에 여인상이나 남성상을 부각 시켰으며

아파도 아프다고 하지 못 하는 우리어머님의

시대를 그리면서 불구의 자식을 둔

어미의 아픔을 그린 작품이다.


 

 


얼굴 /강애나
 
가을 걷이가 지나 한가한 농가에는 동네 마실을
다니게 되면 한결같이 한보네 얘기 뿐 이었다.
한보 할매는 으레 그런 자리를 피해서 산에 가서
백일치성을 드리곤 했었다.
한보는 7살이였고 7대 독자로써 권씨 문중의 제사를 이어나갈
큰 장손 이었다.  아이는 7살까지 걷지도 못 하고 얼굴은
뱀 딱지처럼 허연 부스럼이 덕지덕지 붙었었고 겨우 구불텅구불텅
기는 것이 한보에게는 뼈가없는 뱀과 같았다.
1947년 10월 권 씨의 광에서는 풍년가를 부르고 탈곡을

마치고 광에다 추수한 나락을 옮기려 할 때 지난 해 타작해 놓은 남은 쌀을 내다 팔려고 가마니를 옮기던 한 일꾼이 얏! 이것 뭐야!~겁에 질려 허걱대며 헛것이라도 본 것처럼 뛰쳐나오는

것이었다.  권 씨의 부인도 아이를 가진 터라 좋은 것만 보려고 태교를 신경을 쓰고 있을 때에

그 자리에서 차마 보지 않을 것을  보고 말았었다 5평 남짓 하는 광안에는 알을 낳고 있는

뱀도 아니오! 능구렁이도 아니고 용도 아닌 머리에 하얀 무늬를 띄고

큰 귀가 달려있고 4발을 가지고 손톱까지 있는

뱀이 따우리를 틀고 알을 낳고 있었다.
그 때에 한 일꾼이 얼른 그 뱀을 타작하는
도리깨로 후려치고 있었다.
그 뱀은 알을 낳던 알을 다

깨어 먹어 버리고는 아픔의 고통을 이기지 못 하는

모양으로 구불턱 구불턱 몸을 비틀며
광 바닥 구석에 축 늘어져 죽어 자빠졌다.
떡보 일꾼은 희귀한 뱀의 껍질을 벗기고

삶아서 일꾼들과 술안주로 나누어 먹고 그 해는 그렇게

평화스럽게 한 마을이 서로서로 흉 허물없이 잘 지내는 이웃사촌들이었다.
일렬로 깎아진 잔뿌리 몫이 남아 버린 논밭에는 간혹
철모르는 메뚜기만 뚜두둑 날아다니고
고추잠자리를 잡는

아이들이나 논두렁 사이에서 사지감자를 채 캐지 못 하고

남은 밭에 서리를 해서 쥐불을 넣고 구어 먹는

천진스런 아이들만 들판에서 풍경만 남았었다.
 
한보 아빠의 놀라움
 
개똥이네 집에서는 일곱 남정네들이 화투판이 한참일 때

한보 아빠를 찾는 일꾼의 목소리가 들렸었다.

한보 아빠는 끝판에 한 끝을 잡나 보다 했는데
갑자기 부르는 소리에 허겁지겁 몸을 챙겨 일꾼을 따라가고 있었다.

한보아빠는 오랫동안 화투를 하며 앉아 있었기 때문인지 절여오는

다리를 겨우 걸으며 헛발을 디뎌 떨어진 낭떠러지기 장소가

바로 다름 아닌 지난 한보네 광에서 잡은 뱀 껍질의 발 껍질과

손 껍질로 얼굴의 눈구멍까지의 모형이 남겨져

그 뱀 껍질은 원한이라도 품은 듯이

풀숲에 고대로 움츠리고 그곳에 버려져 있었다.

풀숲에서 몸을 일으킨 권씨는 예사 일이 아니라고
생각 하면서 집으로 왔다.
딸 셋을 낳고 아들을 기대하는
권씨는 요번에는 제사를 이어갈 아들 하나 낳아주길
삼신 제사를 삼신님께 가을걷이가 끝날 무렵에 드렸었다
아이는 순산했으나 권씨의 모친은 아이를 보여주지 않으려고 했었다.
그래도 첫 아들이라니 궁금해서 보아야 하겠다고
하기에 한보아빠의 어머니 심씨는 손자를 안고
아들에게

손자의 잠지만 보여주려 할 때
한보아빠 권씨는 하마터면 부인 앞에서 소릴 질러 놀래킬 뻔했다.
아이의 다리는 짧고 살결은 푸르고 아이의 잠지는 길고 불알은
아주 작았으니 사람의 그것이라기 보다는 짐승의 그것에 가까운
이었다.

아이의 몸통은 길고 다리는 짧고 팔도 짧아 차마

아들을 낳았다기보다는 뱀을 낳았다고 해야 했다.

앗! 내가 죄를 받았나 보다 한 순간 스쳐지는

권씨의 생각은 지난해 광안에서 알을 낳던

일꾼들이 잡아먹은 구렁이도 아니고 뱀도 아닌 뱀을 생각했었다.
아이가 울 때면 응애응애 우는 것이 아니고 꾸르륵 드르륵 울면서

젖을 달라고 보채는 것이었다.

 

더구나 권씨의 부인 이씨는 아이가 젖을 빨 때는

아픔에 엉엉 울면서 젖을 먹어야 했었다.

아이가 젖을 빨 때는 뚜럭꾸럭 소리를 내면서

온 몸을 다 비틀고 눈을 홀까닥 뒤집히면 권씨 부인

이씨는 자기가 애기를 낳았다는 생각을 버리고

아이가 이 젖을 먹는동안 동시에 농약을 타 먹이고 자신도
따라 아이와 함께 죽고 싶은 심정 이었었다.
그래도 시어머니 심씨는 천성이 고와서 며느리를 많이

이해 해주는 편이었다.
아이를 낳고 아이가 살 가망성이 없을 것 같아 돌이 지나도

이름이 없어 물렁이 라고 별명이 지어졌었다.

