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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동화>그림자돌멩이 2
2008-03-03 10:38:03
sionsira

조회:2491
추천:208

“왜 또? 씻으라고 해서 씻었잖아. 그러면 됐지. 또 뭐가 문제인데?”

“뭐가 문제인지 모르겠어? 뒤돌아서 봐봐. 네가 벗어놓은 옷을 말이야.”

나는 고개만 겨우 돌렸다. 욕실 문 앞에 벗어놓은 바지와 속옷, 윗도리가 뱀 허물벗어놓은 것처럼 흉한 모습으로 놓여 있었다.

“어이쿠!”

나는 얼른 내 옷을 집어 들고 바지와 웃옷은 개어서 옷장에 넣고, 양말과 속옷은 세탁기에 넣었다.

“이제 됐냐?”

“그래. 잘했어.”

“정말? 푸하하하.”

나는 이빨까지 허옇게 드러낸 채 환하게 웃다말고 표정을 바꾸었다.

세상에 돌멩이한테 칭찬 듣고 좋아하는 한심한 녀석이라니. 정말 자존심이 상했다.

목욕을 하고 나자 배가 고팠다.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요리는 계란프라이와 라면이었다.

김치와 곁들여 먹는 라면에 계란하나 탁 풀면 최고의 간식이 되었다.

나는 라면을 맛있게 먹고 컴퓨터오락을 하기 위해 내 방으로 향했다.

“또 뭣 때문에 내 발목을 잡는 거야?”

나는 주방 앞에서 떨어지지 않는 발목을 부여잡고 볼멘소리를 했다.

“뒤를 돌아봐!”

나는 씩씩 거리면서 뒤돌아 식탁을 보았다.

방금 전에 내가 먹고 난 라면그릇과 뚜껑열린 김치 통, 군데군데 흘려 얼룩진 국물찌꺼기와 입을 닦고 버린 휴지가 너저분하게 널려있었다.

“그래서 어쩌라고?”

“휴지는 휴지통에, 반찬뚜껑은 닫아서 냉장고에, 빈 그릇은 개수통에 담가 놓아야하지 않겠어?”

“너 도대체 뭐야? 돌멩이주제에 엄마노릇까지 하려는 거야? 뭐야?!”

“그렇게 흥분하지 마! 자유롭게 움직이고 싶으면 군소리 하지 말고 얼른 해.”

“한다 해! 내가 더러워서도 한다고!”

나는 버럭 화를 내면서 김치 통에 뚜껑을 닫고 냉장고에 넣은 후 먹고 난 빈 그릇은 개수통에 담가놓았다. 그리고 행주를 꼭 짜서 식탁 위를 닦았다.

그러고 나니 보기가 좋았다. 이상하게 쑥스러운 느낌이 들었다.

나는 돌멩이가 내 발목을 또 잡아끌기 전에 욕실로 향해 알아서 양치질을 했다.

텁텁했던 입안이 상쾌해졌다.

나는 책상에 앉아 돌멩이를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생긴 것은 평범한 돌멩이일 뿐인데 왜 자꾸 내 발목을 잡고 안 놓아주는지 궁금했다.

“넌 도대체 뭐냐? 야, 돌멩이! 입이 있으면 말 좀 해 보시지? 넌 도대체 누구냐?”

“난 왕자야!”

“킥킥킥! 니가 왕자면 나는 슈퍼맨이다. 지나가는 개가 웃겠다. 킥킥킥!”

“맞다니깐, 난 그림자나라의 왕자라고! 그런데 지금 벌을 받고 있느라 돌멩이가 된 거야.”

“그림자나라의 왕자? 그러면 넌 누구의 그림자인데?”

“바로 너! 너의 그림자.”

나는 손바닥으로 이마를 탁하고 쳤다.

“웃기고 있어! 내 그림자라니. 내 그림자는 내 몸에 붙어 있지 떨어져서 돌멩이가 된다는 게 말이 되니?”

나는 어의가 없다는 듯 야지랑을 떨었다.

“너의 나쁜 습관 때문이라고. 내 말 똑똑히 들어. 너의 그림자였던 내가 너의 나쁜 습관 때문에 이 사람 저 사람 발길에 차이는 돌멩이가 된 거라고. 그림자가 무슨 뜻인지 알고 있니? 네가 이 사람 저 사람 발길에 차이는 돌멩이처럼 되지 않고, 내가 제자리로 돌아가려면 너의 나쁜 습관을 바른 습관으로 바꾸어놓아야 한다고.”

돌멩이의 목소리는 진지했다.

나는 키드득 거리다말고 심각한 표정으로 돌멩이를 쏘아보았다.

참으로 묘한 일이었다.

