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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란초가 맺어준 사랑/ 정연균
2008-06-07 13:58:11
dusrbs0324

조회:3360
추천:188

 

때는 서기 400년경.

가락국이라는 나라에 진진이라는 한 청년이 살고 있었다.

진진은 평소 성격이 호방한지라 여행을 무척이나 좋아 했다. 그런 그에게 가락국은 아무래도 좁아 보일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하루는 꽤 긴 여정으로 길을 나서기로 마음먹고 차비를 채려 가락국을 떠났다. 걷고 또 걷다보니 육십령을 넘어 무주를 지나 어느새 백제 땅 부여까지 오게 되었다.

백제는 어진 임금님이 나라를 잘 다스려서인지 거리의 백성들 모두가 표정이 매우 밝아보였다.

진진의 발 아래로 넓은 강물이 굽이치며 흐르고 있었다. 바로 백마강이었다. 진진은 좀 더 높은 곳에 올라 강줄기를 바라보기 위해 부소산으로 향했다. 과연 부소산에서 내려다보는 백마강은 한 폭의 그림처럼 아름다웠다.

바위에 걸터앉은 진진은 유유히 흐르는 강물을 바라보며 이런저런 생각에 잠겨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있었다.


바로 그때였다.

"누구 안 계세요? 저 좀 도와주세요!"

갑자기 진진의 귀에 여자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진진이 벌떡 일어나 소리가 나는 쪽으로 달려갔다. 그런데 그 곳에는 한 낭자가 바닥에 앉은 채 달달 떨고 있는 것이었다. 자세히 보니 커다란 뱀이 고개를 쳐들고는 낭자를 향해 혀를 날름거리며 금방이라도 공격할 기세였다.

진진은 놀란 나머지 아무 막대기가 집어들고는 낭자 앞을 막아섰다. 그리고는 뱀을 향해 눈을 부라리며 소리를 쳤다.

“네 이놈! 곱게 썩 물러가지 못 할까?”

그러자 뱀이 고개를 슬그머니 내리고는 바위틈으로 스르르 사라져 버렸다.

"하마터면 큰 일 당할 뻔 했습니다."

진진이 낭자의 팔을 잡아 일으켜 세우며 말했다.

"정말 고맙습니다."

낭자가 얼굴을 붉히며 가볍게 고개를 숙였다. 

바위 아래는 맑은 물이 고여 있었고 자그마한 물동이도 보였다. 아마도 낭자는 약수를 떠기 위해 온 모양이었다.

그런데 진진의 눈에 암만해도 낭자의 모습이 예사로이 보이지를 않았다. 옷도 일반인들의 옷과는 사뭇 달랐고 얼굴의 자태도 그지없이 고왔다.

"이 은혜를 어찌 갚아야 하올런지요?"

낭자가 진진을 바라보며 낭랑한 목소리로 말했다.

"뭐, 이만한 일로 은혜랄 것까지야... 그러시다면 그냥 물이나 한 바가지 주시지요."

진진이 호탕하게 웃으며 낭자에게 물 한 모금을 청했다. 낭자는 조롱박에 물을 뜨고는 바위틈의 풀잎 하나를 따 물위에 띄어 진진에게 건네주었다. 그 풀잎은 처음 보는 풀잎이었다. 또 풀잎을 띄어주는 연유도 궁금했다.

"이 고란초는 여기에서만 자라는 신비로운 풀이랍니다. 예전부터 이 약수에 고란초를 띄워 물을 마시면 소원도 이루어지고 또 늙지 않고 오래오래 산다는 전설이 전해져 오고 있지요."

낭자의 설명을 듣고 보니 물맛이 더욱 좋은 것 같았다.

진진과 낭자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백마강이 내려다보이는 기슭으로 걸어가 바위에 나란히 걸터앉았다.


서로 대화를 나누다보니 낭자는 바로 백제국 임금님의 딸 옥단공주였다. 효성이 지극한 옥단은 날마다 이 곳 약수터로 와서는 물을 긷고 고란초를 뜯어 아버지인 임금님께 드리고 있었던 것이다.

