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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추니와 익더귀
2010-07-02 07:24:30
정종명

조회:1677
추천:107

난추니와 익더귀

정종명



  소년에게서 얻어 온 개구리는 아직도 사지를 바둥거리고 있었다. 넓적다리에 토실토실 살이 오른, 아주 먹음직스런 개구리였다. 나추리는 예리한 부리로 개구리의 정수리를 힘껏 쪼았다. 거의 동시에 나추리는 옆구리를 걷어 채이면서 엉덩방아를 찧고 말았다. 파란 불꽃이 이글이글 타오르는 두 눈이 먼저 다가왔다.
  "변명은 듣고 싶지 않다. 그 개구리를 물고 나를 따라오너라."
  이더귀는 턱짓으로 잣나무 숲을 가리켜 보였다. 한 번만 눈감아 달라고 손이 발이 되도록 빈다 하여 그가 용서할 리 없다는 것을 나추리는 익히 알고 있었다. 허공 높이 날아오른 이더귀의 뒤를 나추리는 잠자코 따라갔다.
  "끼욱, 끼욱!"
  이더귀의 신호를 받은 예닐곱 마리의 새매가 순식간에 모여들었다. 이더귀는 그들에게 나추리가 자신의 경고를 무시하고 또다시 마을로 내려가 소년에게서 개구리 한 마리를 얻어 왔다는 사실을 장황하게 설명했다. 나추리를 둘러싼 새매들은 그 즉시 실망과 적의의 눈초리를 번뜩였다.
  이더귀가 말했다.
  "너는 꼴같잖은 재롱을 떨어 값싼 먹이를 구걸함으로써 우리 새매족의 명예와 권위를 더럽혔다."
  나추리는 부리를 종아리 사이에 틀어박고 잔뜩 웅크린 자세로 이더귀의 호된 질책을 잠자코 감수할 수밖에 없었다.
  "마을로 돌아가거라. 거기 가서 보잘것없는 참새들의 조롱이나 받으며, 썩은 생선 찌꺼기나 훔쳐먹는 쥐새끼들을 벗하여 구차한 목숨을 보전하는 방도를 취함이 차라리 격에 맞지 않겠느냐."
  나추리는 눈물을 글썽거리며 애원했다.
  "내가 비록 어리석은 사람들의 손끝에 길들여졌다고는 하나, 산과 하늘로 치뻗기만 하는 우리 새매족의 본성을 잃지는 않았다. 참새들의 조롱이나 받으며, 쥐새끼들과 벗하여 비굴한 일생을 살 수는 없지 않느냐. 마을로 돌아가란 명령만은 제발 거두어 주기 바란다."
  이더귀를 비롯한 여러 새매들이 오랫동안 숙의한 끝에 애초의 추방령을 이렇게 수정했다.
  "너의 간청을 받아들이기로 합의하였다. 그 대신 조건이 있다. 마을로 돌아가면 지금까지 너를 보살펴 준 소년의 집에 지금 여러 마리의 병아리가 있다. 그들 중에서 네 힘으로 병아리 한 마리만 채어 갖고 돌아오면 여기 잣나무 숲에서 자유롭게 기거할 수 있는 권리를 회복시켜 주겠다."
  하다못해 개구리 한 마리를 제 스스로 사냥하기에도 힘겨운 나추리였다. 그런 그에게 병아리를 채어 갖고 돌아오라는 명령은 섶을 지고 불길로 뛰어들라는 짓과 다름이 없었다. 그렇다 하여 그것마저 거부할 명분 또한 없는 일이고 보면 마을로 돌아가 부리를 닭장에 박고 죽는 한이 있더라도 일단 그들의 명령을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었다.
  해 지기 직전에 모두들 뿔뿔이 흩어졌다. 나추리는 잣나무 숲에 홀로 남아 오랫동안 자기 생각에 골몰하였다. 이쪽도 아니고, 그렇다고 저쪽도 아닌 자신의 모호한 처지가 서글프고 원망스럽기 짝이 없었다. 고달프고 기구했던 지난날이 주마등처럼 눈앞에 떠올랐다.
