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에는 세상에 이런 장사도 있나 싶었다.
호텔안내에서 일할 때만 해도 백 만 원이 엄청 큰돈이었다. 백 만 원도 안 되는 돈을 벌려고 다리가 퉁퉁 붓도록 온종일 서있어야 했고, 얼굴에 경련이 일어날 정도로 미소를 지어야 했었다. 그러고 받는 돈이 겨우 백 만 원이 조금 안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금옥은 호텔을 자주 이용하던 돈 많은 사람의 눈에 띄게 되어 팔자가 바뀌어버렸다. 처음 유혹의 손길이 왔을 때는 많이 망설였었다. 아무리 돈이 좋다지만 35년이라는 나이차를 극복할 수 있을까, 사람들이 알면 뭐라고 손가락질할까. 시집도 가기 전에 이래도 되는 건가. 그러나 그 어떤 고민도 돈 앞에서는 와르르 무너졌다.
명품이 눈앞에 알짱거리고, 고급주택과 기사 딸린 고급승용차가 눈앞에 아른거렸다. 그 정도의 조건이라면 손가락질 받아도 다 감수가 될 것 같았다.
금옥은 몇 시간도 고민 않고 남자의 청에 응해버렸다. 그리고 생전 누려보지 못했던 호화로운 생활이 시작되었다. 그야말로 여왕이 된 듯했다.
남자는 일주일에 한두 번 찾아와 금옥의 온유향을 느끼곤 했다.
머리에 서리가 내린 지 오래된 남자의 몸에는 이미 저승꽃도 피어 있었다. 반들반들한 젊은 피부에 자작나무껍질 같은 노인의 살이 닿을 때마다 소름이 돋았다. 그래도 금옥은 정성을 다해 애무를 해주었다. 그 어떤 것도 금옥이 누리고 있는 호화로운 생활에 견줄 바가 못 되었기 때문이었다.
남자는 소파에 잦바듬히 기대고 앉아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금옥의 행동 하나하나를 즐겨보았다. 남자가 오는 날은 속옷 하나 걸치고 있으면 안 되었다. 온다는 연락을 받으면 으레 옷을 벗고 알몸으로 대기하고 있어야 했다.
처음에는 부끄럽고 치욕스러워 이 짓을 그만할까도 생각했으나 하다 보니 원초적 본능을 느끼게 되어 자유롭기까지 했다.
금옥을 발가벗긴 남자는 와인을 마시면서 금옥에게 허리를 구부려보아라, 다리를 벌려보아라, 물구나무를 서서 다리를 옆으로 벌려보아라. 쪼그리고 앉아 보아라, 민망할 정도로 시켜댔다. 금옥은 그의 사랑을 받는 것이 아니라 성노리개에 불과했다. 그 대가로 가진 게 돈밖에 없다는 남자는 비싼 값을 치러줄 뿐이었다.
금옥은 그때마다 심한 모멸감에 입술을 떨었다. 남자는 금옥의 표정이 바뀌면 화를 내었다. 나를 위해 그 정도도 못 해주냐는 식이었다. 내가 바라는 게 그런 것밖에 더 있냐는 식이었다. 그러면서 카드를 사타구니에 끼워주었다. 마음껏 쇼핑하라고. 그러면서 기분전환을 하라고 했다.
실컷 금옥의 나체쇼를 구경한 남자가 옷을 벗고 욕실로 향하면 금옥은 뒤따라 들어가 남자의 몸 구석구석을 씻겨주어야 했다. 겉보기와는 달리 남자의 몸은 형편없었다. 남자는 심한 피부병까지 앓고 있었다. 손으로 문지르면 종잇장처럼 허연 허물이 벗겨졌다. 마치 자작나무의 껍질을 어루만지는 기분이 들었다.
금옥은 그 생활 1년 만에 연기자가 다 되었다. 싫어도 웃고, 징그럽고 구역질이 나도 사랑스러운 표정을 잃지 않았다.
남자는 하루가 다르게 메말라갔다. 죽음이 멀지 않은 듯했다.
젊은 날 고생고생해서 모은 돈으로 땅을 샀었고, 일가를 이루었고, 시대가 바뀌자 황무지 같았던 땅이 금싸라기 땅이 되어 일약 부자가 된 케이스였다. 자고 일어나니 하루아침에 몇 백 억 부자가 되어 있더라고 남자가 말했다. 사놓은 후 줄곧 잊고 살았던 땅이었는데 어느 날 보니 평당 1억에 육박한 땅이 되어 있더라는 것이다.
