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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화국 장편소설 <꿈꾸는 설악> 연재 56회
2010-05-08 12:18:46
38hwakook

조회:1366
추천:110
소설 <꿈꾸는 설악> 연재 56회|시와 소설 / 이화국

 

 그랬었구나! 선희는 다만 그 교장이 여자를 데리고 논 일을 알았으므로

  그래서 그 교장을 경멸한 것이라고만 짐작했었다. 어쨌던 타락한 어른들이 그토록 무참히 너를 모욕

했다니 단죄 받아 마땅한 일이라고 선희는 민호를 벌써 편들고 있었다. 대신 사과라도 하고 싶었다.

 

 “카메라를 찾지 못할 경우에는 나를 의심한 너희를 죽이든가, 내가 이 자리에서 죽어버리고 말겠다.

이러잖아요? 하이구.” 

    이군은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었다.

  “그래서?” 

    선희가 말 끝을 채근했다.

죽이겠다 

  “너무 단호했기 때문에 의심을 할 여지가 없었죠. 주인이 각도를 바꿔서 궁리를 했어요. 관광객

일행이 아침 식사 후에 산으로 올라간 사이 스페어 키로 방을 열고 들어가 손님 가방을 모조리 열어본

겁니다. 같이 온 일행 중 한 사람의 가방에서 카메라가 나왔죠. 어디서 찾았다고는 말 안하고 주인에

게 돌려줬어요. 전에도 그런 일이 있어서 경험이 바탕이 된 것이랍니다.” 

 

 “세상에, 그런 일도 있구나! 같이 온 일행의 물건도 훔치는구나. 쯧쯧쯧.” 

“사모님, 한 잔 더 받으십시오. 사실 우리는 사모님이 아주 좋으신 분이라고 둘이서 얘기하곤 해요.

우리 같은 놈들 인격적으로 대해주는 사람 별로 없거든요.

참, 민호한테 대학 가라고 하셨다면서요?” 

 

  “권해 봤지.” 

  “잘 보신 겁니다. 대학 들어가려다가 바나나를 두 번 탄 낙방 동기생들인데 저야 핸디캡이 있는 놈

이지만 이 친군 지금도 갈 수 있거든요. 얘네 형님이 큰 회사를 갖고 있는데 한 자리 준대도 안 가는

거에요. 사모님께서 얘 사람 좀 만들어 주십쇼.” 

 

    민호는 눈을 감고 석고처럼 앉아 있기만 했다. 그런 모습에서 선희는 항상 당황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왜 하필 신학대학을 가라셨나요?” 

 

  “으응, 꼭 그러란 의미는 아니었어.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 했다는 싯구를 베껴 놓았길래. 그렇게 살려면 그 길이 첩경이겠다 싶었지. 그냥 가볍게

말한 거야.” 

 

    이군이 고개를 끄덕이다가 눈 감고 앉은 민호를 돌아보았다.

  “야, 그럴려거든 술이나 왕창 마시고 자뿌러져 잠이나 자거라. 너 그 카메라 건으로 여기 다래

모텔까지 온 거 천만 다행이다. 나도 자운 모텔로 옮기기 잘 했고 말야.

먼저 그 놈의 집은 인간성들이 나빠.”

    인간성

    선희는 거느리는 종업원이 주인을 무섭게 평가하는 말에 속으로 놀라면서 생각은 민호에게로만

쏠렸다. 그랬었구나. 죽은 애인의 환영을 찾아 밤마다 네가 나갔던 것이로구나!

 

 “사모님, 쟤가 저러다가도 말이죠. 산에 간다고 하면 벌떡 일어나요. 히히 한 번 해 보십쇼.” 

   밤은 사색의 어머니다. 선희는 밤에 보는 소공원은 어떨지 궁굼했다. 낮에는 민호와 더불어 나란히

걸어보지 못 했지만 아무도 보는 이 없는 밤이라면 민호랑 같이 걸어보고 싶기도 했다.

