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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드아이
2012-02-03 16:55:12
sws60

조회:868
추천:71

(단편) 오드 아이

신외숙

 

 

아귀의 배를 가르던 주방장 정씨가 말했다.

“아따 이 놈 좀 보소, 배 안에서 이것들이 다 나온다요.”

가까이 가 보니 과연 아귀의 뱃속은 희한했다. 조기가 여러 마리가 나오고 새우 붕어도 보였다. 그것도 통째로, 아귀는 그 큰 입으로 물고기를 씹지도 않고 통째로 먹어 치운 것이다. 아귀가 허연 배때기를 내밀고 정씨의 손에 의해 낱낱에 짓이겨지고 있었다. 조선족인 강씨 아주머니는 머리를 떼 낸 콩나물을 끓는 물에 데쳐 커다란 바구니에 받쳐 놓았다.

짙은 안개처럼 수증기가 주방 안에 가득했다. 식기 세척기 앞에는 쌓아올린 식판이 아슬아슬하게 버티고 있는 중이었다. 걸음을 옮기는데 발밑이 미끈했다. 타일 바닥에 물이 질펀하게 흘러내리고 있었다. 오븐에는 고등어가 역한 냄새를 풍기며 익어가고 삼겹살 냄새까지 가세해 당장이라도 토할 것만 같았다.

한쪽에선 방금 떡집에서 배달해온 떡을 보기 좋게 접시에 담고 있었다. 마카로니 샐러드와 생선초밥도 케이스에 담겨져 포장되고 있었다. 오늘 출장 뷔페는 세 군데다. 회사 개업식과 야외 출장 뷔페에다 교회 다과회다. 모두 바쁜 손길을 움직이는데 여기저기서 고함이 터진다.

“야! 모두들 빨리 빨리 서둘러, 비가 와서 차가 밀릴지 모르니까 더 빨리 서둘러야 해, 김부장 세팅 준비 완료됐겠지?”

“걱정 마쇼, 준비는 어제 다 끝내 놨음다.”

냉동 탑차에 기물을 옮기던 한실장이 소리쳤다.

“핫 디시 한 개가 안 보여요, 메칠 알코올도 안 보이고.”

“말로만 하지 말고 빨리 빨리 챙겨 넣어.”

“방금 전까지 본 것 같은데 이게 발이 달렸나 어디로 갔지?”

커다란 다라니에는 콩나물과 아귀가 한데 어우러져 한참 익어가는 중이었다. 향긋한 미나리 향기가 진동을 했다. 오늘 같이 바쁜 날은 모두 신경이 칼끝처럼 예민해져 불평불만과 함께 짜증이 나기 마련이다. 출장 뷔페의 관건은 음식 맛과 철저한 시간 약속이다. 그 두 가지를 잘 해내기 위해선 숙련된 솜씨와 함께 적시에 음식이 도착해야 한다.

음식과 기물을 가득 실은 탑차 한 대가 드디어 출발했다. 안산까지 가려면 빨리 서둘러야 한다. 하늘을 보니 금방이라도 비가 쏟아질 것만 같다. 아까부터 발을 동동 구르며 창고와 주방 사이를 오가던 한실장이 드디어 볼멘 소리를 했다.

“핫 디시 핫 디시 한 개가 안 보여.”

“잘 찾아보라니까 그게 발이 달렸어 손이 달렸어?”

“아! 이제야 생각났다. 지난번 용산에 출장 나갔을 때 빼놓고 온 거 같아, 나갈 땐 분명 네 개였는데 돌아와서 보니까 세 개였잖아.”

“아니 그걸 지금 말이라고 하는 거야? 기물을 제때 제때 챙겨야지 일이 차질이 안 생기지.”

“이게 바로 다 직원이 자주 바뀌기 때문에 생겨나는 현상이라구.”

주방에서 제일 고참인 찬모 채씨의 말이다. 외식업체의 직원들은 유난히 자주 바뀐다. 주로 팀으로 움직이는데 워낙 일이 중노동에다 걸핏하면 싸우고 결근하는 바람에 일에 차질을 빚기 때문이다. 잦은 폭음과 무절제한 삶은 윤리기준마저 무너져 재혼인 경우가 수두룩하다. 주방 안에서 남녀 조리사들이 서로 눈 맞아 가정이 깨지는 경우가 흔하고 아예 이혼하고 혼자 사는 경우도 많다.

이혼남들은 술 중독 증세를 나타내는 경우가 많다. 처자식 떠나 보내고 혼자 남은 그들은 일과 후 술 친구와 딍굴다 툭하면 결근하고 그러다 보면 어느새 백수가 된다. 개중에는 신용불량자가 되거나 일용직이 되어 여기저기 기웃거린다.

식기세척기에서 자욱한 김이 뜨거운 열기와 함께 뿜어져 나오고 있다. 땀이 목덜미를 타고 등줄기를 적시고 있었다. 서둘러 주방을 빠져 나오는데 허리가 휘청했다. 무거운 것을 옮기느라 허리가 삐끗한 것이다.

아웅!

담장 밑을 돌아서는데 고양이 소리가 났다. 몸집이 제법 큰 흰색 고양이였다. 털이 짧은 걸로 보아 길고양이가 틀림없었다. 자세히 보니 고양이 눈 색깔이 달랐다. 왼쪽은 노랑색인데 오른쪽은 하늘색이었다. 오드아이 고양이였다.

“나비야ㅡ 예쁘게 생긴 냥이구나.”

고양이는 나를 보더니 두 발을 들고 똑바로 섰다. 그러더니 아웅! 하고 다시 한번 소리를 냈다. 배가 고픈 모양이었다. 얼른 가게로 달려가 통조림 한통을 사왔다. 고양이는 이미 뒷걸음질 쳐 주차장 쪽으로 가고 있었다.

“나비야.”

통조림통을 들어 보이자 고양이는 힐끔 나를 쳐다보더니 그 자리에 섰다. “나비야, 이거.”

급한 마음에 서둘러 캔을 따는데 어느사이엔가 고양이가 담장 위로 올라섰다. 냄새를 맡더니 캬오! 괴성을 지르며 먹기 시작했다. 그러자 어느 틈에 나타났는지 다른 고양이들도 나타나 합류했다. 하얀 고양이는 어느 정도 먹자 싸우지 않고 순순히 물러났다. 검은 고양이 노랑 고양이도 통조림통에 고개를 박더니 먹기 시작했다. 통조림통은 금세 바닥이 났다.

다음 날 담장 위에 조그만 플라스틱 물통을 갖다 놓았다. 고양이들이 와서 마실 물이었다. 먹이는 고양이들이 나타나면 줄 작정이었다. 주방에서는 잔반통에 음식 쓰레기가 잔뜩 쌓이고 있었다. 그 중에 고기만을 따로 건져내 비닐종이에 넣고는 재빠르게 주방을 빠져 나왔다.

담장 위에 고양이가 보였다. 이번에는 노랑 고양이었다.

“나비야 오늘은 혼자 왔구나, 조그만 기다려 밥 줄게.”

누가 볼세라 얼른 비닐을 담장 밑으로 던져 주었다. 잠시 후에 보니 노랑 고양이는 입맛을 다시고 있고 하얀 고양이가 비닐에 쌓인 고기를 핥고 있었다. 앞발로 비닐을 헤쳐가며 고기를 먹더니 노랑 고양이와 함께 주차장 쪽으로 걸어갔다. 내게는 고맙다는 말 한마디 없이. 하긴 고양이가 무슨 의사 표현을 할 수 있겠는가.

