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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화국 장편소설 <꿈꾸는 설악> 연재 13회
2010-04-12 17:33:52
38hwakook

조회:1221
추천:75

인생이란 바다에 배를 타고 나섰는데 그 바다의 중간 쯤에서 풍랑이 거세게 일어났다면 후회만 하면서 배를 떠나온 자리로 되돌린단 말인가. 상황이 그렇게 되지도 않을 뿐더러 도저히 그럴 수는 없는 일이었다. 

    성공하든지 아니면 실패가 될지라도 방향만은 처음 정한 대로 잡아야 할 터였다. 한 발 전진을 위하여 두 발 후퇴가 있을지라도 앞을 보고 앞으로 나간다는 일이 최선이라고 그녀는 생각했다.

 

 

 

 

 

 

 

 

 

 

 

   인생 바다

   

7. 고독은 인생의 후렴 

 

 

 

 

   그래 앞만 바라보며 걸어 가기야’ 라고 선희는 자신에게 타일렀다.

그러자 허기가 느껴졌다. 때 맞춰 식사 시간을 알리는 주방장의 목소리가 지하 식당 쪽에서 올라왔다.

   “여보, 식사하러 내려갑시다. 정군, 지하 식당으로 내려 와요.” 

    밥을 벌기 위해서는 밥을 먹어야 한다. 밥을 먹지 않아서 밥을 벌 일이 없는 자, 그것은 죽은 자가 아닌가.그러므로 존재의 근원엔 밥이 있다. 그 끈끈한 밥 때문에 역사의 바퀴도 굴러간다. 밥을 먹는 자와 밥으로 먹히는 자들이 있어 그 역동성으로 하여 어떤 바퀴도 가만히 서 있을 수는 없다. 

    그러고 보면 바퀴조차도 구르는 이상 밥을 먹는 것이다.

    밥을 먹는 것들에겐 꿈이 있다. 그래서 바퀴가 끌고 가는 짐수레 위엔 꿈이 실리기 마련이다. 세상의 명예나 부요, 그 어떤 좋은 것으로 채울 수 없다면 지천으로 길에 깔린 이름 없는 풀꽃 한 송이인들 꺾어서 얹지 못할 바는 아니다. 

    남이 하다가 버린 사랑이라도 주워다가 깁고 잘 다듬어서 수레 위에 얹어 끌고 가면 심심치 않을 것이다. 버려진 사랑이 불러오는 슬픔과 눈물과 감동은 얼마나 더 애잔하고 아름다울 것이냐.

밥과 꿈  

    그 수레 위에 실리는 것이 깨어진 그릇의 사금파리 한 조각이면 어떤가.

    선희는 어려서 사금파리 조각으로 소꼽장난을 하느라고 길 가다가도 사금파리 조각들을 주웠는데, 그 사금파리 조각을 찾아서 주운 것이 아니라 길 가다가 눈을 찌르는 광채가 있어서 다가가 보면 그곳에 사금파리 조각이 있었다.  

    그러나 흙이 묻은 사금파리 조각들은 눈에 띄지 않았다. 사금파리가 깨끗이 닦이어 있을 때 빛이 났었고, 그래서 사람의 눈에 띄었고 사람은 그것을 주워 손에 들었다. 

    선희는 자기가 깨어진 사금파리 조각이라고 생각했다. 옛일을 떠올리며 비록 깨어지고 상처 투성이지만 깨끗이 닦여서 남의 눈에, 아니 신의 눈에 띄어 선택 되고 싶다는 간절한 소망이 있었다. 그렇게 꿈꾸는 수레 위에 실릴 것들은 많은 셈이었다. 그리고 그 수레를 끌고 가려면 밥을 먹어두어야 했다.

    선희가 서울 집에 있는 아이들을 위해 급히 만든 장조림과 짭짤한 젓갈류의 반찬 몇 가지를 챙겨 주는대로 들고 김은태는 터미널을 향해 나갔다.

  “집에 도착하면 전화하세요. 언제 내려오신다는 것도요.” 

  “알았어.” 

    짤막하게 대답하고 돌아서 가는 등 뒤가 한없이 초라해 보였다.

    돈이라는 황금빛 기찬 날개가 없기 때문인가. 건강이라는 날개에도 이상이 있기 때문인가.

    조금은 어리숙하고 영민하지 못할진 몰라도 본심이 착한 사람이었다. 

    그러나 세상은 착하다는 명함 하나로 버티기엔 그렇게 간단치 않고 만만한 게 아니었다.

호랑이는 사나우니까 제 밥을 제가 잡아 먹지만 토끼나 양은 순한 짐승이라 목자가 길러준다. 그런 뜻에서 그는 순한 토끼나 양같은 사람이니까 어느 목자가 있어 길러준다면 몰라도 그 착하다는 것 하나로 세상을 건너가기엔 너무나 무리가 많았다.

