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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화국 장편소설 < 꿈꾸는 설악> 연재 49회
2010-05-05 09:03:46
38hwakook

조회:1215
추천:88
소설 <꿈꾸는 설악> 연재 49회|┃▒ 소설/-이 화 국 ▒┃  

 

    “맞다. 세상사 이치가 하나 좋으마 하나 나쁘고, 한 시절 좋으마 한 시절은 고생이 끼어들

더라. 천주교 신자든동 예배당 신자든동 간에 용서와 사랑이 없으마 뭣에 쓰겄노? 내 말이 맞제?

용서와 사랑이 제일인 기라. 내는 어려운 건 모린다. 용서하고 사랑한다는 것 밖에는… ”

 

  “여부가 있습니까? 아니라면 형님이 제 아우님으로 내려 앉아야죠.” 

  “에끼 이 사람아.” 

    그렇게 쓰잘 데 없는 소리를 하면서 웃는 것이었다.

 

    어쨌거나 웃는 일은 즐겁게 시간을 보내는 일에 효자였다. 선희는 바쁠 것도 없는 걸음으로 다리를

건너기 전 왼쪽 숲길로 들어섰다. 쑥부쟁이 우거진 사이로 작은 풀꽃들이 피어 있었다. 이름을 모르는

채로 작아서 더욱 앙증 맞고 더욱 사랑스러워 보였다.

 

    이상한 일이었다. 산에 피는 꽃들은 모두가 작았다.

저 높고 웅장하며 품이 넓은 산에 피는 꽃이 작다는 이유는 무엇일까.

땅 평수가 넓기로 하면 사람의 집에 딸린 마당이나 정원에 비교가 되지 않는다.

 

    그런데 넓은 산에서는 작은 꽃이 피고, 좁은 땅에서는 모란이나 장미나 목련이 핀다.

목련이 산에 피기도 하지만 산에 피는 목련은 동네에 피는 목련보다 역시 작았다.

풀꽃    

  이유가 궁굼했지만 그건 또 알아서 뭣에 쓰나. 선희는 그저 땅속의 조그만 벌레나 돌틈에 난 한 포기

잡초에 까지도 그것들이 능히 살고 자랄 수 있는 힘이 있다는 사실이 신기할 뿐이었다.

그렇다면 사람에겐들 살아갈 힘이 없겠는가. 창조주께서 섭리하시리라.

 

 

          저 산 넘어 물 건너 파란 잎새 꽃잎은

          눈물 짓는 물망초

          행여나 오시나 기다리는 언덕에

          임도 꿈도 아득한 풀잎에 이슬 방울

          왼 종일 기다리는 가여운 응시는

          나를 나를 잊지 마오

 

 

 

    선희는 작은 목소리를 내어 노래를 불렀다. 비감하기 짝이 없는 가사요 곡조였다.

걸으면서 자꾸만 같은 노래를 불렀다. 나를 잊지 마오. 나를 잊지 마.

 

   설악산아 동해 바다야. 나를 잊지 말아라. 멋모르고 뛰어든 이 설악산에 돌 한 개 옮겨 놓은 일 없고,

나무 한 그루 심은 일 없이 그 아름다움을 팔아 돈 벌어 살려고 여기 왔으니 내가 도둑이었다.

큰 도둑이었다. 내가 잘못 했다.

 

    사랑보다 돈의 가치를 우위에 두었던 삶,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작성한즉 사망을 낳나니

이런 나를 누가 반기며 신인들 용서하랴? 내가 지금 진퇴양난에 들어 이 고생하는 것이 내게 마땅히

와야 할 내 몫의 벌이 아니랴.

 

    그 무엇도 나를 이곳에 발 붙이게 하지 않으니 나는 떠날 것이다. 그러나 잊지 말아라.

나는 이 설악산에 와서 죽었고 내 무덤은 여기다. 무덤은 산 자의 목숨보다 수명이 긴 것이니 나는

죽음 후에도 이 곳에서 오래오래 헤매어 다닐 수밖에 없으리라.

     무덤

    하지만 내가 이 곳을 빠져 나가는 날엔 나는 분명 다른 사람이 되어 있을 것이다.

성자(聖者)같이 앉아 말이 없는 설악산아, 대청봉아, 울산 바위야! 누가 말하길 커다란 시련을 당하기

전에는 진정으로 참다운 인간이 못 된다고 하였지.

