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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화국 장편소설 <꿈꾸는 설악> 연재 25회
2010-04-19 14:28:51
38hwakook

조회:1317
추천:83
소설 <꿈꾸는 설악> 연재 25회|시와 소설 / 이화국  

 

   “그렇게 보였어요?” 

  “아니몬 에치켓이 없는 기고. 거 다 빼도 니는 사람 접대하는 영업 장소에 나앉아 있질 않는가?”

    지당한 말씀이었다.

 

   선희는 그 후로부터 머리 염색을 시작한 것인데 애띤 그 여자애의 얼굴을 보자 왜 나이를 떠올리

되는 것인지 자신이 한없이 초라하게만 느껴졌다. 선희가 방에 들어와 맥놓고 앉아있으려니 이군이

쌍화차를 드시라며 그녀 방으로 밀어넣었다. 그리고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

 

    선희는 천천히 마신 후 다 비운 찻잔을 그들의 꼭 닫은 도어 밖에 찾기 좋도록 놓았다. 이젠 문을

열어보지 않기로 했다. 그래 네가 원하는 일이라면, 네가 좋아하는 일이라면 하도록 해 줘야지. 나는

너에게 모든 좋은 것만 주고 싶으니까. 사실 그것이 무엇인지 모르지만…

 

    전화벨이 울렸다. 이 전화는 사무실에 연결 되어서 선희의 방과 양쪽에서 동시에 받을 수 있게 가

설된 것이다. 선희는 전화기가 손 가까이 있음으로 수화기를 먼저 들었지만 민호가 받을 때까지 아무

말을 안 했다.

  “난데 지금 나올 수 있겠냐?” 

 

    이군이 언제 나갔는지 밖에서 거는 전화였다.

  “왜애?” 

    별로 내키지 않는 대답이었다.

  쐬주   

  “쐬주나 한 잔 하게, 지금 나올 수 있느냐구?”

  “응, 나갈 수는 있어.” 

  “그럼 동해식당으로 와. 기다릴게. 나 말고 너 기다리는 사람 또 있다.” 

 

    전화는 끊겼다. 시계를 보니 밤 열한 시가 막 넘어서고 있었다.

  “잠깐 나갔다 와도 되겠어요?” 

    선희의 방문에 노크를 하며 방문 밖에 민호가 서 있었다.

 

    선희가 대답했다.

  “그걸 나한테 물을 필요가 있을까?” 

 

    이 말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잠깐 생각하는 듯 고개를 갸우뚱하더니 돌아서 나갔다. 사실 가지

말라고 해도 꼭 나갈 맘이면 안 나갈 리도 없고, 몇 푼의 급료를 지불한다고 해서 그 사람 전체를 산

것도 아니었다. 더구나 선희는 민호를 한 번도 고용인으로 생각한 적이 없었다.

 

    현관에서는 LA 올림픽 중계가 아직도 한창이었다. 스포츠 열기란 대단했다. 선희는 방을 나와 현

관 소파에 앉았다. 스포츠 중계를 보는지 안 보는지 주방장 대식이 엄마가 잠든 대식이를 무릎에

누이고 멍하니 앉아 있었다.

 

    대식이 엄마는 남편이 있으나 그 남편이 딴 살림을 차리고 대식이 모자를 돌보지 않음으로 돈벌

이에 나선 불쌍한 여인이었다.

  “안 자는 거야? 잘 시간인데.” 

 

  “자야지유. 그런디 손님은 언제 또 오나유?” 

 “사장님이 아셔서 하겠지. 때 되면 오겠지 뭐.” 

  “놀기가 더 힘드네유. 공상만 생겨유”. 

   동해식당

    그러면서 맥빠진 얼굴로 앉아 있다. 군데군데 기미가 시꺼멓게 끼어있는 얼굴이었다.

    어린 것을 데리고 남의 집을 살아야 하는 그녀의 팔자가 자기 책임인양 선희는 가슴이 아팠다.

관광객을 받지 못하니 월급을 받을 수 있을까. 어쩌면 그런 걱정을 하는지도 모른다.

 

    신병을 앓는 남편도 은근히 걱정이라 모든 것이 우울하고 유쾌한 일이란 한 가지도 없었다.

    하이얀 안개가 겹겹으로 앞을 가려서 서로 손가까이 있으면서 잡을 수 없고, 해답이 있어도 보지

못해 찾아내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

 

    초가을 아침에 안개가 자욱히 끼어서 앞이 보이지 않는 날은 그 안개가 걷히면서 다른 날에 비해

유난히 하늘이 푸르고 청명하지 않았던가. 그렇게 언젠가는 이 생활도 상쾌하게 끝나는 시점이 어딘

가에 숨어 있으리라. 의외로 가까이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런데도 걱정 해야 하는 일이 우울

했다.

