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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님/정성수(丁成秀)
2012-04-16 13:33:42
chungpoet

조회:920
추천:80

<단편소설>

손 님

정 성 수(丁成秀)

 

 기다리는 손님은 아직 오지 않았다.

  서울에서 경기도 양평 두메산골인 일당산 곰지기계곡 속 작은 나무집 정원 주차장에 이미 한참 전에 도착했어야 할 손님이 이 시간 현재까지도 그 모습을 나타내지 않고 있기 때문에 나는 지금 하염없이 기다리고 있는 중이다.

 지구별을 감싸고 휘도는 투명한 공기 빛깔이 어느새 새카매졌다. 저 우주 속에서 수많은 광채로 번쩍이는 눈부신 대낮은 나의 손님이 도착하는 시간까지 기다려주지 않았다.

 온 하늘에 검정 커튼을 드리우며 조금씩 어두워진 우주는 다만 몇 개의 작은 별들을 나의 이마 위로 슬쩍 보여주고 있을 뿐이다. 그 작은 별들 사이로 하느님의 눈에서 솟아나오는 섬광이나 펄럭이는 순금빛 옷자락은 보이지 않았다.

 정체불명의 저 하느님은 지금 이 시간 어느 별 위를 홀로 거닐고 있는 것일까. 아직 그 누구도 초대받은 적이 없는 밥상 앞에 혼자 앉아서 떨리는 손을 들어 저녁 식사를 하고 있을까.

 이 지구별 위에서 단 한 번 눈인사조차 나눠본 적이 없는 그녀에 대한 확실한 정보가 나에게는 아무 것도 없다. 나의 영혼 속에 숨어있는 작은 눈으로 겨우 들여다본 것은 지구별과 우주 사이에 펼쳐진 황홀한 저녁 놀 속의 구름자락 속으로 언뜻언뜻 보일 듯 말 듯한 그녀의 희미한 추상화뿐이다.

 사실은 아마 그것마저도 확인 가능한 현실이 아닐 것이다. 이 세상엔 환상이나 착각, 혹은 착시현상이라는 것도 얼마든지 존재하기 때문이다.

 손님이 몰고 오는 승용차는 아직도 보이지 않는다. 대한민국 수도 서울에서 이곳 산골짜기까지 연결된 기나긴 도로망이 주말 차량들의 폭주 때문에 오후부터 현재까지 몸살을 앓고 있는 모양이다.

 이른 아침부터 나는 손님맞이 준비를 시작했다. 손님이 와서 하룻밤 묵고 갈 빈 방을 다시 정리했다. 아무 것도 어질러진 게 없는 깨끗한 거실과 침실 바닥을 또 한 번 쓸고 닦았다.

 나무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서 작은 다락방도 다시 둘러보았다. 혹시 손님이 심심할 때 잠시 들척여볼지도 모를 다락방의 책들을 좀더 가지런히 정리해서 똑바로 세워놓았다.

 침대 옆과 욕실 안에 걸려있는 기다란 거울을 마른 수건으로 천천히 닦고, 삼성 텔레비전, 시와 그림이 섞여있는 유리 액자, 뜨개질 그림이 들어있는 긴 액자, 한글과 영어로 써놓은 시 액자, 조그마한 나무 벽시계, 고풍스러운 느낌을 주는 키가 아주 작은 장식장 등을 하나하나 정성껏 닦고 또 닦아내었다.

 그야말로 그 모든 사물들의 수줍은 살갗에서 윤이 날 정도로 반복해서 닦았다. 창문 아래쪽으로 길게 드리워진 두꺼운 겨울 커튼을 다시 매만지는가 하면 굵은 통나무를 잘라 만든 나무식탁 위의 보이지 않는 미세먼지까지 다시 닦았다.

 이른 봄인데다가 평년 기온보다 날이 차고 해가 기운 저녁이라서 기름보일러의 실내 온도도 18도로 높여놓았다. 평소에는 잘 쓰지 않는 손님용 방이기 때문에 아무도 없을 때는 방안의 온도를 동파 예방 수준으로 낮춰놓고 지낸다.