언젠가 TV에서 오드아이 고양이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기억이 난다. 원산지가 중동 지방인 오드아이는 희귀종으로 보호대상이라고 했다. 대부분 수입산으로 보통 2백만원을 호가한다. 짐작컨대 녀석도 처음부터 수입산이었거나 아니면 원 주인이 중동으로 여행 갔다가 사온 고양이가 틀림없었다.

그런데 녀석은 언제부터 길고양이로 전락할 걸까. 나는 호기심에 녀석을 자세히 들여다 보았다. 녀석은 다른 길냥이와는 달리 성격도 온순하고 차분해 보였다. 먹이를 던져주면 얌전히 다가와 먹고는 이내 사라졌다. 그런데 어느날인가부터 녀석에게 동행이 생기기 시작했다. 바로 며칠 전에 보았던 노랑 고양이였다.

어쩌면 녀석들은 처음부터 부부사이였는지 모른다. 녀석들은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먹이를 먹으러 나타났다. 그런데 이상한 건 먹이를 아무리 많이 던져줘도 노랑 고양이가 항상 먼저 먹는 것이었다. 노랑 고양이가 식사를 마치고 나면 그제서야 오드아이가 식사를 시작했다.

“나비야 물도 먹어.”

내가 플라스틱 물통을 손으로 툭툭 치면 녀석들은 본체만체 하고는 주차장 쪽으로 걸어갔다. 그러나 가끔씩 담장 위로 나타나는 걸로 보아 물도 마시는 게 틀림없었다. 물이 바닥을 드러낼 만큼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오드아이 부부만 나타났는데 갈수록 식구가 늘기 시작했다.

온 동네 고양이들에게 소문이 퍼진 모양이다. 까만 고양이 얼룩이 고양이 갈색 고양이, 얼마 전에 새끼를 낳은 코에 얼룩이 진 검정 고양이까지. 나는 시간만 나면 고양이들에게 먹이를 갖다 주며 친근감을 표시했다. 세상에 말 못하는 짐승처럼 불쌍한 존재는 없을 테니까.

 

30년 전, 강원도 동부전선 최북단 초등학교에 근무할 때의 일이다. 학교에서 잡무를 하는 정씨가 있었다. 나이는 36세, 깡마른 체격에 눈빛이 날카로운 생긴 모습 그대로 성질머리가 사나웠다. 아들만 셋인 그에게는 12살이나 어린 띠동갑 아내가 있었다. 얼굴이 항상 부어 있는 그녀는 입만 열면 자기 고생담을 늘어놓는 게 취미였다.

돈을 벌기 위해 안 해본 일이 없다는 그녀는 인생 전체가 막장 드라마 같았다. 16살이란 어린 나이에 집에서 일하는 머슴과 야반도주한 것도 그렇고 남편에게 두들겨 맞으면서도 끝내 집을 나가지 않는 것도 어쩌면 그녀의 기막힌 팔자소관이었다. 입만 열면 돈! 돈!을 외치는 그녀는 돈을 위해서라면 못 할게 없는 양심마저도 저버리는 도덕 불감증자였다.

사람들은 그녀에게 이제라도 늦지 않으니 남편 버리고 멀리 도망가서 살라는 말을 곧잘 했다. 물론 농담 반 진담 반이지만 그만큼 그녀의 삶은 혹독하고 거칠었다. 사람들은 그녀의 이야기를 듣는 체하다가 돌아서기가 무섭게 험담을 늘어놓았다. 인생 막장 드라마 못지 않게 양심 또한 무디고 변형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일례로 그녀는 무엇이든 한번 빌려가면 되돌려 주는 일이 없었다. 급전은 물론 사소한 연장이나 살림도구, 하다 못해 연탄 한 장 빌려간 것도 갚지 않았다.

그건 그녀의 살아가는 방법이자 습관이었다. 갚을 능력이 없어서가 아니라 일부러 안 갚는 것이다. 그걸 그녀는 순간의 이익으로 치부했다. 그건 남편 정씨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신혼 초기에는 자기가 버는 돈은 오직 자신만을 위해 썼다. 아내에게 한푼의 생활비도 주지 않았다. 따라서 그녀는 스스로 벌어 써야 했는데 그 방법이 기가 막혔다.

그때나 지금이나 배운 것 없고 별다른 재주 없는 사람이 하는 일이란 게 뻔했다.

남의 집살이부터 시작해서 공사장 막일, 시장터에서 잡일과 바쁜 농사철에 품팔기, 남의 집 애 보기, 등 안 해 본 일이 없었다. 그 중 가장 서러운 건 어린 나이에 공사장에서 하는 막일이었다. 그녀는 거친 남자들 틈 속에서 막일하면서도 남편에 대한 공대만큼은 끔찍했었노라고 자신있게 말했다.

술만 마셨다 하면 여자를 개패듯 하는 정씨는 띠동갑인 아내를 만나기 전부터 여자편력이 화려했다. 배운 것 없고 근본이 천한 그에게 한가지 가진 게 있다면 그것은 바로 반듯한 외모였다. 거기에다 한가지 덧붙일 게 있다면 머리회전이 비교적 빠른 눈치 9단인 점이었다. 그게 바로 그녀를 남편에게 붙들어 준 셈이었다.

나이가 24살밖에 안 된 그녀에게 3명의 아들이 있었는데 8살 6살 3살이었다. 그걸 두고 정씨는 남의 집에 줘 버릴 딸은 결코 키워서는 안 된다는 말하곤 했다. 그러나 가끔씩은 딸 하나쯤 두었더라면 하고 후회하는 말을 하곤 했다.

“선생님 저는 지랄병 말고 안 해본 짓 없어요, 얼마나 고생을 했는지 제 이 손 좀 보세요, 허물이 벗어져 지문이 안 찍혀요, 제가 주민등록 하려고 면사무소에 갔는데 직원이 제 손을 보더니 기겁을 하는 거예요, 지문이 안 보인다면서.”

그렇게 말하는 그녀의 얼굴 위로 어둠이 스쳐 지나갔다. 자세히 보니 이마와 귀 안쪽에 시퍼런 멍자국이 보였다. 그것을 가리기 위해 얼마나 화운데이션을 덕지덕지 처발랐는지 드라마에 나오는 귀신형상 같았다. 그녀는 가끔씩 내게 신세한탄을 하다가도 남편이 들어오는 기척이 보이면 소스라치게 놀라며 뒤로 물러났다.

“저러고도 남편과 헤어지지 않으니 참 딱한 인생도 다 있다.”

나는 속으로 실소를 금치 못했다. 해동을 하고 봄 햇살이 내리쪼이자 그들에게 변화가 일어났다. 살고 있는 집을 개조해 음식점을 한다는 것이다. 집 평수만 넓다뿐이지 거의 폐가나 다름없는 집이었다. 당시만 해도 농촌에는 폐가가 많았다. 집이 팔리지 않자 그냥 버려두고 대도시로 떠나는 농민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그중 꽤 평수가 나가는 집을 헐값으로 사들인 정씨 부부가 드디어 리모델링에 나선 것이다. 원래부터 막일과 집 개보수하는 것이 전문인 정씨는 인부 하나 들이지 않고 일을 진행하기로 했다. 읍내에서 모래와 시멘트, 타일 등 각종 자재를 들여오고 내부공사는 아내와 함께 직접 하기로 했다.

