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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노인
2010-09-20 09:55:27
tanchon

조회:1515
추천:85
첨부파일 :  1284944127-73.hwp

 

단편소설


                                                                     김 노인


                                                                                                                               탄천 이종학


  대학병원에서 직장 수지 검사를 시작으로 항원 검사, 초음파 검사, 조직 검사 등 여러 날을 걸쳐서 이것저것 많은 검사를 거쳤다. 그 결과 전립선암이라는 진단이 내려진 순간 김 선동 노인은 온몸이 석고상처럼 굳어지고 말았다. 암에 걸리면 무조건 시한부 인생이라는 사형 선고와 다름없음을 알고 있는 터이다. 이제는 칠십 고개도 넘어 보지 못하고 가는가 보다 싶어 그는 온몸에서 힘이 빠져나가 후들거림을 감추지 못했다.

  한참만에야 겨우 약간의 기력을 불러 찾은 김 노인은 그래도 식구들 앞임을 의식하고 애써 태연한 척 큰기침을 하고는 다시 담당 의사에게 중얼거리듯 물었다.

  “암에 걸렸으니 이제 끝장이 아니겠소.”

  의사가 당연히 고개를 끄덕이리라 짐작하면서 공연히 물어봤다 싶어 쑥스러운 김 노인은 담배를 찾으려고 양복 주머니를 더듬적거렸다. 그러다 이내 생각을 바꿔먹었다. 내친 김에 싸늘하게 몰려오는 궁금증을 털어놓지 않고 담배 맛인들 있을 성싶지 않았다. 절벽에 부딪히면 오히려 냉철해지는 게 사람이기도 하다. 

  “앞으로 몇 달이나 더 살 것 같소?”

  의사는 입가에 웃음을 담으면서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허면, 몇 달도 어렵다 이건가요?”

  김 노인은 의사의 안경 쓴 얼굴에 똑바로 시선을 고정시켰다. 면도 자국이 파랗게 남아 있는 의사의 얼굴이 옆으로 흔들리고 있는 게 분명했다. 흡사 돌쟁이의 도리질이 연상되자 김 노인도 따라 하듯 고개를 좌우로 약간 움직이며 다시 궁금증을 풀어냈다.

  “허기야, 그까짓 몇 달 더 살아본들 뭘 하노......”

  김 노인의 말끝이 자조적으로 흐려졌다. 

  “그게 아닙니다. 영감님.”

  의사가 김 노인의 한 손을 잡아 다독거리며 비로소 입을 열었다. 본시 환자 앞에서는 의사의 입이 무겁다고들 하지만, 뜸 드리는 사이가 꽤 긴 듯했다.

  “전립선암이긴 하지만, 다행히 조기 발견을 했기 때문에 수술만 받으시면 생명에는 아무 지장이 없습니다. 현재로서는 암세포의 움직임이 활발하지도 않고 또 다른 부위로 전이된 흔적은 없으니까 마음 푹 놓으셔도 됩니다.”

  의사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침통한 얼굴을 하고 옆에 서 있던 김 노인의 늙은 아내와 아들이 펄쩍 뛸 듯이 반색하면서 의사에게 달려들었다. 그리고 약속이나 한 듯이 동시에 똑같이 내지르듯 확인을 했다.

  “선생님, 그게 정말입니까?”

  “그게 사실입니까요?”

  “정말입니다. 거짓말하는 의사를 보셨나요?”

  의사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김 노인의 아내는 긴 안도의 한숨과 함께 몸을 내던지듯 의자에 다시 풀썩 주저앉는다. 손수건은 이미 눈가에 가 있었다. 

  “고맙습니다. 선생님, 고맙습니다.”

  김 노인의 아들은 아들대로 금세 입에서 토해내듯 타이어 바람 빠지는 소리를 내며 연방 정중하게 허리를 굽실거린다. 이런 경우 환자 당사자의 모습은 논외가 되고 만다.

  “선생님, 정말 감사합니다.”

  “의사로서도 이런 때가 여간 기쁜 게 아니랍니다.”

  의사도 밝은 표정을 지어 보이자 김 노인의 아들이 이번에는 아버지에게 한번 시선을 주고 나서 물었다.

  “선생님, 그럼 수술은 언제 할 수 있을까요?”

  “빠를수록 좋습니다. 가능하면 일주일 안에 입원 수속을 하세요.”

  “여부가 있습니까. 빨리 준비하고 와서 다시 뵙도록 하겠습니다.”

