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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아래 첫 단감(소설)
2010-10-21 23:49:20
예외석

조회:2017
추천:100

하늘아래 첫 단감(원고지 73매)

예 외 석

며칠 째 이른 초겨울 영하의 혹한이 찾아왔다. 현석은 퇴근길 버스 창가에 비친 아파트를 보았다. 불 꺼진 창가의 어둠, 그 옆엔 한줄기 빛이 있다. 그 집을 바라보며 상념에 젖어본다.

“저 집 사람들은 행복할까, 부부싸움이 끊이지 않는 집도 있고 작은 행복을 감사하며 소박하게 사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불 꺼진 창엔 나처럼 밤늦게까지 일하는 사람들이 살겠지.”

퇴근시간 회사 정문 앞에서 현석은 트럭에 실린 추운 단감을 보았다. 서리 맞기 전 작업을 서두른 흔적에 발길이 멈췄다. 칼바람 속에 서 있는 사내는 단감을 급히 팔지만 그 속은 쓰릴 것이다. 떨감 같은 속을 달래느라 오늘밤도 찬 소주를 부을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며 현석은 허전한 속을 찬 소주로 달래본다. 내일은 속 풀이로 단감을 깎아 단물처럼 단 인생을 느끼고 싶다. 트럭에 실린 단감을 보니 고향의 아버지와 감 밭이 떠올랐다.

퇴근길에 마주친 포장마차 앞을 무심히 지나치다 숟가락 부딪치는 소리를 들었다. 차가운 트럭 짐칸에서 늦은 밥을 먹는 사내의 움직임 따라 냄비가 달그락댄다. 그 들썩이는 어깨를 따라 현석의 어깨도 덩달아 들썩인다. 저만치 가다 되돌아와 순대 오 천원어치를 주문했다. 눈앞에 뽀얀 김이 솟아오르고 칼질에 잘린 내장에선 핏물이 묻어났다. 사내는 꾸역꾸역 찬밥을 마저 먹고 현석은 꾸역꾸역 순대를 먹었다.

“왜, 당신은 찬 바닥에서 밥을 먹고 난 순대를 먹어야 하나?”

돌아서는 발걸음 끝에 핸드폰이 울렸다. 수많은 나날을 밤거리에서 휘청거렸던 젊음의 흔적이 아직도 도사리고 있었다.

“행복한 날 보내세요, 아가씨대리운전”

누군가에게 떠밀려 나온 생처럼 폐품처럼 구겨지는 서민들의 삶을 더욱 움츠리게 하듯 찌푸린 하늘엔 성난 눈발이 내린다.

현수는 매일 출 퇴근길에서 마주치는 나무가 한그루 있다. 거리의 가로수가 온통 봄이면 화려하게 빛을 발하던 벚꽃 나무다. 그 중에서 아침, 저녁으로 그의 마음을 괴롭히던 것이 마지막 코너에 위치한 나무다.

매일 지나치면서 어느 순간 자신이 그 나뭇가지에 집착하여 격려를 보내고 있었다. 너무 안쓰러워 나뭇가지를 잡아떼어 버릴까도 생각했지만, 반쯤 부러진 상태에서도 잎이 파릇파릇 살아남는 것을 보며 알 수 없는 희열이 느껴졌다. 그래서 오가며 그 가지에게 메시지를 보내 주었다.

“그래, 너는 반쯤 부러졌지만 그래도 나뭇가지다. 마지막까지 매달려서 나무로서의 의연함을 가져라. 힘을 내라”

만약 그 가지가 바닥으로 떨어져서 말라 죽었다면 볼품없는 쓰레기가 되고 말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 가지는 두 달간 힘겨운 사투를 벌이다 결국 죽음을 맞이하였다. 안타까운 죽음이었지만, 나는 그 나뭇가지에 마음으로 경의를 표하였다. 마지막 갈 때까지 나무로서의 의무를 다하였기 때문이다.

현수는 그 나뭇가지의 죽음을 놓고 숙연함을 느꼈다. 경우는 다르겠지만, 우리네 일상에서 사람들이 자기가 살아가는 인생목표와 목적에서 “나는 누구인가”를 한번 쯤 생각해볼까 궁금해진다. 그리고 “무엇을 할 것인가, 무엇을 위해서 살아갈 것인가”를 생각하면서 사는 이들이 얼마나 될까.

