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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수(丁成秀)의 첫시집 <개척자> 작품론(임애월)- 열여섯 살, 빛나는 감성과 열정으로
2012-07-07 08:08:56
chungpoet

조회:1235
추천:116

⬣ 정성수(丁成秀)의 첫 시집「개척자」작품론

열여섯 살,

빛나는 감성과 열정으로 세상을 개척하다

임 애 월 <시인>

 열여섯 살,인생에서 가장 빛나는 시간이자 혼돈의 계절이다. 세상을 다 알고 있다는 치기어린 생각들로 가득 차 있어, 바람 앞의 꽃잎처럼 아름답지만 위태로운 시기이기도 하다.

 흔히 사춘기 청소년들을 가리켜 ‘주변인’이라고 하는데, 그 말 속에는 어린 아이도 아니고 그렇다고 어른처럼 이성적으로 자신의 감정을 조절하지도 못하는, 어정쩡하고 불안한 시간 속에서 성장통을 앓으며 방황하는 십대라는 의미가 들어있다고 하겠다. 그러나 시간이 흐른 뒤 돌아보면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빛나는 시절이기도 하다.

붉은 정열이 파드득 튄다.

하이얀 눈물이

주르륵 흐른다.

 

아지못할 슬픔이

자르르 내린다.

 

행복에 찬 웃음이

파르르 고개를 숙인다.

 

뜨거운 희망이

윙 달려가 버린다.

 

커다란 고민이

새끼를 낳는다.

 

쓰라린 고독이

기쁜 듯이 쫓아온다.

                                                                                                          -「나의 소리」 부분

 열여섯, 아름다우면서도 슬프고, 넘치는 열정 속에서도 고독한 시간이 아니던가. ‘파드득 튀’는 ‘붉은 정열’과 ‘하아얀 눈물’과 ‘뜨거운 희망’, ‘커다란 고민’, ‘쓰라린 고독’이 공존하는 그 혼돈의 계절 열여섯 살에 정성수(丁成秀) 시인은 일찌감치 개인시집을 묶어서 자신의 삶을 개척하기 시작했다. 대단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 때나 지금이나 중고등학생들 대부분은 ‘시 읽기’는 즐거운데 ‘시 쓰기’ 하면 백일장이나 작문시간조차도 부담스러워 한다. 남의 쓴 시를 읽을 때는 뭐 그 정도는 나도 쓸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다가도 막상 자신이 쓰려고 하면 머릿속이 깜깜하더라는 이야기를 자주 듣는다.

 그런데 중학교 3학년 학생이, 그것도 백일장이나 작문시간에 한 두 편의 시를 써보는 것도 아니고, 시집을 묶을 만큼 많은 분량의 시를 지속적으로 썼다는 것은 남들에 비해 철학적, 문학적인 사유(思惟)가 상당히 앞서가고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라고 말할 수 있다.

 기성시인들이 시집을 묶는 일도 하나의 문학사적인 사건이라고 할 수 있는데, 열여섯 살에 시집을 엮는 일은 현대 시문학사에서 그리 흔한 일이 아니므로 사건 중에서도 대사건이라고 하겠다. 아마 시인으로서의 그의 운명은 모태로부터 타고 난 듯하다.

 이 시집에 수록된 시편들을 살펴보면 열여섯 여린 감성을 넘어서서 당시의 시대상황까지 인식하고 불합리한 세계와 맞서 투쟁하려는 의지까지 보여 읽는 이로 하여금 전율을 느끼게 한다. 일반적으로 열여섯 살의 투쟁은 주로 가까운 주변 환경에 대한 불만이나 항거이지, 그 대상을 사회적, 정치적인 상황까지 인지하고 확대하기는 어렵다.

 그의 정신세계가 이렇게 조숙하게 된 연유는 아마도 성장기의 시간적 배경이 6.25, 4.19 등 사회적, 정치적으로 특수한 시대였고 또 언론인이셨던 부친의 영향도 컸기 때문일 것으로 여겨진다.

 앞의 시「나의 소리」에서는 열여섯 살 사춘기 소년 시인의 내면의 ‘소리’를 그대로 읽을 수 있다. 전체적인 시의 분위기로 보면 사춘기 소년의 고독한 방황과 몸부림이 처절하지만 ‘쓰라린 고독이/기쁜 듯이 쫓아온다’는 시구에서는 그 반어적인 기법이 신선하게 다가온다.