  김 노인은 아들과 의사가 수작하는 것을 넋 나간 사람처럼 멍청히 바라보고 있다가 미간을 찌푸리며 아래쪽으로 손을 가져갔다. 요도에 기분 언짢게 통증이 왔기 때문이다. 이런 그의 안색을 놓치지 않은 의사는 말했다. 환자의 일거수일투족에 민감해야 명의의 반열에 서는 법이다.   

  “영감님, 수술도 아주 간단해요. 그런데 다만......”

  그러면 그렇지. ‘다만’이라는 꼬리표가 의사의 입에서 당연히 나올 줄 알았다는 듯이 김노인은 눈을 아래로 깔고 고개를 조용히 주억거렸다. <수술은 간단하지만, 일단 칼로 째 놓고 직접 들여다봐야 정확한 병세를 판별할 수 있다.>는 의사의 의중을 짐작 못 하리만큼 우둔한 노인이 아니라고 내뱉고 싶은 충동까지 느끼며 그는 요도의 통증을 지그시 깨물었다. 의사라고 하는 직업은 항용 환자의 기분에 관심을 기울이는 척하기 마련이다. 그래서 일단 환자를 안심시켜 놓고 나서 ‘다만’이란 접속 부사를 통해 부정 가능성을 아주 조심스럽게 조건부로 말하는 인술(仁術)적인 관행에 따르기 마련이다.

  김 노인은 눈치 없는 할망구가 주책없이 무슨 말을 또 떠버리지나 않을까 싶어 아내를 넌지시 노려보았다. 아니나 다를까, 그의 아내는 거북해 할 의사의 입장은 치지도외하고 기어이 입을 여는 것이 아닌가.

  “선생님, 다만, 이라고 하시면, 수술 뒤에 혹여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말씀인가요?”

  “혹시 위험한 후유증 때문인가요?” 

  어머니의 말을 따라 가만히 있을 아들도 아니다. 이런 상황에서 의사의 한 마디는 환자와 그 가족들이 저승길을 왔다리 갔다리할 위력을 충분히 갖고 있다. 연거푸 모자의 걱정에 절은 질문을 받은 의사는 그쪽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김 노인에게 은근히 대답해 주었다.

  “영감님, 수술받으시고 나면 발기부전증이 오기 쉽습니다. 그래도 괜찮으시겠지요?”

  “발기 부전이라면?......”

  빙긋이 웃음을 담은 의사의 입을 보고서야 김 노인은 아뿔싸! 체통 머리 없이 경망을 떨었구나 싶어 아내와 아들을 힐끔 쳐다보았다. 병원에 간다고 했을 때 아픈 부위가 부위인지라 할망구는 따라오지 말라고 했었다. 막무가내로 앞장서 대문을 나서는 바람에 더는 말리지 못한 게 못내 후회되었다. 그렇지 않아도 나이 탓으로 밤이면 주눅이 들어가고 있는 터에 인제는 아예 쪽박 깨지듯 박살나고 말았으니 체통이 말이 아니다.   

  이런 김 노인의 심정은 아랑곳없이 아들은 손으로 가슴을 쓸어내리며 안도의 빛을 한껏환하게 들어내고는 창밖으로 시선을 보냈다. 아내도 일시에 긴장이 풀린 얼굴을 하고 이마에 잔뜩 주름을 그린 영감에게 입을 삐죽하며 이죽거린다. 어유, 무슨 대단한 변고라도 일어나는 줄 알았지. 설마 그까짓 일 때문에 내가 마음이라도 구겨졌을까 봐 염려한다면 천만의 말씀이라고 대들기라도 할 눈치였다.

  아무튼 공연히 제물에 무안해진 김 노인은 가만히 있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음인지 태연한 듯이 헛기침까지 하며 입을 열었다.

  “암이란 놈만 다스려진다면야 이 나이에 그까짓 게 무슨 문제가 되겠소.”

  분명히 김 노인이 의사에게 한 말인데 말꼬리는 그의 아내가 잡고 나섰다.

  “여부가 있습니까요. 이 양반 환갑 진갑 지나신 지가 언젠데요.”

  아무리 할망구이긴 해도 엄연히 아녀자이거늘 이런 얘기에 거침없이 끼어들다니 원!, 김 노인이 입맛을 다시고 있는데 의사가 여전히 웃음을 비치면서 말했다.

  “하긴 그러시군요. 하지만, 수술 후에도 항암치료 등을 통해서 후유증을 최소한으로 줄여 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럼, 그렇게 아시고 하루라도 빨리 입원 수속을 하세요.”

  의사가 몸을 일으키자 모두 서둘러서 따라 일어났다.

