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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화국 장편소설 <꿈꾸는 설악> 연재 53회
2010-05-06 21:22:12
38hwakook

조회:1331
추천:100
소설 <꿈꾸는 설악> 연재 53회|시와 소설 / 이화국  

 

    선희는 민호의 귀에 대고 그렇게 속삭여주고 싶었지만 모든 말을 입속으로 삼켰다.

    선희는 삼킨 말의 무게 때문인지 금방 자기 가슴이 돌로 눌려지는 듯한 답답함을 느꼈다.

길고 긴 동면에 벌써 들어선 듯이 앞이 캄캄했다. 어떻게 이별을 할거나.

어떻게 이별을 치뤄내야 하는가 말이다.

동면    

    선희는 생활도 인생도 모두가 정지해버리는 설악산 사람들의 그 긴 동면을 누가 알 것이냐고

속으로 한탄했다. 너 나 없이 두더지처럼 엎디어 봄을 기다리는 그 긴 긴 시간을 견디는 사람들의

마음을 알아줄 사람은 아무데도 없었다.

 

    봄이 오면 꽃은 피겠지만 떠난 사람은 돌아올 기약이 없을 것… 바로 지금이 헤어져야 할 시간인

듯 선희는 깊은 슬픔에 빠져들고 있었다.

    민호가 천천히 몸을 움직여 돌아섰다. 그의 눈이 불타고 있다고 느껴졌다.

 

    한 발 다가섰다. 선희는 한 발자국 뒤로 물러섰다. 어차피 내가 어른스러워야 하지.

선희는 어색하게 경직된 분위기를 깨뜨릴 양으로 입을 열었다.

  “어젯 밤 일은 내가 사과할게. 정말 미안해. 민호를 찾는 여자들이 너무 많다 보니까. 내가 좀

질투가 났었나봐. 유치하게.” 

 

    용기를 내어 농담처럼 진한 마

음의 일부를 내보였다.

  “나도 민호를 좋아하는 여자들 중 한 사람이란 걸 모르진 않겠지? 그렇다면 질투 하지 않겠어?” 

 

    정말 있는 힘을 다 짜내어 한 말이지만 선희는 남의 일 얘기하듯, 심드렁한 척 웃음을 섞었다.

아주 무심한 척 했다.

    “……”

 

    민호는 아무 말 없이 서있기만 했다. 무엇을 생각하는 중일까.

  “말 좀 해봐. 내가 말했으니 뭐라고 답이 있어야지.” 

  “잘 모르겠어요. 그저 그저 마음이, 가슴이 아플 뿐입니다.” 

  말 좀 해봐

    한 손으로 자기 가슴을 짚으면서 고개를 푹 숙였다. 민호는 정말로 아주 괴로워 보였다.

도대체 서울에서 그에게 무슨 소식이 날라져 왔던 것일까. 민호의 눈이 회색 장막으로 덮여있었다.

눈물이 글썽해 보이는 것이 눈이 커서 그런지 선희는 매 번 그렇게 느껴졌다.

 

    사실 선희로서도 민호가 그렇게 마음이, 가슴이 아프다는데 대해서는 알 길이 없었다.

엄마를 잃은 어린 아이의 슬픔이 저럴 것인가. 선희는 덩달아 자기 가슴이 미어지듯 저려왔다.

 

    사랑하는 사람의 아픔을 본다는 것, 자기가 진 짐 무게에 한 짐 더 올려놓는 것 같았지만 그것이

무엇인지 알기만 하면 다 해결해 줄 수 있노라고 말하고 싶었다.

  “무슨 남자가 그래. 무엇이 문제인진 모르지만 이 세상엔 그렇게 죽을 일도, 그렇게 살 일도 없는

거 아닌가?” 

 

    선희는 무슨 철인(哲人)처럼, 세상을 달관한 사람들의 상투어를 뇌이며 흡사 외할머니가 하듯이

민호의 등을 토닥여 숲을 벗어난 뚝방으로 밀어올렸다.

  “누가 보면 오해 받아. 어서 가자.” 

 

   선희는 그를 집으로 돌려 보내고 그녀야말로 주저앉아 눈물을 쏟았다. 공연히 슬펐다. 뭐가 뭔지 알

길이 없었다. 그저 아리숭했다. 맥도 없었다. 밥도 먹을 수가 없으며 심장은 늘 방아를 찧고, 일은 손에

잡히지 않았다. 심한 죄책감으로 죽고 싶다가도 남모를 환희의 물결에 휩싸이기도 했다.

