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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화국 장편소설 <꿈꾸는 설악> 연재 28회
2010-04-23 07:58:18
38hwakook

조회:1342
추천:90
소설 <꿈꾸는 설악> 연재 28회|시와 소설 / 이화국  

   선희는 자신의 유치함에 대해서 변명할 말을 찾고 싶었다.

    주민등록증에 있는 본적과 신림동 99번지라고 적힌 주소를 머리에 입력하고, 다음엔 몰래라도 저

일기장을 한번 훔쳐 보리라며 부지런히 경찰서 수사과로 향해 가고 있는 중이었다.

 

    드디어 시청 옆에 자리한 경찰서에 도착했다.

    김은태가 수사과로 들어가기 위하여 운전석에서 내려섰는데 선희가 따라 내려서니 오지 말라고

했다.

 

  “왜요?” 

  “아 여자가 그런 덴 왜 가?” 

  “그냥요.” 

  “그냥이라니 별, 참.” 

 

    할 말이 없어서 초조하게 차 곁에 서있는데 김은태가 나왔다.

  “담당이 없어. 점심 시간이라 나갔대. 어디 가서 점심이나 먹고 다시 오자구.” 

  “정군은요?” 

 

  “구내 식당에서 먹겠다더군. 사내 자식이 왜 그리 숫기가 없는지 얼어 있더라구.” 

  “그럼 같이 데리고 갑시다. 구내 식당 밥이 오죽 할라구요?” 

  구내 식당

  “그럴까.” 

    사람 좋은 김은태는 다시 들어가더니 좀 뒤에 혼자 나왔다.

  “안 나오겠대. 어디 가까운데 가서 냉면이나 먹자구. 이 더위 참 살인적이네.” 

 

  “정말 덥네요.” 

    고개를 끄덕이며 건성 대답하고 남편의 뒤를 따라갔다. 저만큼 경찰서의 낮은 담 위, 창 밖으로 등

을 돌리고 서 있는 민호가 보였다. 고개를 푹 숙이고 서 있었다. 냉면이 먹히지 않았다. 물론 너무 덥기

때문에 식욕이 날 리도 없을 게다. 선희는 끔찍한 더위와 함께 민호가 다래 모텔로 온 날을 떠올렸다.

 

    1984년 7월 22일.

    그날부터 유난히 더위가 극성을 부린다 싶었다. 점심 후에 김은태가 다시 경찰서로 들어가는데

같이 들어간다고 선희는 떼를 썼다.

 

  “거 왜 자꾸 여자가.”

  “한 번 쯤은 경찰서 같은 데도 구경해 둘 필요가 있다구요.” 

    못 이기는 체 함으로 선희는 남편의 뒤를 따라 들어섰다.

 

    경찰서 복도는 바깥 보다는 시원하였다. 시골 초등학교 처럼 생긴 복도에 수사과 사무실 앞 쪽으로

민호는 서있었다. 선희는 갈잎으로 엮은, 챙이 좀 넓은 모자를 약간 눌러 쓰고 그 챙 밑으로 민호를

올려다 보았다. 금시 눈물 방울이 떨어질 것 같은 눈으로, 그러나 입은 반쯤 열려 있었다.

 눈물방울 

  “그게 울음이야? 웃음이야? 그 표정 하고라니 차마 못봐 주겠네. 무슨 그리 큰 죄를 지었다고.” 

  “죄송해요.” 

  “바보 같이.” 

 

    어깨를 한 번 툭 쳐 줬다. 그리고 웃어주었다. 선희는 자기의 밝은 미소가 민호에게 전달되어 기분

이 상쾌해지길 바라며 복도의 의자에 앉았다. 앉은 자리에서 곧바로 바다가 훤히 시야에 들어왔다.

 

    방파제 공사를 위하여 바다에 콘크리트 사각봉 구조물을 집어넣어 담 모양으로 주욱 쌓아 나가고

있는 것이 저만큼 보이는데 몬테크리스토 백작이 나오는 그 바다의 암굴이 연상되었다.

 

    바다는 참 파랬다. 그 파란색이 어찌나 부드럽고 평안해 보이던지 한바탕 그 위에서 딩굴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지만 특별한 경우의 사람을 제외하곤 바다는 그저 바라볼 수 밖에 없는 존재였다.

 

    그래서 선희는 바다는 그저 바라보기만 해야 하기 때문에 바다란 말은 ‘바라 보다의 준말’이라고

정의를 내려보았다. 또한 바다는 얼마나 넓은 가슴인가. 그 넓은 가슴이 말하는 것 같았다.

 

            나는 큰 바다

          너는 하얀 눈송이 되어 나풀나풀 내리거라

          험한 장대비로 꽂히거라

          내게로만 이르거라

          아무 상처 없이

          사랑의 푸른 치마폭에 가만히 싸 안을 걸

          억만년 가도 넘쳐보지 못할

          그대 향한 사랑

          한 마음은 아직 더 크고 더 깊을 수 있다

 

    한 마음은 아직 더 크고 더 깊을 수 있다...   

    선희가 느낀 바다는 그렇게 말하며 손짓 하는 것 같았다.

    어쩜 그것은 민호를 향한 그녀의 마음 같기도 했다.

 

    바다는 정말 파랬다. 파란 색은 희망이 아닌가. 파란 바다가 보이는 곳에 있는 경찰서에서는 사건도

아마 모두 쉬이 풀릴 것이었다. 만삭이 되어 보이는 여자가 선희 옆에 앉아 있었다. 아마 면회도 쉽게

이루어질 것이고, 아기도 한 번의 파도가 밀려 오고 밀려 나가는 사이에 순산하게 될 것이 틀림 없다고

선희는 그렇게 믿었다.

 

    얼마 뒤에 김은태가 나왔다. 성큼 성큼 말없이 걸어 나가므로 선희와 민호는 무슨 큰 잘못을 저지른

사람 같이 줄레 줄레 뒤 따라 걷기만 했다. 세워둔 차 옆에 다달아 김은태가 문을 열어줌으로 민호는

뒷 좌석에, 선희는 앞 좌석으로 올랐다. 말없이 앉아있기만 하니까 겁먹은 얼굴로 보였는가 보았다.

 

  “왜들 그래? 걱정할 것 없다구. 내가 보증을 섰기 때문에 즉시 보내주는 건데 아마 벌금이 나올 게야. 정군, 너 월급은 다 탔다. 하하 무슨 남자가 그래. 그렇게 말이 없어. 진즉 얘기했으면 벌금 같은 거 안

물고도 되는 거였다구.” 

 

    차가 움직였다. 돌아오는 길에 저녁에 예약 손님 40 여 명이 있음으로 시장에 들러 장을 보았다.

민호는 시장 바구니를 한사코 자기가 들려고 했다. 선희는 짐짓 빼앗았다. 김은태가 안 보이는 시장

뒷 길에 이르러 민호에게 물었다.

  “점심은 정말 먹은 거야?” 

 시장 뒷길 

  “정말 먹었어요.” 

  “늘 밥도 잘 안 먹고 해서 나온 김에 맛있는 거 사주고 싶어 그래. 뭐 먹고 싶은 거 정말 없어?” 

 

  “신경 쓰지 마세요.” 

  “그럼, 그런 표정 짓지 마. 곧 죽을 사람 같애.”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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