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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화국 장편소설 <꿈꾸는 설악> 연재 55회
2010-05-06 21:29:18
38hwakook

조회:1243
추천:92
소설 <꿈꾸는 설악> 연재 55회|시와 소설 / 이화국  

 

  “술 취하지 말라거지. 마시지 말라는 얘기가 아니거든.

이군이 정군에게 소주를 준비 하라던데 자운 모텔도 우리처럼 오늘 손님이 없나 전화 해봐.” 

     소주

     민호가 푸시시 웃었다. 이군과 함께한 작은 음모가 탄로나서 열적은 듯이…

    주방장도 공연히 신이 났다. 발걸음 가볍게 고기와 상추를 사려고 상가에 나갔다 오고 된장, 마늘,

풋고추도 준비하여 넓다란 쟁반에 담아 일층으로 올려 왔다.

 

    민호는 카운터 방에 신문지를 넓게 펴고 개스 버너를 옮겨와 그 위에 놓았다. 삼겹살 파티가 열릴

참이었다. 선희는 관광객 없는데 어떻게 술을 마실까보냐고 하던 민호의 예절 바른 마음을 놀려주고

싶어서 옥상 구석방으로 올라가 비장했던 머루주 항아리를 통째로 들고 내려왔다.

 

    처음엔 남편인 김은태를 위해 특별히 산머루를 구해 담근 것이지만, 이제 김은태는 술을 거의 끊어

가고 있었기 때문에 남아 있었던 것이다. 이군이 벌떡 일어나더니 선희를 향해 넙죽 엎드려 절을 했다.

  “사모님, 아니 중전마마, 감사 감사 하옵나이다.” 

 

    모두들 유쾌하게 웃었다. 모두래야 이군, 정군, 주방장과 그 아들 대식이, 그리고 선희였다.

    술이 한 순배 돌아갔다. 머루주 빛깔은 참으로 선정적이었다. 맑은 유리잔에 진액으로 부어지는

것을 보니 마시기보다는 바라보기만 해야 더 좋을 듯 했다.

 

    선희는 머루주와 민호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고혹적인 그 색깔과 맛이 닮아 있을 것 같았다.

음미해보고 싶었다. 술잔에 입술을 대고 있는 민호의 입술은 선정적이었다.

 

    이군이 선희의 잔에 머루주를 채웠다. 민호도 한 잔 부었다. 금식을 끝내자 술을 마시다니 나의

기도는 어디로 갈 것이냐고 속으로 한탄하면서 잔을 들었다. 지금 온전한 정신으로 살고 있는지

의문인 채로 다른 어떤 방법의 길은 떠오르지 않았다.

한탄    

   잔을 아주 천천히 비웠다. 선희는 쉽게 무너져 내리려 했다. 마냥 취해버리고 싶다는 유혹도 들었다.

   맑은 정신으로 긴장된 나날을 보내는 속에 잠시의 자유방임이 가져올 유익함이 없지 않을 것 같았다.

 

   음주의 핑계를 그렇게 대고 있었지만 부지런히 잔들이 오가는 사이에도 선희는 마시는 척 정도 이외

는 사양하고 있었다. 선희가 입을 열었다.

  “이군, 정군, 자네들은 어떡하다 설악산까지 오게 되었어?” 

 

    물으면서 앞서 있다가 나간 조군을 떠올렸다. 조군이 어느 날 자기 발로 들어왔는데 그냥 밥만

먹여주고 재워달라는 것이었다. 도난을 염려할 특별한 것이 없었음으로 있으라고 하였다.

첫째 그의 인상을 보았을 때 아주 착하게 생기고 체구도 별로 크지 않은 그런 사람이었다.

 

    인상이 그의 주민등록증이 된 셈이었다. 한집에서 밥 먹으며 사는 나날이 이어졌다. 무탈하게 두

해를 잘 넘어갔다. 알고보니 조군에게는 사랑하는 여자가 있었는데 결혼하려고 하자 조군이 부모가

없는 고아라 하여 반대에 부딫혔다.

 

   결국은 헤어지고 설악산으로 자살이나 하려고, 이왕이면 아름다운 산에서 눈을 감으려고 산을 찾아

왔는데 그 일이 쉽지 않더란다. 어느 모텔에 묵으면서 돈은 떨어지고, 모텔의 생활상을 알게된 그는

생각이 바뀌어 우선 아무데나 먹고 잘 곳을 찾다가 선희네 다래모텔로 굴러오게된 것이었다.

 

     조군은 그나마 다행이었다. 한 인생을 어떻게 살아왔는지 알 수 없는 사연을 지닌 사람들이 손님을

가장하여 모텔을 찾아들었다가 그가 묵은 방에서 자살한 시체로 발견되는 경우도 가끔은 있었다.

참 어이 없게도 이래저래 설악산 자락 사람살이에서는 많은 일들이 벌어졌다.

 

    이군이 얼른 말을 받았다.

  “그거야 이 녀석한테 물어봐야죠.” 

    선희는 술힘을 빌어 민호를 뚫어지게 직시했다. 사람을 정면으로 바로 쳐다본다는 것이 그렇게나

용기가 필요한 줄을 선희는 처음으로 알았다.

 

    술힘이라고는 하지만 선희는 취한 척 취하지 않고 있었다. 민호의 눈을 응시했다.

처음 보는 것 같은 낯선 얼굴이 거기에 있었다. 그에게서 나올 다음 말이 무척이나 선희의 관심을

끌었다. 민호는 어지간히 취해보였다.