 겨우 나무집 두 채밖에 서있지 않은 일당산과 웅덕산 사이 기다란 계곡 속 실개울 옆이라서 그런지 이곳의 겨울철 평균 기온은 서울보다 적어도 2~3도 정도 낮았다. 강추위가 사정없이 몰아칠 때는 6~7도 정도 차이가 날 때도 있다.

 보일러의 실내온도를 ‘외출’로 해놓아도 날이 갑자기 추워지면 싱크대 수도꼭지나 화장실 변기 수도관이 슬며시 얼어붙곤 했다. 일당산 주변에 온종일 폭설이 내리거나 폭우가 쏟아질 때는 승용차 교행도 되지 않는 좁은 비포장도로에 순백의 눈송이들이 거품처럼 넘쳐나거나 허옇게 속살을 드러낸 물줄기가 작은 해일처럼 솟구치며 넘쳐흘러서 아랫마을과의 통행이 대단히 불편해지곤 했다.

 그럴 때는 곰지기 계곡의 이 아주 작고 작은 마을 아닌 마을(겨우 두 집 중 한 집은 서울에 살고 있는 의사 가족이 별장으로 쓰는 집이라 보통 때는 거의 비어있다)은 하나의 조그마한 섬이 된다.

 이 작은 섬에 사람이란 이름을 지니고 사는 동물은 달랑 나 혼자뿐이다. …나는 고독한가? 환경적 상황 때문에 고독한가? 상대적, 또는 절대적, 혹은 근원적으로 나는 고독한 존재인가?

 그 소리없는 질문에 나는 아무 대답이 없다. 평소에 일당산 아래 곰지기 계곡 속에서 살고있는 사람은 그렇게 나 하나뿐이므로 이곳의 주인은 만물의 영장이라고 하는 인간인 내가 아니라 딱따구리를 비롯한 여러 종류의 날짐승, 고라니 같은 들짐승, 혹은 자작나무를 비롯한 수많은 나무나 괴불주머니 같은 야생화들이다.

 사람이란 명칭을 지니고 사는 내가 이 곰지기 계곡의 주인이 아닌 게 분명한 것이, 산자락 낮은 숲 위에 승용차 한 대가 겨우 다닐 수 있는 좁은 길을 내고(아랫마을 농부들의 경운기가 간신히 드나드는 울퉁불퉁한 농사용 흙길을 조금 다듬었다) 두 개의 방마다 두 사람이 자기에 적당한 한 개씩의 다락방이 있는 작은 나무집을 한 채 짓고 나서 꽤 오랜 나날이 지난 뒤까지도 밤이 오면 멧돼지 가족들이 나의 집 정원 한가운데를 당당하게 가로질러 다니곤 했다.

 그들은 지구인 하나가 이곳에 살고 있다는 사실을 아예 처음부터 기억 속에 담아두고 있지 않거나 깨끗이 무시해버리는 듯했다. 말하자면 그들이 볼 때 나는 이 곰지기 계곡의 유일한 지배자가 아니라 여러 짐승들과 나무들, 꽃들의 평화로운 마을에 무단 침입하여 사정없이 나무들을 자르고 꽃들을 자르고 땅을 파헤치고 그 위에 버젓이 집까지 지어서 살고 있는 무례하기 그지없는 난폭자, 또는 자연 파괴자, 즉 용서할 수 없는 죄인일 뿐이다.

 짐승들의 먹거리가 부족한 겨울이 오면 나는 마치 그들에게 조금이나마 속죄라도 하듯 날이면 날마다 숲속 한구석에 여러 가지 음식물(먹다 남은 음식뿐만이 아니다)을 차려놓아 주기도 하고 내가 살고 있는 나무집 정원의 좀 넓적한 돌 위에 땅콩이나 잣, 좁쌀 등 새들의 먹이를 놓아주곤 했다. 다음날 가보면 어제 놓아두었던 숲속의 음식물들은 모두 다 사라지고 그 자리에 짐승들의 발자국 등 약간의 흔적만 남아있을 뿐이다.

