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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지의 사랑이랑행복이랑시집평
2013-12-03 05:01:24
hmpo

조회:1129
추천:128
첨부파일 :  1386014484-94.hwp
 
해설
 
이랑으로 어울어진 천국의 시학 이영지 시인의 사랑이랑행복이랑
 
 
 
홍 문 표*
(문학박사 · 신학박사 · 시인 · 평론가)
 
 
이영지 시인이 사랑이랑 행복이랑이란 제목의 시집을 상재한다. 사랑과 행복은 인간이 추구하는 가장 소망스런 마음의 세계다. 사랑만으로도 고마운 일인데 거기에 행복까지 겻들인다면 그 보다 더 좋은 경지가 있을 수 없다. 기독교에서는 바람직한 신앙의 원칙을 믿음 · 소망 · 사랑의 세가지로 지적하면서도 그 중에 제일은 사랑이라고 하였다. “새 계명을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요한복음 13:34) 그래서 기독교를 사랑의 종교라고 말한다. 그런데 사랑은 기독교만의 진리가 아니라 모든 종교가 모두 사랑을 주문하고 있고, 종교뿐만 아니라 문학에서도 최대의 주제는 사랑이다. 문학뿐인가 세상 사람들도 사랑을 최대의 덕목으로 생각한다. 그렇다면 사랑은 누구에게나 요구되는 보편적인 감정이고, 그러기에 사랑, 진리가 되고, 하나님의 계명이 된다.
이영지 시인은 이처럼 인간에게 가장 보편적인 감정, 그래서 하나님의 계명이 되는 사랑을 이번 시집의 화두로 삼은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사랑이란 이 언어는 너무나 넓고 깊고 그 종류가 다양해서 사랑이 행복을 보장할 수도 있지만 때로는 슬픔과 불행이 될 수도 있다. 그러기에 정말 참된 사랑은 행복이 보장되어야 한다. 행복이란 기쁨이 있어야 하고, 만족감이 있어야 하고, 그래서 흐믓하고 충만한 것이어야 한다. 그렇다면 그것은 이성적인 이해의 영역이 아니라 온 몸으로 느끼는 감동(feeling)의 세계다.
이영지 시인은 이번 시집에서 먼저 사랑을 화두로 하고 있지만 그 사랑은 슬픔이나 고통이 있는 사랑이 아니라 행복도 있는 사랑, 그래서 이 시인은 사랑이랑행복이랑이란 제목을 잡았다. 그런데 시인은 사랑과 행복 이렇게 하지 않고 사랑이랑행복이랑이라고 하였다. 사랑과 행복에 이랑이란 접속사를 붙인 것이다. 원래 이랑은 갈아 놓은 밭의 한 두둑과 한 고랑을 합하여 말하는 것이다. 그러나 명사에 붙여 쓸 때는 자음으로 끝나는 체언에 붙어 둘이상의 단어를 동등한 자격으로 연결해주는 접속조사가 된다. 그렇다면 접속조사 이랑이 갖는 문법적 의미는 그 문자의 한계를 넘어 시학적으로, 종교적으로, 또는 철학적으로 매우 중요한 메타포가 되고 있는 것이다.
기독교에서 가장 중요시 하는 교리는 인간이 득죄하면서 하나님과 인간 사이가 분리 된 것이다. 인간이 에덴동산에서 추방된 것은 바로 하나님과 인간의 공존 관계가 와해되고, 그로 인해 인간은 유한한 지상의 저주받은 존재가 된다. 따라서 유한한 인간의 구원은 바로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는 것이다. 바로 하나님이랑인간이랑의 관계가 되어야하는 것이다.
철학에서는 하나님과 인간의 분리를 소외라는 말로 표현하고 있다. 소외란 주체와 타자의 괴리이다. 사실 문명이니 과학이니 하는 것들은 모든 사물들의 관계를 분리시키는 것이다. 각자의 변별성을 밝히는 것이다. 따라서 과학에서는 그 어느 사물도 고립되고 소외되는 것이다. 그것이 외로움이고 절망이다.
