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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사라지는 사람들
2013-02-02 23:40:06
sws60

조회:702
추천:84

(단편) 사라지는 사람들

 신외숙

 

월요일 날 오후, 교회 마당을 지날 때였다. 새까만 점퍼를 입은 여자가 보퉁이를 들고 쓰러질 듯 위태하게 걸어가는 모습이 보였다. 세수를 안 했는지 얼굴이 까맣고 완전 거지 형상이었다. 여자가 쓰레기통으로 걸어가더니 뚜껑을 열어 음식쓰레기를 꺼냈다. 전에도 그런 모습은 가끔씩 볼 수 있었다. 먹을 게 없으니까 쓰레기통을 뒤져 먹는 모양이었다. 그 모습을 보니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았다.

 

가까이 다가가 천 원짜리를 쥐어 주었다. 그리고는 얼른 지하상가로 뛰어갔다. 다시 나오면서 보니까 보퉁이를 열어 비닐봉지를 꺼내는데 삶은 국수가 담겨 있었다. 어디서 얻은 모양이었다. 다시 다가가 또 천 원짜리를 주니까 받지 않으려 했다. "괜찮아요." 목소리가 얼마나 착하고 얌전한지 천사 같았다. 손에 쥐어 주니까 마지못해 받는데 자꾸 내 얼굴을 쳐다보았다.

 

작년 추석 날 교회에 기도하러 갔을 때도 여자를 보았었다. 내가 수돗가 옆 벤치에서 큐티를 하는데 여자가 옷을 꺼내 빨고 있었다. 그때는 얼굴도 깨끗하고 정신도 비교적 온전해 보였다. 그런데 날씨가 추운 탓인지 세수를 안 해 얼굴도 새까맣고 빨래를 못하니까 옷마저 땟국이 흘러 완전 걸인이었다. 그녀는 성전에 나타나면 의자 위에 비스듬히 앉아서 잠이 드는데 다른 사람들(정신이상자)처럼 말썽을 부리거나 큰소리치는 일이 없어 순한 성격인 것 같다.

 

반면 출입구 쪽에 자리를 깔고 누워 잠을 자는 할머니는 걸핏하면 욕설을 퍼붓는다. 아마도 가슴속에 쌓인 원한이 많은 모양이다.

성전 안을 돌아다니며 욕을 하고 난장을 피우는데 아무래도 동정이 가지 않는다. 본인은 사랑받고 위로받고 싶은데 그 욕구가 채워지지 않으니까 몹시 괴로워하는 것 같다. 꽤 반듯한 외모에 말도 청산유수로 잘하는 중년여자가 있었다. 그녀는 나타났다 하면 교인들과 언쟁을 벌이는데 그렇게 말을 잘 할 수가 없다.

 

그래서 더 미움을 사고 배척과 상처를 많이 받았다. 오갈 데 없는 제 처지와 달리 기(氣)도 안 죽고 너무 말을 잘하니까 거기에다 귀신들림 현상마저 있었다. 그 처지에 사람만 보면 가르치려 들고 사랑받고 싶어 몸부림을 하는 것이다. 그러던 어느날 상처가 가중되었는지 얼굴이 새까맣게 변하면서 발작이 난 것이다.

 

그때 눈자위가 휙 돌아가는데 너무 끔찍했다. 봉사자들이 끌고 나가자 바닥에 누운 채 괴성을 질러대는데 흡사 정신병동 같았다. 한번 끌려나간 그녀는 어디로 갔는지 다시 나타나지 않았다. 언젠가 그녀가 뒤축이 나가 발바닥이 그대로 보이는 신발을 신고서 교회 근처를 어정거리던 모습이 생각난다. 어디서 났는지 일회용 종이컵에 담긴 떡과 잡채를 급히 먹고 있었다.

 

형상은 완전 거지인데 표정은 그렇게 도도할 수가 없었다. 신발을 보니 발가락이 삐죽이 나와 있었다. 옷은 땟국이 흘러 냄새가 났고 머리칼은 완전 봉두난발이었다. 어떨 땐 성전 문이 열리면 제일 먼저 나타나 빗자루를 들고 청소하거나 큰소리로 성경을 읽었다. 배가 고프면 정중한 자세로 다가가 돈을 요구했다. 그것도 꼭 남자 성도에게만.

 

그녀는 자기의 처지와 상관없이 가르치는 게 주 특기였다. 말하는 내용으로 보아서는 지식도 꽤 있어 보였다. 간단한 성경 지식은 물론이고 정치나 경제 방면에도 해박한 지식 수준을 나타냈다. 그 모양을 본 어느 교인이 물었다.

 

“보아 하니 꽤 살던 집안 여자 같은데 어쩌다 그렇게 떠돌아다니는 신세가 되었수?”

“제가 집안에 힘든 일이 생겨서 잠깐 나와 있는 거예요, 곧 그 문제만 해결되면 집으로 들어갈 거예요.”

그때 그녀 뒷자리에서 컵라면 먹던 여자가 킥킥 대고 웃는 소리가 들렸다. 그녀는 당장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여자에게 다가갔다.

 

“거룩한 성전에서 냄새피우며 라면을 먹으면 되겠어요. 이곳은 하나님을 모시는 거룩한 곳이에요 식사는 나가서 하세요, 그리고 일단 성전에 들어왔으면 조용히 하세요.”

명령조로 또박 또박 말하며 그녀는 도도한 표정으로 자리에 앉아 기도를 시작했다. 나라와 민족을 위한 거창한 기도제목이 줄줄이 새어 나왔다. 그러나 얼마 안 가 기도는 욕설과 울음소리로 변했다. 거친 상소리와 육두문자가 난무하자 그녀는 드디어 자리에서 쫓겨났다. 그러나 예배가 시작되자 어느새 들어왔는지 그녀는 박수를 치며 찬양을 하고 있었다.

 

정신이 온전하든 온전하지 않던 사람은 누구나 사랑받고 싶어한다. 선인이든 악인이든 심지어 살아 있는 생명체라면 누구나 사랑받고 싶어한다. 그 사랑이 채워지지 않을 때 돌발하는 게 일종의 불륜이다. 배우자에게 충분한 사랑을 받고 있다고 느끼는 사람은 결코 남의 이성(異姓)을 탐내지 않는다. 혹 성도착자라면 모를까.

 

성전 안에 모이는 노숙자들의 대부분이 그러했다. 상처가 극심해 궤도에서 이탈된 정신이 심각한 정신분열증세를 나타내거나 강박증과 피해의식에 사로잡혀 싸움과 발작을 일으키는 것이었다. 언젠가 지면에서 읽은 글이 생각난다. 어느 노숙자 부부가 있었다. 그들은 서울역 지하도에서 생활하고 있었는데 어느날 아내가 머리를 박박 깎고 나타났다.

 

이유를 물으니 남자 노숙자들이 자기를 성폭행하기 위해 남편을 엄청나게 때린다는 것이었다. 남자처럼 머리를 깎고 다니면 더 이상 남편이 매 맞는 일은 생기지 않을 거라며 여자 노숙자는 눈물을 흘렸다. 거리를 홀로 떠도는 여자 노숙자들은 남자 노숙자들에 비해 이중 삼중고를 겪는다.

 

그녀들은 어릴 때 부모로부터 끔찍한 폭력에 시달렸다. 결혼해서는 남편으로부터 구타 당하고 버림받아 결국엔 내쫓기는데 이미 심각한 정신질환자로 변해있는 것이다. 그런 정신질환자를 남자 노숙인들이 집단 성폭행하고 엄청난 피해를 입힌다는 것이다. 상처와 폭력은 그녀들의 영혼을 어둠 속에 가두고 결국 악마의 노리개가 되고 만다.