 

현석의 부친 박동만은 중동건설 붐이 한창이던 70년대에 조국근대화의 기수로 사막에서 젊음을 불태웠다. 굴곡 많았던 그의 삶은 영광과 상처를 늘 함께 안고 있었다. 절망의 늪에 빠져있던 조국을 희망으로 승화시켰다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지만 정작 자신의 현재 삶은 너무 초라하기만 하다.

열사의 나라에서 같이 고생을 한 동료들 중에도 가족이 해체되어버린 사례가 많았다. 동만 역시 동생의 사업실패로 인해 여러 가지 어려움을 겪었지만 끝까지 가정을 지키며 살아왔다. 그러나 현석은 사춘기에 가난이라는 절망에도 흔들리지 않고 바르게 자라 주었다. 동만은 늘 아이들의 뒷바라지를 못해주는 것이 괴로워 비틀거렸지만 악착같이 살아 보려고 고향에서 마지막 희망을 걸었었다. 하지만 오랫동안 농촌을 떠나 있었던 동만이 농사일을 다시 하기엔 너무 서툴러서 심는 작물마다 실패를 많이 겪었다.

회색빛 슬레이트 지붕 밑 마루에 누워 있는 동만은 벌써 두 번째 플라스틱 막걸리 병을 비우고 있다. 빗물을 철철 흘리고 있는 TV에선 장기화된 경기침체로 청년 실업자가 백만이라고 요란을 떨고 있다. 철퍼덕 자빠진 막걸리 병 옆엔 똥파리 한 마리가 뭘 잘못했는지 동만을 향해 두 손바닥을 빌고 있다. 바짝 마른 쥐포 쪼가리를 씹으며 파리를 쫓아내다 그만 누운 막걸리 병을 건드려 누런 찌꺼기를 토해내게 하고 말았다.

“이기 머시 이런 기 다 있노? 똥파리 땜시 막걸리도 못 마시겄네. 에이 니미럴 더럽어서”

동만은 혼자 중얼거리며 발로 걸레를 밀어 쏟아진 막걸리를 닦아냈다.

학교 앞에서 떡볶이와 김밥, 어묵 장사로 평생 모은 돈 20억을 불우한 학생들을 위해서 장학금으로 내 놓은 어느 할머니의 기사가 방송에 나왔다. 자신은 배우고 싶어도 돈이 없어 못 배운 한을 이렇게라도 풀고 싶어서 아낌없이 희사를 했다고 한다.

“무슨 놈의 억이 누구 집 똥개 이름이가? 할마시 참 대단 하데이. 내 한테 그 돈 십분의 일만 있어도 내 팔자가 요래 꼬이지는 안 할낀데”

그때 녹슨 철문을 밀치며 푸른 작업복 차림의 현수가 들어온다.

“아부지, 또 술입니꺼? 인자 제발 고마 드시이소”

“현수야 미안하데이. 니는 내가 꼭 대학교 보낼라 캤는데. 니 입고 있는 실습복 보이까네 내 복장이 터진다 고마. 애비도 노가다 자슥도 노가다 집안 꼬라지 좋다.”

동만은 고학하면서 야간 공업고등학교를 나온 자신의 뒤를 이어 자식마저 교복 대신 푸른 실습용 작업복을 입은 모습을 보니 슬픔이 봇물처럼 밀려왔다.

청도댁이 고구마가 가득 실린 외발 리어카를 세우며 들어온다.

“현수 아부지 와 그라는데 무신 일 있는교?”

“아이다. 내가 저놈의 자슥 쳐다보이 억장이 무너질라 캐서 그란다 아이가”

“그래도 자 만한 아들도 없소. 저거 부모 고생 한다꼬 지가 알아서 공고 안 갔는교. 그래도 저거 학교서 공부를 원체 잘 하이까네 선생들이 아깝다꼬 자꾸 대학교 시험 보라 카는 바람에 요즘 마음이 좀 심란 한갑데요.”