  알에서 깨어난 지 보름쯤 지난 뒤였다. 포근하고 따뜻한 햇볕 속에서 깜빡 잠이 들었던가 보았다. 머리 위에서 요란하게 울부짖는 어미의 다급한 비명에 놀라 눈을 떠 보니, 둥지 위로 무엇인가가 비쭉 솟아올라와 있었다. 반짝거리는 까만 눈, 쉴 새 없이 날름거리는 혓바닥, 암회색의 얼룩무늬를 띤 삼격형 머리. 보기만 해도 온몸에 소름이 오싹 돋았다. 까치독사였다.
  소년이 나타난 것은 그 절체절명의 순간이었다. 어미의 울부짖는 비명에 사태를 알아차린 소년은 돌멩이를 던져 까치독사를 쫓아 버렸다. 까치독사가 사라진 다음 소년은 나무 위로 올라왔다. 소년은 나추리 형제를 메고 온 다래끼 속으로 옮겨 넣었다. 피울음을 토하는 어미의 울부짖음이 마을까지 따라왔다.
소년은 개울에서 잡아 온 개구리의 살점을 주머니칼로 저며 내어 나추리 형제의 머리 위에다 치켜들고,
  "끼욱, 끼욱!"
  묘한 소리를 내었다. 나추리 형제는 소년이 저며 주는 먹이를 받아 먹기 위해 본능적으로 목을 길게 뽑으며 부리를 한껏 벌렸다.
  마을까지 따라오며 울부짖던 어미의 모습이 아슴아슴 잊혀지면서 나추리 형제의 외모는 차차 눈에 띄게 달라졌다. 노랗던 털빛이 거뭇거뭇한 깃털로 바뀌었고, 부리와 발톱에 힘이 오르면서 나날이 날카로워졌다.
  나추리 형제가 날개를 퍼덕이기 시작한 것은 무더운 한여름이었다. 소년은 이제 먹이를 받아먹기 알맞게 저며 주는 것이 아니라 살아 있는 것을 나추리 형제앞에 통째로 던져 놓기 시작했다. 먹이는 대부분이 개구리였으나 때로는 미꾸라지나 모래무지 같은 것도 있었다.
  소년이 잡아 온 개구리는 도망치기 위해 넓은 마당을 깡충깡충 뛰었고, 그 모습을 지켜본 나추리는 자신도 모르는 투지와 살의를 느끼며 먹이를 향해 덤벼들었다. 그의 사냥 솜씨는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놀랄만큼 민첩하고 사나웠다. 허공을 뛰어오르는 개구리가 땅에 닿기를 기다렸다가 재빨리 몸을 날려 날카로운 발톱으로 걷어차듯이 개구리를 움켜쥐고, 거의 동시에 부리로는 개구리의 눈알을 쪼았다. 소년은 그때마다 손뼉을 치면서 칭찬했다.
  "좋았어. 아주 훌륭한 솜씨야. 상으로 내일은 참새 고기를 먹여 줄게."
  이튿날 아침, 소년은 나추리 형제에게 참새를 한 마리씩 나누어 주었다.
  나추리 형제는 종일 그 참새를 뜯어먹었다. 지금껏 줄곧 먹어 왔던 개구리나 미꾸라지 따위하고는 비교가 안 될 만큼 아주 맛있는 고기였다. 어쩌면 그것이 빌미가 되었는지도 몰랐다. 그로부터 며칠 뒤, 나추리는 마당에서 노닐고 있는 병아리 한 마리를 물어 죽이는 사건을 저지르고 말았다.
  소년의 어머니가 우연히 이 광경을 목격하고 자지러지는 비명을 질렀다. 학교에서 돌아온 소년은 어머니로부터 크게 꾸중을 들었다. 소년의 어머니는 나추리 형제를 지금 당장 내다 버리라고 소리쳤다. 소년에게 항상 호의적이던 소년의 아버지도 이때만은 태도를 돌변했다.