시의 본질이 메타포다. 메타포는 분리시켜 소외를 조성하고 절망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분열을 통합으로, 대립을 화해로 융합하는 것이다. 그것은 미움이 아니라 사랑이고, 그것은 절망이 아니라 희망이고 행복이다. 따라서 이영지 시인의 사랑이랑행복이랑은 사랑과 행복이 각각 존재하는 것이 아니고 서로가 공존하는 것이다. 그것은 분열이 아니라 통합이고 화합이다. ‘이랑은 바로 그 통합의 결정적인 열쇠가 된다. 뿐만 아니라 이랑은 사랑과 행복이 대등한 통합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무한히 다른 사물과의 통합으로 이어지고 연결될 수 있는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는 것이다.
이영지 시인이 이번 시집에서의 최대 관심은 사랑과 행복의 통합이지만 이랑이 주는 시학적 메시지는 무한히 계속되는 통합, 그리하여 하늘과 세상과 인간과 사물이 모두 통합되는 세상, 바로 에덴이고, 낙원이고, 천국이다. 모든 사물들이 이랑이란 대등한 연결을 통해 하나가 되는 세상, 그리하여 사랑과 행복이 가득한 세상을 꿈꾸는 것이다. 그러기에 이번 시집 사랑이랑행복이랑은 제목만이 이랑으로 통합되는 관계가 아니라 모든 작품들이 모두 이랑으로 연결되는 이랑의 천국이 된다.
1눈이랑행복이랑은 혼자가 아닌 어울어짐의 이랑을 소원한다. 사람에게 있어서 눈은 눈이랑행복이랑시에서와 같이 맞잡고 춤을 추면, 드리는 마음 하나가 하늘에서 내려온다. 시적화자의 하나님에게 향한 호소는 손짓을 받아달라는 것이다. 이 시집은 눈을 맞추는 일이 많다. 어울려 눈이 만들어내는 이랑은 눈이랑이다. 보는 눈의 절대성을 제시한다.
이 이랑에서 시인이 꿈꾸는 이랑은 그대와 같이 있고자 함이다. 때문에 이랑이 된다. 그대와 같이 있을 때 그곳은 꿈이랑이고 물이랑이다. 이 물이랑은 그냥 물이랑이 아니라 말씀 이랑이다. 지상에서의 이랑, 그것은 이른 봄 농촌에 가면 부부가 함께 밭이랑에서 일을 한다. 그 곳에는 풀이랑이 있고 새순이랑이 있다. 이 시인에게 있어서 이랑은 파아란 이랑이다. 그래서 시적 화자의 마음 여울은 꿈이 들어 있다. 파아란 물이랑 여울에 꿈이 들면 꿈소리를 낸다. 도굴도굴 돌 따라 흘러가고 입술로 뿅긋뿅긋 물고기 사랑하라며 물고기가 꼬리따라 잇는다. 더 나아가 물고기를 시어로 하여 시의 은유를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로 하였다. 하나님을 의지하고 믿는 백성이 많아질 때의 사랑이랑행복이랑이다.
함께 어울림에게 내리는 것은 햇빛이다. 이 햇빛은 물이랑 재잘재잘 하면서 넘나든다. 이때의 물은 말씀이다. 말씀으로 넘쳐나는 물은 철버떡 한 번 더 물 차 오르느라 줄줄이 선다. 말씀을 가진 물이 줄줄이 선다. 이 때 아이가 등장하는데 아이들은 어른의 마음을 읽는 요술쟁이다. 가장 좋아해주는 사람을 따르며 마주해 웃어주면 그 때 생기는 이랑은 천국이랑이다. 그러기에 봄들에서 젖가슴을 풀어 헤칠 수 있는 시인은 아이의 가슴이 되어 봄길따라 커지며 마음으로 이 세상의 낙원을 본다. 에덴낙원이다. 산에 들에 꽃들이 가슴 열어젖히기에 시인도 따라할 뿐인데 에덴낙원을 보게 된다. 이 마음 세계는 하늘만큼의 즐거움이 있는 시인이랑이다.
시인이랑에서는 언제나 아이들이 그 순위를 앞에 차지한다. 아이들이랑시에서는 아이들이 타고가는 차 바퀴가 고장나지만 아이들 눈에 고장난 차가 움직이는 시가 된다. 이 때 아이들과 님은 님이랑이 되는데 이 때 님은 절대자이다. 님과 아이들의 어울림은 비단 아이들뿐만 아니라 어른인 시인의 눈으로 가득 채워지는 시야의 그 깊이다.
님과 시적 화자와의 사이에는 알이 있다. 이 알은 제단에 드려지는 번제로서의 알을 말하면서 양의 깊이와 넓이와 나날의 삶이 투영된다. 번제들여지는 시적 화자인 나는 잡아먹힘, 곧 번제드려지며 다시 살아나는 부활의 길을 걷는다. 에덴동산에서의 절대자의 깊은 성찰은 죽는 자의 부활이 암시 되는데 있다. 그러기에 시적 화자는 빛이랑 살고싶어 하늘 가까이 있으려 한다. 하늘만 섬기는 마음의 부자에게는 사랑이 아롱아롱 두드리어 아롱아롱한 꽃동네 사람들과 함께 모여 산다.
이러한 이랑에서 시적 화자는 하나님 아침이랑을 맞는다.
 
