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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랑행복이랑 시집평
2013-08-08 07:19:25
hananim

■ 이영지(Lee Yeong Ji) 시인(poet)
△경북 영주 출생
△서울문리사범대 국어과, 명지대 대학원 국문과(문학박사). 서울기독대학원(철학박사)
△서울기독대학원 학술원 강의, 명지대 사회교육원 문예창작과 주임교수 역임
△《시조문학》에서 시조, 《창조문학》에서 詩 등단
△《창조문학》편집부국장.《말씀과 문학》편집국장. 한국창조문학가협회 사무국장.
△한국시조시인협회, 한국문인협회 회원
△영예문학교회 담임목사(자비량교회운영)
△한국창조문학대상, 추강시조문학상 수상
△시집『하오의 벨소리』,『행복의 순위』,『행복 행 내 님 네』외 다수
△이론서『한국시조문학론』,『이상 시(李箱詩) 연구』,『시조창작 리듬 론』외 다수
조회:2421
추천:116
첨부파일 :  1375913965-91.hwp

해설

 

사랑이랑행복이랑 - 이영지 기독교시학 3

 

 

 

이 영 지

(문학박사 · 철학박사 · 시인 · 시조시인)

 

1. 이랑

 

1). 이랑물결

 

이번 시집제목은 사랑이랑 행복이랑이다. 이랑이 예시하듯 같이 어울어지며 행복을 누리는 이 시집의 특징은 이응받침의 달콤함이다. 훈민정음제자해에서는 에 상대하여 버금가는 글자는 없다 하였다.

특히 종성에서 이응으로 발음되는 이 시의 이랑은 눈이랑 행복이랑 맞추는 일이다. 사실 이번 시집 작품을 계획적으로 쓴 것은 아니다. 하나님의 뜻에 의하여 무의식적으로 쓰고 보니 2600대가 된 것이고 그 순서 또한 자의적이고 계획적이 아니라 성령의 힘이었음을 고백하는 신앙인으로서의 시조이다.

이번 시집은 새벽기도 순위 2601에서 2670까지로 70편이다. 이 의미는 여호와 ה󰕯ה󰖾(여호와)에 대한 의미가 제시하는 곧 ה(5) + 󰕯(6) + ה(5) + 󰖾(10)= 26으로 여호와 하나님 곧 예수님의 수치가 26인데서 매무매우 많은 의미가 첨가된 2600대에서부터이다.

이 시집은 하나님의 축복을 받은 시들이다. 연작시의 시어 이랑((2601 - 이후 1부터로 표시)) 이랑 · 봄순이랑(2) · 이랑(3) 사랑 · 사랑하라며오는(4) 사랑사는 · 눈이랑(5) 젖가슴이랑 · 가슴옆에(6) 옆에서 · 민들레(7) 민들레 · 눈에도(8) 하늘보면 · (9) 봄가슴 · 아침이랑(10) 산이랑 · 안음(11) 안음 · 물오름이랑(12) 물오름이랑 · 힘이랑(13) 힘이랑(14) 힘이랑 · 님이랑(15) 님이랑 · 사랑이랑 · 하늘(16) 하늘 · 푸른꿈(17) 프르러도 · 속 살 이는(18) 속살이는 · 새이랑(19) 새이랑 · 나즈막히(20) 나지막히 · (21) · , 하늘(22) 하늘 · 이랑(23) 이랑 · 나의 별(24) 나는 늘 · , (25) 말할거야 · 입술 · (26) · (27) 입술 · · 달싹달싹(28) 입술 · 엄마(29) 어머니 · 새색씨(30) 새색씨 · 녹아드는(31) 녹아드는 · 남느라(32) 남느라 · 웃음(33) 웃으며 · 둥글게 빚어 · 바람에(34) 바람에 · 둥글게 빚어 · 하늘에(35) 바람을 · 하늘 끝에 · 햇빛을(36) 햇빛에 · 봄을 익혀(37) 봄볕 · 나르느라(38) 나르느라 · 웃는새(39) 웃음을(40) 웃다가 · 행복으로(41) 행복으로 · 이리로(42) 이리로(43) 이리로(44) 이리로 · 옥색(45) 옥색 · 달디단(46) 달콤히 · 맨발(47) 맨발 · 그네,(48) 그네밀면(49) 펴내밀면 · 햇살(50) 하얀속살 · 앙기느라(51) 앙기느라 · 보드라와라(52) 앙기느라 · 알몸(53) 알몸으로 · 온종일(54) 종일 · 아침을(55) 아침을(56) 아침을 · 빨간꽃(57) · 안으로(58) 아내 · 꽉차오며(59) 가득꽉차며 · 올린다(60)올린다 · 편지로도(61) 쓴 편지 · 물들이어(62) 물들이어 · 내음이랑(63) 빛이랑 · 하늘이(64) 하늘이(65) 하늘만 · 사랑심어(66) 사랑의 · 아롱아롱 · 건반소리(67) 아롱아롱 · 꽃동네(68) 아롱아롱 · 알랑알랑 물이랑(69) 하얀이랑(70) 이랑(1)으로 이어지는 이응기호를 이룬다.

 

2). 하나님이랑

 

이 이응 연작시적 특징은 제1부에서 풍성한 하나님의 햇빛이 비치는 이랑이 봄순이랑으로 그 기적같은 봄의 정경이 펼쳐진다. 그러나 단순한 사물에의 시적 눈여김이 아니라 봄이랑은 사랑이랑으로 사랑하라며 오시는 하나님의 명령을 받은 행복이다. 그런데 사랑사는 이라는 시어가 연결되면서 삶은 하늘의 축복이 거저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늘에서 내리는 눈이랑을 맞으면서 동시에 시인이 눈에 하나님 사랑을 넣어야 얻어지는 행복이랑이다. 성경의 노아가 그러하였다.

이 이랑은 외부적인 조건만이 아닌 젖가슴이랑이랑이다. 이 젖가슴은 가슴에 있는 마음 문이다. 이 마음의 문을 여는 자만이 행복이랑에 들 수 있다. 이 마음을 열어주는 자 안에서 보잘 것 없는 민들레가 되어, 그 민들레의 생명력이 되어 그 절절한 마음으로 하늘을 본다.