  목자와 양

   자기의 역량으로 뚫고 나갈 수 없는 역경에서 대개 맘 약한 사람들이 그렇듯이 술에 의지하려고

들었다.  세상사 다 잊고 싶었을 게다.

    그의 체중은 그래서 내렸을 것이다. 갑자기 좁아든 어깨가 선희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 

    인연의 아픔이 눈물겨웠다. 사랑을 해서 결혼을 했는지, 사랑을 해서 아이를 낳고 살았는지 생각해본 일이 별로 없는 채 세월만 흘러간 셈이다. 기억에 남아 있다면 적어도 결혼에 대한 낭만과 그에 대한 환상이 별로 없이 결혼 생활을 시작했다는 점이다. 왜 그랬을까. 

    뒤돌아 보면 이복 동생이 다섯이나 있는 환경이었고, 늘 겪어야 했던 가정 불화 속에서 자란 탓으로나 돌릴 수 있을지 모른다. 그저 그가 좋다고 쫓아다니니까 약한 맘으로 인간이 인간의 구애를 어떻게 정면에서 거부할 수 있느냐 하는 점과, 싫지 않으면 결혼해야 한다는 노처녀 선배 언니의 충고가 유효 했었다고나 할수 있을까.

    그리고 또 한 가지가 있다. 

   누구의 말인지는 모르지만 ‘결혼 해봐라, 후회할 것이다. 결혼하지 말아 봐라, 그래도 후회할 것이다.’ 라는 말에서 이왕 후회할 바에는 많은 사람이 가는 길을 택하겠다고 단순하게 결론을 내렸을 뿐이고, 그 나머지 일은 운명에 맡긴다는 자세였다. 

    그것은 화투를 칠 때 처음 배워서 서툴게 치는 사람이라도 뒷장만 잘 열리면 이기지 않던가. 아무리 패가 잘 들어와 내 손안에 확실히 쥐여졌어도 지는 경우가 얼마든지 있다. 이렇게 뒷일은 정말 아무도 예측할 수 없는 게 사실이었다.

화투 뒷장 

    사랑에 대한 긍정이나 자부심, 자기 확신이 없는 결론으로 뛰어든 결혼이었으므로 사랑이 과연 무엇이냐고 깊이 생각해야 할 이유가 없었고, 싫지 않으면 산다는 식이었으니 불만 또한 별로 없었다. 

    사랑에 대해 무관심하거나 무지(無知) 해도 한 집에 사는 부부는 얼마던지 있다. 오히려 그렇게 사는 편이 예민하게 부딪치지 않으며 무던히 더 잘 살지도 모른다. 인연이란 말은 사랑하는 사람에게만 성립 되는 게 아니다. 다만 좋은 인연과 나쁜 인연은 있을 수 있다. 

    선희는 김은태와의 인연은 어느 쪽에 속하는 것인가에 비로소 생각이 미쳤다.

    터미널을 향해 떠난 그의 뒷모습이 보이지 않게 된지도 오래건만 선희는 한없이 그가 사라져간 방향을 향하여 서있었다.  

    한참을 서있다 돌아서 들어오며 하늘을 보았을 때 대청봉 쪽에 구름이 끼인 듯 날씨가 꾸무럭한 것이 비가 올 듯도 하고 안 올 듯도 했다.

  “정군, 혹시 일기예보 못 들었나? 이불을 빨아야 하는데.” 

  “오후엔 구름이 걷힌다고 했습니다.”

  “그래? 변덕스런 설악산 날씨 믿을 건 못되지만 정군, 나하고 오늘 이불 좀 빨아 볼까? 이불이 한두

채가 아니라서 여기 식은 남자도 이불을 빨아야 하는 거야.” 

    그가 재미있다는 듯 쿡하고 웃었다. 

    방방이 돌아다니며 더러운 것은 다 빼내오라고 일렀다. 주방장은 욕실의 커다란 욕조에 세제를 풀고 있었다. 여름 이불이라 두텁지 않아서 빨래가 어려운 것은 아니지만, 이불 숫자가 몇 백 채에 육박하다 보니 그 분량 때문에 힘이 들었다.

  이불 빨래

  “정군, 다래의 디스크쟈키 씨, 앉은뱅이도 힘이 솟아 벌떡 일어나는 그런 광란의 음악 없나? 담가놓은 이불 위에서 디스코나 한 판 춰 보자구. 템포 가장 빠른 것으로 골라서 얹어 놓고 와.” 

    정군과 선희가 욕조 안으로 들어가 음악에 맞춰서 세제에 담가 놓은 이불들을 밟기 시작했다.

    다 밟은 것은 밖으로 건져내고 다른 것을 또 집어넣었다.

    그러노라니 물이 튀고 그 바람에 옷이 젖기 시작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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