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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화국 장편소설 <꿈꾸는 설악> 연재 64회
2010-05-15 09:27:33
38hwakook

조회:1537
추천:103
소설 <꿈꾸는 설악> 연재 64회|시와 소설 / 이화국  

   

 

23. 생의 찬가

 

   

   시간을 알 수 없었지만 밖은 이미 어두워 있었다.

     그렇게 시간이 멈추어버리기를 간절히 소망했다. 선희는 비를 맞아본지 오래인 마른 모래였으

므로 민호를 빨아들였다.

그녀의 작은 체구 어디에 그렇게 깊은 곳이 있는지 민호는 한없이 파고들었다.

 

    파고 들어갈수록 안락하고 평안한 희열이 일었다.

    자기가 사람이란 이름이 붙여지지 않았을 때 몸담았던 어머니의 자궁속 같기도 하고, 정든 고향에

돌아온 것도 같으며, 미지(未知)로 가득한 원시림에 둘러싸여 있는 느낌이 들었다.

 

    그 원시림은 사람이 살지 않는 땅이라서 누구의 눈치도 보아야 할 일이 없으며 엿보는 자도

없을성 싶었다.  평화와 함께 자유함과 안락함과 행복만이 가득했다.

     안락

    인간이 누릴 수 있는 환희의 절정에서는 말이 필요 없는지 가끔씩 짧고 진한 감탄사가 튀어나왔

을 뿐이었다. 얼마의 시간이 흘렀는지 알 수 없었다. 불길은 거셌지만 꺼지면 다시 불 붙일 수는

있어도 영원히 타는 불길이란 없는 법이었다.

 

    불씨만 남기고 완전 연소가 된 그들은 보드라운 잿가루처럼 고요히 가라앉았다.

    선희는 민호의 머리 끝에서 발 끝까지 손으로 가만히 쓸어보았다. 입술로는 그를 음미했으며

후각으로는 그만의 특이한 체취를 냄새 맡았다.

 

    그 냄새 속엔 사람을 어지럽게 만드는 신비한 향기가 있었다. 그의 살결, 그의 근육, 목과 어깨선,

허리의 굴곡들을 차례로 어루만지면서 열 개의 손가락 끝 감각에도 그를 묻혀서 스미게 했다.

    건강함과 신선함이 있으며 탄력이 넘쳤다. 참으로 아름다웠다. 선희는 그를 감상했다.

 

    선희는 조각가가 못 되었음이 후회스러웠다. 하나하나 가슴속에 입력했다. 추억 가운데 미래에

먹고 살 그녀의 달콤한 양식으로 아주 많이 저장해 두기 위해서였다. 선희의 손길이 민호의 하체로

내려가면서 허벅지를 스치고 정강이를 지나 발에 닿았다.

 

    간지럼을 태운 것은 아니지만 그렇게 온몸을 오르내리는 선희의 손길에 민호의 남성은 다시 폭을

몰아왔다. 바람이 불었으며 번개가 치고 센 빗줄기가 땅을 적셨다. 이제 대지는 목마르지 않을 것이

었다. 하지만 선희는 너무나 많은 아쉬움 속에 있었다.

 

    선희는 한 번도 남녀의 만남에서 이런 흥분과 절정을 누려보지 못했었다. 그것은 성(性)에 대한

무지와 미숙에서 온 것일 수 있으며, 설레는 사랑의 감정이 없는 상태에서 살을 부딪쳤기 때문일

수도 있었다. 이성에 대해 잘 모르는 여자를 순수, 또는 순진이라고 찬양할만 하다고는 말할 수

없을 것 같았다.

순진    

    결혼의 시작이 사랑이 아니라 싫지 않으면 한다는데 있었던 선희의 선택이 불러온 당연한 결과

일 뿐이었다. 또 우리 조상님들 처럼 얼굴을 못 보고 결혼해서도 자식 낳고 다 잘 살지 않았던가.

그나마 김은태는 불능이었으므로 이 밤을 끝으로 선희의 성문(城門)에는 영원히 빗장을 질러놓아야

할지 몰랐다.

 

    주었다가 금방 빼앗는 손길이 누구냐고 선희는 항의하고 싶었다. 그러나 선희는 욕심 내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이미 잘 알고 있었다. 잘 익은 빨간 사과를 개미가 한 입 베어먹었으면 사람은

그 사과를 값을 주고 사갈 것이다.

