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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으로 보여주세요 이영지
2015-03-08 05:18:55
hananim

■ 이영지(Lee Yeong Ji) 시인(poet)
△경북 영주 출생
△서울문리사범대 국어과, 명지대 대학원 국문과(문학박사). 서울기독대학원(철학박사)
△서울기독대학원 학술원 강의, 명지대 사회교육원 문예창작과 주임교수 역임
△《시조문학》에서 시조, 《창조문학》에서 詩 등단
△《창조문학》편집부국장.《말씀과 문학》편집국장. 한국창조문학가협회 사무국장.
△한국시조시인협회, 한국문인협회 회원
△영예문학교회 담임목사(자비량교회운영)
△한국창조문학대상, 추강시조문학상 수상
△시집『하오의 벨소리』,『행복의 순위』,『행복 행 내 님 네』외 다수
△이론서『한국시조문학론』,『이상 시(李箱詩) 연구』,『시조창작 리듬 론』외 다수
조회:1815
추천:125

 

가슴으로 보여주세요  이영지

해마다 2월이 되면 한국고유의 명절이 있어서 고향을 찾으려 기차표 예매를 하게 되면 행운아가 되는 기분이죠. 그런데 고향에 못가는 사람들의 심정은 그야말로 나는 왜 고향에 못가는가라는 향수병에 결리게 됩니다. 오늘 살펴볼 시편 13편은 처음부터 여호와여 어느 때 까지이니까라고 번역되어 있어서 간절하다 못하여 비통함을 드러내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때로는 상대방이 나를 알아주지 아니하지만 내가 최선을 다하여 상대방을 사랑할 때 답답하고 그리고 자신의 초라함을 느낄 때 내가 언제까지 이러해야 하는가고 자문하게 됩니다.
지금은 2월 명절 전 곧 세밑입니다. 모두들 아련한 고향그리움으로 마음이 풍요로워질 때입니다. 그런데 고향에 못가는 심정을 성경언어에 근거해서 다음과 같이 시작으로 할 수 있습니다.
 
요맘때 쯤이되면 고향이 가고 싶어
어느 때 언제쯤에 고향 땅 밟으리까
어느 때 까지이리까 눈으로도 보리까
 
설날이 내일모레 그리고 한 밤 자면
새싹이 나를 보려 나오려 하라는데
눈으로 그대가슴을 볼 수 있으리이까
 
시편 13편은 영장으로 한 다윗의 시입니다. 이 때 한국말의 민낯으로 연상되는 인도라는 의미의 라므나제아흐의 기본형 나자아곧 한국말 속어 낮짝으로 합니다. 시편 13편은 하나님의 얼굴을 보고 싶어하는 다윗의 간절한 사랑표시의 민낯을 보입니다. 의미는 영원한 향기가 나는 지붕 안으로 들어가고 싶은 거죠. 이 다윗의 고집은 그대로 고집하다, 인도하다의 본뜻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개인의 시라기 보다 여럿이서 같이 부르는 노래가 되는 것이지요. 말하자면 제사 때 향기를 뿌리듯이 예배를 인도하기 위하여 시작되는 교독문이 됩니다.
여효와여 어느 때 까지이니가 나를 영원히 잊으시나이까 주의 얼굴을 나에게 언제까지 숨기시겠나이까로 하는 히브리어 발음은 아드- 아 나 여호와 트스카헨니 나자 아드- 안나 I 타스티르 에트-파네하 밈멘니로 발음됩니다. 처음부터 아드 아 나가 있으면서 반복리듬을 탑니다. 어느때 까지이니까지라고 하는 이 아드어휘가 13편 처음에 놓입니다.
그렇지 않아도 이 아드는 성경에서 아주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증거 증거번역으로 되어 있는 이 낱말은 신명기 64절에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하나인 여호와시니의 큰 글자 증거דע(아드)로 되어 있습니다. 오직 여호와 한 분이심을 성경은 ע󰗫󰚉로 하는데 끝글자 ע(아인·)와 다음의 ד󰖎󰔟(에하드·하나)의 끝글자 ד와 합하여 아드를 만들어 냅니다. 오직 한 분이시다 할 때 이 하나를 강조합니다.
다윗의 자손 예수라고 성경은 말하고 있으니까요. ‘아드는 글자발음 그대로 아들입니다. 눈으로 가슴을 보고 싶어하는 의미입니다.
성경은 이 언어의 중요성을 증거 ד󰘞(아드 · 증거)를 써서 홀로 쓰이지 아니하고 줄 이음표로 ה󰗺(아나·어디로)로 합니다. 아나는 글자 그대로 내가 영원한 뜻인데 발음으 아 나입니다. 바로 나라는 것이지요 성경에서 나는 하나님 밖에 없습니다. 사전에서는 어디로라하고 번역에서는 언제라 하였습니다. 모두 슬픔이 수반된 내용입니다. 따라서 방향을 잃어버린 마음 곧 갈피를 잃어버린 뜻을 성경은 전하고자 하는데 두 번 아드라고 하여 정통적인 성경의 2회 리듬의 의미심장성이 있습니다. 사람 다윗 혼자서 갈바를 잃어버린 뜻이지만 사실은 하나님은 아들과같이 다윗곁에 있는데 다만 눈이 멀어 다윗은 못보는 것이지요, 마음으로 보이지 않는 것이지요. 다윗 마음이 몹시 허둥거리는 모습입니다.
 
