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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시인·저항시인·리얼리즘시인 심연수 / 홍문표
2008-01-03 07:30:36
안재동

조회:2579
추천:171

[평론] 민족시인·저항시인·리얼리즘시인 심연수


홍문표 (평론가·한국문인협회 회원)
 

 1. 문학사의 복원과 심연수

   우리의 현대문학사가 이제 2세기의 문턱에 있지만, 불행하게도 우리의 현대문학사는 아직도 주체적인 민족문학사로 온전히 기술되지 못하고 있다. 개화기문학은 맹목적인 서구화란 이유로 평가되고 있고, 1910년에서 1945년까지는 일제강점기란 이유로 민족적 자주가 유보된 기간으로 기술되고 있다. 거기다가 1945년 광복 이후 오늘에 이르는 역사마저 체제와 이념을 달리하는 대결과 충돌의 분단사가 온전한 민족문학사를 가로막고 있으니 오늘의 한민족문학사는 여전히 미완의 허공을 떠도는 셈이다.

   어느 나라나 주체적이고 민족적인 통일된 문학사를 기술한다는 것은 이질문화와의 끝없는 충돌과 융합으로 생존하는 것이 역사이기에 쉬운 일이 아니겠지만 우리 문학사의 경우는 그 중에서도 더욱 심각한 것이 사실이다. 그 이유는 첫째로 민족어가 늦게 형성되어 한자문화와의 이중적인 문학사를 갖고 있어 오랫동안 민족문학의 정체성을 확보하지 못했고, 둘째는 근대화가 가속화되어야 할 최근의 역사에 식민지 시대라는 일제강점기가 자생적인 근대화를 가로 막았으며, 셋째는 분단시대가 이념과 체제를 양극화하여 민족의 동질성을 분열시켰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늘의 한국문학사는 이러한 난제들을 감안하면서도 주체적인 문학사관을 세워 상처투성이의 현대문학사를 복원해야 하는 것이 한 세기를 넘어가는 우리들의 민족사적 과제다.

   이를 위한 첫째 과제는 한국문학사의 일원화 작업일 것이다. 한국문학이 하나라는 것을 방증하기 위해서는 우선 "전통" 계승문제를 충분히 고구해야 한다. 그 동안 전통에 대한 인식이 편협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민족의 불변인자가 전통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전통단절이니 접합이니 하는 주장이 있어 왔다. 그러나 전통도 도전과 응전의 과정에서 변화하는 것이다. 따라서 변화해야 했던 당위성을 설득력 있게 기술하는 것이 문학사가의 올바른 능력이다. 한민족의 혼이 건재하고, 그 민족이 써 왔던 문자가 분명한데, 전통이 부재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누워서 침뱉는 일이다.

   둘째로 문학사 복원의 문제다. 복원이란 문학사의 빈 자리를 채우고 사실을 타당성 있게 밝히는 것이다. 특히 문학사의 복원 문제는 최근의 경우 일제강점기에 집중된다. 사실 그 시대의 문학이란 경찰과 헌병의 감시하에 이루어진, 감시문학이고 통제문학이다. 그러기에 식민지 시대의 문학은 괄호 속에 넣어야 한다는 극단적인 주장도 있다. 이러한 논리라면 최근 일제 말기의 친일문학만을 과거사 문제로 다루는 데도 문제가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렇게 모든 것을 부정하는 것은 민족사의 맥을 단절하는 우를 범할 수 있다.

   여기에 문학사 복원의 지혜가 요구된다. 그 중에서도 일제하의 문학사 복원에 가장 관심을 가져야 할 부분 중에 하나가 소위 암흑기에 대한 복원이고, 자의든 타의든 해외로 이주하여 민족어와 민족문학을 지켜온 우리의 디아스포라문학, 망명문학에 대한 관심이다.

