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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화국 장편소설 <꿈꾸는 설악> 연재 42회
2010-05-02 10:17:04
38hwakook

조회:1139
추천:73
소설 <꿈꾸는 설악> 연재 42회|시와 소설 / 이화국  

    온천 지역에도 신축 건물이 자꾸 들어섰다.

    또 그 주변에 얼마나 많은 콘도가 들어섰는지 자연 훼손도 문제였지만 설악동 숙박 업주들로서는

무한한 경쟁자가 세력을 넓혀간다는 점에서 위협을 느끼고 있었다.

 

    명성 콘도는 그 이름에 걸맞게 명성을 떨치면서 얼마나 큰 규모를 자랑하는지 감히 상대가 안 되는

줄 아는 까닭에 겨우 모텔 하나 운영하는 그들로서는 망연자실 바라보는 일이 전부였다.

    경쟁자

    어쨌거나 온천장에 왔으니 목욕할 일만 남았다. 선희는 한일장 부인과 동병상련의 얘기를 나누며

서로 등을 밀어주었다. 더러운 때가 있어서가 아니라 서로의 살갗에 손이 닿을 때 느끼는 정이 소중

하여 공연히 때를 미는 척 시간을 끌며 천천히 물을 끼얹는 것이다.

 

    그런데 왜 갑자기 잠자리에서 팔을 뿌리치던 김은태가 생각나는 것일까. 이제 살갗을 부빌 일도

없는 사이가 되어있다니 정 들일 길이 아득하게 느껴졌다. 밖으로 나와 소나무 밑에 마련된 둥근

테이블에 둘러 앉았다. 맥주와 사이다를 주문했다.

 

    더운 날엔 어름같이 찬 물로 목욕하면 시원하지만, 뜨거운 온천물에 목욕하고 나와서 소나무 밑에

앉아 금방 냉장고에서 꺼낸 맥주나 사이다를 한 잔 마시면 얼마나 더 상쾌한지를 그들은 알고 있었다.

더구나 그럴 때 코에 스미는 소나무 향내는 더 짙어서 심장 깊은 곳까지 스며들었다.

 

    싱그럽고 상큼하였다. 돈이 많이 들지 않고도 누리는 귀한 사치였다. 잘 자란 소나무 가지 사이로

울산바위가 코 앞으로 다가앉았다. 산 꼭대기에 역부러 조각하여 옮겨다 놓은 것 같은 울산바위가

병풍을 좌악 펼쳐놓은 것처럼 늘어서 있었다.

 

    선희가 세 번씩이나 올라가 보았던 그 울산바위는 속초 시내와 동해를 내려다 보며 무슨 생각을

하는 것일까. 다만 말이 없었다. 과묵한 사람 같았다. 비바람 맞으며 의연히 자기 자리를 지키는 모

습이 믿음직스러웠다.

 

    그 바위를 보며 선희는 입이 무거워 비밀도 지켜주고, 흉허물도 싸잡아 덮어 주며, 언제나 등 뒤에

서서 바람막이가 되어줄 그런 사람, 무거운 짐에 눌려 비틀거릴 때 기대면 힘이 되는 그런 사람이

내게는 없는가 생각하니 마음이 한없이 쓸쓸해졌다.

 울산바위 

    울산 바위 위로 하늘이 파랗게 열려있었다.

    그 하늘 어딘가에 하느님이 계실까. 그렇다면 너무 먼 거리 같았다. 아득하게 느껴졌다.

 

    언젠가부터 남편은 기대어야 할 든든한 어깨가 못 된다는 사실을 선희는 깨닫고 있었다. 그는 벽에

부딪친 사업의 돌파구를 찾지 못함은 물론 자기 혼자만의 건강도 제대로 책임 지질 못하고 있었기

문이었다. 더구나 그는 자기가 책임 질 수 없는 차량 사고에 휘말려서 몇 백만 원을 날리기도 했었다.

 

    물론 그는 좋은 사람임에는 틀림 없지만 먹고 살기 위해 사나운 발톱을 세울 수는 없는 그런 사람

이었다.

    한 번은 못된 관광차 기사에게 사기를 당한 적이 있었다. 왼쪽 팔목에 염주를 걸고 있던 그 운전

기사는 얘기를 나누고 보니 선희의 고향쪽 사람이었다.

 

    그자가 바캉스 끝나갈 무렵 지역 유지 일행을 모시고 올 계약이 되어있으니 특별히 이불도 새 이불

로 마련해 주고, 음식도 잘 해주어야 한다고 당부했다. 관광차 2대가 와서 2박 3일 유숙할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계약금조로 20만원을 달라고 했다.

 

  어차피 손님을 태워 오면 운전기사에게도 사례조로 돈을 떼어주기 때문에 먼저 준다고 해도 상관은

없었다. 자필 영수증도 써 받았고 명함도 받아두었다. 더구나 그 운전기사는 그가 데리고 온 관광객

이랑 선희네서 하루 밤 먹고 자며 얼굴을 마주하여 얘기까지 나눈 사이였다. 일테면 얼굴을 익힌

관계가 된 것이었다.

