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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1.01 이후)


무임승차
2010-09-01 09:14:30
sws60

조회:1598
추천:96

(단편) 무임승차
신외숙

  한때 봉고맨과 샤터맨이란 단어가 유행한 적이 있었다.
  능력 있는 아내를 둔 남자를 부러워한 남자들이 만들어 낸 단어였다. 봉고맨이란 미술학원을 하는 아내를 둔 남자가 학원생들을 봉고차로 실어다 주는 직업이다. 또 샤터맨이란 약국을 경영하는 아내를 둔 남자로 약국 문을 열고 닫을 때 나와서 도와주는 직업을 말한다. 옛날과 달리 요즘은 무능한 남자들이 여자 하나 잘 만나서 팔자를 고쳐 보려는 좀비족들이 많다.
  
자존심 뭉개고 오직 여자 하나 잘 만나서 빌붙어 살려는 얌체족들이 도처에 흔하다. 그들은 여자에게서 경제적 능력과 헌신적인 사랑을 동시에 요구하며 되지도 않는 신데렐라를 꿈꾸는 것이다. 더 나아가 다른 사람의 성공한 인생에 자신을 덧붙이려는 무임승차라 아니할 수 없다.

그 모든 배경에는 편하게 살려는 안일주의가 숨어 있다. 자기는 무위도식으로 지내면서 상대 배우자를 희생양으로 삼아 일생을 편하게 살겠다는 도둑심보인 것이다.

  옛날에는 남자들이 결혼조건으로 여자의 외모를 꼽았다면 요즘은 경제적 능력을 최우선으로 꼽는다. 연상도 좋다, 못나도 좋다 오직 내 마음과 몸을 편하게만 해다오. 나에게 아무런 요구도 하지말고 그저 편하게만 해다오. 그런 남자들이 맞선현장을 누비고 다니는 것을 여자들은 잘 모를 것이다. 왜냐하면 그녀들조차 무조건 사랑 받고자 원하는 엄청난 환상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모두 미쳐 있다. 사랑 받고 싶어서 관심 받고 싶어서 환장을 한다. 그것이 인생의 최대 목표인 양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 사랑 받고자 원한다. 인간의 욕구 중에서 가장 큰 욕구는 사랑 받고자 원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어떡하든 그 욕구를 채움 받고 싶어한다.

그것이 채움 받지 못할 때 그 영혼은 정상궤도를 이탈한다. 그 대표적인 것이 불륜이다. 상대 배우자로부터 사랑이 채워지지 않았을 때 남의 여자 남의 남자에게 눈독들이는 것이다.

  게 중에는 병적으로 애정결핍 증세에 시달리는 경우도 있다. 하루 온종일 자신을 사랑해 줄 상대를 찾아 미친 듯이 돌아다니는 것이다. 마음이 헤픈 그들은 몸도 돈도 헤프기 짝이 없다. 항상 어떻게 하면 상대의 마음을 나에게로 향하게 할까 몰두하기 때문에 일상적인 일마저 차질이 생길 정도다. 심리학적 용어로 성인아이인 것이다. 그러니까 어릴 때 받지 못한 사랑을 성인이 되어 보상받고자 하는 마음이 발동하여 나타나는 현상이다.

  그 현상은 다 늙어 꼬부랑이 되어도 없어지지 않는다. 그들은 늘 사랑을 갈구하기 때문에 욕구불만에 차 있다. 타인에 대해 늘 섭섭하고 서럽다고 말한다. 상대가 조금만 마음을 기울여 주면 간이고 쓸개도 다 빼내어 준다. 손익을 따질 겨를도 없다. 그야말로 사랑받고 싶어 미쳐 날뛰는 것이다. 무조건 자기에게 관심 가지고 사랑해 달라는 것이 그들의 주특기다.

  사랑 받기 위해 노력하는 그들은 처참하기까지 하다. 어떤 여자는 남편이 살찌는 것을 싫어해 온종일 거의 굶다시피 한다. 마른 몸매를 유지하기 위해 죽음까지도 불사할 정도다. 배가 고파도 억지로 참으며 교양을 떨며 미소를 짓는다.

남편에게 좀더 사랑받기 위해 맞벌이는 물론 친정 돈까지 끌어와 친정이 부도 위기를 맞게 한 적도 있다. 그녀는 남편 사랑 앞세워 친정 부모 등골을 휘게함으로 형제들의 원성을 받았지만 아직까지도 그 원인을 깨닫지 못하고 있다.

  집안에서 매일 백수로 놀고 먹는 남편을 위해 자신이 살신성인 한 것이다. 사람들은 그녀를 두고 반푼이 머저리라고 부른다. 그럼에도 그녀는 여전히 남편을 바라보고 행복해 한다. 이후 그녀는 친정식구들로부터 완전히 따돌림을 당했고 시효가 끝나자 남편이 딴 여자와 살림을 차리는 바람에 끝내 버림받고 말았다.

  사랑에 목숨 건 그들은 때로 연기(演技)도 서슴지 않는다. 갑자기 몸에 암이 발생한 것 같다고 하며 위기감을 조성하는가 하면 일부러 뼈가 부서지도록 일하면서 상대에게 관심을 유도한다. 내가 이렇게 너를 위해 수고하니 좀 알아 달라며 온갖 쇼를 다 연출한다. 사랑을 얻기 위한 노력이 그야말로 눈물겨운 것이다.

  수원에 사는 정미숙은 하루종일 바쁘다. 그녀는 40대 중반으로 아이 둘을 낳은 몸매에도 여전히 섹시미를 풍기고 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녀의 관심은 오직 한가지였다. 남편과 자식이었다. 그런데 요즘 그녀는 엄청 많이 바빠졌다. 매일같이 만나는 사람들이 정해져 있기 때문이다.

  홧김에 서방질한다고 그녀는 다른 여자에게 잠시 한눈을 판 남편에 대한 복수심으로 청량리에 있는 콜라택을 드나들기 시작했다. 청량리 우체국 건너편에 난 콜라택은 주로 60대 이상이 출입했다.

  웬 노인네들이 콜라택 출입이냐고 묻겠지만 요즘은 환락산업이 노년층에게도 불어닥쳐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다. 콜라택은 4층 건물에 있는데 1층 엘리베이터 앞에서 표를 받는다. 마치 극장 매표소 같다. 입장료가 보통 이천 원인데 음료수 값은 내부에서 따로 받는다.

