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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단(異端)의 성(城) / 강준희
2008-01-03 06:57:19
안재동

조회:1888
추천:141

[소설]   * 이단(異端)의 성(城)  * / 강준희   

 


언제였던가.
  속소위 말하는 신군부정권의 권위주의시대 때였으니 아마 1980년대의 어느 한 해였을 것이다.
  그 해 가을 소설가 장 지호 선생은 0 0부장관의 비서실장으로 있는 생질로부터 생게망게한 전화 한 통을 받고 적이 놀랐다. 전화 내용이 천만 뜻밖에도 자기가 모시고 있는 장관이 외삼촌의 글을 읽고 감동 받은바 커 초청하신다니 꼭 좀 응해 주십사 하는 내용이었기 때문이다.
  “뭐라? 네가 모시고 있는 장관께서 내 글을 읽고 감동 받은바 커 초청하니 꼭 좀 응해달라고?”
  장 지호 선생은 이게 대체 무슨 소린가 싶어 반신반의 했다.
  “예, 외삼촌. 그러니 장관님께서 날짜를 정해 다시 연락드리면 그 때 꼭 좀 와주세요 외삼촌”
  생질은 간곡히 당부하며 “꼭 좀”이란 말에 유독 강한 억양을 넣었다.
  “그래? 장관께서 무슨 글을 읽었는지는 모르겠다만 참 용하구나. 바쁜 장관 자리에 있는 양반이 책을 다 읽다니. 더구나 소설책을”
  장 지호 선생은 생각할수록 신기해 괴이쩍기까지 했다. 아니 흔감스러웠다.
  생각해보라. 소설가라면 원두한이 쓴외 보듯 하고 소설책이라면 신다버린 헌신짝 취급하기 일쑤여서 여간한 마음이 아니고는 거들떠도 안 보기 마련인데 이런 소설을 읽고 초청을 하겠다니 좀한 일이 아니었다. 더욱이 눈코 뜰 새 없이 바빠 촌각을 다투는 장관이 소설을 읽고 초청을 하겠다니 이건 하나의 사건이었다.
  “얼마 전에 나온 외삼촌의 장편소설 ‘겨레여 혼이여’를 읽으신 모양입니다. 며칠 내로 다시 연락드릴 테니 꼭 좀 상경하세요 외삼촌”
  생질은 또 ‘꼭 좀’이란 말에 강한 억양을 넣으며 전화를 끊으려 했다. 이 때 장 지호 선생이 큰소리로
  “얘야, 장관이 내 소설을 읽은 건 가상하다만 왜 네가 전화를 거냐. 나를 꼭 초청할 양이면 장관께서 직접 전화를 하시라 해라. 그게 예의요 도리 아니냐”
  했다. 본시 목소리 하나는 천구성으로 크게 타고난 장 지호 선생은 무슨 이런 무람하고 무경위한 일이 다 있느냐며 호통을 쳤다. 서슬에 생질이 화들짝 놀라
  “아니 외삼촌! 왜 화를 내고 그러세요. 장관님께선 제가 외삼촌의 생질인 것을 아시고 저한테 부탁하신 겁니다.”
  생질은 이해부득이라는 듯 원망조로 말했다.
  “그래도 그렇지. 장관께서 네 놈이 내 생질인 것을 아신다면 네 놈을 시켜 전화를 걸되 장관께서 직접 초청을 해야지 왜 네 놈이 전화를 걸어 초청 운운하냐. 네 놈이 장관이냐?”
  장 지호 선생은 좁은 골에 돼지 몰 듯 생질을 몰아붙였다.
  “아이구 참 외삼촌도. 아, 제가 전화하는 건 장관님이 시키셔서 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역정 내지 마시고 다시 전화드릴 테니 상경이나 하세요 외삼촌”
  했다. 그러며 생질은 바쁘신 장관님이 소설을 읽고 작가를 초청하기는 이번이 처음 있는 일이므로 외삼촌은 영광스런 선택을 받았다 했다.
  “뭐가 어째 이놈아! 영광스런 선택? 그래, 작가가, 힘도 돈도 권력도 없는 작가가, 그래서 문약(文弱)하다는 소리를 듣는 작가라고 홀대해도 된다는 게냐?”
  장 지호 선생은 분기탱천 소리쳤다.
  “외삼촌! 홀대는 누가 홀대를 했다고 그러세요. 그리고 저도 이제 사십이 넘은 나입니다. 아무리 외삼촌이지만 이놈 저놈 하지 마세요. 장관님이 외삼촌의 책을 읽고 초청하신다면 그게 최상의 대우지 어떻게 홀댑니까?”
  생질도 지지 않고 대거리를 했다. 생질로서는 나이 불혹이 넘은데다 지위도 장관의 비서실장쯤 되고보니 이놈 저놈의 호놈 소리가 듣기 싫었던 것이다.
