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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귀향
2008-07-10 16:17:42
hskim4030

조회:1922
추천:115

                                                                                                  어떤 귀향歸鄕
                                                                                                                                                             김  학  섭

전철봉 사장의 승용차가 멈춘 곳은 아파트 공사 현장의 작은 공터였다. 처음 이곳은 숲으로 둘러싸여 볼품없는 땅이었으나 작년 봄부터 개발 이야기가 오고가더니 어느 날부터 땅을 파는 굴착기가 모여들어 밤낮없이 땅을 파기 시작했다. 며칠 새 숲으로 둘러싸인 야트막한 산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밋밋한 평지가 만들어 졌다. 그런 다음 각종 중장비기 모여들어 철골을 땅에 박고 인부들은 개미같이 하루 종일 뿌연 먼지 속에서 시멘트를 운반하고 철골을 나르느라 북새통을 이루었다. 이십 오층 아파트가 올라가는 우림건설 작업현장의 모습이었다.
이 층에서 작업을 독려하던 작업반장이 검은 승용차를 발견하고 허겁지겁 달려가더니 승용차가 멈추자 허리를 반쯤 구부리고 문이 열릴 때까지 서 있었다. 뿌연 먼지가 가라앉기를 기다려 운전수가 밖으로 나와 차 뒷문을 열어 주자 금테 안경을 눈에 걸친 신사복 차림의 전철봉 사장이 천천히 내려와 주위를 살펴보았다. 머리는 하얗게 서리가 내려 상노인처럼 보였지만 얼굴은 아직도 팽팽했다. 전철봉 사장은 최근에 하루에 한번씩 작업현장에 시찰을 나왔다. 하필 그 시간에 철골을 운반하던 김봉두가 이층 계단에서 굴러 떨어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전철봉 사장이 보는 앞에서 사고가 터진 것은 작업반장에게는 지독하게 재수 없는 날이었다.
“저런 개새끼!”
작업반장의 입에서 대번에 욕설이 튀어나왔다. 이를 본 전철봉 사장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사망사고는 회사 이미지뿐만 아니라 경제적인 손실도 크기 때문에 건설회사마다 첫 번째도, 두 번째도, 세 번째도 무사고를 부르짖지만 공사 현장에는 언제나 크고 작은 사고가 끊이지 않고 일어났다. 전철봉 사장이 보는 앞에서 사고가 터지자 작업반장은 화가 치밀었다. 욕설을 퍼붓던 작업반장은 마치 자기 책임이 아니라는 듯 변명을 늘어놓았다.
“인력시장에서 온 놈이라 일에 익숙하지 않아서 그렇습니다. 앞으로는 절대 이런 사고가 없도록 주의 시키겠습니다.”
“우리 회사는 십년 째 무사고라는 사실을 명심하게.”
전철봉 사장의 점잖은 목소리가 작업반장의 몸을 움츠리게 했다.
“알겠습니다.”
“현장에서 일어나는 사고는 현장 책임자의 안전 불감증 때문이라는 사실도 명심하고.”
“앞으로는 단단히 주의 하겠습니다.”
작업반장은 여전히 장황한 변명을 늘어놓았다.
“놈의 말로는 회사가 부도가 나서 이런 일을 하러 나왔다고 하는 데 이런 곳에 오는 놈치고 자기의 신분을 제대로 밝히는 놈이 있습니까? 무슨 좋지 못한 사정이 있겠지요. 고향이 정선 어디라고 했는데. 촌놈 같은 새끼!”
그 이야기를 듣고 있던 전철봉 사장이 흠칫 놀라는 얼굴을 했다.
“정선?”
그러고 보니 전철봉 사장이 고향에 다녀 온지도 까마득했다. 특별한 볼일이 없으면 일부러 고향에 다녀오기란 힘이 들었다.
“네, 혹시 아는 곳입니까?”
“실은 나도 그곳이 고향이라네. 이런 곳에서 고향 사람을 만나다니.....한번 만나보고 싶군.”
작업반장이 강하게 고개를 가로 저었다.
“그런 쓰레기 같은 놈들을 만나봐야 좋을 것 하나도 없습니다. 괜히 덕이나 보겠다고 할 텐 데요.”
“아무튼 만나고 싶네.”
전철봉 사장의 얼굴은 오랫동안 잊어버렸던 물건을 되찾은 듯한 감격스러운 표정이었다. 작업반장은 못마땅했지만 어쩔 수 없이 만나도록 주선하겠다고 약속했다. 전철봉 사장이 현장을 한바퀴 돌아본 후 승용차를 타고 사라지자 핏기가 가셨던 작업반장의 얼굴에 금세 화색이 돌아왔다. 등에는 진땀이 주르르 흘러내렸다. 하마터면 목이 달아날 뻔 했다는 생각에 머리끝이 곤두섰다. 한번씩 사고가 터지면 십년을 감수했다. 작업반장은 저만치 가는 승용차의 꽁무니를 노려보더니 가래침을 퉤! 하고 뱉으며 투덜거렸다.
