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똠방각하와 노진구(소설)
2010-10-21 23:47:17
예외석

조회:1891
추천:97

똠방각하와 노진구(원고지 105매)

예 외 석

 

오늘따라 전화벨이 요란하게 울어댄다.

“여보세요, 음... 그래 잘 지내? 나야 늘 그렇지 뭐, 뭐라고? 어 축하할 일이네, 어이구야 축하한다.”

통화를 하면서 강덕수는 볼이 흉하게 일그러졌다. 그가 기분이 더럽게 나쁠 때 나타나는 현상이다. 통화를 끝낸 강덕수는 ‘쾅’소리를 내며 수화기를 내려놓았다.

“새끼, 건방진 놈이 진급을 해? 새끼가 말이야”

“예? 저 말입니까?”

“아니, 너 말고, 내 동기 놈이 진급을 했다는구먼, 건방진 새끼”

강덕수는 사관학교 동기가 대령으로 진급했다는 연락을 받고 심기가 단단히 틀어진 것이다. 그는 자신이 알고 있는 모든 사람들이 경쟁의 대상이고 그들이 조금이라도 잘되면 아니꼬워서 못 견뎌 했다. 자신이 군대에서 진급을 하지 못하고 소령으로 예편한 것에 대해 늘 열등감을 느끼고 있었던 것이다. 그 후 예비군 지휘관 시험을 거쳐 겨우 직장 예비군 중대장으로 근무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사회에 나와서도 그는 군대에서의 습성을 버리지 못하고 주변 사람들에게 늘 무식하다는 소리를 들으며 빈축을 샀다. 부서 회식을 할 때도 자기가 나서서 부서원들의 서열을 매겨 앉는 좌석을 지정해주었다.

“김 대리 너 거기 앉고, 조 차장은 여기 그리고 팀장님은 가운데 이쪽으로 앉으시죠.”

분위기가 무르익으면 자신이 전체의 좌장 노릇을 해야만 직성이 풀렸다.

“어이 김 대리 너 인마, 무릎 꿇고 팀장님께 술 한 잔 따라드려 그래, 그렇지”

덕수는 기분이 틀어지면 일행 중 누군가를 한 명 지정해서 스트레스를 주는 것이다. 누군가에게 자기가 열 받은 것을 꼭 풀어야만 했다. 자기가 따라주는 술을 빨리 마시지 않는다고 트집을 잡고 눈을 부라리며 상대방의 술잔을 자신의 잔으로 슬슬 밀어버리는 것이다. 이 때 동작을 빨리 하지 못하면 술잔이 엎어져 기어이 바짓단을 적시고 만다.

부서 전체 회식을 하던 중 한바탕 소란이 벌어졌다. 조 차장이 분을 참지 못하고 술상을 엎어버린 것이다. 사건의 발단은 물론 강덕수였다. 하필이면 조 차장을 강덕수 앞에 앉혀놓고 조져버린 것이다. 나이도 어린 조 차장이 강덕수를 앞질러 진급한 것에 대해 상당히 불쾌했던 감정을 해소하기 위해 골탕을 먹인 것이다.

“야, 조 차장 너 왜 인마 술 빨리 안 마셔? 내가 따라주는 술은 기분 나빠 못 마시겠다는 거야 뭐야?”

자신의 버릇대로 술잔을 슬슬 밀어서 조 차장의 바지에 소주를 적시고 말았다.

“어? 어이구 미안하구먼, 그러게 왜 빨리 술 안 마시는 거야? 사람이 동작이 빨라야지”

“괜찮습니다. 이정도야 뭘”

“안 괜찮으면 어쩔 건데?”

강덕수는 한번 물면 놓지 않는 더러운 습성이 있었다. 불쌍하게도 조 차장이 제대로 걸려든 것이다.

“너 술잔 쏟았으니 이번엔 벌주로 곱빼기야”

강덕수는 조 차장에게 맥주잔을 건네고 소주를 가득 따라주며 마시라고 강요했다. 팀장이 강덕수를 제지하며 눈치를 줬지만 그는 안하무인이었다. “강 과장, 술은 적당히 각자 주량대로 마시게 해요. 왜 그렇게 강요를 하나? 여기가 군대인가?”

“아 예 알겠습니다. 하지만 오늘은 모처럼 부서회식인데 기분을 살려야 하지 않겠습니까. 헤헤”

강덕수는 ‘강 과장’이라는 직함 때문에 더 기분이 틀어졌다. 자신보다 나이가 밑인 조 차장을 앞에 두고 심한 모멸감이 든 것이다.

“거 왜 팀장은 애들 보는 앞에서 강 과장, 강 과장 하는 거야? 새끼가 말이야”

강덕수는 앞에 있는 조 차장에게 눈을 부라리며 또다시 술을 강요했다. “어이, 인마! 조 차장 너 차장이라고 나한테 유세 떠는 거야 뭐야? 빨리 술 안 마셔? 그리고 너 중위로 제대했지? 학군 몇 기야? 새끼, 중위 주제에 소령 앞에서 건방지게”

강덕수는 조 차장에게는 계급으로 건방을 떨지만 실제로는 정규 사관학교도 아닌 2년제 사관학교를 꼴찌로 겨우 졸업한 골통이었다. 불쌍한 조 차장은 맥주잔에 가득 담긴 소주를 털어 넣고 급하게 잔을 덕수에게 내밀었다. “아, 아 후레아들 삼배야 이거 왜 이래? 세 잔 마시고 나한테 넘겨”

홧김에 조 차장은 기어이 막소주를 세 잔 연거푸 마시고 잔을 내밀었다. 그 눈동자는 이미 초점을 잃은 채 벌겋게 달아오르고 있었다. 덕수는 조 차장이 내민 잔에다 자작으로 소주를 반쯤 따라서 홀짝 마시고는 그만이었다.

“자, 자 이제부터는 내가 특급으로 제조해서 한 잔씩 쫘악 돌리겠습니다.”

덕수는 맥주잔을 열 개 가져다 놓고 맥주와 소주를 반쯤 섞은 폭탄주를 만들어 모두에게 돌렸다. 순간 머리꼭지가 돌고 눈에 불이 붙은 조 차장이 술상을 와장창 엎어버렸다. 초고추장이 튀어 팀장의 흰 와이셔츠를 벌겋게 물들여버렸다. 벌건 초고추장을 보는 조 차장의 눈자위도 핏빛으로 물들기 시작했고 덕수는 속으로 쾌재를 부르고 즐거워했다.

