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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소설>벗나래 3부
2008-03-11 15:42:09
sionsira

조회:2411
추천:190

가을바람을 타고 맞은 편 건물지하실에서 나염 냄새가 스멀스멀 올라왔다. 여름마다 머리를 지끈지끈 아프게 만드는 냄새의 주범이었다. 동사무소에 민원을 제출해도 시정이 되지 않는 동네 골칫덩어리였다.

금옥은 바람을 등지고 서서 멀리 보이는 관악산을 바라보며 머리를 식혔다.

노랗게 단풍이 든 옆집 은행나무가 시야에 들어왔다.

금옥은 계단을 허정허정 내려가 옆집 담벼락에 수북이 쌓인 은행잎을 하얀 봉지에 가득 담았다. 그리고 은행잎을 주방 겸 거실, 안방장판 속에 깔아두었다. 은행잎이 해충을 예방한다고 얼핏 들었던 생각이 나서였다.

그리고 마음을 비우기 위해 산길을 달렸다. 변변한 등산복 하나 갖추지 못했다. 재래시장에서 한 벌에 만원하는 추리닝 한 벌이 홈드레스도 되었다가 운동복도 되었다가 오늘 같은 날은 등산복도 되었다.

오늘은 기필코 정상까지 한번 가보리라 마음먹고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중간 중간 우뚝 솟아 있는 널찍한 바위 위에 서서 동네를 내려다보았다.

이것이 우리네 사는 세상이구나!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는 세상은 부자나 가난한 자나 아무런 차이가 없어보였다. 하늘아래 높고 낮은 건물들은 생명이 빠진 껍데기로밖에는 느낌이 나지 않았다.

산을 내려왔다. 내려오는 길은 오르는 길보다 훨씬 쉬웠다.

온 몸이 땀으로 흠뻑 젖었다. 가까이 두고서도 한 번도 산을 오르지 않았던 무심함이 후회스러웠다. 금옥은 간만에 맑은 정신을 되찾았다.

다음 날은 손빨래로 짠 빨래를 널기 위해 옥상으로 올라갔다.

낭요한 가을볕이 빨래 말리기에는 안성맞춤이었다.

멀찍이 중년의 여인이 손에 먹을거리를 잔뜩 사들고 오고 있었다. 시력이 좋지 않은 까닭에 눈살을 찌푸리며 바라보았다. 분명 낯익은 얼굴이었다. 은수였다. 금옥은 남몰래 사과를 훔쳐 먹다 들킨 사람처럼 가슴이 콩닥콩닥 뛰기 시작했다.

여기가 어딘 줄 알고 오는 거야?

금옥의 얼굴에 불쾌함이 젖어들고 있었다.

은수는 덜컹대는 대문 앞에서 고개를 기웃거리면서 금옥을 찾고 있었다.

입술을 깨물면서 계단을 내려갔다.

은수와 얼굴이 마주쳤다. 금옥이 언짢다는 듯 캐물었다.

“여기는 어떻게 알고 왔니?”

“네가 일하던 건물을 찾아갔었어. 경비아저씨가 대충 사는 데를 가르쳐주기에 물어물어 찾아왔지, 뭐.”

“그래? 아무튼 왔으니까 안으로 들어와.”

은수의 손에는 종류별로 담은 과일이 가득 들려있었다.

은수의 몸에선 신선한 새물내가 났고 금옥의 집안에서는 퀴퀴한 곰팡내가 났다.

은수는 얼굴빛 하나 변하지 않고 들어와 앉으며 금옥의 손을 덥석 잡았다.

“금옥아.”

은수의 눈동자가 그렁그렁했다.

“왜 그런 얼굴로 보니?”

“어젠 왜 그냥 갔어. 밥이라도 먹고 가지. 많이 찾았어. 전화해도 받지도 않고. 애들도 금옥이 이모 어디 갔냐고 찾더구나.”

“애들이? 애들이 나를 기억해?”

금옥의 얼굴이 의아하다는 듯 어리둥절해 했다. 뜻밖의 말이었다.

“당연하지. 애들이 널 얼마나 기다렸는데. 지금도 멋쟁이 이모라고 부르는 걸?”

금옥의 눈시울이 뜨겁게 달아올랐다.

누군가가 자기를 가족처럼 생각한다는 게 믿기지가 않았다. 아이들 기억 속에선 잊어질 법도 한데 이렇게 이모로 기억해 주다니. 마치 금옥에게 자식이 생긴 듯 설레었다.