“돈 좀 있다고 거들먹대는 꼬락서니를 볼 수 없단 말이야. 어느 놈은 왕년에 사장 질 안 해 본 놈이 있어, 더러워서!”
그러다 사고를 낸 김봉두를 향해 화풀이라도 하려는 듯이 말했다.
“하필 사장이 왔을 때 넘어질게 뭐야, 재수 없게!”
“죄송합니다.”
“죄송하다면 다야, 내 목이 뎅겅할 뻔 했잖아. 네가 우리 식구들 책임질 수 있어? 괜히 한 솥에 밥을 먹으려면 정신 차려! 사람을 병신 만들지 말고.”
“네.”
“어서 꺼져, 꼴도 보기 싫으니까!”
김봉두는 다시 철골을 메고 이층으로 올라갔다. 인력시장이라는 곳이 어떤 곳인가. 대부분 막장까지 온 밑바닥 인간들이 모이는 곳이다. 예전 같으면 가방 끈이 짧은 사람들이 일자리를 구하기 위해 모이는 곳이라고 하지만 지금은 형편이 많이 달라졌다. 과거에 사장하던 사람도 있고, 높은 관직에 있던 사람도 있다. 부도를 맞고 오는 사람. 노름에 가산을 탕진하고 오는 사람. 사고를 치고 오는 사람. 마누라에게 쫓겨나 갈 곳이 없어 오는 사람, 할 일 없이 빌빌거리다 죽지 못해 찾아오는 인간들의 집합소나 다름없다. 이곳에 오면 과거의 무슨 일을 했던 상관하지 않는다. 묻지도 않지만 물어도 솔직하게 대답하는 인간도 없다. 이야기 할 때는 그저 김씨, 이씨, 박씨로 통할 뿐이었다. 요즘처럼 경기가 없을 때는 일거리가 없어 공치고 돌아가는 사람이 더 많다. 잘 보이기 위해 사무실 사람에게 담배라도 한 보루 사다 바친 인간은 일거리를 구하기 용이하지만 한번 미운털이 박히면 일하는 날보다 공치는 날이 더 많았다. 이들은 일거리를 소개해 주는 대신 하루 일당에서 몇 프로를 꼬박꼬박 떼었다. 법정 수수료 이상을 뗀다고 해도 항의할 사람이 없었다.
재수가 좋은 날에는 청소 일 같은 허드렛일이 걸리지만 대개는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무거운 철골이나 시멘트를 운반하는 힘든 일을 하게 된다. 처음부터 김봉두는 아파트 공사현장에서 시멘트나 철근 나르는 일을 했다. 전철봉 사장이 현장 시찰을 나왔을 때는 지칠 대로 지쳐 있었다. 어쩌면 그날 사고는 예고된 것이었다. 추석 명절이 가까워 오자 그날 밤 에는 고향 생각이 간절하게 났다. 고향을 떠나 온지 몇 년이 되어가지만 빚을 지고 쫓겨 온 몸이니 명절이 돌아와도 고향에 안부도 마음대로 전할 수 없는 처지였다. 혼자 계시는 어머니 생각도 간절하고 가출한 아내 점순이 년은 돌아왔는지, 아이들은 다 잘 있는지, 모두가 궁금하기 이를 데 없었다. 김봉두가 망조가 들기 시작한 것은 피라미드 사업에 뛰어 들 때부터였다. 아는 사람의 소개로 교육을 받게 되었는데 하필 피라미드 사업이었다. 교육을 받고 있는 동안 금방 떼 부자가 될 것 같은 꿈에 부풀었다. 헛된 망상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는 이미 집안이 거덜이 난 후였다. 집안 돈은 물론, 일가친척, 이웃간의 돈도 모조리 쓸어 넣었다. 놈들은 그 돈을 가지고 감쪽같이 행방을 감추고 말았다. 돈을 떼인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도망치다니 그게 뭔 소리여?”
“놈들이 도망 쳐버렸다고 소문이 좍 깔렸더구먼.”
“그 돈이 어떤 돈인데. 누구 미치는 꼴 보려고 그러는 거여!”
