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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시인가 좋은 산문인가- 정진규, 신경림, 김춘랑의 시
2012-03-07 07:05:55
chungpoet

조회:1805
추천:132

<평론>

오늘의 한국시 (1)

좋은 ‘시’인가, 좋은 ‘산문’인가- 정진규, 신경림, 김춘랑의 시

정 성 수(丁成秀)

 

 ‘현대시’에는 두말할 것도 없이 그 유형(장르)의 형식상 ‘자유시’, ‘산문시’ ‘정형시’ 세 종류가 있다.  ‘자유시’는 문자 그대로 형식에 구애받는 일이 없이 시인 자신이 쓰고자 하는 작품의 소재나 주제에 따라 그때그때 그에 알맞은 자유로운 형식으로 써나가는 시이고, ‘산문시’는 시의 연이나 행의 구별 없이 일반 산문처럼 줄글을 잇대어서 써나가는 형식이다.

 ‘정형시’는 이름 그대로 형식이 정해져 있는 시, 즉 일정한 틀을 갖춘 시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시조>가 그 대표적인 예이다. 그러나 여러분도 다 잘 아시다시피 ‘산문시’는 다만 ‘자유시’처럼 연이나 행의 구별이 없을 뿐이지 어디까지나 ‘시’(운문)다.

 한 마디로 말해 ‘산문’이 아니다.  그러니까 ‘산문시’는 그저 시의 형태만 산문 형식을 빌어왔을 뿐 표현에 있어서의 상징, 은유를 비롯한 각종 비유, 이미지, 압축, 내재율 등 시가 갖추어야 할 것들은 두루 다 갖춘, 어디까지나 한 편의 ‘시’이다.

 그런데 대체 어찌된 노릇인지 요즈음 ‘한국시단’에서는 ‘산문시’라고 명명하기가 대단히 난처한 ‘산문’을 ‘시’라는 이름으로 발표하는 사례가 너무나 허다하다.  그 예가 하도 많아서 일일이 거론하기조차 거의 불가능할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이것은 ‘시’를 더욱 시답게 승화시켜야 할 시인들이 스스로 ‘시’를 죽이는 일종의 자살 행위이다.  시는 예로부터 동서양을 막론하고 향기 그윽한 ‘문학의 꽃’, ‘언어의 꽃’이 아닌가.

 그 ‘살아있는 꽃(생화)’을 ‘죽어있는 꽃(조화)’으로 세상에 내놓는 시인들이 적지 않다는 것은 이 땅의 ‘시’를 위해서, 지구촌의 문학을 위해서, 또는 국내외 독자들을 위해서 결코 바람직한 일이라고 말할 수 없다.

 형식이 어떻게 다양화되든 압축을 생명으로 하는 ‘시’는 너무나도 당연히 산문이 아닌 시다워야 하고 시보다 여러 가지로 자유로운 진술 형식인 ‘산문’은 산문다워야 하지 않을까.

 한 마디로 말해서 ‘물’은 물다워야 ‘생명수’로서의 역할을 다할 수 있지 않겠는가.  우선 편의상 ‘산문’이 아닌 ‘산문시’의 예를 하나 들어보자.

봉황수(鳳凰愁)

조지훈(趙芝薰)

 

벌레 먹은 두리 기둥, 빛 낡은 단청(丹靑), 풍경(風磬) 소리 날러

간 추녀 끝에는 산새도 비둘기도 둥주리를 마구 쳤다. 큰 나라 섬

기다 거미줄 친 옥좌(玉座) 위엔 여의주(如意珠) 희롱하는 쌍룡(雙

龍) 대신에 두 마리 봉황새를 틀어 올렸다. 어느 땐들 봉황이 울

었으랴만, 푸르른 하늘 밑 추석(甃石)을 밟고 가는 나의 그림자. 

