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학방송(DSB) 문인글방_소설
HOME 시작페이지로 즐겨찾기추가 [등업신청/기타문의]
로그인 회원가입
회원가입
   

한국문학방송은 지상파방송 장기근무경력 출신이 직접 영상제작 및 운영합니다
§사이트맵§ 2017년 9월 26일 화요일

문인.com 개인서재
 

DSB 문인 북마크페이지

전자책 출간작가 인명록



시조
동시
영시
동화
수필
소설
평론
추천시
추천글
한국漢詩
중국漢詩
문학이론


DSB 앤솔러지 제7집


DSB 앤솔러지 제6집


DSB 앤솔러지 제5집


DSB 앤솔러지 제4집


DSB 앤솔러지 제3집



[▼DSB 앤솔러지 종합]
 



홈메인 > 문인글방_소설 > 상세보기
DSB 전자책 발간 현황
DSB 전자책 발간 현황
DSB 전자책 판매정산 페이지
도서판매/온라인강좌

전자책 제작·판매·구매의 모든 것

사이버문학관


이곳은 문학방송 정회원(문인회원)의 글방[소설방]입니다
(2016.01.01 이후)


이화국 장편소설 <꿈꾸는 설악> 연재 60회
2010-05-08 12:30:32
38hwakook

조회:1437
추천:118
소설 <꿈꾸는 설악> 연재 60회|시와 소설 / 이화국  

 

    이렇게 느낀 것 을 받아 쓰는 사람들을 시인이라고 이름 한다면

    시인은 양육 되는게 아니라 탄생되는 것이라고 정의해야 옳았다.

시인  탄생 

    선희는 자기가 어떤 변화의 과정에 있음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선희가 아는 한 시인들은 외로워서 시를 쓰고, 가슴이 아파서 시를 쓴다.

    아무도 내 말 들어줄 사람이 없어서 시를 쓰고, 말이 하고 싶어서 시를 쓴다.

 

    아무하고도 말이 안통해서 종이 위에 마음을 그림 그리기도 하고, 서러워서도 눈물을 펜 끝에

묻힌다. 우는 영혼을 달래며 정신을 가다듬느라고 쓴다. 불편 부당한 일을 고발한 시도 많이 보았다.

좋은 세상 만들고 싶다는 꿈 때문에 쓰기도 한다.

 

    가장 정직한 말을 하고 싶을 때 시를 쓰는 것은 아닌가. 사랑스러운 것들을 잃을까봐 시에 담기도

하며, 가버린 사랑을 슬퍼해서 노래하기도 한다. 죄짓지 않으려는 다짐을 쓰면 시가 되지 않았을까.

그리운 사람을 부르는 목소리는 시가 아닌가.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싶어 시를 쓸 뿐만 아니라 없는 것을 있게 만드느라고 시를 쓸 게다.

    분노를 삭이기 위해 조용히 흰 종이 위에 기도를 담지는 않았을까. 절망을 빗질하여 희망을 만들

기도 하며, 희망이 날아갈까봐 종이 위에 감금하기 위해서 씀도 물론이다.

 

    진실의 확인이 시 속에 있을 것이며 배가 고파서 시를 먹었으리라.

    사람들이 싫어서 시를 사귀는지 모른다. 사람들이 좋아서 그 사람살이를 시에 얹기도 할 것이다.

 

    가슴이 시려서 시로 불침을 놓았을 것이며 죽고 싶어 유서처럼 쓰기도 했을 터이다.

살고 싶어 지른 비명이 때론 시가 된다.

마음이 들어가 오래오래 살 집을 짓고 보니 시였음이 분명하다.

     

    그런 것이 다 시 쓰기일 것이라고 선희는 그렇게 믿고 있었다. 외롭고 슬프고 아픈 영혼을 달랠

수만 있다면 선희는 꼭 시를 써야겠다고 간절한 염원을 품었다. 세상 눈물, 근심, 탄식이 없는 곳,

내 아버지 집엔 거할 곳이 많다고 성경에는 그렇게 좋은 말이 있긴 하지만 그 선택은 스스로의 몫이

아니었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에 감동하는 선희의 신앙은 꼭 어떤 성경구절이나 틀에 박히기 보다 예수

라는 이름이 이 땅에 상륙하기 이전부터 우리 조상님들이 대대로 교훈 삼아 살던 순천자흥

역천자망(順天者興 逆天者亡)이라는 식의 구식 투를 좋아해서,

 

    마지막엔 불가능으로 끝날 게 뻔한 노릇이지만, 가능한 한 하늘의 뜻을 거스르지 않으려 했으며,

목숨이 억만 년의 세월 속에 한 알의 모래알이라고 보았을 때, 그 작은 모래알 속에 박혀있는 고통인

들 또 얼마나 작을 것이냐고… 그렇다면 그 작은 고통 쯤 못 견딜까보냐고 자신을 위로하며 타일렀다.