환희    

    기존의 가치는 붕괴 되어가는데 그 자리에 신뢰할 수 있는 다른 것으로 채우기엔 모든 것이 너무나

미흡하고 불완전했다. 선희는 이전에 키우면서 길들여온 자기가 아닌 또 다른 자아의 형성으로 압도

당하고 싶었다. 넋을 잃을 만큼 허물을 벗고 새로 태어나고 싶었다.

 

    거기엔 촉매가 필요했다. 의식주의 해결로만 만족하며 살아가던, 아무런 감동도 없이 나태한 일상

에서 벗어나는 삶의 기폭제가 필수였다. 그것이 민호로 다가온 것은 아닐까. 제발 그랬으면 좋겠다.

사랑이 기적을 낳아줬으면 하는 바람이 간절했다.

 

    그래야만 사람들은 사랑을 신성하게 여길 것이다. 그리고 앞으로도 많은 사람들이 사랑의 대열에

겁없이 당당하게 뛰어들 것이다. 사랑이 영혼과 육체의 마지막 진리여야 한다면 들끓는 육체의 욕망

을 외면해야 아름답다는 찬사 정도는 쉽게 외면할 수 있는 용기를 키우리라.

 

    선희는 생각 속에 저지른 잘못 조차 깨끗이 닦을 요량인 것처럼 개울물에 한참 동안 손을 씻었다.

손을 씻다가 말고 물속을 가만히 드려다 보았다. 이 물은 어디서 흘러와 어디로 흘러가는 것일까.

생각하는 중에 아주 색깔이 선명하게 곱고 모양이 예뻐보이는 돌맹이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건져 올렸다. 손에 쥐고 한참을 드려다 보았다.

   건져낸 돌맹이는 물속에 있을 때보다 작아 보였으며 물기가 마르자 선명하게 곱던 빛깔이 희미하게

변해버렸다. 그 순간에 선희는 아름답다 하여 가까이 당겨 손에 쥐는 일보다는 멀리 두고 바라보는

게 더 아름답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그녀는 그 순간 민호를 떠나보내야 한다는 지혜를 얻은 것 같았다. 사람이 터득해 알아야 할 일들이

자연속에 스승으로 숨어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사람이 그렇게 쉽게 자연 속에서 자연이 하는 말을 알

아듣는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지혜 터득

    물은 아주 싸늘했다. 해가 서산으로 기울고 있었다. 붉은 놀은 무엇이며 저 맑은 물 밑의 돌들은

언제부터 저기에 자리했던 것일까. 바람은 어디서 날아오고 있나.

바람에 나무는 왜 놀아나야만 하는가. 산은 한 곳에 붙박여 앉아서 무슨 말을 쏟아내고 있나.

 

    할 말이 다 끝나면 자기 갈 곳으로 돌아가는 것인가.

바위는 엎드려서 끈질기게 무엇을 기다리고 있나. 말없이 인내를 키우고 있는 중인가. 벌을 받는

것인가. 의문 아닌 것이 없었다. 선희는 한 없는 희의에 빠졌다.

 

   시원한 해답을 찾을 길 없는 무수한 질문 앞에서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러나 선희는 침묵일 수 밖에

도리가 없었다. 생각이 많은 사람은 이래서 저절로 과묵해지는 모양이었다. 선희는 언젠가부터 재잘

거리던 말수가 적어졌지만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태양은 왜 날마다 떴다가 날마다 지는 것일까. 지려면 왜 또 떠오르는 것일까. 인생도 졌다가 새

얼굴로 떠오르는 태양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그렇다면 실패를 거울 삼아 후회 없는 삶을 멋지게 살

것 같았다.  순간에 스친 생각들을 털어버리듯 머리를 가로 흔들며 서쪽으로 선혈처럼 번진 노을을

바라보았다.

 

    팔짱을 끼고 앉아서 생각만 해가지고는 행복이든 불행이든 아무 것에도 도달할 수 없다는 일

또한 현실이었다. 손 닿는 가까운 일부터 찾아 하면서 천천히 길을 찾아보리라. 처음에는 곤란한

고비가 있을 터이지만 날이 갈수록 수월해 지기도 하겠지.

 

    무릎을 세워 천천히 일어섰다.

                                                          (계속)

행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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