왜냐하면 아이는 정말 뼈가 없는 것 같이 돌이 될 때까지
걷지도 못하고 겨우 슬금슬금 뱀처럼 기기만 했었다.

아이를 목욕 시킬 때면 가을에 추수한 수세미로 박박

닦여야 아이가 가려워하지 않았다.

상식적으로 생각할 때 아기의 살은 보드랍다고 생각하지만

이 물렁이는 그렇게 안 닥이면 내내 가려워
잠을 이르지 못하고 긁어대며 울고는 집안 식구들이 잠을 못 자도록
꾸룩뚜룩 울어 대었다.
시어머니 심씨는 아이에게 떡을 해서 삼신께
빌기도 하고 아이의 손을 잡고 지난번 잡아먹은
구렁이 조상에게 빌기도 했었는데 그때마다 아이는
신기하게 울음을 끝이고 쌔근쌔근 잠을 자고 있었다.

돌이 지나자 시아버지 권씨는 아이의 이름을 지었었다.

瀚(한)은 넓고 큰 모양의 한자요 보(珤)는 보배보라고 지었더니

동네 사람들 마다 우물이나 냇가에 모이면 한 마디씩 지껄이곤 했었다.

넓은 들판에서 살아야 할 보배로운 논 지킴이 구렁이를
잡아 먹어서 결국은 인과응보라고 이름까지 죄를 받았다고 했다.

한보할매 심씨는 비록 한보가 걷지도 못 하고 밥을 먹여줘야

먹어도 잔칫집에 초대 할 때는 꼭 한보를 데려가 먹이곤 했었다.
동네 사람들은 그 애 얼굴만 보면 눈을 가리고 보려하지 않았다.
그의 눈은 실눈으로 코는 숨 쉴 구멍만 있고 입은
하마같이 컸었고 밥을 받아 먹을 때면 목젖이
다 보이곤 하면서 이빨은 쥐 이빨같이 가늘고 뾰족했었다.
그 애의 살결은 꼭 뱀을 연상 하도록 뱀의 살결과 같이
각대기가 그어져있고 푸르죽죽한 살색갈이 꼭
뱀 한 마리 데려 온 것 같아 그 애가 오면 모두 피해 버리기
때문에 한보 할미는 신나 했는데 왜냐하면
음식을 많이 싸 가지고 갈 수 있었기 때문 이였다
그러나 충주 바닥에서도 제일 구두쇠로 유명한 장씨는 달랐다.
잔치를 치르는 날 밥을 세 그릇 먹거나 많이 싸가지고

갈려고 하는 사람들이 보이면 장씨는 무조건 소매를 걷어 메고
한보할매나 떠버리할매나 거머리할배나 동네 아낙이 와서

잔치마당을 펼치면 마당 한가운데 냄새가 독한 동장군을 메고 나간다.
동네 아낙은 기절을 하여 똥 냄새 맡기 싫다고 도망가는것이었다.

장씨의 구두쇠 작전에 심술까지 부려서 놀부장씨로 별명이 나 있기도 했다.

장씨는 놀부 심술쟁이로 그 동네에서 제일가는 구두쇠론 장씨요

제일 부자도 장 씨였는데 그 전에는 권씨네가 제일
부자였지만 한보 낳고서 집안이 기울기 시작하더니

한보의 아빠는 울화통에 계집질을 일삼고 있으니

머슴들도 세경을 주지 않는다고 다 도망 가버리고

가을이 되도록 추수 걷을 생각을 못 했었다.

어느 날 한보가 겨우 꾸부정 거리면서 기다가 걷다가 했을때 쯤

어느 여인이 계집아이를 안고 한보네 집을 쳐 들어와

안방 차지를 하는 것이었는데 그 어린 계집에는

백일을 지냈을까 말까 했다. 그 여인은 개골막 당골래 무당이였다.

그 당골래 무당은 신점을 잘 봐서 동네에서는 무슨 일이 있든지

당골래 무당에게 굿을 하거나 물어보기만 하면
병을 낫게 하든지 귀신을 쫒게 하는 그런 우환에는 으레

당골래 무당을 찾아갔지만 한보 아범 첩이 되고 나서는

그런 무당도 신이 다 했다 하여 집어치우고 안방 마님으로

들어 안고 나서는 한보엄마를 종 부리듯이 했다.

왜냐하면 한보같이 병신자식을 낳음은 전생에 죄가 많음이라고 하면서

한보 엄마를 쥐 잡듯이 했는데 더욱 어이없는 것은 한보 엄마가

그 무당보다 2살 위의 형님이라는 것이다.
한보엄마는 한보 같은 아들을 낳은 것도 한이 되기도 하지만

한보를 볼 때 마다 너무 안타깝고 처절해 언젠가는 자살을 하려고

농약을 먹으려 할 때마다 한보의 얼굴이 떠올라
가슴을 쥐어뜯고 울면서 절에 가서 백일불공을 드리고

몇일을 절에서 머물고 오던 날 한보의 동생 점례를 무당이 낳았던 것이다.

이상하게 점례는 크면서 얼굴에 작은 점이 번지면서

온 몸에 전체가 까만 반점으로 번져갔었다.