  “뭐가 어쩌고 어째 이놈아? 이백(李白)은 당(唐)의 천자 현종(玄宗)이 모시려고 배를 보냈음에도 그 배에 오르지 않았어. 이게 그 유명한 천자 호래 불상선(天子呼來不上船)이야. 너, 천자 호래 불상선 알아?”
  장 지호 선생은 이백의 고사를 들먹이며 생질을 다그쳤다. 그러나 생질은 대답하지 않았다. 이백의 고사를 모르는 모양이었다.
  “알아 몰라?”
  장 지호 선생이 잼쳐 물었다.
  “모릅니다”
  “몰라?”
  “예!”
  “야, 이놈아! 대학원까지 나온 놈이, 게다가 장관 비서실장쯤 되는 놈이 천자 호래 불상선도 몰라? 예이 천하에 무식한 놈 같으니라고!”
  장 지호 선생이 또 버럭 고함을 쳤다.
  한데도 생질은 아무 말이 없었다. 장 지호 선생의 결기와 강기(剛氣)와 의기를 잘 아는 생질인지라 지레 만수받이 하는 듯했다.
  “이왕 이백에 대해 말이 나왔으니 좀더 얘기하겠다. 그러니 바쁘더라도 잘 들어라. 이백은 청평조사(淸平調詞) 삼장(三章)을 지을 때도 고역사(高力士)가 직접 신발을 벗겨주고 천자(현종)가 손수 국에 간을 맞춰 주고 양귀비(楊貴妃)가 몸소 먹을 갈아 벼루를 들어줘서야 청평조사 삼장을 지었다. 이를 어찌 보면 불기(不羈)하고 거오(倨傲)해 안하무인처럼 보이지만 그러나 문사란 강개지사(慷慨之士)로 굴신비사(屈身卑事) 하지 않아야 한다. 이게 문사가 취할 청절(淸絶)이다. 이게 글 쓰는 문사들이 스스로를 높여 속된 것들을 낮춰보는 문인상경(文人相輕)이다. 알겠느냐?”
  장 지호 선생은 일장 훈시를 하고 생질의 대답도 듣지 않은 채 다음 말을 이었다.
  “그러니 장관님께 여쭤라. 나를 꼭 초대하고 싶으면 손수 전화하시라고. 아니 전화보다야 몸소 써 보내는 편지가 훨씬 값지고 정성스러우니 편지를 하시라 해라!”
  장 지호 선생은 전화를 끊고 담배를 태워물었다. 장관이 소설을 읽고 소설 쓴 작가를 초청할 정도면 편지도 능히 할 수 있을 것으로 믿었기 때문이었다.
  장 지호 선생은 기분이 흔열했다. 앞에서도 말했듯 소설가라면 원두장이 쓴 외 보듯 하고 소설이라면 신다 버린 헌신짝 취급하기 일쑤여서 여간한 마음이 아니고는 거들떠도 안 보기 마련인데 일반 서민도 아닌 장관이 소설을 읽고 그 작가를 초청하겠다니 놀라운 일이었다. 이런 장관이라면 초청에 응해 한 번 만나볼 만하다 싶었다.
 
  이로부터 닷새 후, 장 지호 선생은 장관이 직접 써 보낸 초청 편지 한 통을 받았다. 편지는 등기우편이었다. 그러면 그렇지!
  장 지호 선생은 쾌재를 불렀다.
  존경하옵는 장 지호 선생님께
  선생님 안녕하신지요?
  불초 소생은 선생님의 ‘겨레여 혼이여’를 읽고 감명 받은바 커 이렇게 필을 들었습니다. 소생은 선생님이 김 명환 비서실장의 외숙부님 되신다는 말씀을 듣고 꼭 한 번 뵙고 싶어 이렇게 난필을 들었습니다. 응당 찾아뵙고 말씀 올려야 도리인 줄 아오나 소생에게는 그런 시간이 없어 안타깝습니다. 하와 이렇게 앉아서 무람하게 초청하오니 무례됨을 용서하시고 다가오는 15일 왕림해주시면 이보다 큰 영광이 없겠습니다. 그럼 그날 뵐 것을 학수고대하며 이만 난필을 접겠습니다.
                                                           0  0  0  돈수(頓首)
  장 지호 선생은 장관의 편지를 읽고 회심의 미소를 머금었다. 인생살이 육십 년에, 아니 작가생활 삼십 년에 장관으로부터 초청을 받기는 처음이기 때문이었다. 장관은 고사하고 시장 군수한테도 작가 자격으로 초청 한 번 제대로 못 받아본 장 지호 선생은 당상관 정일품 판서(장관)로부터 받은 곡진한 초대가 기이하고 신기해 사랑옵기까지 했다.
  그래, 역시 성인지 능지성인(聖人知 能知聖人)이야. 성인의 경지에 이르러야 성인을 알아보지 어찌 한낱 비인 소배(非人小輩)가 성인을 알아보랴. 백락(伯樂)이 있어야 천리마를 알아보고 종자기(鍾子期)가 있어야 백아(伯牙)의 거문고 소리를 알아듣지.