“그래 이놈아 더 미쳐 날뛰어라 더 흐흐흐”

“조 차장 자네 왜 그러나?”

팀장은 사태를 짐작했다. 보나마나 덕수의 장난 짓이 분명했던 것이다.

“강 과장 자네 또”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른 조 차장은 덕수에게 대들었다.

“씨팔, 내 술은 술이 아니야? 왜 내게는 술 퍼 먹이고 자기는 안 먹는 거야 왜?”

“으흠, 야! 인마, 술은 자기 주량대로 마셔야지 무슨 소리야?”

눈동자를 동그랗게 굴리며 덕수는 능청을 떨었다. 결국 폭발해버린 조 차장은 술상을 다 엎어버리고 식당 전체를 난장판으로 만들어버렸다. 부서원들은 하나 둘 자리를 털고 달아나버리고 팀장은 덕수에게 사태를 수습할 것을 지시하고 가버렸다.

마지막까지 남은 건 조 차장과 노 대리뿐이었다.

“어이, 노 대리 네가 남아서 쓰레기 좀 치워, 저 인간쓰레기 같은 새끼”

덕수는 조 차장을 인간쓰레기로 부르며 바람처럼 휭 사라졌다. 조 차장은 숨을 헐떡거리며 노 대리에게 기대었다. 아직도 분이 삭지 않았는지 맥주잔을 쥐고 벽에 부딪쳤다. 조 차장의 손은 순식간에 시뻘겋게 물들고 붉은 꽃잎들이 바닥으로 뚝뚝 떨어졌다.

“노진구, 진구야 이런 꼴 보여서 미안하다.”

“형님, 왜 이러세요. 손이나 좀 봅시다. 유리조각 안 박혔는지”

강덕수는 비위가 상하면 이런 식으로 여러 사람이 보는 앞에서 자신이 찍은 사람을 완전히 묵사발로 만들어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의 소유자였다.

 

*

 

노진구 36세, 회사원. 그는 공대를 졸업하고 현재의 직장에 입사하여 5년간 엔지니어로 근무를 했었다. 중간에 몸이 좋지 않아 휴직을 하고 요양한 후 복직 했으나 보직이 주어지지 않았다. 회사에서는 이번 기회에 적당히 손을 봐서 짤라 버리라는 암묵적인 강요였다. 휴직하기 전 상사의 업무 비리를 감사팀에 제보한 것이 화근이었다. 한 마디로 조직 내 배신자이기 때문에 건방지다는 것이었다. 그로 인해 주변 동료들과 상사로부터의 지속적인 따돌림과 스트레스가 원인이 되어 진구는 결국 휴직하게 된 것이다.

일년간 별다른 보직 없이 멍하게 컴퓨터 화면만 쳐다보며 버티었다. 그것도 중앙 전산 시스템 팀에서 수시로 해킹하여 시스템을 파괴하고 조작하는 등 스트레스를 주는 악랄한 짓을 참아내야 했다. 의지의 사나이 노진구, 그는 결국 일년을 버틴 끝에 누구도 가기 싫어하는 예비군 중대에 인사명령이 떨어졌다. 강덕수 중대장과 노진구의 악연은 그렇게 시작된 것이다.

사무실을 옮긴 후 출근 첫날부터 덕수는 노진구에게 정신개조 작업을 시작했다.

“어이, 노대리 차 한 잔 가져와봐. 너 커피 탈 줄 알지?”

덕수는 노진구를 그렇게 철저한 동사무소 방위병으로 만드는 작업을 시작했다. 업무지시가 떨어지면 즉각 행동에 옮기도록 강요했고, 문서도 컴퓨터를 ‘탁’ 하고 치면 ‘툭’ 하고 나올 수 있도록 하라는 것이었다.

노진구는 박종철이 물고문 당하다 죽었을 때 ‘탁’ 하고 치니 ‘억’ 하고 죽더라는 말이 떠올랐다.

“이건 고문이구나. 하지만 한번 견뎌보자. 네 놈이 원한다면 우선 철저한 개 노릇을 해주마. 시간이 흘러 네 놈의 껍데기를 벗겨 주마”

회사에서는 노진구를 의도적으로 작정하고 예비군 중대로 인사명령을 낸 것이었다. 철저히 자존심을 짓밟고 개로 만드는 훈련을 시키는 것이었다. 못 견디면 스스로 나갈 수밖에 없도록 덫을 놓은 것이나 다름없었다. 직장에서 예비군 중대로 갔다는 것은 모든 인사고과나 진급에서 배제되는 수모도 감수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했다.

덕수는 한 마디로 똠방각하였다. 작은 공화국을 다스리는 영주로서 무소불위의 권력을 쥐고 흔드는 줄 착각하고 있는 사나이다. 노진구는 그런 덕수를 보면 TV에 자주 등장하던 미리 벗겨진 전 장군이 생각났다. 이름 하여 똥 장군.

“음. 그래 그래야지. 새끼들”

그는 전화 통화 할 때마다 말끝에 새끼 또는 또라이 새끼들이란 소리를 습관처럼 달고 다녔다. 회사 전체 행사 때마다 맨 앞에서 인원 통제 하던 재미도 쏠쏠했다. 군대에서처럼 자기 말 한마디에 많은 사람이 차렷. 열중 쉬 엇 하며 움직여 주었기 때문이다. 어느 날 공장장의 지시로 모든 행사 때 총무담당인 조차장이 인원점검과 행사진행을 하게 되었다. 당연히 마이크도 조차장 담당이다.

덕수는 한동안 입에 ‘씨팔 씨팔’ 을 달고 다니며 공장장과 조차장을 노골적으로 씹고 다녔다. 그러다 보니 애꿎은 예비군 대원들만 훈련 때마다 힘들게 이리 뛰고 저리 뛰어 다녔다.

“야. 이 새끼들아 초소 이동할 때마다 무전기로 보고 하란 말이야.”

마주치는 대원들마다 돼지처럼 ‘웩웩’ 소리 지르며 다녔다. 그러던 중 어느 날 노동조합 간부를 하던 예비군 대원에게 된통 얻어 걸리고 말았다.

“중대장님. 거 좀 말뽄새 곱게 씁시다. 우리가 나이가 몇인데 이 새끼. 저 새끼요? 그리고 우리가 현역병들이요? 군대 제대한 지가 언젠데 아직도 사병 취급이란 말이요?”