한보의 나이 3살 점례는 막 돌을 지났지만
영리하기로는 동네어른을 뺨 칠정도로 영리하고

어른들과 말을 하면 어른인지 아이인지 구분을 못 할정도로

앵무새 처럼 말을 잘 했다. 또 점례가 휘파람을 불면서

춤을 추면 동네 어른들은 신이나 하면서 그 애가 감나무 밑 마당으로

나와 놀기만 하면 동네 어르신들은 다 모였었다.
하지만 그 애가 자라면서 까막 점은 온몸에 다 번져서

왼쪽의 반 전체가 까만 살 이여서 보기가 흉했었다.
동네 어른들은 무당이 남의 여인의 가슴에 대 못질을 해서

죄를 받았느니 무당 질 잘 못해서 아이를 낳을 때 살을 맞았느니

하면서 으레 동네 어른들은 모이면 한보나 점례 얘기가 끊이질 않았었다.
한보의 애비가 36살 한보의 어미가 32살 점례의 어미가 30살
되었을 때

한보의 아비가 밭에서 감자를 캐다가 큰 구렁이 한테

물려서 독이 온 몸에 퍼져서 장님이 되었었는데 다행히 죽지는 않고

다리를 못 쓰고 장님이 되어서 점례가 3살 되던 해에

그 무당은 점례를 나두고 청주로 떠나버렸다.

이런 저런 일로 한보의 집안은 어렵게 되어가고

한보의 애비 울화병으로 술만 먹어서 수전증이 생겨서

일도 못하고 놀음방에서 놀음쟁이로 전략하여

아편에 손을대기 시작 하면서 있는 재산이 거덜 날 즈음
놀부네 장씨의 부인은 권씨의 부인을 불러서 허드렛일을 도와주길
바랐었다.

한보가 7살 때쯤 한보 할매가 계를 장씨 부인에게 들었는데
한보를 서울병원의 재활원 센터에 한번이라도 데려
가기 위해서였다. 심 씨는 예전에 그렇게 곱던 심성이

다 어디로 달아났는지 말이 없고 고집스럽고
심술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래도 초 하루날 이거나 입제 때이면 으레
절에 가서 한보나 점례를 위해서 불공을 드렸다.

한보네 큰 손녀는 이제 겨우 10살이지만 서울에 사는

심씨의 큰딸 친구네로 식모살이 보내고
둘째 손녀는 남의 집에 양녀로 주었는데 양녀로 준 딸이
그 집에서 매를 맞아 죽었다는 소문을 들었다. 
그애가 8살 나던 해에 그 집 남편은 아이가 예쁘다고

데리고 자는 날이 많았었다고 한다.
아이가 자는 틈을 타서 이집 남편은 자기의 성기를 만지게 하거나

아님 그 애의 보지에 손을 넣어서 그 애에게 자신의 성적인 욕구를

만족시키게 했던 것을 그 부인이 알고 그 애를 두들겨 패어서
시름시름 앓다가 죽었다는 소문 이였다.
한보의 어미는 너무나 기막히고 살 희망이 없어서 한보를 들쳐 없고

시퍼런 물이 따오리 처럼 돌고있는 동네 어귀에 있는 달랫강 
한 가운데를 빠지면 다시는 헤어 나지 못하고 죽는다는

소릴 들은 적이 있었다.
그래서 한보를 먼저 빠트리고
자신도 죽으려고 유서를 써놓고 한보 아빠한테 한통

한보 할매에게 한 통을 써 났었다.

**한보의 어미 자살소동**

한보애미는 어디만큼 가다 보니 배 한 척이 있었다.

그 배는 만원이라서 한보어미는 타지 못 하게 되었다.
사공에게 사정사정해서 배를 타려 했는데 그 배에는

둘째 딸년의 시신이 실려져 있어서 그 딸을 만지려고

그 배에 올라타려고 할 때 그 배에 누웠던 딸이 꼴 보기 싫다면서

엄마는 이 배에 탈 자격도 없다면서 확! 밀쳐버렸다.

그리고 딸이 밀쳐냈던 그 강가에서 허우적 될 때 큰 개구리가

탄 연꽃잎이 다가오더니 이 씨를 건져 주는 것이 아닌가?

이씨는 있는 힘을 다해서 그 연꽃잎에 올라탔었는데

깨고 보니 충주도립 병원에 자신과 한보가 누워있는 것이 아닌가?
이씨는 참 허탈한 심정으로 왜 죽게 나두지 않았느냐고

의사에게 통곡을 하면서 엉엉 울어야 했었다.

자신의 신세가 이렇게 되고보니 누구 하나 병원으로

위문 올 사람도 없었다.
하얀 시트에 자신의 시신이 있는 것을 상상하면서

또 한보를 보면서 한없는 눈물을 베게에 적셔도 어떤 다른

해결이 없는 아픔을 가슴에 간직하고 살아야 했기에 힘없는

서러움에 눈물로 대신 해야 했다.
한보의 회복은 빨랐으나 이씨는 딸의 억울한 죽음을 가슴에

대못을 친 것처럼 아파서 아무음식을 먹지 못했다.
며칠 후 놀부네장씨 부인은 이씨에게 하인을 보내왔었다.

 

그리고 몇 가지의 의복과 먹을 수 있는 감주와 과일을 들고 왔다.
일주일을 보내고 결혼식 때 받은 금가락지를 원장에게 맡기면서
한보와 병원 문을 맥없이 나왔다.
거리엔 한가하니 스산한 바람만 불고 그 바람은 그녀의 마음을 
더욱 시리게 했다.
장씨네 건너 채에 자리 잡은 그녀는 한보가 뼈 없이 기는 것도

속상한데 마당 가운데 닭들이 싸놓은 똥을 뭉기며 땅을 기면서

노는 것도 안타깝고 마음 아픈데 장씨네 순자라는 종년의 딸

7살 계집이 침을 뱉으면서 에잇 더러운 뱀 같은 놈아!