패옥(佩玉) 소리도 없었다. 품석(品石) 옆에서 정일품(正一品), 종

구품(從九品) 어느 줄에도 나의 몸 둘 곳은 바이 없었다.  눈물이

속된 줄을 모를양이면 봉황새야 구천(九天)에 호곡(呼哭)하리라.

                                                                                                       -『文章(문장)』2월호(1940년)

 

 이 시는 ‘청록파’ 중 한 사람인 조지훈 시인이 8.15해방 전인 일제시대 당시의 문예지『文章(문장)』에 추천된 세 작품들 중의 한 편이다.  이 시를 추천한 기성시인은 시(노래)「향수」로 세상에 널리 알려진 정지용(鄭芝溶) 시인이다.

 이 작품은 대한민국의 일제 식민지 시대, 다시 말하면 조국을 잃어 ‘대한제국(일본의 조선 총독이 와서 다스리기 전까지 우리나라는 지금처럼 주권재민의 민주국가가 아니라 왕정시대)’의 주인(황제, 왕)과 신하(이 땅의 국민)들조차 잃어버린 허허로운 고궁을 돌아보면서 나라 잃은 겨레의 슬픔과 한, 쓰라림과 울분을 적절한 절제의 미덕으로 표현한 작품으로서 그 나름의 역사의식과 현실의식이 화자의 지사적(志士的) 면모와 함께 잘 드러난 ‘산문시’이다.

 시 전체에서 풍기는 주제와 표현의 중량감과 품격이 그야말로 예사롭지 않다. 어느 누가 이 시를 ‘산문’이라고 부를 것인가.  ‘벌레 먹은 두리기둥’,  ‘빛 낡은 단청(丹靑)’,  ‘풍경(風磬) 소리 날러간 추녀 끝’  등이 상징하는 조국의 멸망,  ‘산새’와 ‘비둘기’로 상징되는 외세의 침략,  ‘큰 나라 섬기다 거미줄친’이 표현하는 중국에 대한 사대주의와 조국 상실,  ‘쌍룡’이 비유하는 강대국, ‘ 봉황새’가 비유하는 약소국 ‘조선’...! ‘

 푸르른 하늘 밑 추석(甃石)을 밟고 가는 나의 그림자’가 상징하는 나라(주권) 잃은 자의 쓸쓸함과 고독과 비애.  ‘어느 줄에도 나의 몸 둘 곳은 바이 없었다.’가 표현하는 모든 것을 빼앗긴 민족의 비극적 현실...! ‘눈물이 속된 줄을 모를 양이면 봉황새야 구천(九天)에 호곡(呼哭)하리라.’가 표현하는 조국을 잃은 겨레의 한 맺힌 ‘통곡’...!

 시 한 구절, 한 구절이 지극히 자연스러우면서도 정교한 시적 장치로 철저하게 직조돼 있다.  일반적 산문성이 비집고 들어갈 만한 빈틈이 전혀 없다.  장중미를 지닌 잔잔한 내재율도 시의 운율로서 전혀 손색이 없다.

 ‘조국의 상실’이라는 무거운 주제를 표현하는 시적 효과를 위해 편의상 산문적 형식을 빌려왔지만 한 편의 ‘서정시’로서 작은 하자조차 허용하지 않는다. 말하자면 이런 작품이 바로 ‘산문’이 아닌 ‘산문시’가 아니겠는가. 그러면 다음 ‘산문시’를 살펴보자.

律呂集(율려집) 61

- 미이라

정 진 규

 

천 년 썩지 않은 미이라를 두고 썩지 않았음을 찬탄하는 사람들은 썩었어야 정상이라는 정

답을 내고 싶은 거겠지만 앞으로 천 년 동안 욕망의 날내가 두고두고 진동할 사람들이다.