이 하늘은 계절이 어느 때이든지 시적화자에게는 봄이다. 봄 가슴 물이랑이다. 아침이랑이 된다. 행복이랑을 시적화자는 익숙히 보아온 경험으로 찾는다. 다름 아닌 이랑이 있는 산의 안음 안에 시적화자가 든다. 이 안음 안은 물오름이랑이다. 물오름이랑은 힘이랑이다. 이 힘은 모든 생물이 태어나고 꽃이 피는 산의 들이다.

1부는 혼자가 아닌 어울어짐의 이랑을 소원한다. 사람에게 있어서 눈은 눈이랑 행복이랑시에서와 같이 맞잡고 춤을 추면 드리는 마음하나가 내려온다. 그것은 하늘에서이다. 이 하늘을 향하여 시적화자의 하나님에게 향한 호소는 손짓을 받아달라는 것이다. 이 시집은 눈을 맞추는 일이 많다. 어울려 눈이 만들어내는 이랑은 눈이랑이다. 눈이랑 이랑이다. 보는 눈의 절대성을 제시한다. 이른봄이면 특히 시인의 눈에는 고랑가득 가득히 꿈이 생기자 곧 봄 순이 솟는다. 이 가득가득 담기는 봄 순은 꿈이다.

이 이랑에서 시인이 꿈꾸는 이랑은 그대와 같이 있고자 함이다. 때문에 이랑이 된다. 그대와 같이 있을 때 그곳은 꿈이랑이고 물이랑이다. 이 물이랑은 그냥 물이랑이 아니라 말씀 이랑이다. 이른 봄 농촌에 가면 부부가 함께 밭이랑에서 일을 한다. 그 곳에는 풀이랑이 있고 새순이랑이 솟아있다. 이러한 정경은 순이랑 당신이랑 파아팅이랑이며 논둑이랑이다. 시인에게 있어서 당신이랑은 파아란 이랑이다. 꿈이랑이다.

마음의 여울은 꿈이 들어 있다. 물이랑이 되어 여울에 꿈이 들면 꿈소리를 낸다. 도굴도굴 돌 따라 흘러가고 입술로 뿅긋뿅긋 물고기 사랑하라며 꼬리따라 잇는다. 이때의 물고기는 시의 은유를 통해 드러나는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다. 하나님을 의지하고 믿는 백성이 많아질 때의 사랑이랑 행복이랑이다. 명사형의 사랑이랑과 행복이랑은 곧 동적 움직임이 특징이다.

함께의 어울림에게 내리는 것은 햇빛이다. 햇빛은 넘나든다. 물이랑 제잘제잘 하면서 넘나든다. 이때의 물은 말씀이다. 말씀으로 넘쳐나는 물은 펄버떡 한번 더 물 차 오르느라 줄줄이 선다. 이 말씀을 가진 물은 줄줄이 서 있다. 이 때 아이가 등장하는데 아이들은 어른의 마음을 읽는 요술쟁이다. 가장 좋아해주는 사람을 따르며 마주해 웃어주면 그 때 이랑이 생긴다. 이 이랑은 천국이랑이다. 사랑이 무어인지를 알아차리는 눈이랑에서는 방금 돈으로 살 수 없는 사랑사는 일이 일어난다. 시인도 아이처럼 봄들에서 젖가슴을 풀어 헤칠 수 있는 아이의 가슴이다. 이 젖가슴이랑은 봄길따라 커지고 그 별천지를 봄으로써 이 세상의 낙원을 본다. 에덴낙원이다. 먼저 들에 산에 꽃들이 가슴 열어젖히기에 시인도 따라할 뿐일 때 에덴낙원이다. 이러한 마음의 세계는 하늘만큼의 즐거움이 있는 시인이랑이다.

시인이랑에서는 언제나 아이들이 그 순위를 앞에 차지한다. 타고가는 차의 바퀴가 고장나자 모두 다 내리고 남은 차를 아이들은 그냥지나치지 않는다. 그 순간의 마음이 그대로 들어나는 아이들이랑에서는 고장난 차가 움직임을 보게 된다.

 

아이들

타고가는 바퀴가 고장나자 칙칙칙 칙착폭착 칙칙칙 칙작폭착 날리고 칙칙포오옥 칙착폭폭 치이익

 

아이들 내리면서 치이익 포오오옥 고장난 버스차가 치이익 포옥포옥 아이들 버스 옆에서 칙착폭폭 치이익

- 이영지 아이들이랑

 

2. 나도 이랑

 

2는 아이들과 님과의 관계로 하여 님이랑이 된다. 이 때의 님은 절대자이다. 님과 아이들의 어울림은 산에 들에 피는 민들레에서이다. 비단 계절의 봄이 아니라 눈으로 봄에 의하여 얻어지는 님의 모습은 시적 화자의 눈에 들어 와 맑음을 따 올린다. 시적화자인 나와 님의 관계는 봄의 중요성, 곧 눈의 중요성이며 이랑은 곧 눈으로 가득 채워지는 시야의 그 깊이다.

이때의 관계는 알로 설정된다. 님과 시적 화자와의 사이에는 알이 있다. 이 알은 일반적인 알이 아니라 제단에 드려지는 번제로서의 알을 말하고 이랑이 의미하는 그 양의 깊이와 넒이와 나날의 삶이 투영된다. 번제의미는 시적 화자인 내가 잡아먹힘, 곧 번제드려지며 죽어지는 낮아짐을 말한다. 성경에서 번제는 자신이 살아남이 아니라 그냥 드려지는 제물일 때 그 가치는 다시 살아나는 그곳의 부활을 같이 가진다. 에덴동산에서 비록 아담과 하와가 동산 제일 가운데의 실과를 먹어서 죄인이 되기는 했지만 역설성으로는 오히려 그것은 절대자의 깊은 성찰이 그 안에 있다. 잡아먹힘은 곧 죽는 자의 부활을 암시하게 된다. 까투리와 장끼의 시어로 한 알이랑은 인간으로서는 불가능한 일이 하나님에 의하여 일어남을 예시한다.

