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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자 시인 이은심의 시 해설/평론가 김광한
2008-10-26 11:22:25
yies0307

조회:2377
추천:150

철학의 바탕 위에 형성된 시어….
 
이은심 시인의 시(詩) 감상과 해설
 
김광한
 
 

 이은심 시인

이은심 시인의 시를 읽다 보면 몇 가지의 의문점이 생기는 것을 금방 감지할 수가 있다. 그 첫째가 시어의 현란함이오, 두 번째가 우리가 흔히 접하는 연민이나 사랑 등의 주제와는 다소 거리가 있음을 알 수가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녀의 시를 몇 번 곱씹어서 읽다 보면 그것이 오염되지 않은 생명의 용트림이고 마치 물줄기가 하늘 끝까지 올라가 마침내 물방울이 되어 떨어져 무지개가 되는듯한 상쾌함을 느낄 수가 있다는 것이다.

그녀의 시는 함부로 내뱉는 감정의 발산을 통해 얻어지는 카타르시스가 아니라 원시의 밀림을 바탕으로 창조된 생명의 울부짖음이 깊게 배어있다. 그렇게 되고자 시인은 시어를 마치 모랫바닥에서 바늘을 찾듯이 현미경으로 검색하면서 전체 시에 맞는 시어를 보석처럼 꿰어맞추는 그 작업의 열성이다.

"과원의 처녀"로 시작이 되어서 "감사기도"로 끝내는 이 연작 시에서 우리는 원색의 생명이 흐르는 꿈틀거림과 힘을 엿볼 수가 있다. 마치 천경자 화백이 화폭에 그린 원색의 생명과 흡사한 분위기를 읽을 수가 있다는 것은 그만큼 그녀가 삶을 진지하고 적극적이고 강렬하게 살아왔다는 증거가 될 것이다.

천경자 화백이 즐겨 그린 뱀의 이미지가 징그럽고 흉측한 것보다 생명의 꿈틀거림, 또는 요염하고 매혹적인 탐미적인 이미지로 남아있다는 것은 천경자 화백이 생명을 사랑한다는 하나의 증거이듯이 이은심 시인이 쓰는 모든 언어에는 생명의 지속적인 흐름이 있다는 것이다. 우리 시단에 보기 드물게 외국시인들의 작품을 원서(原書)로 읽고 번역할 수 있는 영문학도이면서 한때 교사생활로 익힌 설득력은 다소 이해하기 어려운 문장을 순화시켜주는데 부족함이 없을 것이다.

대학시절 역사학도에서 영문학도로 그리고 철학에 깊은 관심을 둬 삶의 근원적인 모순과 순리에 접근을 시도한 그녀에게 시는 어쩌면 구원의 한 부분이었는지도 모른다. 삶을 바라보는 그녀의 눈길은 자상하면서도 날카롭고 엄격하면서도 자애로운 이중의 양면성을 갖고 있어서 시가 되는 대상을 발견하면 그대로 지나치지 못하는 습성을 갖고 있다. 마치 사자가 한 마리의 쥐를 잡을 때도 전심전력을 다하여 돌진하는 것처럼 그녀에게 시는 허술한 재료를 값비싼 고급요리로 만드는 기술을 갖고 있다. 그녀에게 있어서시는 인생의 최고선이요, 최고의 가치이기 때문이다.

과원(果園)의 처녀

창백한 겨울유령의 손짓 뿌리치고
과수원 입구로 걸어 나오는 처녀여

사계 부지런히 굴려온 태양의 수레
삐꺽이는 바퀴축을 갈아 끼우고

과일의 농밀한 수액 칭칭 쳐매 둔
수밀도 둥근 젖가슴 높이 부풀리어

거름통 지고 언덕을 오르던 나날의
쳐진 어깨 미어진 틀 바로 세우고

넘실넘실 밀려오는 희망의 파도
생의 찬란한 무늬결을 만들라

남국에서 치달려온 봄바람에
파아랗게 눈 떠 연망울 맺는 꽃가지

줄기차게 흐르며 번쩍이는 물줄기에
얼어 터지지 않는 무지개 새기어

새큰달큰 과일의 향미 맛보고 싶어
혀끝을 달싹이며 애태우는, 날 보렴!