 정원 돌 위에 놓아둔 먹이들은 대낮에 어치, 곤줄박이, 박새, 직박구리, 노랑부리턱멧새, 물까치 등이 날아와 그 자리에서 먹이를 쪼아 먹거나 부리에 물고 실개울 건너 낙엽송, 자작나무, 잣나무들이 우거진 숲속으로 후루루 날아가곤 했다. 이곳으로 이사 오기 전 약 20년 동안 아내와 나는 우리가 죽을 때까지 살 청정지역을 찾아서 주말 이면 서울을 벗어나 경기도, 충청도, 강원도의 이곳저곳을 두루 돌아다녔다.

 수많은 우여곡절과 시 행착오 끝에 마침내 자리잡게 된 무릉도원 일당산 곰지기 계곡! 여름이면 하얀 날개를 펼쳐 든 해오라기들이 마치 전설 속 신선처럼 낮은 하늘 속으로 유유히 날아 다니고, 봄에서 가을까지 낙엽송, 자작나무, 향나무 숲이 우거진 일당산과 웅덕산 사이의 곰지기 계 곡 속으로 퍼져 나가는 청아한 실개울 물소리, 봄날의 아침을 깨우는 딱따구리의 상큼한 스타카토, 거기다가 겨울이면 하얀 눈옷을 떨쳐입는 일당산 나무들은 꼭 우리 백의민족같다.

 사시사철 가슴 속 깊숙이 스며드는 티없이 맑고 시원한 공기, 너무나도 투명한 지하 암반수, 사방에 서 나의 온몸 에워싸는 야생화 향내, 이 골짜기의 고요와 적막을 깨는 수많은 산새들 웃음소리, 다람 쥐와 토끼와 고라니들의 숨바꼭질, 밤이면 금방이라도 지구를 덮칠듯이 온 하늘 가득 채우는 너무나 도 신비롭게 빛나는 저 무수한 별들의 무리…!

 그 속에서 숨을 쉬고 산 5, 6년 사이, 그동안 나의 몸 이곳저곳에 숨어 지내던 아홉 가지의 병 중에 서 기관지염, 위궤양, 십이지장염, 치질, 전립선염, 중성지방 과다 등의 증세가 약 한 번 쓰지 않은 채 언제부터인가 거짓말처럼 씻은 듯이 사라져버렸다.

<가사>

상춘곡(賞春曲)

불우헌(不憂軒) 정극인(丁克仁)

 

홍진(紅塵)에 뭇친 분네 이 내 생애(生涯) 엇더한고

(속세에 묻혀 사는 사람들아, 이 나의 살아가는 모습이 어떠한가?)

녯사람 풍류(風流)를 미칠까 못 미칠까

(옛 사람의 풍류를 따를까, 못 따를까)

천지간(天地間) 남자(男子) 몸이 날 만한 이 하건마는

(세상의 남자로 태어난 몸으로 나만한 사람이 많지마는)

산림(山林)에 뭇쳐이셔 지락(至樂)을 마랄것가

(산림에 묻혀 사는 지극한 즐거움을 모른단 말인가)

수간모옥(數間茅屋)을 벽계수(碧溪水) 앏픠 두고

(초가삼간을 맑은 시냇가 앞에 지어 놓고)

송죽(松竹) 울울리(鬱鬱裏)예 풍월주인(風月主人)되여셔라

(소나무와 대나무가 울창한 숲 속에서 자연을 즐기는 주인이 되어 있도다)

엊그제 겨을 지나 새 봄이 도라오니

(엊그제 겨울 지나 새 봄이 돌아오니 )

도화행화(桃花杏花)는 석양리(夕陽裏)예 퓌여 잇고

(복숭아꽃 살구꽃은 석양 속에 피어 있고)

녹양방초(綠楊芳草)는 세우중(細雨中)에 프르도다

(푸른 버드나무와 향기로운 풀은 가랑비가 내리는 가운데 푸르구나)

칼로 말아 낸가, 붓으로 그려 낸가

(‘하느님이 이 풍경을’) (칼로 재단해 내었는가? 붓으로 그려내었는가?)