덕수는 얼굴이 벌겋게 되어 씩씩거리기만 할 뿐 아무 대꾸도 하지 못했다.

그는 군대에서도 진급하지 못해 소령으로 간신히 전역하고 예비군 지휘관으로 임명되고도 회사에서 과장 직급의 대우 밖에 해주지 않는다는 이유로 늘 불만을 가지고 있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여러 가지 신변에 변화가 일어나자 그는 히스테리적 성격이 되어 애꿎은 노진구만 들들 볶기 시작했다.

노진구와 사무실에 같이 있을 때면 평소처럼 사무적인 업무지시를 하다가도 꼭 사람들이 많이 모인 장소에서는 고래고래 고함을 질러댔다. 자기과시 욕구를 그런 식으로 푸는 것이다. 노진구는 몇 차례 그런 인격적 모독을 참을 수 없어서 시정해 줄 것을 요구했다. 하지만 덕수는 시간이 지나면 곧 잊어버리고 여전히 안하무인 똠방각하가 되고 마는 것이었다.

덕수는 일과시간이면 노진구에게 모든 것을 맡겨 버린 채 골프장이나 부동산 사무실 같은 곳을 기웃거리며 유람을 다녔다. 한마디로 국가에서 인정한 날건달인 셈이다. 그런 덕수를 보고 노진구는 혀를 찼다.

“국민의 세금을 받아서 저런 날건달들을 먹여 살리는 구나. 쯧쯧”

노진구는 심적으로 고통스러울 때도 많았지만 잘 적응하고 덕수의 비위만 잘 맞춰주면 육체적으로 편할 때도 있었다. 단순 무식한 중대장은 때마다 식사나 술대접을 상납하면 한 동안은 흡족해서 잘 대해 줬기 때문이다. 그런 그가 경비대장을 내쫓아 버린 사건이 있었다. 경찰 출신 경비대장이 워낙 융통성 없이 원칙대로만 근무를 하다 보니 중대장은 못마땅했다. 보다 못한 노진구는 경비대장에게 넌지시 조언을 해 주었지만 소용이 없었다.

“경비대장님, 한 번씩 중대장님께 식사 대접이라도 좀 하세요. 술도 한 잔 사시고요, 싫더라도 한 번씩 인사치례를 해 놓으면 좀 낫습니다.”

“우리는 그렇게까지 해서 직장생활 안 할 랍니다. 근무만 열심히 잘하면 되지 그런 것까지 바라는 사람이 나쁜 것 아닙니까?”

“물론 그렇기는 하지요...”

탐욕스런 돼지 같은 중대장은 경비대장에게서 별로 얻어먹을 만한 것이 없다 싶으니까 노골적으로 괴롭히기 시작했다. 결국 경비대장의 옷을 벗기고 자신이 잘 아는 사람을 경비대장으로 앉혔다.

노진구는 옆에서 이 모든 것을 지켜보며 세상사는 요령을 터득해 나갔다. 하지만 이런 것은 결코 옳지 않다는 것은 분명히 새겨 두었다.

“월급을 따져도 자기의 절반도 되지 않을 경비들에게 밥 얻어 처먹고 술 얻어 처먹으면 기분이 좋을까?”

그러나 어이없게도 강덕수는 벼룩의 간을 빼먹고 모기 피를 쪽쪽 빨아 먹고도 아주 기분이 흡족해 할 그런 사람이었다. 그는 태생적으로 그런 흡혈귀 같은 잔인성을 타고 난 것 같았다.

그런 접대를 받고 나면 며칠 간 기분이 고조되어 만나는 사람마다 반갑게 인사하며 다녔다.

“아이구, 오랜 만이야, 요즘 신수가 좋아, 언제 술 한 잔 해, 으하하하”

술 한 잔 하자는 소리는 자기가 낼 것처럼 말해도 상대방에게 사라는 뜻이다. 게걸스럽게 맛 좋은 점심이라도 얻어먹고 나면 기분 좋게 이빨을 쑤셔댔다. 그러다 성에 차지 않으면 사무용 클립을 손으로 확 펴서 이빨을 쑤셔댔다. 노진구는 덕수가 하는 짓들이 점점 혐오스러웠다.

“참으로 징그러운 놈이다.”

그런 강덕수에게 드디어 날벼락이 떨어졌다. 공장이 통합되면서 본사 예비군대대와 중대가 하나로 합쳐진 것이다. 예비군 중대는 결국 소대로 격하되고 덕수는 본사 대대장의 지휘 통제를 받게 되었다. 이제껏 독립적으로 마음껏 무소불위의 권력(?)을 누리던 중대장은 하루아침에 상급자가 생긴 것이다. 자기 위에 아무도 없는 것처럼 팀장조차도 무시하던 그는 속이 뒤틀어지기 시작했다.

 

*

 

덕수는 통합하기 전까지 본사에 수시로 업무보고를 하기 위한 출장이 잦아지면서 부쩍 신경이 날카로워졌다. 습관처럼 늘 “씨팔, 씨팔”을 중얼거리며 대대장을 씹고 다니기 시작했다. 덕수는 천성적으로 자기 위에는 아무도 없이 혼자 세상을 살아 온 사람 같았다. 누가 자기에게 조금이라도 기분에 거슬리는 말을 하면 참지 못하는 성격이었다. 군대시절 경력도 무식하기 이를 데 없는 공수부대 출신이었다. 그것도 5.18 광주학살 때 박달나무 몽둥이로 시민들을 짐승처럼 때려잡던 흉폭한 자였다. 그 잔인성이 사회에 나와서까지 계속 이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그는 기분이 수틀릴 때마다 공수부대 시절 입었던 군복을 다시 꺼내어 입고 회사 안을 마치 시위하듯이 거드름을 피우며 돌아다녔다. 그럴 때마다 사람들은 뒤통수에다 “저런 무식한 놈” 하면서 손가락질했다. 그러나 정작 당사자인 덕수는 뻔뻔함이 타고난 것인지 진짜 무식한 것인지 전혀 느끼질 못했다. 노진구는 그런 중대장 밑에서 근무하며 다른 건 몰라도 이 험한 세상을 살기 위해서 덕수의 무식함을 조금은 닮고 싶었다.

“천하무적이구나, 천하무적”

그런 천하무직도 이젠 대대장의 임무를 받고 수행해야 하는 부하직원의 신분이 된 이상 덕수도 더 이상 대장이라고 할 수가 없었다.