썩지 않은 사람들이다 다만 사랑은 다름다 천 년 동안 썩지 않을 미이라로 네게 남겠노라고

뻔한 거짓말을 한 바 있다 지우려 했으나 지워지지 않았다 사랑은 본래 디딜 가장자리가 없

었던 것이니 거짓말이 常習상습이다 사랑은

 

 이 시는 일반적 ‘자유시’와 같은 연과 행의 구별이 없을 뿐만 아니라 산문과 똑같은 글줄 로 쓴 형식상의 ‘산문시’이다.  그러나 이 짧은 글을 ‘산문시’, 즉 ‘시’라고 이름 붙이기엔 글 전체의 표현이 너무나 ‘산문’적이지 않은가.

 시는 여러분이 잘 아시다시피 각종 비유와 상징, 심상(이미지)과 운율(내재율이나 외형률) 등이 적절히 잘 조화되어야 하는 가장 압축된 문학의 유형, 즉 문자 표현의 극치인 언어예술이 아닌가.

 위의 시를 보면 두 가지 내용을 담고 있다.  그 가운데 하나는 ‘천 년 썩지 않은 미이라’ 이야기이고 나머지 하나는 ‘사랑’ 이야기다.  글 전체의 내용을 간단히 줄여서 말하자면 ‘천 년 묵은 미이라’는 존재하지만 ‘천 년 동안 썩지 않을 미이라로 네게 남겠노라고’한 사랑 고백은 ‘常習상습’적인 ‘거짓말’이라는 이야기다.

 그러나 그 내용이 어찌되었든 ‘천 년’이라는 시간을 매개체로 한 ‘미이라’와 ‘사랑’의 대비법에 아무런 시적 설득력이 없다.  그만큼 시적 장치가 ‘비시적(非詩的)’이라는 뜻이다.

 이 시에 ‘수필’이나 ‘단상’이라는 ‘산문’ 종류의 이름을 붙여놓아도 문학적 유형상 아무런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다.  ‘산문’도 이 정도의 표현이라면 예나 지금이나 다반사가 아닌가.  시처럼 문장을 아름답게, 또는 시적으로 표현한 ‘소설’이나 ‘수필’ 문장은 이 지구상에 얼마든지 존재한다.

 그러므로 당연히 ‘시’는 그것이 ‘자유시’이든 ‘산문시’이든 ‘정형시’이든 어디까지나 ‘시’다워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 글을 감히 ‘시’라고 일컬을 수 없다.

 시인 자신이 시라고 명명하기 어려운 ‘산문’을 ‘시’라고 발표하는 것은 시에 대한 일종의 자기 모독이다. ‘실험시’와 ‘산문’은 그 성격이나 차원이 전혀 다르다.

 ‘시’가 아닌 ‘산문’이 수많은 문예지나 시집을 통해서 ‘산문시’라는 이름으로 세상에 무수히 떠도는 것처럼 ‘자유시’라는 형식으로 발표된 시들 중에서도 ‘시’ 아닌 ‘산문’은 이 땅에 부지기수로 넘쳐난다.  그 중 하나의 예를 들어보자.

동해바다

신 경 림

 

친구가 원수보다 미워지는 날이 많다.

티끌만한 잘못이 맷방석만하게

동산만하게 커보이는 때가 많다.

그래서 세상이 어지러울수록

남에게 엄격해지고 내게는 너그러워지나 보다.

돌처럼 잘아지고 굳어지나 보다.

 

멀리 동해바다를 내려다보며 생각한다.

널따란 바다처럼 너그러워질 수는 없을까,

깊고 짙푸른 바다처럼.

감싸고 끌어안고 받아들일 수는 없을까,

스스로는 억센 파도로 다스리면서

제 몸은 맵고 모진 매로 채찍질하면서.

