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학방송(DSB) 문인글방_소설
HOME 시작페이지로 즐겨찾기추가 [등업신청/기타문의]
로그인 회원가입
회원가입
   

한국문학방송은 지상파방송 장기근무경력 출신이 직접 영상제작 및 운영합니다
§사이트맵§ 2017년 9월 21일 목요일

문인.com 개인서재
 

DSB 문인 북마크페이지

전자책 출간작가 인명록



시조
동시
영시
동화
수필
소설
평론
추천시
추천글
한국漢詩
중국漢詩
문학이론


DSB 앤솔러지 제7집


DSB 앤솔러지 제6집


DSB 앤솔러지 제5집


DSB 앤솔러지 제4집


DSB 앤솔러지 제3집



[▼DSB 앤솔러지 종합]
 



홈메인 > 문인글방_소설 > 상세보기
DSB 전자책 발간 현황
DSB 전자책 발간 현황
DSB 전자책 판매정산 페이지
도서판매/온라인강좌

전자책 제작·판매·구매의 모든 것

사이버문학관


이곳은 문학방송 정회원(문인회원)의 글방[소설방]입니다
(2016.01.01 이후)


삶의 흔적
2010-10-02 15:42:50
tanchon

조회:1596
추천:111
첨부파일 :  1286001770-31.hwp
  1.  

 단편소설

                                                  


                                                                                                                    탄천 이종학


  김 이사(金 理事), 모두 그를 이렇게 부른다. 십 년 전의 일이지만 한 때 어느 금융기관에서 이사로 근무한 적이 있었기 때문에 붙은 호칭이다. 오랫동안 김 이사로 불린 탓인지 그의 본명을 대면 모르는 사람들이 가끔 있다. 이사라는 직함이 스스럼없이 그의 아호처럼 되어버린 셈이다.

  아무튼 이 김 이사가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는 부음이 들려 왔을 때, 그를 아는 사람들은 자지러지도록 경악하고 충격을 받은 게 사실이다. 밤사이 안녕하셨느냐더니 그야말로 하룻밤사이에 유명을 달리했으니 쉬 믿기지 않았다. 병원의 사망 진단은 급성 심장협심증인가 뭔가로 판명되었다. 저녁 식사를 잘하고 나서 마침 놀러 온 옆집 사람들하고 밤 열 시가 넘도록 이런저런 시국담을 하다가 잠자리에 들었는데 한밤중에 별안간 코를 높이 골더니만 순식간에 숨을 거두었다는 것이 유족들의 말이다. 너무나 창졸간에 당한 일이라 전전긍긍 병원에 실어 갔으나 산소호흡기조차 대볼 필요가 없어서 그대로 영안실로 직행하는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일흔을 바라보는 노령이니 어떻게 생각하면 그런대로 섭섭지 않게 수를 누렸다고 하겠지만 김 이사의 급서가 모두에게 커다란 놀라움과 의아심을 갖게 한 것은 평소에 그의 건강이 유별나게 좋았던 데 있었다.

  그 나이에도 그의 기력은 30대를 방불케 했다. 청탁에 관계없이 두주(斗酒)를 불사했고, 식당 밥은 두 그릇이라야 양에 찰 정도로 식탐도 만만치 않았다. 정력 또한 대단했다. 그의 말 따나 남새 부끄럽게 남근이 시도 때도 없이 불끈거린다면서 육식을 피할 지경이면 그 정력 상태를 짐작하고도 남을 것이다. 평생에 병원 신세는 고사하고 그 흔해빠진 아스피린 한 알 사 먹으려고 약국에 들어간 경험이 없으니 다른 설명을 더 늘어 놀 필요가 없다.

  급보를 듣고 친척들과 친지들이 하나 둘 병원 영안실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한결같이 어리둥절한 표정들이었다. 어쩔 수 없이 영정 앞에 분향하고 조문은 했지만 김 이사의 죽음이 도무지 실감이 나지 않는다는 표정들을 감추지 못했다.

  “여보게, 김 이사가 죽은 게 사실인가?”

  “병원에서 틀림없이 확인된 거겠지?”

  “세상에 이렇게 허망한 일도 다 있단 말인가?......”

  서로 묻는 사람뿐이지 신통하게 대답하는 이가 없다. 유족들의 가슴도 급서의 진위를 도무지 수용하지 못하고 있는 터라 조문객들에게 제대로 입을 떼지 못했다. 조객들이 더러는 눈물이라도 글썽거리고 침통해 하련만 오히려 화난 영감들처럼 담배만 들입다 빨아 댔다.

  내가 김 이사와 특별히 친교를 맺게 된 지는 불과 한 이 년 남짓밖에 안 된다. 중학교의 대선배여서 익히 안면이야 있었지만 나이의 격차 탓도 있고 살아온 분야도 서로 생소해서 고등학교 재경(在京) 동창회 같은 데서 수인사를 나누는 정도에 불과했었다. 그러다가 어느 여름 일요일 아침에 우이동 산골짜기로 약수를 마시러 갔다가 우연히 그를 만나게 되면서부터 갑자기 교분이 두터워졌다.

  “여보게 후배, 어쩐 일인가?”

  김 이사는 약수를 마시고 내려오는 나를 알아보고 먼저 반가워했다. 허름한 작업복에 호미를 든 흡사 농부의 차림을 하고 있었다.