돈을 떼인 사람들이 우루루 사무실로 몰려갔지만 문은 자물쇠로 굳게 닫혀 있었다. 망했다는 소문이 퍼지자 높은 이자를 주겠다고 하여 돈을 빌려준 마을 사람들이 김봉두에게 당장 돈을 갚으라며 윽박질렀다. 견디지 못한 아내 점순이는 돈을 번다며 집을 나간 후 돌아오지 않았다. 아버지는 울화병이 도저 쓰러진 후 세상을 떠났다. 김봉두도 빚 독촉에 견디지 못하고 어머니와 아이들을 팽개치고 서울로 밤중에 도망쳤다. 집안이 하루아침에 쑥대밭이 되었다. 생각만 해도 피가 거꾸로 솟을 일이었다. 정신이 돌아와서야 김봉두는 혼자 살겠다고 도망친 것을 후회 했지만 이미 흘러간 물이었다. 도망쳐 온 신세라 오랫동안 고향에 가보지 못했다. 가출할 때는 큰 애가 네 살 계집애였고 둘째는 첫돌을 겨우 넘긴 남자 아이였다. 지금까지 김봉두는 아이들의 초롱초롱한 눈동자를 한번도 잊어 본적이 없었다.
“어린 것을 놔두고 도망가, 개 같은 년!”
집안이 망한 것이 마치 점순이 탓인 양 아내만 원망했다. 객지 생활이란 울화통이 터질 때가 한 두 번이 아니었다. 그럴 때는 어쩔 수 없이 술을 퍼마셨다. 일시적으로 고통을 잊는 데는 술만큼 약이 되는 것도 없었다. 사고가 터지는 날도 술을 엉망으로 퍼마셨다. 굶고 살 수 없어 눈을 붙이는 둥 마는 둥 하고 다음날 새벽같이 작업장에 나갔다. 천하장사라도 밤마다 술로 몸을 혹사하는 데야 무쇠 같은 몸인들 견딜 수 있으랴. 결국 전철봉 사장이 보는 앞에서 굴러 떨어지고 말았다. 사고가 날 때는 하늘이 노랗게 변하며 정신이 몽롱해 앞으로 꼬꾸라지고 말았다. 다친 곳은 한군데도 없었지만 작업반장의 눈이 심상치 않았다. 김봉두는 몸이 다치는 것보다 당장 일자리가 떨어질까 더 두려워했다.


그날은 잔뜩 흐린 하늘에서 비를 뿌리기 시작했다. 점심때가 가까워지면서 제법 굵은 빗줄기로 변했다. 이런 날은 공사판 일은 공치는 날이었다. 인부꾼들이 집으로 돌아갈 준비를 서두르고 있는 데 작업반장이 김봉두를 찾았다.
“어이 김씨?”
사고 이후 김봉두는 작업반장의 목소리만 들어도 등골이 서늘했다.
“어쩐 일이래유. 저를 다 찾고....”
“사장님이 자넬 찾고 있어.”
“사장님 같이 높으신 분이 지 같은 놈을 왜 찾는 대유?”
“거짓말이 아니라니까, 어서 가세.”
“별 일이 네유.”
작업반장이 앞서고 김봉두가 뒤를 따랐다. 곧이어 두 사람은 전철봉 사장실로 들어섰다. 우림건설 본사 사옥은 강남에 있지만 작업 현장에는 임시로 지어진 작은 건물이 있다. 이 건물은 전철봉 사장이 현장 시찰 나올 때만 사용하고 있다. 그 옆에 붙은 사무실은 작업현장에서 필요한 여러 가지 도구들을 보관하는 창고로 사용되고 있다. 두 사람이 사무실로 들어서자 수화기를 들고 있던 전철봉 사장이 김봉두를 흘낏 바라보며 잠깐 기다리라는 듯 고개를 끄덕인 후 누군가와 만날 약속을 하고 수화기를 놓았다.
“자네는 가고......”
“알겠습니다.”
작업반장이 돌아가자 사무실에는 김봉두와 전철봉 사장 두 사람만 남게 되었다. 김봉두는 어색해 시선을 어디다 둘지 몰라 비 오는 창밖을 내다보기도 하고 천장을 바라보기도 하며 안절부절 못했다. 아무래도 사고 문제로 부른 것 같아 마음이 초조했다. 전철봉 사장이 눈치라도 챈 듯이 말했다.
“앉으시오.”
“그냥 서 있겠어유.”
“앉으라니까.”
“무슨 용건으로 저를 보자고 했는지 말씀해 보셔유.”
“고집 부리지 말고 앉으라니까.”
전철봉 사장의 입만 쳐다보고 있던 김봉두는 어쩔 수 없다는 듯이,
“그럼 염치없지만 앉겠어유.”
하고 엉거주춤 의자에 앉았다. 의자에 앉아도 거북하기는 매 한가지였다.
“차나 한 잔 하자고 불렀으니까 걱정마슈.”