그랬다. 현수는 공고를 졸업하면 취업을 해서 돈을 벌고 싶었다. 집안에 부담을 줄이고 동생들 뒷바라지를 하고 싶었던 것이다. 자신이 하고 싶은 공부는 조금 뒤로 미루기로 하였다. 어느 정도 안정이 되면 나중에 야간대학이라도 갈 생각이었다.

“현수 아부지, 생각하머 맴이 아프지만 그래도 현수가 얼매나 기특한교? 우리가 아무리 몸부림쳐도 안 되는 거 우야는교? 넘들은 번듯한 집에 재산이 많아도 삐딱하이 빗나가는 자슥들이 있는데, 현수가 너무 철이 빨리 들어서 탈이제 바르게 잘 자라주는 것만 해도 다행 아인교?”

“우리라고 언제까지 이래 살아라는 법이 있는교? 당신도 인자 술 고마 잡숫고 하는 데까지 한번 힘써서 살아 보입시더.”

동만은 눈시울이 뜨거워져 공연히 먼 산만 쳐다보며 껌뻑거렸다. 길게 내뿜는 뽀얀 담배 연기가 자신의 앞날처럼 느껴져 한숨만 내 쉬었다.

동만이 도시 생활을 접고 고향으로 돌아온 건 중동에서 돌아온 지 한 달만이었다. 3년간 폭염 속에서 고생을 해도 희망을 가지고 견딜 수 있었던 건 아내와 함께 조그만 가게를 하려던 계획이 거의 달성 돼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3년이 거의 다 돼갈 때 동생의 사업실패로 부부의 그 소박했던 꿈은 물거품이 되어 산산이 깨지고 말았다. 중동으로 떠나기 전에 보증을 써 준 것이 발목을 잡고 만 것이었다. 열사의 나라에서 개미처럼 일하고도 자신은 돈 한 푼 쥐어보지 못하고 몽땅 날아가 버린 것이다.

동생은 잠적해버리고 청도댁과 어린 현수가 살고 있던 전셋집도 나와 당장 오갈 데가 없는 처지가 되고 말았다. 결국엔 빈손으로 다시 고향에 돌아가 땅에서 땀을 흘려야만 했다. 어렵게 구한 자갈논과 황무지 밭에서 새로 시작해 가을이면 푸근한 결실을 얻을 수 있었지만 그 행복도 잠시 뿐이었다. 우루과이 라운드다 한미 FTA다 뭐다 해서 각종 수입 농산물이 우리 시장과 밥상을 잠식하면서 사람들의 입맛도 우리 것에서 멀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더 이상 갈 데가 없는 동만은 끝까지 땅을 지키며 살고 싶었지만 갈수록 삶은 팍팍해지기만 했다.

둑길에 심어놓은 콩잎은 목이 탔다. 쩍쩍 갈라진 논바닥과 동만의 머리에 불을 놓는 시뻘건 태양 때문에 아지랑이 너머 원두막이 두개로 왔다 갔다 한다. 그 머리엔 잔뜩 까시래기가 얹혀 이른 나이에 벌써 삭은 노인네가 돼간다. 육천 도 끓는 가마 속처럼 바싹 구워져 초벌구이가 된 몸과 잉걸불에 달구어진 타는 목마름은 점점 더 심해질 뿐이었다. 시원한 감로수를 축여도 칙칙 김을 내며 증발되는 물처럼 그때뿐이다.

막걸리에 쉰 김치 한 조각으로 허기진 배와 타는 목젖을 달래보지만 머리 속은 여전히 이글거린다. 골짝마다 갈라진 혓바닥으로 핥아대지만 폐경기 음부처럼 바싹 말라있다. 가뭄에 논과 밭은 젖을 빨지 못한 사내의 육신에 살비듬만 버썩거리게 한다. 동만은 오늘도 골짝에 남은 습기를 찾아 삽질을 해 대지만 목마른 사내와 물 마른 여인의 샅은 먼지만 폴폴 날릴 뿐이었다.