  장 지호 선생은 장관의 곡진한 초청 편지를 읽고 곧 생질에게 전보를 쳤다.
  15일 상경 위계.
  장관님과의 환담은 퇴근 후가 좋겠음 외삼촌.
 
  이러고 십오일 오후 다섯 시경 장 지호 선생은 0 0부 장관실을 방문, 생질의 안내를 받고 장관실로 들어갔다.
  “아이구 선생님 어서 오십시오.” 
  오십대 초반으로 보이는 장관이 자리에서 용수철 튀듯 발딱 일어나 허리를 굽혔다. 얼핏 봐도 장관은 이목구비가 수려하게 생긴 호남형이었다.
  “궁벽한 촌맹 한사(村氓寒士)를 이렇게 과분히 초청해주셔서 망지소조(罔知所措) 합니다”
  장 지호 선생은 국궁의 예를 갖춰 장관의 손을 잡았다.
  “원 천만의 말씀이십니다. 훌륭하신 작가 선생님을 뵙게 돼 영광입니다.”
  장관이 공손하게 장 지호 선생의 손을 그러잡으며 자리를 권했다.
  “그건 제가 드릴 말씀입니다. 국사에 바쁘신 장관님께서 보잘 것 없는 졸작을 읽어주시고 초청까지 해주시니 제가 영광입니다.”
  “훌륭하신 글을 읽게 해주셔서 대단히 감사합니다. 많은 분들이 그 글을 읽고 저처럼 큰 감동을 받았을 것입니다. 그리고 또 그 감동은 많은 심경의 변화를 가져왔을 것입니다. 그러니 작가란 얼마나 위대한 존재십니까.”
  장관이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을 했다.
  “오히려 부끄럽습니다. 볼 것 없는 졸작을 분에 넘치게 칭찬해주시니 민망할 뿐입니다.”
  장 지호 선생은 고개를 숙였다.
  “아닙니다. 훌륭한 작품은 많은 사람들에게 커다란 영향을 미칩니다. 그러니 어찌 작가를 위대하다 하지 않은 수 있겠습니까.”
  두 사람이 과공(過恭)은 비례(非禮)다시피 격찬하는 사이 차가 나오고 대화는 잠시 끊어졌다. 그러나 두 사람은 곧 장관실을 나와 대기하고 있던 차에 올랐다. 장관이 제지를 시켰는지 비서는 한 사람도 따르지 않았다. 차는 복잡한 도심을 뚫고 삼십여 분 후 날아갈 듯한 어느 한옥 앞에서 멎었다. 고래 등 같은 기와집이었다. 차가 멎자 삼십대 후반으로 보이는 미모의 여인이 반색을 하며 쫓아나왔다.
  “장관님! 그동안 왜 그렇게 안오셨어요? 이달 들어 이제 겨우 두 번째에요”
  여인이 고혹적인 웃음을 흘리며 장관의 팔짱을 꼈다. 
  “이제 겨우 두 번이라니. 오늘이 십오일 아닌가. 십오일에 두 번이면 한 달에 네 번 꼴인데 적어?”
  장관이 장 지호 선생 보기가 민망했던지 여인이 낀 팔짱을 풀었다.
  “그래도 매주 두 번씩은 오셔야죠. 장관님만 믿고 사는데”
  “욕심도 많다. 아, 어떻게 여기만 오나. 다른 데도 가야지. 그보다 이 선생님이나 잘 모셔. 선생님은 오늘 주빈이실 뿐만 아니라 아주 귀하신 작가 선생님이셔”
  장관이 장 지호 선생을 돌아보며 허리를 굽혔다.
  “에, 알겠습니다. 장관님!”
  여인이 배실배실 웃으며 장 지호 선생의 팔짱을 꼈다.
  “됐소! 나는 괜찮으니 장관님이나 잘 모시시오!”
  장 지호 선생은 점잖게 연인의 손을 밀어냈다. 집이 으리으리한 고급 한식집이어서인지 한터처럼 널찍한 마당엔 검은색 고급 세단이 수십 대나 늘어서 있었다.
  “선생님 취향을 여쭤보지도 않고 한식집으로 모셨습니다. 괜찮으시겠습니까 선생님?”  괴목인 듯한 자연목에 달필의 붓글씨로 매실(梅室)이라 씌어진 방으로 안내되자 장관이 말했다.
  “그럼요. 한식보다 더 좋은 음식이 어디 있습니까. 한식이 최고지요”
  장 지호 선생은 흔연히 대답하며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러시다면 다행입니다만 저는 혹시 또 선생님께서 못마땅해 하실까봐 걱정했습니다.”
  장관은 거조(擧措)가 깍듯해 일거수일투족이 예의 발랐다.