  이렇게 해서 보름 뒤에 김 노인은 전립선암 수술을 받았다. 수술도 두 시간 정도밖에 걸리지 않았고 또 경과도 썩 좋아서 일주일 뒤에 퇴원할 수 있었다. 그리고 천만다행인 것은 항암 치료도 무난히 맞췄다. 남들은 치료를 받으려면 심한 고통을 겪는다고 하던데 김 노인은 비교적 편안하게 치료를 끝냈다. 다들 행운이라고 축하해 줄 정도였다.

    

  김 노인이 요도에 압박이 오기 시작한 것은 꼭 두 달 전의 일이다. 그러기 일 년 전부터 비뇨 기관에 약간의 이상 징후가 감지되긴 했었다. 소피를 자주 보고 질질거리거나 가끔 악간의 통증이 오기도 했다. 처음에는 늙느라 그러려니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늘그막에 요실금은 흔한 일이다. 그러다가 소변을 보지 않을 적에도 가끔 따끔거리는 이상 증상이 나타나자 동네 약국에서 주는 전립선비대증에 먹는 약을 사다 먹곤 했다. 그러나 그 정도가 점점 심해지는 것 같아 그제야 김 노인은 은근히 걱정되었다. 소싯적에 한 눈 팔다가 성병에 걸려 본 경험이 있었는데 증세가 그때와 비슷했다. 혹시 몇 십 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 그게 재발한 것은 아닌가 하는 엉뚱한 걱정도 했었다. 그래서 가까운 동네 병원을 찾아서 진찰을 받아 보고 소변 검사도 해보았지만, 전립선이 약간 비대해진 것일 뿐 별다른 이상이 없다는 것이다. 아마 기력이 쇠약해져서 생긴 노화현상인 것 같다면서 비타민제 등 몇 가지 복용 약을 처방해 주었다.

  비타민제가 효험을 가져올 리가 없다. 오히려 요도의 불쾌감과 통증의 빈도가 잦아졌다. 이번에는 한의사를 찾아가서 진맥을 받고 약 몇 첩을 지어다 달여 먹어 봤지만, 역시 헛수고였다. 백발이 성성한 처지에 다른 데도 아니고 하필이면 은밀한 곳에 탈이나 놓았으니 아래를 싸쥐고 방안에 누워있기가 민망했다. 행여나 아내와 자식들이 알까 봐 태연한 척 바깥출입도 하고 집안을 서성거리고 다니자니 그 고통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갑자기 통증이 치밀라치면 길을 가다가도 사타구니를 거머쥐고 한참 동안 쩔쩔매야 했다. 무의식중에 며느리 앞에서 아래쪽으로 손이 갔다가 멈칫하고 어금니를 바드득 갈며 아픔을 참은 적도 한두 번이 아니다.

  이렇게 반년 가까이 넘기느라 진땀을 흘린 끝에 결국 식구들에게 알려지고 수술대에 올라 눕고 만 것이다. 병에는 장사가 없고 체통이고 나팔이고 생각할 여지가 없다. 

  퇴원하고 몇 번인가 항암 치료를 받고 난 뒤부터 김 노인은 모든 것이 정상으로 회복되어 가기 시작했다. 요도의 통증이 씻은 듯이 가시고 자주 보던 소피도 평상과 다름없었다. 높아서 걱정했던 혈압 증상까지도 정상을 되찾았다. 등산하거나 약간의 술을 마셔도 별다른 지장이 나타나지 않는 걸 보면 병마를 완전히 털어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었다.

 

  김 노인은 심심파적으로 나가던 기원이나 다방에서 친구들을 다시 만나게 되었다. 자연히 김 노인을 괴롭혔던 전립선암이 중요한 화제의 중심을 이루었다. 더구나 전립선암이 나 방광암 같은 노인성 질환 발생률이 해마다 증가하는 터라 건강에 대해 특히 유념하는 노인들이 많아지고 있는 게 사실이다.

  처음에는 전립선암이 발병한 경위와 상황을 설명하고, 진찰에서 수술받고 치료한 일체 과정을 김 노인은 자세하게 이야기했다. 그가 말하는 동안 모두가 귀를 쫑긋 세우고 기침 한번 함부로 하지 않았다. 피차 늙어가면서 남의 일처럼 여겨지지 않았던 것이다.       

  “처음에 암이라는 진찰 결과가 나왔을 때 이제 내 인생도 끝장났구나 하는 회심한 생각이 들더구먼. 아직도 못다 한 일들을 남겨 두고 떠나야 하는가 싶으니까 몹시 아쉽고 안타깝더군. 온몸에서 기운이 쪽 빠지고 입에서는 단내가 나더라구. 나도 모르게 고생하며 앓다가 죽느니 차라리 미리 생을 포기해 버리는 게 낫겠다는 모진 감정이 불쑥 생기더란  말일세.”