  “아니, 김 이사님이 아니십니까? 저야 아침 산책을 겸해서 약수터에 왔습니다만 선배님이야말로 여기에 웬 일이신가요?”

  “이곳 공기야 일품이지. 그래 잘 만났네.”

  김 이사는 다짜고짜 따라오라는 손짓을 하고는 앞장서 걸었다. 영문은 몰랐지만 마침 집에 돌아가는 길이라 그의 뒤를 따랐다.

  “내 집이 바로 요 아랠세. 나를 만나고서야 과문불입해서 되겠나. 마침 시골에서 가져온 농주가 있으니 우리 해장술 몇 잔씩 하세나.”

  나는 사양할 겨를이 없었다. 어찌나 일방적으로 말해 버리는지 대꾸할 틈을 주지 않을 뿐만 아니라 한편으로는 은근히 친밀감을 갖게 해서 부지불식간에 끌려 들어가고 말았다. 김 이사는 이렇게 두터운 정감의 소유자였다.

  김 이사의 집은 마당도 없이 슬레이트로 지은 조그만 2층이었다. 아래층은 세를 주었고 위층에서 부인과 단둘이 살고 있었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직장의 옛 동료가 얼마간 주선해 보태고 은행빚 내서 장만한 집이다.

  “이렇게 살고 있다네. 나 손 씻고 올 테니 어서 올라가게.”

  김 이사는 2층으로 나를 안내해 올려보내고는 뒤란으로 돌아갔다.

  간 반 정도의 거실 겸 대청은 아주 밝고 전망이 훌륭했다. 좌우로 나 있는 여닫이 창문을 열어 놔서 동으로는 아침 햇살이 환히 들어오고 서편에는 우이 산의 봉우리들이 손에 잡힐 듯 가까이 보였다. 지대가 얼마간 높은데다가 2층이라서 전망대 구실이 제법이었다. 시원한 바람이 대청 가득히 들어왔다가 나가면서 땀이 나 있는 몸을 식혀 주었다.

  “전망이 썩 좋지 않은가? 이런 맛으로 내가 여기 산다네.”

  한참 만에 김 이사가 계단을 올라오면서 말했다. 소반하고 주전자를 들고 있었다.

  “집 위치가 일품이에요. 정말 살맛나시겠습니다.”

  “자, 이렇게 우리 한 잔씩 하세나.”

  김 이사가 내려놓는 소반 위에는 호박 무침 한 접시하고 술잔으로 종발 두 개가 놓여 있었다.

  “할망구가 밭에 나가 있어서 내가 아무렇게나 들고 왔네. 흉보지 말고 정으로 알게나.”

  김 이사는 텁텁한 농주를 종발에 따랐다.

  “밭에라니요. 농사라도 지시는 겁니까?”

  나는 막걸릿잔을 받으면서 물었다.

  “농사는 무슨. 저기 산 밑에다가 삼백 평가량 밭을 일궈 놓고 심심소일을 한다네. 무허가 주택을 철거한 자린데 나도 잠깐 무허가로 빌리고 있는 셈이지.”

  “그러시군요.”

  “그래도 십여 종이나 되는 각종 남새를 가꾸어 가용으로 잘 먹고 있네. 자네, 갈 때 상추하고 열무 좀 가져가게. 싱싱해서 시장에서 사 먹는 것하고는 사뭇 다르다구.”

  “고맙습니다.”

  “이러다가 술이 울겠구먼. 자, 어서 죽 마시게나. 가용주로 만든 모양인데 맛이 쓸 만하네.”

  이렇게 해서 이날은 아침부터 해장술로 뺑뺑이 취했고 상추와 열무를 얻어다가 모처럼만에 신선한 기분으로 잘 먹었다. 이런 연유로 해서 김 이사와 나의 특별한 친교가 시작된 것이다.

  이날 이후부터 김 이사는 내가 쓰고 있는 조그만 사무실에 매일 나왔고 또 수공업이나 다름없는 내 공장의 생산 제품을 팔아 주겠다고 여기저기 판로를 알아보는 도움도 주었다.

  그는 각 분야에 지면이 넓었다. 어딜 가나 아는 사람이 있었고, 어디 하면 누구누구라고 내려꿰는 가히 인명사전이었다. 다방에서 흰소리치는 날 브로커들이 사기치는 데 써먹는 호적계 식 이름 나열이 아니라 거의가 교분이나 지면 관계로 어느 정도 친분이 있는 사이들이다.

  김 이사의 외모는 노인답지 않게 깔끔하고 단정했다. 그리고 알맞은 키에 적당한 체구인 그의 인상이 아직도 미남이란 평을 들을 만큼 이목구비에 귀티가 깃들었다. 피부는 희고 부드러우며 시원스럽게 벗겨진 이마가 노신사의 풍모를 제대로 갖추었다. 그러면서도 눈빛이 총명하고 날카로워 만만치 않은 성격의 소유자임을 직감케 했다. 한 마디로 강유가 겸비한 느낌을 풍기는 용모인 것이다.

  김 이사와 나는 대폿집에서 자주 어울렸다. 나도 술을 좋아하는 편이지만 그의 애주는 유명했다. 주량도 대단하지만 소위 주도(酒道)에 통달한 듯한 태도와 청탁이나 안주에 전연 신경을 쓰지 않는 소탈함이 마음에 들었다. 김치 하나를 놓고 비록 막걸리를 마실지라도 웃통을 벗거나 몸을 함부로 흩뜨리는 법이 없다. 찜질하는 무더운 날씨에도 넥타이를 단정히 매고 술잔을 아주 단아하게 기울이는 모습은 가히 애주의 진의를 아는 주선(酒仙) 같은 일면을 보여 주었다.