 

    원래가 몽롱한 안개를 끌고 다니는 사람이지만 두 눈이 엷은 베일에 가리운 듯 아리숭했다.

주방장이 일어서 나갔다. 대식이가 잠이 들어 뉘우고 올 모양이었다.

분위기만 무거워지자 이군이 대신 입을 열었다.

 

  “사모님, 얘가 말입니다. 몹쓸 놈의 연애를 했다 이겁니다. 영아라는 기집애 하고요. 못 이룰 사랑

그런 거 있잖아요. 그런데 하필 저 친구 애인이 설악산 와서 자살을 했다 이겁니다. 경찰 조사로는

그날 갑작스런 소나기가 심하게 퍼부어서 급류에 휘말린 실족사로 나왔는데

저자식은 맨날 자살했다는 거지요.” 

    실족사

   선희는 그 영아라는 민호의 애인이 몰래 훔쳐본 글에서 영아는 이 세상에 없다. ‘불쌍한 영아’ 라고

되어 있어서 무슨 일이 있었던 모양이라고 짐작은 하고 있었지만, 하필 설악산에서 영아가 죽었다는

말을 듣게 되니 놀라웠다. 이군의 말이 끝나자 민호는 자작자음을 하고 있었다.

 

  “저 친구가 하도 설악산 가재서 바람 쏘일 겸 관광으로 왔는데, 여비가 다 떨어져도 돌아갈 생각은

않고 맨날 산속을 헤매는 거에요. 죽은 영아의 영혼이 자꾸 저를 부른다나요.” 

    민호는 아주 조용히 한숨을 쉬었다.

 

  “그래서 할 수 없이 차비라도 벌자고 묵고 있던 모텔에서 일자리를 구했죠.” 

  “그래서는?” 

    그때 민호는 방 한 쪽 벽을 기대 주욱 쌓아올린 이불더미에 얼굴을 묻었다.

 

  “그래 그 집에 있는데 저 몽유병 앓는 저 치가 밤마다 없어지는 거에요. 낮이든 오밤중이든 꼭

소공원에라도 갔다오는 겁니다. 저야 알고 있었죠. 한데 그날은 사고가 났어요.

 

    관광객 한 명이 카메라를 잃었는데 초저녁에 술이 취해 자다가 새벽녘에 물 마시러 일어났다

소지품을 챙겨보니 카메라가 없더라죠.” 

선희는 타고 있는 고기를 뒤집으며 자기 앞의 잔을 천천히 비웠다.

술이 올라도 귀는 점점 더 밝아졌다.

새벽녘  

  “난리가 난 겁니다. 비싼 거라면서 말이죠. 하필 그는 사진 작가였다잖아요. 그때 민호가 멍해서는

어슬렁어슬렁 들어오는 거에요. 쟤 사연을 저 말고 누가 알겠습니까? 딱 의심 받기 알맞았잖아요.

어디다 카메라 숨기고 온 걸로 말이죠. 그때 일이라니 생각할 수록 끔찍합니다.” 

 

   이군은 화가 난다는 듯 목청을 높였다.

 “야, 너 술 한 잔 따라라. 이렇게 좋은 술 놓고 썩은 생선처럼 왜 또 한물 가기 시작하냐? 사모님께도

한 잔 올리고 나도 한 잔 주라. 사모님 감질나 죽겠네요. 커피잔 없습니까?” 

 

    이젠 커피잔으로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 술이 얼마 남지 않자 머루를 건져내고 커피잔을 아예 항아

리에 집어넣어 퍼 마시기 시작했다. 선희의 얼굴은 엷게 물든 머루주 빛깔이었다. 귀밑이 화끈거려

주기가 가만가만 오르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민호야, 하아 나는 너 그렇게 무서운 건 그 때 처음 보았다.” 

  “얼마나 무섭길래?” 

    한없이 부드러워 보이는 사람에게 어떤 무서운 기질이 숨어 있었단 말인가.

 

    원래 순해 보이는 사람이 화나면 더 무섭다고 하는 소리를 들은 일은 있었다.

  “등산 칼을 쫙 펴든 거에요. 자기 가슴에 들이대는 거에요. 입술이 새파래서는 발발 떨면서요.

누구 한 사람 죽는구나 싶었죠. 아 그 장면 생각만 해도.” 

 

  “칼을?” 

    선희는 호기심에 얘기가 빨리 진행되었으면 싶었지만 이군은 술 마시느라고 쉬었다.

    그 사이를 민호가 손으로 제지했다.

 

 “그만 해, 시시한 얘기.” 

 “시시하다고? 네 덕에 설악산 구경은 원도 한도 없이 했다만 임마, 끝판에 여관 뽀이질이 다 뭐냐?

   그래 놓고는.”  

    뽀이질

    놀라웠다. 민호에게 그런 구석이 있었던가. 자기의 정당함을 주장하기 위해 칼을 뺐어야 하다니…

    슬퍼하기 위해 태어난 사람 같던 사람의 또 다른 일면이 엿보이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교장을 향

하여 아저씨라고 소리 칠 때 보다는 덜 놀래졌다. 선희는 생각난 김에 물어보았다.

 

  “정군, 그때 교장 선생한테는 왜 그렇게 화를 냈던 거야?” 

    “...... ......”

  “말 좀 해보라니까.” 

 

  “저는 사모님이 그런 작자 한테서 모욕 당하는 일을 정말로 참을 수가 없었어요.”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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