할 때는 미친 듯이 한보를 끌어안고 울었다.
어느덧 한보가10살 이 씨의 나이가 39살 때

한보 아빠는 술을 너무 먹어서 겨울 장터에서 얼어
죽은 것을 발견하여 장터에 장사꾼이 들쳐 업고 장씨네

앞마당에 시신이 놓여있었다.
권 씨의 천석지기도 이젠 종말이 나고 그 다음 해에

시아버님의 죽음으로 이씨의 마음은 천갈래 아픔을 격으면서도

마음 한 구석엔 홀가분 하기도 했었다.
당골래 무당이 떠나고 점례를 맏아 키우던 이씨는

점례가 14살 되던 해에 서울로 식모살이 보내고 난 후

점레의 착한 심성으로 다달이 월급을 부쳐주어

한보의 약값은 되고 있을 때 점례가15살이 되면서

차장으로 대진교통에 근무 한다고 했다.
점례는 그래도 자기 친 부모처럼 한보 어미에게 정성껏 효도를 했다.
그러나 이씨에게 치근대며 밤마다 찿아 오는 장씨 남편은  
본 부인이 절에간 틈을 타거나, 술 찌끼미를 장씨 부인에게

많이 먹이고 푹 재운 날은 이씨의 방에서 장씨는 욕정을 채우고

밤을 같이 보내는 날이 많았었다.  이씨도 아직은 어여쁘고

젊은 마음에 그런 욕정을 참을 수 없었고 장씨가 사다준

구리무를 바르면서 자신의 미모에 감탄하기도 했다.
장씨의 본 부인은 그 눈치를 채고 이씨를 청주의 조그만 초가가 있고

밭떼기나마 부칠 수 있는 곳으로 내 보내면서 소리 없이 사라지길 원했다.
한보가 12살이 되면서 어마(엄마) 바(밥)하고 말도했고 엄마
불쌍하다고 하면서 안아 주려할 때 한보의 애미는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이렇듯 병신자식을 가진 어미의 심정을 누가 알랴!! 누구나 다 할 수 있는
말 한 마디에 한보는 힘들여 했지만 한보의 어미는 달랐다.
그것은 자신의 희망이고 기쁨이였다.
한보가 13살이 되던 해에 큰 딸이 작부가
되었다는 소문을 듣고 이씨는 큰딸이 있는 청량리 조그만 사창가로
찾아 갔지만 딸은 만나 주려하지 앉자 5000원을 포주에게 주고 다시
돌려받기를 원했지만 포주는 15만원을 원했다.
포주의 억지를 이기지 못한 채 이 씨는 한보를 데리고 청주로
와야 했다.
한보는 점점 몸이 약해지기 시작하더니 폐렴으로 고생 하는 것이었다.
그해 7월 날씨는 살인을 할 만큼 더워서 해주 댁의 소가 쓰러져

죽던 날 동네 남자들은 소 간을 꺼내서 술 안주로 할 때

한보어미는 간청을 하면서 우리 한보에게 소 간을 먹였으면
하니 1000원을 주겠다고 사정을 하여 간을 반을 떼어주고
한보에게 먹이기로 했으나 그 결과도 없이 가을걷이 추수할 쯤

10월초에 한보는 싸늘한 시체로 한 줌의 재로 변했다.

한보가 죽을 때에 처음으로 말을 많이 했는데
[어마 나 미안해 나 죽어
[나 다음해에 어마에게 태어나면 뱀으로 안 태어나고
사람으로 태어날게 응 미안해
[ 어마 나 추워 꼭 어마가 안아줘 응?
한보는 싸늘한 시체이지만 정말 죽은 것 같지 않게 편안 하게 보였다.
{한보야! 이 어미가 전생에 지은 죄가 많아 둘째 년과 너 하나
건사 못하고 너를 죽였구나!
한보야! 한보의 어미는 몸부림을 쳤다.

"세상에 이럴 수가 동네어른 눈 있으면 보시요?
우리 한보가 살아있을 때 못 되게 군 년 놈들을 한보가

"저 세상 가서 용서 안 할거 요!~
동네 사람들은 한보 어미 악담에 쉬쉬~!하면서 물러났고

초라하고 쓸쓸하게 죽은 모습을 가마니에 싼 채로 화장터로

가야했는데 가는 길에 코스모스가 처량하리 만큼
길게 목을 늘여 트려있었고 해는 구름을 모아 서산에서

시커먼 구름으로 하늘을 덮어서 비가 오기 시작했다.
한보를 화장한 재를 뿌리면서 한보 어미의 타령은

가슴을 시리게할 만큼 청승스러웠다.

“해가지면 서산에 장승이 기다리나’
돌아 올 임이 어깨에 들 짐 지고 오나니
그것이 내 아들시신 일세
시신 잡아 불에 구워 용왕 전에 바칠거나"

한보의 어미 시신을 뿌리면서 눈물의 타령을 하며
돌아오는 언덕엔 빗줄기를 반죽한 영롱한 무지개 다리가
한보의 극락왕생을 알리는 것 같은 느낌에 한보의 어미는
더욱 서러움에 허공으로 울음은 날려댔다.
아마 날아가면 갈수록 그녀의 가슴에서 한보의 그리움은
파도처럼 일령 일 것이다.
그리움에 한보의 얼굴이 그녀의 뇌 속에서 바위처럼 박혀있듯이

"우리네 인생도 언제나 못 잊을 얼굴들을 기억하며 살아가며 소멸되는 낙엽이리라
그리움은 그리움속으로 묻혀 버리더라도
항상 여울져 깊고 둥글게 맴 도는 얼굴들을

가슴에 품고 살아가는 폭포이리라! 이 세상에 소멸뒤에 오는 불멸을 맞이한 채...

 

-시드니에서 고향 충청도를 그리면서 쓴 글-

 

강애나의 프로필

 

멕콰리대학 영어 6년 수료

세종대학원CEO과정 졸업

중앙대학원 문예창작학과 졸업

호주문인협회회원

한국문인협회회원

불교문예회원

문학바탕 소설 신인등단

유심문학회원

한국 작가회의협회 회원

한국 시인협회 회원

창조신문사 신춘문예 당선 쟝느 시

현제 문학in 신문사 시 연재 중

저서: 시크릿 가든, 어머니의 향기

 

 

주제:

 

한 마을에서 신기한 아이가 태어나 많은

해학을 이루는 소설이며

여인들이 태아교육을 중요시 했으니 구체성이 없이 

시 부모님의 어렵고 힘든 일을 맡아 가며 살아가는

여인상의 단편이다.   그 시대에는 어쩔 수 없는

불구로 인하여 한 가정을 불행하게 이끌어 가기도 하고

그 시대에 여인상이나 남성상을 부각 시켰으며

아파도 아프다고 하지 못 하는 우리어머님의

시대를 그리면서 불구의 자식을 둔

어미의 아픔을 그린 작품이다.


