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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화국 장편소설<꿈꾸는 설악> 연재 45회
2010-05-02 10:26:22
38hwakook

조회:1471
추천:94
소설 <꿈꾸는 설악> 연재 45회|시와 소설 / 이화국
 

   실제로 설악산에서는 신원을 확인할 수 없는 시신이 발견되는 일이 적지 않았다.

산이 높은 만큼 골이 깊어서 낙엽에 묻히던가, 눈에 묻히면 아무의 눈에 띄지 않은 채 세월이 흘러

간다. 그런 시신 중엔 분명 실족사가 있고 자살이나 혹은 타살이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선희는 표시 나지 않게 가만히 한숨을 내쉬었다. 신나게 놀고 있는 여자들을 문밖에 서서 구경하며,

자기는 언제 여행을 떠나 모든 일상에서 벗어나서 해방을 맛볼 수 있나 생각하니 아득했다. 생각이

거기에 다다르자 끝 없는 나락으로 빠져들어가는 느낌이었다. 그런 행복은 영원히 내 몫일 리 없다고

머리를 저었다.

 

    갑자기 음악이 또 빨라졌다. 다만 무조건 모든 음이 빨라야 한다는 것은 혐오였다. 그녀들은 맥주를

마셨고 무당처럼 신이 오를 대로 올라 있었다. 밴드의 남자들은 모두 젊은이들이었다.

신나게 쿵작거릴 때는 선희도 발가락이 까딱거려지기도 했지만 귀청이 떠나갈 듯한 소리엔 머리 속이

다 위잉 울리면서 어지러웠다.

 

    그러나 자주 보는 풍경이 아니라서 구경하는 중에 연주하는 그 젊은이들이 어떤 표정을 짖고 있는

지 궁굼하여 그쪽으로 시선을 던졌다. 약속이나 한 듯 모두 눈을 감고 있었다.

쿵작  무당

   그녀들은 두 개의 수박통을 뒤로 매단 듯한 엉덩이와 파도처럼 출렁이는 유방을 흔들면서 드러머와

기타리스트와 색소폰 주자를 향하여 악기 사이와 주머니 속에 한 곡조가 끝날 때마다 돈을 찔러넣었다. 언뜻 보아도 돈은 꽤 되어 보였다.

 

    고사 지낼 때 삶아 놓은 돼지 입에 돈을 먹인 것을 보았는데 그것과 무엇이 다르냐고 선희는 혀를

찼다.

어쨌던 돈을 코 앞에 대고 흔드는 한 저들은 연주를 멈추지 않을 기세였다. 그들은 밤이 새도록 어떤

소음이라도 내지 않으면 안 될, 팔려온 운명들이었다.

 

    좀 더 아름다운 돈은 없을까. 미국의 작가 윌리엄 서로이언의 소설 인간희극에 등장하는 조그만

시골 전보 취급소의 소장 스팽글러의 얘기 같은 것 말이다. 

 

    스팽글러는 어느 날 혼자 사무실을 지키고 있다가 권총을 들고 뛰어든 젊은 강도를 만났다.

강도는 폐병을 앓고 있었으며 고향으로 돌아갈 여비가 없어 떠도는 청년이었다. 스팽글러는 권총을

든 그 청년에게 75 달러 쯤 되는 돈을 몽땅 내놓으며 말했다.

 

    “이 돈을 주겠네. 그러나 자네가 총을 들이댔기 때문이 아니야. 자네가 꼭 필요로 하기 때문이지.

자네는 돈이 필요한 사람이지 강도가 아니야. 그리고 자네 병은 낫지 않을 만큼 심하진 않네. 어머니가

자넬 기다리고 있어. 이 돈은 자네 어머니께 드리는 선물인 것이야. 그러니 그걸 가진다고 도둑이 되는

건 아닐세. 돈을 넣고 그 권총을 그만 치우게. 그리고 집으로 어서 돌아가게나.”

 

    스팽글러의 말이 떨어지자 청년은 감동하여 마음을 돌린 다음 이렇게 말했다.

    “당신이 반항적 태도를 취했더라면 나는 당신을 쏘고 나도 죽을 각오였습니다.”