  저녁상은 이름을 알 수 없는 반찬이 올라 큰 교자상이 그득했다. 장 지호 선생은 태반이 처음 보는 진귀한 반찬들이어서 입이 딱 벌어졌다. 이를 진수성찬이라고 해야 할지 산해진미라고 해야 할지 아니면 고량진미라고 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도대체 이 반찬 수가 모두 몇 가지나 될까? 그리고 저녁 값은 또 얼마나 비살까?
  장 지호 선생은 아무도 눈치 못 채게 눈으로 반찬 가짓수를 세어봤다. 반찬 가짓수는 모두 마흔 두 가지였다. 모르긴 해도 지존의 상감마마 수라상도 이 마흔 두 가지의 반에도 이르지 못했으리라.
  장 지호 선생은 심기가 장히 불편했다. 아무리 귀한 손님을 대접한다지만 지금 나라 형편이 어떤 상황인데 장관이란 사람이 이런 초호화 최고급 한식집에서 임금님 수라상 저리가라 할 성찬으로 비싼 저녁을 먹는가. 서울을 비롯한 전국 각지에서 잃어버린 주권과 민주주의를 찾겠다며 시퍼런 군사정부에 맞서 ‘독재정권 물러가라!’ ‘군사독재 타도하자!’를 외치다 당국에 붙잡혀 물고문 불(전기)고문으로 속절없이 죽어가는 꽃다운 청춘들이 그 얼마인데 장관이란 사람은 오불관언인 채 초호화 한식집 무릉도원에서 시중드는 계집 옆구리에 끼고 비싼 저녁을 먹고 있으니 기막힌 노릇이었다.
  지난날 왕조시대 때도 나라에 무슨 변고가 생기면 임금이 먼저 나서서 감선(減膳)하지 않았는가. 감선이 무엇인가?
  나라에 변고가 있을 때 임금이 몸소 근신하는 뜻으로 수라상의 음식 가짓수를 줄이던 게 감선 아닌가. 감선만이 아니었다. 어떤 임금은 감선에 철악(撤樂)까지 해 노래와 춤도 가까이 하지 않았다.
  하지만 어찌 또 임금의 감선뿐인가. 고을을 다스리는 목민관도 밥 한 그릇에 국 한 사발, 김치 한 보시기에 간장 한 종지로 네 가지 반찬 이상은 상위에 올리지 않은 청빈한 목민관이 많았다. 이게 그 유명한 이두이변(二豆二籩)이다.
  “선생님 많이 드십시오. 여봐, 미스 리, 선생님께 맛있는 반찬 많이 좀 권해드려”
  장관이 미스 리라는 아가씨에게 말하자 주인 여자가 발밭게
  “그래. 현이 넌 선생님 잘 모셔라. 난 장관님 모실테니”
  하고 또 아까처럼 고혹적인 웃음을 흘리며 현이를 쳐다봤다. 현이도 주인 여자 못지않은 미인이었다. 스물 한두 살쯤 됐을까? 귀엽고 복스러운 얼굴이었다. 현이는 이름을 알 수 없는 반찬을 집어 장 지호 선생의 밥술가락 위에 올려놓았다. 그러나 장 지호 선생은 반찬은 내가 골라 먹을 테니 아가씨는 신경 쓰지 말라 이르고 김치와 된장찌개, 그리고 된장이 딩게딩게 묻은 고추장아찌를 우적우적 씹어 먹었다.
  장 지호 선생이 장관을 따라 두 번째로 간 곳은 어느 현란한 호텔 밤무대였다. 지배인은 장관이 도착하자 무슨 죽을죄나 지은 듯 두 손을 맞잡고 저두굴신 했다. 장관은 이런 지배인에게 오른손 두매한짝으로 어깨를 툭툭치며 거드름을 피웠다.
  “장관님! 이리로 앉으시지요. 곧 아이들을 보내드리겠습니다.”
  지배인이 허리를 굽히고 쩔쩔매는 자세로 장관을 안내했다. 지배인이 안내한 자리는 로열석이 아니면 VIP석인 듯했다. 호텔 밖은 오색찬란한 일류미네이션으로 휘황하더니 호텔 안 무대는 시끄러운 음악과 빙글빙글 돌아가는 조명의 미러볼로 정신이 없었다.
  “장관님 오셨어요? 오늘 또 모시게 돼서 영광이에요. 저 7 번 미쓰 박이에요. 아시죠?”
  미스 박이 시끄러운 음악소리 때문에 큰 소리로 말하자 곁에 있던 아가씨도
  “장관님. 전 10번 미쓰 홍이에요. 장관님을 뵙게 돼서 가문의 영광입니다.”
  했다. 그러자 장관이 손나팔을 만들어
  “야, 이놈들아. 누가 듣겠다. 여기선 아저씨라 불러. 그리고 나보다는 이 선생님을 더 잘 모셔야 된다. 알았지? 아주 귀하신 어른이시다!”