  “왜 안 그렇겠는가. 이해가 가네 그려.”

  누군가가 맞장구를 쳤다. 김 노인의 말은 계속되었다.

  “그러다가 수술을 받으면 생명에는 지장이 없다는 의사의 말을 듣자 갑자기 목숨에 대한 애착이 불처럼 일어나지 뭔가. 사람이란 참 간사한 물건이지.”

  김 노인이 잠시 숨을 돌리고자 담배를 꺼내자 옆에서 라이터를 켜 대며 물었다.

  “물론 수술은 전신 마취를 하고 받았겠지?”

  “그야 당연하지. 수술대에 누웠을 때 긴장이 오긴 했지만 오래지 않아 깜박 의식을 잃었어. 사람이 정신을 놓는 건 아주 잠깐이더라구. 수술이 끝나고 몽혼에서 깨어나니까 아래가 묵직하고 기분이 좋지 않았지만 염려했던 것과는 달리 통증 같은 건 없더라구.”

  김 노인은 병상 일기 같은 이야기를 마치자 담배를 아주 맛있게 빨았다. 그러나 발기부전 어쩌고 했던 의사의 말은 전연 비치지 않았다. 아무리 친구들 사이라고는 하지만, 거세된 거나 다름없는 약점을 들어내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아무튼 수술 결과가 좋다니 축하하네.”

  “큰 수술한 끝이니까 특히 몸조심하게나.”

  신경을 잔뜩 쏟았던 친구들은 이렇게 한 마디씩 염려하기를 잊지 않았으나 역시 잠시 잠깐의 인사치fp에 불과했다. 이전과 같이 격의 없는 농담이 오가기 시작했다. 이번에도 여전히 너나없이 김 노인을 농담의 표적으로 삼는 것이었다. 

  “이 친구 불알을 까더니만 턱수염이 점점 없어지네 그려.”

  “예끼 이 몹쓸 사람! 내가 돼지 새낀가?.”

  “저거 보게. 목소리도 여자를 닮아 가고 있다니까.”

  “내가 병원에 가 있는 동안에 망령들이 들었구먼.”

  이런 농담을 주고받을 때마다 박장대소가 터져 나왔다. 김 노인이 큰 병에 걸려 입원했다는 소식을 듣고 침울해하던 노인들이기에 친구의 건강한 모습을 다시 대하게 된 기쁨도 그만큼 컸다. 이런 친구들을 성한 몸으로 다시 만나게 된 김 노인 또한 마냥 즐거웠다. 친구들이 병원으로 문병 왔을 때 공연히 서로가 눈시울이 뜨거워졌던 일이 지금까지도 가슴을 훈훈하게 하면서 이들과 더불어 오래 살고 싶었다.

  

  유난히 추었던 겨울이 지나고 새봄이 돌아왔다. 전립선암 수술을 받은 지도 어언 반년이 지난 어느 날 새벽녘에 김 노인은 눈이 떠지자 이불 속에서 살며시 아내의 손을 잡았다. 그러나 아내는 전에 없이 영감의 손을 뿌리치며 돌아눕는다. 김 노인은 싱긋이 웃고 다시 팔을 깊이 뻗었다. 역시 아내의 태도는 쌀쌀맞았다.

  김 노인 부부는 환갑이 지나고서도 전립선암 수술을 받기 전까지는 심심치 않게 운우의 정을 나누어 왔다. 김 노인은 어쩌다 아래쪽의 팽만감 때문에 눈이 떠지는 새벽에는 오랜 습관 탓인지 스스럼없이 아내의 가슴을 더듬곤 했다. 다 늙어 가며 청승맞게 이 무슨 짝인지 모르겠다고 서로 말은 하면서도 아직은 그럴 만한 기력이 있다는 게 건강의 증표로 여겨 왔다. 또 그래야만 어쩐지 늙어 가면서 서로 더욱 의지가 되는 것 같았다.

  이런 김 노인이 전립선암 수술을 받고 나서는 아래쪽이 완전히 휴화산이 되고 말았다. 아무런 활동 기미를 보이지 않는 것이다. 수술하기 전에 이미 의사가 예고한 터라 특별히 놀라거나 근심하지는 않았지만 어쩐지 손에 꼭 쥐고 있던 소중한 물건이 없어진 것 같은 허전함을 버릴 수가 없었다. 그보다는 아내와의 사이가 갑자기 소원해지는 고적함이 견디기 어려웠다.   

