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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평이 있는 신작시- 정성수(丁成秀)의 신작시
2012-05-31 22:30:08
chungpoet

조회:1355
추천:129

16.<비평이 있는 신작시>

경계의 소유권- 정성수(丁成秀)의 신작시

채 수 영(시인. 문학비평가)

 

*정성수(丁成秀) ‘신작시’ 5편

<왜 답장이 오지 않나, 하느님에게선>

정 성 수(丁成秀)

새벽마다 신에게 편지를 씁니다

그는 오늘도 암호 해독 중...!

 

<곡예사 지구인>

돌아갑니다

한평생 외발자전거 타고 지구 위를!

 

<두 개의 눈>

나에게 마지막 남은 것은

두 개의 눈...!

 

<보이지 않는 손>

오래오래 신에게 악수를 청하지만

차디찬 오른손 하나 허공에 떠있네

 

<날개>

날아가네, 날개가 없어도 지구는

추락하네, 날개가 있어도 새는

 

 1. 조건--시는 짧은가?

 요즘 시를 모르는 사람들이 시를 쓰는 경향이 시의 혼란을 야기했다. 그 원인(原因)의 원인(遠因)을 살펴보면 ’70년대부터 몰아친 이른바 민중 소용돌이와 연관이 있다. 다시 말해서 박정희 철권통치의 반항이 문화계 쪽으로 번질 때, 시는 투쟁의 유용한 수단이었다.

 쉽게 말해서 민중문학의 본질은 사설조의 산문이 대세였다면 이의 역사적인 근거는 사설시조에서 파격을 보이기 시작했고, 이어 소설이라는 이야기로 민중들의 답답한 심정을 소화 내지 해소하는 방편이었다.

 물론 판소리도 그런 유형의 줄기로 보면 --문학적인 소양이 부족한 사람들의 넋두리는 자연 긴 사설의 산문적인 형태로 나타났었고, 현대 민중문학의 목록에서 시가 주류를 이룬 것도 기실 이런 전통과 무관한 것이 아니었다.

 주지하는 바 시는 문학의 가장 고급한 형태이면서 응축의 묘미에 각종 비유의 장치를 담아야 비로소 시의 이름을 얻을 수 있었다. 그러나 문학적 소양이 없는 사람들에게 격정의 토로가 행과 연을 끊어 시라는 이름으로 위정자나 자본가를 욕하면서 배설의 쾌감을 누렸던 것이 민중문학의 실체였다.

 그러니 한국 현대 민중문학사는 조악(粗惡)하고 문학적인 가치 부재의 앙상한 몰골로 끝을 고한 불행의 표정이 되고 말았다. 시는 짧음에서 시의 가치는 일단 출발한다.

 그러나 은유와 직유, 더는 역설이나 아이러니, 어조, 퍼소나, 패러디, 상징, 리듬, 이미지 등으로 의미의 숲을 구성하면서 의미의 증폭을 고하는 시는 가급적 짧아야 맛깔스런 시의 본색이 나타난다는 형식 논리는 옳은 일이다.

 정성수(丁成秀)의 최근 시집은 이런 조건에 부합한 《세상에서 가장 짧은 시》(2009.1. 월간문학 발행)와《기호여러분》(2012.1. 월간문학 발행)의 두 권을 읽으면 기존의 의식을 뒤집는 시의 맛을 만나게 된다.

 지금까지 가장 짧은 시는 장 콕토의 ‘너무 길다’ (뱀)이었던 것으로 생각하면 정성수의 시는 그런 관념을 뒤집었기 때문이다.

+

<나는 너의, 너는 나의>

H

<사람과 사람> (시집《기호 여러분》중)

 위의 두 작품은 내용이 기호에 불과하다. 그러나 제목을 읽고 내용인 부호를 살피면 의미의 곁가지를 짐작할 수 있고 또 증폭되는 상상력의 무한한 바다를 유영할 수 있게 된다. +와 H라는 의미가 독자에게 어떤 전달의 메시지가 되는가는 독자의 몫이지 시인의 책무는 아니다.

 오로지 시인이 기호(부호)이든 마침표이든 아니면 띄어쓰기를 없앤다 해서 시가 아니라는 주장은 독자가 알아서 받아들일 일이기 때문이다.

  이상의 <오감도>를 헛소리라고 타매(唾罵)했던 과거의 시 역사 또한 빛나는 사건이었음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인간사는 정답이 없고 오로지 모호한 해설서들이 횡행하는 현상이 펄럭일 뿐이다.

2. 경계의 소유권--신의 영역과 인간의 영역

 인간 중심이냐 신(神) 중심이냐의 구분은 중세 이후 무의미해졌다. 왜냐하면 끝없이 인간 중심의 역사는 지속되어 왔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최종 가치의 문제는 인간 중심의 휴머니즘을 실천하는 일이 중심 과제로 등장한 이후 신과 인간의 관계에 일정한 거리가 형성되었지만 여전히 혼란의 와중(渦中)은 헷갈리고 있음 또한 사실이다.

 지금까지 신들은 인간의 무수한 질문을 받고서도 암호와 같은 대답에 모호한 신호로 혼란의 난폭함을 휘둘렀기 때문이다. 우선 정성수의 신작시 5편을 옮기면서 논지를 출발한다.

새벽마다 신에게 편지를 씁니다

그는 오늘도 암호 해독 중...!

-<왜 답장이 오지 않나, 하느님에게선>

 

돌아갑니다

한평생 외발자전거 타고 지구 위를!

-<곡예사 지구인>

 

나에게 마지막 남은 것은

두 개의 눈...!