그랬다. 덕수는 본사에 온 이후에도 끊임없이 이 사람, 저 사람의 험담을 하고 다녔다.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은 곧 공격목표가 되어 씹고 다녔다. 처음엔 자신의 말을 들어주던 사람들도 곧 덕수의 잔인성에 질려 등을 돌리고 말았다. 그는 자신을 대접해 주지 않는 사람에게는 반드시 말로서 복수를 해주는 못된 버릇이 있었다. 자신의 상급자인 대대장도 씹고 다녔으니, 회사 내에서는 몹쓸 사람으로 낙인 찍히고 만 것이다.

옛말에 호랑이 피하려다 여우 만난다고 했던가. 중대장을 음흉한 늑대나 멧돼지에 비유하면 대대장은 교활하고 영악한 여우 같았다. 군복을 입었던 사람들에겐 이상하리만치 음흉한 습성이 있었다. 그것은 다른 사람들 사이를 기가 막히게 이간질을 잘 시킨다는 것이다. 싸움을 붙여놓고 자기는 쏙 빠져 버리는 것이다. 그리고 다른 사람을 곤경에 빠트려 놓고 굉장히 즐거워하는 습성이 있었다. 일종의 사디즘과 같은 정신질환 같았다.

사디즘은 다른 사람을 괴롭히는 것을 통해서 성적만족을 얻는 성도착의 한 종류를 말한다. 타인에게 괴로움을 주는 것으로써 성적 만족을 얻는 경우로 주로 상대방이 동의하지 않은 상태에서 고통을 주는 것을 반복하며 때로는 상대방의 동의 하에 심한 모욕과 가벼운 상처 만들기나 영구적이며 치명적인 손상을 입히는 것으로 성적 만족을 얻는 경우다. 노진구는 그런 군 출신들을 두 사람이나 상급자로 모시면서 도움 되는 것을 잘 배우되 나쁜 것은 철저히 버리는 살얼음판과도 같은 생활을 하였다.

덕수는 통합 이후에도 노진구가 예전처럼 자기의 수족처럼 말을 잘 들으리라 생각했지만, 노진구는 이제 새로운 대대장의 업무지시 외엔 움직이지 않았다. 덕수는 그 버릇이 도져서 회사 전체를 다니며 노진구를 씹어대기 시작했다. 처음엔 덕수의 말을 그대로 믿었던 사람들은 노진구를 이상한 놈으로 취급하며 외면했지만 곧 사실을 알게 되었다. 덕수는 대대장도 씹다가 노진구를 씹다가 마음대로 되지 않자 자기 성질에 자기가 못 이겨 생병이 날 지경이었다.

한 사무실에 대장이 두 명 있으면 한 명은 죽어 주는 게 조직의 생리다. 죽지 않으면 결국 억지로 밟히게 되어 있다. 결국 밟히고만 덕수는 대대장이 임기가 끝나고 퇴직 할 날만 손꼽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나 대대장도 그리 만만하고 호락호락한 사람이 아니었다. 자신이 퇴직한 이후에도 중대장이 까불지 못하도록 조직편제를 조정해 놓은 것이다. 예비군 인원수를 조정해서 대대를 중대로 격하시켜 독립중대가 아닌 팀에 예속된 조직으로 흡수시켜 버린 것이다. 결국 이래나 저래나 덕수는 이제 과거의 기고만장하던 똠방각하 노릇을 두 번 다시 하지 못하게 되었다.

노진구는 이제 어지간한 일에는 눈도 깜짝하지 않는 내공이 쌓였다. 조직 내에서 따돌림 당해 예비군중대로 보직발령이 났지만 오히려 그것이 전화위복이 된 것이다. 중대장과 대대장, 늑대와 여우 사이에서 산전수전을 겪다보니 저절로 생존술을 터득하게 된 것이었다. 회사에서는 미운 오리 새끼를 털 벗기고 잡아먹으려 보낸 호랑이 굴에서 노진구는 호랑이 새끼로 변해 버린 것이다. 이제 한 마리의 호랑이가 되어버린 노진구는 변종아메바처럼 어떤 악조건에도 조직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힘과 능력을 축적하게 되었다.

사람은 회사든 학교든 음식점이든 또는 종교단체든 조직과 연관된 곳에서 깨어있는 시간 대부분을 보낸다. 그 만큼 조직이 우리 삶에서 큰 범주를 차지하고 있는 것이다. 노진구는 이론적인 연구보다도 자신이 몸소 한 체험을 통해 조직의 생성과 소멸을 목격했다. 사람들은 조직 속에서 경쟁에 이기기 위해 다른 팀이나 팀원들과 전략적 제휴나 파트너십을 맺으며 그 환경에 대한 영향력을 행사하게 된다. 어쩌면 사람과 사람, 조직과 조직의 관계는 불교에서 말하는 연기법과 밀접하게 닮았다고 할 수 있다.

남이 잘 되면 기뻐해 주고 남이 잘못될 때 안타까워해 줄줄 아는 마음가짐, 그것이 필요한 것이다. 치열한 생존경쟁의 전쟁터에서는 남의 불행이 곧 나의 행복이라며 즐거워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그것은 순간의 쾌락일 뿐이다. 모든 사람들은 행복해질 권리가 있고, 서로 같이 동반 성장할 때 진정한 즐거움을 나눌 수 있는 것이다.

세상 사람들은 남의 집 담을 넘는 이를 도적이라고 한다. 남의 집 담을 넘다 쫓기는 도적보다 더 큰 도적은 세상의 은혜와 은덕 속에서 살면서도 갚을 줄 모르고 자신을 속이며 사는 우리 자신들인지도 모른다. 노진구도 한때 자신이 처한 절망적인 상황의 원인을 모두 남의 탓으로 돌린 적이 있었다. 자신은 잘못한 게 없는데 남들이 자신을 곤경 속으로 몰아 넣었기 때문에 고통스러운 거라고 생각했다. 물론 사실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그러나 그건 시간이 지나서 보면 아무런 의미가 없는 일이다. 과거보다는 현재가 더 낳은 상황이라면 분명히 누군가로부터 도움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인 것이다. 자신의 노력만으로는 한계가 있을 수 있다.