 

    그 시련이야말로 자기가 어떤 존재인가를 깨닫는 동기가 되고, 자기의 위치를 규정하는 계기가

된다고 하였다. 부활이 따로 있을 것이냐? 이전의 나는 없어지고 전혀 다른 새 사람이 되어 있으면

부활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이미 흘러간 물로써는 방아를 돌릴 수 없으리니, 과거에 어리석은 일을 했기로서니 그 때문에

연속적으로 아파만 하고 고민만 할 필요는 없다. 실패의 한 토막 때문에 새 날을 더럽히진 않으련다.

오늘은 오늘로써 살아가리라.

 

    살면서 가장 견디기 어려운 것은 나쁜 날씨가 계속 되는 일이 아니라, 구름 한 점 없이 맑은 날이

계속되는 것일 수 있다. 나쁜 날씨 뒤에는 맑은 날에 대한 기대와 희망이 있지만, 맑은 날 뒤에는

흐린 날이 올 것이란 두려움이 있기 때문이지.

 

  나는 새 사람이 되어야겠다. 나는 부활하리라. 내가 한 발 한 발 더듬어 올랐던 화채봉아, 대승령아,

마등령아. 너희들은 알 것이야. 너희들의 가슴을 한 발 한 발 톱아 오르면서 얼마나 많은 회개와

통한의 피눈물을 흘렸는지를 말이다.

 

   얼마나 너희 가슴에 안기어 영원히 편한 잠 들고 싶었는지를 헤아려 줘야만 해. 나를 잊지 말아라.

개울물아, 돌맹이들아, 헐벗은 나무 뿌리야. 흐르는 구름까지도 나의 피눈물을 잊지 말아라.

피눈물   

    선희는 졸졸 흐르는 물가에 앉아 돌맹이 한 개를 주워 들었다가 아무 생각 없이 멀리 던져버렸다.

그 돌이 날아간 끝으로 고아 아닌 고아가 되어 살고 있는, 서울에 두고 온 세 자녀들의 얼굴이 떠올

라 고개를 가로저으며 일어섰다.

 

    당장 달려가 안아보고 싶은 소중한 새끼들이지만 하늘과 땅 사이가 먼 것 만큼이나 서울이 멀리

느껴졌다. 그보다는 창살 없는 감옥에 갇혀있다는 생각에 온몸이 떨렸다.

 

    자운 모텔에 다다르니 거기도 한산했지만 내일엔 두 차 손님이 있다고 했다.

끝나가는 여름이 아니고는 시간 내기가 어려운 그런 사람들인 모양이었다. 커피가 날라져 왔다.

이군이었다. 선희를 보고는 아는 체 인사 하고 사라졌다.

 

  “어제 그 집엔 밴드를 부르고 난리굿이었다 카더라?” 

  “그럼 뭐 해요. 시끄럽기만 하지 무슨 실속이 있나요.” 

  “건 그렇다. 그란데.” 

 

    자운 형님이 목청을 낮추었다.

  “가 말이야, 정군 말이다. 잘 있나?” 

    선희는 자운 형님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갑자기 목청을 낮추어야 할 이유가 무엇일까.

 

  “잘 있는데요. 뭐 할 일이나 있나요. 손님이 하도 없으니.” 

  “그기 아이고, 가는 이상한 상을 타고 났더라 카이. 여자 수난상이란 말다.” 

  “여자 수난상이요? 그게 뭔데요?” 

 

  “여자들이 그 아만 보마 다 미처뿌는 기라. 니는 괜찮나?”

    선희는 도둑이 제발 저리다고 공연히 가슴이 뜨끔했지만 아니라고 고개를 가로 저었다.

 여자 수난상

  “그래애? 아니믄 다행인 기라. 내는 그 아가 우리 집에 왔을 때 마 정신이 다 없어져뿌린 기라.

데리고 놀고 싶은 기 내 맘 나도 모르겠더라 카이. 가만히 보이 여자 수난상인기라. 그 아가 어째서가

아이라 그 주위에 있는 여자들이 먼저 미쳐뿌는 기라. 그래서 내보내려던 참인데 니네서 사람이

없다꼬 왔길래 얼른 보낸 기라.” 

 

  “와! 형님 수상쩍다. 늦바람 날라는 걸 애먼 사람한테 씌우려 하다니. 그럼 형님,

내가 바람 나면 어쩌라구요?”  

  “어디, 함 두고 볼끼다. 하하하.”  

  “두고 보세요”

 

  “니 삼신 관광 안 있나. 청주에서 오는 거. 우리 집 단골인데 학단 들었을 때 와갖고 니네로

보냈으이 기억 날끼다.”  

  “네, 생각 나네요.” 

 

  “그 회사 김창기 운전수하고 짝패로 다니는 보따리 장사 신자 엄마라꼬 안 있나.

그게 붙어다니는 안내양 김양도 알제? 고 여시 같은 년.”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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