 

 


얼굴 /강애나
 
가을 걷이가 지나 한가한 농가에는 동네 마실을
다니게 되면 한결같이 한보네 얘기 뿐 이었다.
한보 할매는 으레 그런 자리를 피해서 산에 가서
백일치성을 드리곤 했었다.
한보는 7살이였고 7대 독자로써 권씨 문중의 제사를 이어나갈
큰 장손 이었다.  아이는 7살까지 걷지도 못 하고 얼굴은
뱀 딱지처럼 허연 부스럼이 덕지덕지 붙었었고 겨우 구불텅구불텅
기는 것이 한보에게는 뼈가없는 뱀과 같았다.
1947년 10월 권 씨의 광에서는 풍년가를 부르고 탈곡을

마치고 광에다 추수한 나락을 옮기려 할 때 지난 해 타작해 놓은 남은 쌀을 내다 팔려고 가마니를 옮기던 한 일꾼이 얏! 이것 뭐야!~겁에 질려 허걱대며 헛것이라도 본 것처럼 뛰쳐나오는

것이었다.  권 씨의 부인도 아이를 가진 터라 좋은 것만 보려고 태교를 신경을 쓰고 있을 때에

그 자리에서 차마 보지 않을 것을  보고 말았었다 5평 남짓 하는 광안에는 알을 낳고 있는

뱀도 아니오! 능구렁이도 아니고 용도 아닌 머리에 하얀 무늬를 띄고

큰 귀가 달려있고 4발을 가지고 손톱까지 있는

뱀이 따우리를 틀고 알을 낳고 있었다.
그 때에 한 일꾼이 얼른 그 뱀을 타작하는
도리깨로 후려치고 있었다.
그 뱀은 알을 낳던 알을 다

깨어 먹어 버리고는 아픔의 고통을 이기지 못 하는

모양으로 구불턱 구불턱 몸을 비틀며
광 바닥 구석에 축 늘어져 죽어 자빠졌다.
떡보 일꾼은 희귀한 뱀의 껍질을 벗기고

삶아서 일꾼들과 술안주로 나누어 먹고 그 해는 그렇게

평화스럽게 한 마을이 서로서로 흉 허물없이 잘 지내는 이웃사촌들이었다.
일렬로 깎아진 잔뿌리 몫이 남아 버린 논밭에는 간혹
철모르는 메뚜기만 뚜두둑 날아다니고
고추잠자리를 잡는

아이들이나 논두렁 사이에서 사지감자를 채 캐지 못 하고

남은 밭에 서리를 해서 쥐불을 넣고 구어 먹는

천진스런 아이들만 들판에서 풍경만 남았었다.
 
한보 아빠의 놀라움
 
개똥이네 집에서는 일곱 남정네들이 화투판이 한참일 때

한보 아빠를 찾는 일꾼의 목소리가 들렸었다.

한보 아빠는 끝판에 한 끝을 잡나 보다 했는데
갑자기 부르는 소리에 허겁지겁 몸을 챙겨 일꾼을 따라가고 있었다.

한보아빠는 오랫동안 화투를 하며 앉아 있었기 때문인지 절여오는

다리를 겨우 걸으며 헛발을 디뎌 떨어진 낭떠러지기 장소가

바로 다름 아닌 지난 한보네 광에서 잡은 뱀 껍질의 발 껍질과

손 껍질로 얼굴의 눈구멍까지의 모형이 남겨져

그 뱀 껍질은 원한이라도 품은 듯이

풀숲에 고대로 움츠리고 그곳에 버려져 있었다.

풀숲에서 몸을 일으킨 권씨는 예사 일이 아니라고
생각 하면서 집으로 왔다.
딸 셋을 낳고 아들을 기대하는
권씨는 요번에는 제사를 이어갈 아들 하나 낳아주길
삼신 제사를 삼신님께 가을걷이가 끝날 무렵에 드렸었다
아이는 순산했으나 권씨의 모친은 아이를 보여주지 않으려고 했었다.
그래도 첫 아들이라니 궁금해서 보아야 하겠다고
하기에 한보아빠의 어머니 심씨는 손자를 안고
아들에게

손자의 잠지만 보여주려 할 때
한보아빠 권씨는 하마터면 부인 앞에서 소릴 질러 놀래킬 뻔했다.
아이의 다리는 짧고 살결은 푸르고 아이의 잠지는 길고 불알은
아주 작았으니 사람의 그것이라기 보다는 짐승의 그것에 가까운
이었다.

아이의 몸통은 길고 다리는 짧고 팔도 짧아 차마

아들을 낳았다기보다는 뱀을 낳았다고 해야 했다.

앗! 내가 죄를 받았나 보다 한 순간 스쳐지는

권씨의 생각은 지난해 광안에서 알을 낳던

일꾼들이 잡아먹은 구렁이도 아니고 뱀도 아닌 뱀을 생각했었다.
아이가 울 때면 응애응애 우는 것이 아니고 꾸르륵 드르륵 울면서

젖을 달라고 보채는 것이었다.

 

더구나 권씨의 부인 이씨는 아이가 젖을 빨 때는

아픔에 엉엉 울면서 젖을 먹어야 했었다.

아이가 젖을 빨 때는 뚜럭꾸럭 소리를 내면서

온 몸을 다 비틀고 눈을 홀까닥 뒤집히면 권씨 부인

이씨는 자기가 애기를 낳았다는 생각을 버리고

아이가 이 젖을 먹는동안 동시에 농약을 타 먹이고 자신도
따라 아이와 함께 죽고 싶은 심정 이었었다.
그래도 시어머니 심씨는 천성이 고와서 며느리를 많이

이해 해주는 편이었다.
아이를 낳고 아이가 살 가망성이 없을 것 같아 돌이 지나도

이름이 없어 물렁이 라고 별명이 지어졌었다.