  "내가 말했지? 이 따위 새매는 아무짝에도 소용없다. 내가 나중에 꿩이나 토끼를 사냥할 수 있는 진짜 참매를 잡아다 주마."
  소년은 나추리 형제를 산에다 내다 버리는 대신 발목에다 가느다란 노끈을 매어 가지고 아무도 몰래 집 뒤 감나무 가지에 올려놓았다. 밤이 깊어지면서 바람이 이는가 싶더니 오래잖아 기어이 빗발이 듣기 시작했다. 비바람은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드세어졌다. 나추리 형제는 비에 젖어 온몸을 덜덜 떨었다. 발목에 노끈이 매여 있기 때문에 쏟아지는 빗방울을 피해 다른 곳으로 옮겨 갈 처지도 아니었다.
  동쪽 하늘이 희끄무레 밝아질 무렵이었다. 주위를 둘러보던 나추리는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곁에 앉아 있어야 할 형이 발밑 나뭇가지에 거꾸로 매달린 채 바람이 불 때마다 힘없이 그네를 타고 있었다.
  소년이 나타난 것은 나추리마저 기진맥진하여 거의 실신 직전이었다. 소년은 허공에 거꾸로 매달린 새매 한 마리를 발견하고 하얗게 질린 얼굴로 울음을 터뜨렸다. 소년의 아버지가 이 처참한 광경을 목격하고 혀를 찼다.
  "네가 모르는 것이 있었구나. 새매는 비를 맞으면 맥을 못 춘단다. 하물며 어린 새매야 견딜 재간이 없었겠지. 어서 나추리라도 따뜻하게 몸을 덥혀 주어라."
  나추리가 겨우 의식을 되찾았을 때는 점심참이 한참 지난 뒤였다. 안방 아랫목이었다. 나추리는 온몸을 감싸고 있는 이불을 헤집고 살그머니 기어 나왔다. 그를 지켜보고 있던 소년이 기쁨의 눈물을 글썽거렸다.
  "나추리!"
  소년은 나추리를 품에 안고 아버지에게로 갔다. 아버지는 나추리를 받아 들고 이리저리 살펴보더니 소년을 안심시켜 주었다.
  "이만하면 됐다. 일단 목숨은 건진 것 같구나."
  소년은 개울로 가서 개구리를 잡아 주었다. 나추리는 소년이 잡아 주는 개구리를 맛있게 뜯어먹었다.
  "지금부터 너는 자유다."
  소년은 나추리의 발목에 묶여 있던 노끈을 끌러 주었다. 너무나 갑작스런 해방에 나추리는 오히려 어안이 벙벙했다. 이처럼 빨리 자유의 몸이 되리라고는 상상도 못한 일이었다. 비명에 간 형의 목숨과 맞바꾼 귀중한 자유임에 틀림없었다.
  "당분간은 마을 부근에서 사는 것이 좋아. 절대로 멀리 가지 마. 내가 끼욱, 끼욱 소리치거든 언제든지 달려와. 먹을 것을 준비해 놓고 기다릴 테니까 말이야. 내 말 알아들었지?"
  소년은 나추리를 남겨 놓고 혼자 집 안으로 사라졌다. 나추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얼른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길게 늘어뜨려져 묶여 있던 발목의 노끈은 이미 제거된 상태였다. 꿈이 아닌가 싶어 두번 세번 발목을 살펴보았으나 분명히 노끈은 보이지 않았다.
  나추리는 맞은편 감나무를 향해 조심스레 몸을 날렸다. 딛고 있던 나뭇가지를 발끝으로 튕기면서 날개를 펴자 그의 몸은 가볍게 허공으로 솟아올랐다.