 

그러나 그들에게도 신(身)의 공평한 사랑은 부어지고 있다. 그런 상처받은 영혼들을 치유하기 위해 나선 공동체가 있다. 그들은 일년 365일 내내 상처받은 영혼을 끌어안고 영육(靈肉)의 회복을 위해 눈물로 헌신한다. 그들의 희생 뒤에는 엄청난 신의 영향력이 있다. 왜냐하면 사랑의 헌신에는 신의 간섭과 능력이 따르기 때문이다.

 

그러면 혹자는 말할 것이다. 그렇다면 어린 영혼들을 돌본다면서 성폭행한 도가니 같은 인간들은 무엇이란 말인가. 소설과 영화로 제작된 도가니는 온 국민을 패닉 상태에 이르게 했다. 말 못하는 어린 영혼들에게 가해진 성폭행은 종교의 이름으로 법률로도 극형을 내려야 마땅한 일이었다.

 

종교라는 허울을 뒤집어 쓴 악마들의 처사는 심판받아 마땅한 일이다. 혹자는 그 자들에게 사형도 아까우니 불에 태워 죽여야 한다고 했다. 뿐이랴. 자기 친딸 그것도 어린 딸을 성폭행한 인간들도 그 범주에 포함시켜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그와 같은 범죄가 인터넷과 지면을 채워도 아동을 상대로 한 음란 동영상이 버젓이 활개를 친다고 하니 인간 악은 한계가 없는 듯하다.

 

어쨌든 그녀도 그들 중의 한 무리였는지 모르겠다. 무슨 사연인지 그녀는 사랑받고 싶어 몸부림을 했다. 그 욕구가 다른 사람들에 비해 몇 배는 강했던 모양이다. 그녀는 소란도 소란이지만 나름대로 청소도 잘 하고 아는 얼굴이 나타나면 인사도 곧잘 했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행색이 초라해지더니 나중에는 사나운 거지 몰골로 변했다.

 

사람들에게 구걸하는 횟수가 늘자 어떤 사람이 다가가 말했다.

“몸도 건강해 보이는데 그렇게 구걸만 하지 말고 차라리 식당에 가 설거지를 해주지 그러쇼.”

그녀는 들은 체도 안 했다. 자기는 언젠가 집에 돌아 갈 것이기 때문에 항상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어디서 무슨 말을 들은 걸까. 혹여 남자들에게 못된 행패라도 당한 걸까. 그녀는 어느날인가부터 광폭해지더니 정신착란증세가 심화되고 말았다. 당장 정신병동에 입원해야 될 만큼 악화됐지만 이 나라의 행정 상태가 노숙자를 정신병동에 입원시킬 만큼 재력이 튼튼한 것도 아니지 않은가.

 

그녀는 교회에서 난동을 부리다 밖으로 끌려 나갔다. 그 다음은 잘 모른다. 다시는 나타나지 않았으니까. 사람들은 속으로 소설을 쓸 것이다. 그녀의 인생 라스트에 대해서.

 

겨울이 끝나가던 어느날이었다. 그날 어디론가 가기 위해 영등포 로타리 부근을 지나고 있을 때였다. 영등포 시장으로 막 발걸음을 옮기는데 어디선가 낯익은 얼굴이 날 바라보고 웃는 모습이 보였다. 아! 그녀는 언젠가 수돗가에서 빨래를 하며 쓰레기통에서 음식을 주워 먹던 여자였다. 그녀가 나를 알아보고는 웃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다음 순간 내 고개는 저절로 돌아갔다. 일부러 모른 척 외면하고 만 것이다. 동시에 쓰라린 후회가 가슴을 강하게 치받고 올라왔다. 자괴감(自愧感)이 내부에서 통곡으로 들려왔다. 아! 나는 위선자인가. 감정조차 제대로 표현 못하는 이중인격자인가. 그녀에게 다가가 돈 몇 푼 준 걸로 위로나 삼고자 했던 어설픈 연기자인가.

 

한동안 나는 마음의 중심을 잡지 못하고 허둥댔다. 나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혼란이 왔다. 그후 나는 영등포를 지날 때마다 그녀를 생각한다. 그녀는 혹한이 닥치자 교회에서 모습이 사라졌다. 짐작하건대 그녀는 노숙자는 아닌 것 같다. 다만 돈이 없어 떠돌아다니는 것 같았다. 어떨 땐 행색이 멀쩡했고 하는 행동거지도 얌전하고 절도 있어 보였다.

 

나중에야 알았다. 그녀가 걸을 때마다 몸을 왼쪽으로 비스듬히 하는 것은 정신과 약을 복용하기 때문이라는 것을. 사람의 정신이 망가지는 데에는 여러 가지 원인이 있을 것이다. 일차적으로는 뇌 호르몬과 관계가 있을 수 있으나 그것마저 원인이 있다. DNA에 의한 유전이거나 후천적 원인으로 심대한 정신적 충격에 의한 경우이다.

 

아동보호시설에 와 있는 어린 여자아이들은 뇌의 기능이 망가진 경우가 종종 있다. 친아버지에게 어린 시절 그것도 서너 살밖에 되지 않은 상태에서 무수히 성폭행 당한 것이다. 엄청난 상처와 충격을 받은 아이는 뇌의 기능이 망가져 평생을 정신질환자로 살아간다. 어린 시절 친부모로부터 뼈가 드러나도록 맞고 자란 아이들이 있다.

 

그들은 평생을 우울증과 정신질환에 갇혀 어둠속에 살아간다. 그들에게는 어떤 약물요법도 마지막 수단인 영적인 힘도 능력을 발휘하지 못한다. 사창가에서 살아가는 여자들 중에는 어릴 때 친부와 가까운 인척에게 성폭행 당한 후유증으로 평생을 고통 속에 살아가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그 주된 이유는 낮은 자존감이다. 근친상간이라는 죄가 그녀들의 영혼을 사창가로 내몰고 자학하게 만든 것이다. 죄는 어른들이 지었는데 정작 피해자는 일평생을 고통과 어둠 속에 갇혀 살아가는 것이다. 이보다 더한 불합리가 또 있을까. 그렇다면 내게 미소 짓는 상처받은 영혼에게 모른 척 외면한 나는 어떤 심리일까. 세상에 널리 퍼져 있는 악이 내 마음에도 독소처럼 번져 있는 걸까.

 

이상하게 그들의 모습이 내 눈에 밟힐수록 내 마음속에는 쾌감이 점점 사라지고 있었다. 선과 정의의 기준이 모호해지고 진실과 거짓의 기준도 점점 사라져 가는 것 같았다. 세상은 디지털 시대가 도래하고 도덕관념과 가치기준이 하루가 다르게 변해 가는데 빈부의 격차는 더욱 극심해졌다.

 

또 쾌락과 악은 인터넷과 함께 극치를 달려갔다. 악은 종류도 다양하고 폐해는 더 심각해졌다. 악은 겉으로 드러나는 경우도 있지만 천사의 너울을 쓰고 나타나 미혹하는 경우도 많다. 성경에도 나와 있지 않은가. 악마는 광명의 천사로 나타난다고. 그런데 사람들은 악을 악이라 말하지 않고 자기 기준에서 말하는 경우가 많다.