전철봉 사장은 장부를 정리하고 있는 미스 장을 불러 커피 두 잔을 시켰다. 미스 장이 자판기에서 커피를 두 잔 뽑아왔다. 전철봉 사장이 차를 마시며 물었다.
“고향이 움막골이라고 했소?”
“네.”
“실은 나도 고향이 그곳이오. 떠나온 지 오래 되기도 하지만 외진 산골이라 자주 가게 안 되더구먼.”
“그럼유. 원체 바쁘신 몸이니.”
전철봉 사장은 눈을 지그시 감고 어렸을 때를 회상하는 듯했다. 머리 속에는 떠나 올 때의 고향 전경이 영화의 한 장면처럼 떠올랐다. 언제나 운무에 덮인 높은 산. 산비탈의 작은 오두막 집. 사립문 안에 서 있는 큰 감나무, 산을 개간해 만든 비탈진 밭. 개울을 따라 다닥다닥 붙은 천수답의 논. 모두 가난했지만 그리운 고향 풍경이었다. 떠나온 지 오십 여년이 되고 보니 지금쯤 고향이 어떤 모습으로 변했는지 가늠조차 할 수 없었다. 그동안 몇 번 다녀오기는 했지만 마치 객지 같았다. 그래서 술자리에서 누가 전철봉 사장에게 고향이 어디냐고 물으면 서울이라고 했다가 서울 말씨가 아니라고 하면 경상도라고 둘러 댔다가 그도 아닌 것 같다고 하면 충청도라고 하며 이리저리 말을 바꾸었다. 그랬던 전철봉 사장이 어느 날 머리에 서리가 내리고 주름이 늘어나면서 문득 고향 산천이 그리워졌다. 연어의 귀향처럼. 그 무렵 움막골에 살았다는 김봉두를 만나게 되자 반갑기 이를 데 없었다. 전철봉 사장이 차를 홀짝거리며 말했다.
“고향에 가봤소?”
“집을 나온 후 딱 한 번 가봤구먼유.”
“죄라도 지고 도망 온 거요?”
“빚 때문에 도망쳐 왔으니까 그런 셈이지유.”
“허, 딱하게 되었구먼. 이왕 말이 났으니 말인데 내일 움막골에나 다녀옵시다.”
“내일 움막골요?”
“그렇소. 다녀온 지 하도 오래 되어서 가보고 싶소. 늙어가니 나도 어쩔 수 없는 모양이오.”
그 소리에 김봉두가 화들짝 놀랐다.
“그 글쎄요.”
김봉두에게는 반갑지 않는 제안이었다. 혹시 고향에 갔다가 빚쟁이들에게 무슨 봉변이라도 당할지 몰라 마음이 내키지 않았다. 우물거리자 전철봉 사장이 말했다.
“쉬는 동안의 임금은 지불하겠소. 또 빚쟁이들이 알고 모여들면 사정을 들어보고 일을 처리합시다. 그쪽에서도 이쪽 사정을 들으면 어느 정도는 이해할 거요. 그 문제는 내가 알아서 하겠소.”
김봉두는 그 날 밤 한 잠도 이룰 수 없었다. 기쁜 것도 같고 그렇지 않은 것도 같고 말할 수 없는 착잡한 기분이었다. 두 사람은 다음 날 청량리역에서 오전 여덟시 기차를 탔다. 정선 장을 보러 다니는 관광열차였다. 기차를 타자 소풍가는 아이들처럼 마음이 설레었다. 차창 밖으로 밀려가는 들판을 바라보는 전철봉 사장의 마음도 만감이 교차했다. 그때 그 사람들은 아직도 살고 있는 것일까. 산천山川은 어떤 모양으로 변했을까. 모든 것이 궁금하기 이를 데 없었다. 차창 밖으로 전선줄이 휘청거리며 따라오고 있었다. 시가지를 지날 때는 높이 솟은 회색빛 건물들이 빠르게 스쳐갔다. 전철봉 사장은 얼굴을 차창에 문지르며 바깥 풍경을 열심히 살펴보았다. 어머니의 애잔한 얼굴이 지나가고 그 위에 아버지의 고통스러운 얼굴이 스쳐갔다. 한국전쟁 때의 기억으로 돌아갔다. 어머니가 아버지를 붙들고 흐느껴 울던 모습이 떠올랐다. 그때 아버지는 울고 있는 어머니의 등을 어루만지며 열심히 위로했다.
“전쟁 통에 헤어지는 게 어디 우리뿐인가. 사람은 누구나 이 세상에 태어났다가 한번은 가는 거여. 내가 가고 나면 아이들이나 잘 키워. 열심히 살다가 나중에 저 세상에서 다시 만나 못 다한 사랑을 하면 되는 거여.”
“흑.”