우선 그들은 안방과 마루를 허물어 음식점 홀로 사용하기로 했다. 곡괭이와 도끼로 구들장을 깨고 돌을 골라낸 다음, 바닥을 평평하게 한 뒤 모래와 시멘트를 바를 작정이었다. 구들장을 깨자 뻘건 황토흙이 먼지를 뽀얗게 뒤집어쓰고 일어났다. 정씨가 곡괭이로 바닥을 깨면 아내도 옆에서 거들었다.

어릴 때부터 막노동으로 굳어진 아내는 못할 일이 없었다. 힘들어도 내색 한 번 않고 씩씩하게 일을 해냈다. 이제 20대 중반에 들어선 그녀의 정신연령은 사오십 대를 넘어서고 있었다. 수건을 머리에 쓰고서 그 많은 먼지 다 마셔가며 억척스럽게 일을 했다. 힘이 장사였다. 그 작은 체구에서 어떻게 그런 힘이 나오는지 신기할 정도였다.

새벽부터 시작해 밤 12시가 넘을 때까지 지치지도 않고 일을 했다. 일하는 짬짬이 남편의 간식과 식사에도 정성을 다했다. 시멘트와 모래를 섞고 그것을 바닥에 바르고 타일을 붙이는 일도 척척 해냈다. 이미 공사판에서 굳은 솜씨였다. 간단한 몸빼를 걸쳐 입은 그녀는 시계나 장신구 하나 없었다.

그럴 돈 있으면 남편의 옷가지 하나라도 더해 주는 게 소원이었다. 동네에서 점포를 하는 이장에게서 빌린 리어카로 자재를 직접 실어 나르고 사다리 타고 올라가 못을 박거나 물받이 공사도 직접 했다. 일에 관한 한 무서울 게 없는 그녀였다. 결혼 이후 잠을 4시간 이상 자본 일이 없다는 그녀는 어린 나이에 당차도 너무 당찼다.

시일이 흐름에 따라 집은 가게로 변신해 갔다. 처음에는 유리창이 달린 출입문이 들어서더니 며칠 안 가 제법 쓸만한 홀이 보였다. 또 안으로는 살림방 겸 손님 접대용 온돌방이 있었다. 주방도 꽤 널찍하고 필요한 주방도구도 갖추어 나갔다. 페인트칠도 직접 하고 제법 반듯하게 모양이 갖추자 개업기념 세일 행사를 하기에 이르렀다.

인부 한사람 안 쓰고 순전히 부부의 힘만으로 리모델링 된 식당이었다. 그녀는 손님이 한꺼번에 들이닥치기 전에는 절대로 도우미 한명 쓰지 않았다. 모든 일을 혼자 해내면서 겨울철에는 하숙도 쳤다. 돈에 관한 한 부부가 한통속이었고 자린고비도 그런 자린고비가 없었다. 그렇게 개고생을 하는데도 정씨는 수시로 아내를 두들겨 패고 못된 짓을 일삼았다. 그녀는 온몸에 피멍이 들고 피를 됫박으로 흘려도 다음날이면 아픈 몸을 이끌고 남편에게 식사 공대를 했다.

그걸 정씨는 늘 자랑삼아 이야기했다.

언젠가 그 식당에 들렀을 때의 일이다. 정씨가 아내를 향해 “이 병신아.”하고 막말을 하는 것이었다. 남편이 나가고 나자 그녀는 내게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내 나이 열 여섯에 저 사람에게 시집왔어요, 저를 유독히도 싫어한 아버지가 중학교를 보내주지 않아 어디 도시로 가서 공장살이라도 할까 생각하는데 내보내 주질 않는 거예요.”

“동생들도 중학교에 안 갔나요?”

“여동생은 나이 스무 살에 동네 총각에게 시집가고 남동생만 읍내에 있는 중학교에 들어갔어요. 다행히 여동생 남편은 성품이 착하고 좋아요, 그나마 다행이죠.”

“일을 적당히 하지 왜 그렇게 힘들게 무리하면서까지 해요, 그러다 탈나면 누구 손핸데.”

“전 친정집에 있을 때도 집안 일이건 농사일이건 가리지 않고 했어요, 그런데도 아버지가 절 미워해서 엄마와 늘 싸우는 거예요, 그래서 결심했어요, 엄마와 아버지가 싸우지 않고 사는 길은 내가 빨리 시집가는 길밖에 없다.”

저런 멍청이 같으니라구,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성질 못된 머슴하고 바람날 게 뭐람. 그것도 그 어린 나이에.

나는 속으로 기가 막혀 실소했다.

“제 바로 밑에 여동생은 지금 읍내에 사는데 남편이 불 안 때주면 밥 못 하는 줄 알아요, 그래 저 사람은 늘 입버릇처럼 말해요, 처제는 개패듯 두들겨 맞아야 한다고, 제 여동생은 처녀 때도 친구들 불러들여 맛있는 거 해먹고 놀았어요, 전 죽어라 일만 하고, 전 일하지 않고 가만히 있으면 불안해서 못 견뎌요. 또 어디선가 불호령이 떨어질 것 같아서요.”

그녀는 일 중독증에다 강박증세가 첨가되고 있었다. 그렇다고 그녀가 마냥 착하거나 자신을 전혀 돌보지 않는 것도 아니었다. 식당 일을 하면서부터 화장도 짙게 하고 옷매무새도 달라졌다. 가끔씩 동네 여자들과 어울려 술판도 벌이고 노래도 구성지게 불러 제쳤다. 그녀가 부르는 노랫소리가 밤공기를 타고 내 방까지 들려올 정도였다.

정씨는 제일 나이 어린 평교사인 내게는 물론 남자교사와도 자주 언쟁을 벌였다. 어린 나이부터 객지를 떠돌며 생활한 그에게 남은 건 거친 성격과 야비한 인격뿐이었다. 늘 피해의식에 찌들어 남에게 해코지나 하는 그에게 충성의 대상이 있다면 바로 교장선생이었다. 그가 어떻게 교장의 눈에 들었는지 그건 일체 아무도 모르는 기밀사항이었다.

믿기진 않지만, 정씨가 고향을 떠나온 건 열 살쯤이었다고 한다.

고향은 그곳에서 천리나 떨어진 충청도 두메산골이었다. 무슨 사연이 있길래 그 어린 나이에 고향을 떠나왔느냐는 말에 그는 버스 타고 왔지 어떻게 와? 하며 동문서답을 했다. 아무리 본 데 없이 자라고 산전수전 다 겪고 살았다 해도 그의 인간성은 형편없이 망가져 있었다. 양심은 어디다 팔아먹었는지 돈 관계에 있어서 늘 눈 가리고 아웅식으로 일관했다. 그나마 옛날에 비하면 많이 나아진 편이었다.

툭하면 동네사람들과 싸움판을 벌이고 그런 날이면 집에 들어가 아내에게 온갖 분풀이를 다 했다. 그런데도 아들 셋은 두 눈 멀뚱멀뚱 뜨고 구경만 했다. 늘상 보아온 광경이라 그런지 말릴 생각도 안 했다. 아이들이 커가자 정신이 들었는지 월급봉투만큼은 아내에게 일임했다.

