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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과 복에 대하여
2018-10-29 18:28:21
hananim

■ 이영지(Lee Yeong Ji) 시인(poet)
△경북 영주 출생
△서울문리사범대 국어과, 명지대 대학원 국문과(문학박사). 서울기독대학원(철학박사)
△서울기독대학원 학술원 강의, 명지대 사회교육원 문예창작과 주임교수 역임
△《시조문학》에서 시조, 《창조문학》에서 詩 등단
△《창조문학》편집부국장.《말씀과 문학》편집국장. 한국창조문학가협회 사무국장.
△한국시조시인협회, 한국문인협회 회원
△영예문학교회 담임목사(자비량교회운영)
△한국창조문학대상, 추강시조문학상 수상
△시집『하오의 벨소리』,『행복의 순위』,『행복 행 내 님 네』외 다수
△이론서『한국시조문학론』,『이상 시(李箱詩) 연구』,『시조창작 리듬 론』외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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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과 복에 대하여

 

 

. 우리는 행복자로다

 

사람은 누구나 행복을 바합니다. 일반적인 속성으로야 마음에서 행복하다고 느낄 때가 행복이라고 생각들을 하게 된다. 더 나아가 대상으로부터 사랑을 받을 때와 자녀나 아랫사람에게 사랑을 베풀 때 행복함을 느낀다.

이 행복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이 신명기 33장에서 모세가 죽기 전 야곱의회가 모이게 하고 축복을 주게 되는데서 살펴 볼 수 있다. 모세는 12지파에 대한 일을 먼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사랑하시어 축복이 있게 되는 일임을 제시한다. 하나님이 일만 성도가운데 강림하시었고 그들을 위해 당신의 오른손에는 번쩍이는 불이 있도다(33:2)라고 성경은 복이 오는 방법을 제시한다. 이 행복의 분위기는 먼저 하나님이 오른손을 번쩍 드시니 모두 그 아래 있음이 중요시된다. 그런 다음 주의 발 아래 주의 말씀을 받는(33:3)일의 순서를 보여준다.

이로보아 행복이 내리는 곳은 이스라엘 나라와, 사람 이스라엘 곧 야곱 총회의 기업(33:4)이 있는 곳이다. 그냥 가만히 복이 닥아 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기업이 있는 곳이다. 하나님의 일을 하는 곳, 그것도 주의 오른 손 아래 말씀을 들으려 모여 있는 야곱의 기업에게 복이 옴을 보여준다.

복은 야곱과 관련되고 특별한 이름 야곱의 기업이라 함은 야곱이 밤새도록 천사와 씨름하면서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을 얻는데서 그 유래를 볼 수 있다. 곧 야곱이 얻은 이름이 이스라엘인데 이러한 특성은 이스라엘 나라와 등가관계를 이룬다. 이로하여 이스라엘 나라와 야곱 이스라엘이 중첩되는 시적 특성을 보인다.

이스라엘 지파가 함께(33:5) 대표로 모인 가운데서 오는 복이 있다. 루우벤에게 전해지는 행복은 오래살기(루우벤, 33:6)로 한다. 이 때 자손의 번성이라는 등가성이 주어지는데 역시 시적 방법으로 행복의 정의를 알려준다. 유다에게는 일상의 삶에서 대상을 이기는 일(유다,33:7)이다. 그 방법은 일상을 늘 말씀 지키는 일에 행복(레위, 33:8)이 맞추어 진다. 사실 야곱은 부모를 속이고 장자권을 가로채면서 이익을 앞세웠다. 이 일은 우리의 일상생활과 같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로 승리(33:10)하는 행복자가 된다.

베냐민이 복을 얻는 방법을 어깨사이에 하나님이 늘 있는 사람(베냐민, 33:12)을 행복자로 하였다. 그리고 하늘의 보물인 이슬과 땅 아래 물과 태양이 결실하는 옛산과 작은 언덕에서 늘 살아가는 요셉(요셉, 33:13)을 행복자로 한다. 에브라임과 므낫세로 이어지면서 밖으로 나가기(스불론, 33:18)와 장막에 머무르기(잇사갈, 33:18) 모두 주어진 양대로 균형 있는 삶을 행복으로 한다.