-<두 개의 눈>

 

오래오래 신에게 악수를 청하지만

차디찬 오른손 하나 허공에 떠있네

-<보이지 않는 손>

 

날아가네, 날개가 없어도 지구는

추락하네, 날개가 있어도 새는

 

 -<날개> <왜 답장이 오지 않나, 하느님에게선>, <곡예사 지구인>, <두 개의 눈>, <보이지 않는 손>, <날개>의 5편을 접하고 기존의 시적 눈으로 본 독자는 매우 의아한 생각으로 지나칠 것이다.

 그러나 기존의 질서 앞에 도전하는 시적 양상은 당황과 혼란의 충격파가 클수록 시적 성공은 확실하기 때문에 정성수의 시에 눈이 가는 이유가 내장된다.

 종교는 절대의 감옥에서 인간을 빼내려 하기보다는 오히려 감옥에 깊숙이 처넣고 헤어나올 길을 차단하는 것이 속성이다. 이른바 절대 명령형으로 포장하여 끝까지 침묵을 강요하는 종교에 반항의 깃발은 용납되지 않기 때문이다.

 하여 중세기의 신(神) 만능에 항거하여 쓴 소설<가르강튀아 팡타그뤼엘>의 첫 번째 부분은 주인공이 태어나자마자 ‘술이 마시고 싶다’라는 황당한 주장을 한다.

 그러나 그 의미는 신으로부터 인간은 해방하고 싶다는 발언이었으니 술은 곧 엄숙하고 지성적인 신성으로부터 흔들리는 인간의 모습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발언이었고, 주인공이 29세 때 전쟁에서 이긴 공로로 그 부친이 성(城)을 물려주었을 때 그 성 앞에 ‘너 하고 싶은 대로 하라’는 표어를 써 붙였다.

 이는 르네상스의 인간해방 즉 휴머니즘의 발단이 되었음은 시로부터 인간의 해방--자유정신의 발현을 의미한다. 전지전능의 신은 오늘도 오로지 암호를 남발하고 이를 팔아 소득을 올리는 사람들은 여전히 하느님을 열성으로 부르고 있는 모순의 경우는 흔하다.

 이는 마치 실체를 앞에 놓고 신에게 경건(敬虔)한 악수를 청하지만, ‘차디찬 오른 손에 담긴’ 허무처럼 암담하고 흐린 안개로 구원에의 임무가 땀을 흘리지만 침묵의 지속은 더욱 기승을 부리는 현혹--다만 상징의 불빛이 하늘을 점령하는 일이 오늘날 종교와 인간의 대립적인 목청이다. 다시 말해서 해답을 갈구하지만 오로지 암호의 침묵으로 끌고 가는 일에의 대립각이다.

 정성수의 요즘 시는 암호가 아니라 현대인의 모순과 현상 앞에 펼쳐진 암담함을 고발하는 임무를 부여받은 것처럼 인간이 만든 암호를 다시 신에게 보내는 것으로 복수를 시도하는 느낌을 주는 시를 쓴다.

 이런 도발성은 신(神)조차도 망연하게 답답증을 호소할 것이기 때문에 인간의 처지에서는 희열을 갖기에 충분할지 모른다. 너무 농락당한 인간의 복수이기 때문이다.

 <보이지 않는 손>과 <왜 답장이오지 않는가, 하느님에게선>에는 인간의 입장에서 신에게 암호를 해독하라는 재촉에 신은 무슨 대답을 할 것인가를 듣고 싶은 인간의 마음이 발동한다.

 다시 말해서 신의 영역과 인간의 영역 사이에 경계의 소유권을 주장하는 일이 벌어진다. 정성수의 기호(부호)로서의 시는 그런 문제 앞에 지금 제 목청을 발휘하고 있는 것 같다.

 <추락>과 <곡예사 지구인>은 인간의 삶이 어디까지 무엇을 위해 살고 있는가에 의문을 설정하는 길이 보인다. 한 평생 외발자전거를 타고 가지만 그 목적지가 어딘지 그리고 무엇을 위해 땀을 흘리는가의 행동에 의문부호가 펄럭인다.

 ‘돌아갑니다’와 ‘지구 위를’이라는 상관은 인간과 어떤 연계성을 갖고 있는가의 여부 앞에 망연한 호흡이 가파를 뿐 ‘보여주는’ 것으로 인간의 초라함이 ‘보아지는’ 풍경이 될 때 인간의 이성적인 자각이 돋보이게 된다.

 아울러 날개가 있어도 추락하고 또 없어도 추락하는 일이 모두인 상황-- 중력은 무엇이고 물리학의 설명은 무엇인가의 처절한 현상 앞에 인간은 초라한 깃발을 들고 어딘가 무작정 가야하는 일이 숙명으로 살아가는 이유는 오늘도 진행형일 때, 객관의 시점에서 인간의 맹목이 보인다.

 추락은 추락이 아니고 상승은 상승이 아닌 다만 멈추어 있는 것이라는 설명이 결코 틀린 것이라는 백과사전은 모두 백지와 같다. 마치 신이 약속한 것을 믿어야 하는 암담이나 인간이 만든 것들에 의문을 갖는 일이 등가(等價)를 이루고 있다는 존재의 허망에 정성수의 시는 그 틈새를 비집고 들어와 표정을 관리하는 느낌이 요즘의 정신 도학(圖學)인 듯하다.

 다시 말해서 신과 인간 영역의 경계에서 그 영토를 관리하는 시인의 목청이 들린다는 의미--아무도 소유권을 주장한 적이 없는 미답(未踏)의 땅이 곧 정성수의 시적 영토라는 뜻이다.*

 

 

-<대한문학> 여름호(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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