별 웃음
따라다닌 아침이
아침이랑
길가 숲 동구나무 앞 정자 구름다리
내 이름 일컫는 자만 웃음 나는 봄 가슴
- 아침이랑
 
이 때의 시적 화자 내 이름 일컫는 자는 절대자이다. 그러므로 웃음나는 봄가슴이 되는 영광을 누리게 된다. 그러기에 내 이름 일컫는 자가 산이랑시에서 돌과 나무와 어울어지는 신비의 꿈 장소, 산이 늘 안아 주는 따스함을 느낀다. 곧 잎 이불로 늘 덮혀 있어서이다. 그곳에는 맑은 공기와 푸른 바람과 밤의 별들이 있다.
그러므로 시적 화자는 피아노이랑에 들어 있다. 하나님이 허락한 자율성에 의한 시인의 손으로 하나님의 세계 닮기를 옮기는 피아노이랑에 꽃잎이 떨어진다. 아름다운 꽃잎이 떨어지는 아름다운 절망 앞에서 그 손을 끌어 올려주시는 절대자의 손길 따라 노래가 나온다.
 
꽃잎이 떨어진다
떨어진 꽃잎사이
눈부신 안음 노래
바람의 날개이랑
꽃잎에 물오름이랑
 
몽울몽울 꽃송이
나온다.
- 피아노이랑
 
시인이 사랑이랑행복이랑에 서는 것은 꽃임이 떨어지는 절망 앞임에도 불구하고 눈부심 안음노래를 불러주는 절대자가 있어서이다. 떨어짐에서 올려지는 노래를 타고 시적 화자는 바람 날개이랑에 든다. 기독교적 성령의 이랑에 선 시적 화자는 성령의 물오른 꽃송이가 된다. 성경의 절대적 힘은 일어나기이다. 아래로 내려가기가 아닌 위로 오르며 일어나는 일은 아브라함을 비롯하여 성경 전부의 예들에서 아침 일찍 일어나 일하러 나갔다. 이 하나님의 약속이행을 시적 화자는 그대음성이랑에서 듣는다.
그럼으로 시적 화자는 길가기를 멈추지 않고 다리이랑을 건너면서 물을 줍는다.
 
건널 때 그 때마다
조심히 물을 줍다
 
왼발을 조심하고
오른발 내디디며
 
하늘을 쳐다보면서
다리이랑 건넌다
- 다리이랑
 
물을 줍는 시의 외연은 곧 내포로서 말씀을 들고 건너는 일이다. 모세는 홍해를 건너 가나안 땅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인도했다.
 