"저랑 궁으로 함께 들어가시지요. 아버님께 이 사실을 꼭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진진은 처음에 웃으며 사양했지만 워낙 옥단의 뜻이 확고한지라 함께 궁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옥단에게서 모든 이야기를 전해들은 임금님은 크게 기뻐하며 진진에게 공주를 호위하는 직책을 내려 주었다. 진진도 비록 여행이라는 처음의 목적이 있었지만 아리따운 옥단 공주를 늘 곁에서 지킬 수 있다는 마음에 임금님의 뜻을 흔쾌히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날 이후로 옥단이 약수터로 갈 때는 항상 진진이 함께 붙어 다녔다. 자연히 옥단과 진진은 고란초를 띄운 약수를 매일 마시게 되었다.

이렇게 해서 백제 사람이 된 진진은 각종 무술대회에서 일등을 하며 점점 벼슬이 높아져 갔다. 그리고 옥단과의 사랑도 하루가 다르게 깊어지기 시작했다. 

임금님도 옥단공주와 진진이 서로 사랑하는 것을 진작부터 알고 있었다. 그래서 두 사람을 결혼 시켜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마침내 두 사람은 궁중과 나라 안 모든 백성들의 축복을 받으며 부부의 연을 맺기에 이르렀다.


하루는 일본국에서 몇 사람이 건너와 백제국의 임금님 뵙기를 청했다.

"무슨 일인고?"

임금님이 일본국에서 온 사람들에게 물었다.

"일찍이 이곳 백제가 황제의 나라임을 알고 있나이다. 해서 저희 일본국에 왕 한 분을 내려 주셨으면 합니다만."

일본국 사람들이 머리를 조아리며 청하는 내용이었다.

"우리가 그대들의 나라에 왕을 내려 달라?"

"예, 그래만 주신다면 저희 일본국은 영원히 백제를 주인나라로 섬기며 모시겠나이다."

임금님은 누굴 보낼까 곰곰 생각에 잠겼다.

그러자 바로 그때

"아버님, 저희들을 일본국으로 보내 주십시오."

하며 나선 것은 바로 옥단 공주와 진진이었다.

옥단은 비록 여자지만 총명하고 마음이 넓어 왕이 되기에 부족함이 없는 여걸이었다. 그래서 임금님은 기꺼이 옥단과 진진의 청을 받아들이기로 마음 먹고 승낙을 내렸다. 

"좋다, 그럼 일본으로 건너가서 훌륭한 정치를 한번 펼쳐 보도록 하려므나."

“예, 아버님 고맙습니다.”

두 사람이 기쁜 얼굴로 왕에게 머리를 숙였다.


드디어 옥단과 진진은 백제의 여러 기술자들을 데리고 일본국으로 건너가게 되었다.

일본국에는 여러 부족장은 있었지만 아직 왕의 존재가 없었다. 그래서 진진은 우선 부족장회의를 열어 옥단공주를 일본국의 여왕으로 추대를 하였다. 부족장들도 크게 기뻐하며 만세삼창을 불렀다.

그리고 백제의 기술자들에게는 백제 사람들이 입는 옷을 그대로 만들어 일본 사람들에게 입히도록 권하고 음식도 백제식으로 만들어 먹게 하였다.

그렇게 얼마가 지나서부터 전혀 질서라곤 없던 나라가 서서히 안정을 찾아가기 시작 했다. 여왕이 된 옥단은 백성들을 위하는 정치를 펴 존경을 한몸에 받았다. 물론 진진도 옆에서 열심히 정사를 도왔다.

이때부터 일본국은 백제를 어버이 나라로 섬기게 되었으며 그 전통은 오래도록 유지가 되었다. 또한 진진과 옥단은 나라를 다스리면서도 항상 서로를 아껴주고 사랑하는 마음을 잠시도 잃지 않았다. 그리고 두 사람은 아주 오래도록 잉꼬처럼 살다가 한 날 한 시에 똑같이 눈을 감았다.

후세 사람들은 옥단과 진진의 끝없는 사랑이 아마도 고란초를 띄운 약수를 마시며 마음속으로 염원한 소원이 이루어진 것이 아니었을까 그렇게들 굳게 믿고 있었다. <끝>

 

dusrbs0324.egloo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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