마을 뒤편이 곧 산이었다. 나추리는 못 견디게 죽지가 근질거렸다. 아까처럼 날개를 펼치며 다시 한 번 몸을 솟구쳤다. 잠깐 사이에 등성이의 참나무로 날아오를 수 있었다. 마을과 들이 한눈에 내려다보였다. 나추리로서는 난생 처음 내려다보는 드넓은 풍경이었다. 모든 것이 낯설었지만 어째선지 그것들이 처음 보는 풍경 같지가 않고, 아주 오래 전부터 보아 왔던 낯익은 풍경처럼 여겨졌다.
  어차피 내친걸음이었다. 나추리는 용기를 내어 산봉우리를 향해 날아올랐다. 여기저기서 새와 풀벌레 울음소리가 끝없이 들려왔다. 나추리는 자기가 마음만 먹으면 어디든지 날아갈 수 있다는 사실을 산봉우리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깨달았다.
  그런데 이게 어찌된 노릇일까. 막막한 불안감이 폐부 깊숙이 밀려들기 시작한 것은 해가 산 너머로 사라진 직후였다. 배도 고팠고, 아직 잠자리도 마련하지 못한 처지였다.
  소년의 마지막 당부가 떠올랐다.
  "당분간은 마을 부근에서 사는 것이 좋아……."
  나추리는 힘껏 날아올랐다. 이상한 감각이 날갯죽지로 묻어들었다. 나추리는 굳이 힘들게 날개를 퍼덕일 필요도 없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날개를 길게 펼친 채 몸의 중심을 잡고 허공을 유유히 떠다녔다. 그러자 감나무 가지마다 조롱조롱 매달려 있던 참새 떼가 허둥지둥 대나무 숲으로 처박히듯 도망쳐 버리는 모습을 지켜볼 수 있었다.
  발목에 묶여 있던 노끈이 사라졌다는 해방감을 만끽할 처지가 아니었다. 무엇보다도 배가 고팠다. 소녀이 잡아다 주던 개구리가 새삼 그리웠다. 대나무 숲으로 모습을 감춘 참새 떼가 나직하니 우짖었다. 나추리는 전에 없던 투지를 느꼈다. 나뭇가지 사이로 매서운 눈길을 번뜩이던 나추리는 마침내 목표물을 겨냥했다. 예리한 전율이 부리와 발톱으로 뜨겁게 감겨들었다. 나추리는 대나무숲을 향해 돌진했다.
  그러나 그의 투지는 허망하게 무너지고 말았다. 참새들은 그가 대나무 숲에 이르기도 전에 떼를 지어 분주히 모습을 숨겨 버렸다. 어처구니없는 실패에 나추리 자신이 오히려 어안이 벙벙할 지경이었다. 참새 떼가 사라진 개울가 가시덤불을 노려보면서 나추리는 다시 부리를 갈았다. 그는 서두르지 않고 높이 떠올라 다시 한 번 가시덤불의 동정을 살펴보았다. 참새 떼는 가시덤불 깊숙이 들어앉아 죽은 듯이 침묵을 지키고 있었다. 나추리는 가시덤불 위를 두 번이나 비행했다. 그러나 그뿐, 그 이상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참새들처럼 가시덤불 속으로 빠르게 헤집고 들어가는 재간이 그에게는 없었다. 참새 떼가 공중으로 날아오르지 않는 이상 그것들을 낚아채기가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그는 알아차렸다.
  마침 개울의 풀숲을 헤치고 나와 썩은 나뭇가지 위에 올라앉아 있는 개구리 한 마리가 눈에 띄었다. 나추리는 그 개구리를 향해 쏜살같이 하강했다. 그러나 이미 개구리의 모습은 온데간데가 없었고, 날렵하지 못한 그의 몸뚱이는 나뭇가지에 둔탁하게 부딪치고 말았다. 그는 부끄러움으로 온몸이 더워졌다.