   일제 치하에서 내국의 문학이 감시하의 문학이었기에 문학사의 2차적 자료라는 지적이고 보면 유민문학이나 교민문학은 비교적 통제에서 자유로운 문학이기에 문학사의 1차적 자료가 될 수 있다는 논리도 가능하다. 솔직히 내국의 문학은 엄격한 통제 하에서 정상적으로 표현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기에 국가가 위기에 있는데도 현실을 외면한 현실 도피적인 각종 문학이 성행했던 것은 아닐까? 이에 비하여 망명문학 또는 유민문학이나 교민문학은 시대적 감정을 솔직하게 드러낼 수 있었다는 데서 문학사적 가치를 재검토하게 하는 것이다.

   일제강점기의 마지막 기간인 1940년에서 1945년 광복 이전까지를 그 동안의 대부분 문학사가들은 암흑기니 민족문학사의 공백기니 하면서 아예 문학사 기술조차 기피하는 경향이었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이육사, 윤동주 등의 지사적 삶과 저항적 작품들이 확인되면서 이 시기의 부끄러운 문학사를 오히려 저항기 문학사로 반전시킬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 두 시인만으로 이 시기를 저항기 문학사로 기술하기엔 상당히 미흡한 바가 있었다. 그러던 차에 최근 심연수 시인을 발견하게 된 것이다. 따라서 심연수 시인의 발견은 암흑기니 공백기니 하는 이 시기를 저항문학기로 민족문학사를 복원하는 일에 보다 확고한 근거를 구축하는 계기가 된 것이다.

   사실 심연수 시인의 유고집이 보여 주는 250여 편의 시 그 밖에도 다수의 수필, 소설, 평론, 일기 등은 이육사 시인의 유고시집인 『육사시집』에 수록된 20여 편의 시작품이나, 윤동주 시인의 유고시집인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에 수록된 92편의 시작품들과 비교할 때 그 양적인 면은 말할 것도 없고 작품성, 작가정신, 지사적 삶에 있어서도 대등한 바가 있기에 이들과 더불어 민족시인, 저항시인으로 평가하는 데 손색이 없다 하겠다.

   그러나 이들보다 반 세기 이상 발굴이 늦어진 연유로 심연수의 문학사적 위치, 학문적 연구와 평가, 일반의 인식은 아직 시작에 불과한 실정이다. 앞으로 학계와 일반의 심연수에 대한 활발한 연구와 관심을 통하여 훼손된 민족문학사를 복원하고, 민족자존의 문화적 전통을 확보하는 사업에 크게 고무되기를 기대하면서 필자는 이들 세 시인의 민족시인 또는 저항시인으로서의 의미를 재음미하고, 세 시인의 공통점과 변별성을 통하여 심연수 문학세계의 일면을 검토하고자 한다.


2. 민족시인, 저항시인 심연수

   어째서 이들 세 시인을 민족시인이니 저항시인이니 하는 역사적 의미를 부여하는가. 더구나 심연수 시인은 아직 학계에서 충분히 검증되지 않았는데 어떻게 윤동주, 이육사와 동열에 놓을 수 있는가 하는 문제도 있다. 그리고 이들 세 시인의 시적 변별성은 무엇인가. 이러한 문제들이 확연해질 때 암흑기의 역사는 보다 빛나는 저항의 역사로 재조명될 수 있을 것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는 데는 먼저 1935년에서 1945년까지 일제 침략 행위가 얼마나 가혹했으며, 이 시대 대부분의 문인들은 어떻게 처신했는가를 함께 살피는 것이 중요하다.

   심연수가 문학활동을 한 시기는 일제가 1931년 만주사변을 일으켜 이미 만주도 일제의 마수가 뻗고 있던 시기였고, 1937년에는 중·일전쟁을 일으켜 조선은 그저 대륙 침략을 위한 후방의 병참기지에 불과하게 되었으며, 1941년 태평양전쟁을 일으키면서는 조선민족의 모든 것들이 말살되는 암흑시대였다.

   일제는 1938년에 조선어교육을 폐지하고, 아침마다 일장기를 향해 황국신민 서사를 암송하게 했다. 국가총동원법을 만들어 모든 물자를 수탈하고, 국민징용령을 만들어 조선인을 군인, 보국대, 노무자, 위안부로 징발했다. 1940년에는 창씨개명을 단행했고, 1941년에는 3대 일간지를 폐간했으며, 『문장』, 『인문평론』 등 문학지도 폐간했다.