  장관은 이 말과 함께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장 지호 선생은 정신이 하나도 없어 밖으로 뛰쳐나가고 싶었다. 온갖 색의 조명으로 빙글빙글 돌아가는 미러볼도 정신이 사나왔지만 무엇보다 고막이 짖어질 듯 시끄러운 음악소리에 얼이 빠지는 것 같았다. 반나의 여가수가 희한한 몸동작으로 부르는 노래에 이어 팔등신의 미끈한 외국 무희들이 줄을 짓고 서서 빠른 템포에 맞춰 다리를 머리 위까지 번쩍번쩍 들어 올리며 추는 캉캉춤은 뒤뚱거리는 오리걸음과 함께 우레 같은 박수를 받았다. 그러나 홀은 곧 찬물을 끼얹은 듯 조용해졌다. 무대가 선정적인 핑크빛으로 변하더니 한 무용수가 음악에 맞춰 옷을 하나하나 벗는 스트립쇼가 벌어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여인은 요나한 몸짓을 하며 옷을 한꺼풀 한꺼풀 벗어던지더니 마침내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전라가 됐다. 숨을 죽인 채 이를 바라보던 관중들은 휘파람을 불고 꽥꽥 괴성을 지르며 난리 법석을 떨었다.
  장 지호 선생은 못 볼 것을 봤을 때처럼 눈을 질끈 감았다. 아무리 세상이 결딴나 요계지세(澆季之世)가 됐기로서니 어찌 여자가 뭇사람 앞에 발가벗고 저럴 수 있단 말인가. 특급호텔의 밤무대니 반나의 여인이 춤추고 노래하는 것 까지는 이해하겠는데 머리에서 발끝까지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알몸뚱이 여자가 흔들어대는 요나한 몸짓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그래 장 지호 선생은 막간을 이용해 장관한테 어디 조용한 데 가서 술 한 잔 하자 했다. 그러나 장관이
  “그게 좋으시겠습니까? 그럼 그렇게 하시죠 뭐.”
  하더니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장 지호 선생은 장관을 따라 밖으로 나왔다. 밖으로 나오니 숨통이 틔어 살 것 같았다.
  “자 타시지요. 선생님!”
  차안에 있던 운전기사가 튕그러지듯 뛰쳐나와 차의 문을 열자 장관이 말했다. 장관이 운전기사의 귀에 대고 뭐라고 말하자 기사가
  “예 장관님! 예 장관님!”
  하며 고개를 조아렸다. 그러자 차는 곧 호텔을 빠져나와 미끄러지듯 거리의 잡답속으로 들어갔다.
 
  “아이구 장관님. 예고도 없이 갑자기 어인 행차셔요 그래!”
  차가 아까 한식집처럼 또 으리으리한 한옥 앞에 멎자 잠자리 날개 같은 옷을 입은 사십대 초반의 여인이 함박꽃 같은 웃음을 웃으며 장관을 맞았다.
  “갑자기 마담이 보고 싶어 왔지. 이렇게 예고 없이 와야 반가운 법 아닌가.”
  장관이 너스레를 건네고 장 지호 선생을 소개했다.
  “마담, 내가 존경하는 소설가 장 지호 선생님이셔. 특별히 모시고 온 선생님이니 각별히 모셔야 해. 알았지?”
  “아이구 장관님. 어느 분의 영이신데 소홀하겠습니까. 지극 정성을 다하겠습니다.”
  마담이 장 지호 선생한테 공손히 허리를 꺾으며
  “어서 오십시오 선생님! 소설가 선생님을 뵙게 돼 영광입니다. 그리고 반갑습니다.”
  했다. 그러나 장 지호 선생은 하나도 반갑지 않았다. 반갑기는커녕 되레 잘못왔구나 싶어 아까 한식집에서 돌아가지 못한 게 한스러웠다. 그러나 이제는 절에 간 색시였다.
  “어서 드시죠 선생님!”
  마담이 앞서 걸으며 연신 허리를 굽혔다. 장 지호 선생은 장관이 좋기는 좋구나 했다. 이렇듯 깍듯한 모심이 다 장관 덕이지 싶자 장관이 새삼 대단해 보였다.
  구중심처에 들 듯 몇 개의 대문을 지나 안내된 방은 후원 별당처럼 한녘진 조용한 방이었다. 방은 출입문 구석으로 매화 그림의 가리개가 세워져 있고 아랫목인 듯한 곳에 팔폭 산수화 병풍이 처져있었다. 그리고 방 위쪽으로 짐작되는 벽에는 구름을 갈고 달을 낚는다는 경운조월(耕雲釣月)의 글씨가 횡액에 담겨 걸려 있고 출입문에서 맞바라보이는 벽에는 월무족이보천(月無足而步天) 풍무수이요수(風無手而搖樹)라는 멋진 명구의 글씨가 수액으로 걸려 있었다.
  “달은 발이 없어도 하늘을 걷고, 바람은 손이 없어도 나무를 흔든다? 거참 멋진 말이군!”