  콜라택은 입구부터가 번잡하다. 남자처럼 나비 넥타이를 맨 50대 초로의 여자들이 손짓을 해가며 입장료를 판다. 한눈에 보기에도 그녀들은 싸움꾼, 아니 늙은 창부같다. 안으로 들어가면 흐릿한 조명 아래 음악과 함께 남녀들이 스테이지를 미끌어지듯 춤을 춘다. 인생의 막장을 보는 듯 쓸쓸하기까지 하다. 노년의 외로움을 춤과 마지막 섹스로 끝내려는 듯 발악을 한다. 그들은 모두 가슴마다 메시지를 꺼낸다.

  음료수를 마시며 운동도 예술도 아닌 뺑뺑이를 돌면서 노년의 애환을 달랜다. 황혼이 깃든 마지막 댄스. 쾌락을 위한 마지막 정욕의 몸부림. 그들은 모두 자기 최면에 걸려 혼을 놓는다. 그리고서 자꾸만 맴을 돈다. 추한 노년의 발악이 홀 안을 회오리처럼 휘몰아쳐 간다.

  출생과 죽음의 의미가 무엇인지 허무가 태풍같이 그들 머리 위에 머문다. 그 허무의 도장에 정미숙은 과감히 발길을 내밀었다. 50-60대 속에 젊은 40대가 나타나자 남자들은 모두 휘파람을 불었다. 그녀는 섹시한 엉덩이를 흔들며 시선을 모았다.

  그녀는 천국과 같은 엑스타시를 느꼈다. 허무한 기쁨이 내부에서 뿜어져 나왔다. 배반과 분노로 찌들었던 가슴이 한꺼번에 해소되는 것 같았다. 뭇 남성의 시선을 받을 때마다 그녀는 여왕이 된 듯한 착각을 일흐켰다. 모두가 자기를 향해 시선을 집중하고 있지 않은가. 황홀한 눈빛으로 자신의 몸매를 훑어 내리는 남자들을 볼 때마다 그녀는 쾌감을 느꼈다.

  이것 보라, 온 남자들이 나 하나만 바라보면서 나를 원하고 있지 않은가. 그런데 이런 나를 두고 내 남편은 딴 여자를 봤다. 그게 어디 말이나 될 법이나 한 소린가. 그녀는 이번에는 콜라택에서 만난 남자와 함께 도박판에 발을 들여놓았다. 수많은 현금이 오가는 도박판은 콜라택보다 더 많은 재미가 있었다.

  몸과 마음이 점점 환락에 빠지며 그녀는 미쳐가기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날 갑자기 정신을 잃고 말았다. 누군가 그녀의 옆구리를 강한 둔치로 내리쳤기 때문이다.

  상암동에 사는 민자혜는 올해 마흔 살로 꽉 찬 노처녀다. 그녀는 가난과 핍박, 멸시 속에 고등학교를 마치자마자 취업 전선에 뛰어 들었다. 그 이전에도 온갖 악조건의 노동현장에 내몰리면서 갖은 설움을 다 당했다.

어린 나이에 그녀가 당해야 했던 설움은 비극의 드라마였다. 나쁜 머리 탓에 성적도 좋지 않았고 외모마저 떨어져 한번도 대접받아 보지 못했다. 기껏해야 개인 사무실, 세일 매장, 회사 경리를 떠돌면서 입에 풀칠이나 하는 정도였다.

  그나마 취직이 되는 걸 감사해야 했다. 연봉이 깎이고 퇴출당하는 현상이 비일비재했으니까. 월급은 받는 족족 아버지의 술값과 어머니의 병원비로 들어갔다. 그나마 돈이 모일라치면 형제들이 아귀처럼 달려들어 다 뜯어갔다. 가족은 모두 백수였다. 일가친척들도 마찬가지였다. 하나같이 술주정뱅이에다 노름꾼 아니면 막노동꾼 일용잡급직이었다.

  친척들은 모일 때마다 싸움을 했다. 욕설과 주먹질은 예사였다. 마치 싸우기 위해 태어난 사람들 같았다. 입만 열면 악담이 저절로 쏟아져 나왔다. 누구랄 것도 없이. 모두가 트러블 메이커(trouble maker)였다. 한 사람도 피스 메이커(peace maker)는 없었다. 그건 치유받을 수 없는 상처와 저주의식을 불러 일흐켰다. 언젠가 지인(知人)에게 가족 이야기를 꺼냈다가 정신병자 취급을 받은 적이 있었다.

  상식적으로 이성적으로도 그녀의 집안 이야기를 이해할만한 사항이 못 되었다. 아무리 콩가루 집안이어도 그렇지 어떡케 사람의 탈을 쓰고 그런 짓을……. 사람들은 그녀의 이야기를 거짓말로 치부했다. 그리고 그 끔직한 상황 앞에 괴로워하는 그녀에게 다시 한번 상처를 덧씌워 주면서 일갈했다.
  세상에 그런 막되 먹은 집구석이 다 있담.

  사람들은 누구나 남의 이야기는 쉽게 한다. 자신이 겪지 않은 상처에 대해서도 마치 잘 아는 것처럼 함부로 판단하고 지껄여댄다. 상대의 가슴에 대못을 박아 놓고는 의인인 양 우쭐댄다. 집에서 새는 바가지 들에서도 샌다고 민자혜는 어딜 가나 고난을 당했다. 어느새 그녀의 뇌리는 피해망상과 대인공포증으로 가득하게 되었다.

  원한과 분노로 가득 찬 가슴속에도 나름대로 꿈이 있었다. 자신의 처지와는 상관없이 신데렐라가 되는 것이었다. 그것도 결혼이라는 도구를 통하여. 자신의 디딘 현실과 한계의 차이를 깨달은 그녀가 내린 결론이었다. 누가 들으면 언감생심 꿈도 못 꿀 얼토당토 않을 일이었다.

  「너 자신을 알라」

  소크라테스의 명언을 꼽지 않더라도 자신이 생각해도 어림도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비록 불가능해 보여도 그 가느다란 희망이라도 갖지 않고는 도저히 살아갈 힘이 생기지 않았다. 최상의 조건을 갖춘 남편을 만나 일평생 호강을 누리며 살겠다는 발상이었다.

  성공한 남자에게 무임승차해 호의호식하겠다니 될 법이나 할 소린가. 그러나 바램과는 달리 현실은 날마다 악몽이었다. 알코올 중독에 빠진 아버지를 수용시설로 보내느냐를 놓고 가족들은 옥신각신했다. 물론 비용은 민자혜가 대는 것이었다. 나이 사십이 넘은 큰아들은 인터넷 도박중독에 빠져 제정신이 아니었다.

  걸핏하면 주먹질에다 싸움을 해대는 통에 구치소를 제집 드나들 듯했다. 어쩌다 게임에서 이기면 돈을 물쓰듯하면서 호기를 부렸다. 전과자 신세이면서도 조금도 부끄러운 줄도 몰랐다. 나이가 들자 이번에는 장가를 들겠다고 야단이었다, 그것도 영화배우나 탈랜트에 견줄만한 외모여야 한다는 것이 전제조건이었다.