꿈이라면 돌멩이가 말을 한다고 하겠지만 이건 엄연히 현실이다.

갑자기 가슴 속이 쏴한 느낌이 났다.

내 나쁜 습관 때문에 내 그림자가 벌을 받고 있다니! 정말 믿어야할지 말아야 할지 머릿속이 복잡했다.

“일단 책상정리를 하고 공부를 시작하자. 주변이 정리정돈이 잘 되어야 집중이 잘 되거든.”

돌멩이는 회초리만 안 들었지 무서운 호랑이 선생님이었다.

내 책상은 폭탄 맞은 자리처럼 난장판이었다.

예전에는 지저분하다는 생각조차 들지 않았던 책상 위가 유난히 눈에 거슬렸다.

난 어디부터 손을 대야 할지 몰라 망설이고 있었다.

“난 어떻게 정리정돈을 해야 할지 모른단 말이야.”

나는 터지기 직전의 물 풍선 같은 얼굴로 울먹거렸다.

“교과서는 교과서대로 꽂아놓고, 공책은 공책대로 분류를 해서 책꽂이에 꽂도록 해. 학교 준비물은 서랍에 종류별로 정리해 놓으면 허둥지둥 찾지 않아도 되잖아.”

돌멩이는 또박또박 침착하게 말도 잘했다.

나는 투덜거리면서 책상정리를 했다.

종류별로 정리를 하고 책상 위를 말끔히 치우고 나니 마음이 한결 가벼운 느낌이 들었다.

바닥에 나뒹구는 휴지와 연필, 지우개를 다시 주워 휴지는 휴지통에 버리고, 지우개와 연필은 서랍장에 분류해서 넣어두었다.

알림장을 펼쳐 준비물을 챙겨 책가방에 넣어두고 숙제부터 했다.

이상하게 집중이 잘 되었다.

머릿속에 글자들이 쏙쏙 들어와 제자리를 잡는 듯했다.

돌멩이는 무릎깍지를 낀 채 말끄러미 공부하는 내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돌멩이는 졸리지도 않는 모양이었다.

숙제를 다 하고 책을 덮는 순간 가슴 속에서 알 수 없는 시원한 바람이 부는 듯했다. 목욕했을 때처럼 가뿐하고 상쾌했다.

책가방 속에 숙제한 것을 챙겨놓고 나니 컴퓨터오락보다는 책이 읽고 싶어졌다.

신기한 일이었다.

복잡하고 어수선했던 머릿속이 말끔하게 정리정돈이 되어가는 느낌이었다.

불과 하루 전만 해도 학교 갔다 오자마자 씻지도 않고 컴퓨터오락에 빠져 있었고, 그때마다 머리가 무겁고 찝찝한 기분에 사로잡혀 짜증이 났었다.

엄마가 오시면 너저분한 식탁주변을 치우느라 잔소리가 끊이지 않았고, 방청소와 설거지를 하면서도 오락에 너무 빠져 있는 나를 나무라기 일쑤였다.

그 잔소리가 듣기 싫어 나는 공부하는 척하면서 몰래몰래 게임을 했고, 그러다가 잠들면 다음날은 퉁퉁 부은 눈으로 늦잠자기 일쑤였다.

씻는 둥 마는 둥, 밥은 먹는 둥 마는 둥 허겁지겁 책가방을 챙겨 나가기 바빴고, 가다보면 꼭 빼먹은 준비물과 다 못한 숙제 때문에 조마조마하게 학교수업을 들어야 했었다.

밤늦게 컴퓨터오락에 빠져 있다 부족한 잠은 수업시간에 보충했었는데 그때마다 선생님의 출석부가 잠을 쫓아냈었다.

그런 내 나쁜 습관들이 주마등처럼 내 머릿속에서 지나쳐갔다.

순간 부끄럽고 자존심도 상했다.

“내가 이렇게 한심한 놈이었어?”

“지금까지는 한심한 놈이었지만 앞으로는 훌륭한 사람이 될 수 있는 기질이 있어.”

돌멩이가 나를 격려했다.

나는 책상 앞에 앉아 주변을 둘러보았다.

어느새 말끔하게 정리 정돈된 책상과 책꽂이, 깔끔한 바닥, 공부가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고 있다는 나의 변화가 새삼스러웠다.

나는 책상머리에 나의 결심을 적어서 붙여놓았다.

‘좋은 습관을 갖자!’ 라고.

엄마와 아빠가 퇴근해서 들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돌멩이의 눈치를 보면서 현관에 나가서 부모님을 맞이했다.

“엄마 아빠 오셨어요?”

“우리 제하가 웬일이니? 인사를 다하고? 내일은 서쪽에서 해가 뜨려나?”