어디게세요
어디계세요
맨얼굴을 보여주세요
안절부절 헤메요
갈팡질팡 헤메요
눈으로 가슴을 볼 수 있게 해 주세요
 
내가 나의 영혼에 경영하고 종일토록 마음에 근심하기를 어느때까지 히오며 내 원수가 나를 쳐서 자긍하기를 어느 때까지 하리이까
원수 오예비 알라이글자는 내 원수가라고 번역되었으나 성경글자로 보면 원수란 다름아니라 내가 하나님 같이 되려는 마음으로 무엇이든지 내가 해결하려는 마음이 원수인 적이 됩니다. 하나님은 게속하여 알라라고 전하는데 그것은 허둥거리는 다윗을 하나님이 헤아려 이제 알라는 것입니다. 그 방법을 번제물로 보이게 하시려는데 다윗은 아직도 헤메고 있습니다.
다름 아닌 하나님의 손으로 표시되면서 예수님의 표시 요드가 언어 끝머리에 놓이기 때문입니다. 성경모두 모든 글자에 이 요드를 놓아 하나님이 하나님의 아들을 통하여 주관하심을 드러냅니다. 글자풀이로는 하나님이 사랑하여 주심을 보여주기 위하여 하나님의 아드님이 세상에 내려옴을 암시합니다. 그래서 곧장 다시 이 아드-아나아들 아나로 합니다. 아 나가 들어가면서 아드 아 나가 두 번 되풀이 됩니다. 이 때 아드- 아나 …… 여호와 아드- 아나로 하여 글자그대로 아들 아나 여호와의 아들 아나도 되고 아 나 바로 나라는 의미도 됩니다. 본문번역은 어느때 까지이니까 언제 까지이니까라고 절규하는데 성경문장은 아드 아나입니다. ‘아드는 증거 의미입니다. 증거를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하늘에서부터 땅으로 내려 오는 증거를 보여주시겠다는 것입니다.
줄로 표시된 곧 빗줄기의 시적 형상화입니다. 아드는 하늘에서 내려오는 아들을 말합니다. 다윗은 신의 시로 쓰면서 하나님의 아드님이 하늘에서 내려오시어 마음의 평안을 얻게 해 주심을 나타냅니다. 다윗이 혼자서 괜히 걱정하고 있는 근심 그것은 인간으로는 할 수 없는 절망감 그것입니다.
말씀에 고갈된 자신은 바로 말씀가까이에 다가가지 못하는 것이지요. 이 때 물이 등장하는데 이 날을 요맘으로 합니다. 우리말에 요맘때 쯤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때는 근심이 가득한 야곤 빌레바비때입니다. 근심으로 여긴 바삐입니다. 그러기에 이때를 벗어나기 위하여 하나님께 빌레입니다. 무엇을 위하여 빌겠다는 마음의 의사표시는 다름 아닌 슬픔을 해결하기 위해입니다. 이 슬픔은 야곤인 여기입니다. 우리들이 사는 세상의 슬픔 가득한 삶을 다윗은 벗어나고 싶은 것이지요. 슬픔은 하나님의 손으로 사람인 내가 영원히 은혜 갚는 일을 어떻게 하느냐 가르쳐 주시는 일입니다.성경은 병도 하나님이 주시는 것으로 병으로 하여 하나님을 찾는 마음을 주시기 위함입니다. ‘빌레바비다른 것은 제쳐두고 가장 바쁜 일은 다름 아닌 하나님이 하셔 주시는 일임의 증거로 처음과 나중에 두 번 아드 아나를 아드 아 나로 합니다. 예수님 아니면 안되지요.
 