조화신공(造化神功)이 물물(物物)마다 헌사롭다

(하느님의 신통한 재주가 사물마다 야단스럽구나)

수풀에 우는 새는 춘기(春氣)를 못내 계워 소리마다 교태(嬌態)로다

(숲 속에 우는 새는 봄기운을 끝내 이기지 못해 소리마다 교태를 부리는 모습이로구나)

물아일체(物我一體)어니, 흥(興) 이에 다를소냐

(사물과 내가 하나이거늘) (‘새와 나의’) (흥이 다르겠는가)

시비(柴扉)예 거러보고, 정자(亭子)애 안자보니

(사립문 주변 걸어보기도 하고 정자에 앉아보기도 하니)

소요음영(逍遙吟詠)하야 산일(山日)이 적적(寂寂)한데

(이리저리 거닐며 나직이 시를 읊조려보며, 산 속의 하루하루가 적적한데)

한중진미(閑中眞味)를 알 니 업시 호재로다.

(한가로움 속의 참된 즐거움을 아는 이 없이 나 혼자로구나)

이바 니웃드라 산수(山水) 구경 가쟈스라

(여보게 이웃 사람들아 산수 구경이나 가자꾸나)

답청(踏靑)으란 오늘 하고 욕기(浴沂)란 내일하새

(파릇한 봄풀 밟기는 오늘하고 냇물에 가서 목욕하는 일은 내일 하세)

아침에 채산(採山)하고 나조해 조수(釣水) 하새

(아침에는 산에서 나물을 캐고 저녁때는 낚시질하세)

갓 괴여 닉은 술을 갈건(葛巾)으로 밧타노코

(이제 막 발효하여 익은 술 갈포로 만든 두건으로 걸러놓고)

곳나모 가지 것거 수 노코 먹으리라.

(꽃나무 가지 꺾어서 잔 수를 세며 마시리라)

화풍(和風)이 건듯 부러 녹수(綠水)를 건너오니

(화창한 봄바람이 문득 불어 푸른 물결을 건너오니)

청향(淸香)은 잔에 지고 낙홍(落紅)은 옷새 진다

(맑은 향기는 술잔에 내리고 붉은 꽃잎은 옷에 떨어진다)

준중(樽中)이 뷔엿거든 날다려 알외여라

(술동이가 비었거든 나에게 알리어라)

소동(小童) 아해다려 주가(酒家)에 술을 믈어

(아이를 시켜 술집에 술이 있는지 물어서)

얼운은 막대 집고 아해는 술을 메고

(어른은 지팡이를 짚고 아이는 술동이를 메고)

미음완보(微吟緩步)하여 시냇가의 호자 안자

(나직이 읊조리며 천천히 걸어서 시냇가에 혼자 앉아)

명사(明沙) 조한 믈에 잔 시어 부어 들고 청류(淸流)를 굽어 보니

(맑은 모래 위로 흐르는 깨끗한 물에 잔을 씻어 부어 들고 맑은 시냇물을 굽어보니)

떠오나니 도화(桃花)ㅣ로다(떠내려 오는 것이 복숭아꽃이로구나 )

무릉(武陵)이 갓갑도다 져 메이 긘 거인고

(무릉도원이 가깝구나 저 산이 그것인가?)

송간(松間) 세로(細路)에 두견화를 부치 들고

(소나무 숲 사이로 난 오솔길에서 진달래꽃을 붙들고)

봉두(峰頭)에 급피 올나 구름 소긔 안자보니

(산봉우리 위에 급히 올라 구름 속에 앉아보니)

천촌만락(千村萬落)이 곳곳이 버려잇네

(수많은 시골마을이 여기저기 널려있네)

연하일휘(煙霞日輝)는 금수(錦繡)를 재폇는 듯

(안개와 이내 낀 노을과 빛나는 햇살은 수놓은 비단을 펼쳐놓은 듯하구나)

엊그제 검은 들이 봄빗도 유여할샤

(엊그제까지 거뭇거뭇하던 들판에 봄빛이 넘쳐흐르는구나)

