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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화국 장편소설 < 꿈꾸는 설악> 연재 48회
2010-05-05 09:00:43
38hwakook

조회:1260
추천:96
소설 <꿈꾸는 설악> 연재 48회|┃▒ 소설/-이 화 국 ▒┃

 

 

 

18. 약이 되고 병이 되고 

 

 

 

 

    약과 병

   언제나 그렇듯이 선희는 아침을 먹고 현관 소파에 앉았다. 복부인 칼라 팀은 아침 식사 후에

온천을 향해 떠났다. 그 뚱뚱한 육체들이 산을 탈 리가 만무한 일이다. 선희는 지난 밤 소란을 떠올리고 싶지 않았다. 하물며 큰 손이라던 무슨 물산 사모님이란 여자에 대해선 더더구나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어젯 밤 밴드가 퇴장하고 그녀들은 맥주를 더 가져오라 해서 마셨다.

덩치가 큰 만큼 대주가들이었다. 그 바람에 민호가 다리품을 더 팔아야 했다. 노군을 시켜 올려 보냈

더니 그 핸섬 보이를 불러오라고 야단을 쳐서 결국 민호가 술과 마른 안주를 들고 올라가야만 했다.

 

    해가 늦게 지는 여름밤은 자정을 넘겼어도 관광객들로서는 자리에 들기에 이른 시간인 모양이었다.

그들은 잘 생각을 도무지안 했다. 하지만 나머지 일은 정군도, 노군도, 주방장도 있으니까 알아서 하

겠지 하고 선희는 자기 방으로 들어와 누웠다.

 

    쉽게 잠이 올 리 만무했다. 김은태가 없는 잠자리가 오히려 호젓하게 느껴졌다. 별 볼일 없이 곁에 자면서 코고는 소리를 들어야 하는 괴로움도 없고, 알 수 없는 잠꼬대 소리에 단잠을 깨어야 할 일이 없으니 그 점도 다행이었다.

 

    동시에 민호를 그려보았다. 그를 안아보고 싶다는 열망에 사로잡혀 괴로운 시간을 보내기도 하지만

그랬다 까마귀가 머리 위를 지나가는 것을 막을 수는 없지만, 까마귀가 머리 위에 집 짓는 일은 막을

수 있듯이, 옳지 못한 행동을 물리칠 힘이 있을 터였다.

 

    나를 지배할 줄 아는 사람만이 남을 지배할 수 있다. 그러자면 우선 침착할 필요가 있다.

어떤 경우라도 흥분하지 말자. 침착하자. 선희는 자기를 타이르면서 그렇게 할 수 있으리라고

자신을믿기로 했다.

 

    눈을 감았다. 조금 전의 광경이 떠올라서 중얼거렸다.

    사람이 밥 벌어 먹으며 사는 방식도 참 여러 가지구나!

남의 일   

    남의 일처럼 우습기도 했다. 제발 다 남의 일이었으면 싶었다. 그 쓴 웃음 뒤로 돈이 안되는 고생이

더 한심스러워 한숨이 묻어나왔다.

 

    밖에서는 한동안 현관이 시끄러웠다. 특실은 별도로 계산해야 한다는 민호의 목소리가 섞여 있었다.

    ‘야 임마, 잘난 척 하지마.’ 라는 굵직하면서 혀 꼬부라진 여자의 목소리도 들렸다. 그 뒷일에 대해

상상의 그림을 펼치는 일은 싫었다. 다만 아침 입금 중에 특실 방 한 개의 값이 추가되어 있었다.

 

    그 잘난 물산 사모님이라는 여자가 잔 모양이었다. 아침 밥을 먹으려고 식당으로 내려갔을 때

주방장 대식이 엄마가 한 말이 귀에서 맴돌았다.

  “어제 밤 정군이요. 그 뚱뚱한 여자한테 납치되어 특실 방에서 잤대요.” 

 

  “그걸 어떻게 알아?” 

  “노군이요. 정군이 맥주를 들고 특실로 올라가는 것을 봤는데 안 내려왔대요. 아침에 내려와선 거의

울상이더래요. 노군도 눈치가 있던지 정군이 화장실 간 새 주머니를 살폈더니 수표가 들어 있더래요.

거금이요.” 

 

“그런 얘기 우리끼리만 합시다. 대식 엄마. 알아 들었겠지? 이런 업소에 살려면 입이 무거워야 한다구.” 

“지가 어린앤가유 뭐.” 

   특실요금

    저렇게 아무나 가질 수 있는 건데 왜 나는 가질 수 없을까. 선희의 마음은 아프고 산란했다. 민호가

겪은 밤에 대해 아는 바가 없기 때문에 펼쳐지는 상상은 여러 가지였다. 뚱뚱한 여자의 폭력 앞에 굴한

것일까. 적어도 남자인데 그럴 수는 없을 것 같았다.

 

    아니면 눈앞에 흔들어 보이는 거금 수표 때문이었을까. 선희는 민호를 그렇게 치사하고 경박한 인

간으로 만들고 싶지 않았다. 어떻게 그런 일들이 벌어질 수 있다는 말인가? 다른 남자는 다 그럴 수

있어도 민호는 결단코 그럴 수 없을 것이다.