 시에서 반어법을 구사하는 걸로 미루어 소년 시인은 시적표현의 기교를 어느 정도 체득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흔히 그 시기에는 고독에 한번 손목을 잡히면 대부분 헤어나기 어려워 버둥거리며 끌려 다니기 십상인데 시인은 이미 그 나이에, 고독하지만 그 외로움을 즐길 줄 아는 성숙한 자기만의 정신세계를 지녔던 것으로 보인다. 그런 시구들은 아래의 시에서도 나타난다.

내가 나를 위하여

때론 순종하고

때론 반항하고

때론 웃는 것이다.

 

나의 가장 사랑하는 사람은

나다.

 

나의 가장 친한 친구도

바로 나고

 

나를 가장 잘 이해해 주는 사람도

누구 아닌 나인 것이다.

                                                                                                       - 「나를 위하여」부분

 돌아보면 내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은 누구도 아닌 바로 ‘나’ 자신이다. 그게 가장 솔직한 표현이다. 부모형제도 연인도 ‘나’ 다음이다. 가끔씩 나보다도 더 너를 사랑하노라고 말들은 하지만 그것은 그만큼 너를 많이 사랑한다는 의미이지 일반적으로 인간은 누구든 자기 자신보다 상대방을 더 사랑할 수는 없다.

 ‘나의 가장 친한 친구도 나’이고 내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도 나’, 그래서 나는 ‘나’를 위하여 ‘때론 순종하고/때론 반항하고/때론 웃는 것’이라는 부분을 보면 그는 열여섯 살에, 상처받지 않고 혼자서 세상을 살아가는 자기만의 도를 터득한 것으로 보인다.

 그것은 친구든, 연인이든, 하물며 부모형제라 해도 나 이상으로 ‘나’를 이해하고 사랑할 수 없다는 사실이며, 그래서 철저하게 혼자서 그 외로움을 감당하고 사랑할 준비가 되었다는 의미이다. 사춘기에는 감성이 앞서기 때문에 한 걸음 뒤로 물러나서 자신을 냉철하게 바라볼 수 있는 객관성이 부족하다.

 그런데 이 시의 분위기를 보면 어린 시인은 미숙하지만 자신에 대한 어느 정도의 객관성을 확보하면서 시적인 거리를 만들어 두고 있다고 하겠다. 비록 시인의 나이는 어리지만 당시의 생각의 크기를 느낄 수 있는 부분이다. 이 정도로 자신을 관조할 수 있는 정신세계를 지녔기 때문에 세상과의 괴리감으로 소년 시인은 더욱 고독하였으리라.

어둠의 물결이

굽이치고 돌아

세상은 이제

암흑에 울며 소리치며

죽음의 노래를

음산한 공기를

압축하고 있는가.

 

악마의 핏줄기가

한없이 뻗치듯이

햇빛을 집어삼킨

암흑의 밤이여.

 

오막살이 창가에서

불꽃이 튀듯

워우

워우

맹견의 소리가

공기를 가르면서

달려온다.

 

암흑만이 지상을 휩쓸며

침묵을 창조하는 밤.

 

잠은

어디로 갔는가

 

고민의 파도가

가슴을 치고 머리 속을

핥으며

출렁거리는데

 

날아 밝아라.

동아 트거라.

어둠아 사라지거라.

                                                                                                                                           - 「암흑의 밤」전문

 이 시에서는 ‘암흑’ ‘죽음’, ‘음산’ ‘악마의 핏줄기’ ‘밤’ ‘불꽃’ ‘맹견’ ‘어둠’ 등 거칠고 어두운 시어들이 시의 전체적인 분위기를 무겁게 끌고 간다. 세상이 어둠으로 가득 차 있고 빛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아 암울하던 1960년.

 당시의 세상은 ‘어둠의 물결이/굽이치며 돌’고 ‘암흑에 울며 소리치며’ ‘암흑만이 지상을 휩쓸’던 격랑의 시대였다. 밤은 어둡다. 어둠은 악마와 서로 내통한다. 보이지 않는 어둠 속의 시간들은 사람들로 하여금 악마와도 손을 잡게 만든다.