 

    고통은 남과 나누어 질 수 없는 나만의 무게이며 질량이며 나만의 십자가이다.

하지만 모래알 속에 있는 것 정도라면 짐이 가볍다고 해야 옳았다. 선희가 자꾸 모래알이 되어 작아

지니까 자기의 존재는 보이지 않게 되고 세상이 보이기 시작했다.

 

    남이, 이웃이, 이웃의 일들이 선희 앞에 열려 왔다.

나보다 더 외롭고 더 슬픈 사람, 더 아픈 사람, 더 배고픈 사람, 더 억울한 사람, 힘든 사람...

그런 사람들에게 비하면 자기 고통 쯤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모래알 속에 있는 외로움인들, 슬픔인들 바늘로 찌른 자국만 할 것인데 왜 못 견디랴.

그래서 사람은 자기가 결심한 만큼 행복해진다고 하는가 보았다.

모래알  

    그 때로부터 선희는 키가 작아져서 이름 없는 것들을 만나 친구가 되었다.

말없는 자연속엔 친구들이 많았다. 사람 사이에서 찾지 않아도 되었다. 이름 없는 풀잎과 이야기하고,

밤하늘 별들의 노래를 들으며, 강가의 돌맹이와 눈 맟추며, 산기슭에 엎딘 바위와 손 잡으면서

드디어 선희는 자유를 찾기 시작했다.

 

    하느님의 눈치를 살필지언정 사람이 임의로 재는 잣대를 외면하기로 했다.

사람들은 각자 자기만한 크기의 자를 들고 사람을 재려고 들었다. 그들의 자로 재기로 말한다면 선희

는 모든 게 미달이었다. 그래서 그들과 나란히 설 수 없었다.

소외된 지역에서 외로움은 괴로운 일이지만 그 속에 자유는 귀중한 보배였다.

 

    비는 어느 새 그치고 TV도 다시 나오기 시작했으며 그 며칠 사이에 하늘은 다시 푸르러졌다.

뉴스에 딸려 나오는 소식은 물치 쪽에 산사태가 나서 사망한 사람이 많고, 부상자가 병원으로 이송

되었다고 했다. 바다와 하늘이 천지창조 이전처럼 엉기어 있더니 점점 제 빛을 찾아가고 있었다.

 

    하늘은 하늘이 되었고 바다는 바다로 돌아왔다. 가을이었다.

    한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하여 천둥이 먹구름 속에서 그렇게 울었나 보다고 노래한 시인이

있듯이, 이렇게 가을이 오기 위하여 비는 그렇게 억수로 쏟아졌나 보다고 그녀도 읊어보았다.

 

    홍수는 다리의 허리를 잘랐으며 센 물살 밑의 큰 돌들도 자리를 옮겨 앉았다.

뿌리가 든든치 못한 나무들은 이방인처럼 정처 없는 길을 떠나야 했다.

가을은 많은 대가를 치르고야 맞을 수 있는 귀한 손님인가 보았다.

 

    가을이었다. 선희는 가을의 문턱에서 민호를 기다렸다. 언젠간 오겠지. 오리라. 오는 것이다.

그런데 그는 정말 돌아왔다. 민호가 돌아온 것을 방에 있던 선희는 음악소리로 알아차렸다.

언제나 그렇듯이 아침에 슬며시 돌아왔구나!

    가을

    며칠만에 돌아온 것이냐고 선희는 손가락을 꼽아보았다.

그가 어디에서 무얼 하다 왔는지 상상이 미치지 못했다. 홍수 탓으로만 돌리리라.

전화도 불통이었으니까. 아니면 소식을 보내왔겠지. 그 여러 날의 부재 중에…

 

    방안에 우두커니 앉아서 천정을 응시하던 선희의 귓속으로 쟝크로드 브레리의 트럼펫 소리가

잠입해 왔다. 니니 롯소의 트럼펫 곁들인 노래도 들렸다. 그래서 민호가 돌아온 것을 저절로 알게

되는 것이다.

밤 하늘을 가르는 듯한 트럼펫 연주가 저토록 가슴 저리게 아름다웠던가 기억을 더듬었다.

 

    자꾸 듣고 싶은데 그가 알아서 들려주니 다행이라 여겼다.