 

일테면 피해자가 나타나면 오히려 가해자를 두둔하고 편드는 것이다. 평소에 의인인 척 천사인 척했던 사람들이 갑자기 악마로 돌변하는 경우도 숱하다. 나는 분명 상처와 피해를 당했는데 오히려 내가 비난의 대상이 되는 경우다. 어느 베스트셀러 여류작가가 한 말이 있다. 그녀는 세 번째 이혼을 하고 온통 상심한 가운데 있는데 인터넷에는 그녀에 대한 비방섞인 글이 빗발쳤다. 그때 그녀가 말했다.

나는 이혼을 당해 상처 받았는데 왜 내 상처가 비난거리가 되어야 하는가.

 

인간의 본성은 악이다.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진실이다. 인간은 태초로부터 죄악을 품고 태어났다. 그러나 사랑받고 싶은 건 본능이다. 그 본능에 충실하고자 사람들은 위선의 탈을 뒤집어쓴다. 악을 숨기고 선한 면을 내보여서 사랑받고 인정받은 싶은 욕구 때문이다. 내 나이 삼십대 초반이었을 게다.

 

지인(知人)의 소개로 직장에 들어갔던 적이 있었다. 눈치가 더디고 일이 서툰 나는 진즉부터 사장의 눈 밖에 나 있었다. 사장은 나를 해고 하고 싶은 눈치였지만 나를 소개한 지인과의 관계를 우려해 차일피일 미루고 있었다. 그러다 내 대타로 한 여직원이 들어왔다. 30대 초반으로 능력과 미모가 빼어난 여자였다.

 

경력도 화려했고 어떤 일을 맡겨도 잘해낼 것 같은 자신감이 충천한 여자였다. 당장 나를해고 할 줄 알았는데 어쩐 일인지 사장은 잠잠했다. 속내를 알 길 없는 나는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하루하루 견디고 있었다. 그만두고 나가 봐야 다시 취직하기도 어려웠고 무엇보다 자신감이 없었다. 사장은 일부러 내가 듣는 데서 그녀에 대한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자기는 대학 문전에도 못간 주제에 걸핏하면 내 학력을 물고 늘어졌다. 지방대 출신이라는 꼬리표를 달아서 대놓고 면전에서 타박을 주기도 했다. 거들먹거리기 좋아하고 생색내는 게 주특기인 사장은 귀가 얇아 처음부터 사업가 체질은 못 되었다. 판단력도 부족하고 무엇보다 시간관념과 인간관계에 많은 허점을 드러내 옆에서 보면 속이 터질 지경이었다.

 

사십 대 초입에 들어선 사장에겐 일류대 출신에 대학 병원에서 수간호사를 하는 미모의 아내가 있었다. 그녀는 미모일 뿐 아니라 마음씨는 천사와 거의 동격이라 할 만큼 친절하고 배려가 깊은 여자였다. 중학교에 다니는 두 딸도 엄마를 닮아 천사표였다. 그런데 어쩌다 사장 같은 남자와 결혼했는지 도대체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녀는 열심히 벌어 딸들은 물론 남편의 사업장에도 엄청난 투자를 하고 있었다. 물론 밑 빠진 독에 불 붓기였지만, 사장은 사업보다는 불우이웃 돕기 등 봉사활동에 더 관심이 많았다. 봉사단체를 빙자한 사기꾼이 다가와 칭찬 몇 마디 해주면 간이고 쓸개고 아낌없이 내주었다. 그리고 나서 한다는 말이 자기는 세상에 둘도 없는 천사라는 것이다.

 

봉사단체에 다녀올 때마다 사진을 대문짝만하게 찍어서 회사 곳곳에 붙여 놓고 거래처 사장이나 직원이 방문할 때마다 꼭 공치사를 잊지 않았다. 입만 열면 자랑이요 공치사가 90퍼센트인 그는 직원들 중 유독 나를 미워했다. 미워할 때마다 꼭 하는 말이 있었다.

 

나는 기독교인들이 제일 싫어, 말마다 이웃사랑 내세우면서 남 속이고 못된 짓은 도맡아 하거든.”

그러면서 하는 말이 걸작이었다.

“예수 믿어라 타령만 하지 말고 차라리 나를 본받아라, 나야말로 법 없이 살 사람 아냐, 모두 그렇게들 말하잖아.”

 

교만이 하늘을 찌르고도 남을 소리였다. 나는 진즉에 그곳을 그만두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한 것은 이상하게 그럴 때마다 꼭 사건이 터졌다. 그리고 가장 주된 이유는 길고양이들에게 먹이를 주어야 하기 때문이었다. 사장은 사람들에게 생색내는 걸 엄청 좋아해서 회사에 적자가 누적되는 건 기정 사실로 다가왔다.

 

그는 자금이 달릴 때마다 아내에게 도움을 요청했고 그러다 안 되면 처가에게까지 손을 내밀었다. 사장은 내 대타로 들어온 이향미를 끔찍하게 아끼고 좋아했다. 일도 일이지만 미모가 마음에 들었던 모양이다. 일부러 내가 듣는데서 그녀를 칭찬하는 것은 나를 경멸하기 위한 한 방법이었다.

 

“어이! 이향미씨 모델이나 영화배우 하지 그랬어, 이향미씨가 들어온 다음부터 거래가 더활발해진 것 같애. 아무래도 미모가 한몫하나 봐, 그런데 쟤 장경자는 인물이 없어도 너무 없어, 한심해서 인물이 있나 능력이 있나.”

사장은 이향미에게 온갖 칭찬을 늘어놓아도 정작 이향미는 사장을 사이코나 또라이 취급했다.

 

“어쩌다 마누라 하나 잘 만나 가지고, 저런 걸 남편이라고 믿고 사는 여자만 불쌍하지. 저 인간 아까 또 사기꾼에게 걸려들었어. 칭찬 몇 마디 해주니까 사기꾼인지도 모르고 덜컥 도장 찍어 주더라니까.”

“옆에서 좀 말리지 그랬어요?”

“말리면 듣기나 하나, 사기꾼에게 정신이 홀랑 나가서 누구 말도 안 들어, 어디 한두 번 그랬겠어. 등신도 저런 등신이 없다니까. 사기꾼만 보면 돈을 못 줘 환장을 해요.”

그러나 사장 말은 또 달랐다.

 

“인생이 불쌍해서 돈을 주었지, 확 고발해 버릴까 하다가.”

사장은 직원들 월급 주는 날만 되면 어떤 식으로든 변통을 해 해결해 주었다. 그러나 그것 한두번이지 연말이 가까워 오자 월급이 밀리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내 월급만 밀리더니 나중에는 이향미 월급까지 밀렸다. 거래처도 뚝 끊어졌다. 조급증이 인 이향미는 사장의 아내에게 전화해 협박조로 월급을 받아내더니 돌연 퇴사하고 말았다.

 

다른 직원들은 노동청에 고발하겠다고 나섰다. 그러자 사장은 펄펄 뛰며 난장을 피웠다. 오갈 데 없는 직원 녀석들 월급 주고 먹여 주었더니 이제 와서 나를 괄시하냐며 헛소리를 지껄였다. 마치 자기가 자선사업한 것처럼 생색내자 가장 오랫동안 근무한 운전기사는 혼잣말로 말했다.

 

“저 정신병이 또 도진 모양이군.”

사장은 거래처 직원이 수금을 위해 방문하면 제일 먼저 자신의 선행을 자랑했다.

“내가 그동안 도와주고 은혜 베풀어 주었더니 모두 내게 등 돌리네요, 대한민국에 나만큼 봉사 많이 하고 남을 위해 은혜 베푼 사람 있음 나와 보라 그러세요. 전국에 있는 재활센터 고아원 양로원 복지센터 등 내 손길이 안 간 곳이 없답니다.”

