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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화국 장편소설 <꿈꾸는 설악> 연재 40회
2010-04-30 10:10:34
38hwakook

조회:1215
추천:78
소설 <꿈꾸는 설악> 연재 40회|시와 소설 / 이화국
 

   너무 아름다운 글이었다.

    아름다운 글이 가만가만 울리는 악기 같은 신부님 목소리에 실려나오니 그것은 사람의 목소리가 아

니라 고저 장단의 수선스러움이 생략된 채 고요히 흐르는 음악 같았다.

 

    가뜩이나 독신으로 지내야 하는 신부님이 어떤 마음으로 살고 있는지 알 것 같아서 마음이 쓰렸다.

외로움과 비애의 느낌으로 처절한 기분이 되었다. 기분이 전환될 가벼운 음악을 듣기로 했다.

신부님은 좋은 음반과 테프를 많이 가지고 계셨다.

 

    선희가 대학생 시절에 들었던 월버튼 마운틴이 흘러나왔을 때 추억에 사로잡혀서 선희가 그 곡이 좋

다고 하니까 공테프를 넣어 다른 곡과 함께 복사해주셨다. 속으로 좋아하는 신부님에게서 기념이 될만

한 선물을 받은 셈이었다. 기분이 좋았다.

 

    시간은 멈추는 법이 없었다. 가장 게으르면서 가장 빠르게 움직이는 것이 시간이란 정체였다. 어쩔

수 없이 일어서야 했다. 밤 2시 경이었다. 아마 노처녀 데레사도 선희처럼 신부님을 향하여 색다른 감

정을 품었던 것은 아닐까. 더구나 데레사는 노처녀였으니까......

      데레사

   알 수 없는 채로 눈이 쌓인 주차장을 가로질러 걸어서 집으로 와야 했다. 성탄 이브의 미사를 위해서

성당으로 내려갈 때에 비해 얼마나 눈이 더 많이 쌓였는지 무릎 위까지 눈이 올라왔다. 아마도 초저녁

에 내린 것보다 사제관에 머물렀던 그 시각에 눈은 소리 없이 더 많이 쌓였던 모양이었다.

 

    새하얀 눈이 제아무리 아름다워도 적당히 쌓였을 때가 아름답다.

눈이 폭설이 되어 내리면 살기(殺氣)를 그 부드러운 자태에 감추고 있을 뿐이지, 나무를 부러뜨리고,

비닐 하우스를 엎어놓으며 사람의 목숨까지 노리는 망나니가 된다.

 

   어느 아름다운 여인이 있어서 하얀 이를 가즈런히 드러내놓고 흘리는 웃음 뒤에 살의를 품고 있다면, 그리고 그 살의를 감지했다면 여전히 그 미모에 반하고만 있을 수 있을까. 교태가 제아무리 넘친들 아

름답다고 볼 것인가.

 

    목전에 놓인 사물에 대해 굳이 어떤 선입견을 갖고 판단을 내릴 필요는 없지만, 선희는 한 번 놀란

경험이 있어서 눈에 대한 한 낭만적이지 못했다. 혹시나 사랑도 적당히 깊어야지 너무 너무 깊어지면

누군가의 생명을 먹어치우는 그런 위태함은 없을 것인가.

 

    생각이 그쪽으로 기울자 두려움에 몸이 떨렸다. 설악동의 바람은 대청봉 쪽에서 아래로 불어내려

정면으로 바람을 안고 걸으려니 힘이 들었다. 어렵게 한 발 한 발 앞으로 내딛으며 집에 돌아왔을 때는

힘 센 씨름꾼과 한바탕 씨름을 하고 온 것처럼 온 몸의 힘이 다 빠져있었다.

씨름꾼  

    결국 선희는 그날 이후로 성당에서 발길을 돌리기로 했다. 사제를 향해 품는 불경한 마음의 자세도

문제였고, 초등 학생을 대학교 강의를 듣게 만드는 것 같은 그 말 ‘신비’ 라는 풀리지 않는 개념에서 헤

어날 길 없음도 문제였다.