 

 2연 12행으로 이루어진 ‘자유시’ 형식의 이 짧은 글도 ‘산문시’ 형식을 빌린 정진규의 ‘미이라’처럼 ‘시’라고 명명하기가 대단히 난처하다. ‘친구’와 ‘동해바다’와 ‘나’를 등장인물로 하여 사람의 ‘너그러움’을 주제로 이야기한 이 짧은 글은 굳이 ‘시’처럼 적절한 해설이나 설명이 필요하지 않다.  이미 이 글 스스로 해설이나 설명조차 모두 다 해버렸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상징이니, 은유니, 이미지니, 운율이니, 압축이니 등등 시에 관한 얘기를 아예 꺼낼 필요조차 없게 되지 않았는가.  따라서 신경림의 위의 글「동해바다」는 ‘시’라고 지칭할 수 없는 그냥 이해하기 쉬운 ‘산문’의 한 토막일 뿐이다.

 이 글을 ‘산문’의 일종인 ‘수필’이라고 해도 상관없고 ‘단상’이라고 해도 상관없고 심지어 ‘일기’의 한 부분이라고 해도 문학적으로 아무런 문제가 없다.

 한 사람의 독자로서 아무리 좋게 보려 해도 한 편의 ‘시’가 아닌 하나의 ‘평범한 산문’에 불과하다.  그렇다고 주제가 특별히 신선한 것도 아니고 소재(제재)가 특수한 것도 아니다.  다음엔 ‘정형시(시조)’의 형식을 빌린 글을 한 편 살펴보기로 하자.

작은 행복론

김 춘 랑

 

무심코 다짐했던 말 한마디 지중(至重)함에

천 길의 벼랑 위에서 두렴 없이 뛰어 내릴

진실로 용기 있는 벗 그 하나가 있다 하면,

 

아무리 작은 아픔이라도 백성들의 것이라면

이 일은 내 큰 탓이라고 크게 말할 수 있는

선택된 백성 중에 백성인 왕(王)하나가 있다 하면,

 

떠날 때 꼭 오리라던 맹서를 굳게 믿어

그 많은 고독한 밤을 혼자 울며 지새우고

센 카락 고웁게 빗은 빈처(貧妻)하나 있다 하면,

 

 이 짧은 글은 형식상 ‘정형시(연시조)’이다.  잘 아시다시피 ‘시조’는 우리의 전통적이고 대표적인 ‘정형시’이다.  위의 글「작은 행복론」은 화자가 ‘친구’와 ‘왕(통치자)’과 ‘빈처(가난한 아내)’를 등장시켜 친구로서의 신의와 용기, 국민을 향한 통치자(왕, 대통령로서의 정신 자세, 부부의 신뢰와 사랑을 이야기하고 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이 짧은 글은 ‘시’라고 이름 붙이기 힘든, 제목 자체가 시사하는 바와 같이 그야말로 ‘작은 행복’에 대한 화자의 ‘행복론’을 ‘산문’과 다름없이 직설적으로 진술하고 있을 뿐이다.

 여러 가지 시적 장치나 기교, 상징이나 은유를 통한 압축, 또는 운율의 묘미조차 없다.  표면적으로 ‘정형시’의 옷만 걸치고 있을 뿐이다.  그 때문에 독자들은 아무런 시적 이해의 부담이나 감동, 신선한 충격 없이 이 글을 친절한 설명 그대로 짧은 ‘산문’을 읽듯이 글의 순서대로 따라가면서 그저 쉽고 편안하게 그 내용을 이해하기만 하면 된다.

 따라서 위의 글 역시 표현상 ‘산문’의 일종인 ‘수필’이나 ‘단상’이라고 명명해도 아무런 문학적 문제나 하자가 발생하지 않는다.  이번엔 ‘시’라는 이름의 산문이 아닌 실제 ‘산문(수필)’을 하나 살펴보자.

 수필은 청자(靑瓷) 연적이다.  수필은 난(蘭)이요, 학(鶴)이요, 청초하고 몸맵시 날렵한 여인이다.  수필은 그 여인이 걸어가는 숲속으로 난 평탄하고 고요한 길이다.  수필은 가로수 늘어진 페이브먼트가 될 수도 있다.

