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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화국 장편소설 <꿈꾸는 설악> 연재 31회
2010-04-26 10:06:51
38hwakook

조회:1140
추천:92
장편소설 <꿈꾸는 설악> 연재 31회|이 화 국
 

   무슨 의식을 치르는 사람 모양 아주 경건한 자세로 찻잔을 들고

천천히 한 모금씩 마시는 거였다. 그리고 생각에 잠기는 일을 즐기는 거였다. 물론 음악을 즐겨

듣는 시간도 바로 그런 때였다. 하지만 지금 그런 걸 따져 무엇에 쓴단 말인가.

 

    선희는 노래에 귀를 기울이며 민호를 건너다 보았다. 사랑할 수 없는 연인인 민호가 앞에 앉아있는

모습이 정물 같았다. 그는 그림처럼 조용히 앉아있었다. 순간 두 사람의 눈이 마주쳤다. 선희는 고개

를 옆으로 돌렸고, 민호는 고개를 아래로 수그렸다. 송창식의 목소리가 절절하게 실내에 퍼져나갔다.

 

 

            우리는 빛이 없는 어둠 속에서도 찾을 수 있는

            우리는 소리 없는 침묵으로도 말할 수 있는

            우리는 마주 잡은 손끝 하나로도 너무 충분한

            오오 우리는 연인

 

 

    선희는 자기가 지금 어디에 와서 헤매고 있는지 알 길이 없었다. 노래는 천둥 치는 운명처럼 우리

는 만났다로 가사가 바뀌어지고 있었다.

  운명    

   그때 선희 앞으로 난데 없이 살바도르 달리가 다가섰다.

   달리가 파리에서 데뷔하던 그 해 여름, 프랑스 시인 폴엘뤼아르의 부인이었던 헬레나 드미트리예프

디아코나바를 만났는데 그녀는 달리 보다 열 살 연상의 여인이었다.

 

   그 여인을 만났을 때 마치 벼락을 맞은 것 같았다고 살바도르 달리는 그녀와 결혼 한 후에 토로했던

것이다. 그리고 자기 정신의 벌집을 꿀로 채워주었다고 말한 그는 초현실주의 화가로, 갈라라는 애칭

으로 불렀던 부인이 죽은 후에는 그림을 도통 안 그린, 그런 열혈의 사나이였다.

 

    천둥 치는 운명처럼, 천둥 치는 운명처럼… 선희는 작은 목소리로 거푸 읊조려 보았다.

    연인 뿐만이 아닐 게다. 사람의 만남은 알고 보면 다 천둥 치는 운명처럼, 벼락을 맞은 것처럼 그렇

게 만나는 것일 게라고 선희는 애써 그 의미를 희석하려 들었다.

 

    송창식의 노래는 끝나가고 있었다. 다음 차례 할 일이 무엇인가를 다탁 밑에 숨겨진 때구정물 흐르

는 시장바구가 일깨워 주고 있었다. 선희가 민호에게 일어서자는 눈짓을 했다. 다방문을 밀고 나서는

데 하필 김은태가 다방문 앞에 나타났다.

 

  “뭐하는 거야? 장은 안 보고.” 

  “갑자기 어지러워서 다방에서 잠깐 쉬고 나오는 길이에요.” 

    선희는 자기가 이렇게 임기응변에 능한가 하고 스스로에게 놀랐다.

 

    김은태는 선희가 어려서 뇌막염을 앓았다는 병력을 알고 있었고, 그래선지 뻑하면 어지럽다고 호소

하는 바람에 놀라지 않았으며 별달리 생각하지 않았다.

  “어서 장 봐 와. 다방에 올라가 기다릴게.” 

    뇌막염

   선희는 속으로 혀를 찼다. 한때 기분파라는 별명을 가졌던 그녀는 나쁘게 말하면 경박하기 짝이 없

었고, 좋게 말하면 어린 아이처럼 아주 순진한 감정의 소유자였다. 다시 생각해보니 시장 보다 말고

다방에 들어가 테프를 들은 일이 미치광이짓 같기도 했다.

 민호가 어떻게 보았을까 하는데 생각이 미쳤다.

 

 “정민호, 흉보지 마. 어른이 참을성 없는 것. 테프는 집에 가서 들어도 되는데 말야.”

  “저에게 커피 사주려고 그러신 거죠.” 

    사람이 저렇게 의젓할 데가 있을까.

 

  “맞아. 그랬던 것 같애.” 

    선희는 종종걸음으로 필요한 먹거리를 샀고, 민호는 그것들을 차 있는데로 날르기 시작했다. 집에

오니 파출부들은 벌써 와있었다. 주방장이나 파출부들은 일에 능숙할 뿐만 아니라 체력도 단단했음

으로 일이 손에서 척척 잘 돌아갔다.

 

    이제 일에 능숙해진 선희는 200 명 정도는 걱정이 안되었다. 다만 운전기사 밥상과 선생들 밥상은

특별히 잘 차려야 했음으로 그것을 신경 쓰면 되었다.

 

    수학여행 온 선생들 중에는 학생들과 똑 같이 식판에 밥을 받아먹겠다고, 대신에 학생들 반찬을 좀

더 영양가 있게 잘 해달라고 주문하는 경우가 있지만 그런 일은 열에 하나 있을까 말까 하고, 거의가

학생이 식사를 마치고 나간 후 그 자리에 특별히 밥상을 잘 차려주어야 먹곤 했다.