  백수건달에다 전과자 출신인데 어떤 여자가 시집오겠냐고 하면 집안 살림을 때려부수고 난리가 났다. 어머니는 한술 더 떠 며느리감 선을 보겠다고 직접 팔을 걷어 부치고 나섰다. 사위 볼 생각은 먼지만큼도 없으면서 아들 장가들여 손주 볼 생각은 있는 것이었다. 가족 중 어느 누구도 민자혜의 결혼 따위는 안중에도 없었다.

  그럴수록 민자혜는 더욱더 꿈에 집착했다. 그녀의 소원은 단 한가지였다. 자신에게 손에 물 한방울 안 묻히고 호강시켜 줄 남자와 결혼하는 것이었다. 이제 더이상몸을 움직여 돈을 번다는 것은 상상조차 하기 싫어했다. 현세에 돈이면 안 되는 일이 없었다. 죽을 목숨도 살리고 명예도 돈만 주면 다 해결되었다.

  심지어 사랑마저도 돈이면 다 되었다. 아무리 못생기고 형편없어 보이는 남자라 할지라도 돈이 많으면 여자들은 달려가 너도 나도 안기는 세상이었다. 남자도 마찬가지였다. 못생긴 여자는 성형수술로 뜯어고치면 되고 몸매도 헬스클럽에 가 만들면 됐다. 그런 성형미인이 거리엔 얼마나 많은가.

  남자들은 그런 여자에게 달려가 자기의 정욕을 풀어버리고 싶어 안간힘을 다한다. 옛날에는 남자들이 결혼조건으로 여자의 외모를 꼽았다면 요즘은 경제적 능력을 먼저 원한다. 그러한 풍조를 아는지 모르는지 민자혜는 천연덕스럽게 맘몬주의 사상에 빠져들고 있었다. 어릴 때 겪은 가난에 대한 뼈저린 원한이 그녀로 하여금 엉뚱한 상상에 휘말리게 한 결과였다.
  
  반면 방석철은 올해 나이 오십 세로 노총각 중에서도 최악급 노총각이다. 찢어지게 가난한 집안 덕분으로 간신히 중학교를 마친 그는 일평생을 공장 생산직으로 전전했다. 구로동과 가리봉동을 오가며 눈물 젖은 빵을 먹었고 아둔해 보이는 인상 때문에 사기도 여러번 당했다. 눈빛이 썩은 동태처럼 개개 풀린 그는 한눈에 보아도 백치임을 실감케 한다.

  눈치 코치도 없고 판단력도 분별력도 없다. 그가 아는 건 자신에게 상처가 많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상처의 원인이 어디에 있는지 그것조차도 파악을 못하고 있다. 분명한 사실은 상처를 보완 받는 차원에서 예쁘고 능력 있는 여자를 만나 결혼하고 싶은 것이다. 더 나아가 자신을 진심으로 사랑해 주는 여자를 만나 이제까지의 한을 풀어버리고 싶은 것이다.

  자신의 처지와 상관없이 그는 눈만 다락같이 높았다. 사람들의 비웃는 눈초리에도 만나는 사람마다 중매를 부탁하고 다녔다. 그런 그에게도 중매쟁이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화근을 자초할 중매쟁이는 속임수와 거짓말에 천재였다. 중매에 거짓말이 섞이는 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어떨 땐 거짓말이 사실보다 더 많을 때도 있다.

  재산 정도를 속이는 건 기본이고 학력, 직장 친구관계까지 속인다. 친구관계는 자신의 위상을 높이기 위해 억지로 상위그룹을 끌어다 대는 것이다. 그렇게 이력서를 온통 거짓말로 색칠하다 스스로 헷갈려 전력이 들통나 버리는 경우도 있다. 거짓말은 꼬리가 길면 반드시 밟힌다는 말이 실감나는 순간이었다.  

  어떤 남자는 초등학교 여교사와 결혼하면서 고졸인 학력을 대졸로 둔갑시킨 일도 있다. 그는 아내가 직장에서 돌아오면 "이 가스나야 빨리 밥 안하고 뭐하노."하면서 호령한다. 아내는 속이고 결혼한 남편을 자신을 사랑하기 때문이라고 억지로 자위하며 웃는다. 자식 둘 낳아 기르면서 그녀는 남편의 학력을 대졸로 가끔씩 둔갑시킨다.

  방석철은 생산직에서 쫓겨나 백수신세가 되었다. 기름때로 얼룩진 손은 허물이 벗겨지고 시커멓게 물들어 있었다. 언젠가 자신의 손을 본 여자가 어멋! 하며 놀라던 기억이 난다. 그는 그때 난생처음으로 수치심을 느꼈다. 한번도 자신의 처지에 대해 제대로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온통 자신의 상처에 집착해 무조건 얼굴 예쁘도 몸매 좋은 여자만 원했기 때문이다.

  그는 환상 속에 사느라 세월 가는 줄도 몰랐다. 여자가 자기를 싫어하는 건 인연이 아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고 마음에 드는 여자가 나타나면 언제든지 프로포즈할 작정이었다. 그러느라 그는 전혀 자신을 돌아볼 여유가 없었다. 그런데 자신의 기름때 묻은 손을 보고 놀라자 그는 순간 아득한 절망을 느낀 것이다. 잠시 잠깐이었지만 그건 엄청난 충격으로 다가왔다.

  생각다 못한 그는 성당을 나가기로 결심했다. 성당에 나가면 여자들을 만날 기회가 많을 것 같았다. 그리고 상대적으로 멸시도 덜 받을 것 같았다. 그는 성당에 나가자마자 주임신부를 찾아가 결혼하고 싶다는 의사를 밝혔다.

자신의 소망을 아주 소상하게 말하며 넌지시 중매의사를 비췄다. 그러나 신부는 처음 나타난 이상하게 생긴 남자, 그것도 추물에 가까운 남자가 얼토당토 않을 말을 하자 대꾸도 않고 나가버렸다.

  눈치코치도 없는 그는 이번에는 청년회에 들어가 말했다. 그것도 신입회원 소개 때에 말이다. 결혼 안한 자매들은 킥킥대고 웃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것을 방석철은 자신에 대한 관심으로 받아들였다. 그리고 시간만 나면 다가가 데이트를 신청했다. 때론 선물도 사다 주고 갖은 친절도 다 베풀어주곤 하면서.