낮에 마신 막걸리가 깰 때쯤 동만은 마을회관 노인정으로 걸음을 옮겼다. 노인들이 앉아 국수 내기 화투를 치고 있었다. 화투에 약한 이들은 옆에서 개평을 뜯고 비록 점당 백 원짜리지만 점점 판이 흥미진진하게 무르익어가는 중이었다. 동만은 심심하던 차에 옆에서 연신 입방아를 찧으며 돈을 잃은 장 노인의 화를 돋우니 발끈 화를 낸다.

“그 주둥이 좀 다물어라, 돈 잃고 기분 좋은 사람 없데이. 더 지껄이머 고마 확”

“아따 행님, 뭐 그런 거 가지고 그라는교? 겨우 국수 내기함서”

동만은 슬슬 장 노인의 비위를 상하게 하면서 상대방 노인에게 유리하게끔 도와주었다.

“아따 행님 똥 묵으소 똥, 똥 쌍피 가지고 뭐 하는교? 비 묵으소 비”

결국 장 노인은 아침에 며느리에게 얻은 용돈 삼천 원을 다 잃고 부아가 나서 동만을 노려본다.

“야 이 만 놈의 자슥, 빌어 묵을 자네 땜시 화투 베려놨다 아이가? 인자 우얄끼고?”

“어따 행님도 우째 화살이 내게 돌아 오는교? 화투 치는 사람 마음이지 안 그렇소?”

“뭐가 우짜고 우째? 남의 화투판 다 깽판 쳐놓고 그런 말이 나오나?”

싱크대에서는 국수를 삶을 물이 끓고 할머니들은 김치와 양념을 준비하고 있다. 돈을 딴 노인은 슈퍼에서 소주와 막걸리를 사오며 동만에게 흐뭇한 미소를 짓는다.

마을회관에서 국수 한 그릇으로 점심을 때운 동만은 담배 한 대를 맛나게 태우며 슈퍼 앞을 지나가다 이장을 만났다. 이장은 자전거를 세워 둔 채 가게 안에서 점심으로 소주와 라면을 먹고 있었다.

“어, 이기 누고 삼수 아이가? 이기 머꼬? 와 집에서 밥 안 묵고 여기서 이라노?”

“말도 마라. 농민단체에서 이번에 서울에 상경투쟁 한다꼬 난리더라. 그래서 거기 돌아가는 이바구도 들을 겸 갖다 오다가 때를 놓쳤다 아이가.”

“머한다꼬 밥도 안 묵고 돌아 댕기쌓노? 그칸다꼬 누가 알아주나? 이장은 우리 마을 단속이나 잘 해라 고마”

“오냐, 알었다. 이리 와서 막걸리나 한 잔 해라”

“난 오늘 하루 종일 막걸리네 헤헤”

“올해는 나락 물수매를 좀 많이 해준다꼬 하네. 자네도 마이 준비 해 놔라. 그리고 감 값도 괜찮더라. 첫물에 바짝 마이 따서 출하해라. 돈 되게”

“온냐, 고맙데이”

동만은 오늘따라 동네 노인들과 이장을 만나면서 그래도 고향 인심이 최고라는 생각이 들었다. 도시와는 달리 이바구와 먹는 인심만은 아직도 푸짐하고 마음도 푸근했다. 가게를 나와 반쯤 피우다 끈 담배에 다시 불을 붙였다.

양 볼따구가 오목해지도록 힘껏 빨아 연기를 품으며 먼 산을 바라본다.

저 산에 아버지가 있었다. 저 산에 가면 억새풀 볏짚 냄새에도 아버지가 있다. 가을 들판에서 까시래기 날리며 타작하던 냄새가 아버지가 누워계신 산에서 난다. 욕심 많은 아버지는 살아생전 그 냄새마저도 저 산에 데리고 왔다. 동만의 등에서도 아버지 냄새가 난다. 아버지의 소소한 욕심 같은 것이 그의 몸에서도 흘렀다. 그 몸에 아버지가 있는 것이다. 어느덧 동만도 중년의 억새풀 되어 쉰내 풍기던 아버지같이 한 개비 담배연기에 청춘이 간다. 마을회관에서 마주친 장씨 영감 그 몸에도 아버지 냄새가 났다. 하회탈이 된 얼굴, 잘 익은 웃음, 잘 익은 슬픔이 보인다. 소나무 고목 밑둥치 같은 허물어져가는 육신을 이끌고 혼자 쓸쓸히 경로당을 지킨다. 말없이 엎드린 바위는 하고 싶은 말 다 뱉지 말고 아끼며 살라한다. 아버지는 동만에게 그렇게 말씀 하신다. 동만은 억새풀밭에서 아버지를 만났다.