개과천선한 셈이다. 그녀는 감지덕지했다. 어릴 때부터 일관된 학대에 시달려온 그녀는 피할 생각은 엄두도 내지 못했다. 친부로부터도 학대 당하고 결혼해서는 남편으로부터 지속적으로 폭행에 시달린 그녀는 술만 마셨다 하면 눈물바람이 되었다.

“그래도 요즘은 많이 나아진 게 저래요, 옛날에는 먹을 게 있어도 혼자만 먹고 마누라가 밥을 먹었는지 굶었는지 통 관심이 없었어요, 요즘은 밖에 나갔다 들어올 때면 가끔씩 먹을 것도 사오고 제 화장품도 사들고 와요.”

저 여자는 저런 걸 행복이라고 생각하는 걸까. 나는 한심하고 기가 막혀 멍하니 쳐다봤다. 그녀는 읍내 중학교에 다니는 남동생이 찾아오면 먹을 것에다 용돈에다 정성을 쏟았다. 생김새가 자신을 꼭 빼어 닮아 더 사랑스럽고 애착이 간다는 것이었다. 자신은 발걸음도 디밀지 못한 중학교를 다니는 동생이 너무도 자랑스럽고 좋다고 했다.

그런데도 남동생은 그녀에게 한번도 누나라고 부르지 않았다. 오히려 막대 놓고 무시하고 하대했다. 친부가 누나에게 한 그대로 재연하는 것이었다. 그녀는 결혼해 친정을 떠나온 이후에도 여전히 찬밥신세였다. 그러나 친정에 일이 생기면 제일 먼저 달려갔다. 남편 몰래 꼬불쳐 놓았던 쌈짓돈도 아낌없이 내놓았다.

남편이 알면 맞아 죽을 게 뻔한 데도. 마음 한 구석에서는 집안의 장녀로서 인정받고 싶은 모양이었다. 어린 나이에 시집 와 아들 셋 낳아주고 온갖 고생하는 그녀를 두고 동네 사람들은 툭하면 입방아를 찧어댔다.

‘서방 복 없는 년은 자식 복도 없다던데 차라리 자식들 버려두고 멀리 도망가서 살지, 나이도 젊겠다 반듯한 남자 만나 팔자 고치는 게 백번 낫지, 아암 낫고 말고. 나 같으면 그렇게 하겠다. 나이 서른도 안 된 여자가 뭐가 아쉬워 저런 불한당 같은 놈을 서방이라고 붙들고 사냐.’

하긴 정씨도 술만 취하면 말했다.

“저런 등신, 차라리 도망가지 않고서. 나 같으면 백번은 더 도망갔겠다.”

못 된 인간이 한줄기 양심은 있었던 모양이다. 사람들이 흔히 하는 말이 있다. 팔자 사나운 여자는 평생 죽도록 고생만 하다가 살만 하면 병들어 죽는다는…….

정씨는 식당 문을 열자 태도가 다소 누그러지는 듯했다. 직원들의 회식이 있을 때마다 이용했기 때문이다. 수입이 쏠쏠해지자 그 못된 버릇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고기를 시키면 다른 음식점의 절반 정도만 내놓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오히려 큰소리 쳤다. 그는 말문이 막히거나 곤란해지면 무조건 거친 욕설부터 내쏟았다. 상대가 윗사람이건 처음 보는 사람이건 상관하지 않았다.

화가 난 직원들이 다음부턴 정씨의 음식점을 이용하지 않기로 작정했다. 오만불손한데다 갈수록 기고만장이었다. 그러자 그는 제일 만만한 내게 성질을 부리고 난장을 피웠다. 야수같은 눈빛을 번득이며 나중에는 욕설까지 퍼붓는 것이었다. 생각 같아서는 같이 욕설을 퍼붓고 싶었지만 참았다. 아무리 돼먹지 않은 인간일지라도 나보다 12살이나 많았다.

대신 나는 그를 유일하게 감싸고도는 교장에게 다가가 마지막 하직 인사를 했다. 저런 인간과는 도저히 한 직장에서 근무를 못하겠으니 사표를 쓰겠다고 했다.

그 사건이 아니더라도 나는 평상시에 그를 인간 이하로 생각하고 있었다. 저런 건 인간이 아니고 짐승 이하다. 인격파탄자에다 인간말종이며 사탄의 하수인이다. 사람의 탈을 쓴 사탄은 바로 정씨를 두고 하는 말일 게다. 그 사탄의 가장 큰 피해자는 그의 아내이며 또한 세상에서 가장 멍청하고 불행한 여자도 그의 아내일 것이다. 나는 혼자 판단하고 정죄하고 결론 내렸다.

그런 무의식적인 생각이 그에게 전달된 모양이다. 그는 툭하면 내게 시비를 붙고 야유를 퍼부었다. 최소한의 양심이나 기본적인 예의도 없이. 그런 그에게도 예외의 구석이 있었다.

언젠가 읍내에 나갔을 때의 일이다. 혼자 장터 구경을 하며 돌아다니는데 길 모퉁이에서웩웩거리며 토악질 하는 사람이 보였다. 언듯 보니 사나운 몰골이 정씨였다. 어디서 또 사람들과 대판 붙은 모양이었다. 홧김에 술을 잔뜩 처먹고 토악질을 해대는 꼴이라니 멀리서 봐도 꼭 마귀 형상 같았다.

그런데 잠시 후 돌발사태가 벌어졌다. 어디서 나타났는지 새끼 고양이 한마리가 정씨 곁으로 조심조심 다가갔다. 야옹 대며 다가오는 고양이를 정씨는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바라봤다. 야수와 같은 눈빛은 회심의 미소마저 머금고 있었다. 이제 고양이는 죽은 목숨이나 다름없었다. 그는 분명 주먹으로 고양이를 내리치거나 아님 멀리 던져버릴지 몰랐다. 얼른 달려가서 구해 주어야 할 텐데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런데 다음 순간 믿기지 않는 장면이 벌어졌다. 정씨가 비칠거리는 걸음으로 근처 가게로 달려가더니 생선통조림을 사들고 나타난 것이다. 그가 떨리는 손가락으로 캔을 따더니 고양이에게 내밀었다.

고양이가 정신없이 먹기 시작했다.

그는 잠시 정신 나간 눈빛으로 고양이를 바라보더니 끄윽끄윽 눈물을 토해내며 울었다. 그러더니 나중에는 시장 바닥이 떠나가라 대성통곡을 했다.

“나비야 니 신세가 어릴 때 내 모습과 꼭 같구나, 나비야 나비야.”

전혀 믿기지 않는 장면이었다. 그는 한손으로 고양이의 등을 쓰다듬더니 끄억끄억 울면서 자리에서 일어나 걸어갔다. 그의 이율배반적인 양면성과 어울리지 않는 고양이 사랑이 한동안 의문부호로 떠올랐다.

그곳을 떠나온 뒤 30년이란 세월이 간단없이 흘러갔다. 한동안 무기력 상태에서 지내다 자살을 생각한 적도 있었고 취직이 안돼 골몰하다 미치기 일보직전까지 간 적도 있었다. 그러다 도박하는 심정으로 친척이 중매해 준 남자와 웨딩마치를 올렸다. 사랑이니 운명이니 하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어차피 결혼은 일종의 도박이라 생각했다. 그런 흐리멍덩한 생각으로 한 결혼이 제대로 굴러갈 리 만무했다. 남편은 정씨 못지않게 폭군이었고 그보다 더 잔인한 건 처음부터 내게 애정이 없었다는 사실이다. 첫날밤부터 사랑하는 여자가 있었노라고 고백한 그는 나를 아예 남의 여자 취급하듯 했다.