하나님의 기업을 받은 행복한 사람은 바다와 모래에 감추어진 보물을 캐는 일이라 하였다. 가만이 있지 않고 하나님의 일을 열심히 찾아 나서는 사람을 행복자로 한다. 그리하여 늘 법도를 지키는 갓(, 33:20-21)의 일은 사자의 새끼(, 33:22)같은 삶이라 하였다. 납달리에게는 서쪽과 남쪽차지(납달리, 33:23)하는 행복이 주어진다. 아셀에게는 하나님의 말씀 때문에 기쁨으로 발이 기름에 잠길(아셀, 33:23) 행복이다. 여수룬에게 행복은 하나님이 하늘을 타고 궁창에서 위엄을 발휘하며 도우심(여수룬, 33:26) 때문에 행복이 주어졌다. 야곱의 기업이 되는 행복을 얻는 야곱 의회는 이처럼 행복을 받는 이들이 모이었다.

구체적으로 야곱에 대하여는 이스라엘 이름만큼의 행복자가 된다.

 

이스라엘이여 너는 행복한 사람이로다 여호와의 구원을 너같이 얻는 백성이 누구냐 그는 너를 돕는 방패시오 네 영광의 칼이시로다 네 대적이 네게 복종하리니 네가 그들의 높은 곳을 밟으리로다(33:29)-신번역

이스라엘이여 너는 행복자로다 여호와의 구원을 너같이 받은 백성이 누구뇨 그는 너를 돕는 방패시오 너의 영광의 칼이시로다 네 대적이 네게 복종하리니 네가 그들의 높은 곳을 밟으리로다(33:29)-구번역

 

이 행복에 대하여 성경은 너는 행복자로다라 한다. ‘아스레하 이스라엘 이라 한다. 아시라 있으라 멀리 가지말고 여기 있으라 한다. 행복은 행복을 찾아 멀리 가는 것이 아니라 바로 여기 있으라것이다. 이곳은 하나님이 그의 아들을 보내 너의 죄를 탕감하고 가까이서 보호하시는 능력의 손이 항상 있는 곳이다. 이 능력의 손이 어 내게 미친다. 행복의 근원은 바로 내가 부서져서 네게 가까이 갔기에행복이 있다는 것이다. 사람이 행복을 찾아 나서는 것이 아님을 아시라라 하시면서 행복은 하나님이 그의 아들을 통해 몸이 부서지도록 희생하면서 너에게 주어진 것이라는 것이다.

이것을 이름 하여 사랑의 힘이라 할 수 있다. 행복은 반드시 사랑이 큰 역할을 한다. 바로 절대자가 절대의 힘으로 주는 거대한 행복이 내게 오는 일은 사랑으로서이다. 그리하여 사람들은 철이 들면 감사하면서 삶을 살게 된다. 하나님의 역사, 곧 하나님의 큰 마음이 대리자에게 부여되어 대신 나를 위하여 목숨을 버려줄 때 행복이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사랑을 받은 자가 사랑을 다시 나누어 줄 때 진정한 행복이 등가성으로 존재한다. 그러기 위해 사람은 결혼하여 부모가 되며 서로 평생을 살아주는 사랑의 사람이 있어 행복하다고 느끼는 마음을 체험한다.

철저히 성경은 이스라엘 야곱과 이스라엘 나라를 두 개로 나누면서도 등가의 시적 특성으로 하였다. 이스라엘에 대하여 여호와의 구원을 너같이 얻은 백성이 누구뇨라 한다. 바로 이스라엘 너이며 하나님이 중심을 잡아주시어 너는 하나님 말씀 속에서 자유를 누리는 자이다. 행복한 이유는 나를 위하여 방패가 되어주는 이가 막아주어서이다. 다름 아닌 그이 절대자는 나를 위하여 바람을 말씀으로 막는 방패자이다. 그래서 나는 행복하다. 이러한 예는 지상에서 간간히 그 모습들이 눈으로 보여지는 실례가 있기도 하다. 부모가, 혹은 상관이 나쁜 일을 대신 막아주는 방패가 된다.

그런데 성경은 반드시 짝을 이루는데 말하자면 시적 등가관계가 있는데 바로 행복하려면 은혜를 받은 만큼 갚아 가는 일이다. ‘그는 너의 영광의 칼이시로다라는 성경은 봐 아시라 여기 갚아 뉘앙스 그대로 너에게 값없이 행복을 주었으니 아시라는 것이다. 은혜를 갚아야함을, 따라서 하나님이 은혜로운 일에 있어 행복을 누리는 일은 절대자가 나를 위하여 부서지는 존재가 되고 있고 나도 또한 그의 지붕 안에서 은혜를 갚은 일이 있을 때 행복하다는 것이다.