은수가 환하게 미소 지었다.

“금옥아, 우리가 살면 얼마나 더 살겠니. 자주 만나서 옛이야기도 하고 맛있는 것도 먹으러 가고 하면서 살자꾸나.”

“은수야.”

“넌 우리 가족의 은인이야. 아무한테도 말은 안 했지만 너에게만큼은 해야 할 것 같아.”

“………….”

금옥이 알 수 없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은수는 금옥의 손을 놓지 않고 지난 얘기를 했다.

금옥이 은수 막내아들 돌잔치에 다녀간 그날의 이야기였다.

그때 은수 네는 심한 생활고에 시달렸다고 했다. 은수의 남편이 다니는 회사가 부도나기 일보직전이어서 6개월 치 봉급을 받지 못했었다. 올망졸망한 아이들과 함께 거리에 나앉을 정도로 위기를 겪고 있었다. 어느 곳에도 희망이라고는 보이지 않았고 절망만이 그들을 옥죄었었다. 은수와 남편은 남몰래 극단적인 생각까지 했었다.

은수는 막내 돌잔치는 해주고 가도 가야하지 않겠냐고 남편에게 말했다. 남편은 아무런 말없이 고개만 주억거렸다. 카드로 현금서비스 받을 수 있는 데까지 받아서 상을 차렸다.

은수는 마지막 가는 길에 학창시절 가장 좋아했던 금옥의 얼굴은 보고가고 싶었다.

은수와 남편이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 까마득히 모르고 있었던 천진난만한 아이들은 오랜만에 맛난 음식들과 집에 찾아오는 손님들을 보며 마냥 좋아했다.

금옥이 은수에게 마사지무료티켓을 주었을 땐 정말 황당했었다고. 이걸 제대로 써 보고나 죽겠냐고 속으로 생각했었다고 울먹거리며 말했다.

그런데 금옥이 집 아래에서 건네준 봉투를 열어본 순간 뜨거운 눈물이 왈칵 쏟아져 주체할 수가 없더라는 것이다.

“금옥아, 그때 웬 돈을 그렇게 많이 넣었니? 받아도 되는 건지 한참을 고민하다가 다시 너에게 돌려주려고 연락을 했는데 이상하게도 전화가 안 되더구나. 우리는 그 돈으로 다시 회생했어. 남편도 공무원이 되었고, 나 또한 애착을 갖고 열심히 살게 되었지.”

은수의 얼굴에 눈물이 줄줄 흐르고 있었다.

“금옥아. 너에게 무슨 일이 생긴 줄 알고 무척 걱정했었어. 그날 이후로 연락이 안 되어서. 계속해서 널 찾고 다녔는데 이렇게 다시 만나게 되다니 정말 꿈만 같아.”

금옥은 그날 일을 되짚어 생각해 보았다.

그날 금옥은 은수에게 보아란듯이 잘 살고 있는 모습을 과신하고 싶어서 수표 열장을 봉투에 넣어 주었었다. 그때만 해도 그럴 수 있었으니까.

그런데 십만 원 권 수표가 든 봉투와 백만 원 권 수표가 든 봉투가 바뀌어 간 것이다. 나중에 그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땐 은수의 전화를 받을만한 형편이 못되었다. 그땐 감옥에 있었으니까. 어쩌면 그것이 은수의 복이었는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십칠 년이 흘렀다.

그 동안 은수는 금옥을 찾기 위해 수소문을 했었다고 했다. 공무원이었던 남편의 도움으로 겨우 금옥의 주소지를 알게 되었고 초대장을 보낼 수 있었다.

은수 막내아들의 출판기념회 초대장을 받던 그날 금옥은 건물청소를 그만두던 날이었다. 하루라도 늦었다면 받지 못했을 것이다.

금옥은 멍한 표정으로 앉아 있었다.

은수가 금옥을 끌어안고 소리 내어 울었다.

“난 그날 이후 아이들에게 말했어. 금옥 이모의 기대에 벗어나서는 안 된다고 말이지. 그래서 아이들도 너에 대한 고마움을 마음 깊이 온축하며 자랐단다.”

금옥은 도무지 믿어지지가 않았다. 그때 그만한 돈은 금옥의 하루 쇼핑 값으로도 날릴 수 있는 돈이었다. 그랬던 그 돈이 한 가족을 살리다니.