 

  “정군, 우리 산에나 같이 가볼래? 지금이 밤 두 시라... 이런 시각에 산에 간다는 일은 드믈겠지만

아주 멋이 있을 것 같애.” 

  “네 좋아요. 산은 밤이고 낮이고 다 좋아요” 

 

    언제 조는 듯 앉아 있었느냐 싶게 성큼 일어나 양말을 꿰기 시작했다.

  “사모님, 얜 말이죠. 괴상한 게 또 하나 있어요.” 

  “그게 뭔데?”

 

  “염복이 터졌는지 여자들이 얘를 한 번만 봤다 하면 홀딱 반해버리는 거에요.

아 한 번은 왕실 싸롱을 같이 갔었는데 내가 먼저 삶아논 미숙이란 년이 민호만 넘보겠죠.

아마 여기로도 수없이 전화가 왔을 겁니다. 나한테도 한동안 그랬으니까요.” 

 

  “그래 맞아. 보통 밤 두 시에 걸려 오더군”. 

  “맞아요. 꼭 그 시간에 술 처먹고 전화 하죠.” 

    선희는 미치고 환장 하겠네. 아이 신경질 나. 하던 여자의 목소리를 기억하고 있었다.

염복    

  “사모님께서 잘 보셨어요. 민호가 신학대학을 가서 목사가 되던가, 신부가 되던가 해야지 안

그러면 숱한 여자들 상사병에 걸려 절단나는 거 불 보듯 뻔해요.” 

    선희는 가슴이 뜨끔했다.

 

     자운 모텔 형님이 여자 수난상이라던 말의 의미를 알 것 같기도 했다. 그런 일도 있는가?

설마 이군이 들어보라고 하는 소리는 아닐테지…

 

    사랑의 비극은 있을 수 없다. 오히려 사랑이 없는 곳에 비극이 있는 것이지.

그러므로 내놓고는 아니라도 누군가를 사랑함으로 열린, 미처 체험하지 못했던 한 세계를 경험하면서

선희는 사랑의 아름다움을 노래할 수 있게 된 일을 감사했다.

 

    그렇더라도 자기 비밀의 보물창고를 누가 엿보아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절대로.

    주방장은 아들을 재우러 간 후 함께 잠이 들었는지 돌아오지 않았다. 그래서 이군과 민호, 선희

이렇게 셋이서만 함께 일어섰다. 날씨는 무던히 흐려 있고 달도 별도 없는 밤이었다.

 

    선희는 이게 무슨 치기냐고 속으로 혀를 찼다. 이게 무슨 만용이냐고 자문했다. 현관을 조용히

나서서 대문을 통과하여 청봉교를 건넜다. 남의 담을 몰래 넘기로 모의한 세 사람의 작은 도둑들

같아보였다. B지구를 지나면서 파크 호텔이 뒤로 밀려났다.

 

    갑자기 주위가 먹물을 푼 것 처럼 어두웠다. B지구를 지날 때는 그래도 상가에 드믄드믄 켜진

불빛이 있어 덜 어두웠던 모양이었다. 날씨가 흐려 별 한 개도 안 보일 뿐더러 지나가는 차량도 한

대 없었다. 바람조차 없어서 무한한 침묵만히 겹겹이 쌓인 길을 가노라니 무섬증이 일었다.

     침묵

    좌측으로 선희가 서고, 그 옆에 민호가 섰으며 그 다음에 우측으로 이군이 섰는데 인도로 걷던

선희는 그 둘을 차도로 밀어부치며 행길 복판으로 내려섰다.

달리는 자동차들이 끊겼는데 굳이 좁은 인도를 고집할 이유가 없었다.

 

    선희는 곁에 선 민호의 팔을 붙들고 늘어지고 싶었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산은 무슨 큰 모의를

하는 듯 엎드려 있었다. 짐승처럼 엎딘 모습이 순간에 덮칠 기세로 다가왔다.

먹이를 나꾸기 위하여 잔등을 높이 솟구치며 두 발을 모아 일격을 가하려는 짐승 같은 산.

 

    그 잠시의 뜸들이는 숨고르기가 끝나면 산은 포효할 것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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