2님이랑은 님으로 하여 절대적인 힘이랑을 지닌 행복감을 절대화한다. 힘이랑이 곧 님이랑이다. 님이랑이랑 사랑이랑을 만들면서 하늘길을 같이 간다. 하늘에는 푸른 꿈이 있다. 하늘이 푸르러도 그 보다는 속 살 이는 푸르름이다다. 마음안에 이는 이 푸른 이랑은 속 살 이는, 새이랑이다. 새이랑은 하늘을 나르는 외부적인 몸짓 대신 나지막히 있기를 바란다. 이 나지막히 엎드린 시적화자의 말버릇은 언제나 (21)이다. 요의 길은 하늘길 열리는 일, 곧 행복을 얻는 마음의 겸손함이다. 하늘 이랑이 생기는 기적이다.

이 이랑은 시적 화자에게는 나의 별이다. 나는 늘, , 말을 들고 말할거야야라는 입술의 의지를 가진다. 이 말을 지닌 몸으로 살아가면서 몸의 말을 한다. 입술을 달싹달싹거린다. 다른이는 잘 알아듣지 못하는 거의 혼자만의 울부짖음이기도 하다. 이 입술은 시적화자의 엄마를 닮아 있다. 어머니의 새색씨적 몸짓이기도 하다. 새색씨의 모습에 그대로 녹아드는 남성화자이기도 하다. 새색씨가 지니는 향기를 맡으며 남성화자는 전 생애가 녹아드는 삶을 살며 살아남느라 노력한다. 남느라 웃음을 웃으며, 둥글게 빚어, 바람에 날린다.

남자 시적화자는 가장 귀중한 것을 스스로 혼자만 가지려 하지 않는다. 바람에 둥글게 빚어 하늘에 닿게 하려는 생활철학은 늘 바람을, 하늘 끝에 둔다. 버려야 얻어지는 햇빛을 가진 하늘 끝은 햇빛에 잘 익은 봄이다. 이 봄을 익혀 봄볕을 만든다. 이 봄볕을 나르느라 그리고 또 나르느라 웃는 새다. 정말 멋진 남자이다. 행복을 가진 남자가 웃음을 웃다가 행복을 느끼는 체험을 지닌 행복한 남자다. 행복은 저리로 가는게 아니라 이리로 오는 내음새이다. 하여 시적화자는 어쩔줄을 모른다.

이리로 이리로 그리고 이리로 오는 옥색의 여인이 있다. 시적화자는 달디단 마음을 지닌다. 달콤히 맨발로 걷는 맨발의 그네를 타고 있다. 시적화자가 그네 밀면, 나날이 펴내 밀면 햇살이 닥아온다. 햇살에 하얀속살이 앙기느라 지금 몽울몽울하다. 앙기느라 보드라와라. 앙기느라 알몸이다. 여기에서 일상의 구두어 앙기표현은 사투리다. 이 이응발음으로 오는 알몸으로 온종일을 잇다가 종일을 지난 아침을 맞는다. 아침을 맞는 빨간꽃이다. , 안으로 들어있는 아내이다. 아내는 내게 꽉차오며 가득꽉차며 나를 올린다. 또 올린다. 아내의 정성어린 편지로도 올린다. 이 떠받듦의 아름다움은 사랑이랑 행복이랑 사는 사람들의 특권이다. 기독교의 가장 큰 핵심이다. 올려진 편지에 물들이어 사는 삶은 행복이랑이다. 물들이어 온통 향기 내음이랑에 묻혀산다.

시적화자는 빛이랑 산다. 하늘이 가까이 있다. 하늘이 있어 행복이랑이다. 하늘만 섬긴다. 사랑심어 마음이 부자다. 사랑이 아롱아롱 두드리는 속에는 나 혼자만이 아닌 모두가 아롱아롱한 꽃동네 사람들이다. 알랑알랑 물이랑이 아양을 떤다. 물이랑을 바라보는 시적화자는 하얀이랑이다.

 

이러한 이랑에서의 인간으로서는 예측하기 어려운 하나님 아침이랑을 시적 화자는 맞는다.

 

별 웃음

따라다닌 아침이

아침이랑

길가 숲 동구나무 앞 정자 구름다리

내 이름 일컫는 자만 웃음 나는 봄 가슴

- 아침이랑

 

시적 화자에겐 별 웃음 따라다닌 아침이 아침이다. 이 아침이랑은 하루의 아침만이 아닌 나날의 아침이다. 따라서 내 이름 일컫는 자만 웃음나는 꽃가슴이 되는 영광을 누리게 된다. 이 때의 나는 절대자이다. 시적화자는 이제는 시야를 넓혀 산으로 간다. 하늘도 아니고 땅도 아닌 산이랑은 돌과 나무와 꿈이 어울어지는 신비의 장소이다. 모든 먹을 것이 나오는 산이랑이 꿈을 들고 있어서 늘 이 안음 안에 따스하게 눈 뜬다. 이러한 따스함은 잎 이불로 덮혀져있다. 참으로 산처럼, 잎의 혜택을 보는 일은 맑은 공기와 푸른 바람과 밤의 별들로 하늘로 오르는 산이랑이 있어서이다.

시적 화자의 결정적 역할은 피아노이랑만들기이다. 하나님이 허락한 자율성에 의한 시인의 손으로 하나님의 세계닮기를 옮기는 일은 피아노이랑이다. 피아노 위에 꽃잎이 떨어진이다. 아름다운 꽃잎이 떨어지면서 안긴다. 이 아름다운 절망앞에서 눈부신 안음 노래가 나온다.

 

꽃잎이 떨어진다

떨어진 꽃잎사이

눈부신 안음 노래

바람의 날개이랑

꽃잎에 물오름이랑

 

몽울몽울 꽃송이

나온다.