  병아리 떼를 거느린 어미닭이 마당 귀퉁이에서 모이를 줍고 있었다. 병아리 한 마리를 물어 죽인 사건이 빌미가 되어 형을 잃고, 외돌토리가 된 자신의 이력을 깨닫자 여기저기 흩어져 모이를 찾고 있는 병아리 떼가 곱게 여겨지지 않았다. 소년의 어머니가 나타나 감나무를 힐끗 쳐다보았다. 무심한 눈길 같았지만, 나추리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공포심에 사로잡혀 슬그머니 그 자리를 떠났다.
  이더귀를 처음 만난 것은 산기슭 잣나무 숲에서였다. 허기에 지쳐 있는 나추리를 발견한 그가 먼저 접근해 왔다.
  "너 누구지? 처음 보는 새매인데 그래."
  나추리는 동족을 만난 기쁨으로 가슴이 뜨거웠다. 솔개나 말똥가리와 마주쳤을 때와는 또다른 감회였다. 나추리는 소년의 집에서 살게 된 내력을 설명하고, 그 동안 소년이 자기한테 얼마나 고맙게 해 주었는가를 자랑스럽게 늘어놓았다. 이야기를 다 듣고 난 이더귀는 눈살을 찌푸리면서 말했다.
  "너는 마치 큰 은혜라도 입은 것처럼 말하는구나. 하지만 그건 착각이고 오해다. 그들은 너를 길들여 꿩이나 토끼를 사냥할 목적이었다. 그러다가 그런 사냥용 매와는 거리가 먼 새매라는 사실을 알고는 마지못해 풀어 준 것뿐이야. 내 말 알아들어?"
  "아니야. 그들은 내가 처음부터 새매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어. 사람들이 나를 풀어 준 것도 사실은 내가 그 집 병아리를 물어 죽이는 말썽을 부렸기 때문이야."
  "하지만 나는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너는 머지않아 사람들을 원망할 수밖에 없을 거야. 왜냐하면 너는 사람들로 인해 너 자신의 본성이 무디어져 버린 나머지 스스로는 하다못해 메뚜기 한 마리 잡아먹을 능력이 없다는 걸 알게 된 테니까 말이야."
  나추리는 잠자코 이더귀를 지켜보았다. 다정한 것도 아니고, 냉정한 것도 아닌 묘한 표정이었다. 그 이더귀가 무거운 어조로 말했다.
  "다시는 마을로 내려가지 마라. 사람들이 잡아 주는 먹이를 거절하지 못하는 한 너는 그들이 쳐놓은 그물에서 영원히 헤어나지 못한다. 내 말 알아듣겠지? 지금부터 내가 너의 일거수일투족을 지켜보겠다."
  이더귀가 사라진 뒤에 나추리는 오랫동안 그의 말을 곱씹어 보았다. 생판 틀린 말은 아니었다. 하지만 소년의 경우는 생명의 은인이나 다름없는 존재였다. 그 생명의 은인을 어찌 잊거나 원망한단 말인가. 나추리는 이더귀의 경고를 일소에 붙이고, 소년이 학교에서 돌아올 시간이 되자 또다시 마을로 내려갔다.
  소년은 개구리를 잡아 들고 나추리를 불렀다.
  "끼욱, 끼욱!"
  감나무 위에 숨어 앉아 소년의 거동을 지켜보고 있던 나추리는 소년을 향해 날아갔다. 나추리는 소년의 손등에 사뿐히 올라앉았다.
  "멀리 가지 않았구나. 잘했다. 이렇게 해야 내가 너에게 먹이를 구해 주지."
  소년은 들고 있던 개구리를 마당에다 던져 놓았다. 나추리는 무방비 상태의 개구리를 향해 부리와 발톱을 세워 무섭게 덤벼들었다. 개구리를 발톱으로 낚아챈 나추리는 그 즉시 감나무 위로 훌쩍 날아올랐다. 소년은 그런 나추리를 지켜보다가 말없이 집 안으로 들어갔다.