그 땅을 팔아 건물을 샀다. 건물에서 나오는 수입만 해도 지출을 공제하고 남은 돈이 매달 수 천 만원씩이었다. 그러다 보니 힘들게 일할 필요성도 못 느꼈고 가만히 놀고먹는 일도 처음에만 좋았지 무료해서 죽을 맛이더라는 것이었다.
그렇다고 남들처럼 운동을 하거나 유흥업소를 찾기엔 몸이 따라주지 않았다. 언제부터인가 생긴 악성피부병 때문이었다.
여자들이 아무리 많은 돈을 준다 해도 문둥병 환자를 보듯 멀리했기 때문이었다. 어떤 사람에게는 에이즈 환자가 아니냐는 오해를 받기도 했었다.
그런데 유일하게 남자를 받아준 사람이 금옥이었다고 말했다.
남자는 쉽게 사람을 믿지 않았다. 쉽게 마음을 열고 정을 주지도 않았다.
남자에게 사람들은 하나같이 부림의 대상이었다. 돈으로 부리는 사람. 남들보다 후하게 주면 후한 대접을 해 주었기 때문에 그런 데서 공허한 마음을 채우곤 했던 것이다.
남자는 금옥을 만나기 전에 하고 싶어 상상만으로 즐겼던 일들을 하나하나 기억해 내며 요구했다. 관음증 환자처럼 보는 것을 즐겼다. 겉보기에는 화려한 것 같으나 사실은 썩어 들어가고 있었다. 몸과 마음 둘 다.
목욕이 끝나면 안방 침대에 남자가 눕는다. 금옥은 머리끝부터 발가락 끝까지, 아니 발바닥까지 혀로 애무를 해야 했다. 벗겨진 허연 허물이 때론 입안으로 들어가 토한 적도 있었다.
남자는 금옥의 서비스를 받으며 가만히 눈을 감고 시체처럼 누워 있었다.
한 두 시간 정도 극진한 서비스가 끝나고 나면 죽었던 남성이 꿈틀거린다. 그때는 몸을 곧추세우고 산짐승처럼 달려들어 금옥을 범한다. 그것도 오 분을 못가 끝내버렸다.
몸이 달아 있던 금옥은 스스로 자위행위를 하여 사정을 끝내곤 했다.
그것도 남자가 보는 앞에서 해야만 했다.
그런 생활의 연속이었다. 그때가 금옥의 나이 스물여섯 살 때였다.
금옥은 남자에게서 받는 스트레스는 쇼핑을 하면서 풀었다.
마음에 드는 물건은 무조건 사서 드레스 룸 가득 채워갔다. 구두와 백도 옷에 맞추어 사들였다. 고급레스토랑에 가서 밥을 먹었고 카드를 조자룡 헌 칼 쓰듯 휘둘러대며 사용했다.
금옥이 남자와 부적절한 관계를 맺으며 사치스러운 생활을 할 때 여고동창생인 은수는 사내결혼을 하여 아들을 낳고 단칸방에서 생활했다.
월급을 쪼개고 또 쪼개어 저금을 하면서 생활을 꾸려가도 늘 옹색한 살림을 못 벗어났다.
은수에게 명품은 먼 나라 얘기였다. 어떻게 하면 채소를 더 싸게 살까 고민하며 재래시장까지 다리품을 팔아야만 했다.
은수와 금옥은 가끔 전화연락만 하는 정도였다.
금옥은 한가했으나 은수가 시간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아이 분유 값이라도 벌 요량으로 부업을 시작했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실밥 떼는 일을 했으나 온 방에 먼지가 자욱하게 끼어 건강을 해치는 것 같아 그만 두었다.
첫째가 자박자박 걸을 무렵 둘째 딸을 낳았다.
적금과 계 탄 돈으로 작은 임대아파트를 얻은 후 브라자 속에 끼우는 와이어를 가공하는 부업을 했다. 그것도 먼지는 나지 않았으나 손가락이 온통 상처투성이로 변하는 바람에 그만두었다.
남편은 아이 잘 키우고 살림 잘 하는 게 돈 버는 거라면서 힘들게 부업하지 말라고 말렸다.