   뿐만 아니라 조선문학을 일본의 지방문학으로 격하시켰고, 조선문인협회, 조선문인보국회 등 어용 문학단체를 만들어 침략전쟁과 징병제를 선전하게 하였다. 80%가 넘는 농민들이 소작농으로 농업노동자로 전락하였으며, 그도 견딜 수 없어 화전민으로 도시의 날품팔이로, 만주로 일본으로 연해주로 유랑하는 신세가 되었다. 1936년 통계에는 만주에 1백만, 연해주에 50만, 일본에 70만이나 된다고 했다.

   그러나 더욱 슬픈 문학사의 비극은 바로 문인들의 친일행위였다. 그 동안 민족주의 작가로 프롤레타리아 혁명투사로 주목하던 문단의 대표적 인사들이 대거 친일문학의 오명을 남기게 된 것이다. 개화계몽기를 거쳐 1920년대까지 민족주의적인 입장에서 언제나 선봉에 있었던 최남선이나 이광수, 1925년 이래 계급주의 문학의 대표적인 논객 임화, 박영희, 김기진, 그 밖의 수많은 문인들이 이 암흑기에는 친일문학의 대열에 섰던 것이다.

   물론 극한의 식민지 현실에서 그 누구도 정상적인 문학을 할 수 없는 상황인 것을 인정한다. 그 악랄한 식민지 정책과 검열과 감시와 위협에서 벗어나기 어려운 점도 인정한다. 그러나 가장 민족의 전통과 자존심을 지켜야 할 문인들이 대거 친일에 가담하였다는사실에 민족사의 심각한 비극이 있다. 친일이냐 부일이냐 하는 논의도 있고, 언제까지나 이들에게 돌을 던져야 하는가, 라는 온정론도 있다.

   어느 시대 어느 민족이나 극한적인 위기에는 변절자가 있고, 반민족 행위자가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의 경우는 당대 문학사를 주도했던 대표적인 문인들이 모두 앞장서서 친일을 했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당대 최고의 모더니즘 비평가로 알려진 최재서는 일본문학과 대립되는 조선문학은 없고, 일본문학의 일환으로 조선문학이 있을 뿐이라고 했다. 이광수는 조선인은 전연 조선인인 것을 잊어야 한다고 아주 피와 살과 뼈가 일본인이 되어 버려야 한다고 했다.

   그 밖의 문인들은 비록 이들처럼 직접 친일을 하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저항한 것이 아니라 붓을 꺾거나 침묵하는 정도였다. 그렇다면 1940년에서 1945년 사이의 소위 암흑기 문학사란 일제의 폭압과 학정이라는 외적 조건이 민족사의 단절을 강요한 것이기도 하지만 사실수리(事實受理)란 명분으로 민족문학의 전통을 지켜야 할 문인들이 저항은커녕 오히려 굴종과 어용과 변절로 민족문학사를 훼손한 친일행위에 더 큰 문제가 있었음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프랑스 문학사의 경우는 1940년에서 1945년 파리 해방까지 나치에 점령되었던 기간을 저항문학(resistance)기로 당당히 기록한다. 이 시기에 문인들은 대부분 저항군에 가담하거나 저항문학운동의 조직, 정보, 비밀출판, 선전에 참가했고, 그 밖에 대부분은 해외에서 망명작가로 활동하였다. 「프랑스문학」, 「프랑스소리」, 「심야총서」 등의 저항문학활동은 현대 프랑스 문학사의 빛나는 전통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전후세계에 저항문학, 참여문학, 휴머니즘문학 시대를 여는 계기가 되기도 하였다.

   같은 시기 같은 상황에서 저들 프랑스의 대부분 문인들은 국민작가평의회를 조직하고 자민족의 생존과 문화를 지키기 위하여 비밀결사항쟁을 하는 동안 우리 문단의 지도자들은 오히려 조선문인보국회를 만들어 공공연히 침략전쟁을 찬양하고 내선일체니 황국신민이니 하는 배신의 논리에 앞장섰던 것이다.