은수가 금옥의 손에 건강검진 무료이용권을 쥐어주었다.

사위가 하는 병원인데 시간 내서 꼭 건강검진 받아보라고. 딸과 사위가 그날 금옥이 이모가 오면 주겠다고 준비해 온 것이라고 말했다.

금옥의 가슴속에 희망이 새롭게 싹트고 있었다. 세상은 살만한 곳이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한 것이다.

은수가 손수건으로 눈물을 훔치며 화제를 바꾸었다.

“금옥아, 우리 여고시절 생각나니? 그때 도시락 두 개씩 싸갖고 다녔었잖아. 점심 도시락은 2교시 끝난 뒤에 미리 까먹고, 점심시간 때에는 매점에서 컵라면을 먹었었지. 그때 먹던 컵라면만큼 맛있는 라면은 지금껏 먹어보지를 못했다니까. 너랑 이렇게 마주 보고 앉아 있으니까 그때 일이 생각난다.”

“기지배. 기억력도 좋다. 한번은 윤리 선생님한테 들켜서 도시락 높이 쳐들고 복도에서 벌도 섰잖아.”

“맞아, 맞아. 호호호. 엊그저께 벌어졌던 일 같은데 벌써 우리가 이렇게 나이를 먹다니. 우리 옛 추억을 더듬어서 컵라면 먹지 않을래?”

“그래, 좋아. 컵라면이라면 어제 사놓은 것도 있으니까 물만 끓이면 돼.”

가스레인지에 물을 끓이며 두 사람은 철없는 소녀처럼 미소를 지었다.

벗이란 이런 것이리라, 힘들고 어려울 때 보듬어 줄 수 있는 엄마 품속 같은 세상.

금옥은 더 이상 외롭지 않을 것 같았다.

은수가 금옥을 정식으로 집에 초대하고 싶다고 말했다.

금옥은 알았노라고 흔쾌히 대답했다.

 

은수가 돌아가고 난 후 금옥은 몰라보게 달라졌다.

분독이 올라 뿌옇던 얼굴에 불그레한 핏기가 돌기 시작한 것이다.

몸을 억누르고 있던 큰 짐 하나가 벗어진 느낌이었다.

꽁꽁 얼어붙은 땅에 발가벗겨져 내동댕이쳐진 몸뚱어리 같이 삭막했던 정신에 따뜻한 온기가 느껴졌다. 분명, 육신의 병은 마음으로부터 오는 것임을 알게 되었다.

은수가 사는 동네는 입구에서부터 깔끔했다. 노인정에서 나왔는지 동일한 조끼를 입은 할머니와 할아버지들이 쓰레기봉투를 들고 집게로 담배꽁초 하나까지도 주워 담고 있었다.

나이는 금옥보다 열 살은 연배로 보이는 사람들이었다. 눈썹까지도 하얗게 샌 노인들은 하나같이 즐거운 표정으로 봉사를 하고 있었다.

금옥의 가슴이 잔잔한 감동으로 일렁이었다.

슈퍼에 들러 향기 나는 두루마리 화장지 30롤을 샀다.

슈퍼주인이 어디에 가는 손님이신가요? 하면서 다정하게 물어왔다. 은수가 사는 아파트를 대면서 말을 하는 끝에 은수 막내아들 이름이 나오자 슈퍼아줌마가 호들갑을 떨면서 천원을 깎아주었다.

아파트 입구에서도 경비원이 어디로 가냐고 물어왔다. 202동 1205호에 간다고 말하자 대번 은수 아들의 이름이 튀어나오며 금세 금옥을 대하는 태도도 바뀌었다.

엘리베이터를 타는 곳까지 친절하게 안내해 주는 모습이 의아했다. 버튼을 눌러준 경비원이 허리 굽혀 인사를 하면서 돌아갔다.

엘리베이터 안에서 젊은 애기엄마와 자박자박 걷기 시작한 꼬마 아이를 만났다.

애기엄마가 살짝 웃으며 가볍게 눈인사를 건네었다. 꼬마 아이는 또랑또랑한 목소리로 안녕하세요? 라고 인사를 했다. 금옥도 얼떨결에 안녕! 하고 답례를 했다.

딴 세상에 온 듯했다.

