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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화국 장편소설 <꿈꾸는 설악> 연재 41회
2010-05-02 10:13:59
38hwakook

조회:1132
추천:86
소설 <꿈꾸는 설악> 연재 41회|시와 소설 / 이화국  

 

 

16.폭풍은 지나가고

 

  

 

 

 

    다음 날 선희는 김은태와 함께 한일장으로 올라갔다.

   고맙다는 인사도 해야 하고, 무엇보다 그 학교가 불미하게 떠나서 그 뒷 일에 대한 변명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고심하고 있었다.

 

   그러나 걱정한 것과는 달리 한일장 사장은 그 학교 교장에게서 전화가 왔는데 대접을 잘 받아 고

마워 했다는 것이다. 의외였다.

 

  “애끼가 전화 건 게 아니라 저쪽에서 전화가 왔었다구요?” 

  “글쎄 얼마나 잘 해주었으면 고맙다고 전화까지 해주나 몰라. 그렇다고 우리 단체 아주 빼가면

안 돼요.” 

 

  “세상에, 그렇게나 의리 없는 짓을 누가 해요.” 

  “의리 없는 놈들이 많으니까 탈이지.” 

  애끼 의리

   그러면서 큰 단체 받은 쪽이 아무래도 형편이 나을 것이니 점심을 사겠다면서 양양에 소머리 국밥

잘 하는 집이 있다고 그리 가자고 끌었다. 한일장 운전기사가 차를 몰았다. 운전기사가 따로 있는 게

아니고 보이 중에 운전할 줄 알면 운전기사가 되는 거였다. 물론 그냥 뽀이보다는 월급이 조금 더 많이

계산되었다.

 

   그 운전기사는 젊은 사람으로 운전대를 잡은 한 쪽 손에 흰 장갑을 끼고 있었다. 마이클 잭슨이라는

흑인 가수가 혜성처럼 나타나 세상을 주름잡고 있는 중이니 보나마나 그의 팬임이 분명했다. 역시나

테프를 만지더니 음악을 고르는데 들어보니 빌리 진이었다.

 

    그 테프가 다 돌아가자 그 다음 테프는 역시 J 에게였다. 저렇게 숱하게 J 가 길에 깔렸는데 선희는

테프를 사다놓고 한번도 집에서 틀어보지 못했다. 그 흔한 J 가 선희에게는 비밀이었기 때문에 이 다음

정민호가 떠난 다음이면 그때 들어보리라고 마음 먹고 있었다.

 

 

            J 아름다운 여름날이 멀리 사라졌다 해도

          J 나의 사랑은 아직도 변함 없는데

          J 난 너를 못잊어 J 난 너를 사랑해 

          J 우리가 걸었던 J 추억의 그 길을

          난 이 밤도 쓸쓸히 쓸쓸히 걷고 있네

 

J 에게  

    수육에 소주도 마시고 소머리국밥을 다 잘 먹었다.

    돌아오는 길에는 낙산 비치 호텔에서 커피도 마셨다. 설악동 숙박업은 계절 장사라서 낙엽

떨어질 때 돈 떨어지기 마련이지만, 돈이 일단 손에 잡히면 몫돈이기 때문에 나중 일은 어찌

되던지 쓰고 보는 경향이 있었다.

 

    그런 일이 무언중에 스트레스를 푸는 방법인지도 몰랐다.

    관광 시즌이 문을 닫으면 뉴설악 호텔이나 파크 호텔 나이트 클럽에서 숙박단지 업주들에게

할인 혜택을 준다는 안내문들이 날아오는데 그럴 때는 업주들끼리 어울려 나이트 클럽에 자리

를 만들기도 했다.

 

    밴드가 있어서 생음악을 들려주기 때문에 흥에 겨워 춤을 추다 보면 잡념들이 잠시는 잊혀

지기도 했다. 그러나 괴로움을 덜기 위한 그것은 일시적인 처방일 뿐이지, 그런 데에 기대기로

한다면 마약을 흡입하는 것과 무엇이 다르냐고 선희는 속으로 별로 즐기지 않았다.

 

    참으로 빡빡한 생활을 하는 그녀였다. 왜 남들처럼 쉽게 자기를 잊지 못하는지 답답했지만

알고 보면 그녀의 생리였다. 선희는 그런 여자였으니까.