   더욱 가증한 것은 1945년 광복이 되자 이들은 그 부끄러운 과거에 대한 참회는커녕 재빨리 좌익과 우익의 깃발을 걸고 모두가 민족문학을 외치며 이전투구하다가 동족상쟁을 하고 분단을 고착화시키는 데 한몫을 하였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이러한 문인들의 행태는 지금도 여전히 권력과 이념을 따라서 철새처럼 이동하는 악순환을 반복하고 있다.

   1940년에서 1945년까지의 문학사가 이처럼 외세에 의해서 그리고 내부의 배반으로 얼룩진 역사이기에 백철, 조연현, 김윤식, 조동일 등 현대문학사 그 어느 곳에도 차마 친일문학에 대한 솔직한 평가와 비판과 반성을 기록하지 못했는지도 모른다. 따라서 이 시기는 암흑기요, 공백기요, 민족정기가 말살되고 민족문학사가 실종된 치욕의 시대로 기록될 수밖에 없는 시대였다.

   이처럼 민족문학사가 멸절되고, 모두가 친일을 하거나 붓을 꺾고 침묵하는 시대에 불행한 민족의 현실을 직시하면서 애국지사로 불온한 사상가로 이국의 망명객으로 감옥에서 망명지에서 저항하며 민족의 아픔을 처절하게 노래한 이육사, 윤동주, 심연수가 있었기에 바로 민족문학사의 암흑기, 실종기, 공백기로 치부될 이 시기가 그래도 민족문학의 명맥을 잇고 저항문학의 단서를 확보할 수 있게 되었다는 점에서 참으로 소중한 의미가 있는 것이다.

   이육사는 내국에서 교육을 받고, 1925년 항일단체인 의열단에 가입하여 북경으로 건너가 사관학교에 들어갔다. 귀국하여 조선은행 대구지점 폭파사건에 연루되어 3년간 옥고를 치렀다. 다시 북경으로 갔다가 1933년 귀국하여 김광균, 신석초, 윤곤강 등과 동인지 『자오선』을 발간하면서 「황혼」, 「 청포도」, 「교목」, 「파초」 등을 발표하여, 이미 내국 문단에 널리 알려졌다. 1943년에 북경으로 갔다가 체포되어 1944년 1월 북경 감옥에서 옥사했고, 유작 21편이 1946년 『육사시집』으로 발간되어 이때부터 육사에 대한 연구와 평가가 이루어졌다.

   윤동주의 경우는 1917년 북간도에서 태어나 그곳에서 소학교를 다니고 평양 숭실중학교에 들어갔으나 총독부에 접수되자 다시 용정으로 돌아가 광명중학교를 마치고는 1938년 연희전문에 입학하여, 조선일보 학생란에 글을 발표하고 북간도에서는 동시도 발표했었다. 일본 동지사대에 수학하던 중 불령선인으로 체포되어 1945년 2월 일본 복강형무소에서 옥사하였다. 따라서 그의 시가 문학사에 공개된 것은 1948년 유고시 30편이 시집으로 발간되면서 가능했고, 1955년 유족들의 발굴로 92편의 시집이 재발간되면서 그에 대한 연구와 평가가 본격화되었다.

   심연수의 경우는 1918년 강릉에서 태어나 7세에 러시아로 이주했고, 1936년 용정으로 다시 이주, 19세에 소학교를 졸업하고 동흥중학교에 입학, 22세인 1940년에 만선일보에 「대지의 봄」, 「여창의 밤」, 「대지의 여름」을 발표하고 64편의 조선 기행시조를 썼다. 1943년 일본대학 예술학원 창작과를 졸업하고 용정으로 돌아와 소학교 교사로 근무하면서 반일사상을 고취하다가 두 차례나 유치장에 구속되었고, 1945년 8월 8일 광복 수일 전 일제에 의해 피살된다. 그러나 그의 유작노트 8권(시 312편, 수필·소설 4편, 1년치의 일기·편지 등)은 2000년에 와서야 중국연변인민출판사가 『20세기 중국조선족 문학사료집』으로 그것도 국외의 교민들에 의해 발표되기에 이른다.