 

딸까닥거리는 기계 소리를 들으며 청도댁은 둘째딸 정희와 단감 선별과 포장작업을 하고 있다.

“엄마, 아부지는 또 어데 갔노? 맨날 술만 묵고 일은 안하나? 엄마 혼자 일 다 한다 아이가”

“그런 소리 하지마라. 너거 아부지도 요새 속이 마이 상해서 그란다 아이가. 너거 오빠야가 공고 졸업하고 취업하다고 해서 더 마음이 안 좋은 갑더라”

“아부지도 그렇고 오빠야도 그렇고 와 그리 안 풀리노? 오빠야는 그래도 학교에서 성적이 잘 나와 선생님들이 대학 가라꼬 난리라 카던데”

“와 아이라. 너거 아부지가 그래서 더 속이 상하신 갑더라”

“엄마, 좀 힘들더라도 오빠야는 대학 보내거라. 내는 졸업하머 바로 취업 할테니까.”

“니는 그런 소릴랑 하지 말거래이. 너거 아부지 들으머 속이 천불난다.”

올해는 선별기에서 떨어지는 단감이 유난히도 크고 빛깔이 좋은 상품이 많이 나왔다. 청도댁은 감농사라도 잘 돼서 자식들이 대학에 갔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했다.

“너거 아부지도 참 불쌍한 사람이다. 성질이 좀 별나서 그렇지 인정도 많고 성실했는데. 죄라면 없는 게 죄지. 너거 삼촌이 사업인가 뭔가 하다가 아부지가 중동에서 고생해서 벌어온 돈까지 홀랑 날리고 너거 아부지가 다 덮어 썼다 아이가”

청도댁과 정희가 멀리 산허리에 내려앉는 노을을 바라보는 그 시간 동만도 한 개비 담배 연기를 날리며 상념에 젖는다. 가을 햇볕은 벼를 황금으로 만들어 놓았다. 잘 익은 저녁놀, 그 아래 펼쳐진 노란 들판이 살 따갑도록 눈부시게 펼쳐진다. 가을은 성숙의 계절이었다. 동만의 얼굴은 잘 익은 대추가 되고 갈대 대궁도 백발을 만든다. 노을이 모든 것을 태우고 익혀도 벼를 이기지는 못 했다. 노란 들판에 밀려 한쪽으로 벗어난 석양이 슬프도록 아름다운 저녁이 온다. 밀려나서 더 아픈 그 들녘을 따라 봉명 다방의 황금색 티코가 달린다. 황금들녘에 비치는 조그만 티코 자동차가 황금노을에 묻힌다. 봉명 다방의 그녀가 미치도록 아름답고 슬프다. 동만은 나이에 걸맞지 않게 오늘밤 노란불빛 아래에서 그녀와 눈앞이 노래지도록 놀고 싶었다.

상념에 젖어 있던 동만은 지나가는 경운기의 굉음에 문득 현실로 돌아왔다.

“현수 아부지 뭐 하는교? 뭐 좋은 일 있나? 뭐 보고 그리 히죽히죽 웃는교?”

“아무것도 아이라. 당신이 오늘따라 이뻐 보이서 그란다 아이가.”

“입에 침이나 바르고 그런 소리 하소. 저 양반이 오늘 와 저카노? 날아가는 참새 붕알을 봤나”

청도댁이 동만을 측은하게 바라보니 참 많이도 늙어 보인다. 백발과 시커멓게 그을린 이마엔 굵은 왕주름이 일자로 그어져 있다.

“당신도 참 마이 늙었소. 오늘따라 내 맘이 와 이런고 모리겄소.”