- 피아오이랑

 

절망이다. 떨어져 구르면서 떨어진다. 그러나 날개이랑이 있다. 기독교적 성령의 이랑이다. 마음껏 치면서 마음껏 얻을 수 있는 성령의 값은 물오른 꽃송이다. 성경의 절대적 힘은 일어나기이다. 아래로 내려가기가 아닌 위로 오르며 일어나는 일은 아브라함을 비롯하여 성경 전부의 예들이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일하러 나가는 일이다. 이 약속이행은 시적 화자가 그대음성이랑에 있기 때문에 힘이 난다.

 

말이랑 들어서면

 

일어나 일어나요

 

멈추지 말아줘요

 

함께들 나아가요

 

둥둥둥 물오름이랑

힘이랑이

나온다

- 그대음성이랑

 

그대음성이랑에서는 모세에 대한 예수님의 익명성이 있다. 아침 일찍 일어남이 있다. 모세는 애굽 왕 파라오를 만나기 위해 일찍 일어났다. 일찍 일어남은 아브라함의 믿음의 조상 · 모세의 출애굽 장정 지도자 모두 아침 일찍 일어나는 2회 리듬을 가진다. 아름다운 리듬법은 모세가 물에서 건져지는 일과 동일하다.

이 그대음성이랑에서 다리이랑을 건넌다. 이것은 물을 줍는 일이다.

 

건널 때 그 때마다

조심히 물을 줍다

 

왼발을 조심하고

오른발 내디디며

 

하늘을 쳐다보면서

다리이랑 건넌다

- 다리이랑

 

물을 줍는 시적 외연은 내포로서 말씀을 들고 건너는 일이다. 모세는 홍해를 건너 가나안 땅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인도한다. 함께 어울어져 물을 건넜다.

이 시집 제목이 제시하는 어울어짐의 세계는 님이랑사는 날이다. 님이랑 사는 날이 날의 날 하도 많아 파아란 꿈이랑이 날의 날 하도많아 나는 늘 말 못하다가가 제시된다. 님으로 함께 하는 날이 하도 많아 말을 할 수가 없다는 것이 아니라 할 말이 있어도 말을 못힌다는 내용이다. 그것은 나의 행복이 아니라 행복함 준 님이랑 때문이다.

이러한 아이러니는 사랑하는 사람과의 관계를 넘어서는 관계이다. 남녀의 사랑을 넘어서서 당신이라는 절대자를 사랑하는 법을 배운 이 시집에서의 님이랑이다. 사랑이랑시는 사람은 사람사이의 사랑을 포기한다. 왜 인간의 사랑과 당신이라는 절대자와의 사랑이 공존할 수 없는가?. 그 답을 얻기 위해 답답해 엎드리는 날에사 하늘닮기로 사랑이랑 들어요 하고 있다.

이제 하나님의 꿈과 인간의 꿈이 구별되는데 그것은 하나님의 이랑에 들기로 한 날부터 꿈이랑은 물길로 하얀꽃이 흐르는 동안에도 플 푸른 꿈 이파리 들고만 있었어요이다. 물길의 하얀 날개에 발을 들고 있었죠의 과거형은 하나님 나라에 들기 위한 헛디딘 슬프디슬픈 모습이 되고 있다. 물론 이 슬프다는 감정은 아름다운 마음을 말한다. 사람이 사람을 용서하고 사랑하는 일은 인간의 힘 보다는 하나님의 큰 사랑이 있어서이다. 이 마음에 선 목사로서의 삶에서 가는 길은 그리고 아 이랑에 선길에서는 발을 들고 있어야 한다. 땅에 발을 딛는 것이 아니라 발을 들어야 한다.

이때에 기쁨이랑시가 쓰여지는데 그것은 한 고비 넘긴 삶의 달인으로서의 나날을 말한다. 사람의 마음과 약속은 언제나 변칙성을 가진다. 이것은 하나님이 나의 편에 서 계심을 확인하는 마음이다. 사람의 안이 보이며 안이 다 튀어나와 속속이 보이지만 진짜 속을 알아보고 내 안이 싱글벙글 웃을 수 있는 힘마저 시적 화자의 것이 아니다. 혼자서 싱글벙글할 수 있는 경지는 인간의 사랑을 확인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마음을 안 사람의 마음이다. 둥그런 그대의 극칭은 사람이 아닌 절대적 존재 그대이다. 이응의 세계이다. 고랑찬 예수님의 모습이다.

사과이랑시는 일반적인 사과를 소재로 한 것이지만 그 은유는 이미 하나님 이랑에 들어선 자의 마음가짐이다. 늘 사과하며 그리고 먼저 상대방에게 사과하는 이랑에서 서 있다. 발은 이슬로 흠뻑 적셔져 있고 한 번의 사과가 아니라 나날의 사과를 모으느라 꿈을 튼다. 꿈을 트는 일은 꿈을 새로 만들어 내는 고통과 값어치를 말한다. 이 자의적인 하나님 허락의 자유는 내 안의 사과이랑에 이슬이랑 넣는다는 현재적 진행으로 하여 눈물이슬을 말한다. 이슬은 밤을 지낸 이슬이며 새벽에 사과밭에 들어선 이의 발을 흠뻑적신다. 그럼에도 사과를 줍는 일을 아침일찍 그 시간에 망태에 담아 내올 수 있기 때문이다. 눈물이랑을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기도로서 하나님과의 대화에서 얻어지는 사과의 수확량이다.

신발장 곁에서 목사의 설교를 듣는 날들이 많아질수록 뒷자석에 하나님의 빛이 비친다. 새이랑은 하나님이 허락한 새이랑이다. 이제 겨우 자리 하나 잡은 새이랑은 아직도 눈물이 많다. 새하얀 쑥국새의 울음이다. 목사이면서 입으로 전하는 메시지이다. 하나님을 믿는 일의 어려움을 말한다. “새하얀 쑥국새야함으로써 같은 길을 걸어가는 사람들에 대한 연민이다. 사람은 외로운 존재이다. 그러나 누군가가 말 한마디의 그 쑥국새 하나로 하여 웃음을 웃을 수 있다. 멀찌감치, 감히 예수님을 바로보지 못하고 쭈빗쭈빗하면서 뒷 자석에 앉은 시적 화자에게 겨우 자리 하나 얻은 새이랑새이다.