   특히 암흑기의 저항시인으로 문학사에 널리 알려진 윤동주와는 그 성장이나 항일정신이나 문학활동에 있어 쌍벽을 이루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심연수의 문학은 윤동주보다 50년이나 늦게 발표되었고, 그것도 국내가 아닌 국외에서 발표되었으며, 국내에서는 그의 고향인 강릉에서만 "심연수 시인 선양사업위원회"가 결성되어 뒤늦게 평가작업을 하게 된 것은 한편으로는 다행스러우나 문학사의 객관성을 위해서는 매우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따라서 친일문학을 재규명하고 과거사를 바로 세우겠다는 오늘의 정책당국이 심연수에 대하여 보다 관심을 가져야 할 부분임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사실 윤동주와는 1년 사이의 같은 연대에 태어났고, 함께 용정에서 소년시절을 보냈고, 윤동주는 연희전문시절 조선일보 학생란에 심연수는 만선일보에 각각 몇 편의 작품을 발표했으며, 다 같이 일본에 유학하여 윤동주는 영문학을 심연수는 예술학원 창작과를 수학했으며, 모두가 광복 직전 윤동주는 1945년 2월 28세의 나이로 일본 복강형무소에서 옥사하고, 심연수는 1945년 8월 간도 땅에서 27세의 나이로 피살된 삶의 역정은 물론이거니와 그들의 작품 또한 유고로 남아 윤동주는 100여 편, 심연수는 250여 편을 남겼다는 사실에서 역사적으로나 문학사적으로 윤동주와 심연수의 비중은 대등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윤동주는 광복 직후부터 지금까지 60여 년 간을 암흑기의 대표적인 저항시인으로 문학사의 중심에서 집중적인 조명을 받아왔음에 비하여, 심연수는 발굴된 지 7년이라는 시간의 한계도 있지만 그나마도 문학사의 중심지가 아닌 변방에서 평가 작업을 하게 된다는 것은 역사기술의 형평성에 심히 어긋나는 처사가 아닐 수 없는 것이다.

   민족시인이란 한 시대 민족을 대표할 만한 시인이어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민족적 정서를 담고 있는 뛰어난 작품성이 필수적일 것이다. 그러나 강한 민족의식, 즉 민족주의를 보여 주는 시인도 민족시인이라고할 수 있다. 이때 민족주의란 이념적인 것도 있지만 심정적인 것 또는 행동적인 것도 있다. 민족의 동질성 회복을 위한 강한 의식과 행동이 정치적으로 문화적으로 행동적으로 표출될 때 우리는 민족적이라는 말을 하게 되는데, 특히 민족시인이나 민족작가라고 할 때는 지사적 인격과 일관된 민족의식, 뛰어난 작품활동이 요구된다.

   이광수나 최남선이 초기에는 민족주의적 활동을 보였으나 후기의 변절이 이들을 민족시인이나 민족작가로 규정할 수 없게 만든 것이다. 이러한 정황에서 이육사, 윤동주, 심연수는 그들의 삶이 일관되게 항일정신을 보여 주었다. 이육사가 무려 17회나 투옥되었고 마침내 북경의 감옥에서 옥사한 것이나, 윤동주가 사상문제로 일경에 체포되어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옥사한 것이나, 심연수가 반일사상교육으로 수차례 유치장에 구속되었고 마침내 일제에 의해 피살된 사실은 그들의 생애가 일관되게 항일민족의식과 저항정신을 보여 준다.

   뿐만 아니라 그러한 지사적 삶과 더불어 당대 민족의 불행을 포기하지 않고 비록 개인적이기는 하지만 민족어인 한글을 지키며 높은 예술적 수준으로 당대의 비극을 극복하려는 의지를 작품화 하였다는 것은 마땅히 민족시인으로 저항시인으로 평가하는 데 주저함이 있을 수 없는 것이다.