  장 지호 선생은 혼잣소리로 말하며 수액을 올려다봤다. 글씨 쓴 이의 아호를 보니 우하(又下)로 돼 있어 한참을 입속말로 우하 우하 했다. 우하가 누구인지는 몰라도 명구를 골라 쓴 품이 꽤 멋을 알고 풍류를 아는 것에 틀림없었다.
  “자, 선생님, 여기서는 이제 파격이 되셔야 합니다. 그러니 윗도리 벗으시고 마음 편히 가지세요.”
  장관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월궁항아(月宮姮娥) 같은 아가씨 두 사람이 들어오더니 장관과 장 지호 선생의 윗도리를 벗겨 옷걸이에 걸었다.
  “선생님! 지금부터 무릉도원에서 술 한잔 하시지요. 여기서는 누구라도 인간 본연의 모습으로 한 치의 위선이나 가식이 있어선 안됩니다. 그러니까 원초적 본능만 있습니다!”
  장관은 고기가 물을 만난 듯 생기가 돌았다. 장 지호 선생은 왠지 이런 장관이 불쌍하고 가련해 자닝스레 느껴졌다. 방안 공기는 점점 요상하게 흘러 뭔가 심상찮은 일이 생길 조짐을 보이고 있었다.
  장 지호 선생은 저녁 식사가 끝난 후 곧바로 헤어지지 못한 게 후회됐다. 초청을 받고 장관실을 들어설 때만 해도 장 지호 선생은 어디 조촐한 식당에서 두부찌개나 녹두 부침개를 안주삼아 소줏잔을 기울이며 ‘겨레여 혼이여’에 대한 이야기를 진지하게 나눌 생각이었다. 그런데 장관은 이런 장 지호 선생의 생각과는 딴판으로 초호화 최고급 한식집에서 상감마마 수라상이 울고 갈 진수성찬으로 저녁 식사를 대접하고 이상 야릇한 호텔 밤무대서 요분질 하듯 요나한 몸짓의 발가벗은 계집의 알몸을 보여주더니 끝내는 요상하기 짝이 없는 희한한 요정으로 데려와 장 지호 선생을 육니(忸怩)케 했다. 그러나 아직은 뭐라 속단할 단계가 아니어서 얌전히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지금으로서는 이상한 징후만 보일 뿐 이렇다할 거조가 없기 때문이었다. 한데도 장 지호 선생은 뭔가 곧 망측한 일이 벌어질 것 같은 예감이 들어 기분이 언짢았다.
  장 지호 선생은 문득 치숌의 법칙과 파이나글의 법칙을 떠올렸다. 잘못될 가능성이 있는 일은 언젠가는 잘못되고야 만다는 치숌의 법칙과 나쁜 결과가 일어날 수 있는 일은 틀림없이 일어나고야 만다는 파이나글의 법칙 말이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아마 담배 두어 대 태울 시간은 흘렀으리라. 방안의 불이 밝은 색에서 분홍색으로 바뀌고 술상과 함께 유두와 국부만 간신히 가린 늘씬한 아가씨 두 사람이 들어와 장관과 장 지호 선생 앞에 옴살처럼 붙어 앉고부터 흉측한 일은 벌어지기 시작했다. 두 아가씨가 장관과 장 지호 선생한테 술을 권하며 조조간질래비 같은 간롱으로 든장질 할 때 이미 망측함은 예고됐던 것이다.
  이렇게 얼마 동안 술을 마셨을까. 좋이 한 시간은 됐지 싶자 장관이 갑자기 누구에게랄 것 없이
  “계곡주! 계곡주!”
  했다. 그런 장관은 벌써 혀꼬부라진 소리였다. 장 지호 선생보다 술이 약한지 같은 양의 술을 마셨는데도 해롱거렸다.
  “예, 알겠습니다. 즉각 대령하겠습니다 예!”
  누군가가 대답하더니 웬 여인 두 사람이 들어와 술상과 아가씨들을 번개같이 물렸다. 하는 솜씨로 봐 장관이나 요정이나 난든집이었다.
  장 지호 선생은 생각할수록 후회스러웠다. 이럴 줄 알았으면 장관이 아니라 장관 할애비가 초청한다 해도 응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어찌 알 것인가. 적어도 한나라의 장관이요 또 초청하는 자세가 그토록 깍듯하고 곡진했으니.....
  장 지호 선생은 진퇴유곡이었다. 이대로 받자하자니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겠고 오달지게 뿌리치고 가자하니 사람의 도리가 아니다 싶었다. 장 지호 선생은 담배를 태워 물고 무연히 천장을 올려다봤다. 이때 침대 같기도 하고 술상 같기도 한 화려한 침상 하나가 미끄러지듯 스르르 들어오더니 방 한가운데 놓여졌다. 침상에는 목화처럼 보드라워 보이는 흰 보료가 구름처럼 깔려있었다. 
  “얼른 얼른 들여보내. 젤 예쁜 아이로 말이야. 미쓰 최보다 더 예쁜 아이로 말이야!”
  장관이 눈을 게슴츠레 뜨며 말했다.