이삭 하나 더 주우려 늦저녁 해 질 때 까지 끼니거리를 줍던 룻처럼 이삭이랑에 선 새이랑은 서둘러 이백리를 가야한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데리고 200리를 간 그 곳, 외진 곳에서 단 둘이랑 둘이랑 단둘이랑 가느라 마음이랑이다. 내 아들을 번제드려야 하는 절박감의 이삭줍기는 아들을 사랑하는 아비의 마음이다. 아들의 그 순진함 앞에서 그리고 순수함의 믿음 안에서 오히려 배워야 하는 마음의 믿음자라기는 그 끝을 모르는 이랑이다.

아들을 둔 자의 눈물은 흔들리는 눈물이다. 하나님 아버지의 형상으로 만들어진 사람의 아비는 그 사랑법을 이제야 겨우 눈물이랑에서 서 있으면서 눈물에 흔들린다. 불빛이 비치는데 눈물을 한잔 들자 구름도 쉬고 있다. 시적 화자의 삶은 바라보는 대상이 있음을 감사함에 눈물을 흘린다. 아비의 눈물은 속앓이의 눈물이다. 앓이랑은 그냥 앓이가 아니라 물 한길 들이키는 새파란 가슴앓이다. 이 강은 프르게 흐른다. 이 프르게는 하나님의 강이다. 그 깊이에 비상구가 있다. 그 비상구로 하늘이 내려오면서 연못 위를 나른다. 이제 이랑에 서서 이랑들에 둘러싸여 이랑이랑차의 함께가는 길을 같이 간다.

이 이랑은 보통 이랑이 아니라 별이랑이다. 시적 화자의 나의 별이다. 꿈이랑이 별은 사랑별이고 동그랗다. 사랑은 원래 둥글다다. 모진 것이나 모난 것이 아닌 둥근 사랑이다. 사랑은 이응이다. 둥근 이응이다.

절대자는 시적화자에게 무게로 웃어준다. 정말로 하늘나라이다. 이랑의 안에서 이응의 안에서 별이랑 이랑이랑차를 타고 있다. 이제는 세상이랑이라는 여유로움으로 세상을 부른다. 세상의 물이 콸콸 쏟길 때에도 그 곳 거기엔 아름답고 포근한 침대까지 마련된다. 그리고 시적화자의 늘 그대가 가진 잔의 물을 든다. 금시에 살이 돋아 오르는 내가 되고 나날이 맑은 물을 들어서 안는다. 잔 높이 들어 쭈우욱 하늘높이 든다.

세상이랑에는 사람이랑이 있다. 불가능에서 가능을 열어두려는 시적 화자의 절규는 만약에 내가내가 돌이랑 사귄다면 무게를 가벼웁게 해 달라 말할거야 그래도 안된다라면 돌의 무게 될거야라는 것이고 만약에 내가내가 꽃이랑 사귄다면 내게만 웃어달라 말하며 조를거야 그래도 안된다면 꽃의 색깔 될거야라는 것이다. 그래도 안된다면, 만약에 내가내가 그대와 사귄다면 날 닮은 사람하나 달랄거야 그래도 안된다면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될거야라는 것이다. 이러한 시적화자의 나약성은 절대자에게로 향한 의지 전부이다. 마음 여유의 강이다.

여유는 마음의 자유이다. 여유의 날개로 나비이랑을 탄다. 시적 화자는 한 마리 나비이다. 나비로 나풀나풀 몸 싣고 달리다가 창이며 들길이며 어디든 앉는다. 앉음은 가벼이 날아올라라 말만하면, 절대자가 말만 하면 나르는 가벼움이다. 날면서 하는 일은 입술이랑을 가지는 일이다.

이 입술은 시적 화자의 입술이 아니다. 입술이랑을 다알싹 달싹달싹거리는데 그것은 기도이다. 구할 것을 다 구하는 것이 아니라 봉한 샘 하늘가락이 입술이랑 맴돈다는 한계성이 있다. 이 절제의 미학은 참 말을 해야하는 시적 화자의 한계성이다. 극히 제한적이다. 참이랑에 있어야 하며 참오이랑 참외밭 이랑마다 엄마의 품이라며 물 위로 딩굴딩굴 굴러야 한다. 이 때 기적은 물오이 입술이라고 나서면서 디딩굴 말씀이 전해지는 기적이다.

 

3. 어머니이랑

 

같이 어울어지는 시적 화자는 이제 어머니 이랑이 되어 있다. 한 여인이 시집가서 겪는 일의 사람일생의 일은 가정 지키기이다. 하나님 나라를 지키는 일이다. 어머니 시집오셔 삼일을 지내시고 석달에 실린시집 꿀단지 맴돌더니 삼년의 곱곱이로만 어머니비 세우는 일이다. 이 일은 하늘의 눈을 얼굴에 받는 일이다. 눈이랑에서 새색씨 눈이 온다. 눈이랑 마주하자 눈 속에 하얀 물이 들어와 눈물든다, 눈물을 닦아갈수록 녹아드는 눈 이랑이다. 눈물은 고마움으로 흘리는 눈물이랑이다.

시적 화자의 귀이랑은 혼자만의 귀이랑이 아니다. 귀이랑 두 센치가 남느라 당나귀귀이지만 임금님 녹아드는 당나귀 귀이이라 말하고 있지만 소리는 없다. 다만 흰 연기 가물가물히 흰구름이 두 세 번일 뿐이다. 입으로 말하기조차 허락되지 않는 귀이랑이 되어있다. 이 견딜힘을 주신 이에 감사하는 경지는 왕벚꽃이랑에서이다. 눈으로 하나님 세계를 봄으로 이 길만을 걷느라 웃음 달다. 이 기쁨은 아이들 얼굴만한 왕벚꽃 끼르르응 웃는 아이웃음이다. 색채는 뽀오얀 웃음이고 꽃잎 겨드랑이 까르르 웃는 웃음이다. 웃는 왕벚꽃을 통하여 시적 화자의 행복이랑은 아이들 벚꽃보다 더 크는 웃음이 달다. 길 가던 사람들은 꽃보다 아이닮아 바람의 왕벚꽃보다 더 크도록 까르르 웃는다. 이 세상은 파란 세상이랑이다.