모든 것이 새롭다는 것은 이상한 변화였다. 민호는 아름다운 정서의 근원이 되는 특별한 부적을

차고 있기나 한 것인가. 민호로 하여 꽁꽁 앓으면서 선희는 마른 목을 축여주는 샘물의 근원을

마음 속에 파 두었기 때문에 이제 그가 떠나가도 괜찮다고 초연해 했다.

 

    하늘에 구름 한 점이 흘러 들어왔다가 사라진다 해서 하늘이 같이 없어질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는 오고 싶으면 오고, 가고 싶으면 떠나가는 한 줄기 바람이었고 한 점 구름으로 남을 뿐이었다.

 

    날씨는 싸늘해 오고 있고, 과일에 단물이 배이며 알찬 곡식들이 더욱 여물고 나면 낙엽이 떨어

지듯이, 모든 것은 제 갈 길을 찾아 떠나면 그 뿐이리라. 하지만 갈 때 가더라도 그렇게나 기다리게

만든 민호가 야속했다. 어떻게 말을 시작 해볼까.

낙엽    

    선희는 쉐타를 걸치고 그녀의 자리에 가 앉았다. 안락한 현관의 소파 위 그녀의 지정석… 밖으로

나갈까 안으로 들어갈까 망설이게 되는 그 자리 현관 쏘파 위가 선희의 지정석이었다.

 

    아침 신문을 들치며 한 잔의 커피를 들고, 어떻게 열려갈지 모를 뿐더러 어떻게 스스로 열어가야

할지를 모르며 하루를 내다보던 그 자리에 앉으니 그런 대로 편안했다. 홍수의 악몽이 아직 사라진

것은 아니지만 다행이라고 말하기엔 죄송한 대로 홍수는 선희네를 비켜 갔다.

 

   불행은 우리 인간들이 바라지 않는 기괴한 동반자일 뿐이다. 그렇다면 떼어 보내려고만 하지 말고

그 반쪽의 동반자를 사랑하는 일에 익숙해질 필요가 있다.

불행을 이기지 못하는 한 더 큰 불행이 기다릴 것은 뻔하니까…

 

    그러므로 수해를 입은 사람들은 당장 피와 땀으로 자기의 엉망이 된 삶을 다시 일으켜 세우기에

용기를 내어야 하리라. 그래 용기를 내자고 선희는 스스로에게도 조용히 타일렀다.

 

    세수한 듯 맑은 설악의 얼굴이 보고 싶어서 선희는 마당으로 내려섰다.

시작과 끝남의 사이에 있는 진행 중에 악몽은 꾸지 않기를 소망하는 게 인간의 속성이지만,

선희는 악몽 같은 한 여름 속에 숨어있는 보석을 찾은 감격이 있었다.

                                                                                 (계속)



   메모
추천 소스보기 수정 삭제 목록
다음글 : 이화국 장편소설 <꿈꾸는 설악> 연재 61회 (2010-05-13 06:48:41)
이전글 : 이화국 장편소설 <꿈꾸는 설악> 연재 59회 (2010-05-08 12:26:58)

[특별공지]댓글에는 예의를 지켜주시기 바랍니다. 특히 부지불식간에라도 작가의 기분을 상하게 하거나 사기를 꺾지 않게 각별한 유념 부탁드립니다. 글방의 좋은 분위기 조성을 위한 목적상, '빈정거리는 투'나 '험담 투'류의 댓글 등 운영자가 보기에 좀 이상하다고 판단되는 댓글은 가차없이 삭제할 것임을 미리 알려드립니다. 그것이 한국문학방송의 가장 큰 운영방침입니다. 비난보다는 칭찬을! 폄훼보다는 격려를! (작가님들께서는 좀 언잖은 댓글을 보시는 즉시 연락바라며, '언제나 기분좋은 문인글방'을 위해 적극 협조바랍니다. "타인의 작품에 대한 지적은 함부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감상차원의 댓글도 아주 조심스럽고 또 조심스럽게! & 겸허한 자세로~!" 항상 타인의 입장을 먼저 배려하는 미덕을 가지십시다. 기타 (작품 또는 댓글 중)욕설 또는 저속한 언어, 미풍양속에 반하는 표현 등의 글도 삭제합니다.
◐댓글 말미에는 반드시 실명을 밝혀주시길 바랍니다. 실명이 없는 댓글은 무조건 삭제합니다.
 
경북도청 이전기념 전국시낭송경연대회
제2회 ‘박병순’시조시인 시낭송 전국대회 / 접수마...
문학방송으로 연결되는 96개의 핫 키워드급 도메인 / ...
 
사이트소개 개인정보보호정책 이용약관 이메일주소무단수집거부 알립니다 독자투고 기사제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