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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화국 장편소설 <꿈꾸는 설악> 연재 66회
2010-05-15 09:35:12
38hwakook

조회:1446
추천:112
소설 <꿈꾸는 설악> 연재 66회|시와 소설 / 이화국  

 

                    

             24. 기도는 답이 되고

 

 

 

 

 

   늦잠에 들어 꿈을 꾸느라고 선희는 일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방문을 노크하는 소리에 잠과 꿈이 함께 깨었다.

  “사모님, 엊 저녁도 굶으셨잖어유. 일어나셔유.” 

 

    그때서야 저녁을 걸렀음이 상기되었다. 식욕을 느끼지 못하는 채로 주방장의 친절이 고마워 식당

으로 내려갔다. 김은태가 부재중일 때 하던대로 한 테이블에 둘러 앉아 같이 먹기로 했다.

선희는 민호의 얼굴을 마주 보기가 민망했다.

 

    공범이라고 해도 주동자와 가담자가 따로 있기 마련이었다. 선희는 자기가 주동자라고 생각했다.

주동자는 언제고 책임이 더 중한 법이었다. 한참 생각에 빠져들어갈 때 주방장이 말했다.

  “벌써 추석이 나흘 밖에 안 남았네유.” 

 

    선희에겐 추석이 즐거운 명절이 될 리 없는 생활이다 보니 관심 밖이라서

날자도 잊고 넘어갈 뻔 했다.

  “추석이 며칠 날이지?” 

  “열흘 날이쥬. 구월 열흘 날이유. 양력으루 말이쥬.” 

 

  “추석 전후해서는 관광 오는 사람들이 더 없으니 모두들 집에 일찍 보내줄게.” 

  “아이구, 지가 그런 뜻으루다가 헌 말이 아닌디유.” 

    선희는 주방장의 어깨를 살짝 두드려 주었다.

 

  “나도 주방장 마음 다 안다구요. 이 착할 줄만 알았지 복 없는 여자야.” 

    그렇게 말하고 선희는 현관으로 올라왔다. 그때 전화벨이 울렸다. 서울에 머물고 있는 김은태에게

서였다. 곧 추석이니 내처 서울에 있겠다고 했다.

 

    그러면서 종업원 월급을 주어야 할 것이니 돈을 내려 보내겠다고 하면서 한 마디 더 얹었다.

  “도루 내려 보낼 돈을 번거롭게 왜 올려 보냈어.” 

  “정군이 집에 다녀 오겠다 하고 마침 계를 탔길래요.” 

 

  “알았어, 강원은행으로 오후에 가봐. 그리고 추석 다음 날 내려갈께.” 

    강원은행은 숙박 단지 C지구 안에 있었다. 다래 모텔에서 멀지 않았다.

오후에 돈을 찾아온 선희는 아침에 한 말대로 모두 일찍 떠나라고 일렀다.

 

    노군이 신바람 나서 일착으로 떠나고, 주방장은 아들 대식이 머리를 깎아준 후 저녁 때 떠나면서

물었다.

  “정군은 집에 안 가남? 서울이라고 했잖은감?” 

  “이군하고 함께 가려구요. 한동네 살거든요. 자운 모텔에서는 오늘 안 보내주나 봐요.” 

 

  “여기 사모님이니께 그렇지,

     다른 집이서는 관광 손님이 있던지 말던지 추석 전날 까지는 다 붙들어 둔단말여.” 

추석    

    민호의 시선이 잠깐 선희의 얼굴을 스쳐갔다. 어쩔 수 없이 둘이만 남게 되었다.

    그럭저럭 설악동에 발을 들여놓고 지내온 햇수가 7년을 헤아리고 보니 추석 때의 경기가 어떤

형편인지 선희는 경험으로 잘 알고 있었다.

 

    어느 해던가, 바로 추석 날 선희가 혼자서 산으로 올라갔는데 그야말로 개미도 없었다.

비선대를 지나 괴면암 쯤에 다달았을 때 갑자기 산 위에서부터 하얀 안개가 골짜기를 타고 내려왔다.

마왕의 입김이라면 저럴 것이었다.

 

  그 속력이 어찌나 빠른지 두려움에 떨어야 했다. 그 안개에 먹히면 어디로 실종되고 말 것 같았다.

주위에 한 사람만 있어도 무섭지 않았을 텐데 주위를 둘러봐도 선희 혼자 뿐이었다.

그래서 부리나케 발길을 돌려 되돌아 내려오고 말았다.

 

    모든 시야를 순간에 막아버리는 그 막막한 안개를 기억할 때마다 사람의 자취가 끊어지는 관광지

의 추석날 생리를 기억했다. 선희는 그 때의 안개가 지금 쳐들어온 것처럼 머리 속이 뿌옇게 되어

아무 말 못하고 소파에 멍하니 앉아 있었다. 시키지 않았는데 민호가 커피를 타가지고 왔다.

