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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화국 장편소설 <꿈꾸는 설악> 연재 52회
2010-05-06 21:19:15
38hwakook

조회:1311
추천:92
소설 <꿈꾸는 설악> 연재 52회|시와 소설 / 이화국  

   선희는 방으로 들어오자 곧 후회했다.

    왜 문고리를 딸깍 소리가 나게 잠갔을까. 수십 개의 빈 방을 놔두고 딴 곳에 가서 자라면서 사람을

밖에 세워두고 그렇게 냉정하게, 그렇게 매몰찰 수 있는 건가.

 

    ‘딸깍’하는 그 문고리의 쇠소리가 민호의 여린 심장을 때리지 않았는지 선희는 자기의 행위가 나이

따위도 잊은 채 옹졸하고 경박하여 스스로를 나무랬다. 잠자리에 들어서도 좌우로 수없이 뒤채면서

깊은 잠에 빠지지 못했다.

 

    개성 없는 일상은 단일한 것이고, 그 단일함의 바퀴는 굴러 다시 하루가 열렸다.

역시 아침에 돌아온 민호는 얼굴을 돌려 선희를 외면하고 있었다. 얼마나 그리워 보고 싶은 얼굴이며

듣고 싶은 목소린데 외면하다니… 가슴이 찢어지는 듯한 고통을 맛보아야 했다.

가슴 찢는 

    여성으로 하여금 죽음을 긍정케 하는 남성과, 남성으로 하여금 죽음을 긍정케 하는 여성과의 만남

속에 명함을 끼워 넣을 수 있는 사람은 누구들인가. 그렇게 절대적이고 완벽하고 전체적이며 운명적

인 순수한 만남과, 만남의 성취 같은 것은 없대도 좋았다.

 

    선희는 다만 민호가 물기 머금은 눈동자로 바라보고, 도톰한 입술로 뭔가 한 마디만 해주면 행복

할 수 있는 일이 될 것을 망쳐버렸다는 자책이 컸다.

 

    사랑하면서 사람은 자랄 것이었다. 그러니까 사랑하다가 사랑을 잃는 것은 전연 사랑하지 않는 것

보다 낫다고 선희는 자기를 타일렀다. 하면서도 한 편으로 부끄러움이 다가왔다.

그것은 선희가 이름 부르는 그녀의 신께와 자신에게와 민호를 향해서였다.

 

    자신의 무능함과 뚫어진 일상을 어떻게 기워가야 할지, 곡마단 같은 연애의 장바닥에 빼앗긴 정신

을 어떻게 수습해서 새지 않는 그릇에 담아야 할지를 곰곰 궁리했다. 행복을 밖에서 찾거나 제 삼자

에게 의지하지 않고, 자신의 내부에 행복의 샘을 파두어야 목마르지 않을 텐데 어느 정도의 참을성과

끈기와 지혜를 키워가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선희는 방에 들어앉아 종일 벽 위에 환등기를 켜 놓은듯, 민호의 환영을 비춰놓고 바라보며 시도

아니고 일기도 아닌 잡문들을 끄적이며 시간을 죽이고 있었다.

 

    그 때 누가 방문을 노크했다. 민호인가 싶어 가슴이 두근거렸지만 그럴 수록에 침착하게 갈앉은

목소리로 누구냐고 물었다.

  “이군입니다.” 

    자운 모텔에 있는 이군이었다. 의외라 싶었다. 문을 열었다.

     침착

  “웬일로?” 

  “민호 어디 갔습니까?” 

  “글쎄 밖에 있는 줄 알았는데.” 

 

  “짜식이 어디로 샜지. 아까 우리 집에 왔었어요.” 

  “그런데? ”

    선희는 대단한 관심을 억눌렀다.

 

  “아주 침울한 낯빛이더니 어디 갔죠?” 

  “침울한 낯빛?” 

    선희는 어젯 밤 있었던 일을 간단히 설명했다.

 

  “여동생이 너무 많은 것 같아서… 내가 좀 노엽게 한 모양이지? 문을 잠갔으니까.

사장님이 계셔서 나도 어쩔 수 없었어.” 

  “걔가 사모님 걱정 많이 했어요. 그 일을 굉장히 후회하고 있어요. 공연히 사모님 기분 언짢게 해

드렸다구요. 근데 정말 그 여자는 친구 동생이래요. 얘길 듣고 보니 저도 아는 애던데요. 민호가 사

모님 뵐 낯이 없대요. 너무 걱정 해요.” 