 

포르르 파랑새가 하늘을 높이 납니다

날개에서 파란 물이 나와 온 하늘을 파랗게 칠하고 있습니다.

한 번 노래할 때마다

아주 귀한 보석이 파랗게 녹아 나옵니다

길 가는 사람들 하나씩 그 파란 물살을 주워 바구니에 담습니다

아주 커다란 비행기도 와서 파랑새를 포르르 실어 하늘로 높이높이 날으고 있습니다

이제 온 세상은 파란 사람들이 파랗게 웃고 있습니다

-이영지, 1997창조문학에 시 당선소감을 시로씀

 

3부는 하나님 곁에서의 하늘이랑이다. 하나님이 만든 하늘을 나르려 사는 새이랑이다. 아름다운 하늘을 닮아 하늘나르는 방법은 닮으면서이고 하는 일은 흐르듯 오색빛을 하늘에 뿌리느라고 하늘 끝을 나른다. 하늘을 나르는 가슴이랑은 사랑이 다칠까봐 가슴에 보듬는다. 보듬는 방법은 눈감고 귀 막고도 그래도 새 나갈까 가만히 다독거리며 두 손으로 모았다. 그래서 소중히 지나는 나날들의 시간을 싸안는다. 더 나아가 향긋한 내음들이 새 날가 밤을 샌다. 혹이나 흠이 날가 봐 두 눈마저 감는다. 이 소극적인 방법을 적극적인 방법으로 혹이나 상할까봐 하나님이 햇빛을 비추었다. 혹이나 죽을까봐 물 무리 얹어 줬다. 이 귀중한 현실을 시적 화자는 뾰사시 빛이 나도록 말소리를 삼갔다.

3사랑이랑은 중한 것을 간직하는 시작 화자의 햇철새이랑에서이다. 무중력의 하늘길에서 걸음마 주섬주섬 모으는 날기 연습을 한다. 먼 남쪽 하늘가를 기어히 한 발 한 발 딛여 하나님이 원하시는 길을 가려고 잦아진 걸음 수다 털어 익힌다. 날개를 얹느라고 털어서 하늘높이 줄과 열 잇느라고 자꾸만 봄을 익힌다. 뒤 돌아 뒤돌아보며 다음해 올 길 익힌다. 이 지상에서 발을 딛고 사는 시적 화자의 첫 하늘날기의 어린 철새 모습은 연습이 충분하기까지의 끊임없는 노력이다. 하루아침에 되어지는 일이 아니다.

지상에서의 모습의 병아리랑은 유일하게 이랑이 표시되지 않는다. 혼자서의 노력은 병아리 솜털붙이 산수유 노오랗게 길 가는 솜털이다. 아주 나약하다. 병아리가 봄이 되어 봄 간다. 그러나 절대자의 따뜻한 손길로 걸어간다. 하나님이 그가 만든 것들을 보호하는 솜 털 달기는 봄볕이 길을 가느라 병아리랑 가느라 길이 노랗다. 겉으로 보기에는 나약하고 위태하고 걱정스럽기까지 하다.

이 걱정을 없애는 방법은 시적 화자가 정이랑에 서는 일이다. 정이랑은 정이 많은 이랑이라는 2차적 뜻과 아울러 정을 가지고의 시적 화자의 의지까지 포함된다. 철새가 바람물고 하늘을 나르느라 안까님한다. 사랑을 묻히고도 V자로 나르느라 안까님한다. 애절하기까지 한 이 일은 그러나 혼자가 아니다. 젤 먼저 한 마리 앞에 제일 뒤에 한 마리로 하나님이 남겨둔 군사 7000명이 있음을 믿은 확신에서이다. 이 확신은 수많은 하나님의 사자들이 지치지 않고 하나님 일을 한 역사에 의해서이다. 이 일이 누나랑의 시적화자가 말하는 울 누나가 하나님 일할 때의 어려움을 후울후울털어버리는 일이다. 마치 구십 세 아버님과 어머님 손잡고서 산길을 걸어간다의 고백처럼 할 수 있는 길은 비록 노오란 길이지만 순이 누나에게선 파랗다. 삶의 지혜로 이 땅을 지켜온 우리나라의 순이누나의 모습은 말수가 별로 없는 산수유 순이 누나이다.

봄 길을 걸어간다 봄 길이 노오랗다 못해서 뿌옇다가도 노랗다가 파랗다. 이때의 협력자는 노오랑 아지랑이 산수유 노오랑 새이다. 노랗게 걸어간다. 더 나아가 너무나 많이 닮은 새파란 버들피리가 앞서면서 파랗다. 파란 세상 만들기의 하늘이랑은 애인이랑길이다. 나에게 애인하나 생긴 날 부채웃음 웃다가 날마다를 웃다가 행복으로 내리는 날이 되느라 꿈꾸듯이 사는 게 제 3부 시적화자의 삶이다. 꺼질 듯 꺼질 듯 위태롭기 까지 한 촛불이랑에서 새하얀 촛불 하나 이리로 불을 켠다. 촛불을 딩겨 오면 하나 더 불을 켠다. 또 하나 불을 당기면 하나가 더 따스해지는 위로와 웃음을 보내주는 성도들이 보내주는 따뜻한 마음의 선물 촛불이 하나 더 켜진다.