공명(功名)도 날 끠우고 부귀(富貴)도 날 끠우니

(공로와 명예도 나를 꺼려하고 부귀도 나를 꺼려하니)

청풍명월(淸風明月) 외(外)예 엇던 벗이 잇사올고

(맑은 바람과 밝은 달 외에 그 어떤 벗이 있겠는가)

단표누항(簞瓢陋巷)에 흣튼 혜음 아니 하네

(누추한 곳에서 가난한 생활 하면서도 헛된 생각 아니 하네)

아모타 백년행락(百年行樂)이 이만한들 엇지하리

(아무튼 한평생 즐겁게 사는 일이 이만하면 족하지 않겠는가? )

 그러나 처음에 나는 이곳의 원주민인 여러 짐승들과 나무들과 풀들로부터 사전에 아무런 양해나 동 의도 받은 바 없이(나는 나와 똑같은 동물인 인간이 운영하고 있는 양평군청으로부터 건축허가를 받 았을 뿐이다) 내 마음대로 실개울 사이에 다리를 놓고 터를 닦고 집을 짓고 정원을 꾸며놓는 파렴치 한 짓을 저지른 것이다.

 내가 그것을 깨달았을 때는 이미 대자연의 일부가 잘 망가지고 난 뒤였다. 쓸쓸하게도 나는 이곳 대자연 속 가족들이 초대해 준 손님이 아니었다. 다만 나는 하나의 불청객, 초대받지 못한 무뢰한이었다.

 초대받지 못한 사람이 초대한 귀한 손님을 위해 청정지역인 이곳에서 농사지은 햅쌀을 잘 씻어 새로 밥을 짓고, 노오란 황태국, 돼지고기와 두부를 잘게 썰어 넣은 김치찌개, 양념이 잘 스며든 돼지갈비와 소갈비, 향기로운 참기름을 친 명란젓, 속살이 부드러운 달걀찜 등 그가 좋아하는 여러 가지 반찬들을 식탁 위에 정성껏 차려놓았다.

 오랜만에 나의 귀한 손님과 허심탄회한 마음으로 술 한 잔 나누기 위해 스코틀랜드산 위스키 한 병도 미리 준비했고 청하와 막걸리, 소주도 몇 병씩 준비해놓았다. 비장의 술인 69도짜리 증류주도 한 병 미리 준비해두었다.

 이 정도의 술이면 손님과 내가 밤새도록 시래기해장국처럼 따뜻한 한국말을 주고받으며 지구별 위로 흘러내리는 차디찬 이른 봄 달빛과 함께 흙으로 빚은 도자기 술잔을 수없이 기울일 수 있을 것이다.

 술잔과 술잔 맞부딪치는 소리가 창백한 형광들 불빛 아래 경쾌한 음악소리처럼 고요한 방안 가득히 울려 퍼질 것이다. 나는 나의 소중한 손님에게 그동안 쌓였던 수많은 이야기들을 생각나는 대로 솔직담백하게 털어놓을 것이다.

 그것은 때로는 내 개인 이야기, 때로는 손님 이야기, 때로는 이 세상에서 솟아나는 기쁨과 슬픔이 서려있는 여러 가지 이야기들이 될 것이다. 아마도 서로의 말과 말, 마음과 마음, 생각과 생각들이 따스한 입술을 향해 기울어지는 술잔과 함께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풍성하고 다채로워질 것이다.

 술이 거나하게 취할 때쯤 되면 마침내 손님과 나의 영혼이 하나가 될 것이다. 나는 손님이 하룻밤 묵을 방 출입문 위쪽에 걸려있는 외등을 하얗게 켜놓고 자작나무와 소나무, 단풍나무와, 이미 오래 전에 시들어버린 야생화 꽃잎들이 한데 어우러져 있는 정원 이곳저곳에 눈이 큰 외눈박이 등불을 몇 개 켜놓았다.

 출입구 쪽 자두나무 가지 위에 이리저리 늘어뜨려놓은 수백 개의 반짝이등도 지금 막 저 하늘에서 한꺼번에 쏟아져내려온 별들처럼 수없이 깜박거리기 시작했다.

