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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화국 장편소설 <꿈꾸는 설악> 연재 67회
2010-05-17 20:52:54
38hwakook

조회:1537
추천:85
소설 <꿈꾸는 설악> 연재 67회|시와 소설 / 이화국  

 

  그 중에서도 ‘자식이 빵을 달라하면 돌을 주며 생선을 달라하면 뱀을 주겠느냐 너희가

악한 자라도 자식에게 좋은 것으로 줄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는 구절을 더욱 좋아했다.

 

    ‘방백들을 의지하지 말며 도울 힘이 없는 인생도 의지하지 말지니 야곱의 하느님으로 자기 도움을

삼으며 여호와 하느님에게 소망을 두는 자는 복이 있도다’ 라는 성경 구절도 좋아했다.

    ‘나를 간절히 찾는 자가 나를 만나리니… ’ 성경에 분명히 씌어있었다.

 

    그래서 선희는 간절히 하느님을 찾아볼 결심을 한 것이었다. 그리고 그 구절들은 성경에 적힌

하느님의 약속의 말씀들이 아니던가. 그 약속을 믿고 그렇게 기도하며 구해 볼 작정이었다.

유치하게도 하느님과 줄다리기를 하는 짓일런지는 몰라도 선희가 택할 수 있는 길은 그 길 하나

뿐이었다.

 

    궁지에 몰린 선희는 갈 곳이 없었다.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그래서 밥 문제를 풀기 위해 굶어야

만 한다. 그 굶노라 안 먹은 밥그릇을 종자(種子) 밥으로 하여 하느님으로부터 더 많은 밥을 받아

배를 채울 수 있을지 모를 일이었다.

 

    무슨 큰 믿음이 있어서도 아니었다. 단지 발등에 불이 떨어졌기 때문이었다.

또 빚 진 자는 죽어도 굶어죽어야 마땅하다는 생각이었다. 물론 죽음도 두렵지 않았다.

오리려 살까봐 그 점이 더 두려웠다. 눈물, 근심, 탄식이 없는 죽음의 세계는 선망이 대상이 아닐

수 없었다.

 

    선희의 기도 제목은 오직 하나 뿐이었다. 은행에서는 이자와 원전을 갚으라는 독촉장을 보내오

더니 이젠 경고장이 날아오고 있다. 곧 경매를 부르겠다는 문구가 들어있었다. 모텔이 팔리지 않

으면 가족 동반 자살이라도 해야 한다는 막바지 궁지에 와 있었기 때문에 모텔의 매도 문제는

너무나 시급했다.

  궁지    

    민호와의 연애도 아름다운 추억이 되려면 돈의 굴레에서 벗어나야 했다. 그가 사랑의 마음과

정성을 담아 건네 준 돈이라도 갚아야 되는 거였다.

    차라리 어느 늙은 늑대에게 몸을 팔지언정 민호의 돈만은 갚고 싶었다.

 

    모텔이 경매 날자에 앞서 팔리기만 하면 간단히 끝나는 일이었다.

남는 돈이 없더라도 채무에서는 자유를 얻을 터였다. 그렇게 되면 얼마나 짐이 가벼울 것이냐!

 

    선희는 성경책과 찬송가책에 머리를 얹고 무릎 꿇어 엎드렸다. 역시 민호는 방문을 여러 차례

노크했다. 선희는 죽을 각오로 모른 체 했다. 여기에서 지면 영영 돌아올 길을 찾지 못할 것 같았다.

몇 번을 시도하더니 대답이 없자 나가는 모양이었다.

 

    현관문 여닫는 소리가 들려왔다. 선희는 얼른 일어나 현관문을 잠가버렸다.

    기도는 말보다 회개의 눈물로 채워졌다. 우습게도 하느님과 흥정을 벌이기도 했다. 빚 갚고 하다

못해 포장 마차 장사 밑천이 될 만큼 조금만 남게 해주시면 감사 헌금 100만 원을 드리겠다고 했다.

 

    더는 할 수 없다고도 말했다. 사랑하는 민호를 냉정히 돌려보냈지 않느냐고, 그 뜻이 기특하지

않느냐고, 대신에 반드시 용서를 해주셔야 한다고 억지 떼를 쓰기도 했다. 하느님께서는 연애를

안 해 봐서 모르실 테지만 그건 너무 어려운 결단이었다고도 아룄다.

 

    이렇게 아뢰자 하느님께서 웃으실 것도 같았다. 하느님께서는 연애를 안 해봐서 모르실 거라는

그 말이 다시 생각하니 선희도 우스웠다. 그래서 웃었다. 웃다가 울었다. 이렇게 서서히 미쳐가는

모양이라고 살을 꼬집어보았다. 아픔이 느껴졌다.