 

    음탕하고 광기에 가득찬 색욕의 손이 민호의 몸뚱어리를 쓰다듬고 지나갔다고는 더 더욱 믿을 수

없었다.

 

  그러니까 그 거금 수표는 뚱뚱한 여자가 끝까지 말을 듣지 않는 어린 남자를 위해 선사한 선물인지도

모르는데 불결한 그림만 펼치는 자기가 더 불결하고 악의에 가득한 사람이라고 모든 잘못을 자기

앞으로 돌리기로 했다.

 

    무학대사와 이성계가 친하게 지낼 때 하루는 이성계가 우리 농담을 하자 해놓고 이성계가 무학

대사를 향하여 '스님은 돼지같이 보입니다' 라고 말했다. 그러자 무학이 이성계를 향하여

'왕은 부처님같이 보이십니다' 라고 받았다.

 

    그러자 이성계가 우리 격의 없이 농담을 하자 했는데 그렇게 말하면 무슨 재미가 있소 라고 하자

그 말 끝에 무학대사는 언중유골(言中有骨)을 던졌다.

'돼지 눈에는 돼지만 보이고 부처 눈에는 부처만 보이는 법입니다' 라고.

 

    이래서 이성계가 크게 한 방 먹은 셈이지만 선희는 자기 눈이 돼지 눈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을 떨

칠 수 없었다. 이러나 저러나 마음 한 구석이 자꾸 아려왔다. 아프고 씁쓸한 기분은 마찬가지였다.

그 표정을 한 번 살피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민호는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더위가 가시려면 아직 멀었나 보다. 늦더위를 하는가 보았다. 여전히 더웠다.

변심한 애인을 기다리듯 이 하루도 어디서 굴러올 관광객이나 기다릴 것인가. 선희는 다른 예약이

없으니 마실이나 다녀올 마음으로 노군을 카운터에 앉혀놓고 현관을 빠져 나왔다.

늦더위  

    100 여 동을 육박하는 업소 중에서도 제일 가까이 지내는 자운 모텔로 올라갈 참이었다.

자운 형님, 자운 형님 하면서 같은 교회를 다니고 있었지만 교회에서 돌아올 때는 상가 식당에 들러

성경책과 찬송가책을 식탁 밑에 놓아두고 안주 한 접시에 소주 한병을 반 씩 나눠 비우고 오는 그런

사이였다.

 

    그들은 신앙이 뿌리 내리고 틀에 박힌 교인들이 되기에는 교회에 발 들여놓은 시간이 모자란지도

몰랐다.

    만나면 꼭 해야 할 중요한 얘기는 없었다. 안 되는 장사에 한숨을 쉬다가 목구멍이 포도청이지

하면서 입으로 소주 한 잔씩을 배달하는 일이 고작이었다.

 

    술 마시기 전에 자운 형님이 늘어놓는 서두는 몇 번 들어도 똑 같은 레퍼토리지만 아주 재미

있었다.

  “다래야, 니는 예수님이 베푸신 첫 기적이 무엇인지 아노?” 

    선희는 그게 무슨 뜻인가 싶어 뻔히 쳐다보게 된다.

 

 “그기 말이다. 잔칫집에서 포도주가 떨어졌다카이. 잔칫집 사람들 기분이 우짜 되겠노? 우리 좋으신

예수님젊은 아버지께서 그걸 먼저 아시고 물로 포도주 만드신 기 첫 기적 아이가? 그라니 우리가 우리

의 우울한 기분을 달래기 위해 소주 한 잔씩 하기로서니 죄가 안 된다 이 말이다. 알았제?

그러니 자 건배.” 

 

  “건배.” 

    그러면서 둘이는 공부 시간에 공부는 하지 않고 만화책을 보는 만큼이나 재미 있어 낄낄거리는 것

이었다. 자운 형님은 한 마디 더 보태는 일을 잊지 않았다.

 

  “내는 말이다. 천주교 사람들이 술 마시는 기 제일 부럽다. 예수쟁이들은 술을 마시마 천벌이 떨어

지는 맨쿠로 야단이고 괴물 보듯이 외면하니 질린다카이. 하느님은 하늘만큼 클 낀데 그 하느님 믿는

사람들이 와 그리 소견들이 옹졸한가 몰라. 정말 알 수 없다카이.”

 젊은 아버지

“아이구 형님, 그러지는 마세요. 어떤 신부님은 알코올 중독가가 되어서 수전증에 걸리기도 한답니다.

목사가 결혼해 살면서 자식을 낳고, 그 자식들 위해서 욕심 속으로 빠져들어가는 것도 맘에 안 들지만,

그래도 술중독이 되는 것 보다는 인간적으로 사는 게 더 낫지요.

 

제가 천주교 다니다가 예배당으로 옮긴 것 아니우? 그래서 자꾸 비교해서 보는 버릇이 생겼는데

결국은 좋은 점, 나쁜 점이 공평하게 반반씩인 것 같아요.”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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