그때 어머니는 가슴을 쥐어뜯으며 말을 못하고 흐느끼기만 했다. 한국전쟁이 터졌을 때는 전철봉 사장의 나이 아홉 살 때였다. 이 땅은 동족상잔同族相殘으로 어디로 가나 피로 물들었고 이웃과 이웃을, 형이 아우를, 자식을, 부모를 철천지원수로 몰아 죽이고 죽이는 참극이 전국 곳곳에서 벌어졌다. 인민군이 남침하자 청년들이 붉은 완장을 두르고 지주地主나 군인, 경찰 가족들을 반동으로 몰아 잡아다 처형하고, 국군이 수복되자 이번에는 다른 청년들이 인민군에게 부역한 자들을 빨갱이로 몰아 잡아다 처형했다. 산골에는 공비共匪들의 출몰로 토벌대와의 수차례 밀고 밀리는 전투로 애매한 목숨들만 죽어가던 시절이었다. 전철봉 사장의 아버지도 이 소용돌이 속에서 온전하지 못했다. 전철봉 사장의 아버지가 잡혀간 것은 사촌인 종수 형 때문이었다. 종수 형은 인민군이 남하하자 붉은 완장을 차고 지주나 경찰 가족을 잡아 반역자로 몰아 처형하는 일에 가담했다. 다시 세상이 바뀌어 이번에는 국군이 들어오자 종수 형이 빨갱이로 몰려 쫓겨 다니다 전철봉 사장 집으로 피신 오게 되었다. 경찰이 들이닥쳐 종수 형을 붙잡으려고 하자 종수 형은 산으로 도망쳤고 경찰이 쫓아가 총을 쏘았지만 붙잡지 못했다. 다음 날 마을 청년들에게 전철봉 사장의 아버지가 대신 잡혀갔다. 사촌형이 빨갱이면 너도 빨갱이 물이 들었을 것이라며 잡아갔다. 전철봉 사장의 아버지는 착실한 농부였지만 아무리 죄가 없는 사람이라도 이때는 누구도 선뜻 나서서 도울 수 없었다. 두둔하면 함께 빨갱이로 몰려 심한 고문을 당하거나 아니면 목숨을 잃을 수 있었다. 전철봉 사장의 아버지가 붙들려 간 후 며칠 동안 행방이 묘연하다가 사흘 만에 다 죽게 된 몸으로 집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모진 고문으로 몸이 퉁퉁 부었다. 그날 밤 전철봉 사장의 아버지는 어머니와 밤새도록 무슨 이야기를 하며 울다가 또 말을 하고 울다가 또 말을 하고 그렇게 꼬박 밤을 새웠다. 이윽고 동녘 하늘이 훤하게 밝아올 무렵 밖에서 부르는 소리가 났다. 한 마을에 살고 있는 만득이의 음성이었다. 그들은 총을 메고 있었다.
“팔봉이 어서 나오게.”
“알았구먼. 잠깐만 기다리게.”
전철봉 사장의 아버지는 짐작하고 있었던 듯 어머니의 손을 꼭 잡아주었다.
“못 보더라도 낙심하지 말어. 저 세상에서 다시 만나 못 다한 사랑을 하면 되는 거여.”
전철봉 사장의 어머니는 소리 없이 소매 자락으로 눈물만 찍어냈다.
“흑....”
문밖에서 만득이가 전철봉 사장의 아버지에게 어서 나오라고 서둘렀다. 해가 뜨기 전에 거먹산 까지 가야했다. 해가 떠서 사람들이 다니기 전에 모든 일을 끝내야 하기 때문이었다. 까마귀가 어디서 몰려 왔는지 각각-하고 흉흉하게 울어 댔다. 지금까지 거먹산으로 끌려 간 사람들은 아무도 돌아오지 못했다. 인민군이 나왔을 때도 그랬고 국군이 수복한 후에도 그랬다. 마을 사람들은 거먹산에 대해 이야기 하는 것을 두려워했다. 총을 메고 뒤를 따르던 만득이가 전철봉 사장의 아버지에게 말했다.
“자네는 죽더라도 우리를 원망하면 안 되는 거여. 자네는 사촌 형 때문에 죽는 거여. 이 난리 통에 억울하게 죽는 사람이 어디 한둘이어. 빨갱이 놈들은 아무 죄도 없는 지주나 경찰 가족을 끌어다 죽인 거여. 가족이 무슨 죄가 있어. 자네 사촌 형도 그 일에 가담한거여. 우리 형도 자네 사촌 형한테 억울하게 죽은 사실을 안다면 자네도 나를 원망 못할 거여. 그러니 죄 없이 죽는다고 너무 억울하게 생각 말어.”
전철봉 사장의 아버지는 땅만 보고 걷다가 겨우 말했다.