  이 같은 김 이사의 태도와 성격은 고등학교 동창 사회에서도 큰 인기를 얻고 있는 요인이 되었다. 동기 동창들이야 더 말할 나위도 없지만, 선후배를 막론하고 그의 얼굴을 반가워하지 않는 사람이 없을 정도였다. 동창회 일에 열성으로 뛰어다니는 것은 물론 동창을 위한 노릇이라면 애경사에까지 마다하지 않고 힘자라는 한 애를 써 주는 성의가 대단했다. 그러면서도 절대 대가나 사례 같은 것을 바라지 않는다. 감사의 표시로 봉투라도 내놓는 날이면 큰 야단이 난다. 날 뭐로 아느냐! 눈을 부라리고 싸늘하게 등을 돌리고 마는 것이다. 그러나 술을 사겠노라면 허허 웃으면서 쾌히 응한다. 그것도 소주 몇 병이면 충분하다. 그저 서로 정담을 나누기 위해 마시는 술이라면 어느 곳이 되든 사양하지 않지만 그것도 검소해야 술맛이 난다고 한다. 탁객이라서 술을 원하는 게 아니라 상대로 하여금 성의를 간단한 술자리로 표할 수 있도록 기회를 주는 배려가 담겨 있는 것이다.

  그래서 그의 인품은 더욱 돋보였다. 이 같은 처세에다가 또한 그의 화술이 남달리 능란한 편이어서 동창 간에 생긴 시비 같은 것을 도맡아 해결하는 해결사 노릇을 했다. 서먹해진 당사자들이 은근히 화해를 원하면 스스로 판단해서 서로가 자존심을 상하지 않게 거리를 좁혀 주는 역할을 서슴지 않는다. 쌍방이 팽팽히 맞서는 상황에서는 잘 잘못을 정확히 직선적으로 지적하고 정연한 논리로 피차가 화해하도록 촉구하는 바람에 선선히 응하지 않을 수 없다고 감탄하다.

  김 이사와 나와의 접촉은 날이 갈수록 빈번해지고 깊어져 갔다. 서로가 대화 속에서 흥미와 정리를 느끼는 터라 얼굴을 맞대는 시간을 은연중 많이 갖기를 원했다.

  그런데 그가 내 사무실에 매일 나오면서 어려운 문제가 하나 생겼다. 사적으로 그를 찾는 전화가 줄달았고 만나겠다고 찾아오는 사람의 수가 무시할 수 없었다. 전화기는 불이 나고, 사무실은 방문객으로 앉을 자리가 없게 되어 나로서는 여간 불편한 게 아니었다. 그래서 사무실 아래층에 있는 다방을 단골 삼아 정해 놓고 해결해 보려 했지만. 그것도 여의치 않았다. 하루 찻값이나 식사대가 만만치 않은 것이다. 김 이사가 필요해서 찾아오긴 해도 차 한 잔을 변변히 대접할 수 없는 처지에 있는 딱한 사람들이 많았다.

  “이 사장, 이거 안 되겠구먼.”

  하루는 김 이사가 나를 불러 놓고 딱한 표정을 지었다. 그 무렵 김 이사는 나를 이 사장이라고 불렀다.

  “이 사장의 피해가 너무 커. 그래서 말인데 내일부턴 내가 일주일에 한 번씩만 사무실에 나와야겠어.”

  “댁에 계시면 찾아가는 이가 없나요. 신경 쓰지 마십시오. 비용이 들면 얼마나 들겠습니까. 그만큼 더 벌어서 봉창할 테니 걱정하지 마시고 평소처럼 나오세요.”

  김 이사는 이틀인가 안 보이더니,

  “이 사장을 며칠 못 봤더니 먹은 게 내려가질 않는단 말야.”

  이렇게 말하면서 결국 자신의 결심을 바꾸게 되었고 김 이사와 나는 여전히 술벗과 말벗의 관계가 계속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대폿잔 몇 잔이 오가자 김 이사는 갑자기 진지한 어조로 나를 새삼스럽게 부르는 것이었다.

  “야, 이 사장!”

  나는 멀거니 김 이사에게 시선을 보냈다. 평소에 취기 속에서도 야자, 하고 함부로 나를 부른 적이 없기 때문이다. 나이 차이가 이십 년이나 되는 까마득한 후배이긴 해도 꼭 이 사장으로 체면을 지켜 호칭해 왔던 그였다.

  “우리 사이에 김 이사니, 이 사장이니 하는 게 난 못 마땅하단 말일세.”

  “그러시다면 선배님이라고 부를까요?”

  “그것도 틀렸어. 지금부터 우리 호형호제하세. 나를 형님이라고 부를 수 없겠나?”

  “......”

  사실 나는 지금까지 인척이 아닌 남을 형님이라 불러 본 적이 없으며, 나를 형님이니 어쩌고 하는 것도 거부감을 느껴 왔다. 곧잘 형님이니 아우니 하고 피라도 나눈 사이처럼 정답다가도 사소한 이해관계라도 얽힐라치면 서슴없이 개새끼로 둔갑하는 꼴이 몹시 역겨웠다.