왜냐하면 아이는 정말 뼈가 없는 것 같이 돌이 될 때까지
걷지도 못하고 겨우 슬금슬금 뱀처럼 기기만 했었다.

아이를 목욕 시킬 때면 가을에 추수한 수세미로 박박

닦여야 아이가 가려워하지 않았다.

상식적으로 생각할 때 아기의 살은 보드랍다고 생각하지만

이 물렁이는 그렇게 안 닥이면 내내 가려워
잠을 이르지 못하고 긁어대며 울고는 집안 식구들이 잠을 못 자도록
꾸룩뚜룩 울어 대었다.
시어머니 심씨는 아이에게 떡을 해서 삼신께
빌기도 하고 아이의 손을 잡고 지난번 잡아먹은
구렁이 조상에게 빌기도 했었는데 그때마다 아이는
신기하게 울음을 끝이고 쌔근쌔근 잠을 자고 있었다.

돌이 지나자 시아버지 권씨는 아이의 이름을 지었었다.

瀚(한)은 넓고 큰 모양의 한자요 보(珤)는 보배보라고 지었더니

동네 사람들 마다 우물이나 냇가에 모이면 한 마디씩 지껄이곤 했었다.

넓은 들판에서 살아야 할 보배로운 논 지킴이 구렁이를
잡아 먹어서 결국은 인과응보라고 이름까지 죄를 받았다고 했다.

한보할매 심씨는 비록 한보가 걷지도 못 하고 밥을 먹여줘야

먹어도 잔칫집에 초대 할 때는 꼭 한보를 데려가 먹이곤 했었다.
동네 사람들은 그 애 얼굴만 보면 눈을 가리고 보려하지 않았다.
그의 눈은 실눈으로 코는 숨 쉴 구멍만 있고 입은
하마같이 컸었고 밥을 받아 먹을 때면 목젖이
다 보이곤 하면서 이빨은 쥐 이빨같이 가늘고 뾰족했었다.
그 애의 살결은 꼭 뱀을 연상 하도록 뱀의 살결과 같이
각대기가 그어져있고 푸르죽죽한 살색갈이 꼭
뱀 한 마리 데려 온 것 같아 그 애가 오면 모두 피해 버리기
때문에 한보 할미는 신나 했는데 왜냐하면
음식을 많이 싸 가지고 갈 수 있었기 때문 이였다
그러나 충주 바닥에서도 제일 구두쇠로 유명한 장씨는 달랐다.
잔치를 치르는 날 밥을 세 그릇 먹거나 많이 싸가지고

갈려고 하는 사람들이 보이면 장씨는 무조건 소매를 걷어 메고
한보할매나 떠버리할매나 거머리할배나 동네 아낙이 와서

잔치마당을 펼치면 마당 한가운데 냄새가 독한 동장군을 메고 나간다.
동네 아낙은 기절을 하여 똥 냄새 맡기 싫다고 도망가는것이었다.

장씨의 구두쇠 작전에 심술까지 부려서 놀부장씨로 별명이 나 있기도 했다.

장씨는 놀부 심술쟁이로 그 동네에서 제일가는 구두쇠론 장씨요

제일 부자도 장 씨였는데 그 전에는 권씨네가 제일
부자였지만 한보 낳고서 집안이 기울기 시작하더니

한보의 아빠는 울화통에 계집질을 일삼고 있으니

머슴들도 세경을 주지 않는다고 다 도망 가버리고

가을이 되도록 추수 걷을 생각을 못 했었다.

어느 날 한보가 겨우 꾸부정 거리면서 기다가 걷다가 했을때 쯤

어느 여인이 계집아이를 안고 한보네 집을 쳐 들어와

안방 차지를 하는 것이었는데 그 어린 계집에는

백일을 지냈을까 말까 했다. 그 여인은 개골막 당골래 무당이였다.

그 당골래 무당은 신점을 잘 봐서 동네에서는 무슨 일이 있든지

당골래 무당에게 굿을 하거나 물어보기만 하면
병을 낫게 하든지 귀신을 쫒게 하는 그런 우환에는 으레

당골래 무당을 찾아갔지만 한보 아범 첩이 되고 나서는

그런 무당도 신이 다 했다 하여 집어치우고 안방 마님으로

들어 안고 나서는 한보엄마를 종 부리듯이 했다.

왜냐하면 한보같이 병신자식을 낳음은 전생에 죄가 많음이라고 하면서

한보 엄마를 쥐 잡듯이 했는데 더욱 어이없는 것은 한보 엄마가

그 무당보다 2살 위의 형님이라는 것이다.
한보엄마는 한보 같은 아들을 낳은 것도 한이 되기도 하지만

한보를 볼 때 마다 너무 안타깝고 처절해 언젠가는 자살을 하려고

농약을 먹으려 할 때마다 한보의 얼굴이 떠올라
가슴을 쥐어뜯고 울면서 절에 가서 백일불공을 드리고

몇일을 절에서 머물고 오던 날 한보의 동생 점례를 무당이 낳았던 것이다.

이상하게 점례는 크면서 얼굴에 작은 점이 번지면서

온 몸에 전체가 까만 반점으로 번져갔었다.