 

    하필 그 무렵에 설교가 좋다는 자기 교회에 나가자고 강력한 권유를 해온 사람이 있어서 선희는 그를 따라 예배당으로 구경 삼아 나가보리라 마음 먹었다. 선희는 스스로 깨닫지 못하고 있었지만, 잠재의식

적으로 어쩌면 우물안 개구리가 개구리의 눈으로 우물 만큼의 하늘을 보는 게 아닌가 하는 좁은 테두리

에서 벗어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의사 한 사람의 진단을 믿지 못해 이 병원, 저 병원으로 다니며 여러 의사의 진단을 받아야 직성이 풀리고, 비로소 그 진단을 신뢰하게 되는 본능적인 불신의 발동인지도 몰랐다.

 

    설마 사람이 사람의 말을 하면 못 알아 들을까.

    설교라면 그것은 말이니까 쉽게 알아 들을 수 있으리라.

    성경을 인용한 말이라면 더욱 힘이 되고 지혜가 될 수 있겠지.

 

성경의 첫 대목에서 부터 말씀이 천지를 창조하셨다고 했으니 적어도 성경 속엔 무수한 말, 말씀이

있는 건 사실이고 그 속에서 깨우침을 받으며 하느님을 만나고 싶다는 간절함을 그런 식으로 굳힌 셈

이었다.

 

    이군의 노래로 하여 부드러운 저음의 목소리에 대한 향수 속에서 헤어나오자 눈 앞엔 아직 고기가

구워지고 있었다. 민호가 기타를 치고 이군이 다른 노래를 몇 곡 더 부른 후 자리를 접기로 했다.

 

    선희는 지난 일을 가만히 뒤돌아보니 설악동 생활이 시작된 이후 다니던 교회가 바뀌었으며 부르는

노래에서 조차 좋아하고 싫어하는 경향이 달라져 있는 사실을 발견하고 놀랐다.

 달라진 경향

   산장의 여인도 듣기 싫었고, 대니 보이도 어마어마하게 쌓인 산골짝의 눈이 위협적으로 다가올 뿐만

아니라 설악동에서는 더더구나 정말로 부르기 싫었다. 유치하게도 나 항상 오래 여기 살리라고 노래하

면 영원히 설악동을 떠나지 못할 것 같은 두려움이 앞서기 때문이었다.

 

    부부가 참석한 어느 술좌석에선가 김은태가 젖은 손이 애처러워 살몃이 잡아본 순간 거칠어진 손마

디가 너무나도 안타까워서 어쩌고 하다가 나는 다시 태어나도 당신만을 사랑하리라란 노래를 부른 적

이 있는데 그 때 선희는 남편에게 그 노래를 앞으로 절대 부르지 말라고 부탁한 적이 있었다.

 

    그 노래 제목이 아내에게 바치는 노래였던가. 거칠어진 아내의 손마디가 안쓰럽게 느껴졌으면 나가

서 무슨 짓을 하든 돈을 벌어다 주어야지 않느냐고, 다시 태어나도 그 아내만 사랑하겠다는 것은 사랑

이 아니라 이기적인 발상이라고 화를 내기까지 했던 것이다.

 

    그렇게 모든 부분에서 작게 또는 크게 많은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 모양이었다. 민호는 기타를 들고

일어섰고 이군은 돌아갔다. 선희가 민호에게 아까 그 노래 한 번 더 들을 수 없느냐니까 민호는 전축을

틀었다. 똑 같은 노래가 전축에서 흘러나왔다.

 

    저런 노래가 이미 불려지고 있었는 모양인데 몰랐다니 이해가 안 되었다. 제목도 모르는 그 노래

 ‘그런 슬픈 눈으로’ 가 흘러나오지 않았다면 그 노래의 작사, 작곡자는 민호라고 영영 그렇게 믿었을

뻔 하였다.

작사 작곡 

    누가 만들었든 그 노래는 민호의 마음이라 여겨져 고스란히 선희의 가슴으로 들어와 앉았다.

    '생각 나면 들러 봐요 조그만 길 모퉁이 찻집.’

   그래 그럴지도 모르지. 세월이 많이 흐르고 난 뒤 길 가다가 길모퉁이에 조그만 찻집이 있으면 들어

가서 옛날 일을 회상할지도 모르지.

 

    선희의 눈엔 어디에 있는지 모르지만 조그만 길모퉁이 찻집이 눈에 그려졌다.

    이왕이면 그 찻집이 동해 바다를 끼고 있으면 좋겠다는 막연한 생각을 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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