  “자넨 어떻게 생각하는지 모르지만 난 말일세. 자네가 맘에 든다네. 우리는 사귄 지 일 년여밖에 안 되지만 백년 지기처럼 정답게 느껴진다. 이걸세. 그러니 불문곡직하고 지금부터 나를 형님이라 부르게.”

  나는 선뜻 응낙하지 않았지만 김 이사의 말이 귀에 거슬리지는 않았다. 그동안 어딘지 모르게 의기가 투합하고 존경스런 데가 있다고 여겨 온 터였다.

  “뭘 하나 아우? 한 잔 가뜩 딸게. 우리 건배하고 오늘 이렇게 결의형제한 자리를 기리 기억하세. 삼국지의 도원결의로 삼자구.”

  김 이사가 술잔을 불쑥 내밀자 나도 서슴지 않고 술을 따르고 내 잔도 채워 들고 얼씨구나! 절씨구나! 건배를 했다.

  이날 이후 나는 김 이사를 형님이라 불렀다. 처음에는 영 어색해서 형님이랬다, 김 이사랬다, 선배님이랬다, 헛갈려 갈팡질팡하다가 종내는 형님이란 말이 순순히 나오게 되었다.

  이렇게까지 발전하고 보니 김 이사와의 사이는 더욱 격의가 없게 되었고 선후배 이상의 심교(心交)가 자연 이루어질 수밖에 없었다. 김 이사는 자신의 주변이나 과거 행적을 숨김없이 털어놓고 나를 의논 대상으로 삼기도 했다. 은밀한 치부(恥部)나 허물까지도 감춰 두는 법이 없었다. 형제결의한 이상 서로의 구석구석까지도 알아 둬야 마땅하다고 그 이유를 밝혔다.

  김 이사는 중농 집안의 차남으로 태어나서 중학교를 나오자 이내 금융조합에 들어갔다. 무리하면 진학할 수도 있었고, 일본 유학을 권고받기도 했지만 뜻한 바 있어 그 직장을 택했노라고 회고했다. 그는 고향에서 가까운 금융조합에 근무하면서 향리의 지역 발전에 힘을 기울였다. 농노를 넓히고 영농 기술을 지도하면서 지금의 새마을운동을 그때 이미 벌였던 것이다. 낙후된 농촌을 계발하기에는 지역 금융조합이 그 당시로써는 가장 손쉬운 기관임을 십분 이용한 셈이다. 김 이사의 적극적이고 담백한 성격과 설득력 있는 언변의 덕으로 오래지 않아서 그의 고향은 발전된 모습으로 서서히 탈바꿈하기 시작했다. 그는 아직 젊은 나이였지만 한 직장인의 영역을 벗어나 지역사회의 유능한 지도자로 인정을 받게 되었다고 한다.

  자연히 김 이사는 여러 분야의 사람들과 접촉이 잦아지고 같은 연배보다 연상과의 교류가 빈번해짐으로써 그의 표현을 빌자면 젊은 노인으로 불렸다. 영향력을 갖고 있는 존장들과 소위 기관장들과의 유대가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김 이사의 능력과 광범위한 대인 관계는 직장에서도 높이 평가되어 승진이 빨랐다. 그러나 반면 많은 희생을 감수해야 했다. 본시 사회사업이나 공익사업을 하자면 예나 지금이나 사재(私財)를 털어야 한다. 김 이사는 지역 발전 사업에 급료를 몽땅 털어 보탰음은 물론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전답까지 일부 팔아 대야만 했다. 부모나 형제들이 순순히 이해하고 따랐을 리 없다. 잦은 의견 충돌로 집안이 불편하게 되고 따라서 살림도 어려워졌다.

  김 이사는 고심한 끝에 직장을 내놓고 서울로 올라왔다. 서울의 인구 집중 현상에 주목하고 소위 땅장사에 손을 댔다. 인구가 늘면 필연적으로 주택이 필요하게 되고 따라서 땅의 매매가 성행하고 땅값의 파동이 있을 것에 착안하고 돈벌이를 작심한 것이다. 그동안 계획해 온 고향의 개발 사업을 추진하자면 무엇보다도 당장 많은 자금이 필요했다.

  그러나 재물은 그의 뒤를 따르지 않았다. 그는 부동산업에 손을 댔던 당시의 상황을 다음과 같이 회고했다.

  “땅장사는 완전히 실패하고 말았네. 1960년대만 하더라도 부동산의 경기가 지금처럼 발광하진 않았어. 땅값이 솟을 거라 예상하고 빚 얻어 적당한 땅을 사들여서 택지를 조성해 놓고 팔리기를 기다렸지만, 예상과는 달리 거들떠보는 사람이 흔치 않더군. 빚돈 이자는 잠도 안자고 늘어만 갔으니 오죽했겠나. 죽을 맛이었네. 결국, 혹 떼려다가 몇 개 더 얻어 붙인 만신 창의의 처지가 되고 말았어. 고향 지역 개발의 꿈은 산산조각이 나고 뼈저린 고생길에 들어섰지. 삼사 년 동안 단간 셋방에서 하루 끼니를 걱정하며 살았어. 낙천적인 성격이라고 자처하던 나도 그 때처럼 당황하고 실의에 빠져 본 적이 없었네. 겨울에도 이마에서 식은땀이 났다면 알만 하지 않은가.”

