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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동화>수루메 껍데기
2008-04-14 21:03:26
sionsira

조회:2539
추천:178

<수루메 껍데기>    

                                                                                         

                                           

맑고 쾌청한 하늘 아래 초가지붕들이 바가지를 엎어놓은 듯 보인다.

초가지붕 위에 얌체같이 앉아 있는 박 넝쿨은 귀엽기도 하지.

나는 힘차게 날갯짓을 하여 창공을 가르며 높이 날아올랐다.

참새들이 겁을 집어먹고 파르르 포르르 달아난다.

다들 나를 두려워한다.

나는 수리매다.

나는 큰 소나무 가지에 앉아 세상을 굽어보는 것이 취미이다.

요즘은 초가지붕 아래에 눈만 뜨면 말썽피우는 녀석을 관찰하는 중이다.

내가 녀석을 관찰하게 된 것은 모두가 나를 겁을 내는데 유독 그 녀석만 나를 얕잡아보기 때문이다. 

초가지붕에 살고 있는 할머니도 내가 나타나기만 하면 휘휘 팔을 내젓다가 쏜살같이 부엌으로 숨어버린다.

그 집에서 놀고먹는 수탉이라는 놈도 내가 떴다하면 꽁지 빠지게 도망을 가다가 대청마루 밑에 머리를 처박고 종일 나오지 못한 적도 있었다.

녀석이 살고 있는 집에는 수탉 말고도 눈이 예쁘게 생긴 고양이와 검둥개가 아옹다옹하며 무위도식하고 있다.

그 집에서 덩치가 제일 큰 누렁이는 주는 대로 먹고, 시키는 대로 일만하는 아주 따분한 놈이라 내게는 별 관심 대상이 못된다.

같은 하늘 위를 날아다니는 새들조차 나를 겁낸다. 

부리부리한 눈과 뾰족하고 강한 부리, 날렵한 사냥솜씨를 보면서 지레짐작으로 겁을 먹고 멀리하기 때문에 나는 늘 외롭다.

그런데 아무도 그런 내 심정을 모르는 것 같다.

누군가가 수리매야, 나랑 친구하자, 하면 나는 바로 달려가서 놀아줄 용의가 있는데도 말이다. 잘 생긴 것도 죄가 되는 세상에 나는 지금 살고 있다.

나는 가끔 저수지 위를 날다가 내 모습을 비추어 보곤 한다.

너무 잘 생겼어. 나보다 잘 생긴 놈 있으면 나와 봐!

그렇게 혼잣말로 지껄이다가 진짜로 물속에서 고개를 삐죽 내미는 놈이 있어 간만에 포식한 적도 있다.

웬 행운인지 모르겠다.

나는 행운의 수리매인 게 분명하다.  

나는 오늘도 파란 하늘을 휘젓고 다니면서 재미있는 꺼리가 없나 살펴보는 중이다. 

굴뚝에서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것을 보니 초가지붕 사람들 밥 때가 된 모양이다.

저들은 나처럼 단번에 사냥해서 찢어먹지 않고 참 불편하게 해서 먹는다.

나는 심심하던 찰나에 그거나 지켜보기로 마음먹었다. 

아! 녀석이 나타났다.

못생기고 땅딸막한 것이 대장노릇을 하며 늘 나무작대기를 갖고 다닌다.

나는 저 나무작대기가 사실은 제일 무섭다.

병아리 한 마리 몰래 훔쳐서 달아나다가 녀석의 나무작대기에 맞아 죽을 뻔 했다.

휴!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그것이 수리매 최악의 굴욕이었다.

잊어야해. 잊어야해. 그런 굴욕스러운 기억은 모두 잊어버려야 해.

하필 저 녀석에게 굴욕스러운 모습을 들키다니. 

창피해 죽겠다.

그래서 난 저 녀석이 나의 약점을 떠벌릴까봐 감시하는 중이다. 

저 녀석 때문에 아무도 나를 두려워하지 않으면 내 위신이 말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난 이 동네를 떠나야만 한다.

녀석이 나무작대기를 놓을 때 잽싸게 집어다가 저수지에 빠뜨려 영영 못나오게 만들 작정이다. 

두고 봐라! 무서운 녀석. 꼭 없애고 말거야!

나는 다부지게 결심을 하고 부리를 곤두세웠다.

할머니가 바구니에 꼬들꼬들 말린 무언가를 대청마루에 놓고 찢고 있다.

음~! 고소한 냄새. 도대체 이게 뭐지? 궁금해 죽겠네.

녀석이 마당에서 놀다가 대청마루로 폴짝 뛰어올라간다.

위험해.

녀석이 나타나면 항상 위험한 일이 발생한다.