더 나아가 나의 대적, 말하자면 악의 세력을 절대자가 부서지게 해 준다는 것이다. 그 기적은 하나님은 눈으로 보이지 않으니까 하나님을 믿는 네게 악의 세력이 예배형식 말하자면 너에게 굴복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진풍경 봐 이것을, 오 예배 네게 하는 일이 일어나는데 그 이유는 절대자인 그가 너를 붙들고 있으므로 하여 너의 대적이 하나님의 손으로 지켜주는 집안에서 부서지게 되는 진풍경이 일어난다. 그럼으로 하여 일상의 삶에서 사는 야곱, 곧 우리는 대적을 내가 물리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번에는 이스라엘이 아닌 이스라엘 백성을 단수 백성으로 한다. 이 때 또한 시적 등가성이 존재하는데 이스라엘 백성 전체가 단수가 되면서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을 사랑하심을 드러내신다. ‘보았다 알 밤이 타 들어가는 일을 보게 되는 것이다. 어둠의 세력이 타들어가는 것을 이스라엘 백성들이 목격하게 되는 것이다. 눈앞에 악의 세력이 없어지는 것을 목격하는 일이 행복의 절정이라는 것이다. 성경은 높은 곳에 있는 적을 밟는 다는 말을 타들어가는 발음으로 한다. 타들어가는, 소멸되는 이미지는 바로 완전히 없어지는 이미지이다. 그럼으로 하여 마치 그들이 제사지내지는 대상으로 연출된다. 불은 모든 것을 소멸시키어 타들어가며 흔적조차 없어진다.

신명기 3329절은 행복의 의미를 하나님이 나를 보호하시고 이름도 바꾸어 주시고 하나님 안에서 살게 하여 이스라엘의 대표가 되게 하여 주시고 이 안에서 사는 삶은 단순한 삶이 아니라 은혜 갚는 일로 하고 있고 이를 행복자라고 하고 있다. 곧 의무가 수반되는 바른 삶이 행복자다. 결혼이 행복으로 가는 길이면서 의무가 수반되는 삶인 것처럼 우리의 삶은 누구로부터 은혜를 받고 행복을 누리면서 그 누리는 살의 일상이 바로 은혜를 갚는 일이다.

 

2. 복있는 사람에게 오는 행복한 사람

복있는 사람너는 행복자로다는 구분된다. 복있는 사람은 아시레 하이쉬 아세르이고 너는 행복자아시레하이다. 이 둘의 차이는 기본적인 복에 대한 언급과 특별한 대상을 향한 점이 다르다. 복이 있는 사람을 개괄할 때에는 아시레 하이쉬 아세르이고 너는 행복자로다라고 할 때에는 아시레하이다. 일반적으로 어미에 가 붙을 때는 히브리어나 한국어나 극존칭인 당신이 된다. 한국에서도 용비어천가에 임금하 아르소서하여 임금에 대한 극존칭으로 어미에 하가 붙는다. 극존칭은 절대자에게만 해당하는 것으로 성경에서는 하나님이 대상인 당신을 행복하게 만들었다이다. 그런데 어미에 하나님의 손이 올 경우에는 하나님의 손이 대상을 책임지고 그렇게 만드셨다는, 즉 손을 보았다는 의미의 차이가 있다. 곧 직접적인 대상과 막연한 대상의 차이인바 복 있는 사람이라는 객관성과 너는 행복자라고 하는 아주 가까이에서의 사랑하는 대상에게 주는 직접적인 축복의 의미가 다르다.

시편1편의 복 있는 사람은그 특징을 아주 간단하게 셋으로 구분한다. 첫째 악인의 꾀를 쫓지 아니한다. 하나님이 만드신 본래의 모습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만드시고 보기 아주 좋았더라 하신 사람은 악인의 꾀를 쫓지 아니하는 사람이다. 성경은 복 있는 사람을 악인의 꾀를 쫓지 아니하며로 한다. 하나님은 사람을 절대자와 같은 형상으로 만들었다. 곧 하나님이 신인데 그 신 만큼에 버금하는 자유와 권한을 부여하여 신의 자리만큼의 자리를 허용하시었다. 그런데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사람 같지 않은 의미일 때의 악인은 그 사람 머리로 계산하여 이익을 추구하는 사람이다. 하나님을 따르지 않고 자기가 잘났다고 뽐내는 사람이다. 꾀를 가지는 이 꾀는 히브리어로 에자드가 기본형이다. 곧 눈으로 보이는 향기를 가슴에 넣는다. 겉으로 드러내지 않고 가슴에 넣는 것이 꾀다. 본문은 우리말로 봤다발음이다. 눈의 보이는 것 허상으로 사람의 꾀는 허망한 것을 쫓는, 다름 아닌 눈으로 보이는 향기를 말한다.