  그러다가 김 이사는 전에 같이 근무했던 동료의 추천으로 금융계에 다시 발을 들여놨다. 이제는 늦깎이가 되어 직급이 낮게 복직됐지만 호구지책으로 감지덕지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긴 그의 성격이나 체질로 봐서 돈벌이에 투신한 것 자체가 무리였다. 역시 직장을 다시 택한 것은 현명했다.

  김 이사의 역량은 얼마 가지 않아 직장에서 다시 인정받게 되었다. 남달리 명석하고 창의적인 순발력의 진가가 발휘되었기 때문이다. 거기에다가 포용력 있는 행동과 성실한 근무 태도까지 곁들여 놨으니 말해 무엇 하겠는가. 동료 사이에서 최고의 인기를 얻었고 또한 상사의 신임을 받았다. 필요에 따라 언행의 강약을 적절하게 조화시킬 줄 아는 천부적인 처세술이 두드러졌다. 직위 상하를 막론하고 폭넓게 접촉함으로써 직장 안에서 생기기 쉬운 불협화를 조절하는 역할을 도맡았다. 이래서 승진도 빨랐고 중책이 주어졌다.

  이렇듯 공인된 능력이 김 이사 자신에게는 불이익의 원인이 되었다. 맡은 일에 충성하다 보니 사적인 희생을 감수해야 했고, 원만한 대인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경제적인 부담 또한 각오해야 했다.

  김 이사는 이때의 심정을 이렇게 술회한 적이 있다.

  “잘한다고 손뼉 쳤더니 칼날 위에서 춤춘다는 속담 같은 바보짓은 구만 하라고 충고하는 사람들이 많았네. 제발 실속 좀 차리라는 게야. 나는 허허 웃고 말았네. 돈, 좋지. 돈 없으면 행세 못하는 세상임을 난들 왜 모르겠나. 하지만, 나는 그보다는 사람과 맡은 일이 더 소중했어.”

  김 이사가 정년퇴직했을 때, 방 두 개 있는 셋집에서 가까운 친구들과 퇴직 기념 술자리를 마련했다더라는 말과 함께 자식들을 대학에 진학시키지 못했다는 사실도 오래 전에 들은 기억이 있다.

  김 이사는 바보스러우리만큼 근심 걱정이라는 것을 금기로 삼고 살아 온 낙천주의자라고 평하는 사람들이 많다. 어떤 경우에 처하더라도 당황하거나 화를 드러내는 일이 없다. 천진스럽도록 웃음을 비추며 문제를 해결하는 여유와 슬기가 있다. 삶을 엮어 나가는 기량이 있고 필요하게 소화시킬 줄 아는 재치가 있다. 자신의 소신을 펴기 위해서는 어떤 장애나 유혹도 극복하는 의지와 행동이 있는 한편 무리와 부작용이 없도록 분위기를 조성하는 양면성을 가동하는 것이다.

  또 한 가지 김 이사의 별난 면을 짚고 넘어가야 한다. 그는 한 마디로 나이에 순응하기를 거부했다. 40대는 청춘의 노년이요, 60대는 노년의 청춘이다, 고 말한 빅토르 위고와 같이 나이의 구속을 배제했다. 그렇다고 불로불사(不老 不死)를 원했다거나 나이가 더해 감을 안타깝게 여긴다는 건 아니다. 나이에 걸맞지 않게 건강에 자신을 갖는 것이다. 환갑날 잔치 술을 마시고 여러 사람 앞에서 엎드려 팔굽혀 펴기를 오십 번이나 해 보이면서 건재함을 뽐낸 따위는 좋은 예이다. 아무튼 멋있게 살아 온 사람이라고 단정하고 싶다. 다만 그에게 있어서 한 가지 큰 흠은 인간의 기본 단위라고 할 수 있는 가정에 소홀했다는 것이다. 가정에 필수 조건인 경제적인 여건을 제대로 마련하지 못했다. 아니, 정상적인 관심도 제대로 갖지 않았다는 가족들의 불만이 당연할 정도였다.

  김 이사는 어느 날 밤에 자다가 갑자기 심장 발작 증세를 일으키더니 병원에 도착하기도 전에 운명했다. 서너 시간 만에 일어난 일이다. 어떻게 보면 평상시 그의 소원대로 고통 없는 기막힌 선종(善終)이긴 한 셈이다.   

  과시 명물(名物)임이 분명한 김 이사도 죽음 앞에서는 어쩔 도리가 없었다. 안타까움도, 놀라움도, 슬픔도 소용없는 처지가 되었다. 그의 살아생전의 행적과 일화를 서로 더듬는 추억담을 주고받는 과거 인물이 되고 말았다. 오직 남은 것이 있다면 분향 대 앞에 댕그라니 놓여 있는 그의 영정뿐이다. 그의 얼굴에는 평상시와 다름없이 빙그레 웃음기가 묻어 있었다.

  김 이사가 누워 있는 병원 영안실에는 시간이 가면서 고인을 찾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그런데 누구도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 이곳에서 벌어지고 있었다. 그는 슬하에 이 남 이 녀를 두었다. 위로 딸 둘은 결혼을 했고 아들들은 아직 미혼이었다. 영안실에는 시집간 두 딸만 소복을 하고 나와 조객을 맞을 뿐 아들들은 그림자도 보이지 않는 것이다. 서른 살인 큰아들은 직장 가까이에서 혼자 하숙을 하고 있고, 둘째 아들은 어느 토건회사에 다니고 있다.

