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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화국 장편소설 <꿈꾸는 설악> 연재 37회
2010-04-28 21:14:53
38hwakook

조회:1191
추천:84
소설 <꿈꾸는 설악> 연재 37회|시와 소설 / 이화국  

 

   얼마 후에 선희는 제 정신으로 돌아온 것처럼 보였다.

막연히 먼 곳을 헤매던 눈동자가 제 자리를 찾아 앉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의 동작은 천천히 돌리

는 필름에서 처럼 슬로우 모션에서 정상의 속도를 찾고 있었다.

 

  “미안해, 내가 잠을 깨웠군. 누워서 좀 더 자.” 

 

  선희가 그렇게 말하면서 그가 베고 자던 벼개를 바로 놓아주자 그 순간에 민호는 선희를 끌어안았다.

선희는 당황했지만 오래 전부터 바라고 있었던 듯이 가만히 있었다. 생각 외로 그 품안이 넓었다. 따뜻

했다. 사랑으로 격앙된 심장이 엄청난 양의 피를 뿜어내는지 가슴이 두근거려서 견디기 힘들었다.

 

   몸이 흔들렸다. 선희는 눈을 감았다. 그 달콤함에 젖어들려는 찰나에 현관으로부터 김은태의 목소리

가 들려왔다.

  “다들 어디 간거야?” 

 

   선희는 깜짝 놀랐다. 아침에 나가면 그날 관광객이 없는 업소의 주인들과 어울려 술추념하다가 저녁

먹을 시간이거나, 아예 저녁을 먹고 밤에 귀가하는 일이 그의 일상이기 때문이었다.

 

    선희는 민호의 두 팔을 열고 그 손에 가볍게 입맞춤을 했다. 그리고 얼른 일어섰다. 방 밖으로 나오

면서 민호의 신발을 집어 방안으로 들여놓았다. 역부러 화장실 앞을 지나 현관쪽으로 왔다. 김은태는

현관 소파에 식식거리며 앉아있었다.

 

  “다들 어디 간 거야? 현관을 비워두고.” 

  “한잠들 자러 갔어요.” 

  “팔자 늘어졌구나. 당신은 어디 갔었어?” 

    “아 화장실도 못 가나요?"”

    팔자

    선희는 너무 빠르게 나온 자기의 교활한 말대꾸에 놀랐다. 사전에 어떻게 하리란 계획 같은 건 꿈

에도 없었는데 민호의 신발을 집어 방안으로 들여놓는 행동은 민첩했고, 정당하지 못한 일에 대한 알

리바이를 위해 화장실을 떠올린 일이 자기가 한 행동 같지 않았다.

 

    그러나 분명 그것은 변질된 선희 자신임을 깨닫고 어찌할 바를 몰랐다. 양심이 비명을 지르려고 애

쓰는 것 같아 고틍스러웠다. 이렇게 거짓말을 하면서 살아도 되는 일인가 겁이 났다. 침착하려고 애를

쓰면서 물었다.

  “웬 일이에요? 이 시간에 집엘 다 들어오시구.” 

 

  “아니 내가 내 집에 맘대로 드나들면 안 되나?” 

    “그게 아니구요. 언제 집에 붙어있는 분이라야 말이죠.” 

  “김방식 형사가 죽었어.” 

 

  “어머나 왜요? 갑자기.”

  “B지구 순찰하다가 길에서 쓰러졌대. 그 자리에서 그냥 세상 떴다는구만.” 

  “세상에… 그럼 심장마비였나요?” 

 

  “혈압이래. 혈압이 높다는 건 나도 알고 있었지만.” 

  “그런데도 당신은 같이 어울려 술 마시고 다녔어요?” 

  “형사도 쉬는 시간에 좀 마시면 안 되나. 나는 그 정도인 줄은 몰랐지. 좌우지간 빨리 하얀 와이셔

츠하고 검정 넥타이 내놔.” 

검정넥타이

    김은태는 선희가 챙겨주는 대로 옷을 갈아 입고 되돌아 나갔다.

   참으로 안된 일이었다. 김방식 형사는 정보과에 근무하면서 사복을 입고 표나지 않게 설악동을 돌아

다니고 있었다. 딱히 무슨 일을 하는지 선희로서는 알지 못했지만 형사 냄새가 조금도 나지 않는 소탈

하고 좋은 사람이라고 기억되어 있었다.

 

    김방식 형사와 김은태는 나이가 비슷했고 서로 통하는 게 있었는지 가깝게 지내는 사이였다. 근무중

에 다래 모텔 빈 방에 들어와 잠시 쉬다 나가는 일도 종종 있었다. 물론 이 일은 비밀에 붙여졌다. 남이

긴 하지만 어제도 그를 보고 얘기를 나누었었다. 다래 모텔의 부진한 영업에 대해 걱정해주는 일이 고

웠다.

 

    선희는 사람이 그렇게 한 순간에 죽는 일에 대해 충격을 받았다.

    20대 때부터 어설픈 인생철학으로 허무를 배울 때도 죽음이란 명제는 늘 앞에 있었다.

 

    산 사람이 사는 일을 먼저 생각해야지 죽는 일을 더 많이 생각한다는 건 앞뒤가 뒤바뀐 짓이라고 어

둠침침한 회의에서 벗어난 후부터 선희는 그저 한낱 평범한 여자에 불과했고, 그렇게 적당히 살아왔는

데 김방식 형사의 죽음은 그녀에게 질문처럼 던져졌다.

 

    그것은 곧 선희의 미지근한 연애에 대해 어떤 결단과 촉구를 가하는 것처럼 그런 식으로 다가왔다.

인생은 짧은 것인데 아름다운 연애를 못해보고 세상을 떠난다면 너무 불쌍하지 않느냐고, 늙어서 추억

할 거리도 없다면 너무 삭막하지 않을 거냐고 채근하는 것 같았다.

 

    연애와 진정한 사랑을 모르고 산 사람들의 생활은 그저 동물들의 한살이에 불과하지 않겠느냐고

그런 회의 속에서 선희는 눈을 뜨고 있었다.

그렇다고 달리 어떻게 해볼 수 있는 일도 아니었다.

   한살이

    선희는 조금 전의 일을 되새기다가 민호에게로 달려가려는 감정을 억누르며 자기 방으로 들어와

이불을 뒤집어 쓰고 누워버렸다.

 

    해서는 안 될 사랑이 너무나 뻔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희망이 없다는 것은 곧 절망을 뜻하는 것은 아니었다.

    산(山) 속의 적은 무찌르기 쉬워도 마음 속의 적을 무찌르기는 어려워 애를 쓰고 있을 따름이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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