 나무집 아래쪽 정원에는 세 그루의 키 큰 자작나무가 서있다. 저 낯선 불가해의 우주 속으로 몇 개씩의 기다란 가지를 펼쳐들고 곧고 높게 쭉쭉 뻗어오르고 있는 온몸이 창백한 자작나무들…!

 너무나 큰 키에 하얀 살갗, 가느다란 육신이 어쩐지 무척 고독해 보였다. 저것은 혹시 우리 인간들의 모습이 아닐까. 고고한 단독자들…! 창백한 자작나무들은 이 지구상의 모든 외롭고 쓸쓸한 존재들에게 말없이 악수를 청하듯 자신의 앙상한 가지들을 슬쩍슬쩍 내밀어주고 있었다.

 크고 작은 나무들과 싱싱한 잡초와 아름다운 야생화와 하얀 갈대들이 무성한 산자락에 길과 집터와 정원을 만드는 토목공사를 할 때, 이 고장의 작은 건설회사 사장과 여러 명의 굴삭기 기사들에게 몇 번씩이나 부탁해서 그나마 겨우 살아남게 된 세 그루의 자작나무! 그밖의 다른 나무들은 굴삭기에서 뿜어나오는 요란한 소음 속에 모두 다 공사 방해죄로 사정없이 처형당했다.

 아무 저항도 하지 못한 채 살갗의 일부가 송두리째 벗겨져나간 지구별의 속살은 그야말로 산 채로 가죽이 벗겨진 사람처럼 참혹했다. 다행히 살아남은 그 세 그루의 자작나무들은 이른 아침부터 저녁 무렵까지 계곡 가득히 울려 퍼지는 여러 대의 굴삭기 소리, 수많은 초목과 곤충, 또는 애벌레 같은 작은 생명체들의 소리없는 비명소리, 자신들의 집에서 쫓겨난 고라니, 토끼, 꿩 등의 피란살이 등 이곳 대자연의 수난사를 모두 다 말없이 지켜보았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두메산골 계곡 속에 한 채의 작은 나무집을 지어놓은 지구별의 한 사나이가 지금 대도시 서울에서 오고 있는 아름다운 손님을 기다리고 있는 중이다. 나는 방안에 혼자 우두커니 앉아서 하염없이 손님을 기다리기가 무료해서 문밖으로 나섰다. 아랫동네인 솔치마을에서 일당산 곰지기 계곡으로 올라오는 손님의 승용차가 불쑥 나타나게 될 긴 활처럼 휘어진 외길을 흘낏 바라보았다.

 그쪽은 환히 켜진 몇 개의 가로등 불빛 아래 그냥 터엉 비어 있었다. 다시 바라보고 조금 뒤 다시 바라보아도 길은 여전히 지구별 위에 드러누운 한 줄기의 적막한 공간이었다.

 나는 혹시라도 손님이 탄 승용차가 지금 막 저 굽어진 길을 돌아 나의 시야 속으로 홀연히 나타나주지 않을까 해서 문득문득 길쪽을 다시 바라보곤 했다. 그러나 여전히 손님이 탄 승용차는 보이지 않았다. 알몸으로 기다랗게 누워있는 길은 언젠가 자신의 육신 위로 지나갈 그 무엇인가를 나와 함께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는 중이다.

 6년 전 여름 황혼 무렵, 나이 어린 진돗개 ‘곰지’가 집을 나간 지 사흘만에 왼쪽 앞다리 발목에 걸려있는 무거운 쇠덫을 끌고 피를 흘리며 절뚝절뚝 집을 향해 돌아오던 저 비포장 흙길…!

 그 뜻밖의 기적 같은 상황에 아내와 나는 너무 놀라고 반가워서 갑자기 비명 소리를 지르며 ‘곰지’에게 달려갔다. 운동 삼아 돌아다니라고 어느 날 저녁 잠깐 풀어놓아준 뒤 행방이 묘연하다가 며칠 뒤 앞다리 발목에 걸려있는 덫을 질질 끌며 집으로 돌아오는 작은 진돗개 ‘곰지’…!