  빈소가 마련된 처음에는 아들들에게 아직 연락이 미치지 못했거나, 황급한 부친상 소식을 듣고 달려오는 중이려니 여겼다. 그러나 하루해가 다 저물도록 그들은 나타나지 않았다. 부음을 듣고 조객들은 몰려오는데 조객을 맞을 바깥 상제가 없으니 낭패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더구나 고인에게는 아들 형제가 있음을 익히 알고 있는 조문객들로서는 분향이나 하고 지나칠 리가 없다.

  “상제들은 다 어딜 갔기에 보이질 않습니까?”

  의아한 안색을 감추지 못한 조객들이 하나같이 미망인에게 물어 댔지만 그녀는 희끗희끗한 머리를 숙이고 있을 뿐 묵묵부답이다. 이런 상황이고 보니 영안실 밖에 모인 조객들은 삼삼오오 둘러서서 의문을 나타내는 표정을 짓기 시작했다. 대부분이 고인과는 평소에 자별하게 지낸 사이이다. 급서한 충격이 큰데다가 아들들이 그림자도 보이지 않는 쓸쓸하고 맹랑한 빈소를 보고 그대로 기다리는 참을성이 드디어 한계를 드러내고야 말았다. 남의 가정사라고 여기는 것이 아니라 꼭 알고 넘어가야겠다는 생각들이어서 문제는 너무나 심각했다.

  급기야 누군가가 망인의 재종이 되는 사람을 영안실 밖으로 불러냈다. 상사 일을 총괄하는 친족 대표인 듯했다.

  “저는 고인과는 사십여 년 교분을 맺어 온 사람입니다. 그래서 말씀인데 고인의 아들이 둘 다 보이질 않으니 어찌 된 영문입니까?”

  그는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어느새 주위에 있던 조객들이 모여들었다. 꼭 해괴한 의문을 풀어야겠다는 똑같은 심정들이었다.

  망인의 재종은 밖으로 불려 나올 때부터 잔뜩 주눅이 들어 있었다. 얼굴을 들고 뭇시선을 대할 기력을 아예 포기한 상태로 보였다. 그러니 입이 쉽게 떨어질 리가 없다.

  “그럴 만한 어떤 사연이라도 있는 겁니까?”

  이번에는 다른 조객이 물었다. 역시 대답은 나오지 않았다. 이 답답하고 무거운 기류가 얼마나 계속될 것인가 싶었을 때 영안실이 있는 마당으로 들어서는 입구 쪽에서 울부짖듯 소리치며 걸어오는 사람이 있었다. 고인의 죽마고우의 한 사람이다. 한 시간 전까지도 보였었는데 어딘가에서 술을 마시고 온 모양이다.

  “이놈아, 병호야- 이놈아!”

  그는 눈물을 줄줄 흘리며 목청껏 소리쳤다. 술기 탓만은 아니었다. 친한 벗을 잃은 슬픔에 복받치는 오열 그 이상의 감정이 깃들어 있었다. 병호는, 김 이사의 이름이다.

  “이놈아, 네가 죽다니 말이 되느냐 이놈아!”

  그는 마당에 서 있는 사람들을 헤집고 영안실에 들어가 상청 앞에 무릎을 꿇었다.

  “병호야, 평생 친구 좋아하고 남의 일 치다꺼리하느라 동분서주하더니 이게  무슨 짝이란 말이냐 이놈아. 자식들은 다 어딜 가고 혼자 이렇게 누워 있어, 이 망할 놈아! 네가 어디가 부족해서, 뭘 잘못했다고 자식들 괄시를 받느냐. 세상천지에 너 나무랄 사람은 없어. 너는 우리의 영원한 명물이 아니냐. 그런데 이놈아, 병호야. 으흐흐......”

  친구 서넛이 부축해  일으키며 진정시키려 했지만 죽은 친구의 처지에 가슴을 찢는 그의 분기는 좀처럼 가라앉지 않았다.

  “그래, 자네들 생각은 어떤가? 병호가 이렇게 외롭게 누워 있어야 옳은가? 말해 봐, 말해 보라구! 오냐, 좋다 벼호야. 우리가, 네 친구들이, 다 감당하마. 걱정하지 말고 편히 누워 있거라.”

  친구의 끓어오르는 격정은 삽시간에 주위로 파동쳤다. 백발이 성성한 조객들은 물론 영안실에 있는 모두가 눈물과 분노에 자신을 내맡기고 있었다.

  하룻밤이 지났다. 역시 아들은 아버지의 주검 앞에 서 있지 않았다. 누구의 입에서 전해졌는지 고인의 아들들은 장례에 끝내 나타나지 않으리라고 했다. 평소 아버지에 대한 불만이 팽배한 그들은 아버지와의 사별에 관심이 없다면서 아예 어디론가 자취를 감춰버렸다고도 했다. 세상 말세라는 한탄이 여기저기에서 휘몰려 나왔다. 어쩌다가 명물로 통하는 김 이사가 호래자식들을 두었느냐는 안타까움은 이어졌다. 

  이 같은 분노의 소용돌이는 끝내 고인의 집안에서 폭발하고 말았다. 고인의 시신을 화장했으면 좋겠다는 의견을 미망인이 비친 게 도화선이 되었다. 선형이 버젓이 있고 또 그곳에다가 고인이 묻힐 자리까지 치표(置標)해 놓은 터에 화장이라니, 이 무슨 불경한 망발이냐고 친족들이 들고일어난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나타나지 않는 상제들 문제로 해서 잔뜩 치밀어 오른 울화가 봇물 터지듯 일시에 쏟아진 셈이다. 누워 침 뱉는 격이라 조객들의 눈치를 보며 벙어리 냉가슴 앓다가 내친걸음이 되어버렸으니 오죽하겠는가.