   스팽글러

    많지는 않지만 그렇게 사랑과 신뢰가 어린 따뜻한 돈은 없는 것일까. 살인을 저지를 살벌한 마음을

돌려 놓을 수 있는 귀한 100 달러가 없는 것일까. 무려 19년의 옥살이에 종지부를 찍게 만든 은촛대가

없는 것일까. 쟌발잔은 도둑이 아니며 은촛대는 그에게 준 선물이라고 거짓말까지 하는 진짜 멋진 신

부님은 없는 것일까.

 

    밤 하늘에 십자가는 날마다 빨갛게 꽃을 피워도 예수님은 어디 숨어서 왜 만나지지 않는 것일까.

   한 푼의 돈에는 인색하면서 시간과 생명을 한없이 낭비하는 사람들이 돈에 인색한 만큼 시간과

자기 생명에 대해 인색하다면 그것은 매우 유익할 뿐더러 칭찬해야 마땅할 일이었다.

 

    그런데 선희도 그렇게 살지 못한 무리중에 한 사람일 거라는 생각에 부끄러움이 앞섰다.

    악기를 연주하는 이들에게 사랑과 성의가 담긴 돈이 아니라 구겨박혀 찔려진 지폐를 보면서 선희는

사업에 망하길 잘 했다는 생각을 해보았다. 부를 축적하며 승승장구하는 생활만 했더라면 바늘 구멍

으로 들어가는 낙타 밖에 더 되었겠는가.

 

    편한 구두는 발의 존재를 인식시켜 주지 않는다. 사람이 기피하는 실패와 아픔 속에서 진정한 자아

의 모습을 찾는다면 그 실패는 병을 고치는 쓴 약일 수도 있는 일이었다.

 

    선희는 여러가지 생각속을 헤매며 광란의 도가니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젊은이들을 향해

아무렇게나 구겨 박힌 지폐는 천박하게 굴러 사는 창녀 같았다.

개같이 벌어서 개같이 쓰는 돈이라면 돈이 너무 불쌍할 터였다.

 광란    

    젊은이들은 아무 흥도 없이 기계적으로 악기를 뜯거나 불거나 두드리고 있었다. 뱃속에 든 아이도

돈 봐라 하면 세상 밖으로 빨리 나온다고 돈을 야유한 말이 판치는 세상이지만, 실제로 음악이 예술로

승화된 차원에서가 아니라 다만 돈을 위해서만 소리를 내야 한다는 현장을 눈앞에 보니 어쩐지 한심

하고 슬퍼졌다.

 

    마냥 더 세게, 더 큰 소리로, 좀 더 빨리라는 주문에 항복한 음률은 혹사 당하고 있었다.

그 음률들이 사람이 아니라도 불쌍했다. 대단한 소요였다. 산만한 소리의 잔치가 몰고 온 피로 때문에

선희가 돌아서려는데 어느 결에 왔는지 주방장도 옆에 서서 구경하고 있었다.

 

  “재미 있지?” 

  “하이고 귀청 떨어지겠는디유.” 

    선희는 좀 전에 민호가 얼굴을 붉히며 자리를 떴기 때문에 그 생각을 하면서 아래층으로 내려왔다.

 

    주방장도 같이 따라 내려왔다. 민호는 카운터에 앉아 무언가를 끄적이다가 멈추었다.

주방장이 일렀다.

  “정군, 점심을 굶었잖여. 저녁도 안 먹는감? 죽을 끓여 놨응께 가서 좀 먹어 봐.” 

    언제나 선량한 대식이 엄마였다.

 

  “점심을 안 먹다니?” 

    선희가 물으면서 뭐라고 입을 열려는데 민호는 휘잉하니 일어나서 식당으로 내려갔다. 선희는 따라

내려갔다. 멀건 죽사발을 앞에 놓고 숟가락으로 뜨고 있었다. 살려고 먹는 사람 같지 않았다. 그의

어느 구석 자리에서도 살려는 의지가 엿보이지 않았다.

 살려는 의지

    선희는 민호가 앉은 식탁 건너 자리에 앉았다. 그러자 민호는 고개를 푹 숙여버렸다. 한 마디 더

하면 엉석받이 아이처럼 울고 말 것 같았다. 선희는 왜 맨날 뭐가 그리 슬프냐고 물으려다 말았다.

그리고 자기가 바보란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민호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한다 싶어 안타까웠다.

민호 앞에서 선희는 아득한 미로를 헤매는 듯한 느낌에 늘 갇히고 있었다. 나는 네가 아니잖아.

그러니까 네 맘을 모르지. 그래서 인간은 고독한 존재란 거지. 누군 안 그런가 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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