동만이 겸연쩍게 청도댁을 바라보니 그녀도 어느 듯 신혼 때 고왔던 모습이 이젠 할머니가 다 돼 있었다. 길게 늘어진 저녁놀이 산 너머로 내려앉고 있다.

동만은 지금의 감 밭을 만들기까지 일들이 주마등처럼 떠올랐다. 어린 고사리 손으로 리어카를 밀며 현수와 정희가 따라온다.

“현수야 마이 힘들제?”

“아이라예, 아부지가 힘이 쎄서 잡아당기니 미는 거는 힘이 하나도 안들어예”

“니는 커서 뭐가 되고 싶노?”

“내는 커서 학교 선생님이 되고 싶어예”

“정희는 뭐가 될끼고?”

“아부지, 내는 커면 돈 마이 벌어서 엄마 아부지 외국 여행 시켜드릴라 캅니더”

“오냐, 너거 말만 들어도 아부지는 기분이 억수로 좋데이”

조막손으로 그 넓은 밭에 널린 돌멩이들을 주워 리어카로 대 여섯 번씩 옮기고 나면 산 너머로 길게 붉은 저녁놀이 내려앉았다.

 

흑백의 제복을 입고 폼 잡는 까치가 험하게 뒤틀린 나무에 앉는다. 동만은 오늘 아침에 까치는 왜 끊임없이 머리를 끄덕거릴까 궁금해졌다. 비틀린 나뭇가지도 숨을 쉬는 모양인지 메마른 등껍질에 물이 올라있었다. 여름 내내 비가 오지 않아 애태우며 갈증을 느끼던 사람들에게 까치는 힘내라고 격려하는 것 같았다.

“그래, 살아있으면 살아야지, 죽지 못해 사는 게 아닌 살아있기 때문에 사는 게야”

살아야 하는 이유는 마른 세상을 위해 샘을 파야하기 때문이다. 까치가 머리를 끄덕이는 건 세상을 똑바로 쳐다보기 위함이다

삼년을 심고 가꾼 끝에 드디어 단감 밭에서 첫 수확을 얻었다. 초록의 물결 속에 노란 감들이 익어갈 때는 제주도 밀감 밭에 온 착각이 들었다. 그 감들이 주홍빛으로 물들어갈 때 동만은 가슴이 터질 것 같았다. 네 식구가 모두 매달려 첫 단감을 딸 때 사업실패 후 종적을 감추었던 동생 동수가 고향을 찾아왔다.

“행님, 그동안 고생 많았지예? 못난 동생 때문에 행님하고 행수님이 이래 고생을 했네요. 미안합니더… 정말 미안합니더”

“됐다, 고마 해라. 그래도 이래 다시 고향에서 만나니 얼매나 반갑노? 니도 그동안 고생 마이 했제? 니도 다 잘 살아 볼끼라꼬 하다가 그리 된 거 아이가? 지난 일은 다 잊어뿌자.”

그때 푸른 작업복 차림의 현수가 학교를 마치고 돌아왔다. 얼굴이 상기된 표정으로 달려온다.

“아부지, 아부지 기쁜 소식입니다. 엄마, 내 합격했심미더”

“그기 무신 소리고? 합격이라이? 니 취직됐나?”

“그기 아이고예, 내 대학교 합격 했심더.”

동만은 그 소식을 듣고 만감이 교차했다. 기쁜 마음에 근심도 함께 들었다. 내심 현수가 대학교에 가길 원했지만, 취업을 했으면 하는 마음도 있었던 것이다. 대학교에 합격 했더라도 뒷바라지를 해 줄 형편이 못되니 마음이 언짢았다.

“아부지, 걱정하지 마이소. 돈 한 푼 안 드는 대학교에 합격 했심더”

“그기 무신 소리고? 돈 한 푼 안 드는 대학교도 있나?”

“국립철도대학교에 합격 안 했십니꺼. 철도대학교”

철도대학교는 국립으로 모든 게 국비로 지원되는 학교였다. 기숙사에서 숙식도 함께 해결된다고 했다. 청도댁이 너무 놀라 눈시울을 적시며 현수를 바라본다.