 그 막막한 어둠 속에서 한 줄기 빛을 기다리는 어린 시인은 악마에게 손목 잡히지 않으려고 등잔의 심지를 돋워가며 일찌감치 달아나버린 잠 대신 ‘침묵을 창조하’며 시를 썼으리라. 그리하면 머잖아 ‘날이 밝’고 ‘동이 트’리라는 ‘개척자’의 신념을 품고

. ...상략...

세상에서 버림받은

폐물들만 모여 사는

도가니엔

불의의 씨가 움트는 것인지요?

 

한 많은 죽음의 노래

수없이 쏟아져 나오는

피폐의 향기

 

누구도 아지 못하는

희망 없는 나날에서

그들은

침묵의 향락을 누리는 것인지요.

..중략...

아름다움이란

바랄 수도 없는

불결의 번식처,

 

우리 사회요.

                                                                                                                   - 「쓰레기통」부분

 위의 시를 읽어보면 우리 사회가 쓰레기통처럼 더럽고 냄새 나는 곳이란 걸 그는 그때 이미 알아버린 듯하다. ‘아름다움이란/바랄 수도 없는/불결의 번식처/우리 사회요’. 그 더러운 곳에서 온갖 ‘불의의 씨’앗들이 싹을 틔우고 줄기를 뻗어 만들어낸 ‘희망 없는 나날’들을 딛고 ‘향락을 누리는’ 정치모리배 혹은 관료들의 불의를 고발하고 있는 것일까.

 그가 너무 이른 나이에 우리 사회의 부조리와 불합리를 몸소 경험하고 체득하였다면 그는 너무 일찍 영혼이 노쇠(?)해 버린 불행한 소년이었다고 말할 수 있겠다. 사랑이나 행복, 꿈, 미래, 희망이나 꽃의 아름다움, 별의 비밀 등을 노래하여야 할 시기에, 불합리한 세계와의 충돌을 먼저 경험하고 거기서 미래에 대한 좌절을 맛보았다면 그건 누가 뭐래도 불행한 십대라고 아니할 수 없다.

 이 또한 피할 수 없었던 파란만장한 기록의 역사적 시대를 배경으로 태어난 운명 때문이겠지만. 당시 외부세계에 대한 그의 사회 인식론적인 가치관을 엿볼 수 있는 시편들을 더 살펴본다.

 죽음의 폭풍이 소용돌이쳐

인간은

패배당한 낙엽처럼

 

몰리고 쏠리며

뜨거운 선혈을 한없이 휘던져......

 

피는 피와 함께 세상을 애무하고

시체는

시체를 덮어

이름없는 무덤을 창조하고

 

지구를 뒤흔드는

괴물의 함성이

공기를 진동시키며 잡아 흔들다

...중략...

세상은

폭우에 몰리는 난파선같이

갈 바를 모르며

이리저리 몰리다 지쳐

 

전전긍긍

기회만을 노리는

 

Korea Seoul의 동태

                                                                                                                                 - 「폐도」부분

 1960년은 4.19 민주화 혁명이 일어난 해이다. 4.19혁명은, 제1공화국 자유당 정권이 이승만을 대통령에 당선시키고 이기붕을 부통령에 당선시키기 위해 개표 조작을 하자 그에 반발하여 부정선거 무효와 재선거를 주장하는 학생들의 시위에서부터 비롯된 민주화혁명이다. 그 결과 이승만 대통령은 하야했으며 이기붕은 기족들과 동반자살을 하였다.

 위의 시는 4.19혁명이 일어난 해에 쓴 시이다. ‘죽음’ ‘폭풍’ ‘선혈’ ‘시체’ ‘무덤‘ ’함성‘ ’괴물‘ ’난파선‘ 등 거칠고 숨가쁜 시어들이 당시의 처참했던 사회 분위기를 잘 보여준다.

 ‘몰리고 쏠리며/뜨거운 선혈’을 쏟아 이 땅의 민주주의를 이끌어낸 학생들,’ ‘폭우에 몰리는 난파선 같이/갈 바를 모르며/이리저리 몰리다 지쳐’ ‘전전긍긍/기회만을 노리는’ 대한민국 서울의 무력한 현실을 현장감 있게 표현하고 있다고 하겠다.