  나추리는 개구리를 깨끗이 먹어치웠다. 배가 부른 나추리는 다시 잣나무 숲이 그리워졌다. 잣나무 숲은 역시 오랫동안 잠자고 있던 그의 본능을 하나하나 일깨워 주는 이상한 마력을 온몸에 지펴 주는 이상향(理想鄕)이었다. 나추리는 비상과 하강을 반복하면서 마을을 한 바퀴 유유히 둘러본 다음 잣나무 숲을 향해 천천히 날아갔다. 고목을 찍는 딱따구리 소리가 요란하게 들려왔고, 갈가마귀와 메까치가 떼를 지어 날아다녔다. 곤줄박이, 개개비, 고지새, 노랑할미새, 휘파람새도 우짖고 있었다. 잣나무 숲은 역시 새들의 천국이었다.
  그러나 그러한 기쁨도 잠시였다. 몹시 화가 난 얼굴로 다가온 이더귀가 나추리를 무섭게 몰아붙였다.
  "내가 뭐랬지? 마을로 내려가지 말라고 당부했잖아. 사람들이 잡아 주는 먹이를 받아 먹어서는 안 된다고 말했잖아."
  "……."
  "다른 새매들도 지금 너의 일거수일투족을 지켜보고 있다는 사실을 한시도 잊어서는 안 된다."
  그러나 나추리는 이튿날도 소년이 학교에서 돌아올 시각이 되어 마을로 내려갔다. 그리고 전날과 마찬가지로 소년에게서 개구리 한 마리를 얻어 왔다. 나추리는 떡갈나무 잎이 무성하게 덮인 바위 뒤에 숨어 앉아 그것을 맛있게 뜯어먹었다. 이더귀가 나타난 것은 맛있는 식사가 거의 끝날 무렵이었다.
  이더귀는 다짜고짜 나추리의 덜미를 찍어 눌렀다. 나추리는 땅바닥에 부리를 박고 엎어졌다. 이더귀는 나추리의 죽지를 힘껏 비틀었다. 나추리는 비명 한 번 지를 겨를도 없이 무더기로 쌓인 갈잎더미 속으로 고꾸라졌다.
  "우리 새매족이 솔개와 독수리들로부터 손가락질이나 비웃음을 받는 내력도 따지고 보면 너 같은 기회주의자가 섞여 있는 탓이 아니더냐. 내가 다시 한 번 엄중히 경고해 두겠다. 산이면 산, 마을이면 마을, 둘 중 어느 하나를 분명하게 선택하란 말이다. 이쪽도 저쪽도 아닌 양다리 걸치기는 절대로 용서할 수 없다."
  비가 내렸다. 비는 사흘 동안 줄곧 질금거렸다. 그리고 비가 그쳤을 때는 추위가 성큼 다가왔다. 그 사흘 동안 나추리는 내내 굶었다. 허기와 한속은 시시각각 무섭게 밀려들었다.
  어느 새 새벽이 다가오고, 바람이 더욱 차가웠다. 나추리는 불안과 긴장 속에서 꼬박 밤을 지새웠다. 가까운 곳에서 풍풍 대통을 치는 듯한 소리가 들려왔다. 희끄무레 먼동이 트기 시작했을 때에야 그 소리의 주인공이 벙어리 뻐꾸기라는 사실을 알았다. 그들은 여러 마리가 한데 어울려 멀지 않아 따뜻한 남쪽 지방으로 옮겨 갈 철새들이었다. 나추리는 어디론가 찾아갈 곳이 있는 그들이 한없이 부러웠다.
  오랫동안 망설인 끝에 나추리는 마을로 내려갔다. 마당 한 귀퉁이에서 여러 마리의 중닭이 땅을 헤집으며 한가롭게 거닐고 있었다. 다행히 소년의 집에는 아무도 없었다.