 

거래처 직원은 너무도 황당해 할 말을 잊는 눈치였다. 나가면서 하는 말이 살다 살다 저런 또라이는 처음이라 했다. 어쩌다 수금이 들어오면 사장은 직원들 월급부터 해결해야 하는데 엉뚱한 곳에 투자해 있던 돈마저 다 날려버렸다. 직원들이 월급 달라고 아우성치자 되레 큰소리치며 발악을 했다.

“내가 지 놈들 먹여 살린 세월이 얼만데.”

 

참다못한 직원들은 지쳐 회사를 떠나갔고 몇몇 사람들은 노동청에 고발한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그러나 사장이 눈물을 흘리는 바람에 그마저 못하고 떠나갔다. 사장은 나마저도 그렇게 떠나길 바라는 눈치였다. 그런데 다른 직원들은 월급이 두 달 정도 밀렸다면 나는 오개월 가까이 밀려 있어 육백만원이 넘었다.

 

그런데도 사장은 내 월급 줄 생각을 전혀 안하는 눈치였다. 나는 참다못해 울화병이 생길 지경이었다.

“제 월급은 언제 주실 건가요?”

묻자 대답이 기가 막혔다.

“오늘 내일 부도 나 길바닥에 나 앉기 일보직전인데 니 월급 챙겨주게 생겼냐?”

아예 배째라 식이었다. 세상에 철면피도 저런 철면피는 없지 싶었다. 하루가 멀다 하고 거래처에서 수금을 요구하며 난리를 피우자 사장은 모든 걸 나에게 일임하고 가끔씩 전화 연락만 했다.

 

사장의 아내가 근무하는 병원에까지 빚쟁이가 몰려가 난장을 피우자 아내도 휴직계를 내고 사라졌다. 이제 사무실도 경매에 넘어가는 건 시간문제였다. 그런데도 나는 그곳을 떠나지 못하고 있었다. 내게 날마다 먹이를 달라고 몰려오는 길고양이들 때문이었다. 나는 없는 주머니를 뒤져 편의점에 달려가 통조림을 사다가 고양이들에게 주었다.

고양이는 먹고 나면 뒤도 돌아보지 않고 사라졌다. 어느날 나는 직장이 지겨워지기 시작했다. 이젠 그만 두고 나가야지 고양이들도 누군가 먹이를 주겠지. 또다시 들이닥칠 빚쟁이들이 두려워 나는 허겁지겁 짐을 쌌다. 때마침 사장이 전화를 했다.

 

“경자씨, 무슨 연락 없어?”

“사장님 저 이제 여기 그만 나오려고요. 월급은 노동청에 신청할래요, 정 안 되면 체당금 신청이라도 하려고요.”

“경자씨 무슨 말이야, 조금만 기다려 내 이번 일만 해결되면 경자씨 월급부터 챙겨줄게, 그동안 경자씨가 제일 고생 많았잖아 나도 다 알고 있어, 그래도 나를 제일 많이 이해해 주고 생각해 준 사람은 경자씨 뿐이라는 걸.”

 

그 말에 나는 하마터면 울음이 왈칵 쏟아질 뻔했다. 사장이 그렇게 생각할거라곤 꿈에도생각지 못했다. 하긴 나도 사장의 정신상태를 처음부터 의심한 건 아니었다. 하도 천사 행세를 하기에 정말인 줄 알았었다. 그러다 그의 언행이 불일치하다는 걸 알자 실망 차원을 넘어서 분노까지 갔었다.

 

나름대로 사장 입장이 이해가 되기도 했다. 평소에 내게 못되게 굴어서 그렇지 특별히 잘못한 것도 없었다. 제 딴엔 좋은 일 한다고 했다가 사기꾼에게 몽땅 떼인 게 죄라면 죄였다. 하지만 그건 자기가 파놓은 함정에 스스로 뛰어든 거나 마찬가지였다. 그가 그토록 주장하는 선행은 교만이라는 걸림돌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었던 것이다. 불쌍한 건 그의 아내였다.

 

미모에다 능력까지 갖춘 그의 아내는 남편 하나 잘못 만나 고생 바가지를 온통 뒤집어 쓰고 있었다. 그녀의 별명은 살아 있는 성모 마리아였다. 남편의 거듭되는 실수에도 끝까지 참아주고 함께 모든 어려움을 동참하고 있었다. 처음으로 사장에게 감동 먹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감동은 거짓말과 분노로 되돌아왔다. 거래처에서 돈이 들어오자 아내의 카드빚부터 막은 것이다. 그건 그럴 수 있다고 치자.

 

그는 돈이 생기면 또다른 사업구상을 한다며 다 날려버렸다. 처음부터 내 월급 따윈 안중에도 없었던 것이다. 참다못한 나는 그의 아내에게 전화를 했다.

“사장님께서 제 월급을 전혀 해결해 주시지 않네요.”

천사는 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죄송합니다. 제게 돈이 조금 남아 있는데 계좌번호 불러주시면 적으나마 입금해 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나는 계좌번호를 곧바로 문자로 찍어 보냈다. 정확히 한 시간 후에 오십만 원이 입금되었다. 그나마 감사 감격할 뿐이었다. 사장은 내가 그곳을 그만두고 나온 후에도 망하지 않고 근근이 이어갔다. 참 신기했다. 어떻게 버텨낼 수 있는지 기적이 따로 없었다. 아내의 내조 덕이겠지만 그마저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이 아내의 월급통장마저 차압위기에 있던 때가 작년 이맘 때였기 때문이다.

 

나는 돈이 급할 때마다 사장 아내에게 전화했다. 처음에는 오십만 원 입금해 주더니 나중에는 이십만 원 십만 원으로 줄더니 아예 전화도 받지 않았다. 실망은 분노로 분노는 또다른 희망으로 희망은 다시 절망으로 절망은 기대로 매일 바뀌어 갔다. 마치 쳇바퀴 돌듯. 그곳을 그만두고 나자 거짓말같이 그 흔한 알바 자리 하나 나서지 않았다.

 

면접을 보자는 곳도 없었고 어쩌다 연락이 와 나가 보면 면전에 대고 퇴짜를 놓았다. 그렇게 일년이 지나자 나는 완전 백수가 되어 그야말로 오갈 데 없는 신세가 되었다. 그나마 내가 견딜 수 있는 건 신(神)이라는 피난처였다. 그때부터 갈 데가 없어진 나는 매일같이 철야성전을 찾아갔다.

 

피조물인 사람의 영혼을 축복하고 평안을 빌어주는 곳은 그곳 밖에 없었다. 그곳은 안정된 마음과 병든 영혼을 치유해 주는 신적 능력과 무한대의 사랑이 있었다. 마음이 지옥 같았다가도 성전 안으로 발걸음만 내밀면 분노도 절망도 잠시 숨을 쉬고 나를 위로해 주는 것만 같았다.

 

그것은 무엇으로도 살 수 없는 평안과 안식이었다. 하릴없는 노인들과 병원에서 포기한 삶의 마지막 부분을 통과하는 사람들도 철야성전을 찾아왔다. 인생 부도 맞고, 매 맞고 쫓겨난 사람들도 왔고 정신질환자들도 끊임없이 찾아왔다. 심신이 병든 영혼들은 먹거리 앞에서도 극한 행동을 나타냈다.

 

가끔씩 밥차가 도착할 때도 있었는데 그럴 때면 우르르 몰려가 끼니를 해결했다. 수증기가 모락모락 나는 국 앞에 감사기도를 드리며 눈물로 식사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거친 욕설과 싸움을 해가며 걸신들린 듯 먹는 노숙자도 있었다. 그들은 모두 밤 11시가 넘어 드리는 철야예배에 참석했는데 이유는 따듯한 잠자리 때문이었다.