“알겠구먼, 내가 죽더라도 가족을 잘 부탁하네.”
“걱정 말어. 시신은 거두도록 자네 처에게 알려 주겠네.”
해가 뜨기 전에 거먹산에서 총소리가 두 번 울렸다. 총소리에 놀란 멧새들이 푸드득 숲에서 도망을 쳤다. 잠시 후 만득이 일행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거먹산을 내려왔다. 다음 날 전철봉 사장의 어머니는 남편의 시신을 거두었다. 만득이의 특별 배려였다. 전쟁이 거의 끝나갈 무렵 전철봉 사장의 어머니는 아버지의 원혼이 밤낮 없이 찾아와 억울하다며 눈물을 흘린다고 하더니 한 달도 안 되어 아버지의 뒤를 따라갔다. 그 즉시 전철봉 사장도 고향을 떠났다. 서울에서 몇 십 년을 뼈가 빠지게 돈을 벌어 지금은 수천 명의 종업원을 거느리는 거대한 우림건설을 탄생시켰다. 지금도 전철봉 사장은 술에 취하면 입버릇처럼 말했다.
“다시는 이 땅에 동족간의 피를 뿌리는 전쟁은 있어서는 안 돼. 이만큼 이루어 놓은 것을 잿더미로 만들 수는 없지.”
포화가 휩쓸고 간 황폐한 땅에서 오늘의 우림건설을 이룩하기 까지 전철봉 사장은 굶기를 밥 먹듯 했었다. 오직 입에 풀칠만 하기위해서 고향도, 일가친척도 잊고 미친 듯이 돈을 벌었다. 우림건설을 탄생시킨 지금은 어느 새 머리에 서리가 내리고 강철 같은 전철봉 사장의 마음도 여려진 듯 가끔 자라던 고향이 그리웠다. 그러던 차에 김봉두를 만나게 되어 함께 고향으로 가게 되었다.


차창 밖으로 밀려가는 정다운 산천을 바라보며 소주잔을 비운 전철봉 사장은 김봉두에게 술잔을 내밀었다.
“한 잔 받게.”
“고맙구먼유.”
김봉두는 소주잔을 받아 단숨에 비우며 회상에 잠기는 듯 눈을 지그시 감았다가 떴다.
“지금 생각하니 모두가 꿈만 같네유. 고향에서 밤중에 도망 나와 무작정 청량리역에 새벽에 내렸을 때는 기도 안 차더구먼유, 이 많은 인간들이 뭘 먹고 사나 하니 눈앞이 깜깜하데유. 살길이 막막하더구먼유. 주머니에는 땡전 한 푼 없었어유. 도망쳐 나온 놈이 무슨 돈이 있겠어유. 생각하다 못해 지하철역에서 구걸을 해 봤구먼유. 사지가 멀쩡한 놈이 할 짓이 못 되더구먼유. 이게 아니다 싶어 벽돌공장에서 일을 했는데 재수 없게 얼마 안 되어 회사가 부도가 나데유. 안 되는 놈은 자빠져도 코가 깨진다더니 그 말이 맞더구먼유. 몇 해 동안 죽을 고생을 하다가 이제는 죽는 길 밖에 없구나 생각이 들어 어느 담 밑에서 훌쩍거리고 있는데 지나가던 사람이 이층으로 가보라고 하데유. 그곳이 바로 인력시장 사무실이더구먼유. 그래도 조상이 버리지는 않았구나 싶은 생각이 들데유. 오늘날까지 인력시장에 다니며 여기저기 날품을 팔아먹고 살아왔어유. 가족과 소식이 끊어진지도 벌써 여러 해 되었어유.”
“딱한 인생이구먼.”
“한 때는 죽으려고도 했지유. 겁이 나 죽는 것도 쉽지 않더구먼유.”
이번에는 김봉두가 술잔을 전철봉 사장에게 넘겼다.
“산 사람 입에 거미줄이야 치겠소.”
“그러자니 오죽하겠어유.”
“앞으로 어떻게 할 거요?”
“잘 모르겠어유. 막막해유.”
차창 밖으로 밀려가는 하늘에는 구름이 모여 들고 있었다. 김봉두가 술에 취한 듯 어둔한 목소리로 말했다.
“몰래 고향에 한번 갔을 때 웬만하면 눌러 앉고 싶었는데.”
“왜 눌러 앉지 못했소?”
“염치가 없더구먼유.”