내가 아무리 경고를 해 주어도 기척 없는 저들은 참 무딘 동물들인 것 같다.

할머니마저 꿈쩍 않고 무시해버리다니!

나는 그냥 소나무 가지에 앉아 지켜볼 수밖에 없다.

그러다가 기회가 포착이 되면 나의 멋진 사냥솜씨를 발휘하면 되는 것이다.

녀석의 목소리가 들린다.

나는 고개를 옆으로 돌리고 귓구멍을 활짝 열었다. 

“할매, 수루메 껍데기는 와 벗길라꼬?”

앗! 이건 또 뭔 소린가? 수리매 껍데기를 홀라당 벗긴다니?

나는 순간 몸을 움찔했다.

남보다 튼튼하다고 자부하는 다리가 부들부들 떨고 있다.

아, 쪽팔려!

“제사상에 얹을 라고 안카나.”

“그 아까운 걸 와 벗기노. 통째로 먹으면 될 낀데.”

나는 떨리는 다리를 옆으로 조금씩 겨우겨우 움직였다.

혹시 나를 잡으려고 덫을 놓은 건가? 그래서 잡히면 내 껍데기를 홀라당 벗겨서 제사상에 놓을 참인가? 아니지. 저 녀석은 나를 통째로 잡아서 제사상에 얹을 속셈인 거야.

나는 소나무 나뭇가지 뒤로 간신히 숨고선 고개만 삐죽 내밀었다.

역시, 저 녀석은 만만한 상대가 아니야.

녀석의 또랑또랑한 말소리가 또 들려왔다.

“할매, 수루메 껍데기 벗기면 내도.”

“그까짓 거 아무 맛도 없다.”

이빨이 다 빠져 엉성한 할머니는 목소리에도 기운이 없다. 

나 같은 새들은 늙으면 날개에 힘이 빠지고, 인간들은 늙으면 목소리에 기운이 빠지는 모양이다. 

녀석이 벌떡 일어나 팽 돌아앉더니 툴툴댄다.

“와? 질겅질겅 씹으면 하루 종일 맛난다 카이.”

녀석의 입맛은 참 독특한 모양이다.

나는 내 깃털을 콕콕 찍어보았다. 아직까지는 튼실하다.

녀석 좋은 건 알아가지고.

나는 나뭇가지 뒤에서 꼼짝도 못했다.

아무도 내가 녀석을 겁내는 걸 모를 텐데. 그래도 어쩔 수가 없다.

녀석에게 잡혀서 껍데기 홀라당 벗겨지지 않으려면 내 몸은 내가 지켜야 한다.

암, 그렇고말고.

“이놈아, 저리 안가나. 거치적거려서 못하겠다마.”

“할매는 맨날 나만 갖고 그래.”

녀석이 마당에 내려와 지청구를 부리며 나무작대기로 애꿎은 흙만 후벼 팠다.

와! 사정없이 파는 저 나무작대기의 위력을 보라. 

나는 나무작대기를 보자 날개를 움츠렸다.

계속해서 고소한 냄새가 스멀스멀 올라온다.

환장하겠다.

냄새는 자꾸 나를 유혹하고, 녀석의 나무작대기는 버팅기고 있고.

휴! 이럴 땐 지혜가 필요해. 지혜가.

나는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지혜를 짜보았다.

도통 기발한 생각이 떠오르지 않는다.

이러니까 새 대가리, 새 대가리 하면서 욕을 먹는가보다.

할머니가 고소한 냄새가 나는 것을 똘똘 뭉쳐 마당에 휙 집어던졌다.

나는 깜짝 놀라 날개를 푸드득거렸다.

녀석이 봤을까?

나는 잽싸게 초가지붕 위에 살포시 내려앉아 기회를 염탐했다.

대청마루 위에서 늘어지게 자던 고양이가 야옹, 하고 달려들었다.

그 순간 부엌 앞에 있던 검둥개가 멍멍, 하고 고양이에게 달려들었다.

옥신각신 고소한 것을 서로 차지하려고 싸워댔다.

쯧쯧쯧! 교양 없는 녀석들!

나는 부리를 하늘 높이 쳐들고 깔보았다.

그때 대청마루 밑에 숨어 있던 수탁이 꼬끼오, 하면서 두 녀석의 싸움에 끼어들었다.

앗!

수탉이 고소한 것을 입에 물고 달아난다.

아니 이럴 수가!

가만히 녀석들 싸움을 구경만 하다가는 맛있는 걸 빼앗길 판이다.

나는 대추나무 위로 날아가 숨을 죽이고 지켜보았다.

녀석이 수탉을 쫓아가고 있다.