 시 속의 화자와 요즘 학생들과는 사회를 보는 관점에서 적잖은 거리감이 느껴진다. 사회 전체가 자본주의적 물신주의에 빠져있다고는 하지만 요즘 학생들 대부분은 어떤 사명감도 없다. 조국이나 사회, 가정에 대해서도 진지하게 생각하지 못한다.

 오로지 상급학교 진학을 위한 공부에만 매달려 학교에서 학원으로 이동하며 분주한 시간을 보내거나, 기성문화의 퇴폐적인 부분만을 쫓아다니기 때문에 세상의 다양성을 읽어내는 통합적인 사고는 고사하고 그저 혼자 몸 추스르기도 숨이 가빠 늘 허우적거린다. 자신의 실체를 관조할 수 있는 여유가 없기 때문에 정신력은 매우 허약해져 있다. 물질적으로 풍요로운 사회는 인간의 정신을 나태하게 만들어 정신력을 퇴행시키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위의 시 속의 화자의 관점은 사회의 부조리를 모른 척 비켜가는 게 아니라 능동적으로 항거하고 있다. ‘기회만을 노리는’ 부패한 현실을 직접적으로 고발하고 있다. 다음의 시에서는 능동적이고 투사적인 이미지가 더욱 강렬하게 나타난다.

빠알간 피를 던져라

 

들끓는 경관들의 낯짝에다가

불붙는 피를 뿌려라

발길로 피를 차버려

산산조각으로

피의 안개를 세워라

 

그 속에 꿈을 꾸는 듯한

무지개를 태워라

 

최루탄을 도로집어 반대로 갈겨라

 

연기를 머금어라

연기를 뱉어라

피를 움켜잡으며 구호를 외쳐라

날뛰던 경관의 얼굴색이 변하게

 

몽둥이도 없이

총도 없이

최루탄도 없이

 

맨몸으로

 

몽둥이 삼아

총 삼아

최루탄 삼아

 

날아오는 것 받으며

끊임없이 달려라

 

분노 앞엔 모든 것이 굴복한다

얌전히 고개 숙여 항복하는 것들에게

 

소리 질러라

자유의 소리를

 

침을 던져라

쫓겨 가는 독재자에게......

 

먹구름이 일다

태양이 솟았다

 

드높은 하늘을 그대로 지녀라

피가 물든 넓은 태양

 

정열로 받아

가져라!

생각하라!

                                                                                                                                - 「젊음의 피」전문

 열여섯 살 소년이 썼다고 보기에는 너무도 성숙한, 이 시 속의 화자는 붉은 피 낭자한 혁명의 한 가운데 서있다. 오색영롱한 ‘무지개를 태’우고 싶었을 열여섯 살...... 그러나 그의 열여섯 살은 ‘몽둥이도 없이/총도 없이/최루탄도 없이’ ‘맨몸으로’ ‘자유의 소리’를 질러야 하는 시대였다.

  ‘피의 안개를 세우고’ ‘그 속에’ 서 독재자를 향해 ‘침을 던져’야 하는, ‘태양’도 ‘피’로 물들었던 역사의 소용돌이 시대였다. 그 한가운데에서 어린 시인은 정의가 아닌 것들에게 맨몸이지만 피로써 항거하면 ‘드높은 하늘을 그대로 지’닐 수 있다는 희망을 본다.

 그 희망의 끈을 놓지 않으려면 수동적인 기다림이 아니라 능동적으로 쟁취해야 지킬 수 있다는 참혹한 현실을 인지하고, 그 역사의 소용돌이 속으로 스스로 걸어가고 있다. ‘개척자’의 사명감을 등에 지고서 말이다.

나를 암흑에 집어넣고

광명에 몰아넣던

1960년.

 

이 해는 마지막으로

세월을 머금는다.

사철의 회전도 제자리로 돌아가고

 

모든 슬픔을 삼켜버린 채

세월은 흘러버렸다.

 

망각이 돌아오고

새 생활의 계획이

몽롱하게 자릴 잡는 달.

 

영원히 맞이하지 못할

1960년.

 

서글프게 이별하여야 할

추억의 꿈

마지막 달이여.

 

순정의 꽃이 피려다 썩어버린

이 해 4293년.

 

쓰디쓴 비웃음만이

나를 삼켜버려

 

이 해는

눈물과

웃음에

 

마지막 달을 씹어버린다.