  “집안 망신을 시켜도 유분수지 남편이 죽었는데 자식을 끌어다가 상제 노릇도 못 시키는 주제에 그것도 모자라서 남편의 장례를 화장으로 하자니 옳은 정신으로 하는 소리요!”

  힐난의 화살이 미망인에게 일제히 쏟아져 꽂혔다. 이놈들 후레자식을 잡아 물고를 내겠다고 자리를 박차고 일어서는 친족들도 있었다. 상제도 없는 상여를 메고 향리에 내려갈 염치도 없고 또 고인 생전에 가끔 화장을 원하는 말을 들어서 그랬노라고 미망인이 극구 궁색한 변명을 했지만 그러면 그럴수록 친족들의 언성은 높아지기만 했다. 오호 통제라. 죽은 자는 말이 없는가? 정말 민망한 노릇이었다.

  결국, 미망인은 두 번 다시 화장 운운하지 못했고, 선산의 장지를 향해 발인할 준비가 친족들에 의해 빈틈없이 이루어졌다. 한편 고인과 가까웠던 몇몇 사람들은 나름대로 장례를 도왔다. 세세히 살펴서 고인의 부음을 전하고 상제들은 모두 외국에 가 있어 오지 못한 것으로 망인의 체면을 얼버무리는 임시변통도 잊지 않았다.

  영안실에는 김 이사의 죽음을 애도하는 행렬이 끊이지 않았다. 먼 지방에서까지 찾아왔고 부득이 직접 조문하지 못하는 사람들의 조전(弔電)도 잇달았다. 이곳 영안실이 생긴 이래 이렇듯 많은 조객이 오기는 처음이라는 말을 들을 정도였다.

  삼일장으로 해서 예정된 시간에 발인했고, 영결의 작별 인사를 받으며 영구차는 고인의 유택을 향해 떠났다. 많은 사람의 시선을 모았고, 관심을 끌었고, 정감을 나누며 살았던 김 이사가 북망산천으로 영원히 가는 길이다.

  나는 마지막으로 김 이사가 땅에 묻히는 것까지 봐야겠다 싶어서 유족들과 함께 영구차에 올라탔다. 석별의 아쉬움도 있었지만, 가정에서의 생전의 김 이사를 알 수 있는 기회가 될 성싶어서였다. 불과 몇 년 동안이긴 해도 피차 가슴을 열어 놓고 호형호제할 만큼 교분을 맺어 온 나로서는 그의 죽음이 주는 충격 못지않게 그의 사후에 일어난 만만치 않은 가정 상황이 주는 충격 또한 컸다. 사람에게 있어서 집안과 밖에서의 생활 태도와 사려 등이 여일하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김 이사의 경우 심한 차이가 표출되었다는 점이 나로서는 간과할 수가 없었다.

  장지까지는 네 시간이나 걸리는 탓인지 영구차 안에는 술과 약간의 안주가 마련되어 있었다. 영구차가 고속도로에 영구차가 진입하자 술잔이 돌았다.

  나는 고인의 사촌과 재종들 사이에 끼어서 술잔을 나누면서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마침 뒷좌석이라서 맨 앞자리에 앉아 있는 미망인과 고인의 딸들을 의식할 필요가 없었다.

  “고인이 집안에서는 좀 문제가 있었던가요?”

  나는 조심스럽게 궁금증의 한 자락을 들쳤다.

  “암, 있다마다요. 도대체가 살림에는 관심이 없었거든요.”

  고인의 사촌 한 사람이 카아! 소리를 내며 소주잔을 비우더니 이내 대꾸를 하고 나섰다. 이야기가 쉽게 풀리겠다 싶어 나는 아예 중간을 생략하고 깊숙이 파고들기로 했다.

  “사회에서는 인정을 받은 분인데도 집안에서는 그렇지 않았나 보죠?”

  “그런 셈이었죠.”

  이번에는 고인의 재종이 나에게 술잔을 넘기면서 끼어들었다.

  “아마 돌아가시는 날까지도 쌀 한 가마가 얼만지도 몰랐을 겁니다. 그렇게 좋은 자리에 있었을 때도 얄팍한 봉급 봉투만 집어던지면 그만이었으니까요. 사 남매의 학비도 안 되는 돈이니 살림이 엉망이었죠. 그렇다고 아주머니가 그런 내색이라도 했다가는 벼락이 떨어졌어요.”

  그래서 김 이사의 부인은 걸핏하면 꿈질을 하고 다녀야 했다. 한시도 허리끈 풀어 놓을 형편이 아니었다. 그런데도 김 이사는 밖의 일에만 심혈을 쏟았고 친구들과 밤새 호쾌하게 술을 마시며 어울려 사는 데 보람을 느꼈다면 문제치고는 심각하지 않을 수 없는 노릇이다. 나물 먹고 물마시며 삶을 달관하는 세상도 아니고 보면 자연히 김 이사는 처자식의 불평과 원망을 면키 어려웠을 것이다.