3. 이육사, 윤동주 그리고 리얼리즘 시인 심연수

   이육사, 윤동주, 심연수가 같은 민족시인, 저항시인이라는 역사적 동질성을 지니고 있지만 이들이 표현하는 시적 상상력에는 편차가 있다. 이는 이육사, 윤동주보다 늦게 발견된 심연수 문학세계를 보다 분명하게 확인하는 중요한 단서가 될 것이다.

   이육사의 대부분의 시는 그 자신의 치열한 삶의 소산일 뿐 아니라 군국주의 파시즘의 폭압 아래서도 지사적인 절조와 품위를 잃지 않고 있다는 점에서 또한 광복에 대한 열망을 적절하게 형상화하고 있다는 점에서 높은 평가를 받아왔다. 따라서 그에게 덧붙여지는 민족시인, 저항시인이라는 관형어는 그런 의미에서 타당성을 지니는 것이라 할 수 있다. 특히 그의 대표작으로 널리 애송되는 「절정」(1940), 「교목」, 「광야」(유고) 등의 시는 가혹한 시대를 견디는 매서운 지사적 절조와 품격 그리고 시인 자신의 한시적 교양의 높이를 보여 주는 작품으로 평가할 수 있다.


까마득한 날에
하늘이 처음 열리고
어데 닭 우는 소리 들렸으랴.

모든 산맥들이
바다를 연모해 휘달릴 때도
차마 이곳을 범하던 못 하였으리라.

끊임없는 광음을
부지런한 계절이 피어선 지고
큰 강물이 비로소 길을 열었다.

지금 눈 나리고
매화향기 홀로 아득하니
내 여기 가난한 노래의 씨를 부려라.

다시 천고의 뒤에
백마 타고 오는 초인이 있어
이 광야에서 목놓아 부르게 하리라.

― 이육사, 「광야」


   「광야」는 제목부터가 웅장한 공간이다. 특히 "까마득한 날"에서부터 "천고의 뒤"에 이르는 시간의식은 시인의 상상력이 얼마나 우주적인 것인가를 짐작하게 한다. 따라서 이 시는 남성미가 있고, 대륙적인 풍모를 느끼기에 충분한 거대한 상상력의 시다. 그러나 가혹한 시대적 상황에 대처하는 시인의 자세는 「절정」과 마찬가지로 관념적인 정신주의적인 경향을 띠고 있다. "지금 눈나리고 / 매화향기 홀로 아득하니 / 내 여기 가난한 노래의 시를 뿌려라"라는 결구의 진술은 그러한 정신적인 깊이와 폭이 가혹한 현실에 대한 정면대결보다는 천고의 뒤에나 가능한 먼 미래의 시간으로 미루어 놓고 있음을 알 수 있게 해 준다. 이는 바로 그가 유교적 세계관이나 한시가 갖는 관념적 공간의식 즉, 선비주의와 지사적 정신주의가 갖는 특징 일 수 있다.

   한편 윤동주의 시가 주목을 받게 된 것은 광복 전에 발표되지 못했던 그의 시들이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라는 제목의 시집으로 묶여 나온 1948년 이후의 일이었다. 이후 그의 시는 광복을 눈앞에 두고 일경에 체포되어 옥중에서 사망했다는 그의 비극적 삶과 함께 일제 말기의 시대적 상황 속에서 지식인의 실존적 고뇌와 준엄한 윤리적 태도를 보였다는 점에서 암흑기에 씌어진 가장 대표적인 저항시로 평가받게 되었다.

   물론 시인의 삶과 시가 동일시 될 수 있는가라는 이의도 있을 수 있지만 붓을 꺾기조차 힘든 일제 말기의 시대적 상황을 감안하면, 일견 소극적인 자기 성찰에 머무른 것처럼 보이는 윤동주의 시에서 저항의 의미를 충분히 인정할 수 있다. 그런데 윤동주의 시를 떠받치고 있는 정신적 바탕은 시대적 현실에 대해 방관자적 입장에 처해 있는 자신의 처지에 대한 자기 반성과 고뇌라 할 수 있다. 그의 시의 중심적인 심상을 이루고있는 "부끄러움"은 이 같은 자기 반성과 고뇌의 필연적인 결과이다.