객지에서 호되게 몇 해 고생만 하다보니 자연히 집 생각이 나더라는 것이었다. 김봉두는 혼자 살고 있는 어머니 소식도 궁금하고 집을 나간 아내 점순이 년도 돌아왔는지, 또 아이들은 그동안 얼마나 자랐는지 보고 싶었다는 것이었다. 고향에 갔다가 어머니가 붙들기만 하면 못이기는 체 하고 주저앉아 농사를 지을 생각을 하고 큰마음 먹고 고향에 갔지만 막상 고향마을 앞에 도착하자 떠나올 때의 용기는 어디로 가고 빚쟁이들이 몰려 들까봐 겁부터 나더라는 것이었다. 집에 들어갈 용기가 나지 않아 뒷산 큰 상수리나무 뒤에 숨어서 집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추석명절을 며칠 앞둔 터여서 어머니는 탈곡기로 벼를 털고 아이들은 성큼 자라서 메뚜기를 잡으려고 할머니 뒤에서 맴도는 남매의 모습을 보고 눈물이 왈칵 치솟았다. 자기가 없는 동안 아이들이 잘 자라주어 대견스럽기까지 했다. 이번에는 부엌 쪽을 살펴보았다. 아내 점순이 년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그때까지도 집에 돌아오지 않은 것이 분명했다.
“짐승만도 못한 년!”
하루 종일 상수리나무 밑을 떠나지 못하고 있다가 해가 지고 어둑어둑 할 무렵 눈물을 뿌리면서 서울로 돌아오고 말았다는 것이었다. 도망간 점순이 년은 그렇다 치더라도 어머니나 아이들을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찢어지는 것처럼 아프다고 했다.
“그때는 정말 한강 물에 풍덩 뛰어 들고 싶었구먼유.”
“그렇게 약한 마음을 먹어서야 쓰나.”
“사장님은 당해보지 않아서 몰라유. 살기 어렵다고 가족을 팽개치고 도망치는 그런 년은 인간도 아녀유.”
그러자 전철봉 사장의 얼굴에 비죽 웃음이 흘렀다.
“그렇게 말하는 자네도 어머니와 자식을 버리고 도망쳤으면서...”
“그렇게 말씀 하시면 저도 할 말은 없구먼유.”
금세 김봉두가 시무룩해 졌다.
“지금쯤은 자네 아내도 돌아왔을지 모르지.”
“글쎄유.”
김봉두의 눈에는 눈물이 글썽했다. 보기보다 마음이 여렸다. 눈물이 술잔에 떨어졌지만 김봉두는 상관없다는 듯 잔을 단숨에 비웠다. 답답한 속을 털어놔서인지 얼굴이 아까보다 훨씬 밝아 졌다. 기차가 정선 역에 도착하자 흐린 탓인지 산 쪽으로 뿌옇게 운무가 내려앉았다. 마치 산은 낮인데도 잠에서 깨어나지 않은 듯 음험한 모습으로 운무 속에 웅크리고 있었다. 운무가 조금씩 물러나자 산은 차츰 그 자태를 보이기 시작했다. 열차가 멈추자 김봉두가 서둘러 작은 가방을 어깨에 메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저쪽 멀리 보이는 곳이 움막골이구먼유.”
김봉두가 손을 들어 한 곳을 가르쳤다. 뿌옇게 운무가 가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지만 김봉두의 눈에는 모든 것이 잘 보이는 듯이 말했다. 운무 밖으로 나온 산 정상만 조금 보일 뿐이었다. 전철봉 사장이 감개가 무량한 듯이 말했다.
“산은 그대로인 것 같은데 읍내는 많이 변한 것 같구먼.”
전철봉 사장이 눈을 지그시 감았다 떴다. 웬만한 평지는 밭을 만들어 고랭지 채소가 자라고 있고 트럭이 부지런히 채소를 실어 나르고 있었다. 운무가 사라지자 고불고불한 오솔길이 산 중턱을 향해 실뱀처럼 뻗어 있고 버스가 곡예를 하듯 길을 따라 내려오고 있었다. 정선 장을 보기 위해 손님을 가득실고 오는 길일리라. 버스 안에는 필시 산에서 뜯은 고사리며 참나물, 더덕이 가득 실려 있을 것이다. 전철봉 사장은 문득 어머니의 얼굴이 떠올랐다. 어머니가 살아계실 때도 새벽같이 일어나 움막골 뒷산에서 산나물을 뜯어 읍내에 내다팔았다. 어느 날 어머니는 그렇게 모은 돈으로 운동화를 사오셨다. 그런 날은 전철봉 사장은 밤새도록 잠을 이루지 못하고 뒤척였다. 운동화를 신어보고 또 잠을 자다가 일어나 신어보고 했다. 최근에는 건강식품이다 뭐다 해서 서울에서 기차를 타고 이곳까지 산나물이나 약초를 사러 오는 사람들이 줄을 이었다. 도시는 농약으로 가득한 중국산이 판을 쳐 믿을 수 없다는 것이었다. 두 사람은 해장국집으로 들어갔다.