이 하늘 길을 걷는 시적화자의 지극히 개인적인 취향은 단순하다. 잠이랑이 잦지만 그 때마다 이리로 딩굴딩굴 저리로 딩굴딩굴 굴러도 잠이 안 와 이리로 뒤척뒤척 저리로 뒤척뒤척한 잠 이력서 잠이랑을 쓰며 옥색이랑을 늘린다. 아주 특별한 것이 아닌 지극히 한국적이고 소박한 옥색의 도포자락 꿈꾸듯 날리는 날에는 열두 폭 치마에다 옥 반지 두른 날에를 등가성으로 하면서 물 바른 옥색치마가 하늘하늘 이리로 오는 눈빛이 있다. 옥색빛이 도는 순수의 치마이랑에서 푸르른 하늘 등에 기대서 꿈을 들어 하늘을 옥색으로. 연분홍 봄 자락이라 방긋방긋 다린다. 옥색들판이랑이 되어 늘 하루도 거르잖고 디디는 옥색의 물들이며 굽어본 옥색바다이며 쳐다본 옥색하늘이다. 이 길은 달디단 옥색치마를 달디달디 디디는 하늘길이다. 이 때 옥색의 들판 위에 옥색의 목소리가 돋았다. 옥색 햇살이 달렸다. 옥색 바람, 햇살이 두 손을 펴고 볼록볼록 디디는 일상을 즐긴다.

시적화자의 지극히 소박하며 단순한 일상은 맨발이랑의 삶이다. 맨발로 오돌토돌 돌길을 걷느라면 달콤히 떨립니다라고 고백한다. 돌이랑 맨발이랑이 만나면 달콤히 따꼼따꼼히 디딜만큼 맨발로의 삶이라는 시작화자이다. 이러한 시적 화자의 삶은 그네이랑의 삶이다. 그네에서 쭈우욱 뻗어가며 다리를 구부리고 땅에는 닿지 않게 다리를 v 자로해서 오므리고 힘꺼엇 나는 세상이다.

4부는 시적화자의 행복이랑아이이랑과 등가성을 이룬다. 아이는 그네에서 그네를 비이이잉 돌리고 돌려 꼬고 또 꼬고 돌리다가 탁 놓아 사랑비행기 빙그르르 돌아라는 그네에 앉은 아이가 되어 자유롭게 그네를 즐긴다. 그네가 겨우겨우 제자리 돌아와서 멍충히 서 보는데 또다시 돌려 밀며 배 얹어 쀼우웅 나는 비행기로 돌아라며 행복이랑을 만든다.

하늘이랑을 나는 자의 행복은 햇살이랑이 있어서이다. 햇살이랑은 가을의 햇살 안에 두 손을 쫘악펴면 차츰 더 따뜻해진 손바닥 볼록렌즈 햇살을 켜느라고 하늘 해 햇살보쌈이 볼록볼록 쌓이고 햇살안 가을의 햇살 안이 두 손을 펴내 밀면 가을 손 볼록렌즈 햇살이 도톰도톰 따뜻해 하늘걸음이 담뿍담북 쌓이고 있다. 이러한 하늘길을 걷는 시적화자의 삶은 늘 봄이랑이다. 늘봄이랑에서 봄에는 늘봄이랑 곁에서 늘봄이랑 지내며 불켜 놓고 봄이랑 늘봄이랑 봄비로 늘봄이랑에 앙기느라 하얀속살 나온다. 이 때의 앙기느라는 구두어이다. 이 구두어는 이 시집 제목이 말하는 절대적 안김의 가장 핵심적인 주제이자 표현법이다. 하나님 안에 앙기느라살아갈 보람과 행복이 있다.

 

4. 알이랑

 

앙기느라구두어는 아가랑눈을 맞추며 엄마의 요람 속에 아가랑 잠자는데 엄마는 조용조용 아가와 앙기느라 아가랑 보드라와라 엄마마저 아가랑 절대적 의미의 은유를 표면구로하고 있다. 평안히 잠을 자는 사랑받는 자의 모습이다. 안길때의 모습은 봄이랑에서 봄이랑 알몸으로 안긴다. 그럼으로써 봄 떼기가 가능하다. 이 봄떼기에 여념이 없어진 새싹은, 서로들 얼른 마주 봐 봄이 되는 행복 봄이다. 봄이랑 알몸으로 아침을 짓는 동안 진달래 연분홍이 앓아서 눕는 동안 웃음을 주면 봄이 오는 행복 의 체험이다. 내편이랑만들어 바람이 부는 상황에서도 바람이 부우네요 눈보라 치이네요라고 여유로운 마음이 되면서 오히려 그대가 그립네요. 온종일 그립네요. 한다. 이 이유는 햇님이 내편이네요 알몸으로 있네요여서이다. 이리하여 불이랑을 만들어 쫄라랑 쫄랑쫄랑 오늘도 종알종알 집에선 전화로도 조잘잘 조잘조잘 불났네이다. 하루 종일도 모자라 자면서 무얼 먹고 저녁은 무얼 먹고 울 엄마 나 이뻐 해 자랑도 하루 종일 아침을 졸졸 따르며 종알종알 불이랑 꿈길을 걷는다. 동시의 외형을 지녔으나 사실은 알몸으로 햇님을 만나 낮도 아니고 저녁도 아닌 아침을 졸졸따르는 자의 행복감을 표시한 행복도취이다.

하늘길에 선 사람은 은어이랑을 걷는다.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색은 은색이다. 물결 일 그 때쯤에 비늘을 벗어들며 햇살을 덧입히고 물결에 등을 대고 아침을 은빛날개로 퍼 덕 퍼 덕 오른다. 오르며 알이랑을 만든다. 키 낮고 여리고도 어여쁜 꽃잎사이웃음을 안고이며 꽃 속의 알알 들에풀 들이 둘러리서서 둘레둘레 알알이 익는 알을 말한다. 익음의 경지는 아내이랑시에서이다. 배추이랑의 조용히 이랑이랑 안으로 꽉차오며 하얀살 들여놓고 가만히 가을들녘을 꿈꾸듯이 서 있다. 열매이랑의 시적화자의 경지와 춤이랑에서 물결타 흔들리면서 꿈타래로 춤이랑에 선다. 외룸이랑을 열어놓음으로써 오는 내음이랑의 입술로 아침향기 먹으며 가노라고 예 그리 새벽마다 아침을 물들이어 차창에 빛 내음이랑 푸른 들에 쌓이는 향기를 줍는다. 이러한 이랑내력은 빛이랑에 드는 길이다. 알이랑의 업무이다.