  “예, 알겠습니다, 나리. 이제 눈 감으십시오. 나리!”
  언제 들어왔는지 마담이 장관에게 말하고 장 지호 선생한테도
  “선생님 잠깐만 눈을 감았다 뜨시지요. 한 삼십 초만이요!”
  했다. 그러더니 방에 불이 꺼져 캄캄한 먹빛이 됐다. 이럴 때는 마담이 장관을 나리라 부르는 모양이었다. 장 지호 선생은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한 번 보자 싶어 눈을 감았다.  
  “자, 이제 눈을 뜨셔도 되십니다. 그럼 두 분 즐거운 시간 보내세요?”
  마담이 방에 분홍색 불을 켜고 밖으로 나가며 말했다.
  “아니 이럴 수가?!”
  장 지호 선생은 깜짝 놀랐다.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큰 술상 같기도 하고 침대 같기도 한 침상 위에 웬 알몸의 분홍색 여인 하나가 반듯이 누워 있었기 때문이었다.
  “야, 고년 참 예쁘다. 선생님! 이제 술을 제대로 한 번 마셔야지요. 요 계집이 안주올시다. 술은 이렇게 따라 마시는 거지요”
  장관이 술상의 술병을 높이 들어 여인의 젖무덤 사이로 내리부었다. 술은 물마가 난 시위처럼 벌창이 돼 배꼽 밑 음부로 흘러내렸다.
  “자, 선생님부터 먼저 한 잔 하시지요. 천하 일미 계곡줍니다!”
  장관이 혀 꼬부라진 소리로 말하더니
  “선생님 이런 계곡주 첨이십니까? 그럼 제가 시범을 보여드리겠습니다. 자, 보십시오. 이렇게 먹는 겁니다!”
  장관이 딸꾹질을 몇 번 하더니 여름 개처럼 혀를 길게 빼물고 여인의 음부에 코를 박았다. 그런 다음 개가 물먹듯 깔짝깔짝 빨아먹기 시작했다.
  아니 이런 천하에!
  장 지호 선생은 불덩이 같은 무엇이 명치를 치받고 올라왔다.
  “선생님! 저처럼 한 번 해보시지요. 세상에 이 계곡주보다 더 맛있는 술은 없습니다. 그리고 누구보다도 소설 쓰시는 선생님은 이런 경험을 하셔야 합니다. 그래야 살아 있는 글을 쓸 수 있습니다.”
  장관은 이러며 여인의 젖꼭지를 물고 배꼽을 빨고 음부를 핥고 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장 지호 선생은 더는 참을 수가 없어
  “이보세요 장관님!”
  하고 손바닥으로 힘껏 방바닥을 내리쳤다.
  “예? 왜, 그러시지요 선생님?”
  장관이 어눌한 소리로 말하며 눈을 홉떴다. 눈은 초점이 풀려 힘담이 없었다.
  “그만 일어나십니다. 아니 나 먼저 가겠소!”
  장 지호 선생이 버럭 소리치며 여인이 누워 있는 침상을 내리쳤다. 사품에 여인이 화들짝 놀라 일어났다.
  “아니 왜요 선생님. 이제 한창 물이 오르는데 가시다니요. 우리 선생님 이제 보니 술이 덜 취하셨구나. 야 임마, 우리 선생님 술좀 취하게 해드려!”
  장관이 쪼그려 앉은 채 불난 산의 토끼처럼 놀라 눈을 호동그랗게 뜨고 있는 여인에게 말했다.
  “이보시오 장관!”
  장 지호 선생이 벽력같이 소리쳤다.
“당신이, 당신 같은 사람이 이 나라의 장관이요?”
  장 지호 선생은 마침내 분기가 탱천했다.
  “무, 무슨 말씀입니까 선생님!”
  장관이 시르죽은 소리로 말하며 장 지호 선생을 쳐다봤다.
  “그 선생님 소리 그만 하시오. 당신 같은 사람한테 선생님 소리 듣기 싫소!”
  장 지호 선생은 두 주먹을 부르쥔 채 말을 이었다.
  “자알 들으시오. 내가 지금부터 하는 말은 대한민국의 일등 국민자격으로 하는 말이오. 그러므로 내 말은 국민의 지상명령(至上命令)이자 정언적명법(定言的命法)이오. 그리고 당신 같은 시위소찬(尸位素餐)을 알토란 같은 혈세로 먹여 살리는 주인 자격으로 하는 경고요.
   이보시오 장관!