  여자가 단 한번만 웃어주어도 자신을 사랑해서 그러는 줄로 알고 착각해 프로포즈를 날리기도 했다. 한마디로 그는 결혼 못해 환장한 노총각이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직장마저 잃자 그 잘난 결혼 조건에 한가지가 추가되었다. 마음씨 착하고 예쁜 여자에다 평생 직장생활 할 수 있는 여자라야 한다는 것이었다.

  떡 줄 사람은 생각은 않는데 저 혼자 김칫국부터 마셔대는 꼴이었다. 여자들은 아예 그를 상대조차 않으려 들었다. 조금만 관심 가져 주면 당장 결혼하자고 나서면서 온갖 해괴한 소문을 퍼뜨리고 다녔다. 내용은 여자가 자기를 못 견디게 좋아한다는 것이었다. 그저 인간이 불쌍하다 싶어 상대해 주면 낭패가 생겼다. 이제 나이 오십이 된 그는 더욱 조급해졌다. 아무래도 2세 걱정이 되었다.

  아무리 어린 여자를 만나 결혼한다 해도 자신의 나이가 오십이니 2세에 대한 걱정을 안 할 수가 없는 것이다. 결혼하자마자 아이를 낳는다 해도 대학에 들어갈 때쯤이면 자신의 나이 칠십이 된다. 학비야 아내가 벌어서 대면 되겠지만 그래도 빨리 서둘러야 될 일이었다. 떡 줄 사람은 생각도 않는데 그는 허상을 꾸며대느라 야단이었다.

  그럴지라도 그는 더욱더 꿈에 집착했다. 평생 꾸어온 꿈을 포기할 순 없었다. 그리고 그 허상을 진실로 믿고 행동했다. 이번에는 자기보다 나이가 열다섯 살쯤 어린 자매에게 다가가 프로포즈를 했다. 물론 2세를 염두에 둔 결과였다. 착하고 순해 보이고 연봉도 높은 직장에 다니는 자매였다. 그녀는 소위 일등 신붓감이었다.

  하도 마음이 여리고 착해 남에게 싫은 소리 한마디도 할 줄 모르는 여자였다. 그는 여자가 인물보다 마음씨가 착해야 한다는 어른들의 말에 착안한 뒤 그녀에게 다가갔다.

  어느날 느닷없이 걸려온 전화에 그녀는 적잖이 당황했다. 처음 듣는 목소리가 무조건 만남을 요구하고 있었다.

  "글세 누구시냐니까요?"

  "정말 나를 모르겠어, 이거 실망인데."

  미련한 그는 다짜고짜로 반말부터 했다.

  "모르니까 묻죠."

  웬만큼 참을성 있는 그녀도 단단히 화가 났다.

  "나, 우리 청년회 방석철."

  그는 실망한 듯 약간 풀죽은 목소리로 말했다.

  "네에? 누구라고요?"

  "다음주 우리 어머니 생신이신데 함께 갔으면 하고. 일가친척들 다 모이거든. 내가 어머니께 루시아 자매님 말씀드렸더니 데리고 오라고 하셔서."

  "뭐예요?"

  하도 기가 막혀 말이 나오지 않았다. 그런데 다음 말은 더 기가 막혔다.

  "루시아 자매님도 나 좋아하는 거 아니었어? 지난번에 나보고 웃었잖아."

  그는 마치 여자가 자신을 사랑이라도 하는 것처럼 당당하게 말했다. 화가 난 여자는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다음주 일요일 본당 신부를 찾아갔다. 가보니 인물 좋고 능력 많기로 소문난 자매들이 먼저 와 기다리고 있었다. 모두 방석철에게 프로포즈 당한 여자들이었다. 그들은 너무도 창피스러워 도저히 성당을 못 나오겠다고 말했다.

  방석철에 대한 시비는 끊임없이 일어났다. 그는 봉사한다며 각 기관에 나타나 쓸데없이 참견을 하고 되지도 않는 의견을 제시하면서 자신을 인정해 달라고 떼를 썼다. 마치 나 잘나지 않았느냐. 나 똑똑하지 않느냐며 시위하는 꼴이었다. 나이 오십이 작기나 한가. 그는 체면도 눈치도 최소한의 이성적인 상식도 없었다.

  그런 꼴이 가여워 조금만 관심을 가지고 대해주면 기가 살아 팔팔 뛰었다. 차츰 자매들이 성당에서 사라지기 시작했다. 그러자 그는 어떡케 연락처를 알았는지 문자메시지를 보내고 수도 없이 통화를 시도했다. 해가 바뀌었다. 그는 이제 돈이 완전히 바닥이 났다. 그나마 다니던 공장이 부도나는 바람에 월급 한푼 못 받고 쫓겨난 것이다. 월세방도 곧 내주어야 할 판이었다.  

  온 나라가 경제한파에 떠밀려 못살겠다고 아우성이었다. 대졸자는 물론 막노동 현장마저도 일감이 현격하게 줄어들었다. 그는 다시 취직하기 위해 이리저리 뛰어 다녔지만 소용없었다. 쌀독이 비고 교통비마저 바닥나기 시작했다. 핸드폰은 요금이 연체돼 정지되기 직전이었다. 방석철은 난감했다. 때마침 한파가 몰아치기 시작했다.

  춥고 배고팠던 시절이 생각났다. 어린 시절, 그의 집안은 남의 땅을 붙여 먹던 소작농이었다. 일년 내내 농사지어 봐야 남는 게 없었다. 간신히 입에 풀칠이나 하고 사는데 부모는 자식들의 공부 따위는 아예 관심도 없었다. 형은 초등학교를 마치고 농사일을 돕다 읍내로 나가 택시 운전기사가 됐다. 여동생은 열일곱 나이에 이웃마을에서 농사를 크게 짓는 집 맏며느리로 시집갔다.

  그는 초등학교를 마치고 농사일을 거들다 읍내에 있는 대장간의 머슴으로 들어갔다. 각종 농기구를 만드는 법을 배우면서 그는 수없는 지청구를 들었다. 주인 영감은 그를 아예 반편 취급했다.

  "내 세상 살다가 저런 반편은 처음 본다니까, 밥이나 축내는 밥버러지 같으니."

  그는 멍청한 눈을 껌뻑이며 주인을 바라보았다.

  "뭘 봐? 이 등신아 저런 걸 사람 만들어 보겠다고 데리고 있는 내가 미쳤지."

  어린 그를 두고 주인영감은 별별 악담을 다했다. 불 다루는 기구를 잘못 건드리다 화재가 날 뻔한 적이 있었다. 돈 계산을 잘못해 농기구를 헐값에 판 적도 있었다. 같은 동작을 수십 번씩 가르쳐 주어도 실수를 밥먹듯 했고 마침내 대장간을 쫒겨나고 말았다.