 

돈 한푼 받지 않고 히터를 틀어주는 곳은 그곳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성전 안으로 들어가 안심하고 잠을 청했다. 코고는 소리를 요란하게 하거나 소란만 피우지 않으면 쫓겨날 염려는 없었다. 또 어쩌다 착한 교인을 만나면 그날 식사와 용돈은 해결할 수 있었다. 철야성전은 겨울이면 더 많은 노숙자들이 몰려왔다.

 

잠자리와 먹거리를 해결해 주는 봉사단체의 손길이 있었기 때문이다. 화장실에 가 세수하고 트렁크를 질질 끌고 다니는 여자 노숙자들은 그나마 나은 편이었다. 남자 노숙자들은 대낮에도 술을 사달라고 행패를 부려 쫓겨나기 일쑤였다. 그들은 배가 고프다며 돈을 요구하는데 돈을 주면 얼른 편의점으로 달려가 소주를 사 거꾸로 들고 마셨다.

 

그러다 얼근히 취하면 여자 노숙자들을 상대로 추행을 일삼는 것이다. 그들은 내게도 다가와 쓸데없는 질문을 하며 술과 돈을 요구했다. 없다고 하면 갖은 욕설을 다 퍼부었다. 겨울이 지나면 홀연히 사라졌다가 봄 여름을 다른 곳에서 지내고 찬바람이 불면 나타나는 남자도 있었다.

 

일거리를 찾아다니며 생활하다가 일거리가 끊기면 다시 나타나는 것이었다. 그도 그런 사람들 중의 하나였을 것이다. 처음에는 비교적 정신이 온전한 상태였는데 날이 갈수록 눈동자가 이상했다. 동공이 풀리더니 아무 때나 헤실헤실 웃으며 성전 이곳 저곳을 돌아다녔다. 교인들만 나타나면 다가가 돈을 요구하기도 하고 무어라 혼잣말을 지껄였다.

 

그러다 마음에 안 들면 고함을 치고 욕설을 퍼붓는 것이다. 여자들만 보면 다리를 힐끔거리며 달려드는 바람에 가끔씩 비명이 터지기도 했다. 그의 소름끼치는 표정은 영화에 나오는 악귀와도 흡사했다. 그러나 어느 한 순간 보면 그에게도 다가가 위로의 말과 도시락을 전해주는 여자도 있었다.

 

그럴 때면 그의 표정은 순한 양처럼 변해 감사를 연발했다. 낙엽이 거리를 뒤덮던 어느날이었다. 성전 복도를 지날 때였다. 50대 중반으로 보이는 남자가 여자노숙자에게 말을 건네는 모습이 보였다.

“저도 예전에 사업 부도나 길거리를 헤매며 살던 때가 있었어요, 사람이 힘들 때면 곧 죽을 것 같아도 살기 마련이라고 어느날 재기하게 되더라고요, 아주머니 힘들더라도 조금만 참고 기다려 보세요, 하나님 은혜로 곧 좋은 날 올 겁니다.”

 

남자는 여자에게 만원짜리 지폐를 건네며 한껏 위로의 말을 하고 있었다. 나는 그들 곁을지나며 여자 얼굴을 바라보았다. 아! 바로 그녀였다. 언젠가 나와 영등포에서 얼굴이 마주치자 미소를 건네던……… 가슴 뭉클한 감동이 목울대를 치받고 올라왔다. 아! 세상에는 마음이 따듯한 사람이 더러 있는 모양이었다.

 

그러기에 세상은 그런대로 굴러 가는 가 보았다. 그들 곁을 지나는데 휘일체어에 앉아 있는 중증장애인에게 먹을 것을 건네는 대학생들이 보였다. 그들은 환한 미소와 함께 사랑도 덤으로 건네주고 있었다. 장애인은 함박 웃음을 터뜨리며 좋아 어쩔 줄 몰랐다. 몸을 뒤로 제치며 웃는 장애인은 행복한 표정으로 손을 내저으며 사랑을 표시했다.

 

통장의 잔고가 비어갈 무렵 사장에게 전화를 넣었다. 받지 않았다. 일부러 안 받는 것 같았다. 이미 해를 넘겨 노동청에 신고해도 소용이 없었다. 사장의 아내도 전화를 받지 않았다. 아무 죄도 없는 그녀에게만큼은 전화하고 싶지 않았지만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양쪽에서 수신 거부를 당하자 나도 모르게 욕이 터져 나왔다.

 

망할 자식 나한테 그렇게 못 되게 굴더니…….

직장이 폐쇄된 건 이미 오래 전의 일이었다. 생각다 못한 나는 우선 분노부터 가라앉히기로 했다. 분노하고 속 끓여봐야 변하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설교 가운데 가장 많이 등장하는 용서를 하는 편이 나았다. 물론 그게 쉽지 않다는 건 나도 잘 안다. 하지만 내가 살기 위해선 그 방법밖에 없었다.

 

용서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재직할 때 사장이 내게 했던 모욕과 멸시가 끊임없이 떠올랐다. 사장은 월급을 요구하면 비웃는 투로 ‘내일 줄게’를 연발했다. 물론 새빨간 거짓말이었다. 어떨 땐 집에 가 있으면 돈이 들어오는 대로 텔레뱅킹으로 보내줄 테니 기다리라고 했다. 그 역시 거짓말이었다.

 

가장 참을 수 없는 건 그래 놓고도 한치의 미안함도 없이 여전히 빈정대며 멸시하는 것이었다. 달라는 월급은 주지 않으면서 약을 바짝 바짝 올리며 속을 뒤집는 것이었다. 다른 직원들에게는 월급을 다 지급해 놓고는 안 준 것처럼 속인 적도 많았다.

 

“여기 있는 직원들 다 월급 못 받아도 가만있는데 왜 너만 유별나게 구냐?”

그렇게 직원들과 합세해 속인 뒤 골탕 먹인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어쨌든 다른 직원들은 월급 문제는 다 해결 받고 떠나갔다. 그들이 거세게 나오자 사장도 어쩔 수 없이 해결해 준 것이다. 그러나 내 월급만큼은 예외였다. 이유는 간단했다.

 

“경자 돈은 안줘도 상관없을 것 같아, 저런 예수쟁이 돈 떼먹는다고 설마 해코지 하겠어? 멍청한 거 데리고 있으면서 그동안 월급 준 게 얼만데.”

그는 직원의 귀에 대고 말했다 한다. 참다못한 나는 그곳을 소개한 지인(知人)에게 달려가 하소연을 했다. 마땅히 내 편을 들을 줄 알았는데 뜻밖의 대답이 나왔다.

“없어서 못 주는 거겠지. 있는 데도 안 줄 사람은 아니야.”

 

때리는 시어미보다 말리는 시누이가 더 밉다고 나는 그 지인(知人)이 백배 천배 더 가증스러웠다. 그리고 사장을 향해 극한 악담이 터져 나왔다.

네가 그러고도 안 망하면 기적이지.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라고 내게 모욕과 거짓말을 일삼았던 사장은 양의 털을 뒤집어쓴 이리 늑대였다고 입만 열면 성토하고 정죄했다. 그러나 내 말을 들어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필요할 때면 다가와 온갖 도움을 요청하던 사람들도 내 처지가 어려워지자 모두 외면하고 상처를 끼얹기에 바빴다.

그러게 누가 그런 직장에 들어가래?

진즉 노동청에 고발하지 그랬어? 저렇게 멍청하니 그예 당하고 말지. 못된 사장놈 욕하면 뭘해 그런 놈들은 다 제 쓸 것 마련해 놓고 일부러 안 주는 건데.