    사례조

    너무 확실한 계약이었음으로 그들이 온다는 날 저녁밥을 준비하고 기다리는데 해가 서산을 넘어

깜깜해져도 몇 시에 당도한다는 연락 한마디 없었다. 회사로 연락해보니 차는 이미 떠났다고 했다.

뭔가 바람 맞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손님을 모시고 왔다해서 운전 기사에게 사례조로 떼어주는 금액의 많고 적음에 따라 약속이 어겨

지는 일들이 많았다. 관광차도 통째로 히빠리 하는 수가 있었고, 그럴 때 예약 해놓은 집보다 유리한

조건을 제시하면 가격이 덤핑되면서 다른 업소로 관광차는 머리를 돌리는 것이었다.

 

    선희는 숙박 단지 안의 집들을 불이 깜깜하게 꺼진 빈집은 놓아두고 관광 손님이 들어간 업소를

일일이 뒤지기 시작했다. 그 팀은 하필 자운 모텔 옆집에 들어있었다. 운전기사를 찾았다. 선희는

김은태에게 연락하여 그 자를 데리고 자운 모텔로 왔다.

 

    그 자는 유들유들 했다. 다음에 설악산에 또 올 일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말이 안 되었다.

고급 손님이니 새 이불을 준비하라 하여 불이나케 새 이불을 사다놓은 것은 집에 있어 내 물건이니

그렇다 쳐도, 80명분 저녁밥을 해 놓은 것은 어쩌란 말인가.

 

    전화 연락 한 번 없었던 그 신의 없는 자는 두 번도 보고 싶지 않았다. 다 필요 없으니 기왕에 받은

돈이나 내놓으라고 했다. 그런데 그 곁에서 김은태가 선희를 향하여 뱉은 말은 의외였다.

  “아니 지금 돈이 문제야?” 

신의 없는 

  선희는 하도 어처구니가 없어 말이 안 나왔다. 지금 돈이 문제냐고 하니 그럼 돈이 문제가 아니고

엇이 문제란 말인가. 사기로 고소하는 일이 문제란 말인가. 아니면 버릇 가르치는 일이 문제란 말인가.

아니면 손님을 계약대로 다래 모텔로 옮겨 가야 하는 게 문제란 말인가. 김은태는 그자를 향해 말했다.

 

  “사람이 돈이 다가 아니잖소? 돈 이십 만 원이 문제가 아니라 사람이 거짓말하며 살아선 안 되지

않소?” 

    그 운전기사를 감동시키자는 것인가. 인성교육을 시키겠다는 말인가. 날이 바뀌어 그자가 떠날 때

까지 늘어놓아도 되지 않을, 먹혀들 리 없는 얘기를 김은태는 늘어놓고 있었다.

 

    그 운전기사 하나를 찾아내느라고 온 숙박 단지를 헤매고 다닌 일이 화가 나는데다 말만 길어져서

피곤해진 선희가 끼어들었다.

 

 “빨리 돈이나 내놔요. 이불 산 것은 우리 것이니 관둡시다. 그러나 당신 때문에 안 사도 되는 이불을

공연히 산 것이에요. 그리고 저녁밥 해놓은 건 누가 다 먹어요? 당신이 밥값도 물어내야 하지만 다 필

요 없으니 가져간 돈이나 빨리 내놔요.”

 

    선희는 쌀쌀 맞게 말했다. 그래도 그자가 대답을 않자 이를 지켜보고 있던 자운 모텔 사장이 큰

목청으로 명령조로, 그것도 반말로 다그쳤다.

  “당장 가져 와. 사람이 좋게 말할 때 알아들어야지. 당신 몇 집에서 이런 식으로 계약금 가로챘어?

한 번 혼나봐야 알겠어? 뜨거운 맛 보여주까? 엉?” 

 

    말 안 들으면 한방 주먹이라도 날릴 것 같은 기세였다. 자운 모텔 사장은 키도 크고 얼굴도 거므스

럼한데다 치켜 뜨는 눈초리가 매서운 사람이었다. 그 자가 주머니를 뒤지더니 얼른 돈을 내놓고 도망

치듯 밖으로 사라졌다.

  뜨거운 맛

    그렇게 쉽게 끝날 일을 매듭을 못 짓는 꼴이라니 김은태는 믿음직스러운 게 아니라 걱정스러워

졌다. 혼나봐야 알겠어? 뜨거운 맛 보여주까? 라고 거칠고 위협적인 한 마디를 구사할 줄 모르는 남자,

처한 상황과 문제의 핵심을 읽지 못하는 남편임을 그때 알아 본 후로 선희는 김은태가 든든한

바람막이로 생각되지 않았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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