수학여행 

    역시 말품을 팔아야 하는 선생들은 목구멍이 깔깔한지 술들도 잘 마셨다.

    멍게와 해삼, 전복을 썰고 또 주방장이 데쳐서 내놓은 문어를 썰고 있는데 옆집 삼정 산장 안주인

명덕엄마가 주방으로 들어섰다.

  이렇게 마실 다닐 때는 설명하지 않아도 그 집에 손님이 없다는 표시였다.

 

  “어서 옵시다아.” 

    선희가 칼질을 멈추지 않으며 농담조로 인사를 건넸다.

  “허 이 집 마담도 이젠 설악산 귀신 다되어 가누만.” 

 

  “그래요? 아직 멀었는데.”

  “우선 칼솜씨가 빨라졌고 싱퉁이 땜에 놀라서 사람 부르려 달려오지 않으니 말이지비.” 

    그 바람에 하하하하 한참을 웃었다.

 

   일명 도치라고도 불리는 그 싱퉁이라는 물고기는 생김새 부터가 미련 곰퉁이 처럼 생겼을 뿐만 아

니라, 값은 싼 편이고, 그것을 데쳐서 썰면 해삼 비슷하여 돈 생각해서 진짜 해삼을 놓지 않고 가끔

그 싱퉁이 데친 것을 횟접씨에 놓는 경우가 있었다.

 

    설악산에 들어온 첫 해에 장사를 해보지도 못하고 겨울을 맞았을 때, 방학에 내려온 아이들과 함께

어시장에 구경 나간 적이 있었다. 그 물고기가 하도 이상하게 생겼고 처음 보는 물건이라 장사꾼에게

이름이 무어냐고 물으니 싱퉁이라고 했다. 생김새와 딱 어울리는 이름이라고 생각했다.

 

    어떻게 요리 해먹느냐니까 그것을 데쳐서 썰어 초고추장에 찍어 먹던가, 김치랑 함께 김치 찌개 끓

여먹듯 하면 맛이 있다고 했다. 그 도치라는 이름의 싱퉁이 두 마리를 사왔다. 펄펄 끓는 물에 싱퉁이

한 마리를 후딱 집어 넣었다. 물이 한소끔 끓었을 때 소쿠리를 받치고 냄비 째 엎었다. 그런데 싱퉁이

가 떨어지질 않는 것이었다. 아무리 흔들어도 떨어지지 않았다.

    싱퉁이

  선희는 무엇이 요술을 부리는 것 같아 무서운 생각에 냄비를 들고 얼른 옆집 삼정 산장으로 뛰어갔다. 명덕엄마가 한참을 웃더니 칼끝을 싱퉁이 밑으로 집어넣어 그 놈을 쳐들었다. 그러니까 본래보다 작게 오무라든 시커먼 고기가 뚝 떨어졌다.

 

    그제서야 고기를 앞뒤로 살펴 보니 바로 싱퉁이 배꼽이 냄비 바닥에 붙은 것이었다. 불룩하게 나온

배에는 생각보다 커다란 배꼽이 있었고, 그 배꼽이 냄비 바닥에 닿는 순간 진공 상태가 되어 그냥 붙어

버리는 것이 마치 비누곽을 타일 벽에 붙였을 때 떨어지지 않는 그 이치와 같은 것이었다.

 

    그 생각을 하면 두고두고 웃음이 나오는데 그 얘기를 삼정 마담이 떠올린 것이었다.

  “그 뿐인가? 영덕게 찔 줄을 몰라 게를 엎어놓고 찌는 바람에 단물이 다 빠져서 혼난 일도 있지.

그것도 명덕 엄마가 일러주었지요.” 

 

  “그랬었나. 게는 배가 위로 올라오게 놓고 김을 올려야 단맛이 등딱지에 고여서 맛이 좋아진다구.

그것도 몰랐었나?” 

  “몰랐지요, 내가 명덕 엄마한테 배운 게 참 많아요. 돈이나 벌어야 한 턱 낼텐데. 아직 설악산 귀신

이 덜 되어서 돈을 못 버는 것인지.” 

 

  “실은 귀신도 별 볼 일 없다우. 차라리 옛날이 좋았지. 개발인지 나발인지 되기 전이 훨씬 좋았단

말이우. 관광객은 적고 업소가 이렇게 많아서야 무슨 수로 장사가 되겠어. 아이 그래?” 

  개발    

    선희는 하던 일을 주방장에게 넘기고 삼정 마담과 함께 현관으로 올라왔다. 정군에게 커피를 부탁

했다. 커피 두 잔이 선희가 거처하는 방으로 날라져 왔다. 문앞에 있다가 선희가 얼른 쟁반을 받았다.

  “어어? 저 사람이 이집 뽀이였어?” 

 

  “왜 그때 뽀이가 없어서 삼정에게도 사람 구한다고 얘기 했었잖우?” 

  “아니 저 사람이 우리 집 앞을 자주 지나 다니길래 그런가부다 했지 이집 사람인 줄 몰랐네. 인물이

훤해서 눈이 자꾸 갔어.” 

 

  “뽀이가 인물이 훤해서 뭐해요. 히빠리도 잘 해야 하고, 운전수들도 잘 구워 삶아야 하고 할 일이

많죠.” 

  “아 그래도 기왕지사야 눈이라도 즐거워야지. 아이 그래?” 

 “그럼 자주 놀러와서 구경 해봐요. 난 금상산도 식후경이니까.” 

  “하기사.”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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