  이 같은 상황은 그래도 고개를 들지 못하고 밑바닥에 깔려 맴돌고 있다가 자식들이 커가면서 서서히 밖으로 분출되기 시작했다. 능력이 미치는 범위 안에서 키우고 가르치는 데 최선을 다했으면 되지 않느냐는 김 이사의 지론에 대해서 자식들은 승복하지 않았다.

  “자식들은 그게 어찌 최선을 다한 거냐고 반발한 겁니다. 가족보다는 친구들에게, 가정보다도 밖의 세상에 지나치게 마음을 쓰는 가장을 원망하고 나섰어요.”

  고인의 다른 사촌도 가세했다.

  “세상이 다 그렇고 그런 게 아닙니까. 그만 못한 자리에 있는 사람들도 가족들 호강시키고 자식들은 외국 유학까지 시키는 세상에 성실 청렴 따위가 먹혀 들어가겠어요? 결국 아버지는 술친구나 사귀고 외도를 하는 자기 향락에 빠졌다고 오해를 했어요. 자연히 부자간에 사이가 벌어지게 되고 자식들이 가출하는 사태로까지 악화한 겁니다. 결국 부자 사별의 마지막 마당에도 자식들이 얼굴을 내밀지 않는 천추의 한을 남기기에 이르렀어요.”

  “그동안 부자간에 오해를 풀고 피차 마음을 다스릴 기회가 왜 없었을까요? 김 이사의 성격으로 봐서 충분히 그러고도 남았을 텐데......”

  나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그 점이 돌아간 분의 유별난 점이었어요, 밖에서는 융통성 있고 이해심이 남달리 많은 분이었음에도 가족들에게는 지나치게 고집스러웠고 엄격했어요. 당신이 잘못한 게 없다고 여기면 그뿐이었어요. 굳이 이해시키려 애쓸 필요가 없다는 거죠. 언젠가 제물에 깨닫게 되면 좋고 그렇지 못하면 할 수 없다는 겁니다. 특히 자식들에게는 지나치게 엄격했어요.”

  다른 재종은 또 이렇게 덧붙였다.

  “고인은 유산이란 개념을 별나게 설명하곤 했었죠. 재물을 자식에게 물려주는 것이 아니라 부모의 흠 없는 이름을 남겨 놓는 것이 유산 상속이란 겁니다.”

  나도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런 말은 나도 여러 번 들은 기억이 납니다. 자네 선친의 함자가 어떻게 되는가, 하는 물음에 무슨 자, 무슨 자, 이노라고 대답했을 때 상대가 반색하며 훌륭한 분이었노라고 회상하는 것 이상으로 값진 유산이 어디 있겠느냐고 했었죠.”

  “그것은 고인의 진심이었어요. 그만큼 자신의 언행에 신중했고 이름에 조금이라도 부끄러움이 묻는 일이라면 천만금이 생긴다 해도 단호히 거절했으니까요. 허지만 자식들은 이런 아버지의 때 묻지 않은 심성보다는 경제적인 여유를 더 원했어요. 이게 현실이 아닙니까? 자식들만 나무랄 수 없는 세상이기도 합니다.”

  처음에 응대했던 고인 사촌의 결론적인 말을 들으며 나는 조용히 말했다.

  “부자간에 정말 심각한 균열이 있었군요. 나는 가까이 사귀면서도 전연 눈치를 채지 못했어요. 그렇게 근본적인 대립이 있었다면 집안이 평온할 리가 없죠. 아무튼, 김 이사는 여러 면에서 별난 명물이었음이 틀림없군요.”

  다시 술잔이 돌고 나무 도시락에 담아 온 다른 돼지고기 안주에 나무젓가락이 모여들었다.

   메모

추천 소스보기 수정 삭제 목록
다음글 : 기숙사 206호(소설) (2010-10-21 23:43:00)
이전글 : 김 노인 (2010-09-20 09:55:27)

[특별공지]댓글에는 예의를 지켜주시기 바랍니다. 특히 부지불식간에라도 작가의 기분을 상하게 하거나 사기를 꺾지 않게 각별한 유념 부탁드립니다. 글방의 좋은 분위기 조성을 위한 목적상, '빈정거리는 투'나 '험담 투'류의 댓글 등 운영자가 보기에 좀 이상하다고 판단되는 댓글은 가차없이 삭제할 것임을 미리 알려드립니다. 그것이 한국문학방송의 가장 큰 운영방침입니다. 비난보다는 칭찬을! 폄훼보다는 격려를! (작가님들께서는 좀 언잖은 댓글을 보시는 즉시 연락바라며, '언제나 기분좋은 문인글방'을 위해 적극 협조바랍니다. "타인의 작품에 대한 지적은 함부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감상차원의 댓글도 아주 조심스럽고 또 조심스럽게! & 겸허한 자세로~!" 항상 타인의 입장을 먼저 배려하는 미덕을 가지십시다. 기타 (작품 또는 댓글 중)욕설 또는 저속한 언어, 미풍양속에 반하는 표현 등의 글도 삭제합니다.
◐댓글 말미에는 반드시 실명을 밝혀주시길 바랍니다. 실명이 없는 댓글은 무조건 삭제합니다.
 
경북도청 이전기념 전국시낭송경연대회
제2회 ‘박병순’시조시인 시낭송 전국대회 / 접수마...
문학방송으로 연결되는 96개의 핫 키워드급 도메인 / ...
 
사이트소개 개인정보보호정책 이용약관 이메일주소무단수집거부 알립니다 독자투고 기사제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