 

  “왜? 같이 마시지.” 

  “제 것도 여기 있는데요.” 

    탁자를 사이하여 반대편 소파에 민호가 앉았다. 무서운 고요와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선희가 먼저 입을 열어야 했다.

 

  “이군은 언제 떠난다고 해?” 

  “모레요.” 

  “그럼 추석 전날이군.” 

 

    선희의 머리속이 갑자기 들끓기 시작했다. 추석에 관광객이 없으면 선희도 서울집으로 올라가면

된다. 하지만 정리하지 못하고 있는 부채 때문에 집에 갈 수가 없었다. 부채는 저절로 많아져서

모텔을 팔기 전에는 어떤 방법으로도 해결할 길이 없었다.

 

    모든 문제가 발생할 때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전면에 서게 되는 선희는 은행 부채 외에는 모두를

선희가 주선해온 빚이었다. 빚 받을 사람은 김은태가 아니라 선희만 괴롭혔다. 그래서 서울에 못

올라가고 남아있게 된 것인데 이렇게 둘만의 시간이 저절로 주어졌다.

 

    얼마나 엿보아온 기회인가. 얼마나 가슴 설레는 일인가. 얼마나 희열에 만취할 것인가.

행복하고 달콤한 육체의 향연이 벌어질 절호의 챤스가 아니냐 말이다.

선희는 사람의 눈치를 볼 일도 없어졌으니 민호를 안고 딩굴고 싶었다.

 

  그것은 너무나 쉬운 일이었다. 열려 있는 마음이었고 한번 열린 문은 더 쉽게 열릴 것이 확실했다.

선택의 열쇠를 손에 쥔 자유속에서 선희는 어찌해야 할 바를 몰랐다. 연애에 빠진 사람은 쾌락과

교환하여 불행을 손에 넣을 것임으로 그래서는 안 된다는 또 다른 목소리가 있었다.

 

    그때 민호가 주방으로 내려갔다. 얼마 있더니 올라와 저녁을 먹으라고 했다.

자기가 무엇을 했다는데 대해 신나는 아이처럼 아주 자랑스러워 보였다. 저녁을 준비 하다니

이럴 수가! 선희에게는 그 순간 번개 같이 스치는 결심이 있었다.

 

    결심이 선 만큼 동작이 민첩해졌다. 주방으로 함께 내려갔다. 식탁 위에 마련된 상차림을 보았다.

찌개가 가운데 놓였고 찬그릇 놓인 자리며 주방장이 하던 대로 시늉하고 있었다.

무조건 민호를 끌어안았다. 그리고 그 뺨에 얼굴을 부비며 목이 메어서 말했다.

목이 메어 

  “고맙지만 난 밥을 먹지 않겠어. 알고 보면 밥을 먹을 자격이 없는 사람이야. 그러니 부탁인데

오늘 밤으로 이 집을 떠나줘. 아주 가면 안 돼. 추석 다음날엔 꼭 돌아와야 해. 낙엽이 떨어질 그때

우리는 이별을 해야 하니까. 이별의 배경까지도 훗날에 나는 아름답게 추억해야 하니까.” 

 

    말을 마치자 선희는 뒤를 돌아보지 않고 재빠르게 자기 방으로 돌아와 문을 잠갔다.

    금식 기도는 목숨을 내놓고 하는 기도라고 했다. 그래서 전능과 사랑이 많으신 하느님께서

특별히 더 잘 들어주신다는 설교는 늘 귀에 못으로 박혀있었다.

 

    ‘문을 두드리라 열릴 것이요, 구하라 주실 것이요 찾으라 찾을 것이니라.’ 이 구절은 성당에서도

많이 들었지만 그때는 그렇게 간절하게 구하거나 찾을 것이 별로 없었다.

그런데 이제 상황이 변해 있다. 하느님께서 문제를 해결해 주셔야만 하게 된 불가능을 당해 선희는

인간의 나약함을 절감하고 있었다.

 

    그때부터 성경 구절 중에서도 마음에 깊이 새기는 구절이 따로 생겼다. 편식을 하는 아이 같을진

몰라도 사람이 비타민이 부족하면 비타민제를 먹고, 빈혈이 심하면 빈혈약을 집중적으로 투여하는

것처럼 그건 어쩔 수 없이 당연한 일이라고 선희는 자기의 편식을 합리화했다.

 

    그렇게 자리잡은 성경 구절이 꽤 되었다. 그것은 개신교로 옮겨온 이후의 변화였다.

'할 수 있다면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함이 없느니라' 이런 구절에서는 힘이 났다.

좌절을 디디고 일어서는 발판이기도 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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