  당신 돈이라면, 당신 돈 같다면 최고급 한식집에서 용의 간 보다 더 비싼 저녁을 먹을 수 있고, 최고급 호텔 밤무대 로열석에 앉아 스트립쇼를 구경할 수 있겠소? 그리고 최고급 요정에서 여자 음부에 술부어 마시며 돈을 물 쓰듯 흥청망청 쓸 수 있겠소? 아니 당신이 장관이니까 식당과 호텔과 요정이 돈을 받기는 고사하고 오히려 당신이 와 준 것만 영광으로 생각해 고맙고 황송하게 여길지도 모르겠소. 만일 그렇다면 당신은 민폐가 이만 저만 아닌 탐관오리요. 시경(詩經)에 이르기를 탐관오리 망국지상(貪官汚吏 亡國之象)이라 했소. 탐관오리는 망국의 상징이란 뜻이요. 한국판 민약론(民約論)이라 할 수 있는 다산(茶山)의 목민심서(牧民心書)에는 민위토위전(民以土爲田) 이이민위전(吏以民爲田)이란 말이 있소. 이는 백성들은 토지를 밭으로 삼는데 이속(吏屬)들은 백성을 밭으로 삼는다는 애기요. 그런가하면 목민심서는 또 이속들은 백성의 살갗을 벗기고 골수를 빠개내는 것을 밭갈이로 여기며 머리  수를 세어 흝어내는 것을 가을걷이 추수로 여기는 것이 습성처럼 돼 있다고도 했소. 내 과문한 탓으로 잘은 모르겠소만 이런 아방궁 같은 고급 요정에서 월궁항아 저리 가라로 예쁜 미인을 알몸으로 눕혀놓고 음부에 술부어 빨아 먹는 값은 웬만한 월급쟁이 너댓 달 월급은 가져야 하고 막일하는 날품팔이 노동자는 일 년을 쌔가 빠지게 벌어도 안 될 돈일지도 모르오. 그래, 이런 큰 돈을 장관 자리에 앉아 펑펑 써대며 나라 망치는데 일조하는 당신을 나는 경멸하지 않을 수 없소. 나는 처음 당신의 비서실장인 내 생질을 통해 당신이 내 글을 읽고 초청하려 한다는 소리를 듣고 깜짝 놀랐소. 세상에 이런 장관이 다 있다니. 장관이 소설을 읽고 감명 받아 그 소설을 쓴 작가를 초청하겠다니. 나는 장관이 소설을 읽은 것만도 대단한데 항차나 그 작가까지 초청하려 한다는 소리에 큰 감명을 받았소. 아. 우리 대한민국에도 이런 장관이 있구나! 아, 우리 대한민국 장관도 소설을 읽는구나! 나는 뛸 듯이 기뻐 얼른 당신을 만나고 싶었소. 만나서 파전이나 두부찌개를 안주해서 소주마시며 추야장 긴긴밤을 이야기로 꽃피우고 싶었소. 그런데 당신은 내 의사는 한 마디도 묻지 않고 당신 멋대로 최고급 식당과 최고급 호텔과 최고급 요정만 찾았소. 물론 이는 장관이라는 체면 때문에  그럴 수도 있고 또 나를 극진히 대접하려는 충정에서 그런다는 걸 모르는 바는 아니오. 그러나 내 의사를 한 번 쯤은 물어봐야 하는 것 아니오? 다 좋소. 하지만 발가벗고 요나하게 춤추는 호텔이나 발가벗은 여자 음부에 술부어 마시는 금수 같은 짓거리는 우선 도덕적으로 용납할 수 없는 일이요. 더욱이 당신은 이 나라 최고의 고관대작이 아니오. 그러니 높은 신분에 따르는 도의상의 의무라는 노블레스 오블리쥬를 잘 알 것 아니오. 내가 오늘 당신을 만난 것은 일생일대의 치욕이자 수욕이요. 아니 굴욕이고 모욕이요. 그래 나는 오늘 국민의 이름으로 당신한테 침을 뱉겠소!”
  장 지호 선생은 분연히 일어나 장관을 향해 침을 뱉었다. 그리고 곁에 있던 술상을 들어 올려 장관의 면상에 뒤집어 씌웠다. 그런 다음 화장걸음으로 궁궐 같은 요정을 나와 보무당당 걸었다. 그러며 소리쳤다.
  “이단(異端)의 성(城)이다. 이단의 성!”
  이때 소슬한 바람 한 자락이 장 지호 선생의 얼굴을 스치고 지나갔다. 아주 시원한 가을  바람이었다.  
     

 


【 작가의 말 】

  문인상경(文人相輕)이란 말이 있다. 문예에 종사하는 이는 흔히 스스로를 높여 남을 낮춰본다는 뜻이다. 그런가 하면 또 천자 호래 불상선(天子呼來不上船)이란 말도 있다. 천자(현종)가 배를 보내도 이백(李白)은 그 배에 오르지 않았다는 뜻이다.
  이 소설은 어느 낙척한 백면한사(白面寒士)가, 다시 말하면 세속에 물들지 않은 조대(措大)하고 경개(耿介)한 어느 작가가 결기와 강기(剛氣)와 의기로써 고관대작을 호통 친 이야기다. 문인이 문약하다는 소리를 듣고서야 어찌 사회 정의가 바로 서겠는가. 작가는 시대의 증인이며 양심이며 보루여야 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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