향기는 눈으로 보이는 향기가 아니다. 다만 코로 하나님의 향기가 들어온다. 악인의 꾀는 향기가 눈으로 보이는 이익을 추구한다. 그리고는 눈에 보이는 이익을 추구하여 과일을 따 먹음으로써 죄인이 되었다. 죄는 하나님인양 하다가 드디어는 예수님인양 십자가를 지는 양 하는 일이 죄이다. 피조물인 사람이 하나님의 지붕 안에서 지혜 있는 양 하는 모습이다. 자기자신 위에 더 높은 것이 없는 양하는 행동으로 실과를 따먹었다. 머리 위의 하늘을 무시하고 자기위에 아무것도 없는 신적인 행동을 하였다. 자기가 신 인양 행동할 때 죄를 짓는다. 자기 위에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 죄이다.

복 있는 사람은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이다. 하나님은 사람을 하나님 다음으로 높은 자리에 앉게 하였음에도 하나님 자리를 탐내 그 자리에 오르고자 스스로 향기를 내려 한 오만한 자 레짐이다. 눈에 보이는 향기를 내려는 오만한 사람들은 성경에서 복수가 되어 있다. 오만의 자리에 앉는 사람은 다수이며 이 오만의 자리에 앉지 않는 사람은 극소수이다. 하나님의 향기를 내려는 오만의 자리에 앉는 사람들과는 달리 복 있는 사람은 말씀을 사모하여 오로지 자신을 연단하는 자이다. .

우리 한국인들은 이라는 말을 쓴다. 두음법칙에 의하여 이라 한다. 사랑하는 사람인 임을 성경은 오직의미인 으로 한다. 오직! 이 단어만으로도 우리말의 아름다움이 드러나는 이다. 그리운 사람 그는 하나님하나밖에 없는 임이다. 그러기에 그의 율법을 밤낮으로 묵상하는 자는 복이 있는 사람이다. 일반 사람도 사랑하는 사람이면 무조건 사랑하는 사람의 뜻을 따라하게 된다. 그리고 부부가 되어서 평생 서로 따라하며 닮아간다. 하물며 그 대상이 하나님인데 그는 오직 사랑하는 그분이다.

더욱이 놀라운 것은 우리나랏말에 있는 돌아 와돌아라는 말이다. 히브리어 토라는 율법의미의 발음으로 하나님께 돌아와야 하는 법이 율법이다. 하나님이 계시는 곳으로 돌아오는 자는 다름 아닌 성경말씀을 늘 읽으며 그대로 하는 자는 즐거움이 마음속에 가득하게 된다.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며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

그러기에 복 있는 사람은 저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 행사가 다 형통하리로다의 축복을 받게 된다. 복있는 사람에게 하나님의 말씀으로 숨 쉬게 하시는 일을 하나님의 손으로 역사하신다. 그러기에 복 있는 사람의 모습은 눈으로 보여지는 그대로의 하나님을 믿는 우리다.

복있는 사람은 향기 내는 나무다. 바로 번제 드려지는 나무이다. 향기를 내는 나무이다. 하나님의 아름다운 사람으로의 향기 나는 모습은 하나님이 받아주시는 번제나무가 된다. 복있는 사람의 모습은 입으로 말씀전하는 일을 한다.

말씀전하는 삶은 은혜 갚기의 삶이다. 일상의 삶에서 십자가를 지는 사람이다. 입으로 말씀을 전하는 사람이다. 하나님은 복된 말씀을 전하는 사람을 어느 단체에서든지 머리가 되게 하신다. 우두머리가 되게 하신다. 혼자 있는 것이 아니라 절대자가 함께 계시기 때문이다. 복된 사람의 모습은 하나님의 집안에 있는 사람이다. 개인 혼자가 아니라

복된 사람은 하나님의 향기가 넘쳐나는 아름다운 세상을 만든다. 개인이 향기가 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향기가 복 있는 사람의 손에서 나온다. 복 있는 사람은 의인이 된다. 혼자가 아니라 다른이를 위하여 목숨을 내 놓는 사람이다. 하나님께서 인정하는 의인이 있다. 히브리어문장 키 요데아 여호와 데레크 자디킴이다. 하나님이 인정하는 복있는 사람은 하나님의 손으로 하나님의 가슴과 눈으로 넣으심을 입은 사람이 사람이다. 그 혜택으로 복있는 사람은 숨쉬게 되고 그 복있는 사람의 가슴에 절대자가 늘 자리하여 하나님의 향기를 가슴에 지니고 살아간다. 자유의사로 상상력을 동원하여 시를 짓는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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