 ‘곰지’가 돌아오지 못한 사흘 동안 아내와 나는 아랫동네를 비롯해서 사방팔방으로 정신없이 찾아다녔으나 도무지 그 행방을 알 수가 없었다. 마침 사철탕(보신탕)이 잘 팔리는 여름철이라서 아마도 누군가가 잡아갔거나, 산 속에서 덩치 큰 멧돼지에게 물려 죽었거나, 짐승을 잡기 위해 사람들이 숲속에 놓아둔 독약을 먹고 죽었을 거라고 그저 막연히 짐작만 할 뿐이었다.

 낮에는 ‘곰지’를 개집에 묶어두었다가 밤이면 가끔 풀어주곤 했었다. 하루 종일 묶여있는 ‘곰지’에게 어두운 밤에라도 자유의 시간을 주자는 생각에서다. 목줄을 풀어주면 ‘곰지’는 잠시 그 자리에서 펄쩍펄쩍 기뻐 날뛰다가 순식간에 집 근처 숲속으로 사라져버리곤 했다.

 아침에 보면 어떤 때는 집으로 돌아온 ‘곰지’의 주둥이나 몸뚱이의 하얀 털 위에 붉은 피가 묻어 있었다. 이곳에는 오소리, 너구리, 멧돼지 등 수많은 짐승들이 사는데, 아마도 지난 밤 그 중의 어떤 동물과 싸움을 한 듯했다.

 ‘곰지’는 족보가 있는 진돗개 순종 암컷, 대단히 용감하고 전투적이었다. 아우 일수가 진도까지 직접 내려가서 사다준 두 마리 중 한 마리였다. ‘곰지’는 작은 강아지 시절에도 시베리아에서 눈썰매를 끄는 덩치가 사람만큼 큰 개인 말라뮤트의 목덜미를 물고 한참동안이나 대롱대롱 매달린 적도 있었다.

 그 어느 개보다도 귀소본능이 뛰어나다는 진돗개가 사흘 동안이나 집으로 돌아오지 않자 아내와 나는 ‘곰지’의 귀가를 거의 포기했었다. 그런데…만 사흘째 되는 이 해내림 무렵 너무나도 뜻밖에 저렇게 다리를 절뚝거리며, 피를 흘리며 죽지 않고 살아서 돌아오고 있지 않은가!

 아내와 나는 그만 감격에 겨워 피투성이 ‘곰지’를 끌어안고 어쩔 줄 몰라 했다. 양평읍 ‘개사랑’ 동물병원의 젊은 여자원장은 나직한 목소리로 말했다.

 “며칠 동안 덫에 치어서 피가 통하지 못해 앞다리 일부를 절단해야겠네요.” “예? 절단이요…? 다리를 자르지 않고 어떻게 치료가 될 수 없을까요?”

 그날 당장 입원시켜 수술을 하고 그 뒤에도 몇 달 동안이나 통원 치료를 받아서 ‘곰지’는 다행히도 다리 절단이란 최악의 상황만은 면할 수가 있었다. 그러나 결국 왼쪽 앞다리를 전처럼 제대로 쓰지 못하게 되어 늘 절뚝거렸다. 하지만 그나마도 천만다행이었다.

 지난번에 아내가 피에 젖은 ‘곰지’를 품에 안고 집으로 돌아올 때도 저쪽 지구별과 이쪽 지구별, 즉 저 세상과 이 나무집 사이에 지금처럼 작은 다리가 놓여 있었다. 다리 저쪽과 이쪽…! 다리를 다친 ‘곰지’가 하나의 다리를 통해 다시 지구별 이쪽으로 건너왔을 때, 그 다리는 평소와 달리 눈부시게 빛나는 듯했다.

 ‘곰지’가 죽을 고비를 넘기고 기적적으로 살아 돌아온 저 생명의 다리 위로 나의 귀한 손님도 이제 머지않아 한 사람의 초인처럼 건너올 것이다. 작은 나무집 정원에서는 이 시간 현재 나뿐만이 아니라 ‘곰지’와 자작나무, 소나무, 단풍나무를 비롯한 수많은 나무들과 아내가 만든 여러 가지 도자기 조형물들과 수많은 솟대와 도자기 식탁과 의자 등이 나와 함께 귀한 손님을 기다리고 있는 중이다.