수탉은 녀석에게 빼앗기지 않으려고 종종걸음으로 도망치다 갈 데가 없으니 부엌으로 들어가 버렸다.

수탉은 틈만 나면 머리를 처박고 숨는 아주 어리석은 놈이다.   

녀석이 포기도 하지 않고 수탉을 쫓아 부엌으로 들어갔다.

부엌에서 국을 푸던 젊은 여인이 화들짝 놀라 국솥을 쏟아버렸다.

“앗! 뜨거!”

꼬끼오, 꼭꼭꼭! 푸드득!

“내 수루메 껍떼기 내놔!”

녀석은 부엌을 난장판으로 만든 것도 모자라 뜨거운 국까지 쏟고선 온 집안을 헤집고 다녔다. 수탉은 녀석에게 잡히지 않으려고 발버둥을 쳐댔다.

“이를 우짜면 좋노, 아까운 국 다 쏟아 뿐졌네! 하이고 시어마시야. 이를 우짜면 좋노!”  

부엌에서 죽이는 냄새가 올라온다.

킁킁킁, 냄새를 맡은 동네 개들이 한꺼번에 부엌으로 몰려들었다.

개코같은 녀석들! 냄새 하나는 기가 막히게 맡는다니깐! 

나는 요란한 개소리 때문에 시끄러워서 다시 초가지붕 위로 날아갔다.

부엌에서 나온 수탁이 누렁이 집으로 향했다. 

하루 종일 힘들게 일한 탓인지 누렁이는 드러누워서 꿈쩍도 하지 않다가 아닌 밤중에 홍두깨마냥 나타난 수탉 때문에 깜짝 놀라 육중한 몸을 일으켜 세웠다.

지독한 녀석이 또 나타났다.

“내 수루메 껍데기 내놔!”

누렁이가 음매, 하고 뒷발을 들었다가 차는 바람에 수탉이 마당에 내동댕이쳐졌다.

수탉이 입에 물고 있던 것이 뚝 떨어졌다.

나는 그 순간 잽싸게 날갯짓을 했다.

나의 훌륭한 사냥솜씨를 발휘할 때가 드디어 온 것이다.

그런데 녀석의 손이 내 발보다 앞서서 낚아채 갔다.

앗, 이런 실수를 하다니!

고소한 냄새를 풍기던 것이 녀석의 입속으로 쏙 들어갔다.

나는 맨땅에 발길질하느라 발톱이 부러졌는지 욱신욱신 통증이 느껴졌다.

녀석이 나무작대기를 붙들고 나를 향해 휘저었다.

나는 얼른 도망쳐 나왔다.

휴! 살았다.

녀석이 나처럼 날지 못해 천만다행이다.

녀석의 볼때기가 불룩하다.

나쁜 녀석! 그 고소한 것을 혼자 다 먹다니.

그러고 보니 분명히 수리매 껍데기라고 했는데, 그게 뭐지?

나는 궁금해서 살금살금 감나무 위에 앉아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할머니는 대청마루에 구부정한 허리도 못 피고 앉아 마른오징어 껍데기를 벗겨내고 있었다.

아하! 저것이었어?

나는 녀석이 입에 물고 있는 것이 오징어 껍데기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녀석은 우쭐해 하며 오물오물 수루메 껍데기를 씹고 다닌다.

마당에는 아직도 고양이와 개가 아옹다옹 싸우고, 수탉은 아직도 정신을 못 차렸는지 마당을 빙글빙글 돌고 있다.

국 냄새를 맡고 쫓아온 동네 개들은 서로 핥아 먹으려고 지들끼리 으르렁대고 있다.

젊은 여인은 뜨거운 국에 예민한 부위를 데었다고 콩 튀듯 팥 튀듯하고 있다.

나는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듯 허탈하게 녀석을 내려다보았다.

굴뚝에서 구수한 연기가 계속 뿜어져 나온다.

구수한 냄새를 맡으니 배가 고프다.

나는 개구리 사냥이나 하러 가야겠다.

개구리는 녀석이 못 뺏어가겠지?

시원한 바람이 분다.

바람을 가르며 힘차게 날아오를 때면 세상에 내가 최고인 것 같다.

나는 수리매다. 

녀석이 씹고 있는 것은 수루메 껍데기다.

나와는 아무 상관이 없는 거다.

괜히 혼자 겁을 먹고 덩달아 난리 친 게 부끄러워 부리가 간질간질하다.

사냥하러 가는 길에 저수지에 가서 부리랑 발톱을 깨끗이 씻어야겠다.

그러다가 또 잘난 놈 나오면 그냥 거기서 저녁 해결하지 뭐.

나는 운이 좋은 수리매니까.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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