  그후 마음씨 좋기로 소문난 장씨가 운영하는 목공소에 취직했다. 나무는 철에 비해 다루기가 편했다. 사고 위험도 적었고 잔꾀 부리지 않고 열심히 일만 하면 되었다. 더구나 그는 정직하여 눈속임을 하거나 주인의 심기를 건드리지도 않았다. 그런 그를 불쌍히 여긴 탓일까. 주인 장씨가 읍내에 있는 야간 중학교를 보내 주었다. 낮에는 목공소에서 일하고 밤에는 학교에 가 공부하는 주경야독이 계속되었다.

  물론 공부는 꼴찌였다. 간신히 중학교를 졸업했다. 친구들은 그를 빙충이라고 놀렸다. 걸핏하면 때리고 못살게 굴어도 그는 한번도 화낼 줄 몰랐다. 서러워서 눈물은 많이 흘렸지만 같이 욕을 하거나 몸싸움은 안 했다. 순했다. 그래서 더 많이 당했다. 중학교를 졸업할 무렵 동네서 예쁘기로 소문난 영희를 짝사랑하게 되었다.

  그녀는 면장의 딸로 공부도 잘하고 영리했다. 그래서 그의 부모는 딸을 서울에 있는 고등학교로 보내 대학공부를 시킬 작정이었다. 그것도 일류대학을 보내 일등 사윗감을 맞을 작정이었다. 그런데 그 영희가 그의 마음속에 들어온 것이다. 방석철은 무조건 그녀에게 다가갔다. 좋아서 입을 헤벌쭉 벌리며 "예쁘다 정말 예쁘다"란 말만 반복했다.

  동네에서고 어디에서고 그녀가 보이기만 하면 뒤를 졸졸 따라다녔다. 영희는 창피해 미칠 지경이었다. 소문이 일파만파로 번져 나갔다. 빙충이 방석철이가 면장님 외동딸 영희를 사랑한단다. 동네 꼬마들은 그의 뒤를 따라다니며 놀렸다.

  "빙충아 빙충아."

  어느날 면장이 목공소를 찾아왔다.

  "저 녀석을 멀리 쫓아 보낼 순 없겠소, 내 남사스러워서."

  마음씨 착한 장씨는 주저주저했다. 모자르긴 해도 착하고 우둔한 그를 함부로 내칠 순 없었다. 그러자 면장은 그에게 봉투 한 장을 건네주고 사라졌다. 다음날 방석철은 목공소에서 사라졌다. 그 대신 매일 아침마다 영희의 집 앞과 학교 앞에 나타나 동네 망신 거리를 다했다. 그땐 나이도 어렸고 철이 없다보니 또 영희가 너무 좋다 보니 저도 모르게 나온 행동이었다.

  그럼에도 그는 영희와 그녀의 가족으로부터 엄청난 핍박과 멸시를 당했다. 영희 부모는 딸을 당장 서울에 있는 고모집으로 올려보냈고 그는 그것도 모른 채 아침마다 영희 집 앞으로 달려가 눈이 빠지게 기다렸다. 나중에 영희가 서울로 가버린 사실을 알자 대성통곡을 했다. 그 이후 그는 영희처럼 예쁜 여자가 아니면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그는 그 가슴 아픈 사연에 한을 품고서 어떤 일이 있더라도 결혼만큼은 예쁘고 날씬한 여자와 하겠다고 굳게 다짐했다. 그리고 그런 여자를 찾기 위해 눈에 불을 켜고 다녔다. 못나고 무능한 주제에 눈만 다락같이 높아진 것이다. 그러느라 그는 세월 가는 줄도 몰랐다. 이제 나이 오십이 된 그는 그 잘난 결혼조건에다 경제적인 능력까지 추가했다.

  자기가 벌이가 없어 노는 날이 많다보니 경제적인 능력이 뛰어난 아내의 필요성이 더욱 절실해진 것이다. 해서 미인은 아니더라도 마음씨 착하고 돈 잘 버는 아내를 택하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아무리 마음을 다잡아 먹어도 그에게 마음을 건네주는 여자는 없었다. 그럴지라도 그는 꿈을 포기하지 않았다.

  결혼 조건을 놓고 여자를 문제삼았으면 삼았지 자신에게서는 전혀 문제점을 발견하지 못했다. 그만큼 아둔했고 모든 게 자기 중심적이었다. 매일같이 허름한 잠바떼기나 걸치던 그가 어느날 양복을 입고 다니기 시작했다. 누군가의 충고에 귀를 기울인 것이다.

  "옷이 날개라고, 니가 그렇게 잠바나 걸치고 다니니까 여자들이 거들떠도 안보는 거다. 양복 정장을 입고 다녀봐라 사람이 달라 보인다."

  그는 그 말에 적극 순종했다. 그리고 없는 돈에 양복을 사 입고 날마다 여자들 앞을 서성였다. 여자들은 갑자기 양복차림으로 나타난 그를 보고 비웃었다.

  "호박에 줄 긋는다고 수박 되는 줄 아나, 가지가지 한다."

  눈치 없는 그는 마음에 드는 여자가 나타나면 커피를 뽑아준다 구두를 닦아준다 별별 서비스를 다 베풀었다. 그러나 여자들은 기절초풍을 하고 달아났다. 만일 응해 주었다간 무슨 소문을 퍼뜨리고 다닐지 모르기 때문이었다. 여러가지 시도를 다 해보았지만 결과는 똑같았다. 공연히 헛돈만 날리고 무일푼 신세가 되고 말았다.

  이제는 자기를 좋아해 주는 여자가 나타난다 해도 차비가 없어 못 만날 지경이었다. 굶는 날이 많아졌고 성당도 나가지 못했다. 그는 루시아 자매가 간절히 그리웠다. 마음씨 착하고 예쁜 루시아 자매는 평소에도 불쌍한 사람만 보면 도와주고 싶어 안달을 했다. 아름다운 선행으로 소문이 나 형제들이 모두 그녀를 좋아했다. 더구나 직장도 튼튼했다.

  동네에 있는 신용금고에 다녀 월급도 많았다. 그래서 방철식은 은근히 그녀를 아내감으로 점찍어 두고는 이제나 저제나 하고 기회만 노리고 있던 터였다. 만일 자매가 내 처지를 안다면 한걸음에 달려와 도와줄 텐데.

  루시아 자매. 루시아 자매.

