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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화국 장편소설 <꿈꾸는 설악> 연재 3회
2010-04-03 17:21:01
38hwakook

조회:1193
추천:83
 

    장편소설 <꿈꾸는 설악> 연재 3회 

  영웅도 시절을 잘 만나야 한다고 했던가.

 

  설악동 숙박 단지는 난다 긴다 사업 수완이 좋은 사람도  하늘만 쳐다보아야 했다.

그 다음, 다음 해 9월이던가 270 여명의 목숨을 앗아간 KAL기 격추 사건, 그리고 또 다음 해던가

아웅산 사건이 터지는 등, 선희네가 영업 능력이 없는 것도 문제였지만 외적인 여건조차 제대로  

풀려나가지 않았다.

 

   원래가 그렇지만 가을이란 좋은 계절은 짧았다. 순간에 계절이 바뀌고 역시 전 해처럼 문을 잠그고

선희네는 서울로 올라와야 했다. 영업 장소가 ‘내 사랑 넨나 병든 그때부터’ 라는 노랫말 처럼 불꺼진

창이 되어 어둠만 가득했다.

 

    선희는 지난 일을 생각하다가 그 사기꾼 김옥환이 xx 이라고 절로 입술 밖으로 새나가려는 욕을

삼켰다. 후회는 금물이라며 선희는 머리를 저었다. 후회할 시간이 있다면 앞일을 먼저 생각하는 게

순서이리라.  그리고 현명한 일이리라.

 

    현관 안으로 들어섰다. 소파에 앉았다. 집에 머물고 있던 뽀이인 노군이 건성으로 물었다.

  “커피 타 드릴까요?” 

 

    물으면서 복도에 마포질을 쓱쓱 해댔다. 물만 질벅질벅 발라가며 맘에 안들게 청소하고 있었지만

선희는 뭐라고 말할 의욕이 전연 없었다. 그 녀석이 커피를 타주면 맛도 없을 것 같았다.

 

    선희는 카운터로 들어갔다. 그곳엔 커피를 끓여 마실 수 있는 일습이 다 준비되어 있었으므로 그녀는

휴대용 개스렌지에 물주전자를 올려놓았다. 곧 물이 끓기 시작했다. 쉭쉭 수증기를 내뿜는 꼴이 주전

자도 어지간히 속이 타서 한숨을 거세게 내쉬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럴 때는 뚜껑을 열어 주어야 해. 하지만 내 끓는 속뚜껑은 누가 열어주나!”

커피 한 잔

    작은 소리로 뇌면서 선희가 주전자의 뚜껑을 열었다. 커피는 물이 아주 뜨거울 때보다 한김 나갔을

때 타 마셔야 제 맛이 난다는 걸 알기 때문이었다. 커피를 한 스픈 먼저 넣고 잘 저은 다음 프림을 넣고,

그 다음에 설탕을 넣어 젓는 순서로 천천히 커피를 탔다. 그렇게 타면 미세하나마 좀 더 색다른 맛이

있었다.

 

   선희에게 있어 커피는 마시는 음료가 아니라 친구나 진배 없었다. 왜냐하면 커피를 마시면서 커피잔을

내려다 보며 추억속에 있는 얼굴을 떠올리기도 하고, 사색에 빠지는 일을 즐기기 때문이었다. 커피잔을

들고 먼 곳에 눈 주고 있으면 그 한가함이 황홀하기까지 했다.

 

    이렇게 커피를 사랑하고 커피를 친구로 알기 때문에 커피가 없으면 쓸쓸했다.

   사업이 곤욕을 치르면서 친하다던 친구도 다 떠나갔지만, 이전에는 친구를 만나면 제일 먼저 하는 소

리가 ‘커피 한 잔 마실래?’가 인사였던 것이다. 그 말은 ‘나는 너하고 얼굴 마주하고 다정한 얘기를 나

누고 싶어.’ 와 진배 없었다. 

 

    그러다가 커피를 못 마신다는 사람을 만나면 그렇게 씁쓸하게 느껴질 수 없었다. 러시아 공관으로 피신

했던 고종황제가 우리 나라 사람으론 제일 먼저 커피 맛을 보았다는 사실을 아는 선희는 황제가 된 기분

으로 커피를 마신다는 좀 고집스런 데가 있었지만 다 흘러간 물일 뿐이었다.