그렇다면 왜 나랑 결혼했느냐고 하니까 전직 교사 출신인 것이 마음에 들었고 부모님의 성화가 빗발쳤기 때문이란다. 참 별 말도 안 되는 결혼조건 때문에 나만 피를 본 셈이다. 자식이 태어나자 최소한의 생활비만 던져주고는 아예 집에 들어오지 않는 날도 흔했다. 옛 사랑을 찾아 헤매는지 아님 또 다른 여자를 만나 사랑에 빠졌는지 알 수 없었다.

그것도 견딜만했다. 차라리 안 보고 사는 게 때론 편할 테니까. 어쩌다 나타나는 남편은 내게 이혼을 제의하며 각각 제 갈 길을 가는 게 어떻겠냐며 속에 불을 질렀다. 그렇지 않아도 친정은 파산을 당해 길거리에 나앉을 판이었다. 아무 데도 갈 곳 없는 내 처지를 두고 일부러 약이나 올리자는 심사가 분명했다.

“천하에 죽일놈 같으니 늙고 병들면 반드시 복수해 주겠다.”

나는 속으로 이를 갈면서 말했다. 나는 이혼해 줄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그랬다간 날개 달고 훨훨 날아가 어떤 년의 치마끈 붙잡고 늘어지고 말 테니까. 어쩌면 남편은 정씨보다 더한 인간말종인지도 모른다. 정씨는 주먹은 휘둘렀어도 딴 여자를 보거나 생활비를 축내진 않았었다.

정씨에게 향했던 그 악담과 저주가 남편에게 고스란히 쏟아지고 있었다. 얼굴에 새까맣게 기미가 끼고 화병으로 가슴이 바작바작 타들어 가는 나날이 지속되었다. 어쩌다 한번씩 나타나는 남편은 빨랫감과 함께 아이들의 학자금을 내놓고는 휭하니 사라졌다. 그 뒷모습을 바라보자면 만감이 교차했다.

그 기막힌 감정 속에 욕구가 남아 있었던 모양이다. 미움과 분노가 거셀수록 위로받고 싶은 일말의 자존심 같은 것…….

그 욕구가 자존심 끝에 서서 자꾸만 나를 충동질하고 있었다. 언젠가는 나를 한번 봐주겠지 언젠가는…… 그 기대는 어느새 남편으로부터 사랑과 연민의 눈길을 간절히 원하고 있었다. 감정은 배반의 물꼬를 타고 한없이 타올랐다.

그것만이 무너진 내 자존심을 회복하는 길이라는 엉뚱한 생각도 가슴 한구석을 타고 올라왔다. 그건 버림받은 여자의 최후 발악이자 욕구였다. 그가 단 한번만이라도 나를 돌아봐준다면 모든 걸 다 덮어주고 용서하고 싶은 게 솔직한 내 심정이었다.

참 더럽고도 치사한 게 정이라더니…… 그런데 남편에겐 없는 그 정이라는 게 왜 내게는 있었을까. 참 이해할 수 없는 노릇이다.

어느날인가부터 남편이 외국 출장에 오르기 시작했다. 집에서는 폭군 노릇을 해도 밖에서는 꽤나 인정받는 눈치였다. 날로 승승장구하더니 어느날인가부터 외국 출장을 뻔질나게 떠났다. 모종의 함수가 숨어 있는 게 틀림없었다. 언듯 들은 소문으로는 첫사랑인 여자가 외국에 살고 있다고 했다. 그녀가 홀몸인지 유부녀인지 그건 알 수 없었다.

처음에는 자식들과 연락을 주고받는 눈치더니 얼마 안 가 연락이 뚝 끊겼다. 가끔씩 부쳐오던 돈줄도 마저 끊겼다. 그래도 아이들한테 만큼은 아빠로서의 의무를 다하는 남편이었는데 무슨 일이 발생한 걸까. 불안이 의심과 함께 날마다 상상력으로 떠올랐다. 납치냐 실종이냐 단어를 두고 한동안 고민하기도 했다. 혹여 헤어진 첫사랑의 여인을 만난 건 아닌가, 소설을 써 대기도 했다.

그런데 소설이 현실화 될 줄이야. 그토록 뻔질나게 외국출장을 다니더니만 드디어 옛 연인과 재회했다는 것이다. 그는 그 사실을 동료에게 통보하며 엉엉 울었다고 한다. 너무 기쁘고 행복해서. 처자식의 안부는 안중에도 없었고 오직 그 여인만이 소중해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고 한다. 물론 생활비 한 푼 보내오지 않았다.

지칠 대로 지친 나는 그나마 붙잡고 있던 모든 감정의 끈을 놓아버렸다. 그리고 지긋지긋한 전쟁을 끝내는 마음으로 그가 내민 이혼서류에 흔쾌히 도장을 찍어 주었다. 그는 위자료 몫으로 집 한 채를 내 이름으로 등기해 주며 말했다.

“당신도 이제 새 출발해야지 지난 일은 다 잊고서, 물론 아이들도 제 갈 길로 가야겠지.”

마치 남의 이야기하듯 말하는 그에게 마지막으로 힘주어 말했다.

“만약 신이 살아 계신다면 너도 언젠간 나처럼 당할 날이 꼭 올 것이다.”

그 말에 그는 잠시 당혹하는 느낌이었다. 잠시 공포의 빛이 흐르더니 여유있게 말했다.

“그래 당신도 이젠 행복해져야지.”

“웃기고 자빠졌네. 심은 대로 거둔다고 내 말 꼭 명심해라.”

그러나 그 말은 끝내 내뱉지 못했다.

아들은 아르바이트로 간신히 대학을 졸업했고 졸업과 동시에 외국에 취업을 해 떠나갔다. 그곳에 헤어진 옛 여자가 기다리고 있다고 했다.

씨도둑은 못한다고 하는 짓거리가 제 아빠와 꼭 같았다. 다른 점이 있다면 엄마에게 재혼을 권유하며 약간의 생활비를 부쳐 오는 것이었다. 떠난 지 2년쯤 되었을 때, 아들은 시민권을 획득했다며 소식을 알려왔다. 옛 여자와는 어찌 되었는지 유력한 집안의 교포 처녀와 사귀는 중이라 했다. 그 쪽 부모도 좋아하는 눈치라며 곧 귀국해 선을 보이겠다고 했다.

딸 아이는 다니던 대학을 중퇴하고 말았다. 말로는 공부가 취미 없다고 하는데 눈치를 보아하니 남자에게 채인 것 같았다. 이래저래 다 귀찮으니 돈이나 열심히 벌어서 세계여행이나 다니겠다고 했다. 제 아빠를 꼭 빼어 닮은 딸은 성정이 불같고 뚱뚱하고 못생긴 편이었다. 처음 만난 남자친구가 배용준을 닮았다며 그렇게 좋아하더니 연애를 시작하기도 전에 채인 것이다.

이런 나의 처지를 두고 대학 동기 중 하나가 말했다. 인생 막장 드라마가 따로 없군. 나는 속으로 말했다. 너도 나처럼 똑같이 인생 막장 드라마나 쓰고 살아라.

어느날 심심해서 인터넷 사이트에 들어갔다가 무료학습이란 코너를 보게 되었다.