 

  “그런데 왜 사라져버린 거야.” 

  “걔가 서울서 언짢은 소식을 물어다 준 모양이에요.” 

    그제서야 자운 모텔 이군과 정군이 한 동네 살았다는 얘기를 들은 것 같기도 했다.

 

  “짜식이 늘 거처를 숨기고 다니기 때문에 아는 친구 동생이 마침 설악산 오는 길에 풍문에 들은

대로 찾아본 것이 밤 늦게야 찾아졌다는 거에요.”  

  “그랬구먼.” 

    선희는 고개를 끄덕였다.

풍문    

    “열한 시에 다방에서 만나 얘기하다가 다방이 문을 닫아서 나오니 두 시가 되었더래요. 근데 그나

저나 어디를 간 거지.” 

    선희는 가만히 생각해보니 집히는 데가 있었다.

 

    낮에 한가한 시간에 혼자 슬그머니 없어질 때는 꼭 돌을 한 개씩 주워 들고 오는 거였다. 개울에

갔다 온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사모님이 어려워서 살짝 들어와서는 빈 방에 재워 아침 일찍 보내려 했는데 그만 들켜버렸다는

거에요. 사모님 염려를 무척 하고 있어요.”

 

     민호가 그렇게 말하라고 시켰을까? 여하튼 이제 그만 해도 된다. 그런 이유가 아니라도 좋고,

어차피 선희는 벌써 자기의 잘못으로 돌린지 오래였다.

  “이군, 요 앞 개울에 나가보자.” 

 

  “개울에요?” 

  “글쎄 따라와 보라니까.” 

    집에서 멀리 갈 수는 없을 것 같았다. 구두도 등산화도 제자리에 있고 슬리퍼만 없어진 걸 선희는

알아챘다.

 

    마당을 내려서 대문을 나와 행길 건너 뚝방 밑으로 내려섰다. 아주 맑디 맑은 수정 같은 물이 돌돌

흐르고 있었다. 선희가 이군과 마주 보며 선 자리에서 아래 위를 살펴보는데 어디선가 돌이 한 개 날

아와 개울물로 튀어 들어가는 거였다.

 

    돌이 날아온 방향을 따라 머리를 돌리자 두 번째 돌이 날아 가기 전에 민호를 찾을 수 있었다.

    민호는 흠칫 놀라서 소나무와 무성한 떡갈나무 사이에 앉아있다가 일어섰다.

   떡갈나무

  “새꺄. 넌 왜 오나가나 말썽이니? 찾았으니 난 간다. 저녁에 쐬주 한 병 준비해라. 놀러 내려올게.

사모님 저 갑니다.” 

    이군은 안심했다는 듯 휭하니 사라졌다. 개울 건너 숲에서 뭔가 푸드득 날아 오르는 기척이 났다.

 

    산새인가 보았다. 인기척에 놀란 모양이었다. 서쪽으로 봉화대가 붕긋 솟아보이고 케이블 카

산장도 눈에 들어왔다. 그러고 보니 날씨가 더없이 청명했다. 사파이어 보다 더 푸른 하늘이 온통

보석 투성이로 빛났다. 어떻게 사는지 모르는 사이 입추가 지나고 처서가 지났을 것 같기도 했다.

 

    계절의 변화가 피부로 느껴졌다.

    ‘변덕스런 설악산 날씨에 오늘은 행운의 날 아니니? 이렇게 청명한 것이. 민호야. 정말 행운이야.

너를 만났다는 것은 정말로 행운이지. 신은 내 앞에 왜 너를 내려 보냈을까.

 

    이제 곧 가을이 올 것이고 낙엽이 지면 관광지의 이 설악산 영업도 문을 닫고 나는 떠나야 해.

내 자녀들이 기다리는 내 집으로 가야 해. 그 때는 이곳을 너도 떠나야 해. 그러니까 너는 좀 더 내

가까이 머물러 줘야 해.

 

    남은 시간이 많지 않으니까 말야. 인생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때는 바로 지금 이 순간이란다.

현재의 시간을 놓쳐버릴 때 그것은 바로 인생을 놓쳐버리는 게 아니겠니?

 

    또 다시 되찾을 수 없는 영원한 것을 놓쳐버리는 것이란다.

    그러니까 제발 좀더 내게 가까이 머물러 줘. 남은 시간이 많지 않으니… ’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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