                                                                                                                         - 「1960년 마지막에 부쳐」전문

 열여섯 살 소년시인은 1960년 그 해가 ‘나를 암흑에 몰아넣던’ 참혹한 해였다고 말하고 있다. ‘모든 슬픔을 삼켜버린 채/세월은 흘러버리’고 ‘순정의 꽃이 피려다 썩어버린’해 ‘쓰디쓴 비웃음만이/나를 삼켜버’린 해, 그래서 그것들을 잊으려고 ‘망각이 돌아오’고 있다고 말한다.

 생각하면 그 비극적인 시대를 살아낸 대한민국의 모든 사람들이 참 대단해 보이고 존경스럽다. 정치적으로 경제적으로 어두웠던 시대를 살아냈으므로 강한 정신력을 소유하게 되었을 테지만, 한편으로는 그 끔찍했던 시간들을 잊고 싶기도 하였을 것이다. 만약, 괴롭고 슬프고 아팠던 일들을 잊지 못하고 그 기억들을 고스란히 안고 산다면 인간은 아마 모두들 미쳐서 날뛰지 않을까.

 그런 면에서 볼 때 망각이란 참으로 고마운 존재이기도 하다. 그 망각의 힘으로 새로운 날들을 개척해 나갈 수 있으므로. 그렇게 그의 ‘1960년’은 흘러갔다.

광야를 달리는 서부의 고함소리가

하얀 달빛 아래 펼쳐지는

젊음의 보금자리

 

석류알을 깨물듯

꿈을 물어뜯는 노래.

 

마지막으로

사랑을 짓밟을 용기가 달릴 땐

광인의 울부짖음이 전파가 된다.

 

말발굽이 땅을 차는 푸른 연기.......

 

백마를 타고

가슴 속을 방황하는

지옥의 실머리여.

 

너를 찾는 파도

물이 들며 출렁이는 머리털

 

고독을 싸고 도는 향수는

권총을 차듯 매섭게 지녀라.

                                                                                                                         - 「개척자」전문

 ‘개척자’란 미개지를 개척하는 사람, 또는 새로운 분야의 길을 여는 사람을 말한다. 물론 미시적인 측면에서 보면 사람은 누구나 다 자기 인생의 개척자가 된다. 쌍둥이도 똑같은 삶을 살 수는 없으므로 각각 새로운 길을 개척하며 산다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그런데 ‘백마를 타고’ ‘말발굽이 땅을 차는 푸른 연기’를 헤치며 거시적인 차원에서 세상을 개척하고 싶었던 소년시인 정성수는 그로부터 50년이 지난 지금, 한국시단에서 그만의 시 세계를 과감하게 개척해 나가고 있다.

  구태의연하고 건조한 시작법에서 벗어나 그만의 독특한 시법을 선보인, ‘세상에서 가장 짧은 시(2)’ <기호 여러분>은 여러 가지 측면에서 한국문학사, 아니 세계문학사에 굵게 한 획을 그었다고 하겠다. 언어 이전의, 혹은 언어를 넘어선 기호로만 되어있는 이 시집은 독자들의 상상력을 무한히 자극한다.

 그렇게 짧은 시들로 이루어진 시집은 아마 세계문학사상 유일무이하지 않을까 싶다. 물론 제대로 된 평가는 후대에서 이루어지겠지만. 시인들이 나이가 들어가면 대체적으로 그 시인의 시도 비슷하게 따라서 늙어(?)간다.

 그런데 정성수 시인에게선 그런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시가 더 파격적으로 공격적(?)으로 변해가고 있다. 하긴 ‘개척자’에게는 퇴행이 허락되지 않을 것이다. 그가 쓴 작품들을 읽어보면 그의 생각은 이미 신(神)의 관점을 넘어서서 우주 속 수많은 별나라의 새로운 시민들과 함께 노니는 듯하다.

 그가 개척해야 할 대상인 ‘서부’는 아마 이 지상을 넘어서 저 우주 속 미개척지인 별세계들일지도 모른다. 그의 시적인 상상력은 ‘개척자’의 외로운 운명을 짊어지고 드넓은 우주 공간 속을 자유롭게 넘나들며 또 다른 세계 속, 시(詩)의 금맥을 찾아 오늘도 끊임없이 전진하고 있다.  개척자적인 그의 삶은 아직도 현재진행형이므로.

 

- <시문학> 7월호(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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