  어리석은 그는 눈물을 흘리며 자신의 처지를 한탄했다.
  핸드폰은 이미 정지된 상태라 전화를 할 수도 없었다. 생각다 못한 그는 거리로 나가 노숙자 대열에 끼어 들었다. 영등포와 청량리에 가면 공짜로 밥을 먹여주는 곳이 있다고 했다. 눈 내리는 겨울밤이었다. 일회용 식기에 밥과 국을 받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눈을 맞으며 기다리고 있었다. 그도 그 대열에 끼어 들었다. 눈물이 하염없이 나왔다.

  어릴 때 집에서 구박받고 자란 기억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대장간에서 일하다 불에 데었을 때 주인은 심한 면박과 함께 빙충이라고 놀렸다. 동네 꼬마들도 그가 지나기만 하면 빙충이라고 놀렸다. 영희와 그녀의 가족은 말해 무엇하겠는가. 그 한을 못 잊어 오직 얼굴 예쁜 아내를 만나는 게 소원이었는데 그로 인해 또 얼마나 많은 상처와 멸시를 당했던가.

  따지고 보면 자신의 불찰이 컸다. 제 주제도 모르고 천방지축 날뛰었으니 화근을 자초한 것이다. 공연히 되지도 않을 헛꿈만 꾸다가 오십 평생을 흘려보낸 것이다. 그럴지라도 그도 사람이었다. 한 사람으로서 인격적인 대우를 받고 싶었고 그 누구보다 예쁜 아내를 만나 사랑 받으며 살고 싶었다. 아들 딸 낳아 잘 먹이고 가르치고 싶었다.

  그는 지나간 세월이 너무도 억울해 엉엉 울고 말았다. 그러자 줄을 서 차례를 기다리고 있던 노숙자들 사이에서 험한 말이 튀어 나왔다.

  "울 것 같으면 당장 꺼져버려, 재수 없는 새끼."

  그는 그곳에서도 찬밥이었다. 아무데서도 자신의 존재를 인정해 주는 사람이 없었다. 그는 대열을 빠져나가 백화점이 보이는 쪽으로 올라갔다. 거기에는 크리스마스 캐럴과 함께 많은 연인들의 모습이 보였다. 그들은 손에 손에 선물 보따리를 들고서 행복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부러웠다. 그 중 한 부부가 눈에 들어왔다. 밍크 코트를 입은 미모의 여자가 뱃살이 늘어진 중년남자와 함께 대기해 놓은 체어맨 승용차에 오르고 있었다.

  여자는 긴 부츠를 승용차에 올려놓다 말고 갑자기 이쪽을 바라보았다. 순간 그와 눈이 딱 마주쳤다. 여자의 미간이 약간 꿈틀했다. 뭔가 생각나는 듯 고개를 갸우뚱하더니 이내 승용차 안으로 모습을 감췄다. 아주 짧은 순간이었지만 30여 년의 기류가 두 사람 사이에 오갔던 것 같다. 승용차가 떠난 자리에 함박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방석철은 눈을 맞으며 오랫동안 진한 감동으로 눈물을 흘렸다.

  그녀는 어린 시절 그가 좋아했던 동네 면장집 외동딸 영희였다. 그녀가 어느새
중년이 되어 크리스마스 선물을 사기 위해 백화점에 왔다가 남편과 함께 돌아가는 길이었다. 가슴이 뻥 뚫린 것 같았다. 삼십여 년의 세월이 한꺼번에 압축되면서 설움이 폭발하듯 내부에서 일어났다.

  억억, 못 먹고 못 배운 것도 서러운데, 억억.

  생각해 보니 그는 지난 오십 평생 동안 사람대접 받고 살아본 적이 없었다. 늘 제 한입 해결하기에도 역부족이었고 모자란 두뇌 때문에 더 설움을 당해야 했다. 구로동과 가리봉동을 오가며 공장생활을 할 때도 그는 동년배로부터 따돌림과 멸시를 당했다. 그가 낄 때 안 낄 때 분간 못하고 달려들었기 때문이다. 그는 멸시받으면 받을수록 더 인정받고 싶은 욕구에 시달렸다.

  그래서 사사건건 남의 일에 끼어 들어 참견했던 것이다. 그래도 그땐 꿈이 있어 외롭지 않았다. 여공들 중에 예쁜 여자애들이 많이 있었는데 어리석은 그를 불러내 용돈과 선물을 달라며 사람대접 해주었기 때문이다. 그때마다 행여나 하고 결혼의사를 비춰 보았지만 여공들은 실컷 이용해 먹고는 이내 돌아섰다.  

  오직 미인인 아내를 만나 결혼하는 게 소원이었는데…….
  그는 모든 방법이 다 수포로 돌아가자 마지막으로 신(神)의 힘을 빌려서라도 꿈을 이루고 싶었다 그러나 신마저 그의 소원을 끝내 외면하고 말았다. 이제 무일푼 신세가 된 그는 막다른 골목에 이르렀다. 그는 걸음을 돌이켜 다시 노숙자 대열에 끼어 들었다. 그리고 허겁지겁 밥을 먹으며 또 울었다.

  "에이 썅."

  옆에서 밥을 먹던 노숙자가 침을 퉤 뱉더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는 들고 있던 일회용 식기를 바닥에 내팽개쳤다.

  "에이 재수없는 시키."

  그는 참아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또다시 울음이 터져 나왔다. 그것도 대성통곡이
었다. 그러자 이번에는 주변에 있던 노숙자들이 한꺼번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들은 들고 있던 식기를 그에게 쏟아 부으며 온갖 욕설을 퍼부었다.

  "씨팔 새끼 청승 떨고 지랄이야."

  주먹질과 발길질이 사방에서 날아들었다. 같은 동년배로서 위로 받고 싶었을 뿐인데 오히려 역효과가 나고 말았다. 그는 매사가 그랬다. 어릴 때부터 따듯하게 사랑 받고 싶었고 관심 받으며 살고 싶어 나름대로 머리를 굴려 노력했는데 결과는 언제나 싸늘한 외면과 멸시뿐이었다.

  비천하게 인생막장을 살아온 것이다. 그는 옷에 묻은 밥과 음식 찌꺼기를 털어 냈다. 그리고 낙심한 표정으로 천천히 차량이 질주하는 도로로 걸어갔다. 그 걸음은 누가 보아도 죽음의 행진곡을 연상케 했다. 그 뒤로 한 남자가 따르고 있었다. 그는 다름 아닌 노숙자 전도를 위해 봉사활동을 벌이고 있는 대원이었다. 방석철이 질주하는 차량을 행해 막 몸을 날리려는 순간이었다.

  봉사대원은 잽싸게 몸을 날려 그의 몸을 덮쳤다. 그리고 한팔로 그를 안고 인도(人道)로 끌어냈다.

  "살다 보면 좋은 날 옵니다. 하느님을 만나십시오."