처음과 끝이 쉴 새 없이 연결이 되는 찬란한 언어에 읽는이들은 정신을 빼앗기게 된다. 그러나 잘 보면 그것이 곧 희망의 서곡이지 레퀘엠의 음울한 죽음의 잿빛언어가 아니란 점이다. 호사스런 장의차에 호위하는 시종들이 거짓울음을 울고 가는 서양귀족들의 죽음에는 인생의 어둠만이 존재하지만 비록 가난하지만 노동으로 단련이 된 가난한 자들의 결실을 위한 근육에는 희망의 노래가 한몫한다. 그것은 곧 희망이고 구원이기 때문이다.

거름통을 지고 오르는 언덕에는 희망의 여신이 손짓하고 있다. 그것은 오랜 노동 끝에 얻어지는 정직한 결실이다. 생이란 떨림이고 진동이면서 소리이기 때문에 시인은 그것을 찬란한 물결로 표현을 했을 것이다. 파랗게 자란 보리가 한줄기 서풍에 넘실대면서 마치 물결처럼 파도 치는 곳에 생명이, 건강한 생명이 배어있다는 것은 시인의 예리한 관찰이 아니고는 결코 알아차릴 수가 없을 것이다. 과수원에서 익은 열매를 보는 것은 즐거움이지만 그것을 여물게 한 것은 노동이다. 건강한 노동 끝에 오는 기쁨을 시인은 노래하고 있는 것이다. 시인은 자신의 언어를 통해서 많은 사람에게 삶의 메시지를 정직하게 전달하고 있는 것이다.

녹색의 음부(陰部)에서

녹색의 음부에서
달콤한 사과가 익어가는 내음
어린 소녀인부의 땀방울에
태고의 무지개가 어리 비치네

말이 앞으로 나가지 않는 이유를
항우는 알고 있지. 장부의 가슴이
품은 초희의 가슴이
저 푸른 초원보다 넓다는 사실을

사과나무 무성한 가지에 올라탄 샤샤,
뭉게구름,너 마저 없더라면
거름 똥지게 퍼나르던 소녀는
분구덩이에 주저 앉았겠지

대지의 중심에 모아둔 훈풍
푸르른 잎사귀 부채바람을 일으키어
감독의 찡그린 눈섭 채찍 동료들의 모략
먼산 너머 날려 보내는 미소의 화답으로

사과는 햇볕을 받아서 건강하게 되지만 사과의 힘을 갖게 해주는 것은 그늘이다. 빛과 그늘, 그것은 어쩌면 남자와 여자가 갖는 힘의 원리가 아닐까 생각이 든다. 햇볕은 사 과에게 열을 보태주지만 그늘은 그 열을 적당하게 식혀주고 치 착함을 유도해준다. 비록 도시에서 흔히 보는 맵시 좋은 처녀가 아니더라도 그녀에게는 남들이 갖지 못한 야생의 순수함과 정직함이 있다. 과수원의 처녀는 과수가 익는 희망으로 힘을 찾는다. 시인이 의도한 것은 바로 인간의 원천에 스며있는 아름다움과 신에게 받은 건강한 에너지가 얼마나 소중한 것인가를 일깨워주는 대목이다.

정오의 밀밭

정오의 밀밭에는
뭉게구름이 노예들의 중노동을
목화 솜이불로 덮어주고 있어
그중 착한 샤샤의 가슴 속에는
여름 맥주의 하얀 거품이 일어

뙤약볕에 잘 익은 검은 짐승들
청동사슬 쩔렁이는 그슬린 사지 아래
끓어오르는 피가 소용돌이 치는 밤,
모닥불 피워놓고 날름거리는 불꽃에 휘감기어
악어북 두드리며 맨발로 춤추던 젊음의 시간들...