노진구는 항상 감사하며 살기로 했다. 사람이 절망 중 인줄 알아도 그 고난의 시간을 견디고 나면 더 굳센 힘이 길러졌음을 깨닫게 된다. 불교에서 말하길 인과응보라고 했던가. 모든 것이 한 만큼 돌아오게 되어 있다. 남에게 해를 끼치면 그 해가 결국 자신에게 돌아오게 되어 있다. 그것은 시간이 더 걸리고 덜 걸리는 차이일 뿐 필연적으로 이루어지게 되어 있다. 그런 의미에서 노진구는 중대 빡, 대대 빡(사람들은 그렇게 부른다) 두 사람에게 고마움을 느낀다. 모진 시련을 통해서 노진구에게 힘을 길러 주었기 때문이다.

 

*

 

“호랑이는 굶어도 풀을 먹지 않는다.”는 말이 있다. 한반도에서 과연 군복무가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을까. 무엇 때문에 존재하는 것인가. 세상에는 공짜가 없다. 이것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모두 공감하는 사실이다. 강원도 최전방에서 군복무를 한 진구는 군복무를 어떠한 수단이나 편법으로 기어이 기피하려는 사람들이 있음을 볼 때 안타까움과 함께 서글픔을 느꼈다.

“노블레스 오블리주가 실종된 사회에서 우리가 기대할 것은 더 이상 아무 것도 없어”

얼마 전 한 언론사에서 대학생들을 상대로 국가의 위기 상황이 닥쳤을 때 군대에 자원 하겠느냐는 질문에 놀랍게도 51%의 젊은이들이 절대로 군대에 가지 않겠다는 통계가 나오는 것을 들었다. 라디오 방송을 통해 그 소리를 들은 진구는 순간 가슴에 짠한 통증이 오며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과연 누구의 책임인가. 얼마 전에 언론을 통하여 대대적으로 보도가 된 지도자급 인사들의 자녀 국적 포기 사태는 그 규모도 규모지만 내용 면에서는 더더욱 충격적이었다. 이른바 ‘사회 지도층 인사’들의 자녀 국적 포기 사례가 이만 저만 심각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들 중엔 군 장성급 출신 인사도 상당수 포함되어 있다니 입만 열면 나라 사랑을 강조하던 그 ‘상무정신’은 다 어디로 가 버렸단 말인가.

멀리 갈 것도 없다. 자신도 군 장교로 복무한 사람이면서 자신의 아들은 가까운 곳에 있는 사단의 PX병으로 근무시킨 작자가 있다. 바로 강덕수다. 그러면서도 회사 내 예비군 대원들 중 현역으로 군복무를 마치지 않은 직원들을 보면 틈만 나면 비아냥거렸다.

“저것들이 인간이야? 순 싸구려 족속들이야. 군대도 안 갔다 오고 말이야 자식들이”

자녀들의 군복무를 기피하게끔 방조한 사회지도층 인사들의 면면을 보면 가장 모범이 돼야 할 사람들이 가장 파렴치한 편법을 동원하여 자녀들에게 세상을 아주 쉽게 살아가는 요령을 가르쳐 주고 있는 것이다. 그 자녀들이 또다시 편법을 동원하여 우리 사회에서 가장 상층부의 집단에서 활동을 한다면 결국 이 나라는 반드시 총체적인 위기가 오고야 말 것임은 자명한 사실이다.

어떤 이는 한국 사회에서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이야기 하는 것은 적합하지 않은 것 같다고 말한다. 도대체 실종될 만한 노블레스 오블리주가 있기나 했는지 의문이 든다고 한다. 한편으론 이해할 만도 하다. 지도층의 도덕적 엄격성이 한국 사회에서 일정한 흐름으로 자리 잡지 못했음을 강조함일 수도 있다. 명예를 가지려면 그만큼 사회적 의무도 함께 책임질 수 있어야 진정한 지도자의 덕목을 갖추었다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진구는 틈만 나면 그 가벼운 입으로 부하 병사들에게 상무정신을 강조하였을 장군들에게 감히 한마디 해주고 싶다.

물령망동 정중여산(勿令妄動 靜重如山)

“가벼이 움직이지 마라. 침착하게 태산같이 무겁게 행동하라”

바로 이순신 장군이 부하들에게 지시하며 몸소 행동으로 실천한 말이다. 번쩍이는 별을 이마와 양 어깨에 달고 온갖 휘장을 자랑하면서도 뒤로는 한낱 잡배들 보다 못한 오늘날의 장군들이 가슴에 새기고 또 새겨야 할 덕목인 것이다.

초등학생들도 다 알고 있는 내용이지만 한국 사회에서 분명하게 존재하였던 살아있는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한 분이 있다. 그가 바로 살아 있는 상무정신 이순신 장군이다. 대한의 군바리들은 그분의 생애를 통하여 자랑스러운 ‘참군인 정신’과 나라사랑의 길을 영원토록 가슴 속에 아로새겨야 할 것이다.

가난한 선비 집안의 평범한 인간으로 태어나서 충효, 책임, 용기, 희생, 솔선수범 등과 같은 올바른 삶의 지표(指標)를 설정하여 무수한 곤경을 이겨낸 이순신의 생애와 사상을 통해 우리는 그를 성웅(聖雄), 영웅(英雄)이라고 부르면서 존경하고 그의 리더십과 인물성을 본받으려 하고 있다.

또한 백의종군(白衣從軍) 기간에는 계급도 없이 나라를 위해 싸웠을 정도로 이순신 장군에게는 개인의 명예는 안중에 없었고 오로지 국가의 안위만을 걱정 하였다. 그는 오로지 국가안위를 위해 개인의 명예를 버렸기 때문에 더 큰 명예를 얻었던 것이다. 우리는 그것을 상무정신이라고 부른다.

오늘날에 개인과 일족의 무사안일을 위하여 명예를 헌신짝처럼 던져버린 잘난 장군들에게는 아무리 강조해 보아도 쇠귀에 경 읽기일 것이다. 자신의 무사안일을 위하여 걸레처럼 버렸던 국적을 나중에 또다시 자신들의 성공과 부귀를 위하여 되찾으려는 시도를 할지도 모른다. 진구는 그들이 아예 다시는 돌아오지 않기를 간절히 기원했다.

우리는 흔히 사회의 일부 부정적인 모습들을 보게 되면 세상이 다 그렇다는 식으로 현실과 타협하기 쉽다. 그러나 그 잘못된 세상 속에는 우리 자신도 포함되어 있다는 것을 생각해 보아야 한다. 세상이 다 그렇더라도 나만은 그렇지 않아야겠다는 마음가짐, 이것이 이 사회를 지탱해 나가는 힘이 아닐까. 옛날의 지도자상은 주로 ‘군림형’이었다. 그래서 엄격함과 비범성이 필요했을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의 정보화, 민주화 사회에서의 지도자상은 ‘봉사형’이어야 할 것이다. 지도자가 되려면 먼저 실천해야 한다.