 

혹 떼려다 혹 붙인 격이 된 나는 사람들에게 위로받는 걸 포기하고 철야성전에 가 신을 향해 분풀이를 대신했다. 그러나 어느덧 분노도 차츰 사그러들고 마음속에 안정이 찾아오기 시작했다. 세상이 줄 수 없는 위로와 평안이 마음을 차지하면서 막혔던 길이 보이기 시작했다.

 

성전 안에는 중환자의 모습도 가끔씩 보인다. 마지막 희망을 신에게 걸기 위해 혼신의 힘을 기울여 찬양하고 기도하는 사람들이다. 힘이 없어 자리에 누워 있는 모습을 보면 마음이 그렇게 짠할 수가 없다. 성전 2층 중간쯤에 앉아서 찬양하는 할아버지가 있었다. 주름 투성이인 할아버지는 회개기도와 함께 찬양을 하는데 얼마나 은혜로운지 모른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꽤 기력이 좋아 보였는데 얼마 전부터 눈에 띄게 나빠졌다.

 

걸음도 잘 못 걷고 찬양도 이전처럼 못 부른다. 며칠 전에는 기운이 없는지 자리에 누워 있다 일어나는데 기침을 엄청 심하게 하셨다. 나는 앞자리에서 그 할아버지를 위해 중보기도를 했다. 머리 끝에서 발끝까지 보혈로 깨끗이 치유하여 주옵소서. 나가면서 할아버지 눈을 보니까 힘에 겨운지 고통이 가득했다. 찬양이 시작되자 간신히 자리에서 일어나는데 차마 눈뜨고 못 볼만큼 불쌍했다.

 

그러더니 한동안 보이지를 않는 것이다. 혹시 돌아가신 건 아닐까. 걱정되는 마음에 기도하다가도 자꾸만 뒤를 돌아보면서 확인했다. 그런데 바로 어제 일이다. 낯익은 찬양이 들렸다. 돌아보니까 할아버지가 힘없는 목소리로 찬양을 하고 계셨다. 얼굴을 보니 안색이 조금 밝아 보였다. 휴유 안심이다. 그래도 어떻게 성전에 다시 나타나셨고 안색이 좋아지셨으니 내 기도가 효력을 나타낸 걸까.

 

혼자 해석하고 자위하면서 자꾸만 뒤를 돌아보았다. 수돗가에서 만났던 그 불쌍한 여자도 볼 때마다 속으로 기도하고 지나는데 눈치 챘는지 나만 보면 흘끔거린다. 어쩌다 집에서 쫓겨나 저런 모양으로 살아가는 걸까. 생각할수록 가슴이 미어졌다. 소설로도 저들의 인생은 풀어내기 힘들 것 같다. 예전에는 가방을 7-8개나 들고 다니는 30대로 보이는 여자가 있었다.

 

하루종일 교회 주변을 떠돌며 사는데 남자들이 치근대며 여간 괴롭히는 게 아니었다. 사람이 처지가 외롭고 힘들면 온갖 악한 인심이 모여드는 모양이다. 얼굴에 음란. 악이라고 써진 중년 남자가 성전 안에까지 쫓아와 여자를 괴롭힌 적도 있었다.

 

그녀는 그렇게 교회 근처를 떠돌며 살다 한동안 안 보이더니 어느날 배가 부른 모습으로 나타났다. 아마도 임신 7-8개월은 되었지 싶었다. 성전 안에도 못 들어가고 아래층으로 내려가는 계단에 넋 나간 모습으로 앉아 있는데 내가 지나가자 인상을 쓰며 쳐다봤다. 그러더니 작년부터는 아예 보이지 않았다.

 

런 사례는 얼마든지 있다. 한번 사라진 그들은 다시 나타나지 않는다. 내가 속으로 궁금해 하고 그들의 안전을 위해 기도해도 다시는 모습을 나타내지 않는다. 그들은 어디로 사라진 걸까. 다행히 할아버지는 이틀만에 다시 나타나 안심했지만, 이전보다 힘없는 약한 목소리로 간신히 찬양을 하는데 보기에도 너무나 딱했다. 어디가 얼마나 아프기에.

 

오갈 데 없는 노숙자나 다름없는 그들은 교회에 나타나도 처지가 비슷한 사람끼리 어울릴 뿐 아무도 관심 가져 주지 않는다. 실낱 같은 생명을 붙잡기 위해 성전 문턱을 넘는 사람들. 오직 매달릴 데는 하나님밖에 없기에 부지런히 성전을 드나들며 마지막 희망을 불태우는 사람들. 귀신들림과 정신이상자라는 주변의 따가운 시선과 고통 속에서 한가닥 희망을 찾기 위해 교회에 왔다가 오히려 쫓겨나는 사람들.

 

처 때문에 서로 싸우고 외면당하고 쫓겨났다가 다시 성전 안을 채우는 사람들. 그들은 그것을 반복하다가 어느날 홀연히 사라진다. 하루에도 수십 명씩 자살자가 속출하는 세상에서 그들이 택한 결과는 무엇일까. 임신한 몸으로 사라진 그 여자는 어떻게 되었을까. 사람들은 세상에서 좀더 나은 미래를 얻겠다고 서로 머리 터져라 경쟁하고 아귀다툼을 벌이는데…… 저 약한 사람들은 어디서 위로를 얻고 등 붙이고 살아갈 것인가.

 

러나 사람이 고난에 처했다고 다 불쌍하게 볼 일은 아니다. 어느 가을날이었다.

한번은 대성전 앞을 지나는데 50대로 보이는 여자가 다가와 말을 붙였다. 한눈에 보기에도 여자의 눈빛은 교활하고 음흉해 보였다 한마디로 사기꾼 인상이었다. 그러나 말투는 온순하고 겸손해 보였다.

 

“집사님 혹시 저를 위해 기도해 주실 수 있나요?”

“제가 왜요? 저도 기도 제목이 많아서요.”

“저 그게 아니고요, 누가 저한테 그러더라구요 집사님께 중보기도를 요청하라고요.”

“저한테요? 왜요?”

“집사님 평상시에 중보기도 열심히 하시잖아요, 죄송하지만 제 기도도 부탁 드릴게요.”

“말씀해 보세요.”

“네 제가 사업을 하다가 망해서 지금 오갈 데가 없어 교회에서 살다시피 해요, 마땅히 거처할 곳도 없고요.”

 

그곳에 오는 사람들 중에는 여자 노숙자도 많았다. 거처가 없으니까 교회 철야예배 참석했다가 새벽 예배드리고 낮에는 근처를 어정거리다 독지가가 나타나면 적당히 식사를 해결한다. 그랬다가 저녁이 되면 화장실에 들어가 세수와 빨래를 하고 교인들이 나타나면 돈을 구걸해 필요한 것들을 해결한다.

 

개중에는 정신이 멀쩡한 사람도 있지만 정신질환자가 더 많다. 환청을 들으며 끊임없이 대화를 하는가 하면 느닷없이 발작 증세를 일으키기도 한다. 처음에는 비교적 멀쩡했다가 주변의 냉대와 상처로 인해 증세가 악화되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악령은 결코 혼자가 오지 않는다. 꼭 패거리를 끌고 나타나 상처받은 영혼들을 이중 삼중으로 괴롭힌다.

 

그녀는 자신의 이름을 형문자라고 소개했다. 서울 중심부에 있는 대학에서 사회복지학을 전공했으며 현재는 복지센타에서 아동들을 가르치는 일을 한다고 했다. 도무지 신빙성이 안 갔지만 그렇다고 전혀 안 믿을 수도 없었다. 그냥 그런가보다 했는데 그녀는 교묘한 속임수로 돈을 뜯어내는데 일가견을 나타냈다.