베어진 살점과 떨어진 핏방울 위에 피어난
탐욕스러운 야화들 이어지는 비명소리에
욕정의 밤을 다하여 떠오르는 아침해,

부끄러운 낯을 씻을 무렵
끝없는 지평선 너머 다시 타오르기 시작하는 밀밭
구수하게 익어가는 밀내음이
배고픈 야성을 부추기어
넘실거리는 밀이삭 파도치는 밭고랑으로
물을 주러 나선 구릿빛 인부들 까만 눈망울에는
간밤의 황홀한 비밀이 아무도 모르게 녹아 있어 

노동의 결실은 축제와 연결이 된다. 어차피 삶이란 축제와 운명의 양극화가 아닌가. 다소 서양적인 요소가 배어있고 샤샤란 이름의 여인이 등장하는 것은 아무래도 시인이 전공한 영문학의 어떤 인상깊었던 주인공의 이미지 때문이 아닐까. 그러나 이름이 무슨 소용이 있을까. 축제가 끝나면 다시 노동의 시작이고, 그것의 연속이 결국 우리들의 삶이란 것을 시인은 넌지시 알려주는 것이다.

구리빛깔의 피부는 건강함과 정직함, 그리고 노동의 신성함으로 단련된 뿌듯한 충만감과 일맥상통하고 있다. 그들은 가난하지만 신이 내려준 건강과 건강함으로 말미암은 노동의 결실을 선물로 받는 것이다. 예측할 수 없는 불안함을 가진 도시의 부자들과는 사뭇 다른 기쁨을 시인은 노래하고 있는 것이다.

감사기도 

오천 년 태양마
수레바퀴 굴려온 대륙의 푸른 야망
키질에 훤칠하게 자라난 밀이삭
바다가 바라다 보이는 언덕에서 달려온
남지나해 바람과 키쓰하며
중노동의 땀방울과 설움을 잊었지

아침 햇살의 두드림에 일깨워져
정오의 속삭임에 살짝 안기어
오후의 토닥임에 푸근히 익어
허리 굽히고 무릎 펴는
전신운동에 넘실거리는 밀이삭
금빛 물결치는 추수철에
껍질 벗겨 켜고 갈고 빻아
통밀가루 만드는 일이 즐거워

충분히 구워 잘 익은 빵 한덩이
향긋한 내음을 풍기며 누워 있다
오랜 기다림 끝에 감사기도
길고 둥근 하얀 쟁반 위에

봄부터 가을까지의 긴 노동 끝에 얻은 한 알의 밀알이 그들에게는 어느 보석보다 귀중한 것이다. 한줄기 서늘한 바람이 북쪽에서부터 불어오면 황금벌판을 이룬 밀밭에서는 환희의 탄성이 들려온다. 그리고 마침내 감사의 기도, 태어남에 대한 감사와, 노동을 할 수 있다는 건강함에의 감사와, 가족들의 무사함과 빵 한 조각이 입에 들어온다는 것에의 감사 등등 어느 것 한 가지도 감사하지 않은 것이 없는데 감사할 줄 모르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아 안타까운 시인의 마음이 있다.

사람과 신과 자연의 삼박자가 어우러진 삶의 대합창 소리가 들려오는 듯한 시어들이 살아서 움직이는 이 연작 시는 그녀만이 쓸 수 있는 영역이 아닌가 생각이 드는 것은 그만큼 세상을 따듯한 눈으로 바라보는데 익숙해졌기 때문이 아닐까?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다소 많은 비유가 시의 원류를 훼손하지 않을까라는 노파심이다.

작가 약력
이화여고 졸업
동국대학교 영문학과 졸업
문학 21에 등단

철학협회회원, 번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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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패티 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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