푸른 나뭇잎이랑을 달아놓는다.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닮음이랑물결을 만들며 소리이랑의 사랑의 꽃송이가 또르르 몽울몽울 맑게도 퍼지느라 소리는 아롱아롱 내 삶의 건반위에로 사뿐사뿐 앉게한다. 꽃햇살이 내리며 알랑알랑아리아리하다. 하얀이랑이 햇빛가슴이 된다.

 

5. 이응

이영지의 이름은 이응이 겹쳐지게 발음된다. 이 이응은 글자 모양도 둥글고 소리 값도 부드러운 울림이 있어 우리말의 "()은 그 소리 자체로서 특정 뉘앙스를 갖는다. 한국어의 o 받침은 부드러운 한 의미로 시를 아름다운 상상의 세계로 들어가게 한다. o 발음을 통한 시의 연금술은 한국정서를 불러오는 친근감에서이다. ‘이응은 비음 섞인 어감으로 하여 달콤하다.

이 이응의 이응은 글자가 초성의 이응과 종성의 이응이 서로 마주본다. 이 이응은 실제 소멸된 자모(글자) "(이응)"이다. 훈몽자회(최세진, 중종 때)에서 이미 "(옛이응)""異凝(이응)"이라 지칭하였고 훈몽자회의 8종성에 포함되는 글자는 "(이응)"이 아니라 "(옛이응)"이었다. 그냥 이응은 초성 종성에 쓰이어 솅종엉젱 에서 솅 엉 젱은 그냥 인데 종성에 있어서 발음하지 않는다.

"(옛이응)"운 훈민정음 해례를 보면 옛이응은 아음이라고 나온다. , 과 같은 어금닛소리이다. 은 마치 혀를 자처럼 구부려서 목구멍을 거의 막듯이 하고 내는 소리다. 그러나 옛이응은 아음이면서 동시에 후음(, 여린히읗, )의 성질도 있어서 글자 모양도 그래서 후음과 비슷하다. 후음은 콧소리다. 콧구멍을 울려 내는 소리다. 그래서 혀를 자로 구부려 목구멍을 막으면서 동시에 코를 울려 맑은 소리를 내면 이것이 바롯 옛이응의 음가이다.

그래서 "옛이응+"는 혀를 자로 구부려 목구멍을 막으면서 코를 울리되 입술 모양을 가로로 넓게 벌려주면서 소리를 낸다. 이 음가는 제주도에서도 많이 쓰인다. 제주도의 "옛이응+"의 형태는 어떤 말에 동의를 구할 때 쓰인다. 옛 이응은 동국정운식 한자음 표기 방법에 의해 종성에 쓰일 때에는 음가가 없다. 솅종엉젱 에서 솅 엉 젱은 그냥 인데 종성에 있어서 발음하지 않아 엉에는 이 초성과 종성에 둘다 나타난다. 의 초성에는 발음이 되니 음가가 있는 이고 엉의 종성에는 음가가 없는 이응이다.

훈민정음 언해본 옛이응과 그냥 이응에 대해.. 글자만 "(이응)"으로 바뀌고 소리값은 "(옛이응)"의 소리값이 그대로 남아 있다. 글자 모양만 바뀐 "자형 변화"이다. 실제 소멸된 자모(글자)"(이응)"이나 훈몽자회(최세진, 중종 때)에서 이미 "(옛이응)""異凝(이응)"이라 지칭하고 있다. 훈몽자회의 8종성에 포함되는 글자는 "(이응)"이 아니라 "(옛이응)"이었다

초성제자의 원리는 자음 글자 17자는 먼저 기본자 다섯 자를 만들고 모두 발음기관의 모양으로 음양오행설에 입각하여 -, --, --, --, --이 가획자 중에서 오직 (이응)만이 가획의 원리에서 벗어나 하나의 이체자로서 각 음종의 3자가 체계화에서 조화를 벗어났고 후음의 기본자 과 구별하여 아음의 기본자로 삼지 않았다. 이응은 음절의 첫소리에서는 소리가 안나고 끝소리에서는 비음으로 소리가 나는 "이응이""이응을""이응에"[이으이][이으을][이으에]가 안되고 [이응이][이응을][이응에]받침 소리가 비음이라면 다음 음절에서 비음이다. 즐겁고 경쾌하고 아름답고 달콤하다.

한자어"사량(思量)"이 있다. "사량위(思量位)" 같은 용어이고 영어의 사랑(love)은 동사 "rub""비비다"라는 뜻이다. 한국의 아리랑의 "" 아리랑 아리랑처럼 이영지의 이번 시집은 사랑이랑행복이랑이다.

이랑은 사전적 개념으로 갈아 놓은 밭의 한 두둑과 한 고랑을 아울러 이르는 말인 구어체에 쓰인다. 논두렁이 있다. 가시리나 사모곡이나 쌍화점에서도 이응발음의 다빈도현상을 보인다. 이응발음이 있는 한옥에서의 사랑채 · 15세기의 · (思郞)’의 어원 · 사랑방 · 사랑문[舍廊門] · 사랑꾼 · 노랑 · 다홍 · 파랑 · 주황 등 이응발음으로 일관된다. 노랑돈이며 노랑꽃이며 노랑목이 지니는 판소리에서, 소리를 정통 가창법으로 하지 않고 목청을 떨어 지나치게 꾸며 속되게 내는 창법까지 이 이응음가로 이어진다. 노랑(怒浪)도 있으며 노랑(老娘)도 있다. 신부의 모습 또한 혼례복으로 다홍치마에 노랑 저고리나 연두색 삼회장저고리이다. 노랑나비에서는 날개의 빛깔이 여름과 가을의 계절 차이로 현저하게 달라지는 계절 변이가 나타난다. 앞마당에 이름도 모를 노랑 · 빨강의 꽃들 그리고 까망 · 깜장 · 하양 · 구멍 · 주둥이 · 하양 모두 색채이다. 홍총장 · 냉냉 · 총총 · 빙빙 · 강강 · 낭랑, 양양 · 앙앙 · 창창 · 깡깡 · 망망 · 용용 · 조랑 · 이랑 · 몽롱 · 알송달송 · 알랑알랑 · 달랑달랑 · 홀랑홀랑 등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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