                                                                                                                                        - 피천득「수필」부분

 

 이 글은 세상에 널리 알려진 피천득의「수필」이라는 제목의 ‘수필’이다.  ‘수필’이라는 문학 유형을 ‘수필’로 써내려간 이 글을 보면 ‘산문’인 이 글이 얼마나 ‘시’적인가를 알 수 있을 것이다.

 일단 ‘수필은 청자(靑瓷) 연적’이라고 은유법을 쓴 이 첫 대목은 그야말로 하나의 싯귀절로서 조금도 손색이 없다.  시의 특징 중의 하나가 사물의 은유화이기 때문이다.

 그 다음 ‘수필은 난(蘭)이요, 학(鶴)이요, 청초하고 몸맵시 날렵한 여인’이라고 표현한 글귀 역시 싯귀절과 다름이 없다.  ‘수필’을 ‘난’, ‘학’, ‘여인’으로, 즉 식물의 하나로, 새의 하나로, 사람의 하나로 비유(은유, 또는 의인화)했기 때문이다.

 ‘수필은 그 여인이 걸어가는 숲속으로 난 평탄하고 고요한 길’,  ‘수필은 가로수 늘어진 페이브먼트’ 등도 모두 다 수필의 ‘은유적 표현’,  즉 ‘시’적 표현이다.

 그렇다면 이 글은 한 마디로 말해 ‘시로 쓴 수필론’이 된다.  즉 이 부분만 본다면 위의 글「수필」은 ‘수필’이 아니라 한 편의 ‘시’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산문시’이다.

 ‘시’라는 이름으로 발표된 정진규의「미이라」나 신경림의「동해바다」나 김춘랑의 「작은 행복론」보다 피천득의 ‘수필’이라는 이름으로 발표된 ‘산문(수필)’이 더욱 ‘시’에 가깝다는 것은 문자 그대로 역설적이면서도 비극적이다.

 시의 생명은 여러 가지 시적 방법을 동원해서 압축시킨 결과로서의 ‘감동’이나 ‘신선한 충격’에 있다.  적어도 ‘좋은 시’는 ‘감동’쪽이거나 ‘신선한 충격’ 그 어느 한 쪽에 서 있거나 또는 두 가지가 적절히 조화된 작품이라고 말할 수 있다.

 시가 아름답고 감동적이고 충격적인 것은 시라는 문학 유형이 지니고 있는 그 다양한 시적 장치들 때문이다.  그런데 그런 시적 장치와 긴장과 압축을 다 털어내 버리고 산문처럼 직설적 진술로 그냥 쉽게 풀어서 써버리고 만다면 그런 글은 이미 스스로 ‘시’이기를 포기한 것이나 다름없다.

 그것은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일종의 자폭 행위이다.  ‘쉬운 시’와 ‘산문’은 근본적으로 다른 것이다.  그렇다면 그런 시 아닌 짧은 ‘산문’에 ‘시’라는 ‘위대한 영혼(!)’의 이름을 붙여도 좋은 것일까. 

  아마도 그래서는 안 될 것이다.  그런 시 아닌 글은 마땅히 시신의 나라에서 추방돼야 하지 않겠는가.  그런데 오늘날의 ‘한국시’는 어떠한가.

 물론 시다운 ‘좋은 시’들도 적지 않지만 산문, 또는 지나치게 산문화된 시, 혹은 난삽한 표현의 나열이나 불필요한 요설, 무절제한 심상의 미숙한 표현 등으로 가득 찬 너무나 비시적인 시들이 거침없이 난무한다.

 ‘시’의 이런 무차별 난타 같은 비시적 경향을 현대시의 자연스러운 변화처럼 당연시하거나 그것이 마치 새로운 현대적 실험시인 양 착각(?)하는 것은 이 나라의 ‘시다운 좋은 시’를 위해서 매우 슬프고 불행하고 쓸쓸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독자들이 시에서 원하는 것은 어떤 사실이나 사물에 대한 ‘이해’나 지식이 아니라 그것을 예술화한 작품에서 우러나오는 ‘하나의 감동’이다. 그리고 일반 독자들이 쉽게 생각하지 못하는 여러 가지 사물이나 삶이나 상황에 대한 새로운 해석, 새로운 시선, 새로운 창조에서 솟아오르는 ‘신선한 충격’이다.