한여름 사람들을 지치게 했던 열대야도 어느새 꼬리를 감춰버리고 아침저녁으로 제법 쌀쌀해지고 있다. 진구는 질기게도 가을이 오지 않을 것 같더니 요즈음 기분 좋은 가을 냄새에 계절의 고마움을 느꼈다. 하지만 그것도 잠깐이더니 이제 두꺼운 옷을 입어야 하는 계절이 왔다.

“가을이 조금 더 길면 좋으련만”

진구는 지난 추석연휴를 조금 길게 받은 덕분으로 그 동안 못 만났던 친구들을 찾아보며 사는 모습들은 둘러보았다. 대부분이 잘나지도 못나지도 않은 평범한 소시민들이다. 흔히 하는 말로 다들 고만고만하게 살아가고 있다. 진구도 그들과 별 다를 게 없는 부류다. 동창 중에 한 녀석이 어떤 재주를 부렸는지 얼마 전에 시내에서 이름이 제법 뚜르르하게 알려진 아파트로 이사를 갔다. 어렵게 집 장만한 것을 모두 진심으로 축하해주며 한턱 쏘라고 부추기며 모처럼 즐겁게 술잔을 나누었다.

“야, 야 오늘 기분도 거시기한데 동식이 네가 술 한 잔 사라. 집도 우리 중에서 최고로 넓고 화려한 데 살잖아. 좋겠다, 자식”

제법 분위기가 무르익고 취기가 오를 무렵 동식은 갑자기 푸념을 늘어놓았다. 표정이 어두워 보이기에 좋은 집에 살면서 왜 그러느냐고 물어보았다. 동식이 하는 말이 다 속 빈 강정이라는 것이다.

“내가 너무 꼴 갖잖게 억지로 비싼 중도금 밀어 넣으며 억대에 가까운 대출까지 받았어. 요즘 환장 하겠어”

옆에 있던 친구 용수가 요즘 직장생활 하면서 집 장만하려면 그 정도는 기본이라며 위로를 해 주었다. 용수도 어려운 집안 형편에 힘들게 공부해서 겨우 큰 회사에 다니며 고만고만하게 생활하고 있다. 그도 얼마 전에 어렵게 겨우 아파트 한 채 마련했었다. 동병상련(同病相憐)일까.

그 녀석들이 힘들게 느끼는 건 다른 게 아니다. 남 하는 대로 다 따라 하지 못해서 불만인 마누라들 때문이다. 없이 살아도 그냥 저냥 행복했던 동네의 삶들이 오히려 그립다는 것이다. 요즘엔 남편들 보다 마누라들이 더 힘들어 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언제부터 그렇게 잘살게 되었는지 모르겠지만 생각하건대 소비풍토가 크게 잘못돼 가고 있는 것 같아”

진구가 먼저 말을 꺼내자 친구들 모두 동의했다.

“그래 진구 말이 맞아, 우리가 너무 간뎅이가 부었어.”

친구들의 말을 더 들어보면 아이들과 마누라가 새로운 동네에 이사 가면서부터 부쩍 스트레스가 쌓여 힘들어한다는 것이다. 비싼 아파트 단지에 살아서인지 이웃들이 서로 사는 형편을 비교하면서 은근히 경쟁하고 시샘하며 무시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자기는 해외여행을 어디로 갔다 왔는데 누구 네는 갔다 왔냐는 등, 또는 어느 레스토랑이 참 좋던데 그런 곳도 아직 못 가봤냐는 등 하면서 은근히 비아냥거린다는 것이다. 한번은 집에 있던 옷차림으로 동네슈퍼에 갔다 오니 이웃집 아줌마가

“어머 누구 엄마는 옷을 그렇게 입고 밖에 다니느냐?”며 무안을 주더라는 것이다.

그 아파트 단지에 사는 사람들이 직업이 뭐냐고 물으니 다 박사고 의사고 그렇더라는 것이다. 누가 그러더냐고 물으니 자기 신랑들 직업이 그렇다고 하더라는 것이다. 그래서 자존심이 상한 용수의 아내는 덩달아서 명품쇼핑을 다니고 과소비를 하는 버릇이 생겼단다. 진구가 듣기론 그 아파트에 입주한 주민들 중 실제로 상위계층에 속하는 부류는 몇 명 되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다. 직장 동료들도 그 동네에 있고, 아는 사람들도 꽤 많이 살고 있었다. 그 사람들의 직업은 대부분 평범하다. 요즘 기본이라는 대출도 억대 가까이 또는 억대가 넘게 받고 잔뜩 빚을 진 채 입주한 사람들이 많이 있다.

“웬 놈의 박사, 의사?… 허허허, 여편네들이 도대체 왜 그럴까?”

친구들 중 한 녀석은 대기업 생산직에 근무하는데 그 빚 때문에 잔업, 철야, 특근을 해 대느라 골병이 들 지경이었다. 더구나 마누라의 과소비까지 어깨를 눌러 대니 더 죽을 지경이다. 또 한 녀석은 사무직인데 그 놈은 고정 월급쟁이라서 추가로 돈 나올 구멍이 없으니 더 환장하겠단다.

“우리나라가 요즘처럼 흥청망청 소비할 정도로 정말 잘 살게 된 것일까. 그렇다면 소비를 하면서 한쪽 가슴이 뻥 뚫린 것처럼 허전하고 또 그로 인해 스트레스가 쌓이며 부부싸움을 해대는 이유가 무엇일까. 남들이 하니까 나도 하고 싶은 것은 인간의 욕망이기에 탓할 수는 없겠지만 다 형편대로 살아야 스트레스가 덜할 게 아닌가.”

갈수록 부익부 빈익빈의 양극화가 커지면서 불만들이 쌓여만 간다. 그 스트레스를 애꿎은 이웃들에게 서로 시샘하고 과시하면서 풀려는 이상한 분위기가 확산되는 것은 아닌지 한번 생각해 볼 일이다. 도토리 키 재기하면서 마치 자기가 상류층이 된 것처럼 착각하는 것은 아닌지. 강덕수도 예외일 수 없었다. 은행에서 일억씩이나 대출받아 분양 받은 아파트가 절반이나 미분양 사태가 발생한 것이다. 그 후 실제 분양가를 훨씬 밑도는 가격에 분양되는 사례가 일어나고 매매는 형성이 되지 않고 있었다.