인터넷 상으로 자격증을 취득할 수 있는 코너였다. 공인중개사와 조리사 면허증을 학원비 한푼 안 들이고, 순전히 인터넷 동영상 학습을 통해서 딸 수 있는 것이었다. 나는 매일 눈알이 빨갛도록 컴퓨터 화면을 들여다보며 공부했다. 젊은 시절, 교사 자격증을 따기 위해 공부했을 때와는 또 달랐다. 이상한 열기가 내 전신을 휘감고 있었다.

내친 김에 그래픽 디자인에도 도전했다. 물론 수업료는 공짜였다. 구청 홈페이지에 들어가면 사이버 교육란이 있었다. 포토샵, 일러스트레이터, 프리미어, 플라쉬, 파워포인트, 엑셀, 스위시 등 종류도 많았다. 나는 공짜라는 말에 그 많은 과목을 모두 시청하기로 마음 먹었다.

그러나 얼마 안 가 그 결심은 무너지고 말았다. 전 달에 따두었던 한식조리사 자격증으로 취직이 된 것이다. 분당에 있는 출장뷔페 전문음식점이었다. 주방장은 30대 중반의 강원도 남자로 한식 중식 서양 요리사 자격증을 구비한 실력파였다. 다소 입이 거칠어서 그렇지 그의 솜씨는 그야말로 신출귀몰했다. 손놀림이 어찌나 빠른지 옆에서 지켜봐도 신기할 정도였다. 과일 하나를 깎아도 모양이 예술이었다.

음식이 아니라 작품을 만들어내는 것 같았다. 간단한 재료 몇 가지를 가지고 화려한 음식꽃밭을 연출했다. 대형 가마솥 앞에서 땀을 뻘뻘 흘리며 일할 때는 전사(戰士) 같았고 크래커에다 각종 문양을 놓을 때면 탁월한 예술가 같았다. 음식 솜씨도 솜씨지만 그는 특히 데커레이션을 잘했다.

그 밑에서 일하는 부주방장은 튀김요리가 특기였다. 돈가스 생선가스 탕수육을 만들 때면 그는 신명이 나 일했다. 요리사라해서 모든 음식을 다 잘하는 건 아니었다.

각자 특기가 있었다. 나는 한식 중에서도 궁중요리를 잘했다. 온도를 맞추고 모양과 색깔을 잘 냈다. 성수기엔 몸이 두 조각이 나는 것처럼 힘들었다. 하루에 500명도 넘는 음식을 할 때도 있었다. 일은 해도 해도 끝이 나지 않았다. 대충 끝마쳤는가 싶으면 어느 샌가 산더미 같은 일거리가 기다리고 있었다.

조리사들 대부분이 만성적인 비염과 관절염에 시달리고 있었다. 비염은 가스불 맡고 일하느라 생긴 직업병이고 관절염은 무거운 걸 자주 들고 일하느라 생긴 병이다. 그렇게 힘든 중노동을 하면서도 그들은 일 자체를 즐기고 있었다. 일종의 사명의식이었다.

자신들이 만든 음식을 고객들이 맛있게 먹어주는 것을 최고의 기쁨과 보람으로 여겼다. 식객들로부터 맛있다는 칭찬을 들으면 아무리 힘들어도 행복한 미소가 저절로 나왔다. 그리고 또다시 요리라는 환상의 도가니에 빠지는 것이다.

요리사로 변신한 이후부터 나는 점점 일중독자로 변해갔다. 온몸의 뼈마디가 쑤시고 아파도 병원 대신 일터로 향했다. 어느날 조리실 거울에 비친 얼굴을 본 나는 기겁했다. 거기엔 다름 아닌 정씨 아내의 모습이 보였기 때문이다. 퉁퉁 부은 얼굴에 공포에 질린 모습이…… 그런데 나이는 중년이 넘어 칼주름이 가득했다.

내가 그토록 경멸하고 경멸하던 모습이 내게 임했구나.

가슴이 무너져 내리는 것 같았다. 그녀가 남편에게 매 맞고 힘든 식당 일 할 때마다 얼마나 그녀와 정씨를 비웃고 야유했던가. 온갖 끔찍한 단어를 다 갖다 대면서 못 배운 것들은 할 수 없다고 얼마나 조롱했던가. 특히 정씨 아내를 두고 일 중독증에다 남편에게 학대받아 신경정신과 치료를 해야 한다고 공공연히 말하지 않았던가.

그녀에게 나타났던 증상이 내게 똑같이 리바이벌 되고 있었다. 강박증에다 극심한 피해의식까지. 최근 들어 새로 추가된 증상은 신경과민이었다. 사소한 일을 두고 과도한 상상을 하면서 노이로제 증상마저 나타났다. 감옥이 따로 없었다.

일이 끝나면 조리사들은 제각기 흩어진다. 애인 만나는 사람. 자식들에게 달려가는 사람. 술 친구를 만나 술독에 빠지는 사람.

내게도 어느새 그런 모임들이 만들어져 갔다. 주방에서 같이 일하는 중국 요리사 하씨였다. 내가 유독 그녀를 하씨라 지칭하는 40대의 나이에 여적 미혼이기 때문이다. 그녀는 주방 식구 중 유일하게 학사 출신이었다. 지방 국립대학을 나온 그녀는 찬모치고 학력이 꽤 높은 케이스였다. 내가 2년제 교대를 나왔다면 그녀는 엄연히 학사증을 지닌 재원인 셈이다. 어쩌다 이 바닥에 들어서게 되었냐고 물었을 때 그녀의 대답은 의외였다.

“어릴 때부터 요리하는 걸 엄청 좋아했어요, 꼬마 때 아빠 따라서 짜장면 먹으로 갔다가 맛에 반해 결국 요리사가 되었어요, 덕분에 밥은 먹고 살잖아요.”

그러나 내면은 달랐다.

어릴 때 양아버지에게 쫓겨나 고아원을 전전하다 우연히 독지가를 만나 대학까지 졸업하게 되었다. 그때 짜장면을 사 준 사람이 바로 그 독지가였다. 하씨의 인생은 그야말로 파란만장했다. 지방대학 출신이란 이유로 취직이 안 돼 결국 어릴 때부터 꿈꾸어 온 요리사가 된 것까진 좋았는데, 결혼은 아무리 노력을 해도 되지가 않더라는 것이다. 이유는 고아출신이었다.

근본도 모르는 여자를 집안에 들일 수 없다며 남자 측 부모들이 끝까지 반대했던 것이다. 처음에는 너밖에 없다던 남자도 얼마 안 가 돌아서고 끝내는 버림받았다.

노랑 고양이와 오드아이 고양이는 부부였다. 둘은 늘 같이 나타나는데 아지트가 바로 집 처마 밑에 있는 허름한 공간이었다. 부부 고양이는 점심 때와 저녁 식사시간이 되면 어김없이 나타나 내가 던져주는 먹이를 먹고는 사라졌다. 내가 자주 먹이를 주자 최소한의 경계심마저 없어져 가끔씩 애교를 부리기까지 했다. 내가 나비야! 하고 부르면 야옹! 하고 땅바닥을 뒹굴며 친근감을 표시했다. 부부 고양이는 순하고 성묘(成苗)임에도 생긴 모습도 귀여웠다.

