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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화국 장편소설 <꿈꾸는 설악> 연재 6회 / 이화국
2010-04-07 08:47:08
38hwakook

조회:1221
추천:75
장편소설 <꿈꾸는 설악> 연재 6회

   그것은 속초에 피난 나온 함경도 사람이 많이 정착해 살므로 어디 가나 그들을 접촉하게 되는 데서 배우게 되는 말이었고, 또 강원도 특유의 억양은 특별한 개성이 없을 뿐만 아니라 약한 편이어서 함경도의 억센 사투리에 많이 잠식되고 있었다.

 

   “이 집 오늘 손님 들어와? 나물을 다듬게.” 

   “쪼만한 학생 단체 하나 있지비.” 

 꿈꾸는 설악

    사투리

   “몇 명?” 

   “320 명.” 

   “그게 어째 쪼만 단체요? 내가 있다가 배식할 때 와서 봐주까? 우리 집은 노니까.” 

   “일 없소. 파출부 벌써 불렀쟤이요. 참, 내 걱정 놔두고 그집 먼저 걱정 된대니까. 맨날 놀아서 어찌

하우.  서울서 예꺼정 돈 벌러 왔지비 놀러온 게 아이우다.” 

 

     선희는 그 말을 들으니 또 가슴이 아파왔다. 숙박 업소가 밀집하다 보니 앉아서 손님 받기는 아예 글렀기에 판촉을 나가 사전에 뇌물을 안기고 단체손님을 잡아 놓았어야만 하는 일이었다.

 

    그래야 겨우 들어오는 단체들이고 보니 이 몫은 김은태가 할 일이었지만 김은태는 직장만 다니다 퇴직한데다 그럴만한 비위나 적극성이 없었다. 어쩌다 받는 단체라야 다른 업소에서 중복이 되어 할 수 없을 때 그것을 넘겨 받는 게 고작이었다.

 

   “손님 받으면 뭐 하누? 판촉비 벌써 나갔지. 거기다가 학생들 1박 3식에 2.800원 받아 선생들 한테 두(頭)당 500원씩 다 떼어주니 뭐가 남소? 죽지 못해 목구멍이라도 먹으려고 하는 짓이고, 그나마 여름철엔 난방비 안 들어서 다행이지비. 밥은 지천으로 남아 도니까네 오늘 그 집 밥하지 말고 우리 집에 와 먹소.” 

 

   “고마워요.” 

     선희는 일어섰다. 지난 겨울 방안에 들여놓였던 그집 고무나무가 넓은 잎을 번들거리며 어른 키만큼 자란 것이 눈에 들어왔다.

   “이 고무나무 그 사이 꽤나 컸네. 우리 집 것은 왜 키가 안 크는지 몰라. 겨우 내 허리 만큼 밖에 안

올라 왔으니.” 

고무나무 

   “그기 문 잠그고 서울 다 가 버렸으이 물이나 제대로 주었겠나. 겨울철에 얼어죽지 않았으면 다행이지. 우리 집 거는 방안에 들여놓고 가끔씩 맥주를 주었지비. 먹다 남은 김 빠진 맥주를 부어 줬더니 그기 물보다 낳았던 모양이라. 너무 자라 걱정이라.” 

 

     삼정 산장은 겨울에도 자기 업소에서 생활하며 겨울을 나는 토박이들이었다.

   “그게 정말이우? 맥주를 먹이니까 잘 자라더란 말이우?”

   “아, 보민서 그러네.” 

 

     선희는 남편을 떠올렸다. 고무나무가 맥주를 먹어서 잘 자랐다면 맥주를 날마다 마시는 김은태는 왜 요즘 날로 체중이 줄어가는지 걱정이 되었다. 하루도 안 빠지고 마시는 술인데도... 80kg이 넘던 체중이 날마다 눈에 띄게 말라가고 있었다.

 

     큰 길로 나서니 설악산의 웅자가 가까이 다가선 느낌이었다. 구름 한 점 없이 선명한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아름답게 보이는 것이 아니라 야속하게만 느껴졌다. 설악산아, 네가 나를 홀려서 여기에 끌어다 놓았으면 밥은 먹여줘야지. 밥은 먹여줘야지.

 

     문 닫을 수 없고 빚을 내어 종업원 월급 줘가며 갈수록 빚만 늘어가니 어쩌란 말이야.

     결국 금강산도 식후경이 아닌가 말이야! 난 네 모습이 안 보여. 그 아름답다는 네가 안 보여.

 

    힘없는 다리로 축 늘어져서 집에 들어서니 여전히 음악은 흐르고 정군은 그림처럼 카운터에 앉아있었다. 그가 여자였으면 아마 모나리자라고 불렀을 터였다.

   “전화 온 데 없나?” 

    카운터

    도리질을 했다. 그 모양이 왜 그리 보기 좋은지 모르겠다. 사무실이 꽉 찬 듯 든든하기까지 하다. 선희는 털썩 현관에 있는 소파에 주저앉았다. 그래, 너는 그대로 그냥 내 앞에 있어 주기만 하면 되겠다. 잔잔한 미소를 머금은 채로 말이다.

 

    너의 얼굴과 너의 두 눈은 나를 향해서만 열려 있어야 하겠다. 생존을 위한 그 어떤 일도 하지 말거라. 오직 조용히 머물기만 하면 된다. 이 고생, 이 수치, 나만으로도 족하다. 너 미(美) 소년, 나의 아들 같은 것, 나의 나르시스, 나의 사이키, 영혼을 치유하는 목소리를 가진 자 되거라.

 

    내 영혼의 방황과 허기를 그 누가 치유해 준단 말이냐? 허기져서 내가 가는 길에 잠시의 말동무가 필요하구나. 이 각박한 현실에서 나의 눈을 잠시 다른 데로 돌려줄 매개가 필요하단 말이다.

 

    너 어여쁜 자여. 어느 손톱에 닿아 상처 입는 꽃잎이지 말고, 시들어 무참히 땅에 지는 꽃잎이지 말고, 영원한 아름다움으로 남아라. 그 아름다움에 감격해서 소리 없는 눈물이 흐르게 하려므나. 나는 그곳에서 눈물에  헤엄치며 살고 싶다.

 

     밥으로 울지 않고 지고지순한 아름다움과 사랑으로만 눈물 짓고 싶다. 그 외엔 다 잊고 싶다.

    선희가 몽상가처럼 자기 생각 속으로 한없이 빠져들어가고 있을 때 그가 옆으로 다가 왔다. 선희가 눈을 뜨고는 있었지만 아무 것도 보지 않고 있었으므로 누가 곁에 서 있다는 것도 알아차리지 못했다.

 

    이윽고 그가 입을 열었다.

  “편지가 왔는데요.” 

    그제서야 제 정신으로 돌아온 선희가 입을 열었다.

  편지    

  “편지라고?”

  “서울 주소예요. 종로구 필운동 100번지네요. 이 주소는 잊어버릴 일 없겠어요. 아드님이세요?” 

  “응, 막내로군.” 

 

    정군은 물러가고 소파에 앉은 채로 선희는 편지를 뜯었다.

    자기 방이 따로 있었지만 소파에 앉는 것이 편한대로 습관이 되어 거의 현관에서 생활하는 그녀였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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