큰 애를 학교에 보내놓고 둘째는 유치원에 보낸 은수는 만삭인 몸으로 아무것도 할 수 없어 집안일만 했다. 대신 남편이 직장에서 돌아오면 저녁을 먹은 후 곧장 야간 아르바이트를 했다.
셋째가 태어나고 돌잔치를 할 때 금옥을 초대했다.
그날 금옥은 기사가 운전하는 고급승용차를 타고 왔다. 온갖 선물보따리를 싸들고 온 금옥을 은수는 부러운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금옥은 까칠해진 은수의 얼굴을 보며 말했다.
“얘, 애 키우면서 고생이 심했나보다. 얼굴이 많이 상했어. 마사지 좀 받으면 괜찮아질 텐데.”
금옥이 은수에게 마사지 무료티켓을 주면서 시간 내서 꼭 받으라고 말했다.
은수는 황당한 표정을 지으며 고맙다고 말했다. 올망졸망한 아이들이 금옥이 들고 있는 백이 신기한 듯 매만졌다. 금옥이 지갑에서 만 원짜리 두 장을 꺼내어 첫째와 둘째에게 책 사보라고 용돈으로 주었다. 돈을 건네받은 아이들이 은수의 눈치를 살폈다.
“엄마, 이거 받아도 되나요?”
“엄마?”
두 아이는 냉큼 받는 게 아니라 엄마에게 묻고 있었다.
“그래. 이모가 주는 돈이니까 받아도 돼. 고맙습니다, 하고 인사드려.”
“고맙습니다. 이모.”
용돈을 받아든 아이들이 깡충깡충 뛰면서 자기들 방으로 들어갔다.
집안에는 애들이 아직 어려서 그런지 성한 물건이 없었다. 아이 돌잔치라고는 하나 손님이라곤 금옥 외에 대여섯 사람뿐이었다. 동그란 상에 차려진 밥을 먹은 후 금옥이 은수를 밖으로 불러내었다. 앞치마를 두른 은수가 슬리퍼를 질질 끌고 아래로 내려갔다.
“남편 벌이는 괜찮니? 아이 셋 키우려면 돈도 만만찮게 들 텐데.”
“응. 괜찮아. 넌 좋아 보인다. 요즘 뭐하니?”
“응. 예전에 땅을 좀 샀었는데 그게 오르는 바람에 재미 좀 봤어.”
“그랬구나. 학교 다닐 때부터 넌 똑똑했잖아. 얼굴도 예쁘고, 성격도 활달하고. 그러더니 역시 넌 잘사는 구나. 결혼은?”
“결혼? 그딴 걸 왜하냐? 화려한 싱글로 난 살 거야. 구질구질하게 남편 뒷바라지하면서 매여 산다는 게 체질에 맞지 않을 것 같아. 심심하면 애인하나 만들어 즐기면 되지 뭐. 그나저나 넌 많이 힘들겠다. 요즘 셋 키우는 가정 드물던데. 하여튼 고생해라. 이거 받아둬. 애들 옷이라도 한 벌 씩 사주고, 너도 한 벌 사 입어.”
금옥이 흰 봉투를 은수 손에 쥐어주었다. 고무줄로 질끈 묶은 머리카락 사이로 송골송골 땀이 맺혀 흐르고 있었다.
금옥은 은수가 보는 앞에서 기사가 열어주는 자가용에 올라타고 차 창밖으로 손을 흔들었다.
“은수야. 다음에 기회가 되면 또 보자.”
“그래. 금옥아. 잘 가. 그리고 고마워.”
그날 은수는 잠을 제대로 잘 수가 없었다.
손님이 가고 난 후 설거지와 청소를 마치고 아이들 방문을 열고 들어갔다.
잠들어 있는 아이들 배위로 이불을 끌어다가 덮어주고 나왔다. 막내의 새근새근 잠자는 소리를 들으며 무릎깍지를 끼고 앉아 금옥을 떠올렸다.
무척 생활이 윤택해보였다. 기사를 부릴 정도면 집안에 가정부까지 부리면서 살 거라 상상하니 무척 비교가 되었다. 그러나 은수에게는 아이들이 있었다. 희망덩어리 아이들. 어떻게 해서든 훌륭하게 키워야할 아이들. 그것이 은수를 살아가게 만드는 힘이었다.
명품 옷은 못 사 입어도 아이들을 명품으로 키우면 되는 거였다.
고급승용차를 타지 못하더라도 아이들만큼은 반듯하게 키우면 되는 거였다.