 

    그러나 그 사과가 눈에 드러나도록 볼상 사납게 여러 군데 뜯어 먹혀 있다면 그 사과는 쓰레기통

속으로 던져질 것이다. 민호는 아름답고 미래가 많은 사람이었으므로 여러 군데로 크게 상처를

받아서는 절대 안 된다고 선희는 생각했다.

 

    그래서 선희는 이 한 번만의 민호의 선물을 안고 영원히 살 수 있겠느냐고 자문해보았다.

민호를 사랑하는 마음이 하도 깊어서 당당히 그럴 수 있다고 자신 있게 대답했다.

하마터면 그 대답이 밖으로 튀어나올 뻔해서 선희는 스스로에게 놀랐다.

 

    욕망의 굴헝은 무한대라서 깊이 빠지면 불가능한 탈출이 될 것이므로, 그런 이유 때문에도 단 한

번으로 끝내야 하지만, 또한 그것이 민호의 사랑에 대한 정중한 예우일 것이며, 그 가련함을 신께서

도 용서해 주시지 않겠느냐고 선희는 간절히 기도하는 마음이었다.

 

    쾌락이 몰고 온 혼돈의 늪에서 서서히 떠오르자 선희는 민호를 다쳤다는 자책으로 마음이

아파왔다.

  “민호야. 자는 거야?”  

  “아니에요.” 

     자책

    그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면서 물었다.

  “무얼 생각하는데?” 

  “아무 것도… ” 

 

  “혹시 후회하지 않을까.” 

  “아 아니에요.” 

  “나는 벌써 후회하고 있는 걸.” 

 

  “후회하지 마세요. 우리는 후회할 일을 한 것이 아니에요. 절대로... 저는 비겁한 일을 했다고는

절대 생각하지 않아요.”

  “아니야, 나는 내가 미워, 내가 민호의 아름다운 몸에 흠집을 내고 말았어. 사람의 손때를 묻히지

않았어야 하는 건데 이렇게 더럽히고 말았어. 미안해. 정말 미안해.” 

 

    충만한 희열 속에서도 선희는 후회로 눈물을 떨궜다. 사람이 후회하지 않는다고, 후회하지 않을

일을 했다고 아무리 항변 해도 하늘엔 선악을 분별하시는 하느님이 계셨다. 사람이 자신을 속일

수는 있어도 하느님을 속일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선희는 자꾸 울음이 솟구쳐서 어서 민호 곁을 떠나야 했다.

  “내가 먼저 내려 갈게.” 

    선희는 아래층의 동정을 살피면서 가만히 내려와 얼른 자기 방에 몸을 숨겼다.

 

    저녁을 먹으라고 주방장이 불렀지만 배고프지 않다고 일어나지 않았다. 여러가지 생각이 뒤엉킨

머리속이지만 민호가 언제 내려왔는지를 확인 하기 전에 의외로 빨리 단잠에 떨어졌다.

나른한 충만감이 있었다. 알 수 없는 일이었다.

단잠    

    새벽녘에 선희는 귀뚜라미 소리에 잠이 깨었다. 창문을 열자 귀뚜라미 소리가 뚝 멎었다.

새벽이 희붐한 빛깔로 열리고 있었다. 선희는 그 새벽 앞에 서있었다.

 

 

            밤 사이 잃어버린 사물을 하나하나 찾아

          돌려 주는 이는 누구십니까?

 

 

          손때 묻어 희미한 것들을 화안한 빛살로 닦아내

          반짝이는 얼굴을 만드는 당신의 이름은 무엇입니까?

 

 

          가시나무 불타는 길에 들어 막무가내 몸부림한 흔적을 털고

          회의(懷疑)의 병균 가득한 이불을 개켜 선뜻 일어서게 하는

          당신의 힘은 어디서 솟습니까?

 

 

          창문 두드려 열게 하시고

          시든 영혼에 보혈의 주사액을 흘려 넣는

          부드러운 손을 가진 당신은 어디서 오십니까?

 

 

          찬란한 새 하루를 축복처럼 안겨 주며 오시는 이여!

          그림자 등져 빛 쪽으로 서서 빛만 보며

          빛만 보며 살라고 살라고 이르십니까?

 

 

           선희는 새벽을 그렇게 공책에 새겨넣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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