숙살지기가 느껴지는 북쪽나라에서 따뜻한 남쪽나라에 온 듯 금옥이 사는 동네와는 다르게 온정이 흐르는 곳 같이 느껴졌다.

사람들의 얼굴에는 느긋함과 배려함이 자연스럽게 묻어있었다.

금옥의 가슴이 점점 더 녹아내리고 있었다.

숙연하게 숨을 몰아쉰 후 초인종을 눌렀다.

은수와 그녀의 남편이 반갑게 금옥을 맞아주었다. 신발장 위에 작은 들꽃화분이 가장 먼저 눈에 띄었다. 향이 좋았다. 그 때문인지 신발에서 나는 특유의 퀴퀴한 냄새가 나지 않았다.

신발을 벗어놓고 들어서자 거실 소파 위에 커다란 가족사진이 걸려있었다.

은수와 그녀의 남편, 큰아들 내외와 둘째 딸 내외 그리고 막내와 손자손녀들이 활짝 웃고 있는 사진이었다. 옆 동이 훤히 내려다보이는 베란다에는 야생화가 심겨져 있는 화분들로 꽃밭을 만들어놓았다. 방안 가득 꽃향기가 배어 있었다.

어디 한 군데 퀴퀴하고 지저분한 냄새가 없었다.

아파트는 32평 정도로 넓지도 좁지도 않은 알맞은 평수였다. 은은한 카키색 커튼은 양옆으로 처녀 머리같이 리본으로 묶여 있어 오후의 햇살이 여과 없이 거실로 내리쏟아지고 있었다. 거실에는 정갈하게 상이 차려져 있었다.

은수와 그녀의 남편은 똑 같은 앞치마를 두르고 있었다.

막내아들이 허리 숙여 인사를 했다. 가까이에서 보니 숭굴숭굴한 얼굴에 눈동자가 보석처럼 맑게 빛났다. 마주보는 사람의 심장이 벌렁거릴 정도였다.

큰아들 내외는 출판기념회가 끝난 즉시 미국에 들어갔다고 했다. 작은 딸은 오고 있는 중이라고 말했고, 의사 사위는 지금 제주도에서 열리는 세미나에 참석중이라고 했다.

은수가 덮고 자는 이불은 깨끗했다.

방 하나는 막내아들이 자는 방이었고, 또 다른 방은 서재처럼 꾸며져 있었다. 손님이 올 때 잠잘 수 있도록 소파 겸 침대가 창문 쪽에 하나 놓여 있었다. 화장실에도 들꽃, 주방에도 들꽃, 하물며 강아지풀까지 화분에 심어져 피아노 위에 놓여 있었다. 간혹 아즐아즐 흔드는 강아지 꼬리 같기도 했다.

금옥은 깊은 터널 속에 빠져들고 있는 듯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곧이어 쌍둥이가 왔다. 똑 같은 옷을 입은 쌍둥이들은 옴포동이같이 생긴 것도 비슷했다.

할머니 할아버지 품에 답삭 안기는 모습이 꼬마천사들 같았다.

처음엔 금옥을 낯설어 하던 쌍둥이도 한 상에 둘러앉아 밥을 먹고 과일을 먹는 동안 친해져 금옥의 무릎에도 앉을 정도가 되었다.

사치스럽지 않으면서도 화사한 집이었다. 서로를 보듬고 격려해 주는 편안한 온기가 흐르는 집이었다.

은수의 얼굴에 깃든 순화로움의 이유를 조금은 알 것 같았다.

금옥은 이곳에 살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다. 이렇게 따뜻한 사람들과 더불어 사람답게 한번 살아봤으면 원이 없겠다는 생각이 문득 솟았다. 화려하지 않고 소박하지만 보는 사람의 마음에 잔잔한 감동을 주는 야생화처럼 그렇게 살고 싶어졌다.

이곳이 바로 사람들이 살아가는 벗나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은수가 돌아가려는 금옥의 손을 잡아끌었다. 하룻밤만이라도 자고 가라고.

그녀의 남편도 그렇게 하라고 인사를 했다. 두 분이서 밤새껏 여고시절로 돌아가 보는 게 어떻겠냐고.

그날 밤 금옥은 은수와 함께 낡은 앨범을 꺼내놓고 밤을 지새웠다.

새벽녘에 잠이 든 금옥은 참으로 편안한 꿈을 꾸었다.

꿈결에서 소원을 빌었다. 영원히 이 꿈에서 깨지 않기를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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