종 소리도 들려오지 않는데
휘파람이나 불며 서성거리다가,
괴로웠든 사나이,
행복한 예수 그리스도에게
처럼
십자가가 허락된다면

목아지를 드리우고
꽃처럼 피어나는 피를
어두워가는 하늘 밑에
조용히 흘리겠습니다

―윤동주, 「십자가」


   이 시의 중심적인 주제는 자기 희생과 헌신에 대한 다짐이다. 이러한 다짐이 주체의 삶에 의해 뒷받침받지 못할 때 자칫 수사학적 결의에 머물 수도 있지만 윤동주는 끊임없는 자기 성찰과 윤리적 고뇌 끝에 이러한 결의를 진술함으로써 차원 높은 진실성을 획득하고 있다. 특히 그의 시는 삶과 신앙과 시가 하나로 육화된 경지에서 비로소 획득된 깨달음을 형상화한 것이기에 단순히 암흑기의 명맥을 잇는 민족시나 저항시일뿐만 아니라 오늘에도 여전히 감동적인 언어로 살아 있는 것이다. 좀처럼 고백이 없는 우리의 문학사에서 윤동주는 철저히 자기를 참회한다는데 시적 연민을 느낀다.

   이처럼 이육사가 높은 정신주의와 지사적 절조를 보여 주는 유교적·선비적인 것이고, 윤동주의 시가 부끄러움에 대한 참회와 자기 희생을 통한 헌신의 다짐이라면, 심연수의 경우는 철저히 부정적 현실을 직시하고 이를 증언한 리얼리즘 시인이다.


길다란 턴넬
캄캄한 굴 속
자연이 가진 신비를
뚫어 놓은 미약한 힘
눈을 감고 걸어도
밟히우는 송장
바닥 가득 늘어 자빠진 꼴
아, 빛이 없어 죽었나
빛이 싫어 죽었나
그러나 또 무수한 생명이
레루를 베고 침목을 베고 누워
지나갈 바퀴를 기다리고 있음을
또 어찌하리
싸늘한 송장의 입김에서 들려오는
울부짖는 소리
우를 우러러도
아래를 굽어보아도
캄캄한 굴 속, 캄캄한 굴 속

― 심연수, 「턴넬」 전문


   자작농에서 소작농으로, 농업노동자로 그도 어려워 도시 변두리의 날품팔이로 화전민으로 그도 어려워 만주로, 일본으로, 연해주로 유랑하게 되는 수백만 유민들의 슬픈 실상, 탄광 노동자로 도로 노역자로 터널 노역자로, 노예처럼 걸인처럼 유랑하던 당대 민족의 실상, 그것은 지옥의 묵시록처럼 죽음의 행렬처림 처절한 것이었다.

   민족의 위기에는 예언자적 사명을 가져야하는 문인들이 대부분 친일문학으로 변절하고, 일부는 침묵하고 있는데 심연수는 러시아로 만주로 유랑하는 동족과 고통을 함께 하면서 그들의 참혹한 절망상을 생생하게 기록하는 최후의 증언자가 되기를 결심한다.

   그러기에 그의 시는 그와 함께 고통받는 민족의 울분이고, 절망이고, 현실이다. 이는 이육사가 「광야」나 「절정」 등 당대의 절망을 상징적인 시어로 표현한 것이나 윤동주가 당대의 현실을 자기 반성의 신앙적인 언어로 표현한 것과 달리, 심연수의 시적 표현은 "눈을 감고 걸어도 / 밟히우는 송장"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기록하고 있다. 이러한 표현은 「이역의 만종」, 「앞길」, 「인생의 사막」, 「만주」 등 많은 작품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따라서 심연수의 시는 당대현실의 참상을 목도하면서 이를 직설적으로 증언한 암흑기의 리얼리즘 시인이었음을 확인하게 된다.