  늙는다는 현실감이 몸의 여러 가지 증상을 통해 감지되긴 했어도 그래도 가끔 아래쪽에 뿌듯한 감각이 재워질 때면 어깨가 쭉 펴지는 것이었다. 아직도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자신감에 은근히 큰기침을 하게 했다. 그러다가 요즘 완연히 주눅이 들었음을 확인하면서 갑자기 용도 폐기된 심한 박탈감에 함몰되고 말았다. 병원에 입원하고 있을 적에야 암을 이기고 생명이 보장된다는 말을 듣게 된 것만으로도 천지신명에게 골백번도 더 감사했던 김 노인이었다. 성 기능의 문제 따위는 손톱만큼도 괘념치 않았던 그가 인제 와서 손으로 아래쪽을 더듬으며 절망에 사로잡히다니 정말 인간의 생명력이 그곳에 집약된 탓인지도 모른다.

  이날 새벽에도 김 노인은 고약한 병 때문에 아주 못 쓰게 된 물건이 안타까워서 자신도 모르게 아내의 손을 잡아 봤을 뿐이다. 특별히 욕심 같은 게 있어서가 아니라 아내의 몸을 통해 조금은 불씨가 남아 있음을 확인하고 싶었다고나 할까. 죽은 나무에 꽃 피기를 바라는 꼴이었다.

  김 노인의 손이 배 가까이 다가오자 영감의 서글프기까지 한 심사를 헤아리지 못한 아내는 용수철처럼 발딱 튀어 일어나 앉으며 쏘아붙였다.

  “주책 좀 떨지 마슈.” 

  “아, 누가 볼까 봐 그러는가?”

  김 노인은 무안해서 아내 쪽에 두었던 고개를 거두며 겨우 대꾸했다.

  “누가 보나 마나 영감이 지금 성한 몸이시우?”

  “왜 내가 어때서. 어서 이리 다가 눕기나 해요.”

  “의사가 한 말을 벌써 잊으셨어요?”

  “의사가 뭐랬기에.”

  “수술받고 나면 어떻게 된다고 합디까?”

  “그래서, 임잔 지금 섭섭해서 하는 말인가?”

  “별꼴 다 보겠네. 섭섭하긴 뭐가 섭섭해요.”

  “그러기에 토라지고 야단이지.”

  “내가 지금 이팔청춘이랍디까. 여자는 남정네들하고는 달라요. 청상으로 수절한 여자도 얼마든지 있어요. 이 나이에 섭섭하니 어쩌니 말하는 영감이 망령 기까지 생긴 건 아니우?”

  “못 할 소리가 없구먼.”

  “그러니까 건강 조심하는 것 말고는 아무 데도 신경 쓰지 마시우.”

  “그래서 내가 어떻게 한다고 그랬나. 공연 시리 제물에......”

  김 노인의 말까지도 점점 기력을 잃어 가고 있었다. 늙은 아내의 말이 어찌나 멋쩍고 섭섭하게 들리는지 버럭 큰소리라도 지르고 싶었지만 이미 목구멍까지도 안개가 잔뜩 서렸다. 그리고 갑자기 외로움이 한겨울 설한풍처럼 매섭게 달려들었다. 자기의 건강을 염려하는 아내의 애틋한 마음을 모르는 그가 아니다. 그렇게 아내가 자제시킬 만큼 중환자가 되어 버린 신세가 처량해서 견디기 어려웠다.  


  이런 일이 있고부터 김 노인은 까닭 없이 곧잘 사막 같은 공허가 찾아오고 소중한 것을 잃고 괴로울 때처럼 낭패감 같은 심사가 온몸을 휘감는 것이었다. 생동감 넘치게 돋아나는 초목의 새싹들을 들여다보고 있노라면 맥없이 허물어지는 자신의 모습이 처량해져서 눈을 스르르 감아 버렸다.

  김 노인은 어딘지 모르게 몸이 찌뿌드드했다. 미열이 약간의 한기를 몰고 오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이따금 수술한 부위가 뜨끔거리는 것 같기도 하고 머리가 어찔어찔 흔들리는 착각을 일으키기도 했다. 그렇다고 서둘러 병원에 가고 싶지는 않았다. 짐작건대 그럴 정도로 몸에 별다른 이상이 생긴 게 아니라 다만, 신명이 달아나 버린 마음이 더 편치 못했던 것이다.

