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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화국 장편소설 <꿈꾸는 설악> 연재 12회
2010-04-12 17:28:41
38hwakook

조회:1200
추천:73
장편소설 <꿈꾸는 설악> 연재 12회|이 화 국  

 

          예쁜 꽃 속의 요정과는 얘기하지 말아라

          아니 다정히 속삭이거라

          그 아름다운 정경에 취해 소리 없는 눈물을 흘리리

          그 눈물에 순결함이 지극하게 해보렴

 

          네가 내 앞에 마주 앉았는데

          이렇게 쳐다보고 있는데 왜 자꾸만 보고 싶은 거니?

          내가 물이라면 네 온 몸 위에 부어진 후

          너를 빨아들여 증발해서 저 하늘로 날아가버리고 싶다

 

          네가 콘텍트 렌즈가 된다면 내 동공에 밀착시켜

          그 렌즈로 세상을 보고 싶다

          너는 붉으냐? 푸른 색이냐?

          윤기 감도는 네 머리칼처럼 너는 검으냐?

 

          정갈스런 네 마음처럼 하얄까? 눈부신 젊음아!

          지구를 품에 안은 구리 빛 피부라도

          손이 닿으면 물거품처럼 사라질 것만 같아

          아껴 두고 보기만 한다

 

          꿈에서도 구원의 희망인 사람아

          너는 어디서 낳아졌으며 어디서 자랐으며

          무얼 먹고 살았길래 이슬처럼 말갛고

 머리칼    

          티끌 없는 순수한 마음에서

          줄 없는 두레박으로 길어 올린 평화를

          무한히 나누어 주고 있느냐?

 

          그래 너는 바로 평화의 사신인 게로구나

          다비드의 화살을 잡은 듯한 네 두 손과

          대지를 굳게 밟은 네 건장한 두 다리는

          정교하게 깎은 조각품 같으니

 

          그대로 가만히 있기만 해도 예술품이구나

          귀하디 귀한 보석이구나

 

          너의 눈썹은 알맞게 제 자리를 찾아 앉았고

          너의 속눈썹은 길게 자라

          그 맑은 눈을 호수처럼 깊고 그윽하게 만들어

          그 속에서 노를 저으며 헤엄치게 하는구나

 

          두 눈을 꼭 감고 너는 잠이 들었구나

          너는 일곱 빛갈 무지개만 바라 보느냐?

          유채 꽃이 평야 같이 피어난 들판을

          거침없이 달리려므나

 

          아가야 넘어질라 내가 손을 잡아주랴?

          너는 다 자라 자기 갈 길을 혼자서도 갈 수 있다니

          그리 말거라 멀리는 가지 마라

          내 마음 닿는 곳에만 너의 닻을 내려라

 

          네가 정갈한 치아를 하얗게 드러내어 웃을 때

          내 마음 저려오지만 바라보기만 해야 하는

          남모른 행복의 만끽이 감사해서 그런 것이란다

 꿈꾸는 설악

          너는 웃을 때 행복해 하고

          나는 슬픔 속에서도 감사와 행복을 느낌은

          세월에게서 배운 거란다

 

          너는 어리지만 자라지 말거라

          그것은 배워서 뭣에 쓰려고 그래

          지금 한창 배우는 중인 모양이구나

 

          기타 줄을 딩동 당길 때

          틀린 곡조가 왜 그리 듣기 좋으냐?

          아무래도 너는 소질이 없나 본데

          구부리고 앉아 악보를 보는 너를 스케치해서

          걸어 두고 오래도록 쳐다봐야 할까보다

 

          너의 음성은 어디에 담아둘까?

          몇 천 년 바다 속에 잠자던 항아리를 꺼내어

          그곳에 담아서 아무도 손 못 대도록

          다시 묻어 두고 싶구나

 

          너는 신의 축복 가운데 태어났으리니

          그 귀함을 내가 어찌 하랴!