  나추리는 조심스럽게 닭장 지붕 위로 내려앉았다. 마침 무리에서 벗어난 중닭 한 마리가 마당을 가로질러 개울 쪽으로 줄달음치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그 중닭이 개울가에서 물을 마시고 다시 아장아장 마당으로 올라섰을 때였다. 나추리는 드디어 기습작전을 감행했다. 중닭은 생각보다 몸놀림이 민첩하고 힘이 세었다. 팽개치듯이 마당 한가운데로 나가떨어진 것은 중닭이 아니라 나추리 자신이었다. 발딱 일어나 보니 목덜미의 깃털을 있는 대로 곤두세운 중닭이 나추리를 노려보면서 덤벼들 자세를 취하는 게 아닌가.
  나추리는 온몸의 피가 뜨겁게 달아올랐다. 날카롭게 곤두세운 발톱을 세우면서 날개를 힘껏 쳐 올렸다. 그리고 쓰러뜨린 중닭의 한쪽 눈을 부리로 내려찍은 순간이었다. 중닭은 비명을 지르면서 있는 힘을 다해 맹렬히 저항했다. 나추리는 그의 등을 발톱으로 찍어 눌렀다. 이미 한쪽 눈에 치명타를 입은 중닭은 나추리의 적수가 못되었다. 그렇다고 싸움이 끝난 것은 아니었다. 부리로 덜미를 물고 늘어진 나추리나, 미친 듯이 몸부림치는 중닭이나, 피차 양보할 수 없는 혈전이 숨가쁘게 전개되고 있었다.
  "나추리!"
  중닭의 덜미를 물고 있던 부리를 거두면서 나추리는 천천히 머리를 치켜들었다. 눈앞에 소년이 서 있었다. 나추리는 소년을 향해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러나 이게 어찌된 노릇인가. 소년의 눈빛이 예사롭지 않았다. 소년은 주위를 둘러보더니 마침 마당에 굴러 떨어져 있던 돌멩이를 집어들기가 무섭게 나추리를 향해 힘껏 던졌다. 나추리는 돌멩이를 피해 가까스로 지붕 위로 날아올랐다. 약이 오른 소년은, 이번에는 더 큰 돌멩이를 주워 다시 나추리를 향해 던졌다. 돌멩이는 매서운 바람 소리를 내면서 나추리의 머리 위를 아슬아슬하게 스쳐 갔다.
  나추리는 있는 힘을 다해 허공을 차고 올랐다. 잣나무 숲과 마을이 아득히 내려다보였다. 나추리는 무작정 위로 위로 솟아올랐다. 마을도 아니고 잣나무 숲도 아니었다. 그러나 그것이 어디에도 뿌리 박지 못한 떠돌이가 가질 수밖에 없는 서글프고 아득한 절망감에서 비롯된 무모한 비상임을 깨닫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 난추니는 새매의 수컷이고, 익더귀는 새매의 암컷이다. 등장인물 나추리와 이더귀는 이의 변형이다.


정종명
1945년 경북 봉화 출생. 서라벌예술대학 문예창작과 졸업했다. 1978년 월간문학 신인작품상에 <사자의 춤>이 당선되어 문단에 등단했다. 현대문학․문학정신 등 문예지에서 10여년 근무했다. 소설집 <오월에서 사월까지> <이명> <숨은 사랑> <의혹>, 장편소설 <인간의 숲> <아들 나라> <신국> <대상>, 산문집 <사색의 강변에 마주 앉아> 등이 있다. 경기대학교 문예창작학과 대우교수와 국제펜클럽한국본부 부이사장을 역임했다. 현재 한국사이버대학교 문예창작학부 겸임교수 및 한국문인협회 편집국장으로 재직하고 있다.



   메모
ID : 38hwakook    
2010-07-07    
14:27:49    
제목이 낯선 언어들이라 읽기 시작하다가 끝까지 다 읽었습니다. 재미 있었습니다. 그것이 어디에도 뿌리 박지 못한 떠돌이가 가질 수밖에 없는 서글프고 아득한 절망감에서 비롯된 무모한 비상임을 깨닫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 라는 결구가 의미 심장합니다. 애쓰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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