  봄이 한창 성찬의 자태를 자랑하던 어느 날 김 노인은 몇몇 친구와 어울려 봄놀이에 나섰다. 기원에서 바둑을 두다가 화사한 봄 날씨의 유혹을 받아 갑자기 계획한 일이었다. 하룻밤 묵으면서 봄 풍경을 즐기기로 하고 다섯 명 일행이 수려한 계곡을 끼고 있는 산사를 찾은 것이다.

  산사에 오르는 연둣빛 신록이 우거진 산행길에는 철쭉과 산벚꽃이 만발하고 이름 모르는 새들의 재재거림과 계곡물 흐르는 소리가 어우러져 가슴을 벅차게 했다. 많은 상춘객 또한 계곡마다, 나무그늘마다 가득 넘쳤다.  젊은이 못지않게 너울너울 춤을 추며 노익장을 과시하는 노인들도 여기저기 눈에 띄었다. 역시 봄은 생동의 계절이다.

  김 노인 일행도 우선 산사 가까이에 있는 여관에 짐을 풀고 섬섬옥수가 흐르는 계곡 가까이에 자리를 잡았다. 음식점을 겸한 여관에서 정해 준 명당이다. 술과 안주를 적당히 시켰다. 한철 행락객을 상대하는 장사인 터라 술과 안주는 입맛대로 얼마든지 주문해 먹을 수가 있다.

  기다렸다는 듯이 이내 술과 안주가 나왔다. 야들야들한 초목의 새순과 꽃들과 봄바람이 엮어내는 화창한 분위기로 해서 술과 안주 맛이 기생 치맛자락 감기듯 혀에 척 감겨 돌았다. 술과 안주가 나이를 잊은 듯 거침없이 입안으로 들어갔다.

  김 노인은 모처럼 만에 가슴이 훈훈해짐을 느꼈다. 술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얼었던 몸이 난로 가에 앉았을 때처럼 온몸에 온기가 나른하게 스며들었다. 생기가 서서히 되살아나는 일종의 발효 현상이기도 했다. 그동안 투병하느라 긴장했던 심신과 수술 후유증에서 오는 이탈된 자신감이 안마사의 손끝으로 조금씩 되살아나는 기분이었다.

  “허, 참 좋다!”

  김 노인은 자기도 모르게 큰소리를 내면서 일어났다. 그러고는 목청껏 시조 한 수를 읊었다.

  “태산이~이 높다하~하되에~에~......”

  조금도 숨이 가쁘지 않았다. 목청이 거침없이 아주 높고 우렁찼다. 시조를 배울 때부터 명창 재질이 있다는 칭송을 들어 온 솜씨이다.

  “어떤가, 이래도 내가 늙었는가?”

  김 노인은 시조 한 가락을 자랑스럽게 뽑고 나서 좌중을 호기롭게 돌아보며 소리쳤다. 가슴을 쭉 펴고 두 팔을 옆으로 힘차게 벌려 보였다. 왕년에는 원반과 투창선수로 날렸던 몸이다. 대대로 장사라는 호칭을 들어온 집안의 자손이 아니던가. 

  “암, 여부가 있나. 그만하면 한창때나 진배없네. 자 받으라구.”

  누군가 무릎을 탁 치며 김 노인에게 술잔을 내밀었다.

  “기분만 이팔청춘이면 뭘 하누. 가운데 다리가 맥을 쓸 수 없게 되었으니. 안 그런가?”

  이번에는 다른 노인이 의미 있게 싱긋이 웃으며 김 노인을 올려다봤다. 의사가 내밀히 한 말을 저자가 어떻게 알았을까? 김 노인은 순간 고개를 갸웃했지만 괴춤을 한번 추스르고 나서 대들 듯이 쏘아붙였다.

  “이 사람, 제 말하고 있구먼. 나는 아직도 끄떡없네. 노익장이란 말도 모르나.”

  “젠장, 노익장이고 나팔이고 불알이 있어야 행셀 할 게 아닌가?”

  “내가 어디 불알 수술했다더냐? 이 고약한 친구야.”

  “거기가 거기지 뭐. 그 물건들이 서로 삼천리나 떨어졌다던가.”

  ‘아따, 걱정도 팔자구먼. 이래봬도 지금 당장 창호지 열 장 정도는 꿰뚫을 자신이 있다구. 암, 자신 있고 말구.“

  김 노인이 아랫배를 탕탕 쳐 보이며 호언장담을 하자 모두 가가대소하면서 그에게 서로 술잔을 권했다. 처지야 어찌 되었든 기죽지 않는 친구가 대견스럽게 여겨졌던 것이다.