 

    비치 호텔 커피숖 높은 자리에서 내려다 보는 바다는 한 장의 그림이었다. 그 바다 저 멀리

수평선에서 서울 집에 두고온 세 아이의 얼굴이 어서 오라고 손짓 하는 것처럼 어른거렸다.

밥 먹다가도, 잠 자다가도, 길을 걷다가도 아이들이 나타나면 선희는 그 어떤 일도 즐거움이

아니었다.

 

    빚쟁이 나타났을 때 느끼는 감정과 조금도 다르지 않았다. 어쩌면 자식들에게 부모 노릇을

제대로 못하고 있다는 자책이 그렇게 빚진 자의 심정을 갖게 하는 모양이었다.

   빚 진 자

   그 바람에 수평선에서 얼른 눈을 돌렸지만 드라이브도 하고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서 들떴던

기분이 다시 가라앉았다. 그렇다면 집에 돌아갈 일만 남아있었다. 차는 물치 입구에서 방향을

틀어 설악동 쪽으로 들어섰다. 시장을 보려고 그저 바쁘게만, 기쁨도 없이 다니던 길이 처음인

듯 눈에 들어왔다.

 

    왼쪽으로 벼락바위라 불리는 큰 바위와 작은 돌맹이들 사이로 맑은 물이 흘러가고, 오른쪽

으로 산과 나무와 집들이 옹기종기 엎딘 모양새가 평화롭고 아름다워 보였다. 하지만 그 속에

얼마나 무서운 생존 경쟁의 싸움이 벌어지고 있는지 선희는 알고 있었다.

 

    설악동 사람들도 히빠리를 하지만, 민박이란 간판을 걸어놓고 있는 사람들도 밥숫갈 놓자

마자 길거리에 나와 서성거리며 히빠리를 하는 거였다. 하는 일 없이 길에서 서성거리며 노는

사람들이라고 보면 착각이었다. 그들은 개인으로 오는 관광객이 설악동 숙박단지 안으로 들어

서기 전에 중간에서 채어가는 거였다.

 

    그래서 그 민박집들이 설악동 숙박업소 보다 장사가 나았다. 말이 민박이지 방이 살림집 두

세 개가 아니라 스무 개를 바라보는 집이 있었으며 무엇보다도 그들은 세금을 물지 않았다.

전기조차도 그들은 가정용으로 썼지만 숙박단지 안의 업소들은 영업용으로 허가가 난 전기라

서 폐업 신고를 하지 않는 한, 문을 잠가두어도 기본료가 한 달에 십 몇 만 원이 보통이었다.

 

   그런 정황(情況)을 모르고 아끼면 다인 줄 알고 영업을 안 해 본 어떤 업주가 전원 장치를

아주 내려놓고 촛불을 켰다고 해서 웃기보다 가슴을 친 일이 있었다. 집안 살림만 해온 선희

조차도 그런 생각을 해본 일이 있었기 때문에 새삼 쓴 웃음이 올라왔다.

 폐업 신고 

    달리던 차가 설악동으로 들어서지 않고 우회전하여 노루목 고개로 접어들었다.

    새로 뚫린 길이었다. 한일장 사장이 운전기사에게 지시한 모양이었다. 차가 고개 마루턱에

올랐을 때 보면 설악동이 한눈에 들어온다.

 

    항상 고요하게 엎딘 집들이 평화만이 가득해 보였다.

    멀리서 방관자의 눈으로만 보아 아름답지 않은 것은 세상에 없을 터였다.

 

    노루목 고갯길은 새끼 대관령이기나 한 것처럼 꼬불꼬불 해서 운전을 하려면 방향을 자주

틀어야 했다. 눈비 올 때는 위험 부담이 있는 길이지만 설악동에서 속초를 오갈 때, 물치로

멀리 돌아가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많이 이용하고 있었다.

 

    척산 온천 원탕 앞에 차가 멎었다. 관광객들은 언제나 새로운 것, 신기한 것, 특이한 것만

좋아하는 경향이 있어서 어느 지역에 들르면 사방에 눈 돌리기 마련이지만 그들은 신축된 온천

건물이 있는데도 그리로 가지 않고 전에 하던 대로 구식 건물인 원탕을 찾아간 것이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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