  그러면서 종이쪽지를 그의 손에 건네 주었다. 거기에는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짧은 글귀가 적혀 있었다. 그는 그 종이를 들고서 하염없이 울었다. 그리고 오던 길을 되돌아 걷기 시작했다. 다음주부터 그는 성당에 다시 나가기 시작했다. 청년회는 나가지 않았고 미사와 성경공부에만 참석했다.
  인간의 사랑이 아닌 신(神)의 사랑을 간절히 기대하며.
  
  민자혜는 거울 앞에 서서 화장을 정성 들여 했다. 두 눈은 움푹 꺼져 마치 울고 있는 듯한 인상이었다. 욕구불만으로 마구 먹어댄 탓에 배가 나와 남산만했다. 머리칼은 산발한 것처럼 사방으로 뻗어 있었다. 종아리는 핏줄이 터져 툭툭 불거져 있었다. 마트 매장에서 오랜 시간 서서 근무하느라 생긴 하정맥 현상이었다. 화장을 끝낸 그녀는 분무기로 머리를 적신 채 오랫동안 드라이로 머리를 매만졌다. 간신히 화장을 끝낸 그녀는 현관에서 부츠를 찾아 신었다.

  말장화처럼 긴 부츠는 원래 갈색이었는데 때에 찌들어 시커멓게 변해 있었다. 핸드백을 어깨에 매고서 일어서는데 다리가 휘청했다. 순간 눈앞에 별이 몇 왔다 갔다 했다. 요즘 따라 이런 현상이 반복됐다. 그녀는 허리를 들어 앞을 보았다. 갑자기 시커먼 물체가 그녀의 앞을 가로막았다.

  "어딜 가냐? 저녁밥하지 않고."

  "어딜 가긴요, 마트에 일 가죠."

  "밥부터 해놓고 가라."

  "늦었어요, 엄마보고 하라고 하세요."

  "이년이."

  우악스런 손길이 그녀의 목을 움켜쥐었다.

  "쓰잘데없는 딸년 키워 놨더니, 애비 굶어 죽일 셈이냐."

  노인의 우악스런 손길은 그녀의 머리채를 사정없이 움켜쥐고는 놓아주지 않았다. 드라이로 말리고 간신히 모양을 낸 머리가 갈퀴처럼 흩어졌다. 등뒤에서 사나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야, 이년아 돈 내놓고 가, 나 오늘 저녁 때 약속 있단 말이다."

  사나운 도적 같은 인상이 그녀에게 손바닥을 내밀며 말했다. 메기처럼 입이 튀어나오고 거무죽죽한 낯색이 금방 감옥에서 탈출한 범죄자 인상이었다. 손에 칼만 들면 당장 살인사건이 발생할 것만 분위기였다.

  "나 돈 없어."

  "돈 없는 년이 어떡케 부츠는 사 신니?"

  이번에는 노인과 아들이 한꺼번에 달려들었다. 화장이 짓뭉개지고 있었다. 결국 그녀는 있던 돈 몽땅 다 빼앗기고 나서야 집을 나설 수 있었다. 옷매무새가 흐트러지고 머리칼이 산발을 한 그녀가 지나가자 사람들이 흘끔흘끔 쳐다봤다. 그녀는 너무도 서러워 길거리에 서서 한참을 울었다. 그러자 양아치로 보이는 남자로 다가오더니 그녀에게 술병을 휘두르며 행패를 부리기 시작했다.

  "못된 마귀 새끼들."

  그녀는 몸을 날려 남자의 술병을 빼앗아 바닥에 내팽개쳤다. 그리고 깨진 병조각을 들고서 난데없는 활극을 벌였다.

  "덤벼 이 새끼야. 사내놈들이라면 이가 갈린다. 다 때려죽이고 말 테다."

  그녀는 양아치를 향해 돌진했다. 양아치는 이미 술에 취했는지 비틀거렸다. 양아치의 머리를 향해 병조각을 내리 꽂고 싶었다. 양아치의 머리에서 흘러내라는 핏물을 보고 싶었다. 있는 힘을 다해 내리치려는데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눈앞에 수많은 별들이 왔다 갔다 했다. 그러는 사이 구경꾼이 새까맣게 몰려들었다. 그녀는 현기증으로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다.

  "내 이년을."

  양아치는 그녀에게서 깨진 병조각을 빼앗아 들었다. 그리고 사나운 짐승처럼 달려들었다. 폭풍같이 질주하며 그녀의 정수리를 향해 병조각을 내리치려 하는 데도 그녀는 미동도 하지 않았다.

  "그래 죽여라, 그 편이 차라리 낫겠다."

  구경꾼들은 그 장면을 숨죽인 채 지켜보고 있었다. 그때였다. 구경꾼들 뒤로 호루라기 소리가 들려왔다. 마침 순찰 중이던 경찰관이 나타난 것이다.

  "그 손 당장 내려놓지 못해?"

  양아치는 놀라 뒤로 물러났다. 게슴츠레한 눈빛으로 경찰을 바라보더니 손을 부들부들 떨었다. 경찰이 양아치에게 다가가더니 말했다.

  "너 본드 흡입했지."

  양아치의 눈이 뒤집어지고 있었다.

  "내 그럴 줄 알았지."

  사람들이 웅성댔다. 경찰이 구경꾼들을 향해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

  "무슨 구경거리 났다고 이 난리요 당장 돌아들 가요."

  구경꾼들은 좋은 구경거리를 놓친 것이 몹시 아쉬운 듯 돌아서 가며 말했다.

  "저 여잔 왜 저러는 거야."

  세상은 온통 악인들 천지였다. 약자를 향한 돌팔매와 악담과 저주로 가득한 지옥문 입구 같았다. 그런 인간들로부터 사랑과 위로를 기대하며 산다는 건 얼마나 우스운 일인가. 민자혜는 회환에 찬 눈물을 흘리며 거리를 걸어갔다. 멀리서 체어맨 승용차가 그녀를 향해 사나운 짐승처럼 돌진하고 있었다. 차량은 비싼 외제차임을 시위하듯 그녀에게 비키라고 명령하고 있었다. 클랙슨을 빵빵 울려대며.

  그러나 그녀는 꼼짝할 수가 없었다. 또다시 눈앞에서 수많은 별들이 왔다 갔다 했다. 몸에 중심을 잡을 수가 없었다. 뚱뚱한 몸체가 높은 부츠 굽 위에서 춤을 추고 있었다. 자동차의 서치라이트가 그녀의 몸을 비추며 클랙슨을 더 요란하게 울려댔다.
  빵 빠앙.