“그러게 말이에요. 여보! 현관에 신발정리 제하가 한 거니?”

“네. 제가 했어요.”

엄마는 옷을 갈아입고 씻은 후 주방에 가면서 또 놀라워하는 소리가 들렸다.

아빠가 내 방에 들어와서 공부하고 있는 내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우리 제하가 이제야 철이 드는가 보구나! 알아서 척척 공부도 하고 말이야.”

“앞으로 열심히 공부할 거예요.”

“그래. 우리 제하는 마음만 먹으면 잘 할 수 있는 아이지. 아빠는 제하를 믿는다. 열심히 하렴.”

내가 아빠한테 칭찬 들어 본 게 얼마만인지 모르겠다.

아빠가 퇴근해서 올 때마다 나는 컴퓨터오락에 흠뻑 빠져있었고, 그때마다 아빠는 나를 야단쳤다. 그러면 화가 나서 반항하는 심정으로 더 오락에 몰두하기도 했었다.

그런데 아빠가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격려해 주니 날아갈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렇게 조잘조잘 잘도 말하던 돌멩이가 말 한마디 않고 얌전히 책상머리에 앉아 있었다.

“야! 말 좀 해봐. 아까는 그렇게 심하게 잔소리하더니 왜 입도 뻥긋 안 하냐? 나 아빠한테 칭찬 들었단 말이야. 어서 말해. 말하라고.”

나는 이리 툭 저리 툭 돌멩이를 치면서 재우쳤다.

그런데 돌멩이는 그냥 평범한 돌멩이일 뿐이었다.

잠자리에 누워 천장을 쳐다보니 뿌듯한 기분이 들었다.

숙제도 다 했고, 예습복습도 마쳤고, 학교에 가져갈 준비물도 미리 챙겨놓았고, 내일 입을 옷도 책상위에 가지런히 개어 두었다.

엄마아빠의 칭찬을 듣고 나니 나도 이제 잘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나는 그날 밤 행복한 꿈을 꾸었다.

햇귀가 내 방 창문으로 쏟아졌다.

나는 일찍 일어나 돌멩이부터 쳐다보았다.

또 무슨 잔소리를 하면서 내 발목을 잡아끌지 모르기 때문에 알아서 욕실로 들어가 씻고 나왔다.

엄마는 아침식탁을 차리고 있었고, 아빠는 출근준비를 하고 있었다.

엄마 아빠와 함께 아침식탁에 앉은 것도 얼마만인지 모르겠다.

나는 늘 뒤쳐져서 엄마 아빠가 밥을 다 먹고 난 뒤에 배시시 일어나 대충 씻고 대충 먹고 갔기 때문이었다.

오늘은 수업시간에 졸지도 않았다.

선생님의 말씀이 귀에 쏙쏙 들어왔다.

쉬는 시간에 나는 주머니에 얌전히 앉아 있는 돌멩이를 만지작거리면서 물었다.

“나 잘했지?”

“그래. 그렇게 좋은 습관으로 생활하다보면 넌 반드시 훌륭한 사람이 될 거야.”

“푸하하하!”

나는 기분이 좋아 크게 웃었다.

아이들이 나를 쳐다보았다.

나는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작심삼일이 될까봐 난 늘 돌멩이를 주머니에 넣고 다녔다.

마음이 헤이해지고 나쁜 습관이 불쑥불쑥 되살아날 때마다 나의 그림자인 돌멩이를 만지작거리며 스스로에게 채근을 가했다.

처음에는 마지못해 하던 습관들이 어느새 몸에 익어 바른생활의 어린이로 바뀌었다.

2학기가 끝나갈 무렵 나는 착한어린이상을 받게 되었다.

가장 먼저 나의 그림자 돌멩이에게 상을 보여주었다.

“나 잘했지?”

“응. 난 처음부터 널 믿었어. 나쁜 습관만 고치면 훌륭한 어린이가 되리라고 말이야.”

나는 어깨춤을 추면서 집으로 돌아왔다.

바닥에 나뒹굴며 이리저리 발에 밟히는 돌멩이들을 보면서 생각했다.

‘저 돌멩이는 누구의 그림자일까?’

난 내가 앉았던 자리, 내가 지나친 곳은 꼭 다시 한 번 뒤돌아보면서 점검을 한다.

혹시 빠트린 것은 없는지, 지나온 자리가 지저분하지는 않는지 하고 말이다.

좋은 습관을 갖게 된 이후로 철모가 머리를 짓누르고, 쇳덩어리로 만든 가방을 둘러맨 것 같이 무겁던 몸과 마음이 새털처럼 가벼워졌다.

지금은 겨드랑이에 날개가 달린 듯 학교 오가는 길이 가볍고 즐겁기만 하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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