한보의 나이 3살 점례는 막 돌을 지났지만
영리하기로는 동네어른을 뺨 칠정도로 영리하고

어른들과 말을 하면 어른인지 아이인지 구분을 못 할정도로

앵무새 처럼 말을 잘 했다. 또 점례가 휘파람을 불면서

춤을 추면 동네 어른들은 신이나 하면서 그 애가 감나무 밑 마당으로

나와 놀기만 하면 동네 어르신들은 다 모였었다.
하지만 그 애가 자라면서 까막 점은 온몸에 다 번져서

왼쪽의 반 전체가 까만 살 이여서 보기가 흉했었다.
동네 어른들은 무당이 남의 여인의 가슴에 대 못질을 해서

죄를 받았느니 무당 질 잘 못해서 아이를 낳을 때 살을 맞았느니

하면서 으레 동네 어른들은 모이면 한보나 점례 얘기가 끊이질 않았었다.
한보의 애비가 36살 한보의 어미가 32살 점례의 어미가 30살
되었을 때

한보의 아비가 밭에서 감자를 캐다가 큰 구렁이 한테

물려서 독이 온 몸에 퍼져서 장님이 되었었는데 다행히 죽지는 않고

다리를 못 쓰고 장님이 되어서 점례가 3살 되던 해에

그 무당은 점례를 나두고 청주로 떠나버렸다.

이런 저런 일로 한보의 집안은 어렵게 되어가고

한보의 애비 울화병으로 술만 먹어서 수전증이 생겨서

일도 못하고 놀음방에서 놀음쟁이로 전략하여

아편에 손을대기 시작 하면서 있는 재산이 거덜 날 즈음
놀부네 장씨의 부인은 권씨의 부인을 불러서 허드렛일을 도와주길
바랐었다.

한보가 7살 때쯤 한보 할매가 계를 장씨 부인에게 들었는데
한보를 서울병원의 재활원 센터에 한번이라도 데려
가기 위해서였다. 심 씨는 예전에 그렇게 곱던 심성이

다 어디로 달아났는지 말이 없고 고집스럽고
심술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래도 초 하루날 이거나 입제 때이면 으레
절에 가서 한보나 점례를 위해서 불공을 드렸다.

한보네 큰 손녀는 이제 겨우 10살이지만 서울에 사는

심씨의 큰딸 친구네로 식모살이 보내고
둘째 손녀는 남의 집에 양녀로 주었는데 양녀로 준 딸이
그 집에서 매를 맞아 죽었다는 소문을 들었다. 
그애가 8살 나던 해에 그 집 남편은 아이가 예쁘다고

데리고 자는 날이 많았었다고 한다.
아이가 자는 틈을 타서 이집 남편은 자기의 성기를 만지게 하거나

아님 그 애의 보지에 손을 넣어서 그 애에게 자신의 성적인 욕구를

만족시키게 했던 것을 그 부인이 알고 그 애를 두들겨 패어서
시름시름 앓다가 죽었다는 소문 이였다.
한보의 어미는 너무나 기막히고 살 희망이 없어서 한보를 들쳐 없고

시퍼런 물이 따오리 처럼 돌고있는 동네 어귀에 있는 달랫강 
한 가운데를 빠지면 다시는 헤어 나지 못하고 죽는다는

소릴 들은 적이 있었다.
그래서 한보를 먼저 빠트리고
자신도 죽으려고 유서를 써놓고 한보 아빠한테 한통

한보 할매에게 한 통을 써 났었다.

**한보의 어미 자살소동**

한보애미는 어디만큼 가다 보니 배 한 척이 있었다.

그 배는 만원이라서 한보어미는 타지 못 하게 되었다.
사공에게 사정사정해서 배를 타려 했는데 그 배에는

둘째 딸년의 시신이 실려져 있어서 그 딸을 만지려고

그 배에 올라타려고 할 때 그 배에 누웠던 딸이 꼴 보기 싫다면서

엄마는 이 배에 탈 자격도 없다면서 확! 밀쳐버렸다.

그리고 딸이 밀쳐냈던 그 강가에서 허우적 될 때 큰 개구리가

탄 연꽃잎이 다가오더니 이 씨를 건져 주는 것이 아닌가?

이씨는 있는 힘을 다해서 그 연꽃잎에 올라탔었는데

깨고 보니 충주도립 병원에 자신과 한보가 누워있는 것이 아닌가?
이씨는 참 허탈한 심정으로 왜 죽게 나두지 않았느냐고

의사에게 통곡을 하면서 엉엉 울어야 했었다.

자신의 신세가 이렇게 되고보니 누구 하나 병원으로

위문 올 사람도 없었다.
하얀 시트에 자신의 시신이 있는 것을 상상하면서

또 한보를 보면서 한없는 눈물을 베게에 적셔도 어떤 다른

해결이 없는 아픔을 가슴에 간직하고 살아야 했기에 힘없는

서러움에 눈물로 대신 해야 했다.
한보의 회복은 빨랐으나 이씨는 딸의 억울한 죽음을 가슴에

대못을 친 것처럼 아파서 아무음식을 먹지 못했다.
며칠 후 놀부네장씨 부인은 이씨에게 하인을 보내왔었다.

 

그리고 몇 가지의 의복과 먹을 수 있는 감주와 과일을 들고 왔다.
일주일을 보내고 결혼식 때 받은 금가락지를 원장에게 맡기면서
한보와 병원 문을 맥없이 나왔다.
거리엔 한가하니 스산한 바람만 불고 그 바람은 그녀의 마음을 
더욱 시리게 했다.
장씨네 건너 채에 자리 잡은 그녀는 한보가 뼈 없이 기는 것도

속상한데 마당 가운데 닭들이 싸놓은 똥을 뭉기며 땅을 기면서

노는 것도 안타깝고 마음 아픈데 장씨네 순자라는 종년의 딸

7살 계집이 침을 뱉으면서 에잇 더러운 뱀 같은 놈아!