“아이고, 우리 현수 장하고 고맙데이. 엄마가 면목이 없다 고마”

가지마다 주렁주렁 열린 주홍빛 감들은 모두가 동만의 자식들이었다. 씨줄과 날줄처럼 뒤엉켰던 한여름 폭염과 장마가 물러가고 어느새 코끝에 스산한 바람이 야음을 틈탄 도둑처럼 밀려왔다. 북면 천마산 낙동강변 들판은 홍빛으로 물들고 어른주먹보다 큰 첫물은 바리바리 싸서 서울로 보냈다.

하늘아래 첫 단감을 따도 최고로 수고한 농부는 볼품없는 파지단감만 한 입 가득 베어 물었다. 농부는 비록 파지 감을 먹어도 행복이 가득하다. 꽃가마 타고 저 멀리 사라지는 제일 좋은 홍빛 내 새끼들을 바라보는 전지가위 쥔 손엔 땟물만 시커멓다. 도둑맞은 것처럼 가슴이 허전해도 한편으론 흐뭇한 게 농부들의 마음이었다.

“행님, 동네 사람들한테 행님 이야기 마이 들었십니더. 북면에서 단감 농사를 제일 먼저 시작 했다면서요. 처음엔 마을 사람들이 행님보고 미쳤다고 손가락질 했다 카데요.”

“오냐, 그래도 내가 성공을 하니까 이제는 온 동네 사람들 너도 나도 단감 농사 한다 아이가”

“행님 참 대단합니더. 인간사 새옹지마라 카더니만”

“인자, 현수는 한시름 덜었으니 우리 정희 대학 시킬 일만 남았네 그려. 허허허”

누런 황금들판과 홍빛 감 밭에 짙은 노을이 내려온다. 저녁밥을 짓는 연기가 굴뚝을 타고 올라온다. 하루 일을 마친 경운기들이 둥지를 찾아 들어오고 있었다. 막걸리 한 잔, 노을 한 잔 마시고 두 뺨도 붉은 놀이 솟는다. 기분 좋은 웃음이 넘치고 먼 능선을 보니 온통 시뻘건 불천지다. 불이 붙는다.

대지가 헐떡일 땐 한바탕 소낙비가 제일이듯 목젖이 탈 때는 막걸리 한 잔이 최고다. 바싹 마른 나뭇잎, 푸석한 사람들의 얼굴도 가을 들판에선 반짝거리는 금잔디가 된다. 동만은 오늘따라 들이키는 막걸리가 지리산 토종꿀 맛 같다.

“정희 오매, 내일은 고구매 밭 한번 뒤집자.”

“행님, 내는 가볼랍니더. 조만간 또 오겠심더. 행수님하고 고기나 좀 사 드시이소”

자고 가라는 동만을 뿌리치고 서서히 내리는 어둠 속으로 동수는 발걸음을 재촉한다. 동만은 억지로 동생이 호주머니에 찔러주고 간 신문지를 펼쳐보니 지폐다발이 나왔다. 모두 이천 만원이었다.

너무 맑아 시린 눈물 나는 하루, 반겨주는 이 없이 풍성하다 못해 겁나게 푸르른 감잎들을 본다. 가을, 또 이별의 시간이 다가온 것이다. 붉은 홍시가 익어가도 아무도 쳐다보는 이 없는 시골 빈집 적막한 시간 속에도 감나무는 홀로 이별하며 내년을 기약한다. 우듬지 끝에 매달린 외로운 감 하나는 희망을 물어올 까치를 기다린다. 이별과 이별의 시간 속에 새로운 만남을 기다리는 것이다. 그것 또한 삶의 일부분이다. 이별이 있기에 새로운 희망이 있는 것, 동만은 다시 찾아올 내일을 위해 나무처럼 볕 바라기를 한다.

현수는 오년 만에 처음으로 좋은 인사고과를 받아서 연말에 보너스를 두둑하게 받았다. 부모님의 낡은 구두를 바꿔주려고 아내와 백화점에 갔다. 나선 김에 아내의 가을 옷도 한 벌 사 주려 했지만 그녀는 한사코 사양을 했다.

“자기야 고마 시장에 가자.”