2님이랑이 제시하는 어울어짐의 세계는 님이랑사는 날이다. 님이랑 사는 날이 날의 날 하도 많아 파아란 꿈이랑이 된다. 그런데 나는 늘 말 못하다가이다. 할 말이 있어도 말을 못하는 이유는 행복함을 주신 님이랑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아이러니는 일반적인 사랑하는 사람과의 관계를 넘어선다. 곧 절대자를 사랑하는 법을 배운 사랑이랑시에서 시적 화자는 사람사이의 사랑을 포기한다. 왜 인간의 사랑과 당신이라는 절대자와의 사랑이 공존할 수 없는가?. 그 답을 얻기 위해 답답해 엎드리는 날에사 하늘 닮기로 사랑이랑 들어요하고 있다.
이제 하나님의 꿈과 인간의 꿈이 구별되는데 인간의 한계성과 하나님의 절대성 차이이다. 하나님의 이랑에 들기로 한 날부터 꿈이랑시에는 물길로 풀 푸른 꿈이 있다. 헛디딘 슬프디 슬픈 모습을 지나서 용서하고 사랑하는 일의 인간의 힘이 아닌 하나님의 큰 사랑, 그러기에 목사로서 삶의 길에서 발을 들 있다.
발을 딛고 있는 것이 아니라 발을 들고 있을 때에 기쁨이랑시가 쓰여 지는데 그것은 한 고비 넘긴 삶의 달인으로서의 나날을 말한다. 사람과의 약속은 언제나 변칙성을 가지지만 오히려 그로하여 하나님이 나의 편에 서 계심을 재 확인하는 일이다. 사람의 안이 보이며 안이 다 튀어나와 속속이 보이지만 진짜 속을 알아보고 내 안이 싱글벙글 웃을 수 있는 힘마저 생긴다. 이것은 시적 화자의 힘이 아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안 시인의 마음, 곧 사람의 마음속에 깊숙이 자리하고 있는 하나님의 모습, 둥그런 그대로 한다. 이 극칭은 사람이 아닌 절대적 존재 그대가 사람 마음속 깊이에 있음을 본 것이다.
그러기에 이 시인의 사과이랑시는 사과로 일관된다. 늘 사과하며 그리고 먼저 상대방을 배려하는 이랑이다. 시적 화자의 발은 이슬로 흠뻑 적셔져 있다. 나날의 사과를 모으느라 꿈을 튼다. 꿈을 새로 만들어 내는 고통과 값어치가 지닌 자의적인 하나님 허락안의 자유는 사과이랑에서 이슬이랑을 만들면서 눈물이슬이 된다. 이슬은 밤을 지낸 이슬이며 새벽에 사과밭에 들어선 이의 발을 흠뻑 적신다. 곧 새벽기도를 말한다. 그 결과 아침 일찍 망태에 가득 담아 내온다. 눈물이랑을 가진 기도로서 얻어지는 사과의 수확량이다.
시적 화자의 신앙생활은 목사를 존경한다. 뒷자석에서 목사의 설교를 듣는 날들이 많아질수록 하나님의 빛이 비친다. 하나님이 허락한 뒷자리에 곧 새이랑시에서 시인은 새하얀 쑥국새의 울음을 운다. 목사이면서 입으로 전하는 삶의 어려움을 새하얀 쑥국새야라고 불러주는 위로해 불러주는 말씀한마디에 웃음을 웃는 기적이 일어난다.
눈물을 가진 시적화자의 신앙생활은 아브라함이 이삭을 데리고 200리를 간 외진 길은 마음이랑시에서이다. 이삭과 아브라함의 둘이 가는 길, 아들을 번제드려야 하는 절박한 아비 마음은 오히려 아버지를 향한 아들의 믿음 앞에서 눈물이랑이 된다. 눈물이랑시는 아비의 속앓이의 앓이랑시와 이어진다. 물 한길 들이키는 새파란 가슴앓이를 시어 프르게로 하면서 하나님 강 깊이의 비상구를 시적 화자는 만난다. 희망이 비상구를 통하여 하늘에서 내려오면서 이랑들에 둘러싸여 이랑이랑차할 수 있다. 함께 길을 간다.
함께 가는 별들이 이랑이랑차를 탈 때에는 세상이랑도 여유로웁다. 왜냐하면 절대자 그대가 가진 잔의 물에 들기 때문이다. 금시 살이 돋아 오른다, 나날이 맑은 물을 들 수 있다. 그러기에 잔 높이 쭈우욱 하늘높이 든다. 이 마음 여유로 나비이랑을 탄다. 어디든지 나풀나풀 몸 싣고 달리다가 어디든 가벼이 절대자가 말만 하면 나르는 가벼움, 날 때에는 입술이랑을 가진다. 이 입술은 다알싹 달싹달싹거리는데 그것은 기도이다. 구할 것을 다 구하는 것이 아니라 봉한 샘 하늘가락이 입술이랑 맴돈다는 한계성이 있다. 이 절제는 참 말을 해야하는 극히 제한적인 참이랑이어서이다. 이 때 동적 기적은 디딩굴 말씀이 전해지는 기적이다.
이제는 그 넓은 가슴을 가진 어머니 이랑이 되어 가정 지키고 하나님 나라를 지키는 어머니이랑이다. 어머니는 억세고 거친 존재가 아닌 눈이랑시에서 보이는 새 색씨의 눈이랑에 고이는 눈물이랑을 지나 귀이랑을 가지며 말을 삼가는 입이랑에서 웃음을 전하는 왕벚꽃이랑이 된다. 크게 웃는 달디단 웃음길을 가진 시적 화자는 행복이랑에 들면서 파란 세상이랑이 되어 있다.
 