은수는 깊은 상념에 빠져있다 까무룩 잠이 들었다.
은수의 막내아들 돌잔치에 다녀온 후로 금옥은 평범한 가정이 부럽다는 생각이 처음으로 들었다. 그날 밤 금옥은 목욕탕에서 내내 나오지 않았다. 아무리 닦고 문질러도 더러운 때가 벗겨지지 않는 것 같았다.
금옥의 삶이나 남자의 삶이나 별반 달라보이지가 않았다. 겉은 화려하지만 속은 썩고 있는 나병환자들처럼 지독한 성예지기가 느껴져 헛구역질까지 했다. 서서히 남자와의 생활이 지겨워지기 시작했다. 쇼핑하는 일도 더 이상 기분을 새롭게 하지 못했다. 남자 앞에 쇼하는 일은 죽기보다 싫게 느껴졌다.
그러던 어느 날 한 중년의 여인이 금옥을 찾아왔다. 아이들 학업문제로 외국에서 살다온 남자의 조강지처였다.
그날 이후로 금옥은 퇴락의 길로 접어들기 시작했다.
남자가 몰래 딴 살림을 차렸다는 걸 알게 되어 이혼을 결심한 부인이 간통으로 고소를 한 것이다. 빼도 박도 못하고 철장신세를 지게 된 금옥은 모든 걸 잃었다. 남자도, 호화로운 생활도, 젊음도 사라져버렸다.
금옥이 세상 밖으로 나왔을 땐 아무것도 남은 게 없이 빈털터리가 되어 있었다. 남자의 카드로 사들인 명품들은 부인이 다 처리해 버렸다. 단 한 벌도 줄 수 없다고 부인이 이를 바득바득 갈았기 때문에 구두하나도 건지지 못했다.
금옥의 손에 들려진 것은 술병과 담배, 호적에 그어진 빨간 줄 뿐이었다.
사람이 어떻게 하루아침에 이렇게 될 수 있는 건지, 금옥 스스로도 믿기지가 않았다. 사나운 악몽을 꾸고 있는 것만 같았다.
은수는 아이들이 하고자 하는 일이라면 힘닿는 데까지 뭐든지 해주고 싶었다.
뱃속에 있을 때부터 책을 읽어주었고, 나들이를 자주하면서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법도 익히게 했다. 자가용이 없었기 때문에 전철과 버스를 갈아타면서 다녔다.
아이들과 함께 많은 사람들과 어울려 사는 법도 가르쳤다. 지하철역에 아무렇게나 너부러져 자는 노숙자들을 보면서 성실하게 살아가지 않고 허황된 꿈만 쫓아 해매다 보면 끝은 이런 몰골이 될 거라고 훈계도 했다.
유명한 대학마다 다니면서 꿈을 키우게 했다.
남산 식물원에 데리고 갔을 때 유치원생이었던 막내가 팔짝팔짝 뛰면서 좋아했다. 유독 식물에 애착이 많았다.
은수는 그런 막내를 위해 토요일과 일요일이면 어떤 일이 있어도 산과 들에 다녔다. 그때부터 막내는 삐뚤삐뚤한 글씨로 관찰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특히 야생화에 관심이 많았다. 이름 모를 들풀을 발견하면 한참 그 자리를 떠나지 않았다.
은수는 아이와 함께 도서관에도 자주 갔다. 아이들이 호기심을 갖고 물어오는 질문에 명확하게 답변해 주기 위해서였다.
아이들은 은수의 정성과 관심으로 무럭무럭 자랐다.
은수는 수시로 금옥의 전화번호를 눌러보았다. 신호가 가다가 끊길 때도 많았고, 전원이 꺼져 있을 때도 많았다. 어느 날부터는 결번으로 나왔다.
은수는 큰아들이 대학에 입학했을 때 등록금이 없어 여기저기 쫓아다니면서 돈을 꾸었다.
힘들게 등록을 한 큰아들은 그날부터 가정교사를 하면서 스스로 벌어 대학공부를 마쳤다. 성적이 우수했던 까닭에 대기업에서 큰아들에게 학비를 밀어주며 유학공부를 시켰고, 그 결과 박사학위를 받은 후 자동으로 키워준 기업에 몸을 담았다.