어느날이었다. 담장 밑으로 두 부부 고양이가 보였다. 양지바른 곳 스티로폴 위에서 나란히 누워 해바라기를 하고 있었다. 내가 던져준 먹이를 먹고는 서로를 꼭 품에 안고서. 서로 팔을 돌려 안고는 가끔씩 얼굴을 비비며 뽀뽀도 했다. 얼마나 금슬이 좋은지 웃음이 절로 났다.

아! 말 못하는 짐승도 저렇게 사랑을 하는구나.

직원들은 화장실을 갈 때마다 고양이 부부를 보며 흐뭇해했다. 사람보다 낫지. 주방장은 웃으며 말했다. 어떤 날은 공원 풀숲가에서 부부 고양이가 서로 꼭 끌어안은 채 바람을 맞고 있는 모습도 보였다. 조금이라고 추위를 피해 보려고 털을 꼭 붙인 채로.

봄이 지나고 여름이 다 되갈 무렵이었다. 고양이들이 살고 있는 아지트 옆으로 하얀 진도견 남매가 이사 왔다. 이사 온 것까지는 좋은데 고양이 부부를 따라다니며 못살게 구는 것이었다. 더구나 진도견은 고양이 부부가 사는 아지트와 판자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었다. 그런데 그보다 더 큰 일이 벌어졌다.

집 주인이 고양이가 아지트로 들어가는 입구 부분을 공구로 제거해버린 것이다. 고양이는 담장 위에 서서 아지트로 들어가기 위해 애를 썼지만 결국엔 포기하고 말았다. 그리고 주변에서 모습을 감추고 말았다. 아무리 찾아도 고양이 부부는 나타나지 않았다. 먹이를 던져줘도 다른 고양이들이 나타나 먹을 뿐 그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부부 고양이가 사라지고 난 어느날인가부터 검정색 고양이가 담장 위로 나타났다.

얼마 전 새끼들과 함께 온 동네를 돌아다니며 시끄럽게 했던 고양이였다. 폐 자재가 모여 있는 조그만 틈바구니 속에서 새끼를 키우던 어미 고양이는 사람들의 시선을 느끼자 아지트를 옮겨 버렸다. 여러 잡동사니가 모여 있는 지저분하기 짝이 없는 틈바구니 속에서 새끼를 키우는데 일이 벌어진 것이다.

먹잇감을 구하기 위해 어미가 외출한 사이 새끼 고양이가 온종일 어미를 찾으며 울어대는 것이었다. 소리 나는 곳으로 가 보았더니 어른 주먹 크기만한 새끼 고양이가 폐자재를 쌓아 놓은 틈바구니 속에서 애처롭게 울고 있었다. 어찌나 울어대는지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았다. 혹시나 외국에 가 있는 내 자식들도 저런 모습을 하고 있는 건 아닐까 순간적으로 두려움이 몰려왔다.

한참 후에 폐자재가 모인 쪽으로 가보니 어미 고양이가 새끼 곁을 지키고 있었다. 자세히 보았더니 생선 조각 하나가 새끼 옆에 떨어져 있었다. 그것을 구하기 위해 어미는 얼마나 많이 수고하며 돌아다녔을까. 그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새끼는 생선조각을 발로 차면서 놀고 있었다.

내가 계속 쳐다보자 어떤 위험을 느꼈을까. 지붕 위로 휙 날아가 버렸다. 다음날이었다. 다시 그곳을 가 보았다. 이번에는 어미가 새끼에게 젖을 물려주고 있었다. 어미 고양이는 새끼에게 젖을 물려주면서 잔뜩 경계의 시선을 내세우고 있었다. 그 모습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숙연함마저 느껴졌다.

“찬모님, 고양이 엄청 좋아하시나봐요?”

언제 나왔는지 주방장 정씨가 말했다.

“네 좋아해요, 저희 친정 가족이 다 고양이를 좋아하는 편이에요.”

“저희 아버지도 살아 계실 때 고양이를 엄청 예뻐하셨어요, 어릴 때 당신 모습과 비슷하다면서요, 젊었을 땐 그렇게 엄마를 때리시고 그러시더니 죽을 때가 되니까 울면서 회개하더라요. 아마도 겁이 났었나 봐요.”

“뭐가요?”

“저희 엄마가 평소에 그러셨거든요, 이 다음에 늙고 병들면 갖다 버린다고.”

“그래서요?”

“죽을 때가 된 걸 본인도 안 거죠, 눈물로 용서를 빌더니 죽기 전, 엄마 따라 교회에 나가셨어요, 죽더라도 천국은 가고 싶다며.”

정씨는 눈시울을 적시며 말했다.

갑자기 내 안에서 쾅! 하며 폭발음이 들리는 것 같았다. 남편과 이혼 도장을 찍으며 하던 말이 생각났다.

“만약 신이 살아 계신다면 너도 언젠간 나처럼 당할 날이 꼭 올 것이다.”

그 망할 인간도 정씨 아버지처럼 콱! 죽어버려야 할 텐데. 그래서 그 새 아내로부터 버림받거나 지옥행 열차를 둘이 함께 타거나 해야 할 텐데. 생각지도 않았던 악담이 속에서 떠올랐다.

“망할 자식”

“네?”

정씨가 놀란 눈빛으로 물었다.

“네?”

나는 덩달아 놀라 정씨 눈을 바라보았다. 방금 내 입에서 나온 말이 무엇인지 순간적으로 생각나지 않았다.

“제가 방금 뭐라고 했나요?”

정씨의 얼굴에 곤혹스런 빛이 떠올랐다. 저 여자 지금 제정신이야? 하는 표정이었다.

“아버님 돌아가신 후 어머님 반응은 어떠셨나요? 많이 슬퍼하셨나요?”

“네 많이 우셨어요, 평생 속 썩이고 못되게 굴더니 죽을 때 돼서야 사람구실 했다며 한동안 우울해 하셨어요.”

“주방장님 고향은 어딘가요?”

“제 고향은 강원도 두메산골…….”그때였다. 갑자기 핸드폰이 찌르르 울렸다. 진동모드 탓인지 전기에 감전된 것처럼 온몸에 전해졌다. 몸을 움칠하자 정씨가 말했다.

“전화왔나봐요, 어서 받아 보세요, 혹시 애들 아빠인지 모르잖아요.”

받을까말까 망설이다 액정화면을 보았다. 국제전화였다. 무슨 일일까. 아이들에게 무슨 일이 발생한 걸까? 불안한 마음 한편으론 이상한 기대감도 몰려왔다.

“여보세요?”

“엄마 나예요, 형식이.”

“그래, 형식아 엄마다 잘 지내지?”

“네 엄마 그보다도.”

아들은 잠시 망설이는 것 같았다. “왜 그래? 무슨 일 있는 거냐?”

“그게 아니고 아빠께서…….”

“뭐? 뭐라구?”

순간 불길한 예감이 악감정과 함께 가슴에 전해왔다. 슬픔. 분노. 절망. 수치감. 상처. 모멸감 등 수많은 감정의 대명사가 떠오르면서 숨이 콱 막히는 것 같았다. 이혼한 지도 벌써 여러 해가 흘러가고 있었다. 이제 와 새삼스레 남편에 관한 어떤 소식도 듣고 싶지 않았다.

“형식아, 엄마 지금 바쁘거든 나중에 들으면 안 될까?”

“엄마 아빠가 쓰러지셨어요, 뇌출혈이에요. 쓰러지기 전날 제게 전화해서 엄마에게 미안하다고 죽을 죄를 지었다고…… 그 여자와는 이미 오래 전에 헤어지셨대요, 엄마 듣고 계세요?”

