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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화국 장편소설 < 꿈꾸는 설악> 연재 47회
2010-05-05 08:57:41
38hwakook

조회:1205
추천:103
장편소설 <꿈꾸는 설악> 연재 47회|이 화 국

   대중은 딱딱한 논설보다 연애 소설을 즐겨 읽는다.

    대중은 그렇게 고차원일 수 없다. 선희도 그 중 한 사람일 뿐이다.

상당 기간 선희는 아주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것에 가치를 부여하며 살았었다. 하지만 지금 시점에선

그 모든 것이 깨어져 나가고 있었다.

 

    선희는 자신이 아주 평범하며 가능하면 더 후퇴하고 뒷걸음질을 쳐서 어린애까지라도 되고 싶었다.

가장 철저하게 본능대로 움직이며 때려 부숴도 사랑 받는 게 어린 아이들이었다. 생각나는 대로,

하고 싶은 대로 나를 중심한 단순한 행동의 연속이 어린 아이들이 하는 짓이다.

 

    욕망의 무분별과 단순성이 왜 이 시점에서 그렇게 아름다워 보이는지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선희는 배가 고프면 밥을 먹어야 하듯이 배고픈 육체의 본능이 무엇을 원하는지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 본능을 억압하는 장치들은 너무 많았다. 세속적 통념, 가치관, 인격, 양심, 종교, 도덕, 법률

등등 아주 많이 있었다.

 

    그러나 아무리 무섭게 정죄를 해도 사랑은 사랑이며 사랑일 뿐이다. 사랑이라는 낱말 뒤에는

‘한다’라는 동사가 붙어다닐 때라야 의미가 살아난다. ‘사랑 한다'는 행위를 뜻한다. 무엇을 하는가?

움직임이 없는 상태가 죽음이라면 사랑하기 위해서 무엇인가를 해야 한다.

 

    다만 인간에게서 신의 사랑을 강요하는 일이 있어선 안 된다. 하지만 사랑 속에 빠진 이들만 빼고는

모두가 사랑의 심판자로 다가선다. 신처럼 우월한 자리에서 사랑에게 조차도 심판의 칼을 휘두른다.

인간의 사랑을 모르는 이가 어찌 신의 사랑을 알까 보냐!

 사랑    

    ‘Where love is God is.’ 라면서 톨스토이가 선희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인간의 존재가 없으면 신의

존재도 무용지물이다. 아가페는 에로스가 있어야만 설명이 되는 부분이다.

낮을 알기 위해서는 그 캄캄한 밤의 통로를 지나와야만 한다.

 

    신은 무흠하고 완벽한 자신의 존재를 알리기 위해서 인간을 의도적으로 나약하며 부족하게 창조

하신 것이리라. 그래서 인간은 영원히 완전할 수가 없다. 마땅히 부족하고 그 결핍된 부분을 운명처

럼 껴안고 살아야 한다. 다만 주어진 처지에 충실함과 지극히 인간다움이 신에게로 가는 길이다.

 

    김은태가 되짚어 나가버린 훵한 공간에서 선희는 민호를 보며 그런 생각들을 했다.

   ‘나 는 오 늘 밤 너 를 안 고 싶 다.’

    신은 후회를 안 해서 신이다. 만일 어떤 사람이 자기의 잘못을 인정하면서도 절대로 반성이나 후회

하는 일이 없다면 좋은 의미든 나쁜 의미든 그도 마땅히 신의 경지에 이른 것이다.

마귀도 신은 신이니까.

 

    그러나 과연 그런 사람이 있을 수 있는가. 후회는 인간에게 운명처럼 따라 붙는 것. 어쩔 수 없다.

    생애에 단 한 번 도박을 해 보고 싶은 본능의 충동으로 감정과 싸우면서 용감하게 그러나 어렵게

말을 빚었다.  ‘나 는 너 의 모 든 것 을 갖 고 싶 다. 욕 심 많 은 어 린 애 가 되 고 싶 다. 그 런 후 에

는 모 든 것 을 잊 고 싶 다.’

  갖고 싶다

    깊은 굴헝에서 부터 올라오는 컴컴한 소리에 선희는 깜짝 놀랐다. 그 뻔뻔스러움과 당당한 주장에

어이가 없었다. 그 때 선희는 한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비록 책 속에서 만난 사람이지만 연애에

진 한 사나이의 음성이었다. 감탄 혹은 발견이라고 해야 옳을 일이었다.

연애에 빠진 그 사나이는 외치고 있었다.

 

    ‘아아! 나는 연애를 하고 있다. 이렇게만 썼을 때 나는 눈물이 나와 어쩔 수 없었다. 생명은 우주의

절대적 실재이고 연애는 생명의 최고의 표현이다. 철학과 예술과 종교를 합쳐 한 덩어리로 만드는 화

염이다. 생명과 생명이 부둥켜 안은 절대적이며 원시적인, 영원하고 자연적인 실재 안에 몰입하려는

몸부림이다. 신이 되려는 의지이다.’

 

   ‘사랑과 인식(認識)의 출발’이라는 일본 작가가 쓴 책에서 주인공이 그렇게 말한 걸 선희는 기억하고

있었다. 연애는 생명의 최고의 표현이라고, 생명과 생명이 부둥켜 안은 절대적이며 원시적인 영원하고

자연적인 실재 안에 몰입하려는 몸부림이라고, 신이 되려는 의지라고 말하고 있었다.

 

    왜 사람들은 무엇에 정신이 팔려 실기(失期)하며 시행착오를 일으키는지, 그리하여 차가 떠난 후에

손을 드는지 알 수 없었다. 때늦은 시각에서만 섬광처럼 반짝이다 사라지는 빛을 느끼면서 그 빛을 잡

으려고 안간힘 하는지 모를 일이었다.

 

    그 빛은 이미 소멸 되어가고 있는데도 잃어버린 그 빛을 향해서 두 손을 쳐들며 그 이름 앞에 서는

지 가련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한 때 선희는 연애 지상주의자의 말이라고, 이 세상엔 연애 말고도 중요하며 가치 있는 일들이 너무

많다고 일축했었다.

그러나 지금 와서 같은 내용의 말들이 자기 맘을 대변해 주는 데에 놀람을 금치 못했다.

놀람    

    자기가 긍정했던 일이 어느 날 부정이 되고, 부정했던 일이 훗날에 긍정이 되는 일들을 만나면서

선희는 철없이 지껄이며 산 날들이 부끄럽고 한탄스러웠다.

 

    이층에서는 한바탕 소란이 끝나고 밴드는 돌아가려고 현관으로 내려왔다. 그들이 받은 팁의 일부

인지 얼마를 떼어 민호에게 건넸다. 민호는 사양한다는 뜻을 보였지만 선희는 받으라는 의미로 고개

를 끄덕여주었다.

선희는 애띤 남자가 목에 걸고 있는 색소폰을 쳐다보았다.

 

    벨기에의 색소라는 남자가 만들었다는, 그래서 색소폰이라 명명되었다는 그 악기는 끈으로 매여

목에 걸려있었다. 그러니 절대로 주인을 배신할 수 없으리라. 제발 그래주기를 바랬다.

 

    배신이 또 다른 배신을 낳는 세상은 얼마나 혐오스런 일로 가득 차 있는가 말이다. 서로 영원히

사랑하는 사이가 되어 아름다운 음악이라는 아들 딸들을 많이 낳으라고 속으로 간절히 빌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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