 

그것도 꼭 신앙을 핑계 대며 말을 그럴듯하게 둘러댔다. 핸드폰 요금이 체납돼 그러는데 잠깐 통화가 가능하냐며 묻고는 아는 사람에게 전화해 돈을 빌려 달라고 사정했다. 처음에는 만 원에서 이삼만 원 정도 빌렸다가 차츰 액수를 높여갔다. 물론 처음에는 빌려간 돈을 차질 없이 꼬박꼬박 갚았다.

 

고마웠다는 정중한 인사와 함께. 호칭도 항상 극존칭을 사용했는데 그것은 자신의 위상을 은근히 자랑하기 위한 수법이었다. 대화 중에도 어울리지 않게 꼭 영어 단어를 끼어 넣었고 자신의 전력을 포장하기 위해 부풀리기도 잘했다. 그러던 어느날 그녀는 드디어 본색을 드러내고 말았다.

내가 자기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곤 하니까 신뢰가 쌓였다고 믿은 모양이었다. 교활하고 음흉한 눈빛을 빛내더니 하는 말이 걸작이었다.

 

“집사님, 제가 강남 쪽에 사업을 구상하고 있는데 돈이 이 삼천만원이 부족해요. 빌려줄 수 있으세요.”

자기 딴에는 판단이 섰는지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말했다.

“제게 그만한 돈이 어디 있겠어요?”

그러자 그녀는 눈에 쌍심지를 켜며 말했다.

“누가 그깟 돈 떼먹을까봐 그래요? 이자 꼬박 꼬박 쳐서 준다고요.”

 

되레 자기가 큰소리치더니 분노로 씩씩거렸다. 설마 거부당하리라곤 상상도 못한 눈치였다. 그러니까 그녀의 속내는 나 한사람쯤 속여 먹는 건 문제도 아니라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그래 자신만만하게 포문을 꺼냈는데 거절당하자 믿었던 도끼 발등 찍히듯 당황한 것이었다.

하도 기가 막혀 자리에서 일어서는데 그녀는 또다시 말했다.

 

“지금 곤란하시면 나중에 말씀해 주셔도 돼요.”

억지로 미소 짓는데 꼭 형상이 마귀할멈 같았다. 그녀는 툭하면 내게 다가와 돈을 요구했다. 몇 번 거절당하고 나서는 못 먹는 감 찔러보는 식으로 돈을 요구했다. 아니면 그만이라는 식이었는데 그 표정이 얼마나 가증스러운지 살기(殺氣)마저 감돌았다. 짐작컨대 그녀는 그런 식으로 사기행각을 벌여 교도소 신세를 지지 않았을까, 저절로 소설이 써졌다.

 

그녀는 친화력도 좋아 누구에게나 붙임성 있게 행동했는데 속아서 잔돈께나 빌려주는 사람도 많았다. 더러운 사기꾼년. 마음 약한 교인들 주머니 털려고 나타나 남에게 피해나 주는 년. 나는 그녀가 지날 때마다 속으로 악담과 멸시를 했다. 그런데 어느날인가부터 그녀이 모습이 뜸해지기 시작했다.

이제 여기선 소문이 날만큼 났고 더 이상 뜯어 먹을 게 없다고 판단한 모양이었다.

 

그도 아니면 사기 행각에 걸려 철창으로 갔거나 그녀 말마따나 몸에 병이 발생해 길에 쓰러졌거나 둘 중의 하나였다. 매번 거절당하자 그녀는 어느날 새로운 수법을 동원했는데 그것은 다름 아닌 몸에 이상증세가 나타나 당장 병원에 가지 않으면 죽을 수도 있다는 것이었다. 물론 보나마나 새빨간 거짓말일 터였다.

 

나중에는 하다 하다 안 되니까 몸에 병이 났다고 둘러대는 것이리라. 형문자는 한가지 사실을 놓고도 매번 거짓말을 했다. 핸드폰 요금이 체납돼 끊어졌다고 했다가 다음 순간엔 텔레뱅킹으로 돈이 올 건데 잠시만 돈을 빌려 달라고 사정했다. 그런가 하면 자기 대학 동창이 강남 쪽에 사업을 하고 있는데 곧 취직될 거 같다며 꽤 많은 액수의 돈을 요구하기도 했다. 그때마다 하는 말이 있었다.

“빌려만 주시면 두 배 세 배로 갚아 드릴께요.”

 

그녀가 사람들에게 다가가는 수법은 다양했다. 돈이 있어 보이는 사람들에겐 은근히 자기의 학력과 인맥을 자랑했고 가난하고 불쌍해 보이는 사람들에겐 먹을 것을 나누어 달라며 접근했다. 내게만은 예외였다. 갖은 핑계를 대 끈질기게 돈을 요구했는데 그때마다 눈동자가 사악한 마귀 형상으로 변하는 것이었다.

 

그녀가 사라지자 새로운 여자가 나타났다. 몸집이 퉁퉁하고 사나운 인상에 걸핏하면 욕설을 퍼붓는 20대 중반으로 보이는 여자였다. 그녀는 환청을 듣는지 하루종일 허공에 대고 혼잣말을 지껄였다. 얼만 큰소리로 떠드는지 성전에서 내쫓기기 일쑤였다. 그녀는 남자든 여자든 가리지 않고 다가가 먹을 것을 요구했다.

 

“배가 고파요, 천원만 주세요.”

배가 고파 죽겠다는 표정을 지으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돈을 꺼내 주었다. 그녀는 날로 살이 찌더니 나중에는 거구로 변했다. 그러자 성격이 광폭해지면서 알 수 없는 욕설을 퍼부으며 성전 근처를 돌아다녔다. 눈빛도 점점 사악해지더니 나중에는 형문자와 비슷해졌다. 어느날이었다. 그날도 철야성전을 들어서는데 앞자리에서 욕설과 함께 싸움이 벌어져 있었다.

 

그런 일은 자주 있었는데 이상한 것은 그날따라 싸우는 여자 주위에 남자들이 잔뜩 몰려 있는 것이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싸우는 여자의 미모가 월등했기 때문이다. 머리채를 잡고 싸우는 여자는 그야말로 몸짱 얼짱이었다. 그러나 입에서 거친 욕설이 연거푸 터져 나오고 있었다.

 

웬일인지 옆에서 구경하는 사람들은 전혀 말리는 기색이 없었다. 불구경하듯 호기심어린 표정이었다. 나 역시 호기심어린 표정으로 가까이 다가갔다. 다음 순간 나는 경악했다. 미모의 여자도 마찬가지였다. 두 여자가 놀라 경악하자 구경꾼들도 놀랐고 함께 싸우던 배불뚝이 여자도 놀라 뒤로 물러갔다.

“경자씨.”

“이향미씨.”

 

우리는 서로 놀라 멍한 표정으로 서 있다 밖으로 나왔다. 함께 싸우던 배불뚝이 여자는 환청을 들으며 사람들에게 먹을 것을 구걸하던 젊은 여자애였다.

“이향미씨, 이곳엔 웬일이세요? 향미씨도 교인이셨나요?”

“아니요. 그냥.” “네?”

 

가까이서 보니 이향미는 몰골이 초췌하게 변해 있었다. 그런데도 그녀의 외모는 여전히 빛이 났다. 얼짱 몸짱다운 기운이 몸 전체에서 풍겨났다. 그런데 어쩐 일일까. 신의 도움 없이도 얼마든지 잘 살아갈 그녀가.