싫다는 아내의 손을 잡고 백화점에 갔지만 입구에서부터 구십도 인사하는 종업원들을 보니 어쩐지 인사받기가 어정쩡하다. 매장에 들어서니 또 구십도 인사, 한발자국 떼면 또 인사를 한다.

“자기야 고마 시장에 가자”

현수에게 눈총을 주며 앞서가는 당당한 아내 뒷모습을 보니 마음이 짠하다. 낡은 스웨터에 대충 걸친 멜빵이 영락없는 시골 아낙네다.

“자기 겨울옷이나 한 벌 사자”

“내는 맞는 사이즈가 없어서 못 사”

실랑이를 벌이다 화장실에서 볼 일을 보고 나오니 고개 숙인 채 걸레질하는 미화원이 지나간다. 출입문 지나 주차장엔 번쩍번쩍 광을 낸 중형차들이 지나간다. 백화점엔 삶에 지친 인생이 있고 삶을 즐기는 인생도 있었다

현수는 부모님들 구두만 사고 아내와 시장으로 향했다.

“아지매요, 이거 얼맨교?”

“이만 원입니더.”

“쪼매이 깎아 주이소”

“그리는 안 되는데, 만 구 천원만 주이소”

현수와 아내는 지갑에 돈이 있건 없건 시장인심이 더 좋았다. 시장에 가면 구십도 인사하는 사람이 없어서 좋다. 오랜만에 현수는 아내와 국밥집에서 막걸리를 한 잔 했다. 아버지가 즐겨 마시던 막걸리를 현수도 어릴 적부터 즐겨 마셨다. 가게에 막걸리 심부름을 시키면 주전자에 든 막걸리를 홀짝거리며 맛을 익혔던 것이다.

현수가 가장 좋아하는 술은 막걸리다. 가끔은 맥주나 소주 또는 양주, 정종 등 다양하게 맛을 보지만 일상적으로 즐기는 것은 막걸리였다. 그러다보니 사람들이 그의 생긴 모습도 막걸리타입이라고 한다. 아무리 이미지 관리를 하려고 해도 막걸리스타일을 벗어나지 못하게 돼버렸다. 심심풀이로 음료수처럼 마시는 술이니 오죽하랴.

중학교 다닐 무렵엔 본격적으로 숨어서 막걸리를 마셨고, 고등학생 때에는 가끔 술로 인해 부모님의 속께나 썩였던 기억이 있다. 그러다보니 지금도 동창들을 만나면 첫인사가 “야, 막걸리 온다.”부터 시작한다. 그리고 묻는 질문이 “요즘도 막걸리 많이 마시냐?”고 한다. 이제 좀 스타일 바꾸라고 하지만 그게 잘 안 된다. 성격이 좀 싹싹하지를 못하고 과묵한 편이어서 사람들과 쉽게 친해지지 못하지만, 한번 친해진 사람들은 참 오래 가는 편이다.

먼 훗날 노년의 꿈이 있다면 양지바른 언덕위에 흙으로 집을 짓고 커다란 항아리를 몇 개 장만하여 동이마다 갖가지 술을 담아놓고 싶었다. 친구들을 초대하여 밤새워 이바구를 하고 뜨끈한 아랫목에 몸 지진 후 아침에 해장국 한 그릇 대접하고 싶은 것이다.

“내도 아부지를 닮았는지 이 막걸리가 참 좋더라고”

“이 일을 우짜노, 촌놈 아이라 칼까 봐 자기도 우찌 그리 막걸리를 좋아하노? 아버님 닮았나? 피는 못 속인가 카더이 그 아부지의 그 아들이다.”

“한 잔 하고 퍼떡 가자. 어무이 아부지 기다리시겠다.”

“누가 효자 아이라 칼까 봐 자기 부모는 그리 알뜰하게 챙기쌋노? 마누라도 그리 잘 챙기봐라”

“올해는 감 농사가 잘 됐다 카더라. 그기 다 우리 이쁜 마누라가 부모님한테 잘 한 덕분 아이가? 고맙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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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D : ilkang1004    
2011-02-21    
20:36:31    
예외석 작가님 잘 감상했습니다
올 한해도 문운이 창대 하옵기를 비옵니다.

거제도에서 이원국 배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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