3사랑이랑은 하나님 곁에서야 하늘이랑이 됨을 제시한다. 하늘나르는 방법을 오색빛을 하늘에 뿌리느라고 하늘 끝을 나름으로 한다. 그래야만 가슴이랑이 생기며 그러기에 눈감고 귀 막고도 그래도 새 나갈까 가만히 다독거리며 두 손으로 모은 소중한 향긋한 내음들이 새 날가 밤을 새며 혹이나 흠이 날가 봐 두 눈마저 감는다. 이 소극적인 방법에 하나님이 햇빛을 비추었다. 이 귀중한 현실을 시적 화자는 뾰사시 빛이 나도록 말소리를 삼가고 있다.
아직도 시작 화자의 발걸음은 햇철새이랑에 서 있다. 무중력의 하늘길에서 걸음마 주섬주섬 모으는 날기 연습으로 먼 남쪽 하늘가로 한 발 한 발 딛여 하나님이 원하시는 길을 가려고 한다. 그럼으로 지상에서의 병아리랑이지만 절대자의 따뜻한 손길이 있어 보호받는 은혜로움을 받는다. 하나님이 주신 정이랑때문에 사랑을 묻히고도 V자로 나르느라 애절하기까지하다. 그러나 혼자가 아니다. 젤 먼저 한 마리 앞에 제일 뒤에 한 마리로 하나님이 남겨둔 군사 7000명이 있음을 믿는 확신이다.
그러기에 힘을 얻어 애인이랑하늘 길을 걷는다. 꿈꾸듯이 걷는 촛불이랑의 촛불을 당겨 하나 더 불을 켜고 또 하나 더 불을 당기어 더 따스해지는 위로와 웃음이 있는 길이다. 더러는 잠이랑시의 잠이 안 와 이리로 뒤척뒤척 저리로 뒤척뒤척한 잠 이력서가 있기도 하지만 그로하여 더욱 옥색이랑을 옥색치마의 순수 치마이랑으로 푸르른 하늘 등에 기대서 옥색들판이랑을 만든다. 옥색의 물들, 굽어본 옥색바다, 옥색하늘의 달디단 하늘길을 걷는 옥색의 목소리 시에는 옥색 햇살, 옥색 바람, 햇살이 두 손을 펴고 볼록볼록 디뎌준다.
 
4행복이랑아이이랑과 등가성을 이룬다. 아이이랑의 천국이랑은 하늘이랑을 나는 자의 햇살이랑이 있어서이다. 햇살이랑의 햇살 도톰도톰 따뜻해지는 하늘길의 늘 봄이랑 체험은 늘봄이랑에서 하나님 안에 앙기느라살아갈 보람이 있다. 이 때의 조건은 아가랑시에서의 아가와 눈을 맞추기이다. 평안히 잠을 자는 아가와 엄마는 봄이랑의 알몸이 투영된다. 이 행복의 체험은 내편이랑이 생기는 마음의 행복에서이다. “햇님이/ 내편이네요 알몸으로 있네요이다. 그러기에 이 시인의 꿈길을 걷는 삶은 은어이랑이 되어 있다. 저녁이 아닌 아침 은빛바다의 알이랑시를 통하여 익음의 경지가 아내이랑배추이랑길에서 구체적이다. 조용히 이랑이랑 안으로 꽉 차 오며 하얀 살 들여놓고 가만히 가을들녘을 꿈꾸듯이 서 있는 열매이랑을 얻는다. 그 내음은 내음이랑에서 입술로 빛이랑먹으며 아침향기가 된다. 빛은 하나님의 은혜를 받는 빛이랑이다.
 
이처럼 이영지 시인의 사랑이랑행복이랑은 사랑과 행복이 함께 어우러질 뿐만 아니라 하늘과 땅, 인간과 자연이 이랑이라는 메타포를 통해 모두가 하나 되는 시적 천국을 꿈꾸는 시이다. 따라서 이랑은 밭두렁이나 연결접속사의 의미를 넘어 함께 어우러어지는 신명의 리듬이고 환희의 가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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