 차디찬 바람이 날아와 아직은 앙상한 나뭇가지들을 휘감는 소리가 마치 쓸쓸한 나무가 불어대는 휘파람 소리같았다. 밤의 저 광활한 우주 속에서는 오늘도 변함없이 수많은 별들이 깜박이고 있었다. 그들도 지금 나의 손님을 기다리고 있는 중일까. 어쩌면 노쇠한 하느님도 내 곁에 서서 곧 이곳에 도착할 귀한 손님을 나와 함께 조용히 기다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아내는 딸네미의 딸인 어린 외손녀 서현이를 키우느라고 약 2년 전부터 서울 딸집에 가있는 중이다. 이번 주말 아내는 맞벌이부부인 딸과 사위의 바쁜 일정 때문에 이곳에 오지 못한다.

 나는 두 뺨과 귓불이 시려워서 잠시 집안으로 들어갔다. 나무식탁 위에는 여전히 여러 가지 맛있는 반찬들과 밥그릇, 국 그릇, 술병과 술잔 등이 손님이 올 때를 하염없이 기다리고 있었다.

 벽 위에 걸려있는 몇 개의 액자와 나무시계와 방바닥에 깔려있는 두툼한 방석들도 오늘 저녁식사의 주인공이 될 손님을 다소곳이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리모컨을 눌러 텔레비전을 켰다. 뉴스는 주말 이 시간 전국의 도로가 수많은 차량들로 가득 차서 일부 구간은 거의 주차장을 방불케 한다고 보도하고 있었다.

 바로 그때 문밖 저쪽에서 아주 경쾌한 자동차 경적 소리가 울려왔다. 아랫마을에서 휘어진 길목을 돌아 나무집을 향해 달려오는 승용차가 미리 경적을 울려준 것이다.

 나는 후딱 출입문을 열어젖혔다. 몇 개의 가로등 불빛 사이로 눈에 익은 베이지색 승용차 한 대가 전조등을 번쩍이며 작은 다리를 향해 달려오고 있었다.

 아아, 마침내 나의 가장 소중한 손님 중의 하나가 빠른 속도로 지금 이 순간 나에게 다가오고 있다!

 오늘은 저 귀한 손님의 생일날! 그렇다, 내가 어느 날 이 우주 속의 한 떠돌이별인 지구별로 초대한 아주 귀하고 귀한 손님, 나의 하나뿐인 외아들이 이제 막 작은 다리를 건너 내 앞으로 달려오고 있는 것이다.

 나는 손을 한 번 들어 보이고 나서 아들의 승용차가 나무집 아래 정원 주차장에 멈춰서기를 기다렸다. 이윽고 왼쪽 차문이 열리면서 친애하는 아들이 차에서 내렸다.

 “오느라고 수고 많았다. 길이 많이 막혔던 모양이구나.”

 “네, 좀 막혔어요.”

 나에게 가벼운 미소를 지으며 다가오는 아들이 오른쪽 다리를 절뚝거렸다.

 “아니, 다리 왜 그러니?”

 “네. 어제 사무실 빌딩에서 넘어져서 조금 다쳤어요.”

 “그래에…?”

 “며칠 지나면 괜찮을 거예요.”

 나는 가장 귀한 손님 중의 하나인 총각아들을 부축하고 정원 위쪽 나무집으로 이어진 여러 개의 나무계단을 천천히 조심스럽게 걸어올라가기 시작했다.

 ‘그렇구나, 내일이 입춘(立春)이다!’

 

 

- 2012/2/7일 06시 19분

대한민국 일당산 곰지기 계곡에서

 

 

정 성 수

서울 출생.

1994년 <예술세계>로 등단.

작품 <레스토랑> <소리의 뿌리> <아내의 재롱> <결혼하는 법> 등.

 

 

- <한국소설> 4월호 (2012 한국소설가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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