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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화국 장편소설 <꿈꾸는 설악> 연재 51회
2010-05-06 13:11:31
38hwakook

조회:1285
추천:106
소설 <꿈꾸는 설악> 연재 51회|시와 소설 / 이화국

 

19. 돌이 날아온 쪽

 

    정확하게 밤 1시 반이었다.

     현관에서 주인을 찾는 인기척이 났다. 선희는 민호가 열한 시쯤하여 자기 방을 벗어나 어디론가

사라졌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밤 1시 반 

    자유롭게 출입하라는 뜻에서 현관을 잠그지 않고 불을 켜 놓았는데 그래서 손님이 들어올 수 있

었던 모양이었다. 때늦은 방문객이었다. 얼굴 위에 분가루를 두텁게 뒤집어 쓴 젊은 여자를 옆에

세워놓고 한 남자가 방 있느냐고 물었다.

 

    특실로 안내하고 깨끗한 이부자리를 바꿔다 주고, 휴지를 갖다놓고, 재떨이와 식수를 챙겨주

노라 잠시 바빠졌다.

  “타월을 한 장 더 주시오.” 

   이런 일은 원래 뽀이 몫이어야 했다.

 

   노군은 손님이 떠나자 저희 집에 다녀온다고 나가버리고 민호가 없으니 할 수 없는 노릇이었다.

   잠을 깬 바람에 현관 밖으로 내려섰다. 그렇게 바라보는 하늘에 익숙해진지 오래였다. 사방엔

불이 다 꺼져 있고 밤하늘엔 별이 유난히 반짝이며 빛을 발하고 있었다.

 

   선희는 아이 셋을 낳아 기를 때 아이들의 눈동자가 보석 같기도 했고, 별 같기도 해서 우리 집엔

다이아몬드가 여섯 개라고 말한 일을 떠올렸다.

진짜 다이어 반지를 자랑하는 현주 엄마가 다이어가 여섯 개라고 하니까 무척 놀랬었다.

 

    아이들이 보고 싶었다. 고아 아닌 고아 자식들… 살림하며 학교 다니는 맏이 딸아이는 얼마나

고생하고 있는 것일까. 궁핍해서도 그렇지만 귀찮아서 미숫가루만 타 먹는 것은 아닐까.

 

    버릇대로 대청봉 쪽에 눈 주고 돌아서 들어오려는데 민호가 어디선가 나타나 서 있었다.

나무 곁에 서 었음으로 나무로 착각했을 뿐이지 아마 한참 전부터 거기 그렇게 서 있었는지도

모른다. 선희는 현관으로 올라서며 시계를 보았다. 밤 2시.

 

    언제나 처럼 이른 아침에 뽀얀 안개와 더불어 그림자이듯 소리없이 나타날 줄 알았던 선희는

깜짝 놀랐다. 민호는 몽롱하게 서있었다. 술냄새가 나는 듯도 했다.

  “깜짝이야. 어서 들어가. 난데 없이 방 찾는 손님이 있어서.”

 

    민호는 정신이 나간 사람 같았다.

  “어서 들어가자니까.” 

  정신 나간

    말은 없었지만 할 말이 많은 사람 같아서 현관 밖의 의자에 선희가 먼저 앉으며 말했다.

  “앉아.” 

    민호는 고개를 떨구었다. 마당가의 외등을 향해 불나비들이 죽음을 불사하며 달려들었다.

 

    하루의 목숨을 불태우기 위한 마지막 치열함을 불나비들은 저렇게 연출하는 모양이었다.

먼저 죽는 일만이 장렬한 죽음이라도 되는 듯 그것들은 앞을 다투어 불 주위로 몰려들었다.

시간도 잊은 채 몸부림치면서 안간힘을 다하여 날아들었다.

 

    얼마간의 침묵이 흘렀을까. 그때 저만큼 대문 밖 행길에서 한 여자가 이쪽을 보며 행인처럼

지나가고 있었다. 이쪽의 동정을 살피는 듯이 보였다.

  “정군, 저기 좀 봐. 웬 여자가 이쪽을 살피는 모양인데.” 

 

    정군이 한참 있다가 마지못한 듯 입을 열었다.

  “서울서 친구 동생이 왔는데요.”  

    말끝을 흐렸다. 이건 또 몇 번째의 친구 동생이란 말인가.

 

    선희는 단잠을 깨우며 ‘미치고 환장하겠네. 아이 신경질 나’ 라고 하던 그 동생 반열인가 싶어

짜증스러움을 억누르기에 힘이 들었다.

  “그래서요?” 

 

    존대말까지 써가며 짧막하게 따지듯이 말을 받았다.

  “오늘 밤만 재워주십시오.” 

    선희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때 방에서 김은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뭐하고 있는 거야. 안 들어 오고.” 

    선희는 언뜻 결론을 짚어냈다.

 결론    

  “내 마음은 그러고 싶지만 사장님 때문에 안 되겠어. 다른 여관도 얼마든지 있으니까 이거면 방을

구할 수 있을 거야.” 

    좀전에 받은 만 원권 지폐를 꺼내 그대로 건넸다. 민호는 받지 않았지만 선희는 민호의 상의

주머니에 찔러 넣었다. 민호는 머뭇거렸다.

 

  “현관을 잠글까?” 

    선희는 저만큼 서있는 외등의 불빛으로 민호의 얼굴을 읽고자 했지만 술 냄새가 조금 난다는

것 외에는 어떤 변화를 알아차릴 수 없었다.

 

    일사분란함이 없는 그의 태도에 화가 나고, 길에서 오락가락하는 동생으로 지칭되는 여자를

떠올리니 질투인지 호기심인지 이상한 감정의 기류가 밀물져 왔지만,

그것은 곧 연민의 정으로 바뀌었다.

  연민의 정

    "그러나 얘야. 나는 단잠을 잘 수 없단다. 너무 잔인하잖니? 연애가 맘대로라면, 사랑이 뜻대로

라면 나는 절대로 너를 택하지 않았다. 사랑한단 말 한 마디 해볼 수도, 들어볼 수도 없는 어처구니

없는 사이를, 이런 인연을 내가 왜 만들어. 하기사 죄 하나라도 운명 없이는 이루지 못 한다고는 하더

라만 도대체 이게 무슨 운명의 장난이란 말이니. 아아!’

 

    선희는 자기가 참으로 바보처럼 여겨져서 한숨을 내쉬었다. 자녀 같은 사람을 대상으로 하여

벌이는 이건 무슨 유치 찬란한 감정 놀음이냔 말이다.

 

    어떤 사람이 사자에게 쫓겨 깊은 구덩이에 빠졌다. 그 밑에는 커다란 구렁이가 혀를 날름거리고

있다. 그래서 그 사람은 구덩이 중간에 자란 나무에 매달렸다. 그 나무 뿌리를 쥐가 갉아먹고 있는

데도 나무엔 꽃이 피어 있었다.

 

    쫓기던 그는 생명이 경각에 붙은 시점에서도 꽃속에 고인 꿀을 손가락으로 찍어 먹었다라고 어디

에서 읽은 우화였는지 기억이 희미한 채로, 선희는 지금 자기가 바로 죽음의 골짜기에서 꿀에 정신

팔려 있는 바로 그 사람이 자기라고 생각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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