“어서 오세유. 서울 손님이구먼유.”
두 사람이 자리에 앉자마자 주인아주머니가 반갑게 웃으며 아는 체했다.
“해장국 둘 주세요.”
전철봉 사장이 의자에 엉덩이를 놓으며 말했다.
“나도 어렸을 때는 여기 살았소.”
그러자 주인아주머니가 멋쩍은 얼굴을 했다.
“사람은 겉만 봐서는 알 수 없구먼유. 요즘은 외지 사람들이 워낙 들락거리다보니 이곳 인심도 예전 같이 않아유. 요즘 사람들은 몸에 좋다면 무엇이나 가리지 않으니 쯧쯧,....”
“그럴 거요.”
두 사람은 기차에서 소주를 마신 뒤끝이라 막걸리 한 사발씩 들이 키고 나니 금세 머리가 어지러우며 취기가 온 몸으로 퍼졌다. 주먹만한 선지피가 들어간 해장국을 한 사발씩 마시고 나니 뱃속이 따뜻해지며 정신이 번쩍 들었다. 산골의 가을 해는 짧다. 다시 서둘러 서울로 돌아가야 했다. 열차 시간까지 빠듯했다. 김봉두가 서둘러 자리에서 일어났다. 전철봉 사장도 따라 일어났다. 움막골 까지는 아직도 한참 더 가야했다. 그런데 김봉두는 움막골 과는 반대방향으로 걸음을 재촉했다.
“이 길은 움막골 과는 반대 길 같은 데?”
전철봉 사장이 의아해서 물었다.
“맞아유. 잠깐 들릴 데가 있구먼유.”
김봉두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전철봉 사장도 더 물어볼 수도 없어 뒤를 따랐다. 산을 조금 오르자 평평한 곳이 나타나고 숲 속에 감추어진 듯한 묘墓 하나가 보였다. 사람의 손길이 닿은 지 벌써 오래된 듯 묘 주변으로 억새풀과 잡나무들이 무성하게 자랐다. 고산高山에는 벌써 단풍이 들어 울긋불긋했다. 묘를 대하자 김봉두의 눈에는 어느 새 눈물부터 글썽거리더니 묘 앞에 엎드려 엉엉 울기 시작했다.
“불효자를 용서하셔유.”
그러다 전철봉 사장을 바라보며,
“아버지 산소구먼유. 제가 돌보았는데 객지 생활을 하다보니 이 지경이 되었네유. 다 지 잘 못이어유.”
무덤에 덮여 있는 억새풀이며 칡덩굴을 대충 거두어 내자 덤불 속에 감추어진 비석의 얼굴 모습이 들어났다. 오석으로 잘 만들어진 값나가는 비석이었다. 김봉두는 아버지의 얼굴을 대하듯 조심스럽게 비석을 손바닥으로 닦아내자 비석에 선명하게 글귀가 나타났다.
安東金氏萬得之墓
전철봉 사장은 어디서 많이 듣던 이름 같아 만득, 만득, 하고 입속으로 몇 번 중얼거리다 다가 아-하고 가벼운 비명소리를 냈다. 묘한 인연이었다. 어머니로부터 들은 이야기가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아버지를 거먹산으로 데려갔던 바로 그 사람의 무덤이었다. 전철봉 사장의 마음은 착잡하기 이를 데 없었다. 어쩌면 어머니의 영혼이 아버지의 시신을 찾게 해준 은혜를 이렇게라도 해서 갚으려는 뜻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자 숙연해 졌다.
“이분이 자네 부친이 틀림없는가?”
“그렇구먼유.”
“그 참, 묘한 인연이로군.”
김봉두는 무슨 영문인지 몰라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전철봉 사장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저의 부친을 잘 알아유?”
“모른다네, 어디서 많이 듣던 이름 같아서 말일세.”
아무것도 모르는 김봉두는 여전히 슬픔이 복받치는지 흑흑거렸다.
“아버지는 제가 재산을 탕진하는 바람에 울화병으로 돌아가셨구먼유.”
“자네 탓만은 아닐세.”
전철봉 사장은 자기도 모르게 가늘게 한 숨을 쉬었다. 가을바람이 스쳐가자 나무 잎이 와스스 부딪는 소리를 냈다. 어느 새 운무가 바람에 밀려가자 멀리 움막골이 선명하게 들어났다.
“어서 가세.”
“내 정신 좀 보셔유. 그래야지유.”
김봉두가 앞서고 그 뒤를 전절봉 사장이 따랐다. 서울로 가는 기차 시간을 대자면 움막골을 빨리 다녀와야 했다. 두 사람은 부지런히 산골길을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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