 

“아! 글쎄 아까 그년이 내 속을 확 긁잖아요. 어디서 몸집은 하마 같은 년이.”

그녀 입에서 거침없이 육두문자가 나왔다.

“아까 그 여자애 말이죠. 트라우마가 심한 환자에요, 언뜻 보아도 알 수 있잖아요.”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그년이 내 지갑에 손을 댔지 뭐예요?”

“네?”

“내가 기도하는데 옆에서 느낌이 이상한 거예요, 봤더니 그년이 내 지갑에 손을 대더라고요, 왜 남의 지갑에 손을 대냐고 하니까 팔짝 뛰더니 대짜고짜 내게 주먹질을 하는 거예요, 재수가 없으려니까, 미친년이면 남의 지갑에 손대도 괜찮은 법이라도 있나요?”

 

이향미는 한참 흥분하더니 이윽고 나를 보며 말했다.

“그런데 경자씨는 이곳 교인이세요?”

“아뇨, 그냥 기도하러 왔을 뿐예요.”

“그 사장한테서 밀린 월급은 다 받았나요?”

“반도 못 받았어요.”

“그 죽일 새끼가 내 돈도 잘라먹었지 뭐예요?”

“네에? 이향미씨 돈을요, 나갈 때 다 받지 않았나요?”

“거기 그만두고 나서 한 반년 쯤 지났나, 우연히 커피숍에서 만났는데 저한테 제안을 하더라고요, 자기한테 투자하면 세배로 늘려 줄 테니 한번 믿고 맡겨 보라고요.”

“그래서 맡겼나요?”

“그때 나한테 뭐가 씌웠던 모양이에요, 겁도 없이 덜컥 천만 원을 맡겼지 뭐예요.”

“그래서 받았나요?”

“받긴요, 몽땅 떼였죠. 울화통이 치밀어 술만 퍼마시다 애인과도 헤어지고 우울증까지…… 누군가 그러더라고요, 이곳에 가보라고 그런데 여기서 경자씨 만날 줄 몰랐네요. 미안한데 제 기도 부탁 좀 해도 괜찮을까요?”

표정이 갑자기 진지하게 변해 있었다.

 

“무슨.”

“재작년부터 엄마가 많이 편찮으세요.”

“무슨 병인데요.”

“오래 전부터 신장이 안 좋았는데 암이 발생한 것 같애요.”

돈 이야기인 줄 알았는데 전혀 의외였다.

“전 돈 이야긴 줄 알았네요.”

“돈이야 벌면 되죠, 하지만 건강은 아니잖아요.”

 

하긴 그녀는 외모가 한몫하니까 더구나 그녀는 능력짱이지 않은가. 나와는 경우가 다르다.

“그래서 어머니 기도하려고 오신 거군요.”

“전 지금까지 하느님 안 믿고 제 힘으로 살아왔는데요, 저희 엄마 때문에 어쩔 수없이 여기까지 오게 되었네요, 나보다는 아무래도 경자씨가 하느님과 친할 것 같아서요, 기도 부탁드릴께요. 그러면 저도 보답할게요.”

“어떻게요?”

갑자기 내 음성에 힘이 돋아났다.

“글쎄, 다른 건 몰라도 취직자리만큼은 제가 보장할 수가 있죠.” “네에? 전 능력도 별로 없는데요.”

 

지금 자기 엄마 건강과 내 취직문제를 놓고 거래를 하자는 건가? 그러나 왠지 싫지가 않았다.

“취직 안 시켜 주어도 괜찮아요, 어머니 건강 위해 기도할 테니 향미씨도 열심히 기도하세요, 때론 초신자의 기도가 더 능력을 발휘할 때도 많답니다.”

 

나는 언젠가 들은 설교 내용을 이향미에게 전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향미는 가끔 성전에 나타날 뿐 얼마 안 가 사라지고 말았다. 겨울이 가고 이듬해 봄이 되었다. 우연히 인터넷 구직 사이트를 검색하던 중 이력서를 제출하였는데 기적적으로 취직이 되었다. 그건 정말 기적이었다. 비록 연봉이 많지 않았지만 백수가 도처에 흔한 세상에 취직이 된 것만 해도 기적이 아닌가.

 

백수가 된 지 이 년 만에 얻는 새 직장이었다. 열심과 최선을 다해 근무한 결과 첫 월급을 받는 날이었다. 나는 그날따라 철야성전이 가고 싶어졌다. 마음 같아선 누가 요구하든지 그곳에 오는 사람들이 돈을 달라면 줄 생각이었다. 설사 형문자일지라도. 철야 성전은 새봄과 함께 분위기도 많이 녹아 있었다.

 

사람들의 표정도 온화해 보였고 전처럼 거친 분위기도 찾아 볼 수 없었다. 경제활성화 탓인가. 나름대로 이유를 붙이며 안으로 들어서는데 누군가 내 팔을 붙잡는 이가 있었다.

“경자씨.”

 

이향미가 반가운 표정을 지으며 웃었다. 옆에는 이향미와 똑 닮은 중년 여인이 환한 미소와 함께 서있었다. 그녀의 어머니 같았다.

“어머니신가봐요.”

“네 그때 경자씨가 기도해 덕분인지 건강이 많이 좋아지셨어요.”

“참 다행이네요.”

“고마웠어요. 경자씨한테도 좋은 일이 생겨야 할 텐데.”

 

말을 마친 그녀는 성전 맨 앞자리에 가 앉았다. 옆에 어머니를 동반한 채. 이윽고 피아노의 반주와 함께 예배가 시작됐다. 목사의 설교도 끝나고 기도하는 사이 깜빡 잠이 들었던 모양이다. 자리에서 일어났는데 이향미가 보이지 않았다. 벌써 나간 것 같았다. 성전 밖으로 나오니 봄비가 부슬부슬 내리고 있었다.

나는 버스정류장까지 비를 맞으며 걸어갔다.

 

“그때 기도 부탁하면서 내 취직은 걱정 말라더니 그예 잊은 모양이군. 하긴 뭐하러 그런 것까지 기억을 하겠어, 자기 살기도 바쁠 텐데.”

그러면서 나는 속으로 자위(自慰)했다.

 

그래도 얼마나 다행인가. 남의 도움없이 취직되었으니. 이것이야 말로 신의 은총이 아니던가. 버스가 여의도 샛강을 지날 때였다.

 

차창 밖에서 누군가 내게 손을 흔드는 모습이 보였다. 얼굴이 해맑고 표정이 환한 중년여자였다. 누구였더라. 어디서 많이 본 듯한 사람인데. 기억은 수렁 속을 헤매다 끝내 길었다.

 

그런데 버스가 샛강을 지나 영등포 로타리를 지날 무렵이었다. 기억의 수렁속에서 희미한 불빛이 보였다.

“아! 맞아, 그 여자.”

 

언젠가 영등포 로타리에서 보았던 걸어갈 때 몸이 옆으로 기울던 그녀였다. 그녀는 어떻게 나를 알아보고 손을 흔들었을까. 진즉 알아 보았다면 같이 손을 흔들었을 텐데. 후회와 아픔이 그때처럼 또다시 가슴이 아렸다. 이제는 평안하고 안정된 모습으로 살아가야 할 텐데. 안색도 환하고 표정도 안정될 걸로 보아 그녀는 새로운 인생을 살아가고 있는 게 틀림없었다.

 

아니 그건 내 바람인지도 몰랐다. 이제부턴 기쁘고 감사한 일들만 생기세요. 마음속으로 기도하는데 봄비가 점차 그치면서 맑은 햇살이 비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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