둘째는 어려서부터 그림그리기를 좋아했다. 막내를 데리고 산과 들로 나갈 때 둘째는 크레파스와 도화지를 가지고 다니면서 꽃도 그리고 새도 그리고 나무도 그리며 꿈을 키웠다.
미대는 돈이 많이 들어 갈 수 없다고 스스로 포기하더니 의상디자인을 하기 시작했다.
미팅에서 만난 의대생과 졸업과 동시에 결혼식을 올려 쌍둥이를 낳았다.
막내는 어려서부터 차근차근하게 써 온 관찰일기를 바탕으로 야생화도감을 펴냈다.
비록 호화롭게는 살지 못했으나 풍요로움을 느끼며 한평생을 살아왔노라고 자식들에게 말했다. 자식들 목구멍으로 밥 넘어가는 소리가 가장 배부른 음식이었고, 책상머리에 앉아 공부하는 아이들이 보물이었다고 했다.
남편은 막내 돌잔치를 끝낸 후부터 준비하여 1년 후엔 공무원이 되었다.
풍족하지는 않았지만 서로 용기를 북돋아주고, 힘들 때면 어깨를 덮두들겨주면서 살아왔다.
머리에 흰서리가 내렸다. 아이들이 사회에서 각자 제몫을 감당하는 모습을 보면서 은수는 자주 눈시울을 붉혔다. 행복한 눈물이었다.
인생의 황혼기에 접어들자 옛 친구가 그리워졌다. 그 동안 연락이 되지 않고 살았는데 우연히 금옥의 바뀐 전화번호를 알게 되었다. 혹시나 하고 초대장을 보내었다.
보고 싶었다. 아련한 기억속의 친구를 꼭 만나야만 했다. 막내 돌잔치 때 건네고 갔던 희망이 너무나도 고마워 훌륭하게 자란 아이들을 꼭 보여주고 싶었다.
금옥은 남자와 헤어진 뒤 숱한 남자들과 잠자리를 같이 했다. 그 결과 남은 거라곤 병든 육체밖에 없었다.
남자들은 보태주기보다는 금옥의 껍데기를 훌러덩 벗겨먹고 달아나기에 급급했다.
진정으로 사랑해 주는 남자를 만나 결혼도 하고 싶었으나 그 옛날 남자의 잔재로 인해 그럴 수가 없었다. 남자가 그랬듯이 금옥의 몸도 자작나무껍질처럼 허물이 벗겨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늙고 병든 몸으로는 모든 게 불가능했다. 온갖 허드렛일을 하면서 벌어 모았던 돈도 제비를 만나 홀라당 날려먹었다. 금옥의 인생에 있어 진정한 남자는 단 한 사람도 없었다.
금옥은 자신의 인생이 화분속의 난이라고 착각했으나 진실은 이 사람 저 사람 발에 밟혀 시들어버린 잡초였다. 비바람에 쓰러질듯 뽑힐 듯 위태롭게 보여 잡초라고 생각했던 은수의 인생은 알고 봤더니 귀하디귀한 산삼이었다.
금옥은 그 동안 자신보다 못났다고 생각했던 은수의 성공적인 삶에 대해 인정하고 싶어도 그러기가 쉽지 않았다. 나보다 밑이라고 여겼던 벗을 우러러 보려면 그만큼의 자기 스트레스를 이겨내야 했음으로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금옥은 살기가 싫어졌다. 시간을 되돌릴 수만 있다면 다시 호텔안내에 서서 손님맞이를 하다가 받은 유혹에 대해 고민하던 때로 돌아가고 싶었다.
만약에 그럴 수 있다면 단호하게 거절했을 텐데, 그렇다면 내 인생의 말로가 이렇게 비참하지는 않았을 것인데.
금옥은 이미 엎질러진 물 앞에서 땅을 치고 통곡하는 꼴이었다.
가슴을 부여잡고 후회의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잘못 끼워진 단추를 다시 끼우기에는 너무 멀리 와 버렸다. 내일모레면 환갑이다. 모든 게 두려웠다. 일을 하고 있는 동안에도 잡념은 사라지지 않았다. 몸은 몸대로 생각은 생각대로 따로 움직이는 것 같았다.
금옥은 설거지를 하고 방청소를 마친 후 전기밥솥에 웁쌀 얹어 밥을 안쳤다.
눅눅한 이불을 걷어 뚤뚤 말아들고 옥상으로 올라갔다.
바람이 무척 시원했다. 이불을 말리기에 딱 좋은 날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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