 

    아무리 어려운 생활이라도 숱한 세월 뒤에 인간이 얼마나 잊기 잘하는 동물인가 하고 돌아볼지

모른다.

    잊는다는 것은 커다란 은혜이기도 하지만, 반면에 구제할 수 없는 불행이기도 할 텐데 말이다.

 

    흥미도 없는 중계가 시끄러워 선희는 음악이나 들으려고 카운터로 들어갔다. 히브리 노예들의 합

창이 듣고 싶었다. 바빌론의 포로로 잡혀와 고생하던 히브리인들이 고향을 그리워 하면서 부르던 그

노래는 선률이 아름답고 애조가 어려있어서 선희의 마음을 늘 차분하게 가라앉혀 주는 효과가 있었다.

히브리노예

   뿐더러 선희는 자기가 이 설악동이라는 데로 노예로 끌려와 사는 착각 속에 빠질 때가 많아서 자기

의 고향, 사랑하는 아들 딸이 있고 자기가 성장하면서 낯 익힌 그곳, 그 거리로 언제나 돌아가나 그리

워 하는 마음이 나부꼬를 즐겨 듣게 만드는 이유가 되었다.

 

    이윽고 대식이 엄마도 아이를 데리고 자기 방으로 들어갔다.

    음반이 앞뒤를 다 더듬은 후가 되어도 민호는 돌아오지 않고 있었다. 현관에 인기척이 나서 돌아

보니 김은태였다. 어디선가 술을 마시고 들어오는 모양이었다.

 

  “왜 여직 안 자고 있어?” 

  “누가 알아요? 혹시 눈먼 나그네가 제 발로 찾아오는 횡재가 있을지.” 

공연히 해보는 소리지만 선회는 자기가 그렇게 임기응변에 능한지 스스로 놀랐다.

 

  “공연히 헛고생 말고 잠이나 자 두라구.” 

  “그게 좋겠네요.” 

    둘은 방으로 들어갔다.

 

    선희가 이불을 깔았다. 특실에 놓을 이불을 살 때 부탁해서 만든 이불은 고급이었다. 둘이 나란히

자리에 눕자 참으로 오랜만에 선희는 왠지 누군가의 팔에 푸근히 안기고 싶다는 욕망이 일었다.

그래서 김은태의 팔을 끌어다 베고 누워봤다. 머리를 그의 가슴에 밀착시켰다.

 

    바람막이가 뒬 수 없고, 어려운 일의 해결사가 될 수 없는 남자 팔은 든든하지도, 푸근하지도,

편안하지도 않았지만 선희가 그런 느낌이 들자 동시에 김은태는 그나마 자기의 팔을 빼냈다.

 “이 여자가 왜 안 하던 짓을 하구 그래.” 

  안 하던 짓

    선희는 마치 강간을 하려다가 들킨 사람처럼 무안스러웠다. 그리고 화가 났다. 하지만 억지로

참으면서 부드럽게 말했다.

  “내가 무리한 요구를 하는 거에요?” 

  “전엔 그런 일 없었잖아. 나이 먹은 여자가.” 

 

  “나이 먹은 여자라니요? 당신, 석양 노을이 더 붉게 타는 것 몰라요? 나도 그러고 싶은 때가 있

다구요. 여보 한 번만.” 

    그러면서 한사코 김은태의 가슴으로 파고들었다. 오랜만에 불 붙은 그녀의 욕망은 자존심보다

컸다.

 

    그래서 자존심은 잠시 구겨 넣기로 하고 그렇게 콧소리 섞어 애원조로 말하면서 손을 그의 하체

쪽으로 옮겨가보았다. 그의 아래는 뿌리가 완전히 죽어있었다. 캄캄했다. 소생할 기미가 전연 보이

지 않았다.

 

    선희는 김은태에게서 손을 거두고 그에게서 멀어져 나와 요 위에 엎드렸다. 뭔가 중요한 한 가지

를 잃은 것 같아서 허전하고 섭섭했다. 공연히 눈물이 나와서 흘쩍거렸다.

 

  “아니 이 여자가 초상이 났나. 왜 울고 그래.” 

    선희는 일어나 눈물을 훔치며 말했다.

  “어째 잠이 올 것 같지 않네요. 책이나 보다가 들어 올게요. 먼저 주무세요.”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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