갑자기 손마디에서 힘이 빠지더니 수화기가 저절로 바닥에 떨어졌다. 아들이 방금 무슨 말을 했는지 머릿속이 진공상태가 된 것처럼 전혀 생각나지 않았다.

핸드폰을 집으려고 허리를 구부리는데 정씨가 말했다.

“전 내일 이곳을 그만둡니다. 고향으로 가기로 했어요, 어머니와 함께 고향 근처에서 음식점을 하기로 했거든요. 찬모님도 생각나시면 놀러 오세요, 요즘은 고속도로가 개통돼 3시간이면 도착한답니다.”

나는 그가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지 또다시 멍멍했다. 다만 마지막 한마디만 귀에 남았다.

“제 고향은 38선 지나 동부전선 최북단입니다. 저희 부모님이 그곳 초등학교 근처에서 음식점을 하셨어요, 지금은 엄청 개발돼…….

바람이 무섭게 불고 있었다. 내일 떠난다는 정씨는 사장과 몇 마디 이야기를 나누더니 곧바로 주방을 빠져 나갔다. 그의 뒷 모습을 바라보는데 갑자기 울음이 왈칵 쏟아졌다. 30년 전 기억이 한꺼번에 떠오르면서 설움이 북받친 것이다. 떠나는 주방장을 배웅하기 위해 나가는데 또다시 핸드폰이 울렸다. 아들이었다.

나는 순간 핸드폰의 배터리를 빼서 멀리 던져 버렸다. 그때 내 마음속에 들려오는 수많은 음성이 있었다. 그건 고통에 대해 절규하는 원한에 찬 음성이었다. 나는 그 소리들을 향해 무어라 자꾸만 부정하며 귀를 틀어막았다.

정씨는 내가 곁에 다가가는 데도 주차해 놓은 자동차에 오르더니 그냥 떠나버렸다. 갑자기 주변이 텅 빈 공간처럼 느껴졌다. 허무감이 말할 수 없는 통증과 함께 가슴속으로 몰려 왔다. 그때였다 어디선가 날카로운 고양이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야웅! 아아웅!."

오드 아이였다.

"나비야!"

반가움에 눈물부터 왈칵 쏟아졌다. 세상에…… 사라진 지 꼭 6개월만의 일이었다. 그런데 웬일인지 오드아이는 혼자였다. 전에는 남편인 노랑 고양이와 함께 나타나곤 했었는데 그새 무슨 일이 생긴 걸까?

"나비야, 노랑 고양이는 어쩌고 혼자 온 건데?"

오드아이는 애처로운 눈빛으로 야웅! 하며 소리를 내지르더니 앞발을 들고 똑바로 섰다. 배 고프다는 표시였다.

"그래 나비야 잠시만 기다려 먹을 것 좀 갖다 줄께."

오드아이는 바짝 말라 있었다. 노랑 고양이는 아마도 죽은 모양이었다. 아지트를 쫓겨난 두 고양이가 먹이를 찾아 헤매다가 변고를 만난 게 틀림없었다. 가슴이 너무 아팠다. 주방에 가 냉장고를 뒤져 보니 고등어 튀김과 삼겹살이 보였다. 얼른 비닐 봉지를 꺼내 담았다.

주머니에 넣고 돌아서는데 출입구 쪽에서 인기척이 났다. 큰 몸체가 사장이었다.

"좀 전에 두었던 도시락 샘플 못 보았소?"

"네, 제가 찾아 드릴께요."

다리가 사시나무 떨리듯 마구 흔들렸다. 도둑질도 아무나 하는 게 아닌가 보다. 나는 선반 위에 놓인 도시락 샘플을 사장에게 내밀었다.

"여기 있습니다."

"그런데 혼자 여기서 뭐하는 거요?"

사장이 의심스런 눈초리로 물었다.

"아! 네? 배가 고파서 먹을 게 있나 하고요."

"식사 한 지 얼마나 되었다고…."

사장이 못마땅한 눈초리로 돌아섰다. 가슴속에서 쿵쾅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비닐 봉지를 가운 안에 숨기고 주방을 빠져 나왔다. 몇번이나 주변을 살펴 본 뒤 담장 밑으로 다가갔다.

"나비야!"

그 사이 오드아이는 사라지고 없었다. 근 6개월 만에 본 고양이었는데, 섭섭한 마음이 서러움과 함께 몰려왔다.

"나비야! 나비야!"

"거 거기서 뭐하는 거요?"사장이었다. 그가 의심에 찬 눈빛으로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당황과 곤혹스러움에 가슴이 와들와들 떨렸다. 사장은 유난히 고양이를 싫어했다. 만일  자기 몰래 고양이에게 먹이를 준 것을 안다면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몰랐다.

"저, 사장님  그게 아니고요."

사장이 뭔가를 말하려다가 움칠했다. 순간 핸드폰 벨소리가 났다. 사장이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 들더니 사무실 쪽으로 걸어갔다. 휴유! 안심이다. 돌아서려는데 담 밑에서 소리가 났다. 아웅! 어느새 나타났는지 오드아이였다. 이번에는 두 마리였다. 노랑이와 함께였다. 먹이를 줄 상대가 나타난 걸 안 오드아이가 제 남편인 노랑이와 함께 나타난 것이다. 눈물이 났다.

나는 두 고양이 부부를 향해 비닐에 싸인 먹이를 힘껏 던져 주었다.

배가 고픈 고양이 부부는 정신없이 먹기 시작했다. 내친 김에 근처에 있는 편의점으로 달려가 생선 통조림을 사왔다. 캔을 따자마자 아직도 먹느라 정신없는 고양이 부부에게 던져 주었다. 야웅! 고양이 부부는 고맙다는 듯 두 발을 올리더니 또다시 먹기 시작했다.

6개월 만에 나타난 고양이 부부의 사랑이 내 가슴에 뭉클한 감동을 전하고 있었다. 돌아서는데 눈물이 가슴 한복판을 적시고 있었다.   

어느날, 길거리를 지나는데 착시현상이 일었다. 거리의 건물과 사람들의 면면이 30년 전 객지와 꼭 같았다. 어디선가 노랫소리가 들려오는데 7080 노래 ‘나 어떡해’였다. 내가 객지에 있을 때 카셋트를 틀어놓고 신나게 듣던 노래였다.

“나 어떡해 너 갑자기 가버리면 나 어떡해 너를 잃고 살아갈까, 나 어떡해 나를 두고 떠나가면 그건 안돼 정말 안돼 가지 마라 다정했던 네가 상냥했던 네가 그럴 수 있나 다정했던 네가……”

입속으로 흥얼거리는데 누군가 내 곁을 지나며 말했다.

“네 입에 말로 네가 굴레 씌웠으며.”

양심의 뜨거운 바람이 엄청난 속도로 몰려오더니 내 가슴 속을 훑고 지나갔다. 작은 미련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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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D : reverend1    
2012-08-09    
21:47:52    
신 작가님, 글이 아주 맛있어요. 얼굴이 궁금했는데 사진으로 보니 참 반갑습니다. 늘 묵향 짙은 글로 감동을 주시고 건필하시기를 빕니다. 주인공 이름이 제 이름과 동일하군요. 고맙습니다. 연락 주시면 냉면 한 그릇 대접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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