 시의 특성을 최대한 잘 살렸을 때 비로소 ‘시’는 독자들의 영혼 속에서 알게 모르게 위대한 힘을 오래오래 발휘하는 눈부신 불사조가 될 것이다.

 시인 자신조차 감동하지 못하고 신선한 충격을 느끼지 못하는 어설프고 평범한 산문적 표현으로 어떻게 불특정 다수의 독자들에게 시적 감동이나 충격을 선물할 수 있을 것인가.

 이 땅의 아름다운 시인들이시여, 어서 하루 바삐 감동과 충격의 광채가 빛나는 황홀한 시의 숲 속으로 돌아오시라...!  ‘좋은 시’를 위해 머뭇거릴 이유가 전혀 없지 않은가.  이 순간, 그렇다, 지금 당장이 좋다!

- 일당산 곰지기 계곡에서

 

ㅡ <한국시학> 가을호(2011)

 

 

 

1945년 서울 안암동 192번지에서 태어나, 경희대 국문학과 졸업, 동 대학원 수료.

1965년 『시문학』지에 시 ´나의 깃발처럼´ 을 발표하면서 문단에 첫선을 보인 후, 1979년 『월간문학』신인상에 시 ‘하늘이 걸어내려와’가 당선되면서부터 활발한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1994년 <예술세계>에 ‘레스토랑’을 발표하면서 소설가 겸업,  ‘소리의 뿌리’, ‘아내의 재롱’ ‘결혼하는 법’ 등을 발표했다.  2000년에 쓴 미발표 전작 장편소설 ‘첫사랑 사냥꾼’이 있다.

1988년 <현대문학>, <소설문학> 등에 시 월평을 쓰면서 평론활동도 겸하고 있다.

‘경희 문학상(1994 경희문인회)’, ‘동포 문학상(1987 한국문인협회)’ ‘제1회 한국문학 백년상(2008 한국문인협회)’ "제7회 앨트웰PEN문학상(2009 국제펜클럽 한국본부) 등을 수상하고

‘미래시’ 회장, ´우이시(우리시)´ 동인, ‘한국녹색시인회’ 회장 ‘토성시 낭송회’ 회장 등을 역임했다.

그동안 잡지사 기자, 국어 교사, 출판사 주간, 서울올림픽대회 조직위원회 대변인실 전문위원, 잡지사 편집국장, 대전엑스포 조직위원회 홍보국 전문위원, <녹색신문> 편집위원, <한국문인협회> 편집위원, 윤리위원 등으로 활동.

현재 <한국문인협회> 윤리위원.  <국제펜클럽> 한국본부 문화정책위원, 동 경기지역위원회 부회장,  <황순원 기념사업회> 자문위원,  <양평문협> 고문 등.

시집으로 중학교 3학년 때 낸 첫 시집『개척자』를 비롯하여 『술집 이카로스』『우리들의 기억력』『살아남기 위하여』 『가족여행』 『별날리기』 『사랑이여, 오늘도 나는 잠들지 못한다』『사람의 향내』『세상에서 가장 짧은 시』『누드 크로키』『기호 여러분(세상에서 가장 짧은 시 2)』등이 있다.



   메모
ID : iinchoi    
2012-03-10    
22:51:47    
내가 어느 곳에서 한 비판내용과 거의 비슷해서 놀랐습니다. 정선생님도 똑 같은 의견을 가지고 계셨군요.ㅎㅎㅎㅎ
늘 건강하시고 행복하시기를 기원합니다.
ID : chungpoet    
2012-03-11    
06:36:05    
아, 그렇습니까?
반갑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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