  김 노인은 착각인지 모르지만 이날따라 이상하리만큼 정력이 팔팔 솟아오르는 듯했다. 흰소리가 아니라 정말 어떤 일이든 해낼 수 있는 자신이 있었다. 늙은이답지 않게 객기가 생겨서도 아니고, 의사가 선고했던 발기 부전이라는 수술 후유증에 대한 역동적인 오기가 서려 그런 것은 더더욱 아니었다. 화창한 봄기운에 술기운까지 곁들인 탓인지 모른다. 끄떡없이 살아 있다는 현실감이 포근하게 다가왔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김 노인이 특별히 명랑해진 영향인지 좌중의 분위기는 더욱 떠들썩하고 흥청거렸다. 누가 보아도 노인들만의 술자리답지 않게 활기가 팽팽하게 감돌았다. 술병을 예상외로 많이 비웠지만 술주정 같은 흐트러진 모습들이 아니라 술에 적당히 얼근해진 흥취와 해이함이 뒤섞여 오히려 강녕하게 보였다. 나이라는 것은 한낱 삶에 질서를 부여하는 것에 불과하다고 말한 사람이 있지 않은가.


  해가 산마루를 넘어가자 어스름이 안개처럼 퍼질 무렵에서야 김 노인 일행은 여관방으로 돌아왔다. 누가 재치 있게 시켰는지 따끈따끈한 닭죽이 기다리고 있었다. 산사 계곡답게 한낮 열기는 게 눈 감추듯 사라지고 조금씩 서늘한 바람을 몰고 온 터였다. 취기가 아직도 알딸딸하게 남아 있는 몸에 뜨거운 닭죽은 최고의 별미였다. 그들은 여관에서 특별 서비스라며 내놓은 두견주를 반주 삼아 감탄사를 연발하며 닭죽을 즐겼다.

  산사의 밤 범종 소리가 어둠에 실려 산속으로 잦아들었다. 김 노인 일행은 발길을 조심하며 가까운 계곡물을 다시 찾아서 양치질하고 얼굴과 발을 닦았다. 흐르는 물소리가 더욱 청량했다. 아직도 흥을 다 사기지 못한 정렬 행락객은 모닥불을 피워 놓고 술잔을 돌리는 광경이 여기저기 보였다. 세속이야 어떻든 범종 소리에 이어서 청아한 목탁 소리가 잔잔한 산울림이 되어 정적을 헤집었다.

  김 노인 일행은 두 방으로 나누어 자리에 들었다. 처음에는 도란거리거나 담배를 태우느라 부스럭거리더니 어느새 코 고는 소리가 여기저기에서 들렸다. 즐거운 시간도 피곤은 몰고 오는 모양이다.  

  김 노인도 깜박 잠이 들었다. 그러다가 세상모르고 잠에 빠졌던 그는 문득 잠결에 이상한 감촉을 느끼고 눈을 떴다. 몇 점이나 되었을까. 심심 산중의 한밤은 괴괴하게 적막했다. 그는 옆에서 나란히 누웠던 친구가 너무 가까이 다가왔는가 보다 여기고 조금 밀어 볼 양으로 팔을 뻗혔다. 순간 석고처럼 굳어지고 말았다. 이게 어찌 된 노릇인가? 손으로 더듬거리는데 살포시 맞잡는 손이 있었다? 분명히 옆에 누워 자던 친구들의 남정네 억센 손이 아니었다. 아찔한 정신을 추스르기도 전에 그 손을 이쪽에서 잡아당기기라도 한 것처럼 상대가 살포시 다가오는 것이 아닌가. 그제야 화장품 냄새가 콧속으로 확 달려들었다. 천만뜻밖의 상황에 기절초풍한 그는 벌떡 일어나 앉았다.

  “이, 이게 누구여?”

  김 노인의 목소리는 떨렸다. 주눅이 들어 제대로 입 밖으로 나오지 않는다. 아뿔싸! 혹시 잠결에 밖에 나갔다가 방을 잘못 찾아든 게 틀림없다는 판단이 번개처럼 스치고 지나갔다. 그는 그때까지 무심결에 잡혀 있던 손을 빼려 했다. 그제야 속삭이듯 반응이 건너왔다.

  “영감님, 놀라실 거 없어요.”

  어럽쇼?....... 웬 여인의 목소리인가? 김 노인의 온몸은 완전히 냉각되고 말았다. 깊은 산중 칠흑 같은 오밤중에 난데없이 청승맞은 여인의 목소리라니! 옛이야기에서 나오는 구미호의 환영이 날 선 발톱이 되어 등줄기를 긋고 내려갔다.