“그러니까 욕심을 부리지 말아야지”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일과시간에 뻔질나게 골프를 치러 다니던 강덕수는 골프장에서 바이어 접대를 하던 공장장과 마주치고 말았다. 결국 경고에 감봉처분을 받은 강덕수는 입에 자물쇠를 채우고 살 수 밖에 없었다.

 

*

 

5월 어느 날, 전직 대통령의 갑작스런 서거 소식에 온 국민이 충격과 함께 비통한 마음에 젖어있었다. 그 분은 생을 마감하기까지 참으로 파란만장한 과정을 거친 비운의 정치인이었다. 재임기간 내내 정적들로부터 갖은 수난을 받아야 했고 퇴임 이후에까지 확인사살을 당하며 슬픈 생을 살아야 했다.

든 자리는 못 느껴도 빈자리는 크게 허전한 법이다. 한국정치사에 큰 획을 그은 어른으로써 이 땅의 민주화를 위해 헌신한 그분의 발자취는 새삼 설명하지 않아도 모든 국민들이 알 것이다. 그러나 평소 대통령을 좌파 빨갱이라고 비난하며 입에 거품을 물던 강덕수는 만면에 웃음을 흘리며 다녔다.

“새끼들, 죄를 많이 지었으니 그렇게 죽지”

진구는 머리꼭지가 홱 돌았다. 평소에 그 분을 존경하고 있었던 터라 주변사람들이 비난을 할 때면 은근히 화가 치밀어 올랐는데 죽은 사람에게까지 비난을 하자 강덕수가 짐승처럼 보였다.

“중대장님, 그 말씀 좀 가려가면서 하시죠.”

“뭐야?”

덕수는 진구를 째려보았다. 진구는 목소리를 더 높였다.

“그렇게 죽은 것도 억울한데 무슨 죄가 있다고 아직까지 그렇게 씹어 돌립니까?”

덕수는 특유의 그 느물거리는 표정으로 세간에 가십거리로 유행하던 시계 이야기를 꺼냈다.

“돈 받아 처먹었으면 됐지 1억 원짜리 시계까지 처먹어?”

진구는 인내의 한계를 느끼며 고함을 질러버렸다.

“나잇살이나 처먹어서 사람에 대한 예의가 없어. 나이는 똥구멍으로 처먹나?”

덕수는 그만 얼굴이 벌개져서 밖으로 나가버렸다.

“이 놈의 정권은 뭐가 그리 두려운 게 많단 말인가?”

서울에는 지금 경복궁 분향소에 1분의 조문을 위해 많은 시민들이 몇 시간씩 줄을 서서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다. 경찰에서 불법 시위와 집회를 막기 위해 경찰차량과 병력을 동원해 압박통제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전직 국가지도자에 대한 조문과 불법폭력시위를 억지로 연관 지으려는 것은 한 대 패주고 싶을 정도로 너무나 얄미운 발상이다.

예로부터 광장을 두려워하는 자들은 예외 없이 폭군이든가 독재자들이었다. 그들은 한결같이 백성들의 목소리가 두려웠기 때문에 입에 재갈을 채워놓아야만 안심을 하는 무리들이었다. 이 놈의 정권은 취임 초기부터 언론과 방송을 장악하더니 시위 및 집회도 신고제에서 허가제로 바꿔 자기들이 취사선택해서 허가해 주고 있다. 그것을 보면 그들이 얼마나 국민들을 억압 통제하려는 것인지 쉽게 알 수 있다.

전직 대통령이 극단적인 선택을 하기까지 일련의 과정을 되돌아보면 분명히 현 정권은 무엇을 두려워하고 있는 것이 틀림없었다. 진구는 이미 정치적으로 식물인간이 된 분을 그렇게 모질게 몰아붙여 확인 사살까지 했어야만 했는지 묻고 싶었다. 현직 대통령보다 퇴임한 전직 대통령이 국민들로부터 존경 받고 지지를 얻는 것이 눈에 가시였던 것은 아닐까? 나날이 추락하는 자신의 지지율을 의식한 나머지 위기를 느꼈던 것인지도 모른다.

현 정권은 정적의 아킬레스건을 자르고도 안심이 안 되는지 전직 대통령의 사후에도 국민들이 구름처럼 운집하는 것이 두려워 통제하고 차단하려는 것은 아닌가 생각해 볼 일이다. 역사를 살펴보면 청년들과 학생들이 존경하고 따르는 분들은 대부분 맑고 순수한 영혼을 간직한 채 세상을 떠나갔다. 김 구 선생과 문익환 목사가 그들이다. 살아계신 분들 중에는 백기환 선생과 함세웅 신부, 문규현 신부가 있다. 한결같이 이타적인 삶을 위해 헌신하신 분들이다. 독재를 하는 자들은 그분들처럼 맑은 영혼을 가진 사람들이 내는 목소리를 두려워했다. 맑은 영혼을 두려워하는 자들은 결국 어둠의 자식들이라는 것으로 해석이 된다. 어둠을 좋아하는 무리들은 아마도 악마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전직 대통령의 임기 중에 많은 재야 단체나 노동, 농민, 시민단체들도 보수단체들 못지않게 매질을 가했었다. 그러나 그들이 가한 매질은 진심으로 애정 어린 충고였기에 가신 분의 영정 앞에서 더욱 마음 아플 것이다. 그 분을 추종하는 단체 회원들보다 그들이 더 안타까워하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이놈의 정권이 국민들에게 죄를 많이 짓긴 지은 모양이다. 국민들의 순수하고 자발적인 추모의식조차 불법시위 및 집회로 변질될 우려가 있다는 이유로 차단하려는 것을 보니 무언가 크게 두려워하는 것이 있는 모양이다.

현 정권이 국민들 앞에 그렇게 당당하고 떳떳하다면 광장이 아니라 청와대라도 활짝 열어주어야 한다. 뒤가 구린 구석이 많은 사람일수록 대부분 폐쇄적이기 마련이다. 적어도 전직 대통령의 재임기간 동안에는 좌, 우 양쪽에서 무수히 날아오는 매질을 묵묵히 인내하고 감내하면서도 광장의 문은 닫지 않았다. 그것이 진정한 민주주의 국가인 것이다.