   최근 문학사에서 일제하의 현실을 사실적으로 증언한 시인으로는 1930년대 후반의 이용악, 오장환, 백석을 든다. 이용악의 「북쪽」, 「낡은 집」, 오장환의 「북방의길」, 백석의 「팔원」 등은 고향을 등지고 북쪽으로 떠나는 사람, 남의 집에 가는 사람들로 농촌 해체, 가족 해체의 실상을 보여 준다.


눈덮인 철로는 더욱이 싸늘하였다.
소반 귀퉁이 옆에 앉은 농군에게서는 송아지의 냄새가 난다
힘없이 웃으면서 차만 타면 북으로 간다고
어린애는 운다 철마구리 울듯
차창이 고향을 지워 버린다
어린애가 유리창을 쥐어뜯으며 운다

― 오장환, 「북방의 길」


   일제의 가혹한 수탈로 궁핍해진 농민들이 북행하는 참상이 잘 드러나고 있다. 그러나 이들 시는 1940년대 이전 그나마 발표가 가능한 시기였고, 그래도 문학적인 여유가 있는 시기였다. 그러나 심연수의 시는 한글이 폐지되고 아침마다 황국신민 서사를 해야 하는 암흑기인데도 이들보다 더욱 사실적으로 강렬하게 표현했다는 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물론 심연수 시가 당대에 발표된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이 점은 이육사나 윤동주나 오장환에게도 마찬가지다. 1940년에서 1945년 사이 암흑기에 정면으로 노출된 시가 아니라 그 이전이거나 아니면 그 뒤 유작으로 발견된 것들이다.

   한편 심연수는 이처럼 처절한 현실을 증언하는 리얼리즘 시를 쓰면서도 결코 미래를 포기하지 않는다. 민족시인이나 저항시인이 갖추어야 할 덕목은 현실을 냉정히 직시하고 비판하면서도 결코 미래를 포기하지 않는 지사적 의지와 예언자적 소망을 제시하는 데 있다. 이는 이육사가 "천고 뒤의 백마 타고 오는 초인"의 열망이나 윤동주가 끊임없이 헌신을 다짐하는 미래와의 약속들에서 드러난다. 그런데 심연수의 경우도 미래가 분명하다.


하늘가 지평선
아득한 저쪽에
휘연히 밝으려는
대지의 려명을
보라. 그 빛에
들으라. 그 마음으로
달려라. 해가 뜰
지평선으로
막힐 것 없는 새벽의 대지에서
젊음의 노래를 높이 부르라

― 심연수, 「지평선」


   심연수의 시에도 태양이 밝아오는 새벽의 시간이 있고, 대지를 밝히려는 여명의 미래가 있다. 이는 바로 역사의 새벽에 대한 예언이고, 암담한 현실을 넘어서는 광복의 공간에 대한 믿음이다. 모두가 민족사의 희망을 포기하고 일제의 현실을 사실로 수리하는 시대에 의연히 민족의 미래를 확신하는 민족의식, 역사인식, 미래에 대한 확고한 신념, 여기에 민족시인, 저항시인으로서의 심연수 문학이 함께 있는 것이다.

   이처럼 심연수는 이육사, 윤동주와 더불어 일제의 암흑기에 민족문학의 명맥을 지킨 시인이었을 뿐만 아니라 자아와 민족이 부재한 역사적 현실을 직시하고 이를 초극하고자 이육사는 높은 지사적 정신주의로, 윤동주는 참회와 헌신의 신앙적 결의로 활동했다면 심연수는 참혹한 현실을 철저히 증언하는 리얼리즘의 시인으로 당대 현실을 드러냈고, 마침내 도래할 미래의 시간과 공간을 확신하면서 예언자적 시인의 사명을 다했다.

   따라서 민족시인으로 저항시인으로, 그리고 당대를 사실적으로 증언한 리얼리즘 시인으로 심연수 문학을 새롭게 조명하고 문학사적 의미가 정당하게 확보될 수 있도록 학계와 일반의 노력이 가일층 요구된다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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