 

    그래서 감사하다고 아뢰고 찬송가를 불러 하느님을 찬송 했다. 성경을 읽었다. 어찌 토기장이가

천한 그릇과 귀한 그릇을 만들 권세가 없겠느냐는 구절에 이르러 선희는 깨어졌다. 선희는 자기가

귀한 그릇이려고만 고집한 게 아니냐고, 그건 교만이 아니었겠느냐고 회개했다.

 

    그러니까 깨던지 부수던지 맘대로 하시라고 머리를 조아렸다. 하지만 불쌍히 보셔서 살려달라고

애원을 거듭 했다. 그렇게 하루가 가고 이틀이 지났다. 배가 고팠다. 몸안의 더러운 죄악을 다 씻어

낼듯이 냉수를 많이 마셨다. 현관문 흔드는 소리가 났다. 선희는 가만히 있었다.

 

  “아마이 안에 있소 없소?”

    묻는 목소리가 옆집 삼정 산장 명덕 엄마였다. 그녀는 전 해 추석에도 업소에 머물러 있던 선희

에게 송편을 먹어보라고 가져왔었다. 그렇다면 오늘이 추석날인가 보았다. 사생결단(死生決斷) 내야

하는 판에 명절이 다 무엇에 쓰는 것이냐고 약이 올랐다.

 

    떡은 고사하고 밥도 못 먹는 신세가 되어있지 않는가 말이다. 참으로 심한 허기를 느꼈다.

먹을 것들이 눈앞에서 어른거렸다. 이게 무슨 업보인가.

무슨 죄의 대가인가 생각하니 기가 막혔다.

 

    해롤드 S. 쿠슈너는 '좋은 사람들에게 나쁜 일이 일어날 때'라는 저술에서 나쁜 일들이 꼭 죄받아

마땅한 사람들에게 일어나는 것은 아니라고 말하고 있었지만, 선희는 자기를 조금도 변명하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그래서 성당에 다닐 때 미사중에 하는 식으로

'내 탓이요 내 탓이요 내 큰 탓이로소이다' 하면서 가슴을 두드릴 뿐이었다.

 

    현관문 흔드는 소리는 계속되었다. 선희는 문 흔드는 소리를 외면하고 가만히 엎디어 있었다.

어려서부터 살아온 과거를 차례차례 떠올려 보았다. 초등학교 다닐 때 책상에 금 그어놓고 이 쪽

으로 넘어오지 말라면서 짝궁과 싸우던 일 까지 회개 했다.

 

    이쪽으로 넘어오지 말라면서 연필 심지를 갈아서 그 새까만 가루를 짝궁 쪽으로 불어버린 일을

기억하며 회개했다.

회개    

    기억의 수면 위로 떠오르는 잘못을 모두 회개했다. 나중엔 내가 잘 했다고 확신을 가졌던 일까지

회개했다. 회개 하면서도 그 일은 잘못한 일이 아니었다는 확신이 여전히 있었다.

그렇게 강한 주장을 하는 자아(自我)를 회개했다.

 

    그 자아가 없어져야 하는 것이었다. 그래야 하느님께서 서실 자리가 생기는 것이리라.

그때서야 하느님께서 손을 쓰시리라. 선희는 하도 울고 불고 해서 정신을 잃은 것 같기도 했다.

목에서는 아무런 목소리가 올라오지 않았다.

 

    코피가 쏟아졌다. 몸은 마르고 있는데 흘릴 피는 남아 있는 모양이었다.

‘피 흘림 없이는 사함도 없나니… ’

십자가 위에서 흘리신 예수님의 피가 보이는 것 같았다. 눈을 감았다.

 

    사방이 무한히 하얬다. 눈이 와서 온 세상을 뒤덮은 것일까. 한 발 한 발 앞으로 내딛노라니 힘이

들었다. 눈을 들어보니 역시 산길을 가고 있었다. 나무의 꼭대기까지 눈이 쌓였는지 나무 한 그루

보이지 않았다. 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아주 파란 하늘이었다.

 

    하늘이 파랬기 때문에 산의 윤곽이 더 뚜렷하게 그려져 있었다. 그 중 제일 높은 산 정상에서

흔드는 손이 있었다. 누구일까. 눈을 가늘게 뜨고 초점을 잡으며 바라보았다. 하얀 옷을 입은,

이미 저 세상에 가신 어머니 모습이었다.

 

    얘야 얼마나 힘이 드느냐? 내 손을 잡아라. 그러시는 것 같았다. 손을 잡으려고 했는데 닿는 듯

놓치고 말았다. 언뜻 보니 어머니는 사라지고 선지자 엘리야라고 했다. 저 하늘에 구름 한 조각이

떠있는 걸 보니 3년 간 가뭄 든 땅에 비가 내릴 것이라고 예언을 했다.

   그래서 선희는 애원을 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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