  상대가 서너 번 낮게 기침을 하고 나서 부스럭거리는가 싶더니 이내 성냥을 그었다. 갑자기 방안이 환해지면서 옆에 누워 자던 친구들은 보이지 않고 속치마 바람의 젊은 여인의 모습이 꿈결처럼 드러났다. 그녀는 요염하게 싱긋 웃음을 흘리면서 머리맡에 있는 촛대에 불을 붙였다. 그리고 김 노인에게 살포시 몸을 기울이면서 입을 열었다. 풀어헤친 머리에서 무슨 과일 냄새가 나는 듯했다.

  “영감님, 어서 눕기나 하세요. 다른 친구분들은 모두 다른 방에서 주무시니까요.”

  “도대체 당신은......?”

  김 노인은 여전히 구미호의 공포에서 벗어나지 못한 얼굴을 하고 물었다.

  “누구냐구요? 아까 친구 분들의 청으로 잠자리 봐 드리려고 온 여자예요.”

  “.......?”

  “영감님께서 아직도 창호지 열 장을 너끈히 뚫을 수 있다고 장담하셨다면서요? 호호...”

  “원 그런 말을......”

  김 노인은 약간 볼멘소리를 했지만, 오밤중의 놀라움에서 약간은 놓여나는 듯했다. 창호지라는 여인의 말에서 이 모든 일이 친구들의 소행임이 어렴풋이 짐작되었던 것이다. 

  “이제 제가 왜 여기에 왔는지 아시겠죠? 어서 자리에 드세요.”

  여인의 목소리는 어느새 촉촉이 젖어 가고 있었다. 그녀는 거침없이 김 노인의 허벅지를 어루만지며 노골적으로 수작을 시작했다. 이 선정적인 지경에 이르고서야 김 노인은 밴스 한 장만 달랑 입고 있는 자신을 깨달았다. 그는 어려서부터 옷을 다 벗고 밴스 한  장만 입고 자는 버릇이 있다. 그 지긋지긋한 피풍(皮風)을 앓았기 때문이다.  

  어느새 김 노인은 길든 호마처럼 여인이 시키는 대로 이불 속으로 끌려들어 가고 말았다. 태초부터 여인에게는 완력이 필요 없었던 것이다.

  “영감니임-”

  촛불을 끈 여인은 코맹맹이 소리를 문대면서 탄력 있는 몸을 김 노인에게 밀착시키더니 손은 거침없이 김 노인의 아래쪽 돌기를 향해 더듬거린다. 말리고 자시고 할 정황이 아니다. 졸지에 몽롱하게 당하는 노릇인지라 그는 꾸어다 놓은 보릿자루처럼 멍청히 여인의 손길에 온몸이 온전히 해체되고 말았다. 불현듯 호기심 어린 친구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전립선에 칼질한 주제에 창호지가 어떻고 큰소리를 쳐댔으니 낭패한 꼴을 어디 한번 당해보라는 짓궂은 의논들을 했으리라.

  경황 중에도 분명한 상황 판단을 하고 나니 여인의 손길이 더욱 거북스러웠다. 수술한 의사의 말대로라면 음양의 이치 따위가 통할 까닭이 없다. 이 밤에 영락없이 망신살을 각오해야 한다는 위축감에 김 노인은 그만 눈을 딱 감고 말았다. 그렇다고 오밤중에 여인을 밖으로 몰아내는 수선을 떨 수도 없는 노릇이다. 공연히 쓰적거리는 짓을 당할 게 아니라 체통이야 엉망이 될망정 사실 그대로를 털어놓고도 싶었다. 전립선암 수술 후유증으로 빙충맞은 거시기가 되어 버렸다고 동곳을 빼버리면 여인의 손길은 잠잠해지지 않겠는가. 하지만, 마음뿐이었다. 차마 젊은 여인에게 실토할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러니 이런 당혹스런 일을 꾸민 친구들만 원망할 따름이었다. 술김에 좀 지나치게 허풍을 떨었기로서니 마음이 휑해서 술김에 한번 지껄인 소리려니 왜 이해를 못해 준단 말인가.

  꼼짝없이 턱에 수염 난 위인이 굴러 들어온 여복(女福)을 고자 무엇 바라보듯 해야 하는 망신을 감내하는 수밖에 별도리가 없었다. 아예 체념하고 절에 간 색시처럼 여인이 하는 대로 몸을 내맡긴 채 숨을 죽이고 있었다. 등줄기에 진땀이 솟는 느낌이 들었다.

   솥쩍 솥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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