          멀찍이 바라 볼 수 있는 거리에

          남아 있어 불씨처럼 반짝여서

          무딘 마음에 잿빛의 그림자를 밀어내면서

 

          새벽에 우는 새의 몸짓을 배우게 하지

          찬란한 황금빛 태양을 두 나래에 실어

          부상하는 새처럼 나를 높이 떠오르게 하지

          그런데 나는 보았다

  불씨    

          별은 빛나고 한없이 반짝이더구나

          무수하게 많더구나 저 무수한 별들이

          너의 분신으로 나도 나눠 가졌으면 싶다

          그러자 별 하나가 내게로 떨어져 오는 것 같아

          망연자실 서 있었지

 

          오! 볼수록 흐믓한 시의 정서를 일깨우는 혼야

          내가 너를 사모함이 아니라

          네가 나를 사모한다는 걸 깨닫는다

 

          너는 별이니까 반짝 반짝 빛을 내면서

          나와 눈 맞추려고 내려다 보니까 말이야

 

          나는 스러질 때가 있어도 너는 별이니까

          네 빛은 영롱하게 끝이 없을 거야

          참으로 지선지미한 신비의 빛.

 

 

    선희는 목이 마르다고 생각하면서 눈을 떴다. 여전히 목이 마른 것은 사실이었다. 빛이 창문으로 새어들고 있었다. 밤 사이 암흑의 신에게 희생되지 않고 새 아침을 맞이한다는 현실은 축복 받아야 마땅할 일이었지만 선희의 머리는 돌로 눌러 놓은 듯 무거웠다.

 

 밤새워 무엇을 한 것 같기도 하고, 어느 깊은 산속에서 길 잃어 헤매다 돌아온 것 같은 피곤이 풀리지 않은 채였다.  인생이란 감정적인 비유 이상의 것임에도 불구하고 선희는 자기의 기분이나 느낌에 많은 지배를 당하고 있었다.

 감정적 비유

    요 며칠 사이 무슨 일들이 있었더라?

    아! 새 사람이 하나 들어왔군. 그러자 방안이 갑자기 침묵과 기대와 긴장으로 부풀어오르기 시작했다.

소리 없이 돌아가는 소용돌이가 서서히 둘레를 넓혀가고 있었다.

 

    빛이 있으면 목이 마르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빛은 꿈이요. 환희요, 희망이요, 활력으로써만 작용해야 할 터인데 왜 목이 마른 것인가? 좀 더 누워서 게으름을 부려도 좋은 시간에 선희는 갈증 때문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선희가 부스럭거리며 옷을 주워 입자 김은태가 따라 일어났다.

 

  “오늘 서울 좀 다녀와야 할까 봐.” 

    그러고 보면 그녀의 남편은 벌써 잠이 깨여서 여러 궁리에 빠져 있었는지 모른다. 선희는 쳐다보기만 하면서 눈으로 질문을 던졌다.

  “아무래도 병원엘 좀 가 봐야겠어.” 

 

  “나도 그 생각 했었어요. 술 때문이라고만 생각했지만 요즘 체중이 너무 줄고 있잖아요. 그럼 그렇게 하세요. 애들도 궁굼하구요. 가는 김에 자세한 검진 다 받아보세요. 병원은 아무래도 이 속초보다 서울이 낫겠죠.” 

 

    주방에 내려가 아침상을 빨리 차리라 이른 후 얼음물을 한 컵 마시고 계단을 올라섰을 때 세면장에서 나오는 정군을 만났다. 방금 세수를 마치고 나오는 중인지 덜 닦인 몇 방울의 물이 남아도는 얼굴에서 시원한 바람이 새어 나오는 것 같았다.

 

    싸구려 세수비누의 향내가 그렇게 매혹적이었던가 기억을 더듬어보았다. 놀라운 일이었다.

    신선한 충격!

신선한충격

    그런 말을 머리 속에 떠올렸을 때 군대 행진곡 풍의 '비인의 숲'이 울려 퍼졌다.

    그래 맞아. 이 하루도 뭔가에 최면이 걸려 한 번 살아보자. 최후의 순간까지, 최후의 일각까지 그냥 한 번 살아보는 거야.

 

    내가 어떻게 생각하며 어떻게 살든지 신은 아직 내버려 두고 있잖은가 말이다.

   그럴싸한 몇 가지의 구호 아래 죽음의 전쟁터에 기꺼이 목숨 바치러 돌진하는 군대처럼 그렇게 앞으로만 내달으며 살아 보는 거야.

 

    피와 땀으로 사수한 얼마간의 소유와 영토를 다 내주어 끝장이 나기까지 인내로 인내로 버텨보는

거야. 인생이란 우리가 숨 쉬는 것을 타의에 의해 그치게 되기 전에 자의로 미리 끝내버리기엔 너무나 위대한 것이니까.

    하느님께서 쓰신 그 장엄하고 거대한 서사 드라마를 누가 함부로 막을 내릴 수 있는 일인가.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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