독재자들은 본시 겁이 많은 법이다. 박정희가 그랬고 전두환이 그랬다. 총칼로써 권력을 찬탈했기에 총칼이 아닌 다른 방법으로는 권력을 유지하는 방법을 몰랐기 때문이다. 그들은 가장 무식하고 손쉬운 방법으로 세상을 지배하고 통제했었다. 세월이 많이 흐른 지금도 그 방식을 답습하려는 무리들이 있다. 여당과 현 정권이 바로 그들이다. 그들은 이제 총칼이 아닌 몽둥이로써 국민들을 다스리려 하고 있다.

혹시 현 정권과 그 수하들은 사디즘의 정신질환자들은 아닌지 의심이 간다. 국민들의 인내심을 끊임없이 자극하고 폭발시켜 그것을 보고 즐기려는 것은 아닌지. 세상이 바뀐 지금도 그런 무식한 방법이 과연 통할까? 어리석은 현 정권의 수하들은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정신 차려야 할 것이다. 전직 대통령을 벼랑 끝으로 몰아붙인 것은 여당뿐만이 아니다. 제일 야당과 기타 정당들도 마찬가지다. 지금 네 탓 내 탓하며 책임추궁을 해봐야 의미 없고 부질없는 일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번 사건을 이용해서 야당이 여당에 정치적 반격을 가하겠다는 계획이 있다면 접어야 할 것이다. 국민들이 더 이상 신물 나고 짜증나는 정쟁을 두고 보지는 않을 것이다.

정치인들은 백성들이 편안하면 그 역할이 줄어들고 입지가 좁아지기 때문에 끊임없이 백성들을 괴롭히며 밥을 먹고 산다는 말도 있다. 아마도 그것은 맞는 말인 것 같다. 하지만 이제는 국민들이 직접 심판할 것이다. 더 이상 보고 있지만은 않겠다는 것이다.

진구는 국민들이 이제 더 이상 많이 배우고 똑똑하고 잘난 사람들만 정치하게 내버려두지 말고, 민중 속에서 사람을 발굴해 기성정치판을 확 물갈이 해버렸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많이 배운 사람들 믿고 지지를 보내 줬더니 결국 이타적이기 보다 이기적인 정치를 하고 있지 않은가. 영악한 사람 말고 정직한 사람들을 많이 발굴해 정치판으로 보내어 짜증나는 정권을 국민의 힘으로 확 갈아 엎어버렸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미 일어난 일은 되돌릴 수도 없다. 모두가 겸허히 반성하고 숙연하게 가신 분이 편안하게 영면할 수 있도록 안식을 기원 드려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 나라가 진정한 자유민주주의 국가라면 지금이라도 광장의 문을 활짝 열어주어야 한다. 조문객들의 목줄을 죄어봐야 현 정권이 얻을 것은 아무것도 없다.

주변에서 언제부터인가 정치권의 난장판으로 인한 스트레스가 국민들 속으로 깊이 파고들면서 주된 관심사로 정치권 뉴스보도에 귀를 기울이는 시민들이 부쩍 많아졌다. 스트레스를 느끼면서도 관심을 가지게 되는 것은 그만큼 위정자들로 인한 실망과 분노를 많이 느꼈다는 것이다. 반면에 전혀 무관심한 시민들도 있게 마련이다. 대화를 하다 보면 정치권 이야기가 나오면 슬그머니 화제를 바꾸는 사람들도 있다.

노진구는 그 동안 정치권 뉴스보도에 촉각을 세우면서 다른 볼일을 미루어 오던 중 지난 주말 모처럼 산악회 회원들과 어울려 산행을 갔었다. 조금 멀리 떨어진 곳으로 가는 도중 장시간 버스 안에서 모 가수의 공연실황 녹화테이프를 보며 잠시 모든 것을 잊을 수 있었다. 그 가수가 하던 말 중에 기억에 남는 것은 우리 모두가 누구 할 것 없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가슴속에 크고 작은 못이 한 두 개씩은 박혀 있다는 것이다. 그것을 작은 못으로 생각하면 그만큼 즐겁게 살아 갈 수가 있는 것이고 큰 대못으로 생각하면 그만큼 힘이 겨운 생활을 하고 몸에 병도 생긴다는 것이다.

국민들 가슴에 커다란 왕 대못을 박은 정치인들은 이제 조금 후면 그 죗값을 응당 치를 것이고, 우리 지역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조차 모른 채 또는 가족들 중 무슨 고민이 있는지 잊어버리고 살지는 않았는지 주변을 한번 돌아보아야 할 것 같다.

노진구는 가까운 진해에서 벚꽃축제가 언제 열렸는지도 모른 채 무언가에 홀린 듯 한동안 정신 없이 보낸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그날 산행 도중 한 회원이

“다른 데서는 사람들이 정치권에 관한 이야기를 잘 하던데 산에 와서는 전혀 그런 이야기 하는 사람들이 없네…”라고 말하자 또 다른 회원이 “밑에만 오염되었으면 그만이지 산에까지 와서 오염시킬 일이 있습니까?…”라는 대답을 하였다.

스트레스를 날려버리기 위해서 오른 산행에서 스트레스를 가중시키지 말자는 뜻의 이야기였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진구는 그분들에게 한 이야기가 있다.

그 화제를 꺼내서 서로 공감을 하면 좋은데 서로 다른 정치적 지향이나 지지자들을 생각한다면 그 동안 친하게 지내 왔던 분들이 감정 상하지나 않을까 조심하자고 했다. 그래도 나이가 지긋하신 회원 한 분이 그 동안은 몰랐는데 요즘 젊은 사람들이 왜 저렇게 정치권을 비난하고 집회를 하고 사람들을 바꿔야 한다고 외치는지 나이든 사람들도 이제는 들을 줄 알아야 한다고 말씀 하시는 것을 듣고 오늘 산행을 참 잘 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돌아오는 길에 진구는 오랜만에 산악회 회원들과 어울려 기분 좋게 막걸리도 한잔 하고 언제 피었는지조차 몰랐던 길가의 개나리꽃과 벚꽃들을 유심히 한번 보게 되었다. 그리고 한동안 막내 녀석에게 동화책을 통 읽어주지 못해서 미안한 마음도 들었는데, 이번 주말은 꼭 가족과 함께 보내리라 다짐을 하며 잠깐이지만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모처럼 기분 좋은 낮잠을 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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