 

    선희는 멋없이 큰 목소리로 뽀이를 불렀다. 그것은 친구 차원에서가 아니라 곁에 사람을 두고 혼자

마신다는 야만스러움을 피하자는 것 외 다름 아니었다.

   “노군아, 너도 한 잔 마셔라.” 

  고종 황제

꿈꾸는 설악

   노군은 술만 들어가면 울기는 잘 해도 착한 심성을 가진 속초 토박이 아이였다. 중학교는 졸업했으며

운전 면허 딸만큼 돈을 벌고, 오징어잡이 배 한 척 마련하는 게 꿈이라는 머슴아였다.

 

   주인이 돈을 잘 벌어야 그 애의 꿈이 쉽게 이뤄질 터인데 운전 면허는 쉬이 딸 수 있을런지 모르지만

오징어잡이 배는 언제 마련할 것인지 선희로서도 공연히 걱정되는 바였다.

 

    커다란 구식 교환대 위에 올려놓은 전축을 켰다. 언제나 그렇듯이 LP 판은 대장간의 합창과 순례자의

합창, 노예들의 합창과 죄수들의 합창, 개선 행진곡을 힘차게 연주하다가 알아서 끝내준다. 판을 뒤집어

놓았다.

 

    음악만이라도 합창을 듣기 좋아하는 것은 침체된 기분을 살리기 위함이었고, 또 손님으로 북적북적 넘쳐야 할 업소가 텅텅 비어있고 보니 사람들의 많은 목소리로라도 채우고 싶은 심경 때문이었다.

 

    판을 또 다시 뒤집었다. 거대한 오케스트라와 합창단이 그 속에 있어 선희의 손끝의 움직임만으로도

일사불란하게 움직여주는 것 같아 지휘자가 된 기분이 들기도 했지만 하도 여러 번 반복하니 그짓도 맥이

빠지고 있었다.

 

   어지간히 지루했다. 그래도 선희는 카운터를

 

 

 

 

 

 

   떠나지 않고 현관에서만 뱅뱅 돈다. 그것은 뽀이를 구하려고 나간 남편을 기다리기 위함이었다.

음악  감상

 

                        

                    3. 만남이란 새 얼굴

 

 

 

   벽시계 올려다 보았다.

    개업식 때 들어온 것인데 그것도 몇 년 지나고 보니 고물이 되었는지, 아니면 밥을 안 주어서일까.

오전인지 오후인지 모를 5시 반에 바늘을 고정시키고 서 있었다. 태엽을 감아주려고 의자 위로 올라섰을

때  김은태는 낯선 청년을 데리고 들어왔다.

 

    사람을 구해온 것 같아 우선 선희는 반가웠다. 의자에서 부리나케 내려섰다. 그 바람에 중심을 놓

쳐서  기우뚱 자빠질 뻔한 것을 겨우 바로 섰다.

  “지금 오세요?” 

 

    김은태는 선희가 묻는 말엔 대꾸 없이 데리고 온 청년을 향해 말했다.

  “어이, 정군이라고 했나? 앞으로 잘 좀 지내보자. 저 카운터에 딸린 방이 자네가 거처할 곳이야.

     여보 안내하라구.”

  보이 정군

     선희가 눈을 들어 그를 바라보다가 눈이 마주치자 정군이라고 불린 그는 잠시 목례로 인사를 대신했다.

그때 선희는 참으로 이상한 느낌을 받았다. 어디 영화에서 보았던가? 하얗게 쌓인 눈길을 걸어 라라를

찾아 가던 닥터 지바고로 분장한 오마샤리프의 얼굴?

 

    그 깊은 눈? 딱히 짚히지는 않았지만, 어쨌거나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망연히 차창에 기대어 어딘가로

 떠나가는 그런 사람의 얼굴 표정이라는, 그래서 연민의 정이 솟아야 마땅하다는 그런 느낌이 번개처럼

스쳐 지나간 것이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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