  그녀는 손으로 눈을 가리며 승용차를 바라보았다. 그 안에는 그녀가 원하고 선망하던 부와 명예가 있었다. 젊고 잘생긴 남자가 승용차 뒷좌석에 앉아 짜증난 표정으로 빨리 비키라고 명령하고 있었다. 그래 바로 저 남자다. 그녀는 머릿속에 번쩍 스치는 영감(靈感)을 보았다. 그리고 정신없이 자동차를 향해 돌진했다.

  끼이익 쾅! 꺄약.

  승용차는 급커브를 시도했으나 마주 오는 차량을 미처 발견하지 못한 채 정면충돌하고 말았다. 그리고 그녀의 몸뚱어리는 공중에서 한번 빙 회전을 한 뒤 바닥에 힘없이 떨어졌다. 잠시 후 경찰 사이렌이 들리고 구경꾼들이 소리없이 몰려들었다. 구급차는 쓰러진 그녀를 태우고 어디론가 급히 사라졌다. 그리고 그녀는 그 동네에 다시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식물인간으로 변한 그녀를 두고 가족들은 보험회사 직원들과 수차례 협상을 벌였다. 그러다 어느날 구치소를 여러번 드나들었다는 그녀의 오빠가 나타나자 협상이 급물살을 타기 시작했다. 이윽고 보상액과 위자료가 결정됐다. 그 돈은 가족들에 의해 갈가리 찢겨졌고 또다른 불씨로 변했다. 한달이 지났다. 보상금은 휴지조각이 되어 날아갔다. 도박단의 판돈이 되어 사라진 것이다.

  집은 경매에 붙여졌고 가족은 뿔뿔이 흩어졌다.

  정미숙은 어디론가 급히 가고 있었다. 그녀의 손에는 노란 사각봉투가 들려져 있었다. 그것을 소중히 가슴에 안고서 그녀는 낮은 한숨을 토해냈다. 얼마나 긴장을 했던지 팔과 다리가 후들후들 떨렸다.

  이번만 이번만, 이번이 마지막이야.

  그녀는 주문을 외우듯 공포에 잔뜩 질린 나머지 하이힐에 걸려 넘어지고 말았다. 때마침 거리에 눈보라가 몰아치기 시작했다. 바닥은 어느새 빙판으로 변해 있었다. 그녀의 미니 스커트 위로 눈송이가 자꾸만 달라붙었다. 언 손을 호호 불며 그녀의 발걸음은 어느새 청량리 바닥을 헤매고 있었다.

  얼굴은 초췌하여 두려움으로 가득했다. 낯선 골목길로 접어들면서 그녀는 자꾸만 뒤를 돌아다보았다. 이윽고 그녀의 모습은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이제 청량리는 하얀 눈천지로 변해가고 있었다. 상인들은 휘장을 걷고 사라졌다. 이따금씩 들려오던 무도장의 음악도 뚝 끊겼다. 차량마저 드믄 드믄 이어졌다. 행인들은 눈 쌓인 거리를 엉금엉금 기다시피 해 지하도로 사라졌다.

  다만 롯데 백화점이 뿜어내는 전광판만이 어두워 가는 거리를 등대처럼 비추고 있었다. 노점상들도 서서히 철수하기 시작했다. 눈이 너무 많이 쌓여 다시 거리로 나오게 될지도 불투명했다. 정적이 깔리는 거리에 느닷없이 고함소리가 들려왔다. 욕설과 함께 째지는 듯한 비명이 연이어 들려왔다.

  "아아악!"

  "이년아 당장 경찰서로 가자. 두 눈 시퍼렇게 뜨고 살아 있는 서방 두고 샛서방
질이라니, 자식들 보기에 부끄럽지도 않더냐."

  이어 퍽! 하고 내리치는 소리와 함께 이내 잠잠해졌다. 여자가 쓰러진 것이다. 눈
위에 나뒹굴어진 여자를 두고서 남자는 그대로 돌아섰다. 여자의 입가에 피가 흐르고 있었다. 남자는 여자의 손에서 빼앗은 사각봉투를 들고서 휘파람을 불었다. 그리고 어디론가 급히 핸폰을 걸었다.

  "자기야 난데 방금 전에 일 끝냈거든, 이따 호텔에서 만나자구."

  여자의 간드러지는 웃음소리가 들렸다. 남자는 만족한 미소를 지으며 달려오는 택시를 향해 손을 번쩍 들었다.

  택시!

  남자는 택시에 올라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운전기사를 그를 보더니 말했다.

  "손님, 오늘 무슨 좋은 일 있으셨나 보군요."

  남자는 눈 내리는 거리를 내다보며 말했다.

  "거참, 눈이 엄청 내리네요. 이런 폭설은 내 생전 처음입니다. 내년 농사는 풍년들겠는데요."

  "그러게나 말입니다."

  남자는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며 말했다.

  "거 오랫동안 해결 못한 일이 있었는데 방금 전 끝냈거든요, 모처럼 눈도 많이 내리고 기분 좋습니다."

  "무슨 일인지 모르지만 축하드립니다."

  눈길을 한참 달리던 택시가 이윽고 목적지에 도착했다. 남자가 만 원짜리 지폐를 운전기사에게 건네며 말했다.

  "거스름돈은 필요 없습니다."

  "아이구 이거 감사합니다."

  남자는 택시에서 내리자마자 호텔을 향해 급히 뛰어 갔다. 얼마나 급히 뛰었는지 발이 허공을 차는 듯싶더니 그대로 나뒹굴어지고 말았다. 쿵! 소리를 내고 넘어진 남자는 다시 일어서기 위해 안간힘을 썼지만 번번이 실패했다. 허리를 크게 다친 데다 다리뼈에 금이 갔기 때문이다.

  그때 한 여자가 앞으로 다가왔다. 검정색 코트 자락으로 몸을 가린 여자는 얼굴 표정이 표독하고 비웃음으로 가득했다. 그에게 다가가더니 가만히 손을 내밀었다.
  남자는 여자의 손을 붙잡고 간신히 일어섰다. 남자의 상태를 눈치 챈 여자가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고마워, 이 봉투는 내가 알아서 처리할게, 그럼 안녕."

  "뭐? 안녕 안녕이라구?"

  "이제 우리 볼일은 다 끝난 거 아닌가."

  여자가 그의 얼굴에 키스를 하며 말했다.

  "그동안 수고했어, 그리고 고마워."

  여자는 돌아서더니, 지나가는 택시를 급히 불러 세웠다.

  "택시."

  칼바람이 그녀와 남자 사이를 세차게 지나갔다. 남자는 다시금 통증을 느끼는지 아픈 허리와 다리를 질질 끌면서 여자가 사라진 곳을 향해 서서히 걸어갔다. 호텔 앞 광장에 다시금 함박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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