할 때는 미친 듯이 한보를 끌어안고 울었다.
어느덧 한보가10살 이 씨의 나이가 39살 때

한보 아빠는 술을 너무 먹어서 겨울 장터에서 얼어
죽은 것을 발견하여 장터에 장사꾼이 들쳐 업고 장씨네

앞마당에 시신이 놓여있었다.
권 씨의 천석지기도 이젠 종말이 나고 그 다음 해에

시아버님의 죽음으로 이씨의 마음은 천갈래 아픔을 격으면서도

마음 한 구석엔 홀가분 하기도 했었다.
당골래 무당이 떠나고 점례를 맏아 키우던 이씨는

점례가 14살 되던 해에 서울로 식모살이 보내고 난 후

점레의 착한 심성으로 다달이 월급을 부쳐주어

한보의 약값은 되고 있을 때 점례가15살이 되면서

차장으로 대진교통에 근무 한다고 했다.
점례는 그래도 자기 친 부모처럼 한보 어미에게 정성껏 효도를 했다.
그러나 이씨에게 치근대며 밤마다 찿아 오는 장씨 남편은  
본 부인이 절에간 틈을 타거나, 술 찌끼미를 장씨 부인에게

많이 먹이고 푹 재운 날은 이씨의 방에서 장씨는 욕정을 채우고

밤을 같이 보내는 날이 많았었다.  이씨도 아직은 어여쁘고

젊은 마음에 그런 욕정을 참을 수 없었고 장씨가 사다준

구리무를 바르면서 자신의 미모에 감탄하기도 했다.
장씨의 본 부인은 그 눈치를 채고 이씨를 청주의 조그만 초가가 있고

밭떼기나마 부칠 수 있는 곳으로 내 보내면서 소리 없이 사라지길 원했다.
한보가 12살이 되면서 어마(엄마) 바(밥)하고 말도했고 엄마
불쌍하다고 하면서 안아 주려할 때 한보의 애미는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이렇듯 병신자식을 가진 어미의 심정을 누가 알랴!! 누구나 다 할 수 있는
말 한 마디에 한보는 힘들여 했지만 한보의 어미는 달랐다.
그것은 자신의 희망이고 기쁨이였다.
한보가 13살이 되던 해에 큰 딸이 작부가
되었다는 소문을 듣고 이씨는 큰딸이 있는 청량리 조그만 사창가로
찾아 갔지만 딸은 만나 주려하지 앉자 5000원을 포주에게 주고 다시
돌려받기를 원했지만 포주는 15만원을 원했다.
포주의 억지를 이기지 못한 채 이 씨는 한보를 데리고 청주로
와야 했다.
한보는 점점 몸이 약해지기 시작하더니 폐렴으로 고생 하는 것이었다.
그해 7월 날씨는 살인을 할 만큼 더워서 해주 댁의 소가 쓰러져

죽던 날 동네 남자들은 소 간을 꺼내서 술 안주로 할 때

한보어미는 간청을 하면서 우리 한보에게 소 간을 먹였으면
하니 1000원을 주겠다고 사정을 하여 간을 반을 떼어주고
한보에게 먹이기로 했으나 그 결과도 없이 가을걷이 추수할 쯤

10월초에 한보는 싸늘한 시체로 한 줌의 재로 변했다.

한보가 죽을 때에 처음으로 말을 많이 했는데
[어마 나 미안해 나 죽어
[나 다음해에 어마에게 태어나면 뱀으로 안 태어나고
사람으로 태어날게 응 미안해
[ 어마 나 추워 꼭 어마가 안아줘 응?
한보는 싸늘한 시체이지만 정말 죽은 것 같지 않게 편안 하게 보였다.
{한보야! 이 어미가 전생에 지은 죄가 많아 둘째 년과 너 하나
건사 못하고 너를 죽였구나!
한보야! 한보의 어미는 몸부림을 쳤다.

"세상에 이럴 수가 동네어른 눈 있으면 보시요?
우리 한보가 살아있을 때 못 되게 군 년 놈들을 한보가

"저 세상 가서 용서 안 할거 요!~
동네 사람들은 한보 어미 악담에 쉬쉬~!하면서 물러났고

초라하고 쓸쓸하게 죽은 모습을 가마니에 싼 채로 화장터로

가야했는데 가는 길에 코스모스가 처량하리 만큼
길게 목을 늘여 트려있었고 해는 구름을 모아 서산에서

시커먼 구름으로 하늘을 덮어서 비가 오기 시작했다.
한보를 화장한 재를 뿌리면서 한보 어미의 타령은

가슴을 시리게할 만큼 청승스러웠다.

“해가지면 서산에 장승이 기다리나’
돌아 올 임이 어깨에 들 짐 지고 오나니
그것이 내 아들시신 일세
시신 잡아 불에 구워 용왕 전에 바칠거나"

한보의 어미 시신을 뿌리면서 눈물의 타령을 하며
돌아오는 언덕엔 빗줄기를 반죽한 영롱한 무지개 다리가
한보의 극락왕생을 알리는 것 같은 느낌에 한보의 어미는
더욱 서러움에 허공으로 울음은 날려댔다.
아마 날아가면 갈수록 그녀의 가슴에서 한보의 그리움은
파도처럼 일령 일 것이다.
그리움에 한보의 얼굴이 그녀의 뇌 속에서 바위처럼 박혀있듯이

"우리네 인생도 언제나 못 잊을 얼굴들을 기억하며 살아가며 소멸되는 낙엽이리라
그리움은 그리움속으로 묻혀 버리더라도
항상 여울져 깊고 둥글게 맴 도는 얼굴들을

가슴에 품고 살아가는 폭포이리라! 이 세상에 소멸뒤에 오는 불멸을 맞이한 채...

 

-시드니에서 고향 충청도를 그리면서 쓴 글-

 

강애나의 프로필

 

멕콰리대학 영어 6년 수료

세종대학원CEO과정 졸업

중앙대학원 문예창작학과 졸업

호주문인협회회원

한국문인협회회원

불교문예회원(시)

유심문학회원(시)

문학바탕등단 (소설)

한국 작가회의협회 회원

한국 시인협회 회원

창조신문사 신춘문예 당선 쟝느 시

현제 문학in 신문사 시 연재 중

저서: 시크릿 가든, 어머니의 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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