그래서 다시 두 번 반복의 리듬을 이번에는 눈으로 영원히 보는 일로 해 줍니다. ‘아 내 니 여호와 에 나의 구두법으로 보여줍니다. ‘아 내니 여호와 에 나입니다. 바로 여호와께서 자신의 아들을 통하여 하시고자 하시는 장본인임을 드러냅니다.
주인공은 다름 아닌 아드 아 나입니다. ‘아들 아나도 되고 아들 안아도 되고 아들 아 나도 됩니다. 문제해결은 바로 아들에게 있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의 손을 말하는 것입니다.
 
 
아 내니 여호와에 나아 내니바로 여호와 이때는 생각을 해버렸다하비타입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해결방법의 구체성을 드러냅니다. 경상북도 영주 발음에 하비타는 사투리가 있습니다.
성경은 우리 인생에서 가장 무서웁고 두려운 것은 사망이며 바로 땅 속에 묻히는 일임을 표시하면서 원수 오예비로 합니다. 나를 제일로 여기는 이 이기적인 마음이 원수입니다. 바로 이길야콜기본형은 본문 예칼레티브로 합니다. 이길려 하면 내가 하나님보다 더 낫다는 마음을 버리는 일입니다. 시인의 마음을 하나님께로 열지 않고 자신이 중심을 잡으려는 것 그 자체가 내게 있어서 원수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구원이신 자의 이름을 6절에서 확실히 드러냅니다. 예수 곧 구원의 뜻인 예수아를 기본형으로 비수아테아입니다. 구원 안에 들어가는 일은, 그리고 언제까지이니까가 해결되는 일은, 그리고 어느때까지이까가 종결되는 일은 구원 안에 들어가는 일입니다. 그 방법은 예수님을 통해서입니다. 성경은 여호와를 위하여라 하였습니다. 바로 라여호와입니다. 앞의 는 목적격으로 성경은 창세기 1장부터 예수님을 증명하기 위하여 엘로힘을 33(1:1-2:3)이나 합니다.
따라서 지금까지 보아온 바는 사람이 이 세상에서 이기면서 사는 방법은 하나님의 형상인 거룩한 모습으로 태어난 우리들의 아름다운 생애를 위해 마음속에 있는 내가 제일이라는 생각을 버리고 절대자를 섬기면서 겸손하게 살게 되면 하나님 얼굴을 매일 보는 일이 된다는 것입니다. 이 세상을 이기게 된다입니다. 하나님이 마음에 없는 사람은 이 세상에 대한 두려움과 고민으로 살아갈 수 없습니다. 그렇게 되면 무질서와 타락과 우울한 일생을 살게 됩니다. 자신이 모든 일을 해결하는 마음이 곧 모두를 적으로 돌리어 나에게 원수가 되는 일입니다. 대적을 마음에 두면 이 세상을 살아 갈 수 없습니다.
다윗은 예배형식에 따른 절차로서 노래로 시를 지어 부르며 하나님을 마음속에 두어 즐거웁게 이 세상을 살아갈 것을 시로서 예배 인도하고 있습니다.
 
2월의 요맘때야
설날의 요맘때야
고향에 두고나온 가슴이 보고싶어
어느 때 가보면 되나 두 눈으로 보려면
 
새싹이 날 보네요
가슴을 내미네요
아들을 안아보라
두 번씩 곱빼기로
이파리 쭈우욱 나온 고향땅에 왔네요
 
맨얼굴 들이밀어
민낯을 부비대어
갈팡을 털어내야
질팡을 빠져나야
꽃잎이 되기로 하는 아들 나와 있네요
 
사랑아 사랑아 79
여호와여 어느때까지이니까 - 시편 13
- 가슴으로 보여주세요(20150208 李英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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